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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마19:1-1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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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김경형 목사 |
참고 : | 궁극교회 주일예배 |
19장 1, 2절: 예수께서 이 말씀을 마치시고 갈릴리에서 떠나 요단강 건너 유대지경에 이르시니 큰 무리가 좇거늘 예수께서 거기서 저희 병을 고치시더라
예수님께서 가시는 곳곳마다 무리가 따랐습니다. 제자들을 데리시고 존재와 환경을 바꾸어 가면서 천국복음을 깨닫게 하시고, 많은 병자들을 고쳐주시니 그 소문이 퍼져 큰 무리들이 따르게 된 것입니다.
그 큰 무리들 속에는 오늘날 교회 안의 예수를 믿는 사람들처럼 여러 종류의 생각과 소원을 가진 사람들이 많이 있을 수 있는데
1. 병자들을 자꾸 데려오는 사람이 있고,
2. 예수 믿고 병이 나아서 그 은혜가 고마워서 예수님의 일을 조금이라도 거들어 드리고 싶어서 따르는 사람이 있고,
3. 병 낫는 이적 기사가 자꾸 일어나니 그것을 자꾸 보고 싶어서 따라다니는 사람이 있고,
4. ‘예수님이 하는 것을 유심히 보고 나도 그래야 되겠다’고 하며 예수님이 병 고치실 때에
① 두 손을 모으고 기도를 하는 건지,
② 병자의 손을 붙잡는 건지,
③ 아픈 곳에다 손을 얹는 건지,
④ 손톱으로 살을 후벼파는 건지,
잘 보고 나도 그렇게 써먹어야지 해서 따라다니는 사람도 있고,
5. 또 어떤 사람은 예수님의 하는 일을 보고 자기도 그런 사회봉사를 해서 종교적 지위, 사회적 지위를 얻는데 써먹으려고 따라다니는 사람도 있고,
6. 자기 가게의 물건을 팔아먹기 위해서 따라다니는 사람도 있고,
7. 어떤 사람은 예수님의 참 제자가 되고 싶어서 예수님을 따라다니는 사람도 있고, 별의 별 사람이 다 있을 수 있습니다.
병을 고쳐주니 따랐고, 인간이 뭔지 세상이 뭔지 깨닫게 해 주시니 따랐고, 천국을 깨닫게 해 주니 따랐고,
8. 또 어떤 사람은 자기의 생활형편이나 자기의 시간형편에 따라서 예수님을 따르고,
9. 또 어떤 사람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죽이려고 하는 것을 보았는데도 그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사람이 있고,
10. 어떤 사람은 예수 믿는다고 얻어맞으면서도 예수 믿고 따르는 사람이 있고,
11. 어떤 사람은 굶어도 따르고, 맞아죽어도 따른다고 하는 사람도 있고,
12. 어떤 사람은 자기 이익을 챙기기 위해서 따르는 사람도 있고.
왜 예수님을 믿고 따르느냐? 우리가 꼭 예수님을 믿고 따를 필요가 있느냐? 예수를 믿으면 유익이 있느냐? 있다면 무슨 유익이며, 얼마만한 유익이냐?
우리는 영원 전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의지계시로부터 나오는 구원을 위해서 지음을 받은 인간입니다. 따라서 선악과를 따먹기 전에도 생명과를 먹어야 할 인간이고, 선악과를 따먹고 저주를 받은 우리지만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기본구원이 필요하고, 하나님의 말씀과 성령으로 즉, 진리와 영감으로 하나님의 본질적인 온전한 성품과 인격으로 성장이 필요합니다. 그 천국, 신령세계에서 누릴 영능의 실력이 필요합니다. 그런데 우리 인간에겐 모순 투성이이고 병 투성이이고 죄악 투성이입니다.
지금 나에게 고치고 살아야 할 것은 없는가? 분명히 있습니다. 완전하고 온전한 자는 이 세상에 아무도 없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 앞에 온 병자들을 다 고쳐주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지금 몇 가지나 고침을 받았느냐?
① 다 고침을 받았느냐?
② 하나도 못 고쳤느냐?
③ 자기가 어디가 아픈 줄 몰라서 고쳐달라고 말을 안한 것이냐?
④ 자기는 건강하다는 자부심을 갖고 예수님을 흉내내려고 하는 것이냐?
⑤ 고쳐야 될지, 안 고쳐야 될지 전혀 모르는 것이냐?
⑥ 자기는 지금 병자라고 하는 것을 모르는 것이냐?
육적 면에 멍한 사람이 더러 있지? 신체적으로는 건강한데 보이지 않는 정신 면에 이상이 생긴 사람이 많이 있지? 영적 면에는 더 많습니다.
우리는 고침을 받아야 하고, 고침을 받는 동시에 성장을 해야 하고, 영적인 면에서 영광 육을 분리하는데 민감해야 하고, 영적인 이치 면에도 실력이 있어서 예수 믿는데 신바람이 나야 합니다.
19장 3절~12절: 바리새인들이 예수께 나아와 그를 시험하여 가로되 사람이 아무 연고를 물론하고 그 아내를 내어버리는 것이 옳으니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사람을 지으신 이가 본래 저희를 남자와 여자로 만드시고 말씀하시기를 이러므로 사람이 그 부모를 떠나서 아내에게 합하여 그 둘이 한 몸이 될지니라 하신 것을 읽지 못하였느냐 이러한즉 이제 둘이 아니요 한 몸이니 그러므로 하나님이 짝지어 주신 것을 사람이 나누지 못할지니라 하시니 여짜오되 그러하면 어찌하여 모세는 이혼증서를 주어서 내어버리라 명하였나이까 예수께서 가라사대 모세가 너희 마음의 완악함을 인하여 아내 내어버림을 허락하였거니와 본래는 그렇지 아니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누구든지 음행한 연고 외에 아내를 내어버리고 다른데 장가드는 자는 간음함이니라 제자들이 가로되 만일 사람이 아내에게 이같이 할진대 장가들지 않는 것이 좋삽나이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사람마다 이 말을 받지 못하고 오직 타고난 자라야 할지니라 어미의 태로부터 된 고자도 있고 사람이 만든 고자도 있고 천국을 위하여 스스로 된 고자도 있도다 이 말을 받을 만한 자는 받을지어다
바리새교인들이 이혼문제를 가지고 예수님을 시험합니다.
이 바리새교인들은 여호와 하나님을 신앙의 대상으로 믿고, 모세오경을 믿고, 율법에 철두철미한 사람들이고, 성경암송도 잘 하고, 부활도 천국도 영도 다 시인을 하고, 육적 아브라함의 자손들이라는 긍지가 대단한 사람들입니다.
이런 자들이 ‘사람들이 예수를 저렇게 많이 따르니 많은 사람이 모였을 때에 예수에게 이혼문제로 시험을 걸어 예수의 코를 납작하게 만들어 유명세를 꺾어야지’ 하고 달려든 것입니다.
바리새교인 자기들은 아마 고칠 것이 없는 완전한 자로 여겼던 모양입니다. 그러기에 자기들 앞에 있는 분이 어떤 분인 줄 모르고 깔보고 덤벼들었던 것입니다. 성경구절의 깊은 뜻은 모르고 덤벼들었습니다.
‘사람이 아무 연고를 물론하고 아내를 버리는 것이 옳으니이까?’
‘어떤 이유에서이든지 아내를 버릴 수 있느냐?’ 하고 물었을 때 ‘버릴 수 있다’고 하거나 ‘버릴 수 없다’는 말로 대답을 할 것이니 시험을 거는 자는 틀림없이 어느 쪽으로 대답을 하던지 걸려 넘어지도록 함정을 파놓은 것입니다. 독사 같은 놈들이니까!
예수님께서는 버릴 수 있다거나 버릴 수 없다는 말씀을 하기 전에 먼저 성경, 하나님 말씀을 통해 창조주 하나님께서 부부를 왜 만들었는지 그 원칙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원칙을 모르고 말을 하게 되면 인간 자기 기준, 자기 형편에서 말을 하게 되는 것이니 옳은 판단이 아닌 것입니다. 이제 우리도 먼저 부부, 또는 결혼의 원칙부터 알고 판단을 하고 살자 그 말입니다. 인간창조의 원칙을 모르면 악한 사건에 휘말리게 됩니다.
인간을 누가 만들었느냐? 하나님께서 지으셨습니다. 창세기 2장 18절로 24절을 보면 하나님께서 본래 남자와 여자를 만드신 것입니다. 여자를 남자에게서 취하니 남자가 하는 말이 ‘이는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 했는데 이 말은 ‘남자 아담아, 너의 몸의 뼈 중에 이렇게 아름다운 뼈가 어디 있느냐? 남자 아담아, 너의 몸의 살 중에 이렇게 부드러운 살이 또 어디 있느냐?’ 하는 말입니다.
살펴보십시오. 자기의 신체부위 중에 자기 아내의 몸만큼 아름답고 부드럽고 사랑스럽고 예쁜 구석이 남자 자기의 몸 구석 어디에 있느냐? 그러니까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 ‘남자야, 이 아름다운 여자를 네가 만든 것이 아니고, 여자야, 이 건강한 남자를 네가 만든 것이 아니다’ 창조주 하나님께서 부부를 그렇게 만드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남자와 여자를 부부로 만들어 놓으시고 참 보기가 좋았을까? 신령계와 물질계를 총망라하여 하나님께서 최고로 사랑하는 부부입니다. 이 부부를 이 세상 물질계에서 잘 훈련 연단을 시켜서 영적인 실력, 천국의 사람으로 잘 만들어지게 해서 천국에서 더 좋은 행복을 맛보도록 할 참입니다.
그래서 이제 훈련을 시키는데, 명령하기를,
19장 5, 6절: 말씀하시기를 이러므로 사람이 그 부모를 떠나서 아내에게 합하여 그 둘이 한 몸이 될지니라 하신 것을 읽지 못하였느냐 이러한즉 이제 둘이 아니요 한 몸이니 그러므로 하나님이 짝지어 주신 것을 사람이 나누지 못할지니라 하시니
‘사람이 부모를 떠나서 아내에게 합하여 둘이 한 몸이 될지니라’
하나님이 짝지었습니다. 사람이 나누지 못한다고 명령을 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하나님께서 남자와 여자를 만들었다고 하는 여기에서 생각할 점이 하나 있는데
① 우리 인간이 남녀라는 이 성(性)을 변경시킬 수 없다는 것입니다.
남자를 여자로 만들거나 여자를 남자로 만들거나 변경시킬 수 없다는 것입니다. 사람이 태어날 때부터 분명치 못한 성은 본인의 의사대로 될 테지만 멀쩡한 성을 왜 바꾸느냐? 사람이 만든 고자도 있고, 천국을 위해서 스스로 된 고자도 있습니다. 어떤 유명한 사람이 아니라 타고났다 그 말입니다.
② 남자가 남자끼리 부부가 되고, 여자가 여자끼리 부부되어 사는 것도 역시 성을 바꾼 것입니다.
③ 태중 속의 아이가 남자면 낳고, 여자면 죽이는 이것도 역시 성을 바꾸는 것입니다. 이것은 부모가 바꾼 것입니다.
어쨌든 우리의 영원 궁극적 구원을 위한 하나님의 창조의 질서와 섭리를 파괴하는 행위요, 남녀 성의 질서를 파괴하는 범죄적인 행위입니다. 이것은 곧 인간 자기에게 더러운 질병과 고통과 죽음을 불러일으키는 멸망적인 행위입니다.
인간을 지으신 창조주 하나님께서 자기를 남자로 지은 것, 자기를 여자로 지은 것은 분명한 하나님의 뜻이 자기에게 주어져 있는 것입니다.
① 하나님께서 남자에게 준 권이 있고,
② 하나님께서 여자에게 준 권이 있고,
③ 하나님께서 부부에게만 준 권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남자에게 준 권은
① 생명과 따먹고 만물을, 사건 환경을 진리와 사랑을 가지고 지키고 다스리고 통치하고 지배하는 권을 주셨습니다.
② 여자에게는 이 일이 잘 되도록, 땅에 편만하도록 보필하는 권을 주었습니다.
부부는 남자는 진리와 사랑을 여자에게 줄 권이 있고, 여자는 진리와 사랑을 달라고 할 권이 있습니다. 만약에 힘으로 억압 강압권을 쓰면서 여자에게 강요하는 것은 벌써 이것은 하나님이 주신 권은 아닙니다. 진리와 사랑을 안 받으려고 하는 여자도 여자 자기의 권을 벗어나는 것이고, 진리와 사랑이 아닌 세상을 달라는 것도 여자의 옳은 권이 아닙니다. 비 진리에서 나온 사랑을 주고받는 것은 모두 선악과 따먹고 나온 것입니다. 그러면 벌써 그 가정에는 슬픔과 고통이 들어오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이 권을 쓸 줄 모른다거나 안 쓰거나 쓰지 않으면, 그리고 권이 서로 바꾸어져서 행사하게 되면 이것은 침범이 되는 고로 하루라도 집안이 조용할 날이 없습니다. 고통의 연속입니다.
먼저 부부는 에덴동산에서 생명과를 먹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명령입니다. 생명과부터 안 따먹으면 부부끼리 원망이 나오고, 자식 간에 형제 간에 살인이 나오게 됩니다. 선악과 먹은 행위가 나오는 것입니다.
생명과 따먹는 것이 에덴동산인데 이 에덴동산에서 아담 하와가 벗었으나 부끄러움이 없습니다. 서로가 서로에게 가리운 것이 없고, 안과 밖이 깨끗하여 흠이 없습니다. 합심하여 생명과 따먹는 부부는 행복합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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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도가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신앙생활을 하려면 인격자이신 하나님의 가장 깊은 심원인 하나님의 의지세계에서부터 당신의 애성에서 발로된 인간창조의 원인과 동기와 목적을 따라 신앙을 해야만 됩니다. 이래야 기독교 본질에서 이탈하지 않고 가장 효율적 적중적으로 하나님의 온전한 성품을 덧입을 수 있고, 성도 각자가 이 땅에서 이렇게 덧입은 하나님의 성품의 양에 따라 장차 천국에서의 누림에 차등이 생기게 됨을 성경을 통해 알 수가 있습니다.
김경형목사님께서 교역자 및 신학생을 대상으로 20여년 동안 매 주 정례적으로 진행하는 신학 및 성경연구 모임을 통해 하나님의 의지세계에서 예수 그리스도로 통한 인간구원을 설정하게 된 원인과 동기와 목적을 깨닫고 하나님의 본질의 신앙으로 나가는 주의 종들이 누룩처럼 퍼져나가고 있습니다.
참석하실 분은 031-207-5159, 또는 010-8886-5159로 문의해 주세요.(평신도도 참석 가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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