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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마22:15-4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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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김경형 목사 |
참고 : | 궁극교회 주일예배 |
22장 15절~22절: 이에 바리새인들이 가서 어떻게 하여 예수로 말의 올무에 걸리게 할까 상론하고 자기 제자들을 헤롯당원들과 함께 예수께 보내어 말하되 선생님이여 우리가 아노니 당신은 참되시고 참으로써 하나님의 도를 가르치시며 아무라도 꺼리는 일이 없으시니 이는 사람을 외모로 보지 아니하심이니이다 그러면 당신의 생각에는 어떠한지 우리에게 이르소서 가이사에게 세를 바치는 것이 가하니이까 불가하니이까 한대 예수께서 저희의 악함을 아시고 가라사대 외식하는 자들아 어찌하여 나를 시험하느냐 셋돈을 내게 보이라 하시니 데나리온 하나를 가져왔거늘 예수께서 말씀하시되 이 형상과 이 글이 뉘 것이냐 가로되 가이사의 것이니이다 이에 가라사대 그런즉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바치라 하시니 저희가 이 말씀을 듣고 기이히 여겨 예수를 떠나가니라
당시의 종교지도자들은 비유를 다 듣고는 자기들을 향하여 하는 말인 줄 알고 예수를 죽일 묘안을 찾는 것입니다. ‘어떻게 하면 함정에 빠뜨릴까? 올무에 걸리게 할까? 죽여 없애야 할 텐데’ 하는 그들이 목숨이 몇 개인 줄 알고나 살아갈까?
이들이 헤롯당원들과, 그들의 제자들과 합세를 합니다. 예수님 앞에 함정을 파서 잡으려고! 사람의 중심을 아시는 주님이 그들의 계책을 모르실 리 없는 것입니다.
함정(올무)을 찾아 보라!
① 내 앞에서 예수 안 믿는 사람이 나를 칭찬한다?
② 나 없는데서 예수 안 믿는 사람이 나를 칭찬한다?
③ 내 앞에서 예수 안 믿는 사람이 예수님을 칭찬을 한다?
④ 내 앞에서 예수 안 믿는 사람이 예수님을 헐뜯는다?
예수 안 믿는 사람이 칭찬하는 기준은?
① 인간들 기준으로 말한다?
② 하나님의 진리기준을 가지고 말한다?
예수 안 믿는 사람들이 말하는 그 기준, 척도도 모르면서 그들의 말에 호응하고 합세하면 함정에 빠질 수가 있습니다. 모르는 사이에 자기가 인간기준에 빠져든다는 말입니다. 이미 그 때는 자기는 불신자들처럼 놀게 되는 것입니다.
로마를 등에 업고 있는 가이사 황제의 꼭두각시들, 그리고 바리새인의 제자들. 종교와 정치가 합세된 그들. 이것은 신앙 같으나 신앙이 아닌 종교의 탈을 쓰고 있는 괴물입니다.
그들이 예수님께 시험을 걸기 위해 예수님을 올리는 척 합니다. 말이야 맞는 말이지만 그 말을 하는 그 기준은 세상입니다. 우리 기독자들은 속으면 안 됩니다. 칭찬하고 말하는 자들의 기준적 지식, 기준개념을 알아야 속지 않습니다.
22장 17절: 그러면 당신의 생각에는 어떠한지 우리에게 이르소서 가이사에게 세를 바치는 것이 가하니이까 불가하니이까 한대
세를 ‘가이사에게 바치라’ 하면 유대종교의 반역자가 되는 것이고, ‘가이사에게 세를 바치지 말라’ 하면 로마법으로 고발을 당하게 됩니다.
22장 19절~22절: 셋돈을 내게 보이라 하시니 데나리온 하나를 가져왔거늘 예수께서 말씀하시되 이 형상과 이 글이 뉘 것이냐 가로되 가이사의 것이니이다 이에 가라사대 그런즉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바치라 하시니 저희가 이 말씀을 듣고 기이히 여겨 예수를 떠나가니라
예수님께서 그들의 속마음을 아시고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그들의 물음에 잘못 대답한 것이 있느냐? 참 지혜롭게 말씀을 하셨습니다. 도리어 그들이 멋지게 걸려 넘어진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뭔가 자기들이 한 행동에 양심이 찔려서 예수님께로, 진리에게로 돌아와야 사는 일인데 그렇게 당하고 걸려 넘어졌으면서도 예수를 버리고 예수를 떠나간 것입니다. 어디로? 세상 가이사에게 종노릇하러! 그들의 종말은 역사적으로 이미 정해진 것입니다. 지금도 예정된 그 역사가 그들 위에 머물고 있는 것이 보이느냐?
22장 23절~33절: 부활이 없다 하는 사두개인들이 그 날에 예수께 와서 물어 가로되 선생님이여 모세가 일렀으되 사람이 만일 자식이 없이 죽으면 그 동생이 그 아내에게 장가들어 형을 위하여 후사를 세울지니라 하였나이다 우리 중에 칠 형제가 있었는데 맏이 장가들었다가 죽어 후사가 없으므로 그의 아내를 그 동생에게 끼쳐두고 그 둘째와 셋째로 일곱째까지 그렇게 하다가 최후에 그 여자도 죽었나이다 그런즉 저희가 다 그를 취하였으니 부활 때에 일곱 중에 뉘 아내가 되리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너희가 성경도, 하나님의 능력도 알지 못하는 고로 오해하였도다 부활 때에는 장가도 아니가고 시집도 아니가고 하늘에 있는 천사들과 같으니라 죽은 자의 부활을 의논할진대 하나님이 너희에게 말씀하신 바 나는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요 야곱의 하나님이로라 하신 것을 읽어보지 못하였느냐 하나님은 죽은 자의 하나님이 아니요 산 자의 하나님이시니라 하시니 무리가 듣고 그의 가르치심에 놀라더라
부활이 없다 하는 종교인들이 누구냐 하면 사두개인들입니다. 이들도 에녹이 하늘로 올라간 것이라든지, 엘리야가 불말을 타고 하늘로 올라간 것이라든지 알고 있을 터인데 부활도 믿지 않고 천사도 믿지 않고 내세도 믿지 않는 자들입니다.
바리새교파는 주로 평신도들이 많고, 사두개파는 주로 제사장들이 많고 고위층이 많습니다. BC 152년 유대 하스몬 왕가의 요나단이 왕직과 제사장직을 겸하는 사건으로 경건자들이 떨어지면서 바리새파를 이룬 것입니다.
앞에서는 세상 로마정치와 종교와 연합된 자들이 예수님께 시험을 걸더니 이제는 사두개인들의 시험입니다. 이들은 현실주의로 여호와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입니다. 이들도 모세오경을 가지고 있습니다. 헤롯당원들과 바리새파는 서로 미워하는 마치 개와 고양이 같은 앙숙인데 예수님을 골탕먹이고 예수를 죽이자 하는 데는 다 합세가 되는 것입니다.
이런 일들이 그 때 뿐만이 아니고 지금도 언제나 있는 것입니다. 성경을 가지고 모든 면에 진리이치, 신조척도를 찾는 것이 아니라 사역주의를 복음이라고 주장하고 나가는 종교사상은 결과적으로 예수를 죽이는 자와 똑 같은 이치입니다. 신앙의 질적인 성분을 모르고 사역으로만 나가면 그와 같은 일을 저지르게 되어 있습니다.
22장 24절~28절: 선생님이여 모세가 일렀으되 사람이 만일 자식이 없이 죽으면 그 동생이 그 아내에게 장가들어 형을 위하여 후사를 세울지니라 하였나이다 우리 중에 칠 형제가 있었는데 맏이 장가들었다가 죽어 후사가 없으므로 그의 아내를 그 동생에게 끼쳐두고 그 둘째와 셋째로 일곱째까지 그렇게 하다가 최후에 그 여자도 죽었나이다 그런즉 저희가 다 그를 취하였으니 부활 때에 일곱 중에 뉘 아내가 되리이까
사두개인들이 예수님께 묻기를 ‘형이 장가를 들어 자식이 없이 죽었다. 그리고 그 밑의 동생이 자식이 없이 죽었다. 그 뒤의 동생들 7명이 다 그렇게 해서 다 죽었다. 결국 부활 때에 뉘 아내가 되겠느냐’ 하고 예수님께 물은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너희들이 성경을 잘못 알고 있다’는 것입니다. ‘너희들이 성경도 모르고, 너희들이 하나님의 능력도 모르고 오해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도 예수님의 말씀을 그대로 믿어야 합니다. ‘사두개종파들은, 현실주의 세상주의 자들은 성경을 모르는 사람들이다, 하나님의 능력도 모르는 사람들이다’ 라고 우리도 믿어야 합니다. 그렇다면 그들과 함께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함께 있다가는 큰일 날 일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부활 때는 천사들과 같다는 것입니다. 이 말씀은 혈과 육을 가진 남성 여성을 아는 것과 같은, 자연적 본능적으로 아는 물질적인 성(性)을 가진 그런 신체들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부활 때는 그런 성분들이 모두 빠져버리는 것입니다. 인간의 용어로 말한다면 모두 중성으로 되어버린다고 할까? 남녀의 구별이 없어진다는 것입니다. 만능의 능력자 하나님께서 무엇을 못하시겠느냐?
아마도 그들은 영적 차원을 부인하고 살다보니 육적 물질적 개념으로만 생각을 하게 돼 그게 무척 궁금했던 모양이지? 얼마나 그 문제가 어렵다고 느꼈기에 예수님께 이 문제로 KO를 시켜야 되겠다고 한 것입니다.
22장 31절: 죽은 자의 부활을 의논할진대 하나님이 너희에게 말씀하신 바
하나님께서 너희들에게 말씀한 것이 있다.
‘나는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요, 야곱의 하나님이라. 하나님은 죽은 자의 하나님이 아니요 산 자의 하나님이라’
◆ 죽은 자.
무엇이 죽은 거냐?
하나님 당신은 영원부터 영원까지 살아 계신 분입니다. 하나님은 안 죽었고, 안 죽습니다. 신앙생명이 죽은 자, 영이 죽은 자의 하나님이 아니십니다.
아브라함 이삭 야곱 그들은 신앙생명이 산 자들입니다. 그들은 신앙생명 위주로 살았고, 신앙생명 복음운동 목적으로 자식을 낳고, 자식들을 그 운동으로 살게 했습니다. 영이 주격이 된 그 후손들은 영원히 갑니다. 신앙생명이 죽어 있는 자들에게 하나님이 어떻게 역사하실 것이냐? 왜 역사를 할 거냐? 역사를 할 이유가 없습니다.(구원역사로)
아브라함 이삭 야곱 등은 모두 산 신앙입니다. 물질초월 인정초월 생명초월을 한 신앙을 가졌습니다. 모두 부활의 성분을 가진 신령천국의 세계를 믿는 산 신앙을 가지고 살았습니다. ‘그러나 사두개인 너희들은 부활도 영도 천국도 천사도 다 부인하고 살지 않았느냐? 현실목적 물질목적 육신목적으로 살지 않았느냐?’ 그러니 자식이 없을 수밖에!
부모 자식 없이 죽은 것 이상한 것이 아닙니다.
첫째는 신앙생명을 가진 후손이 없다는 것. 영적인 존재와 그 세계를 모두 부정하고 살았으니 그 세계를 아는 후손이 없습니다.
둘째는 그러니 육적 혈통적 자식들이 있으나 마나!
그러나 그들은 알기를 ‘부활 때는 남녀라는 성(性)이 없어지는구나’ 그렇게만 알고 고개를 끄덕끄덕하고 갔겠지? 그것이 왜 그렇게 될 수밖에 없었는지, 왜 후손이 없이 죽을 수밖에 없었는지 그 영적인 구원도리를 알고 갔을까?
교회는 예수님의 신부입니다. 신부인 교회는 반드시 진리신앙을 가진 아브라함과 야곱과 다윗과 선지 사도들의 물질초월 인정초월 목숨초월을 할 수 있는 영적인 후손들을 배출해야 합니다. 후손들 속에 신앙생명의 씨앗이 없으면 고깃덩어리 육덩이 후손밖에 안 됩니다.
그런고로 우리는 저게 사두개인의 종교사상인지, 바리새교인의 종교사상인지, 헤롯당원의 사상인지? 그들은 아무리 성경이라 해도 그들의 중심사상도 알고, 나는 어느 쪽 사상을 가지고 신앙이라고 떠들고 있는 것인지 반드시 알고 있어야 합니다. 이것을 모르면 자식이 있어도 신앙생명의 후대가 없는 것입니다. 하나의 종교인으로 길러 놓은 것은 자기의 후대가 아닌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22장 33절: 무리가 듣고 그의 가르치심에 놀라더라
예수의 가르침을 듣고 놀란 것이고, 또 하나는 유명하다는 그들의 코를 납작하게 만든 것입니다.
‘예수가 저 사두개인 날탱이들의 코를 꺾었다네’ 하는 소문이 바리새인들의 귀에 들어갔습니다. 그 소리를 들은 바리새교인들은 또 모여서 의논하기를 ‘저번에 가이사에게 세를 바치는 것이 옳으냐 하는 문제를 가지고 예수의 코를 납작하게 만들려고 그랬는데 우리가 당하지 않았느냐? 이번에는 진짜 참 잘 해 보자. 성경을 능통하게 잘 아는 율법사를 보내서 시험을 해 보자’ 하고 율법사 자기들끼리 ‘너 성경 몇 구절이나 암송하느냐?’ 해서 성경을 제일 많이 외우는 율법사를 선정해서 예수님께 보낸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 제까짓게 뭐냐! 나사렛 시골 촌뜨기. 신학대학교 대학원도 안 나오고, 박사증도 없는 것이 까불고 있어’ 하고는 율법사가 으스대면서 예수님께 온 것입니다.
와서는 ‘선생님’ 했는데 이 말은 자기 선생님이라는 말이 아니고 의례히 부르기 좋게 하는 말입니다. 길 가다가 길을 물으려면 의례히 ‘아저씨, 아주머니, 할아버지, 할머니 선생님’, 아니면 ‘저, 말씀 좀 묻겠습니다’ 하듯이 ‘선생님’ 이라고 한 것입니다. 그들이 예수를 아무리 깔보아도 자기 마음대로 ‘어이 젊은이, 이봐 나사렛 목수의 아들. 야, 이단자’ 하고 부를 수는 없는 것입니다.
‘율법 중에 누가 크니이까’ 라고 물으니 첫째 계명과 둘째를 다 가르쳐 주신 것입니다.
첫째 계명이 매우 중요합니다. 중요하기 때문에 먼저 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그 면에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라고 하시는데, 이 말씀은 대신관계 면에서 자기의 전 인격을 다하라고 하는 것인데 과연 그렇게 할 이유가 있는 것이냐?
그렇게 전 인격을 다 할 이유가 있습니다. 인간인 자기를 창조의 원인 동기 목적이 있는 자기로 지으신 분이십니다. 나의 영원한 존귀 영광성이 전부는 하나님에게 다 들어 있습니다. 나의 소원과 목적과 취미와 간구성과 추구성이 전부는 그 안에 다 들어 있습니다. 나의 출생, 존재의 삶 속에 하나님을 닮아 가는 이치가 들어 있습니다. 대신관계를 먼저 잘 알고 가질 수록 자기는 마음이 평안하고 행복합니다.
이 대신관계적 상태에서 끊어지지 말고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입니다. 이 사랑은 세상 일반사랑이 아닌 아가페 하나님사랑입니다. 이 사랑 속에는 진리가 들어 있습니다. 진리 없는 사랑은 아가페사랑이 아닙니다.
이웃사랑은 인인관계 연관관계성입니다. 첫째는 믿는 성도에게, 둘째는 자기 집 근처, 셋째는 만나는 사람에게, 넷째는 지나가는 모든 사람에게. 모두는 나의 이웃입니다. 이 이웃들에게 아가페로 사랑하라는 것은 천국점령법이 들어 있고, 자기의 구원이 들어 있고, 자기의 존영성이 그 속에 들어 있는 말씀입니다.
마태복음 22장 40절에 ‘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 한 것은 그 삶에 매달려 살으라는 말입니다. 자세한 율법과 계명이 있다 할지라도 전부는 ‘하나님사랑, 인간사랑’ 안에 다 들어 있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아가페사랑이 무슨 사랑인지 모르면 하나님사랑도 안 되고, 역시 인간끼리도 아가페사랑을 못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하나님만큼 사랑하고, 인간을 인간만큼 사랑을 한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나님을 자기 발아래 끄집어 내리고 발로 밟고 무시하고, 인간을 하나님 자리에 올려놓고 하는 것은 참말로 미친 짓입니다.
이름 좋은 율법사, 명예 좋은 율법사, 차원 높은 율법사, 대우받는 율법사. 만 사람의 존경의 대상자입니다. 아침저녁으로 율법을 가르치고, 율법을 달달 외우는 율법사입니다. 이 율법사가 제일 큰 계명을 몰라서 물은 것은 아닐 것입니다. 자기는 율법을 잘 지켰다고, 율법을 잘 안다고 예수님께 시험을 하는 것입니다.
율법과 계명은 하나님으로부터 나온 것입니다. 율법과 계명은 하나님의 개념이요, 하나님의 목적이요, 하나님의 의사요, 하나님의 뜻이 들어 있습니다. 그런데 이 율법사가 시험을 하는 저의가 사랑에서 나온 것입니까, 미움에서 나온 것입니까? 이 율법사가 시험을 하는 그 저의는 일반개념에서 나온 것입니까, 진리지식의 개념에서 나온 것입니까? 이 율법사가 예수님께 시험을 걸지만 자기부터 걸려 넘어진 상태에서 묻는 꼬락서니인데 그러고도 자기는 넘어졌다고 보나, 안 넘어졌다고 보나? 계명은 외우라고 준 것입니까, 만들어지라고 준 것입니까? 계명을 외우기만 하면 지켜지는 것인지, 외우지 못하는 사람은 사람이 안 만들어지는 것인지?
율법사는 왜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했을까?
① 예수를 몰랐기 때문인가?
② 지식이 비뚤어졌기 때문인가?
무엇이 먼저 선행적인가? 사람이 지식이 비뚤어지면 어디에서 걸려 넘어진 것을 모릅니다. 모른다고 하는 자체도 모르고 있는 것입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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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도가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신앙생활을 하려면 인격자이신 하나님의 가장 깊은 심원인 하나님의 의지세계에서부터 당신의 애성에서 발로된 인간창조의 원인과 동기와 목적을 따라 신앙을 해야만 됩니다. 이래야 기독교 본질에서 이탈하지 않고 가장 효율적 적중적으로 하나님의 온전한 성품을 덧입을 수 있고, 성도 각자가 이 땅에서 이렇게 덧입은 하나님의 성품의 양에 따라 장차 천국에서의 누림에 차등이 생기게 됨을 성경을 통해 알 수가 있습니다.
김경형목사님께서 교역자 및 신학생을 대상으로 20여년 동안 매 주 정례적으로 진행하는 신학 및 성경연구 모임을 통해 하나님의 의지세계에서 예수 그리스도로 통한 인간구원을 설정하게 된 원인과 동기와 목적을 깨닫고 하나님의 본질의 신앙으로 나가는 주의 종들이 누룩처럼 퍼져나가고 있습니다.
참석하실 분은 031-207-5159, 또는 010-8886-5159로 문의해 주세요.(평신도도 참석 가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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