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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삼상7:1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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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이한규 목사 |
참고 : | 실시간 온라인 새벽기도(2190)2017년 10월 20일(금) |
비전 성취에 필요한 것(1) (삼상 7장 12절)
< 거룩한 어리석음도 필요합니다 >
1987년, 저는 선교사의 꿈을 가지고 미국 유학길에 올랐습니다. 원래 목표로 한 신대원은 미국 LA에 있는 풀러(Fuller) 신대원이었지만 당시 신대원 입학 허가로는 미국 비자가 잘 나오지 않아 일반 전공으로 비자를 받고 미국에 들어간 후 학교를 옮기려고 했습니다. 그래서 미국 동부 코네티컷에 있는 브리지포트 대학 화학과에 입학허가서를 받고 출국했습니다.
LA에 도착해 부모님 집에 머물면서 풀러 신대원에 지원서를 내고 입학 허가를 기다렸습니다. 그때 조언자들이 미국에서 대학을 옮기는 것은 자유지만 유학생은 처음 비자를 받은 대학에 등록한 후 옮겨야 불이익이 없다고 해서 일단 동부로 가서 브리지포트 대학에 등록했습니다. 거기서 풀러 신대원의 입학 허가서가 오기만 초조하게 기다렸지만 한 달이 지나도록 오지 않았습니다. 그때 한 목회자가 뉴욕 근처에 좋은 복음주의 신대원이 있다고 소개해주었는데 그것이 얼라이언스(Alliance) 신대원입니다.
입학 지원 서류를 구비해 얼라이언스 신대원을 직접 방문하자 입학 담당관이 그 서류를 본 후 입학에 문제가 없다고 했습니다. 비로소 안도감이 들었습니다. 그날 기쁘고 들뜬 마음이 되었지만 한편으로 왜 풀러 신대원에서 가부간의 소식이 없는지 궁금했습니다. 다음 날, 풀러 신대원의 입학 담당관에게 직접 전화해서 어떻게 된 일이냐고 묻자 추천서 하나가 미비해 심사를 미루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알고 보니까 당시 추천서를 부탁했던 부모님이 다니던 교회의 A 목사님이 추천서를 써 보내겠다고 약속한 후 보내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때서야 A 목사님이 부랴부랴 추천서를 보냈고 얼마 후 풀러 신대원에서도 입학허가서가 도착했습니다. 두 장의 입학 허가서를 놓고 하나님의 뜻을 물었습니다. 처음 목표로 했던 곳은 풀러 신대원이었지만 얼라이언스 신대원 입학 담당관의 따뜻한 미소와 뉴욕에서 잠깐 사귀었던 교우들이 좋아서 뉴욕에서 공부하기로 결심했습니다. 그것이 제가 얼라이언스 신대원에 들어가 미국 기독교 선교연맹(Christian & Missionary Alliance, 미국성결교)의 선교 비전에 동참하게 된 계기입니다.
1991년, 저는 신대원을 졸업하고 C&MA의 선교비전을 품고 귀국했습니다. 당시 미국 C&MA 본부에서는 한국은 상당히 복음화 되었기에 선교지(Mission Field)가 아니라고 관심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한국은 선교지는 아니지만 선교 자원 지역(Mission Resource Field)로서 중요하다고 여기고 큰 비전을 품고 혈혈단신 귀국했습니다. 그러나 처음에는 동역자나 후원자가 없어서 어떻게 비전을 구체화시켜야 할지 막막했습니다.
선교 자원을 발굴하려면 선교사 훈련학교도 필요한데 후원도 없도 재정도 없어서 일단 여러 신학교에서 강의를 했고 인천에서 교회도 개척했습니다. 그러나 한국에서 교단도 없고 배경도 없고 후원도 없고 재정도 없는 상태에서 교회 성장은 쉽지 않았습니다. 선거 때 무소속으로 출마하면 당선되기가 쉽지 않듯이 교회도 무소속으로 성장시키는 일은 쉽지 않았습니다.
또한 C&MA가 어떤 단체이고 C&MA의 창시자인 심슨 목사님이 누구인지 목회자들도 잘 몰라서 이단 오해도 받았습니다. 찬송가에는 심슨 목사님이 지은 찬송가가 <어제께나 오늘이나>, <내 주 하나님 넓고 큰 은혜는>, <주와 같이 길 가는 것>, <은혜 구한 내게 은혜의 주님>, <내 병든 손 내밀라고>의 5곡이 있습니다. 그 찬송가들은 알아도 정작 심슨 목사님이 누구인지 아는 사람은 거의 없었습니다.
심슨 목사님은 1843년 캐나다의 장로교 가정에서 태어나 1866년 캐나다의 낙스(knox) 대학을 졸업하고 23세의 나이에 캐나다에서 두 번째로 큰 낙스 장로교회의 담임목사로 부임하고 탁월한 설교로 교회를 크게 부흥시켰습니다. 그리고 8년 후 건강 및 새로운 비전을 위해 미국으로 들어와 켄터키 루이빌의 <체스트너트(Chestnut) 장로교회>와 뉴욕의 <13번가 교회(Thirteenth Street Church)>의 담임목사를 지냈습니다.
19세기 말, 심슨 목사님은 <13번가 교회>의 담임목사직을 떠나면서 복음주의 전도운동과 성결한 삶과 선교를 강조하면서 1884년 기독교 선교연맹(C&MA, Christian & Missionary Alliance)을 창설합니다. 기독교 선교연맹이란 명칭의 원래 뜻은 ‘기독교인과 선교사 연맹’입니다. 즉 후방의 기독교인과 전방의 선교사가 연합해서 효과적으로 세계선교를 이루자는 취지로 창설된 선교 공동체입니다.
1894년 미국 시카고의 무디 교회에서 열린 세계 선교대회에서 주 강사였던 심슨 목사님의 설교를 듣고 감리교 출신의 카우만 부부가 C&MA 선교사로 헌신해 1901년 일본에 동양선교회(OMS)를 세웠습니다. 동양선교회는 심슨 목사님의 4중 복음(중생의 주, 성결의 주, 신유의 주, 재림의 주)을 내세워 선교활동을 펼쳤습니다. 그 동양선교회에서 세운 신학교를 졸업한 학생들이 한국에 돌아와 세운 교단이 성결교단입니다. 그것을 생각할 때 C&MA는 한국 성결교단의 뿌리와 같은 교단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또한 당시 “방언을 강권하지 말고(bid not) 방언하면 막지 말라(forbid not).”고 했던 C&MA와 달리 “방언은 성령세례의 증거로서 꼭 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따로 분리되어 나와 순복음 교단이 생깁니다. 또한 심슨 목사님이 주장한 4중복음에서 ‘성결’ 대신에 외적인 은사 표현을 통한 ‘성령세례’를 대신 넣고 ‘축복’ 교리를 추가해서 5중복음(중생, 성령 세례, 신유, 재림, 축복)을 내세운 것을 볼 때 C&MA는 순복음 교단의 신학 사상 및 운동에도 큰 영향을 미친 셈입니다. 그래도 한국에서는 C&MA를 거의 몰랐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아무런 재정이나 배경이나 후원자도 없이 C&MA의 선교 비전 하나만 가지고 한국에 들어와 혼자 C&MA 목회자로 활동하니까 얼마나 무모한 일입니까? 당시 여러 목사님이 말했습니다. “목사님이 장로교회로 오면 좋은 곳으로 부임할 수 있을 텐데 왜 한국에서 미국 C&MA 목회자로 남아있는지 이유를 모르겠습니다.”
그 후 간간히 타 교단에서 담임목사 청빙 제의도 왔습니다. 그 중에는 사례비가 상당히 많이 책정된 교회도 있었습니다. 그 청빙에 저도 흔들리지 않았고 아내도 이런 말로 저를 붙잡아주었습니다. “만약 하나님의 뜻도 아닌데 교회를 옮기면 큰 죄가 되니까 당신은 그러지 말아요.” 하나님의 강권하신 뜻이 아니라 단순히 조건이 좋아 옮긴다면 그때는 저의 비전이 ‘비전’이 아닌 ‘야망’인 것으로 정체를 드러내는 때일 것입니다.
야망을 가지는 것이 큰 죄는 아니라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성공 요소는 아닐 것입니다. 세상적인 야망과는 달리 거룩한 비전은 자기를 포기하면서 이루려는 찬란한 꿈입니다. 목회자 총회에 가면 가끔 ‘보다 큰 교회’로 부임하기를 원하는 목사님들의 부산한 발걸음이 느껴집니다. 보다 나은 곳을 향한 추구는 보편적인 현실입니다. 그런 현실을 무시하고 계속 ‘C&MA 선교 비전’을 붙들고 있으니 얼마나 어리석게 보입니까? 원래 선교란 어리석은 사람이 있어야 이뤄질 수 있는 것입니다. 때로는 거룩한 어리석음도 필요합니다. (다음주 화요일에 계속됩니다)
< 달리 생각하는 사람 >
1990년, 미국 C&MA 교단의 한국인 3번째 선교사인 A 선교사님이 필리핀 선교를 떠났습니다. 그 후 5년간 미국인 C&MA 본부가 감탄할 정도로 많은 선교 열매를 맺었습니다. 그 선교캠프가 외적으로 크게 성장하고 안정된 상태가 되자 당시 문이 열리기 시작한 몽골로 눈을 돌렸습니다. 그리고 1996년 황량한 그곳으로 자원해 선교를 떠났습니다. 그 후 7년 만에 6개의 교회를 개척하고 많은 몽골인 제자를 길러냈고 2000년대 초에는 성경훈련센터 건물도 완공했습니다.
몽골 선교캠프가 안정되자 다시 중국에 속한 내몽골로 눈길을 돌렸습니다. 그리고 6개 교회의 감독 자리와 성경학교 학장 자리를 B 선교사님에게 물려주고 중국의 내몽골로 들어가 새롭게 개척사역을 하겠다고 했습니다. 그런 모습이 보통 사람들 눈에는 어리석게 보일 것입니다. 도시에 있는 1000명 교회의 담임목사가 농촌과 섬에서의 개척 목회를 위해 떠난다면 일반적으로는 어리석다고 하지 않겠습니까? 왜 그런 일을 합니까? 첫째는 하나님이 주신 사명 때문이고 둘째는 그것이 행복이기 때문입니다.
선교사님들이 가장 바라는 것은 안식년이지만 정작 안식년 때 선교사님들이 자주 말하는 것은 “선교지에 있을 때가 행복해요.”라는 말입니다. 그래서 가끔 안식년이 끝나기도 전에 선교지로 돌아가는 선교사님도 있습니다. 얼마나 어리석은 일입니까? 당연히 누려야 할 자기 몫도 찾지 못하는 모습을 보면 세상 사람들은 어리석다고 말할 것입니다. 그래도 그런 어리석은 사람이 있어야 선교는 가능합니다.
예전에 한 가지 고민이 있었습니다. 판교의 아파트 청약 문제 때문이었습니다. 당시 판교 아파트 당첨은 로또 당첨이라고 불릴 정도였습니다. 당시 ‘40세 이상으로 10년간 무주택인 성남 거주자’가 0순위였기에 제가 그 대상자였는데 “과연 목회자로서 아파트 청약을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하고 고민했습니다. 교회 사택이 따로 없어서 교인들도 권고했습니다. “목사님은 6번의 청약 기회가 있으니까 당첨 확률이 큽니다. 꼭 청약하세요.” 그러나 그런 말을 들으면 마음은 더 멀어졌습니다.
아파트 청약하는 날, 청약하려고 줄을 서 있는데 아는 사람을 만나서 “목사님도 이거 하세요?”라고 물으면 어떻게 대답해야 합니까? 결국 고개를 푹 숙이고 줄을 서야 하는데 누군가 그 모습을 보면 ‘분당의 고개 숙인 목사’란 제목으로 칼럼을 쓸지 모릅니다. 그러다가 청약에 떨어지면 ‘분당의 고개 꺾인 목사’라고 칼럼을 또 쓸지 모릅니다.
그런 일로 고민하면 사람들은 “현실과 동떨어진 불필요한 고민을 한다.”고 핀잔을 줄 것입니다. 물론 땅에 발을 딛고 살면서 현실을 무시하고 살수는 없지만 다 현실만 보면 진실은 모습을 감출 것입니다. 성도는 ‘달리 보는 사람’이나 ‘달리 생각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좋은 것을 위해 이기심을 버리고 나눔과 섬김과 드림과 바침과 선교를 실천하면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더 좋은 것을 주시고 좋은 비전 동역자도 붙여주실 것입니다.
< 거룩한 비전은 이뤄집니다 >
어려운 현실 속에서 교회는 크게 성장하지 못했지만 그래도 C&MA의 선교비전을 계속 붙드니까 비전의 싹이 조금씩 텄습니다. 특히 C&MA의 한국 내 선교 기지 역할을 하겠다는 비전을 가지고 세운 요삼일육선교회(John316 Mission)를 통해 여러 열매들이 나타났습니다. 요삼일육선교회를 통한 인터넷 말씀 사역에도 열매가 많게 하셨고, 저의 비전을 위해 기도해주는 여러 동역자도 얻었고 문서선교를 위한 미션퍼블릭 사역도 자리를 많이 잡았습니다. 그런 열매들이 언젠가 수많은 새들이 깃드는 큰 겨자나무로 자라게 될 줄 믿습니다.
이제까지는 교회보다 요삼일육선교회를 통한 교회 외의 사역이 많이 확장되었지만 앞으로는 교회의 꿈과 비전도 보다 구체적으로 이루어지는 은혜도 있을 줄 믿습니다. 신기루 같은 비전도 하나님이 도와주시면 현실이 됩니다. 다른 크고 화려한 교회들에 비해 우리의 겉모습은 초라해서 사람들 눈에 잘 띄지 않지만 원래 가치 있는 산삼은 사람들 눈에 잘 띄지 않습니다. 원유가 나오는 곳을 보면 대개 사람이 살기 힘든 지역이었지만 그 땅 밑에 원유가 잠잠히 고여 있었던 것입니다.
교회와 교인은 숨겨진 산삼이나 땅 밑에 숨겨진 보화로서 준비되다가 언젠가 그 실체를 드러내면서 많은 사람들에게 유익을 주어야 합니다. 중요한 것은 크기가 아니라 실체이고 외면의 틀이 아닌 내면의 콘텐츠입니다. 미래에 유익하게 쓰임 받을 준비하려면 좋은 비전을 품고 열심히 뛰면서 각자가 인물의 축복을 받기에 힘써야 합니다. 작은 시작을 두려워하지 말고 작은 시작에 낙심하지 마십시오.
지금 현재의 모습이 초라해서 결고 찬란한 비전을 포기하지 마십시오. 한 달에 백만 버는 일터라도 일단 붙들고 거기서 최선을 다하십시오. 그렇게 사명감을 가지고 땀을 흘리면 점차 백만 원, 2백만 원, 3백만 원을 벌 수 있는 새로운 일터가 생기든지, 아니면 현재의 일터에서 수입이 높아지는 은혜가 있게 될 것입니다. 한 날개로는 비전을 가지고 다른 한 날개로는 땀을 흘리며 열심히 날면 비전은 점차 구체적인 열매를 드러낼 것입니다. (내일 계속됩니다)
< 뚜렷한 비전을 가지십시오 >
저는 요새 하나님이 있게 하신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새삼 깨닫습니다. 지난 세월을 돌아보면 이제까지 왜 하나님이 교회의 외적인 성장을 보류시켰고 지금은 교회가 새롭게 싹이 돋아서 자라려고 준비하는지 그 이유를 새삼 깨닫습니다. 사람은 많이 아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모르는 것이 너무 많습니다. 아무리 지식적으로 알아도 절실한 체험을 해야 그 지식이 진짜 지식이 됩니다.
제가 속한 미국 기독교 선교연맹(C&MA,미국성결교)은 나름대로 상당한 영적 유산을 지닌 세계적인 교단입니다. 한국에 선교사를 파송하지 않아서 한국 성도들은 잘 모르지만 홍콩, 필리핀, 태국, 미얀마, 캄보디아, 라오스, 베트남, 그리고 중국 남방에 흩어져 사는 몽족 사이에서는 한국의 장로교처럼 영향력이 있는 교단입니다. 그 유산에 대해 자부심을 가져도 되기에 한국에서 자랑스럽게 그 유산을 선보이며 당당하게 드러내야 했습니다.
안타까운 일은 귀국 초기에 듣지 말아야 할 말을 잘못 들은 것입니다. 즉 한국에서는 장로교로 교회를 개척해야 교회가 부흥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목회할 때 미국 교단 색채를 드러내지 않고 은근슬쩍 감췄습니다. 속은 미국 기독교 선교연맹 소속 교단 목사이면서 겉으로는 기존 교단의 곁불을 쬐면서 이단 소리를 듣지 않으면 다행인 줄 알았습니다. 그리고 “저의 교단 창시자는 장로교 출신이었습니다. 저도 미국 유학 전에는 장로교단 교회를 다녔습니다.”라고 했습니다.
어리석은 일입니다. 내면은 ‘기독교 선교연맹’의 선교마인드로 가득 찼는데 겉은 그러지 않은 모습을 보인다면 무슨 비전이 있겠습니까? 지금은 그렇게 지낸 과거의 한국사역을 뼈저리게 반성하고 있습니다. 비전을 제시할 때 “한국에서 선교에 탁월한 유산을 가진 건전한 기독교 선교연맹 교회들을 세우자!”라고 하면 비전이 되지만 “한국에서 이단 소리 안 듣도록 노력하고 기존 교단의 곁붙을 쬐며 지내자!”라는 하면 무슨 비전이 느껴지겠습니까?
개척자에게 물적 자산과 인적 자산이 없으면 비전 자산이라도 뚜렷해야 합니다. 그런데 뚜렷한 비전 제시를 뚜렷하게 못하고 그저 좋은 말씀만 전하려고 했기에 교회에 좋은 코어그룹과 헌신적인 일꾼을 만들어내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작은 문제가 생겨도 성도들이 쉽게 흔들렸습니다. 비전이 강하면 큰 문제가 있어도 잘 흔들리지 않을 것을 비전이 희미했기에 작은 문제에도 성도들이 흔들린 것입니다.
평소에 착실하게 말씀교육을 받아도 사람이 시험에 들면 그때까지의 배움과 은혜는 잊고 감정에 지배를 받을 때가 많습니다. 그 감정을 무엇이 극복하게 만듭니까? 바로 비전입니다. 그처럼 비전의 중요성을 목회 초창기에 잘 몰랐던 것이 아쉽습니다. 이단들조차 “자신이 재림주다! 자기 교회에 와야 구원받는 14만 4천 명 안에 든다.”고 확실한 비전을 제시하니까 그런 엉터리 주장에도 사람들이 몰리는 것입니다.
선구자나 개척자에게 무엇보다 필요한 것은 뚜렷한 비전입니다. 비전도 없이 인적 자산과 물적 자산과 전통적 자산을 엄청나게 가진 기존 교단의 틈바구니에서 어떻게 제대로 살아남겠습니까? 결국 저는 미숙한 개척자였습니다. 기독교 선교연맹의 개척자임을 자부하면서 저희 연맹의 비전을 강하게 제시하지 않고 어정쩡한 스탠스로 지냈기에 하나님께서 비전에 헌신된 사람을 보내주시지 않은 것입니다. 그것도 모르고 “하나님! 왜 저희 교회에는 코어그룹이 형성되지 않습니까?”라고 기도하니 하나님도 얼마나 답답하셨겠습니까?
물론 그 동안 게으르게 지낸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며 열심히 자신을 준비시켰습니다. 그래서 인터넷 사역은 커졌습니다. 방대한 <네트영어>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했고 현재까지 방대한 강해설교 세트를 완성시켰습니다. 온라인 새벽기도 식구도 꽤 많습니다. 그 중에는 상당한 애정을 가지고 저의 비전을 위해 기도해주는 핵심 기도멤버들도 있습니다. 그처럼 남의 눈에 잘 띄지 않는 열매도 맺었지만 큰일을 하려면 교회 성장도 필요하고 그것을 위해서는 뚜렷한 비전제시가 필요합니다.
그 동안 주일에 처음 교회에 방문하는 성도들을 생각해서 스스로 위축시켜 교단색채를 가급적 감추려고 했지만 그런 태도가 오산이었습니다. 물론 가끔 “나는 장로교 교회만 찾는다.”는 사람도 있지만 실제로는 뚜렷한 비전을 찾는 사람이 훨씬 많습니다. 왜 그 사실을 몰랐는지 후회가 됩니다. 저희 교단이 이단이 아니고 세계적으로 유명한 교단인데 왜 스스로를 그렇게 위축시켰는지 모릅니다.
개척자가 강한 비전도 제시하지 못하고 무슨 개척자입니까? 그 후 강하게 기독교 선교연맹의 비전을 제시하자 점차 그 비전을 공유하는 성도들이 늘어나고 기도도 더욱 절실해지게 되었습니다. 또한 그 후 교회에 등록한 분들도 그 비전에 많이 공감해주었습니다. 특히 장로교에서 신앙생활을 했던 분들도 큰 거부감 없이 비전을 공유하는 것을 느끼면서 “내가 왜 진작 뚜렷한 비전을 제시하지 못했을까?” 하는 후회가 듭니다.
왜 한국 성도들이 장로교를 선호합니까? 그래도 전통 있는 큰 교단이니까 장로교에 속한 교회라면 적어도 이단은 아니고 수준 낮은 목회자는 없을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제는 웬만한 성도도 장로교에 200개도 넘는 교파가 있고 요새는 이단들도 장로교 간판 뒤에 숨어 행세하는 경우도 많다는 것까지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이단이 아니라면 교단과 상관없이 뚜렷한 비전을 제시하는 공동체에 관심을 가지는 성도가 의외로 많습니다. 그 사실을 목회 초기에 깨닫지 못한 것이 아쉽습니다. (내일 계속됩니다)
< 곁불 쬐는 삶을 버리십시오 >
인생을 지혜롭게 잘 살려면 곁불 쬐며 살지 마십시오. 하나님이 어떤 위치를 주셨으면 그곳에 몰입해야 작품 인생이 됩니다. 교회는 예수 믿고 인물을 만들어내는 작품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충분히 그렇게 될 수 있다고 믿으십시오. 지금까지 시련도 있었지만 그 시련도 하나님이 허락한 좋은 시련이었습니다. 그 시련을 통해 비전의 중요성을 깨닫고 자기 사명의 중요성을 깨달았습니다. 또한 그 시련은 “이제는 곁불 쬐는 인생으로 살지 말라!”는 절실한 깨달음을 준 시련이었습니다.
저는 비전의 중요성을 깨닫고 이런 표어를 내세웠습니다. “예수 믿고 인물이 되라. 예수 믿고 인물을 만들라!” 그 표어에 응답하는 사람들이 점차 늘고 있습니다. 또한 인물이 될 그릇들을 붙여주고 계십니다. 그런 상황을 보면서 하나님도 “내가 이렇게 비전을 가지기를 기다리고 계셨구나!”라는 생각을 합니다. 비전만 준비되면 하나님은 엄청난 가속도로 사람을 붙여주실 것입니다. 개척자는 처음만 힘들지 나중에는 누구보다 복된 인생이 됩니다.
예전에 미국 기독교 선교연맹 총재인 게리 베네딕트 총재가 우리 교회를 방문했습니다. 그때 한인 총회 감독님과 교단 부총재인 쇼퍼(Shaffeur) 목사님도 오셨습니다. 쇼퍼 목사님은 알고 보니까 20년 전에 학교에서 같이 공부했던 목사님이었습니다. 그때 목사님들과 교제하면서 거룩한 비전 성취를 위해 새로운 다짐을 했습니다. 한국에 기독교 선교연맹의 모 교회와 같은 역할을 하고 인적인 자산과 물적인 자산을 통해 다른 교회들의 길라잡이와 방패박이가 되어주고 큰 우산이 되어주려면 교회 부흥도 필요함을 느꼈습니다.
지금 미국 기독교 선교연맹에 속한 2천 개 교회 중 제일 큰 교회가 LA 얼바인에 있는 한인교회인 베델교회입니다. 그 다음으로 큰 교회가 부총재인 쇼퍼 목사님이 섬기는 클리블랜드에 있는 그레이스 교회입니다. 그 교회가 어른이 약 2천 명 정도입니다. 미국 기독교 선교연맹은 세계 선교에 힘을 쏟아서 세계적으로는 잘 알려졌지만 미국 내 교회 중에는 힘 있는 교회가 별로 없습니다. 그런 현실이 한편으로는 조금 아쉽습니다.
그런 현실을 대하며 마음속에 어떤 강렬한 소원이 생겼습니다. 하나님이 왜 이런 마음을 주셨는지 모르겠지만 그 소원을 품고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우리 교회가 영향력 있는 교회가 되게 하소서! 그래서 외국 선교에 힘을 쏟아서 교회성장을 잘 이루지 못하고 고전하는 소속 교회들에게도 힘을 주는 역할을 감당하게 하소서! 한국에 기독교 선교연맹이 조금 더 선교 사역에 공헌할 수 있도록 역량도 키워주소서!”
지금 그 소원이 너무 간절합니다. 요새 미국 교회가 약해지면서 해외 선교사 30가정을 소환했습니다. 만약 유력한 교회들이 조금 더 있었다면 그런 아픔을 얼마나 멋지게 해결할 수 있겠습니까? 같이 기도해주십시오. “하나님! 저희 선교연맹이 추구하는 선교 마인드와 선교 사역에 후퇴하지 않게 하소서! 한국에 신선한 선교의 바람을 일으키게 하소서! 개척자의 길이 힘든 길이지만 개척자와 그 동역자의 가정을 복되게 만들어주셔서 개척자의 길이 엄청난 축복의 길임을 알게 하소서!”
얼마 전 지방에서 목회를 잘하는 한 친구 목사님에게 말했습니다. “목사님! 이제 큰 뜻을 품고 서울로 올라오실 생각은 없나요?” 그 목사님이 말했습니다. “이 목사님! 처음부터 교회를 개척하기는 힘들고 어디로 부임해야 하는데 쉽지 않아요?” 제가 말했습니다. “목사님! 목사님처럼 실력 있고 훌륭한 목회자가 자리가 없나요? 지금 목사님 교단에 후임자를 찾는 큰 교회들이 많잖아요?” 그때 그 목사님이 말했습니다. “그런 그런 자리는 대개 저희 교단의 성골과 진골 목사님들이 부임해요.”
“교단에 성골과 진골이 있다니 무슨 말인가요?”라고 묻자 그 목사님이 말해주었습니다. “목사님이나 사모님 중 한 명의 부친이 교단의 목사나 장로이면 진골이고 목사님과 사모님의 양쪽 아버지가 모두 교단의 목사나 장로이면 성골입니다.” 즉 부모가 교단에 오랫동안 몸을 담고 공헌한 목사나 장로라면 그 2세 목회자가 큰 교회 부임 1순위라는 뜻입니다. 결국 ‘선대의 헌신’은 ‘후대의 축복’을 예비한 제일 요인이 된 것입니다.
개척자에게는 그 이상의 축복들이 많습니다. 개척자는 고생만 하다 죽는 자리가 아닙니다. 초창기에 고생은 있어도 후세에 좋은 기억을 오래 남기며 그 가치를 높게 평가받을 수 있는 행복한 자리입니다. 기독교의 신선한 축복의 바람은 다 그런 개척자를 통해서 불어왔습니다. 그런 바람에 함께 이끌려 사는 것이 얼마나 복된 일입니까? 이제 자신의 어정쩡한 스탠스를 버리고 뚜렷하고 거룩한 비전을 위해 작품 인생을 지향하며 예수 믿고 인물 되는 역사의 주인공들이 되기를 꿈꾸고 힘쓰십시오.
곁불 쬐는 인생으로 살지 말고 뚜렷한 비전을 가지고 자기 색채를 뚜렷하게 나타내십시오. 또한 현재의 상황과 처지에서 하나님의 뜻을 따라 하나님의 자녀답게 최선을 다하십시오. 그것이 바로 예수 믿고 인물 되는 비결입니다. 그런데 감사한 것은 지난 인생을 되돌아볼 때 지혜가 부족해서 곁불 쬐는 인생으로 살고 뚜렷한 비전을 제시하지 못했어도 하나님의 은혜로 지금까지 지켜주셨다는 사실입니다. (내일 계속됩니다)
< 범사에 감사하며 사십시오 >
본문에 나오는 사무엘의 고백처럼 “하나님이 여기까지 우리를 도우셨다.”는 에벤에셀의 고백이 나오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제까지 에벤에셀의 역사로 지켜주신 여호와 이레의 하나님께서 교회의 앞날도 지켜주시고 교회를 순수하게 사랑하는 성도들의 앞날도 지켜주실 것입니다. 살면서 어떤 어려움이 있어도 낙심하지 않고 범사에 감사하는 굳건한 믿음을 가질 때 여호와 이레의 축복이 반드시 예비될 것입니다.
예전에 교회에 떼로 몰려와서 다시 떼로 몰려나간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때 교회가 어려움에 처했지만 그 후 그 어려움을 잘 극복해내고 오히려 새로운 도약을 준비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비전을 위해 예비된 일꾼도 서서로 다시 붙여주셨습니다. 그런 반전의 은혜를 입게 된 것은 2가지 때문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첫째, 어려움 중에도 감사를 잃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일전에 예배 후 교회에 등록한 한 집사님이 말했습니다. “목사님! 오늘 설교 듣고 그런 어려움을 겪었는지 몰랐습니다. 목사님의 얼굴이 너무 편해 보이고 기쁨이 넘쳐보여서 그런 어려움을 겪지 않은 분 같습니다. 만약 목사님이 편하고 기쁜 얼굴을 하지 않았다면 저는 등록하지 않았을 겁니다.” 그 집사님의 마음은 하나님도 똑같은 가지고 계실 것입니다. 시련을 당했다고 슬퍼하고 울상만 하고 지내면 하나님도 좋은 분들을 보내주시지 않을 것입니다.
시련을 당해도 죽도록 감사하십시오. 그래야 하나님이 새로운 기회도 주십니다. 정말 복된 삶을 원하면 “하나님이 지금 이 순간까지 도우셨다!”는 에벤에셀의 감사를 잘하십시오. 모든 위대한 인물들은 대개 감사에 탁월한 사람들입니다. 범사에 감사하는 사람이 최고의 부자이고 최고의 성도입니다. 또한 최고의 기도는 감사가 넘치는 기도이고 최고의 영성은 감사하는 영성이고 최고의 예언은 자기 입에서 나오는 감사하는 말입니다. 그처럼 에벤에셀의 하나님을 고백하며 범사에 감사함으로 여호와 이레의 축복을 예비하십시오.
둘째, 어려움 중에도 선교사 후원에 힘썼기 때문입니다. 교회가 어려워도 선교사들이 다치면 열심히 기도하며 병원비를 후원했고 선교사들에게 어떤 물품이 필요하면 교회 물품은 못해도 선교사들의 물품을 먼저 마련했고 선교사들에게 긴급하게 재정이 필요하면 교회도 재정이 필요해도 선교사들의 필요에 먼저 반응하려는 마음을 가졌기 때문입니다. 교회가 감당하지 못할 때는 온라인 새벽기도 성도가 극적으로 그 문제를 해결해줄 때도 있었습니다.
< 사랑을 베풀며 사십시오 >
성령충만이 무엇입니까? 성령을 헬라어로 ‘파라클레이토스’라고 합니다. 그 말은 ‘옆에서 돕는 보혜사’란 뜻입니다. 성령님이 옆에서 도와주듯이 성령 충만하면 옆 사람을 돕게 됩니다. 어려운 사람을 많이 돕고 선교사들의 필요에 힘써 반응하십시오. 돈을 벌 때도 그런 목적을 가지고 돈을 버십시오. 그렇게 살 때 찡한 쾌감을 주는 화려한 은사와 기적은 없어도 그것이 성령 충만한 삶의 핵심 표식입니다.
누구에게나 천사의 씨앗과 악마의 씨앗이 동시에 있습니다. 어느 씨를 뿌리며 살지는 전적으로 자기 선택입니다. 어려운 사람을 돕는 천사의 씨앗을 뿌리면 자신이 돕는다고 생각하지만 오히려 얻는 것이 많습니다. 무엇보다 자신에게서 하나님의 형상이 나타납니다. 그처럼 복된 일이 어디에 있습니까? 하나님의 형상이 나타나면 불행의 그림자가 어떻게 드리워지고 사단이 감히 어떻게 공격하겠습니까?
오래 전에 교회에 차량이 필요할 때 경제가 어려워서 아무도 헌금을 못했습니다. 그때 어렵게 사는 한 집사가 찾아와 말했습니다. “목사님! 제가 가진 차를 팔면 8백만 원 정도 받는데 그것을 헌금할게요. 그 돈을 계약금으로 걸고 교회 차를 사세요.” 저는 그 말을 듣고 눈물이 핑 돌았습니다. 교회에서 가장 어렵게 사는 사람이 마지막 남은 재산을 바치겠다니까 무슨 할 말이 더 있겠습니까?
그 얘기를 듣고 재정 집사들과 그 헌금을 받아야 할지 상의했습니다. 그때 한 집사가 말했습니다. “목사님! 하나님이 그런 고귀한 마음을 주신 것이니까 기쁘게 받읍시다.” 그때 제가 말했습니다. “집사님! 우리가 아무리 급히 필요해도 저는 그 헌금을 받지 못하겠습니다. 필요하면 하나님이 다른 경로를 통해 주시겠지요. 그런 하나님의 선한 섭리를 믿고 그 헌금을 받지 맙시다.” 결국 받지 않기로 결정했습니다.
물론 기쁘게 드리는 것을 사양하는 것은 또 다른 인색함의 표시일 수도 있지만 그래도 어렵게 사는 성도의 마지막 희망의 씨앗은 도저히 받을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받지 않기로 결정을 내리고 그 집사를 불러 정중하게 말했습니다. “집사님! 집사님의 사랑하는 마음은 잘 알지만 그 헌금은 도저히 받을 수 없습니다. 헌금은 받지 않아도 마음은 이미 다 받았습니다. 절대 섭섭하게 생각하지 마세요.”
그 대화가 오고간 순간은 성령님이 감격적으로 운행함을 느꼈습니다. 사람이 욕심을 초월해서 좋은 일을 위해 무엇인가를 바친다는 것은 얼마나 큰 행복입니까? 이제 ‘나’라는 말을 ‘우리’라는 말로 바꾸며 사십시오. 자기 욕심을 포기하고 선한 일을 위해 자기를 바치는 삶이 예수님의 삶이었고 그런 삶이 진정 복된 삶입니다. 사람들은 흔히 생각합니다. “요즘처럼 바쁘고 힘들고 문제가 많은 때에 남까지 신경 쓰며 어떻게 사나?” 그러나 남을 위해 사랑을 베풀면 신기하게도 내 문제가 풀리는 축복이 있습니다.
늘 어려운 사람을 힘써 돕고 선교도 더욱 힘쓰십시오. 적어도 한 사람 이상의 선교사를 지정해 정기적으로 후원하는 삶도 꿈꿔보십시오. 저는 선교사님들로부터 기도와 후원요청 편지를 많이 받는 편입니다. 선교사님들의 요청에 반응하며 살려고 할 때 사랑과 믿음도 더욱 깊어질 것입니다. 늘 뚜렷한 비전을 가지고 범사에 감사하며 실천적인 나눔과 사랑을 통해 여호와 이레의 축복을 예비하는 복된 심령들이 되십시오.
ⓒ 이한규목사 http://www.john316.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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