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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을 항해하면서 발견한 다시 읽고 싶은 글을 스크랩했습니다. 인터넷 공간이 워낙 넓다보니 전에 봐 두었던 글을 다시 찾기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닙니다. 그래서 스크랩할만한 글을 갈무리합니다. (출처 표시를 하지 않으면 글이 게시가 안됩니다.) |
출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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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혜와 율법관계》
고은교회 황부일 목사
율법과 은혜에 대한 논쟁이 많습니다.
주로 율법은 짐이되는 행위의 차원에서만 이해하려 하고 은혜로만을 강조하는 자들은 은혜 외에 율법은 무익하고 무거운 짐으로만 봅니다.
<은혜와 율법은 아예 상반적이라는 자들>
갈라디아서 3:10에 보면 "무릇 율법 행위에 속한 자들은 저주 아래 있나니 기록된 바 누구든지 율법책에 기록된 대로 온갖 일을 항상 행하지 아니하는 자는 저주아래 있는자라 하였느니라."고 말씀 했습니다. 은혜만을 강조하는 자들은 이런 말씀을 인용하며 더 이상 율법에 메이면 안된다고 합니다.
예수께서 우리를 율법의 저주에서 속량 해 주셨기 때문에 다시는 율법에 속해서는 안된다고 합니다. 율법은 저주 즉 죄를 드러내기 위한 것이고 그리스도께로 인도하는 몽학선생의 잠시적 역할 뿐인 것을 주장합니다.
율법 폐기론자들이나 무율법주의자들은 이제 율법은 무용하다고 합니다. 오히려 그것을 지키다가 그리스도의 은혜에서 떨어지고 관계가 없게 된다고 갈라디아서5:4절을 근거로 주장합니다.
<은혜와 율법의 합력을 말하는 경우>
어떤 자들은 은혜로만 다 되는 것이 아니라 율법의 행위로 은혜가 완성된다고 주장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들은 야고보서의 말씀을 주로 인용해서 주장합니다.
그 말씀을 보면 "이와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다. 우리 조상 아브라함이 그 아들 이삭을 제단에 드릴 때에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은 것이 아니냐 내가 보거니와 믿음이 그의 행함과 함께 일하고 행함으로 믿음이 온전케 되느니라. 이로 보건데 사람이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고 믿음으로만이 아니라 영혼 없는 몸이 죽은 것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것이니라" (약 2:17, 22, 24, 26) 이 말씀을 볼 때 이들의 주장에 받침이 되는 것으로 설득력이 있는 것 같이 보이지만 은혜로만 말하고 율법을 제하는 자나 율법을 지키면 구원이 완성된다고 말하는 자들이나 다 성경을 바로 알아야 합니다.
이들은 성화구원을 우리가
행함으로 하나님께서 열고 남겨 놓으신 구원을 우리의 합력으로 채우는 것으로 말합니다.
하나님의 구원의 의가 믿음의 고백으로의 의와 그다음부터 행하는 의로 완성되는 것으로 주장합니다.
그럴싸한 것 같지만 분명 구원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가 분명하며
야고보의 증거는 구원을 사는 믿음의 삶으로서 원리를 말씀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구웜의 믿음은 믿음의 고백과 믿음생활로 함께 연결되어
있는 겁니다.모두 은혜로 역사되는 것이지요.
<바울이 율법을 문제있게 다루는 점을 알자>
바울이 로마서나 갈라디아서에서 율법을 지키려 하면 그리스도의 은혜에서 떨어진다고 한 것은 (갈 5:4) 율법주의 신앙 때문입니다.
사도바울이 율법에 대해 로마서와 갈라디아에서 부정적으로 증거한 것은 율법의 행위로 의롭다 함을 얻는다고 강조하는 율법주의 신앙인들을 지적하고 변호하는 데서입니다.
윻법주의자들은 이말씀을 근거로 행위의 의를 강조합니다.
신명기 6:25절에 보면 "우리가 그 명하신대로 이 모든 명령을 우리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삼가 지키면 그것이 곧 우리의 의로움이니라 할찌니라"는 말씀입니다.
이말씀은 오실메시야 안에서 은혜로 구원의 의를 입어 성민이 된 이스라엘백성들에서 실제적인 의인다운 모습을 요구하는 계명의 말씀인데 유대인들은 그걸 지키면 의롭게 된다고 행위구원의 "의"를 강조하는 겁니다.
이런 율법주의 신앙을 가진 유대인들이 교회에 들어와서 할례를 강조하고 율법을 지켜야 만이 의롭게 되고 구원을 얻는 다고 말하고 있었기 때문에 바울은 "그러므로 율법의 행위로 그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나니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음이라 이제는 율법위에 하나님의 한 의가 나타났으니 율법과 선지자들에게 증거를 받은 것이라. 곧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모든 믿는자에게 미치는 하나님의 의니 차별이 없느니라. 그러므로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얻는 것은 율법의 행위에서 있지 않고 믿음으로 되는 줄 우리가 인정하노라" (롬 3:20-21, 28)고 증거한 것입니다.
의인은 없나니 아무도 없다는 (롬3:10) 말씀을 모르는 것입니다.
<율법은 무엇인가>
율법은 모세가 기록한 모세오경을 말합니다. 다르게 말하면 십계명의 확장으로서의 해설입니다.
넓게는 구약을 통틀어 말하기도 합니다.
이 율법에는 하나님의 언약과 언약의 백성들의 삶의 규례가 담겨있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그들 조상들에게 일방적으로 언약하신 이스라엘 백성들을 구원해 내시고 그들에게 모세를 통해 율법을 주신 것입니다.
거기에는 하나님의 구원의 계획과 그것이 언약으로 주어지고 그 언약대로 이루어지는 구원의 역사가 담겨있고 또 한편으로는 그 언약의 백성들이 하나님을 예배하고 섬기는 하나님 백성으로서 거룩한 삶을 살아야 함에 대한 규례가 담겨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랜 세월을 지내오면서 유대인들은 하나님께서 하나님 백성으로 지켜 살도록 주신 거룩한 계명을 역으로 그것을 지켜야 의롭게 된다는 것을 믿고 교리로 세운 것입니다.
그러니까 자기네 믿음의 조상들이 하나님의 은혜가운데 믿음으로 의롭게 되고 또한 의로운 삶으로서 주신 계명을 역으로 사용하는 율법주의 신앙을 가지게 된 것입니다.
그렇게 될 때 계명은 그들에게 있어 무거운 짐이 되는 것이고 더욱 율법의 정죄 아래로 얽메이게 되는 것입니다.
모세가 기록한 율법, 즉 모세오경도 내용 전체는 두가지입니다.
하나는 구원의 원리로서 하나님의 언약과 성취의 역사가 들어 있고 또 하나는 구원받은 백성들의 대한 구별된 삶의 규례로서 예배와 예배하는 자의 모습과 실제 삶에 대해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것이 율법입니다.
그러니까 율법은 본질적으로 오실 메시야 안에서의 구원의 언약과 언약의 후손들의 거룩한 삶의 규례로 되어 있습니다.
이렇게 되어 있는 율법, 즉 넓게 말해 구약은 오실 메시야 안에서 먼저 이스라엘이 구원받고 또한 구원 받은 백성이 하나님을 섬기도록 되어 있는 하나님 규례의 말씀을 유대인들은 그걸 지켜야 의롭게 되고 구원이 된다고 말하고 믿기 때문에 그렇게 볼 때 율법은 짐이고 저주고 되려 죄에 얽매이고 그리스도의 은혜에서 떨어진다고 바울은 지적하여 증거한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스라엘은 오실 메시야 안에서 하나님의 은혜언약에 따라 의롭게되고 구원 받은 것인데 그들은 구약에서 그 구원의 원리는 못보고 의롭게 된 자들에게 하나님의 통치를 받으며 하나님나라 백성으로 거룩하게 살며 하나님을 바르게 예배하라는 의로운 모습과 삶에 대한 규례를 역으로 지켜야 의롭게 된다라고 본것입니다.
<율법도 은혜의 말씀이다>
율법도 하나님의 은혜의 말씀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이 율법엔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의 언약과 그 언약이 은혜로 성취되는 말씀이 들어있고 또한 은혜로 구원받은 하나님 백성들이 은혜의 삶인 구원의 삶에 대한 규례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나외에 다른 신을 두지말라는 계명으로 하시는 하나님의 명령의 말씀이 능력이 있어 우리에게 역사되어 다른 신과 우상을
멀리하게 되는 것입니다.
만일 은혜만 있고 이런 계명의 말씀이 없다면 우린 이방인과 구별 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러니까 율법의 계명은 은혜로 하나님백성된.자들이 하나님나라 백성답게 거룩하고 합당하게 살게되는 기준 말씀이고 우리를 그렇게 변회시키는.은혜의.말씀인 것입니다.
<성경은 두가지 내용으로 되어있다>
모든 성경은 하나님 말씀으로된 구원의 책으로서 두가지 내용으로 되어 있습니다.
하나는 구원에 대한 원리의 말씀이고
또하나는 구원받은 자의 거룩한 모습과 삶에 대한 규례적 말씀입니다.
예를 든다면, 창세기 3:15절에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하고 너의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는 말씀이나, 이사야 11:10 절의"그 날에 이새의 뿌리에서 한 싹이 나서 만민의 기호로 설 것이요 열방이 그에게로 돌아오리니 그 거한 곳이 영화로우리라"는 말씀이나 ,
신약에서 마태1:21절이나, 로마서 8:1~2절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같은 내용의 말씀은 구원의 원리에 관한 말씀이고,
반면에 십계명의 규례나 신명기4:1~2절에 "이스라엘아 이제 내가 너희에게 가르치는 규례와 법도를 듣고 준행하라 그리하면 너희가 살 것이요 너희의 열조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주시는 땅에 들어가서 그것을 얻게 되리라
내가 너희에게 명하는 말을 너희는 가감하지 말고 내가 너희에게 명하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명령을 지키라"는 말씀이나,
예수님의 산상보훈이나,
바울의 " 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좇는 옛 사람을 벗어 버리고 오직 심령으로 새롭게 되어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엡4:22~24)는 말씀같은 내용은 다 구원받은.자의 거룩한.모습과 성도로서 합당한.삶을
원하는 말씀인 것입니다.
그러니까 구원의 원리의 말씀도 은혜의 말씀이요 구원받은 백성이 옛 죄의 세상 사람이였던 육체의 소욕중심에서 거룩한 모습과 삶을 하나님나라나 교회된 모습으로 살도록 주신 규례되는 내용도 하나님 은혜의 말씀입니다.
그것이 없다면 우리는 거룩히 구원을 살게하는 즉 교회를 이루는 모습은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를 제하러 온 것이 아니라 완전하게 하려 함이라 하시면서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계명중에 지극히 작은 것 하나라도 버리고 그 같이 사람을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지극히 작다 일컬음을 받을 것이요 누구든지 이를 행하며 가르치는 자는 천구에서 크다 일컬음을 받으리라" (마 5:18-19)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개혁파는 신율법주의에 속합니다.
그리스도안에서 완성된 내용을 빼고는 하나님나라된 자로서 합당히 살도록 주시는 은혜의 규례로 보기때문입니다.
끝으로 이말씀을 유의해 봅시다.
"또 네가 어려서부터 성경을 알았나니 성경은 능히 너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느니라.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하기에 온전케 하려 함이니라"
(딤후3:15~16)
이 말씀을 보면 위에서 언급한 대로
성경은 두가지 내용으로 되어 있음을 압축해서 말씀합니다.
한가지는 구원에 이르는 지혜를 주는 말씀과 또 한가지는 우리를 바르게 교육하여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니까 구원의 원리를 말씀하는 것만 은혜가 아니라 구원을 살게하는
규례의 말씀도 은혜인.것입니다.
말씀이 우리를 살게 한다고 합니다.
(신4:1 , 요5:25)여기서 "산다"는 것은 구원을 말하는데 그 구원은 원리적인 말씀을 통해서는 믿음의 고백으로 의롭게되는 본질적인 구원을 완전히 얻게 되고 계명의 말씀으로서는 그 구원을 실제로 거룩히 살아가는 성화구원을 주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성경에서 구원받은 백성에게 구별된 모습과 삶의 행위를 원하는 규례적인 율법은 구원을 실제로 살게 하는 은혜의 말씀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 말씀이 없다면
우리는 거룩할 수가 없습니다.
고은교회 황부일 목사
율법과 은혜에 대한 논쟁이 많습니다.
주로 율법은 짐이되는 행위의 차원에서만 이해하려 하고 은혜로만을 강조하는 자들은 은혜 외에 율법은 무익하고 무거운 짐으로만 봅니다.
<은혜와 율법은 아예 상반적이라는 자들>
갈라디아서 3:10에 보면 "무릇 율법 행위에 속한 자들은 저주 아래 있나니 기록된 바 누구든지 율법책에 기록된 대로 온갖 일을 항상 행하지 아니하는 자는 저주아래 있는자라 하였느니라."고 말씀 했습니다. 은혜만을 강조하는 자들은 이런 말씀을 인용하며 더 이상 율법에 메이면 안된다고 합니다.
예수께서 우리를 율법의 저주에서 속량 해 주셨기 때문에 다시는 율법에 속해서는 안된다고 합니다. 율법은 저주 즉 죄를 드러내기 위한 것이고 그리스도께로 인도하는 몽학선생의 잠시적 역할 뿐인 것을 주장합니다.
율법 폐기론자들이나 무율법주의자들은 이제 율법은 무용하다고 합니다. 오히려 그것을 지키다가 그리스도의 은혜에서 떨어지고 관계가 없게 된다고 갈라디아서5:4절을 근거로 주장합니다.
<은혜와 율법의 합력을 말하는 경우>
어떤 자들은 은혜로만 다 되는 것이 아니라 율법의 행위로 은혜가 완성된다고 주장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들은 야고보서의 말씀을 주로 인용해서 주장합니다.
그 말씀을 보면 "이와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다. 우리 조상 아브라함이 그 아들 이삭을 제단에 드릴 때에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은 것이 아니냐 내가 보거니와 믿음이 그의 행함과 함께 일하고 행함으로 믿음이 온전케 되느니라. 이로 보건데 사람이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고 믿음으로만이 아니라 영혼 없는 몸이 죽은 것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것이니라" (약 2:17, 22, 24, 26) 이 말씀을 볼 때 이들의 주장에 받침이 되는 것으로 설득력이 있는 것 같이 보이지만 은혜로만 말하고 율법을 제하는 자나 율법을 지키면 구원이 완성된다고 말하는 자들이나 다 성경을 바로 알아야 합니다.
이들은 성화구원을 우리가
행함으로 하나님께서 열고 남겨 놓으신 구원을 우리의 합력으로 채우는 것으로 말합니다.
하나님의 구원의 의가 믿음의 고백으로의 의와 그다음부터 행하는 의로 완성되는 것으로 주장합니다.
그럴싸한 것 같지만 분명 구원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가 분명하며
야고보의 증거는 구원을 사는 믿음의 삶으로서 원리를 말씀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구웜의 믿음은 믿음의 고백과 믿음생활로 함께 연결되어
있는 겁니다.모두 은혜로 역사되는 것이지요.
<바울이 율법을 문제있게 다루는 점을 알자>
바울이 로마서나 갈라디아서에서 율법을 지키려 하면 그리스도의 은혜에서 떨어진다고 한 것은 (갈 5:4) 율법주의 신앙 때문입니다.
사도바울이 율법에 대해 로마서와 갈라디아에서 부정적으로 증거한 것은 율법의 행위로 의롭다 함을 얻는다고 강조하는 율법주의 신앙인들을 지적하고 변호하는 데서입니다.
윻법주의자들은 이말씀을 근거로 행위의 의를 강조합니다.
신명기 6:25절에 보면 "우리가 그 명하신대로 이 모든 명령을 우리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삼가 지키면 그것이 곧 우리의 의로움이니라 할찌니라"는 말씀입니다.
이말씀은 오실메시야 안에서 은혜로 구원의 의를 입어 성민이 된 이스라엘백성들에서 실제적인 의인다운 모습을 요구하는 계명의 말씀인데 유대인들은 그걸 지키면 의롭게 된다고 행위구원의 "의"를 강조하는 겁니다.
이런 율법주의 신앙을 가진 유대인들이 교회에 들어와서 할례를 강조하고 율법을 지켜야 만이 의롭게 되고 구원을 얻는 다고 말하고 있었기 때문에 바울은 "그러므로 율법의 행위로 그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나니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음이라 이제는 율법위에 하나님의 한 의가 나타났으니 율법과 선지자들에게 증거를 받은 것이라. 곧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모든 믿는자에게 미치는 하나님의 의니 차별이 없느니라. 그러므로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얻는 것은 율법의 행위에서 있지 않고 믿음으로 되는 줄 우리가 인정하노라" (롬 3:20-21, 28)고 증거한 것입니다.
의인은 없나니 아무도 없다는 (롬3:10) 말씀을 모르는 것입니다.
<율법은 무엇인가>
율법은 모세가 기록한 모세오경을 말합니다. 다르게 말하면 십계명의 확장으로서의 해설입니다.
넓게는 구약을 통틀어 말하기도 합니다.
이 율법에는 하나님의 언약과 언약의 백성들의 삶의 규례가 담겨있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그들 조상들에게 일방적으로 언약하신 이스라엘 백성들을 구원해 내시고 그들에게 모세를 통해 율법을 주신 것입니다.
거기에는 하나님의 구원의 계획과 그것이 언약으로 주어지고 그 언약대로 이루어지는 구원의 역사가 담겨있고 또 한편으로는 그 언약의 백성들이 하나님을 예배하고 섬기는 하나님 백성으로서 거룩한 삶을 살아야 함에 대한 규례가 담겨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랜 세월을 지내오면서 유대인들은 하나님께서 하나님 백성으로 지켜 살도록 주신 거룩한 계명을 역으로 그것을 지켜야 의롭게 된다는 것을 믿고 교리로 세운 것입니다.
그러니까 자기네 믿음의 조상들이 하나님의 은혜가운데 믿음으로 의롭게 되고 또한 의로운 삶으로서 주신 계명을 역으로 사용하는 율법주의 신앙을 가지게 된 것입니다.
그렇게 될 때 계명은 그들에게 있어 무거운 짐이 되는 것이고 더욱 율법의 정죄 아래로 얽메이게 되는 것입니다.
모세가 기록한 율법, 즉 모세오경도 내용 전체는 두가지입니다.
하나는 구원의 원리로서 하나님의 언약과 성취의 역사가 들어 있고 또 하나는 구원받은 백성들의 대한 구별된 삶의 규례로서 예배와 예배하는 자의 모습과 실제 삶에 대해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것이 율법입니다.
그러니까 율법은 본질적으로 오실 메시야 안에서의 구원의 언약과 언약의 후손들의 거룩한 삶의 규례로 되어 있습니다.
이렇게 되어 있는 율법, 즉 넓게 말해 구약은 오실 메시야 안에서 먼저 이스라엘이 구원받고 또한 구원 받은 백성이 하나님을 섬기도록 되어 있는 하나님 규례의 말씀을 유대인들은 그걸 지켜야 의롭게 되고 구원이 된다고 말하고 믿기 때문에 그렇게 볼 때 율법은 짐이고 저주고 되려 죄에 얽매이고 그리스도의 은혜에서 떨어진다고 바울은 지적하여 증거한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스라엘은 오실 메시야 안에서 하나님의 은혜언약에 따라 의롭게되고 구원 받은 것인데 그들은 구약에서 그 구원의 원리는 못보고 의롭게 된 자들에게 하나님의 통치를 받으며 하나님나라 백성으로 거룩하게 살며 하나님을 바르게 예배하라는 의로운 모습과 삶에 대한 규례를 역으로 지켜야 의롭게 된다라고 본것입니다.
<율법도 은혜의 말씀이다>
율법도 하나님의 은혜의 말씀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이 율법엔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의 언약과 그 언약이 은혜로 성취되는 말씀이 들어있고 또한 은혜로 구원받은 하나님 백성들이 은혜의 삶인 구원의 삶에 대한 규례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나외에 다른 신을 두지말라는 계명으로 하시는 하나님의 명령의 말씀이 능력이 있어 우리에게 역사되어 다른 신과 우상을
멀리하게 되는 것입니다.
만일 은혜만 있고 이런 계명의 말씀이 없다면 우린 이방인과 구별 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러니까 율법의 계명은 은혜로 하나님백성된.자들이 하나님나라 백성답게 거룩하고 합당하게 살게되는 기준 말씀이고 우리를 그렇게 변회시키는.은혜의.말씀인 것입니다.
<성경은 두가지 내용으로 되어있다>
모든 성경은 하나님 말씀으로된 구원의 책으로서 두가지 내용으로 되어 있습니다.
하나는 구원에 대한 원리의 말씀이고
또하나는 구원받은 자의 거룩한 모습과 삶에 대한 규례적 말씀입니다.
예를 든다면, 창세기 3:15절에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하고 너의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는 말씀이나, 이사야 11:10 절의"그 날에 이새의 뿌리에서 한 싹이 나서 만민의 기호로 설 것이요 열방이 그에게로 돌아오리니 그 거한 곳이 영화로우리라"는 말씀이나 ,
신약에서 마태1:21절이나, 로마서 8:1~2절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같은 내용의 말씀은 구원의 원리에 관한 말씀이고,
반면에 십계명의 규례나 신명기4:1~2절에 "이스라엘아 이제 내가 너희에게 가르치는 규례와 법도를 듣고 준행하라 그리하면 너희가 살 것이요 너희의 열조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주시는 땅에 들어가서 그것을 얻게 되리라
내가 너희에게 명하는 말을 너희는 가감하지 말고 내가 너희에게 명하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명령을 지키라"는 말씀이나,
예수님의 산상보훈이나,
바울의 " 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좇는 옛 사람을 벗어 버리고 오직 심령으로 새롭게 되어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엡4:22~24)는 말씀같은 내용은 다 구원받은.자의 거룩한.모습과 성도로서 합당한.삶을
원하는 말씀인 것입니다.
그러니까 구원의 원리의 말씀도 은혜의 말씀이요 구원받은 백성이 옛 죄의 세상 사람이였던 육체의 소욕중심에서 거룩한 모습과 삶을 하나님나라나 교회된 모습으로 살도록 주신 규례되는 내용도 하나님 은혜의 말씀입니다.
그것이 없다면 우리는 거룩히 구원을 살게하는 즉 교회를 이루는 모습은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를 제하러 온 것이 아니라 완전하게 하려 함이라 하시면서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계명중에 지극히 작은 것 하나라도 버리고 그 같이 사람을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지극히 작다 일컬음을 받을 것이요 누구든지 이를 행하며 가르치는 자는 천구에서 크다 일컬음을 받으리라" (마 5:18-19)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개혁파는 신율법주의에 속합니다.
그리스도안에서 완성된 내용을 빼고는 하나님나라된 자로서 합당히 살도록 주시는 은혜의 규례로 보기때문입니다.
끝으로 이말씀을 유의해 봅시다.
"또 네가 어려서부터 성경을 알았나니 성경은 능히 너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느니라.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하기에 온전케 하려 함이니라"
(딤후3:15~16)
이 말씀을 보면 위에서 언급한 대로
성경은 두가지 내용으로 되어 있음을 압축해서 말씀합니다.
한가지는 구원에 이르는 지혜를 주는 말씀과 또 한가지는 우리를 바르게 교육하여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니까 구원의 원리를 말씀하는 것만 은혜가 아니라 구원을 살게하는
규례의 말씀도 은혜인.것입니다.
말씀이 우리를 살게 한다고 합니다.
(신4:1 , 요5:25)여기서 "산다"는 것은 구원을 말하는데 그 구원은 원리적인 말씀을 통해서는 믿음의 고백으로 의롭게되는 본질적인 구원을 완전히 얻게 되고 계명의 말씀으로서는 그 구원을 실제로 거룩히 살아가는 성화구원을 주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성경에서 구원받은 백성에게 구별된 모습과 삶의 행위를 원하는 규례적인 율법은 구원을 실제로 살게 하는 은혜의 말씀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 말씀이 없다면
우리는 거룩할 수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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