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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마24:40-5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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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김경형 목사 |
참고 : | 궁극교회 주일예배 |
24장 40, 41절: 그 때에 두 사람이 밭에 있으매 하나는 데려감을 당하고 하나는 버려둠을 당할 것이요 두 여자가 매를 갈고 있으매 하나는 데려감을 당하고 하나는 버려둠을 당할 것이니라
밭에서 일하는 남자는 놈팽이처럼 돌아다니지 않고 게으르지 않고 생산적이며 건설적이며 열심히 일하는 참 건전한 남자들로 보입니다. 매를 가는 여자들도 역시 할 일 없이 이곳 저곳으로 돌아다니지 않고 밀을 잘 빻아 부드럽게 가루로 만들어서 식구들에게 맛있게 먹이고자 하는 가정에 충실한 그런 여자들로 보입니다.
사실 밭에서 일을 하는 것은 땀나고 허리 아프고 팔다리 아프고 무척이나 힘든 일입니다. 매를 가는 것도 팔 아프고 허리 아프고 다리 아프고 참 힘든 일입니다. ‘이마에 땀이 흘러야 먹으리라’ 한 말이 참말로 실감나는 일입니다. 사람이 땀 흘려 일을 할 줄 알아야 그래도 ‘인생이 무엇일까’ 하고 한 번쯤 생각들을 하게 됩니다.
밭에서 무엇을 하고 있었느냐? 밭을 갈고 있었거나, 씨를 심고 있었거나, 풀을 뜯고 있었거나, 추수를 하고 있었거나, 어쨌든 생산활동을 하고 있었습니다. 여자들도 식구들을 위한 활동이었습니다.
남자들이나 여자들이나 모두
① 일을 한 장소가 똑 같습니다.
② 일을 한 활동이 똑 같습니다.
③ 모두 같은 동역자들입니다.
④ 일의 시작이 같고,
⑤ 일의 양이 같습니다.
그런데 무엇이 달라서 하나는 버려둠을 당하고, 하나는 데려감을 당할까? 참 이상도 하지! 일을 하기 싫어서 식구들 다 내어버리고 도망을 가려고 그랬나? 왜 그런 일이 일어났다고 보아지느냐?
한 사람은 안 믿은 사람이었나? 물론 그럴 수도 있겠지. 하지만 깨어있으라는 교훈이기 때문에 단순히 ‘믿는 사람이다, 안 믿는 사람이다’ 라고만 말할 수 없는 것입니다. 같은 비교급이 되어야 우리가 깨달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데려감을 당하고, 버려둠을 당하고’
사실 우리가 다 같이 예수를 믿고, 또는 목회들을 하고 있지만 한 종류의 사람들은 세상을 소원 목적을 하고 예수를 믿은 사람, 또 한 종류의 사람들은 하나님의 온전한 인격과 성품을 향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닮으려고 예수를 믿은 사람으로 분별을 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어떤 사람을 데려 갔겠으며, 어떤 사람을 버려두었겠느냐? 어떤 사람이 깨어 있는 사람이었겠느냐? 둘 다 똑 같이 깨어 있었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예수 믿는 목적관이 다른 것입니다. 어느 쪽 사람이 주님과 인격적인 교제를 가졌겠느냐? 세상을 소원 목적하고 믿은 사람? 아닙니다.
한 사람을 데리고 갈 때에 버려둠을 당한 사람이 데리고 가는 그 순간을 포착했을까? 만일 그 순간을 포착을 했다면 순간적인 일이라서 아마 바라보고 멍했을 것입니다. 한참 후에 정신이 번쩍 들고 실감이 났을 것입니다. 그러나 만일 포착을 못했다면 깨어 있지를 못했으니까 ‘이 사람이 금방까지 나랑 같이 일을 했는데 어디로 갔지? 어디로 간다고 얘기나 하고 갈 일이지, 원 참 싱거운 사람’ 이라고 할 것이고, 어떤 사람은 ‘아침에 나랑 같이 와서 일을 했던가, 안 했던가?’ 아침에 같이 와 놓고서도 멍해 가지고 그 말을 하는 것입니다. 버려둠을 당한 여자는 데려간 줄 모르고 ‘금방까지 나랑 같이 맷돌을 갈고 있었는데 어디로 갔지? 허준을 보러갔나, 일하다 말고 이웃에 마실을 갔나?’
좌우지간 분별을 당하고 구별을 당했으니 이제는 버려진 채로 세상에서 영원히 사는 것이냐? 아닙니다. 큰 재앙을 선물로 받게 됩니다. 독수리의 밥이 안 될는지? 분명히 같이 예수를 믿어도 영적인 사람은 데려가고, 육적인 사람은 버림을 당할 것입니다. 우리는 버림을 당할 자로 예수 믿으면 쓰겠느냐?
‘일 크게 많이 하고, 일 적게 하는 그 일 자체를 가지고 심판을 하는 것이 아니다’ 라고 하니까 어떤 사람은 ‘일하기 싫은 차에 마침 잘 됐다’ 합니다. ‘일에 목적을 두지 말자’ 하는 그것은 좋은데 문제는 진리를 더 많이 깨닫고 자타의 성화구원을 위해서 일을 하느냐?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니고 하는 이것은 자기 편한 대로만 살려고 하는 더 악한 사람이라고 볼 수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믿지 아니하는 형벌을 받을 사람입니다.
24장 42절: 그러므로 깨어 있으라 어느 날에 너희 주가 임할는지
깨어있으라는 말은
① 정신을 차리라는 말입니다. 지금 종교적 세상이 어떤 세상인지 분별을 하고 육적인 그들과 손잡고 일하지 말라는 말입니다.
② 죽어 있는 신앙이 되지 말라는 말입니다. 무엇이 죽어 있는 신앙인지, 어떤 것이 살아 있는 신앙인지 알고 예수를 믿으라는 것입니다.
내가 어떤 종류의 신앙을 가져야 버림을 안 당할까? 내가 어떤 종류의 신앙을 가진 자들과 사귐이 되어야 같이 들림을 받을까를 좀 연구를 하고 깨달아 가지라는 것입니다. 멍청하게 살지 말라는 말입니다. 신앙의 노선을 잘 분별하고 진리신앙의 노선을 가지라는 말씀입니다.
하루를 살면서 무슨 생각을 하는 것이 제일 좋겠느냐?
24장 43, 44절: 너희가 알지 못함이니라 너희도 아는 바니 만일 집주인이 도적이 어느 경점에 올 줄을 알았더면 깨어 있어 그 집을 뚫지 못하게 하였으리라 이러므로 너희도 예비하고 있으라 생각지 않은 때에 인자가 오리라
① 도적이 어느 경점에 오겠는지?
② 도둑이 오는 것은 순간입니다.
③ 도둑은 잘 때, 또는 허점이 생기면 들어옵니다.
④ 도둑이 들면 손해가 많습니다.
집주인이 도둑이 어느 순간에 들어온다고 하는 것을 잘 알 것 같으면야 손해를 안 보지!
그런데 우리가 여기서 일반적 세상에서 일어나는 도둑들만 생각을 하면 안 됩니다. 도둑의 종류가 대단히 많기 때문입니다.
① 물질을 빼앗는 도둑.
② 시간을 빼앗는 도둑.
③ 건강을 빼앗는 도둑.
④ 노력을 빼앗는 도둑.
⑤ 투자를 빼앗는 도둑.
⑥ 마음을 빼앗는 도둑.
⑦ 생각을 빼앗는 도둑.
⑧ 아주 사랑하는 사람을 빼앗는 도둑.
⑨ 아주 미운 사람을 빼앗는 도둑.
⑩ 아주 절친한 사람을 빼앗는 도둑.
⑪ 알게 모르게 빼앗아 가는 도둑.
⑫ 내가 좋아서 갖다 주니 받아가는 도둑.
⑬ 한 집안식구도 될 수 있고,
⑭ 친구도 될 수 있고,
⑮ 이웃도 될 수 있고,
⑯ 땅 파고 들어오는 도둑.
⑰ 담 넘어 들어오는 도둑.
⑱ 벽을 뚫고 들어오는 도둑.
신앙정신 사상으로 보는 도둑이 대단히 많습니다. 일반도둑만 생각했다가는 자기는 도둑을 다 맞았다고 보아야 합니다.
제일 알아보기 힘들고 제일 큰 도둑은 자기 속에 들어 있는 옛사람입니다. 이 도둑은 꼭 자기처럼 생겼습니다. 껍데기를 보아서는 잘 모릅니다. 그 중심사상을 보아야지! 가만히 자세히 보면 육의 생각을 하는 그 놈입니다. 자타의 성화구원을 망칠 뿐만 아니라 자타의 건강을 마구 해치기도 합니다.
진리양보와 자타의 성화구원을 해치는 것은 자살행위입니다. 그런고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성도는 진리이치의 신앙정신 사상에 항상 바르고 옳은 깨달음을 받고 살아야 합니다.
진리이치의 말씀을 받으면 영의 귀문이 열립니다. 말에 분별이 됩니다. 말하는 그것이 육에다 목적을 두고 하는 말인지, 영에다 목적을 두고 하는 말인지 분별이 됩니다. 말이라고 다 말이 아닙니다. 영에 속한 말이 있고, 육에 속한 말이 있습니다.
진리이치의 말을 들으면 영의 눈도 열리는 것입니다. 활동이 무슨 목적으로 하는 것인지? 영의 목적인지, 육의 목적인지? 그리고 목적에 따라 그 활동의 배후에 어떤 영이 활동하고 있는지 알게 됩니다. 아무리 신앙이라고 하지만, 주의 영광을 위해서 한다고 하지만 그 목적에 따라 옛사람인지, 새사람인지 그 영의 활동이 다른 것입니다. 영의 귀 영의 눈이 모두 감겨 있으면 자기는 예수를 열심히 믿는다고 해도 옛사람 거짓 자기와 잘 맞아 돌아가는 거짓 목자 삯군목자에게 자기 일생이 도둑을 다 맞고 있는 것임을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사람분별, 생각에 분별, 신앙정신 사상의 분별, 영과 육을 분별, 설교분별, 거짓 종을 분별을 못한다면? 물론 금방 예수 믿은 사람은 못할 수밖에 없지만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를 3년 이상 믿었다면 분별할 줄 알아야 합니다. 수십 년을 예수를 믿었어도 영분별을 못한다면 영적인 면에 멍청한 둔팅이라고 보아야 합니다.
24장 44절~51절: 이러므로 너희도 예비하고 있으라 생각지 않은 때에 인자가 오리라 충성되고 지혜 있는 종이 되어 주인에게 그 집 사람들을 맡아 때를 따라 양식을 나눠 줄 자가 누구뇨 주인이 올 때에 그 종의 이렇게 하는 것을 보면 그 종이 복이 있으리로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주인이 그 모든 소유를 저에게 맡기리라 만일 그 악한 종이 마음에 생각하기를 주인이 더디 오리라 하여 동무들을 때리며 술친구들로 더불어 먹고 마시게 되면 생각지 않은 날 알지 못하는 시간에 그 종의 주인이 이르러 엄히 때리고 외식하는 자의 받는 율에 처하리니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
깨어 있는 것은 자기 분별, 사상 정신 활동 영분별에 속하고,(내적인 면) 예비하고 있는 것은 깨어 있는 상태에서 외적인 활동 면입니다. 목회자들은 더 정신을 차려야 할 말씀입니다.
먼저 신실치 못한 종과, 신실한 종이 있다는 것을 전제로 하고 무엇이 신실한 종인지, 아닌지를 알기 위해서 우리가 용어 속에 담고 있는 주님의 정신 사상, 주님의 마음을 알아야 합니다. 이것을 모르면 자기 주관적 지식 즉, 세상사람들이 말하는 기준에 의하여 말하기 쉽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된다면 새사람의 생각에서 나온 활동과, 옛사람에서 나온 활동이 비슷해 보이는 고로 그만 ‘신앙 좋다’로 몰아붙여서 말하게 됩니다. 이렇게 되면 큰일날 소리입니다. 그런고로 우리는 세밀하게 알고 있어야 합니다.
충성이라 할 때
1. 내가 주님을 알아드리고 믿어드리니까 주님이 너무 고맙고 감사해서 충성 되다고 직분을 주었다. 일을 크게 많이 하면 사회에서 알아주지!
2. 내가 예수를 믿다 보니까 주님에 비해 너무나도 부족해. 깨달아 알아야 할 것도 너무 많고, 사람도 안 만들어졌고 해서 하나님 말씀의 기준에, 모든 의사성에 맞는 사람이 되려고 애를 쓰고 열심을 가지다 보니 실력을 키워주려고 직분을 맡긴 것입니다. 진리 붙잡는 충성을 보시고 직분을 주신 것입니다.
① 어떻게 하던, 어떤 수단을 쓰던 예배당을 많이 지으니 직분을 주더냐?
② 잘 배우고 깨달으니 직분이 주어지더냐?
신앙사상은 똑 같지 않은 것입니다. 하나는 종교적인 사상이고 옛사람 사상이고, 하나는 신앙적인 사상이고 새사람의 사상입니다. 그 차이는 세상과 천국입니다. 사람이 안 되어 있으면서, 사람이 될 꿈도 안 꾸면서 잔머리 굴리는 충성은 주님 앞에 거짓 종이 되는 것입니다.
지혜는 임시변통으로 정치적으로 머리 잘 굴리는 사람인가, 영원한 미래를 내다보고 지금 대비를 하는 사람인가?
종은 본문에서 보니 주인의 역할을 대신하고 있습니다.
‘때를 따라 양식을 나눠 줄 자가 누구냐?’
성도의 양식은 진리의 양식인데
① 영이 먹는 양식을 잘 알아야 하고, 영양에 대한 것도 잘 알아야 하겠고,
② 영의 양식을 손수 요리를 할 줄 알아야 하겠고,
③ 굶기지를 아니해야 하겠고,
④ 먹으면 죽는 것과, 먹으면 사는 것과, 먹으면 병드는 것과, 먹으면 미치는 것과, 먹으면 그 결과가 어떻게 된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진리 지혜 지식의 양식은 사람에게 하나님의 지혜 지식이 자라나고, 사람에게 하나님의 도덕성이 자라나고, 사람에게 하나님의 능력성이 자라나고, 영의 귀 영의 눈이 열리고, 영적인 기능도 지능도 자라나니 사람이 하나님의 성품을 닮아가고 사람의 인격이 고상해집니다. 이런 일을 하고 있는 종은 46, 47절처럼 참말로 복된 종입니다.
진리가 아닌 양식은 성경을 가지고 이방 종교사상처럼 만들어 먹이는 것으로 진리가 아닌 양식은 오염된 양식이고 독극물인데 그런 못 먹을 독극물을 먹으면 사람이 세상을 향해서 영웅성 허풍성의 바람이 들어서 붕 떠버립니다. 종교사업자 허풍쟁이 사명자가 많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귀신이 들려 굴속이나 산 속에 들어가서 환상보고 응답 받는다고 금식기도하고 자기의 마음을 못 다스리고 사람이 미쳐버립니다. 어떤 사람들은 요행이나 바라고 이적 기사나 바라고 예수 안 믿는 사람보다 더 신사적이지 못하고 사람이 더 추해져 버립니다. 비 진리를 먹여 사람을 못 쓰게 만드는 것은 모두 사악한 종들이 하는 소행입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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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도가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신앙생활을 하려면 인격자이신 하나님의 가장 깊은 심원인 하나님의 의지세계에서부터 당신의 애성에서 발로된 인간창조의 원인과 동기와 목적을 따라 신앙을 해야만 됩니다. 이래야 기독교 본질에서 이탈하지 않고 가장 효율적 적중적으로 하나님의 온전한 성품을 덧입을 수 있고, 성도 각자가 이 땅에서 이렇게 덧입은 하나님의 성품의 양에 따라 장차 천국에서의 누림에 차등이 생기게 됨을 성경을 통해 알 수가 있습니다.
김경형목사님께서 교역자 및 신학생을 대상으로 20여년 동안 매 주 정례적으로 진행하는 신학 및 성경연구 모임을 통해 하나님의 의지세계에서 예수 그리스도로 통한 인간구원을 설정하게 된 원인과 동기와 목적을 깨닫고 하나님의 본질의 신앙으로 나가는 주의 종들이 누룩처럼 퍼져나가고 있습니다.
참석하실 분은 031-207-5159, 또는 010-8886-5159로 문의해 주세요.(평신도도 참석 가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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