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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잠3:27-2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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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한태완 목사 |
참고 : |
기독교는 사랑실천의 종교
본문: 잠3: 27- 28
“네 손이 선을 베풀 힘이 있거든 마땅히 받을 자에게 베풀기를 아끼지 말며 네게 있거든 이웃에게 이르기를 갔다가 다시 오라 내일 주겠노라 하지 말며”
성탄절 새벽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한국의 슈바이처 장기려 장로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장장로는 일제시대 서울대(당시는 경성제국대학)의대를 졸업하고 29세에 박사학위를 받은 수재였습니다.. 그는 의대 입학시험을 볼 때 하나님께 이런 서원을 했다고 합니다. "하나님, 이 학교에 입학시켜 주시면 한평생 불우하고 가난한 사람을 위하여 몸을 바치겠습니다." 졸업 후 그 당시 가장 뛰어난 수술실력을 소유한 백인제 박사 밑에서 수련을 쌓은 그는 서원 대로 가난하고 병든 이웃을 위하여 무료 진료소인 복음 병원을 개설하여 영세민 의료구호 사업에 전생애를 바쳤습니다. 집 한 채 없이 사신 장기려 장로는 오직 주님만들 의지하고 주님께만 영광을 돌리고자 온 힘을 쏟아 말없는 실천을 보여 준 믿음의 산 증인이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이름을 높이고자 때로는 입술로, 때로는 행함으로 이름을 찬양하는 것은 온전한 찬양이 아닙니다. 생활 속에 구체적으로 실천하는 삶이 정말 온전한 찬양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이 세상 속에서 장기려 장로와 같은 마음으로 살아간다면 하나님의 이름이 높이 찬송받으실 것입니다.
"아아 허탄한 사람아 행함이 없는 믿음이 헛것인 줄 알고자 하느냐? 우리 조상 아브라함이 그 아들 이삭을 제단에 드릴 때에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은 것이 아니냐? 네가 보거니와 믿음이 그의 행함과 함께 일하고 행함으로 믿음이 온전케 되었느니라."(약2: 20- 22)
얼마 전 서울의 한 병원에서 간을 기증받아 새 생명을 얻은 50대 여성이 있었습니다. 그 여성에게 간을 기증한 사람은 경북 상주에서 목회를 하는 목사님이었습니다. 목사님은 지난 2003년 10월에 말기 간 환자를 살리기 위해 수술대에 올랐으나 지방간 수치가 높게 나와 환자를 살리지 못한 것이 늘 마음 아팠다고 합니다. 그는 이전에도 정신지체시설에서 봉사활동을 하던 중 만성신부전증을 앓던 한 청소년이 고통을 호소하는 것을 보고 자신의 신장을 익명의 환자를 위해 기증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한 부분을 아픈 사람들을 위해 내어 놓으며 “하나님의 가르침대로 행동하고자 노력하는 것”이라 말합니다. 우리 사회가 어둡다는 말들을 많이 하지만, 그 어두운 세상을 스스로 밝히겠다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영혼 없는 몸이 죽은 것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니라"(약2:26)
어떤 사람이 물에 빠져 거의 죽어가고 있었습니다. 이때에 한 사람이 지나가다 보고하는 말이 "왜 변변치 못하게 행동해서 거기 빠졌는가?"하고 꾸짖기만 하고 지나갔습니다. 이와 같이 유교는 윤리적으로 사람의 도리를 가르쳐 잘못을 전제적으로 경책만 합니다.
또 한 사람이 지나가다가 물에 빠진 사람을 보고하는 말이 이편으로 나무 가지를 붙잡고 저편으로 돌 뿌리를 딛고 올라오라고 다만 동정의 뜻을 표하며 나오는 방법을 말해 주었습니다. 불교는 자비의 종교입니다. 자력으로 구원 얻는 지식을 제시하여 줄뿐입니다. 그러나 자기 노력이나 힘으로는 구원을 얻을 수 없습니다.
또 한 사람이 지나가다가 물에 빠진 사람을 보고 책망하거나 물에서 나오는 지식을 전할 여지가 없으므로 자기 자신이 물속에 들어가서 죽어 가는 자를 끌고 나와서 상처를 치료해 주고 새 옷을 입히고 그 사람의 집에까지 데려다 주었습니다. 이와 같이 예수님께서는 공자나 석가처럼 이론만을 가르치지 않고 죄인의 형상을 입고 이 땅에 오셔서 죄인들의 죄 값을 치르기 위해 대신 죽으심으로 구속하여 하나님 아버지 집으로 데려다 주십니다. 구원의 길은 오직 하나 예수 그리스도뿐 입니다. 예수그리스도를 하나님의 아들로 믿고 나의 구원자로 고백하면 영생을 얻습니다.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니라 하였더라"(사도행전 4장 12절 )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요한복음 14장 6절)
어떤 종교이든 사랑과 자비를 말로만 하고 행함이 없으면 무익(無益)합니다.
"내가 사람의 방언과 천사의 말을 할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소리나는 구리와 울리는 꽹과리가 되고"(고린도전서 13장 1절)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서 우리에게 반드시 실천할 것을 당부하신 3가지가 무엇입니까?
첫째는 증인이 되라는 것입니다.
우리를 주님의 자녀로 부르신 하나님의 목적이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그것은 그리스도의 증인, 복음의 증인으로 삼으시려는 것입니다(눅 24:48, 행 1:8). 무엇보다 이 땅의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주님의 증인이 되는 축복 가운데 살아가기를 기원합니다. 예수님의 부활 직후에 제자들은 주님의 부활을 확신하지 못했고(눅 24:11), 또 자신들 앞에 나타나신 주님을 알아보지도 못했습니다(눅 24:41). 그런데 이렇게 처음에는 믿음이 없었던 제자들이 그 후 전 세계를 다니면서 죽기까지 복음을 전했습니다. 순교까지 했습니다. 어떻게 이렇게 담대하게 변화될 수 있었습니까? 거기에는 두 가지 사건이 있었습니다. 하나는 주님과 함께 먹고 마시는 일이었습니다(눅 24:30∼31, 41∼43). 또 하나는 성경 말씀을 듣고 깨달아 마음을 열었던 일이었습니다(눅 24:32, 44∼45). 주님과 만찬, 그리고 주님의 말씀. 이것이 제자들이 주님의 살아 계심과 임재하심을 믿게 되었던 계기였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모르는 믿음의 비밀이고, 지금도 우리 성도들의 기쁨의 원천입니다. 지금도 위기와 고통, 절망과 죽음의 권세가 우리를 덮칠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때 그냥 낙망하고, 포기할 일이 아닙니다. ‘이제는 마지막이야’ 하는 그 순간을 내 힘으로만 감당해야 하는 것이 아닙니다. 십자가에 못밝힌 예수님을 버리고 도망쳤던 겁쟁이 제자들을 주님께서 찾아 오셨듯이 그때 우리를 찾아오십니다. 능력으로 붙들어 주십니다. 어렵고 힘들수록 우리도 ‘마음을 열어 성경을 깨닫고’(눅 24:45), ‘주님과 함께 빵을 나누는’(눅 24:30-31) 일에 열심을 내면 됩니다. 그러면 풍성한 주님의 은총으로 그리스도의 증인으로 살아갈 새 힘을 얻게 됩니다. 우리는 교회가 서로 다르고, 교파가 서로 다르고, 신앙의 모습도 서로 다릅니다. 주님께서는 이렇게 다양한 믿음의 그릇과 서로 다른 모습을 가진 줄 아시면서 우리를 각각 부르시고 구원하여 주셨습니다. 쓰임새가 다르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믿음의 사람들이 증언하는 내용, 증언하는 하나님은 다 똑같다는 사실입니다. 다양성 속의 일치입니다. 증인으로 일치를 이루도록 예수님의 영광을 믿는 사람들에게도 주셨습니다(요 17:22). 주님의 증인들에게 중요한 것은 서로 다른 점이 무엇인지를 확인하는 것이 아닙니다. 서로 다른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는 것입니다(롬 8:28).
교단과 신학, 교회 역사가 다르더라도 상대방도 똑같이 증인으로 부름 받았음을 알고 힘을 모으기만 하면 됩니다. 이 세상은 주님의 복음으로 넘쳐나게 됩니다. 우리가 서로 하나가 되어 증인으로 나서기만 하면 이 세상은 변하게 됩니다. 악이 비록 성하여도 주님의 진리가 승리하기 때문입니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행1:8)
‘이러므로 우리에게 구름 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이 있으니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 버리고 인내로써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하며’(히12:1)
‘너희는 이 모든 일의 증인이라’(눅24:48)
복음전파 즉 전도는 사랑을 실천하는 것입니다.
둘째는 서로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요13:34)
미우라 아야코 여사는 일본의 유명한 여류작가입니다. 이름이 알려지기 전 그는 남편의 수입만으로는 생활이 어려웠습니다. 그래서 생활에 도움을 얻고 손님들에게 그리스도의 사랑을 전하자는 마음으로 조그마한 구멍가게를 차렸습니다. 그런데 가게가 너무 잘돼 트럭으로 물건을 들여와야 할 정도로 번창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남편이 분주히 일하는 아내를 안쓰럽게 여겨 “우리 가게가 이렇게 잘되는 것은 좋지만 주위 다른 가게들이 우리 때문에 안되면 어떻게 하느냐“하고 염려했습니다. 미우라 아야코 여사는 지금까지 미처 생각하지 못한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때부터는 아예 가게에 물건을 들여놓지 않았습니다. 손님이 물건을 찾으면 다른 가게로 안내했습니다. 그렇게 되자 시간의 여유가 생겼습니다. 그래서 틈틈이 펜을 들어 글을 쓴 것이 빙점이라는 작품입니다. 하나님은 그에게 이런 방법으로 보상해주셨던 것입니다.
“그리므로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이것이 율법이요 선지자니라”(마7: 12)
“우리 각 사람이 이웃을 기쁘게 하되 선을 이루고 덕을 세우도록 할지니라”(롬15:2)
‘사랑은 이웃에게 악을 행하지 아니하나니 그러므로 사랑은 율법의 완성이니라’(롬13:10)
셋째는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기도를 계속하고 기도에 감사함으로 깨어 있으라’(골4:2)
한 성직자가 전상용사들이 수용된 허름한 막사를 방문했습니다. 막사는 전쟁 중 부상을 당한 병사들의 신음소리로 요란스러웠습니다. 그는 한 손에 성경을 들고 한 부상병의 이마에 손을 얹으며 말했습니다. “당신을 위해 기도해주겠소.” 그러자 부상병이 말했습니다. “저는 지금 목이 마릅니다. 물을 좀 주세요.” 성직자가 병사에게 물을 먹인 후 말했습니다.“ 이제 기도를 해드릴까요.” 성직자는 자신의 옷을 벗어 병사를 덮어주었습니다. 그러자 병사가 성직자를 바라보며 말했습니다. “당신의 손에 들려있는 것이 그 유명한 성경이군요 저를 위해 기도해 주세요. 그리고 성경을 좀 읽어주세요."
하나님과 이웃을 사랑하는 사람은 쉬지 않고 기도합니다.
‘모든 기도와 간구를 하되 항상 성령 안에서 기도하고 이를 위하여 깨어 구하기를 항상 힘쓰며 여러 성도를 위하여 구하라’(엡6:18)
‘쉬지 말고 기도하라’(살전5:17)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빌4:6)
기독교 신앙은 사랑을 실천하는 종교입니다. 남에게 선을 베풀면 자연스럽게 사람의 마음이 열립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사랑을 베풀 때 사람들은 복음을 받아드립니다 입으로만 하는 사랑은 힘이 없습니다. 우리 주변에는 도움이 필요한 이웃들이 많이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나는 사는데 아무 부족함도 어려움도 없다.’고 하여 주위에 가난하고 병들고 소외당한 이웃들에게 무관심한 채 살아가서는 안 됩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을 가지고 적극적으로 그들을 도와주어야 합니다. 세상 속에서 하나님 말씀을 몸으로 실천함으로 하나님을 찬송하며 삽시다.
* 기도: 사랑의 하나님, 늘 새롭게 살기를 원하면서도 나태해지고, 게을러지는 나를 인도하여 주소서. 맡겨진 일에 최선을 다하며 삶에 충실하게 하소서. 나의 목숨이 다하는 날까지 주님께 충실한 삶을 살게 하소서.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읽고 마음속으로만 결심했습니다. 그러나 이제부터라도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행동으로 나타내 보이도록 도와주소서. 우리 구주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한태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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