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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용우 말씀묵상

깊은데로가서

밤이 무척 길군요...그러나 이 어두운 밤도 끝날 때가 있겠지요? 그래요 해는 곧 뜰 것입니다. 밝아오는 새벽을 누가 막을 수 있겠습니까.

[안으로의 여행1-3] 안으로의 여행 (a trip in)

주일말씀 최용우............... 조회 수 751 추천 수 0 2015.12.27 23:40:55
.........
성경본문 : 마6:5-6 
구분 : 주님의교회 

안으로의 여행1-3/마태복음6:5-6            
 
안으로의 여행(a trip in)
                            

2015.11.15. 주일오전  
2015.12.6.  주일오전 
2015.12.27. 주일오전 -3회 설교                   



너희는 기도할 때에, 위선자들처럼 하지 말아라. 그들은 사람에게 보이려고, 회당과 큰길 모퉁이에 서서 기도하기를 좋아한다. 내가 진정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그들은 자기네 상을 이미 다 받았다.
너는 기도할 때에,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고서, 은밀하게 계시는 네 아버지께 기도하여라. 그러면 숨은 일도 보시는 네 아버지께 갚아 주실 것이다. (표준 마6:5-6)


1.여행은 언제나 설레임을 줍니다.
2.최고의 여행은 마음속으로 떠나는 여행입니다.
3.소트라테스 ‘너 자신을 알라’고 했습니다. 
4.생명은 심장 안에 있고 심장에 마음이 있습니다.
5.심장 안에 하나님을 만나는 ‘골방’이 있습니다.
6.호흡은 심장으로 들어가는 통로입니다.
7.호흡으로 영혼이 깨어납니다.
8.성령님께서 문을 여십니다.
9.하나님께서 임재하십니다.
10.임재의 증거는 ‘기쁨’으로 나타납니다.


1.여행은 언제나 설레임을 줍니다.


저는 여행하는 것을 참 좋아합니다. 그래서 어떻게 하면 전 세계를 다니면서 여행을 할 수 있을까 생각하다가 배를 타는 ‘선원’이 되면 그 꿈을 이룰 수 있을 것 같아 중학교를 졸업하고 부산에 있는 해사고등학교에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졸업을 한 다음 항해사가 되어 유조선을 타고 세계 곳곳을 누비고 다녔습니다. 멕시코 살리나 크루즈에서 한달 동안 정박해 있으면서 금발의 미녀를 사귀었습니다. 하마터면 국제결혼을 할 뻔 했지만 고등학교를 막 졸업한지라 나이가 너무 어려서 결혼을 하지는 못했습니다.


전 세계에 12개국 정도를 돌아다닌 것 같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돌아다녀 보니 어쩌니 저쩌니 해도 사계절이 있는 우리나라가 가장 살기 좋은 나라였습니다. 그래서 배타는 것을 포기하고 우리나라 여기저기 여행을 많이 다녔습니다.
결혼을 했습니다. 아내가 싫어했습니다. 가정의 평화가 곧 세계 평화를 유지하는 것임을 알고 여행 다니는 것을 포기했습니다. 그러다가 결혼 10년후 쯤 슬슬 방랑기질이 발동하여 산에 오르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에는 열심히 아내를 데리고 다녔습니다. 따라다니다 지친 아내가 나중에는 혼자가도 된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혼자 열심히 산에 다니고 있습니다. 어제도 길마재산에 올라갔는데 275번째 산행이었습니다.


여행은 언제나 설레임을 줍니다. 새로운 곳에서 예기치 않은 일들을 만나 그것을 해결해 나가는 스릴이 있습니다. 새로운 것을 보고 새로운 경험을 하는 재미가 있습니다. 시간이나 여건이 받쳐주지 않아서 여행을 떠나지 못할 뿐이지 아마도 여행을 싫어하는 사람은 한사람도 없을 것입니다. 전에 다니던 교회에 관광버스를 운전하는 성도님이 계셨는데, 그분 덕분에 교인들이 여행을 많이 다녔습니다. 여행 전문가가 교회에 있으니 교인들이 그 덕을 보게 되더군요.
인생은 여행입니다. 태어나면서 죽을 때까지 이 세상에 잠깐 왔다가 가는 나그네길입니다. 사람이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 존재인지만 알아도 죽음이 두려움이 아닙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천국 고향으로 돌아갑니다. 지난여름 평생 믿음 안에서 사셨던 어머님이 천국으로 가셨습니다. 천국 가는 게 얼마나 좋으셨으면 자식들한테 말도 안하고 떠나셨을까요.


2.최고의 여행은 마음속으로 떠나는 여행입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아직 한 번도 가보지 않은 미지의 세상이 있습니다. 그곳은 달나라나 화성을 탐사하는 것보다도 더 흥미진진한 곳입니다. 이미 많은 사람들이 그곳을 여행하고서 수많은 여행기를 썼는데도 사람들은 잘 모르는 곳입니다.그곳은 비로 우리의 ‘마음 속’ 입니다. 


불교나 회교나 유교나 다른 종교는 ‘외면의 종교’입니다. 타 종교는 눈에 보이는 것을 숭배하기 때문에 숭배의 대상을 크고 화려하게 만듭니다. 절간에 가면 앉아 계시는 부처님이 얼마나 큽니까! 그리고 금 도금을 해 놓아서 얼마나 반짝입니까! 절집은 또 얼마나 화려합니까!


회교 사원은 또 얼마나 웅장하고 큽니까! 피라미드는 어찌나 잘 만들었는지 원자폭탄이 터져도 무너지지 않을 거라 합니다. 무당집도 알록달록 눈에 잘 띄는 화려함으로 치장을 합니다. 외면의 종교는 겉을 화려하게 꾸미는 종교입니다.
반면에 기독교는 ‘내면의 종교’입니다. 겉을 화려하게 꾸미는 종교가 아니고 내면에서 하나님을 만나는 ‘만남의 종교’입니다. 기독교의 핵심은 하나님과의 만남입니다. 그런데 그 만남은 눈에 보이지 않는 가상의 공간인 사이버에서 이루어집니다. 하나님은 어떤 형상이 존재하는 분이 아니십니다. 혹 하나님을 보신 분 계십니까? 이 세상에 한 사람도 없을 것입니다. 그 모양이 존재하지 않는 분을 봤다면 그것은 하나님이 아니고 귀신입니다.


오늘날 기독교가 타락했다는 증거는 기독교가 바깥을 화려하게 꾸미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거대한 매머드 예배당을 짓고 수많은 사람들을 모아서 세를 과시하고 힘자랑 하는 것 모두 기독교의 본질이 아닙니다. 기독교는 ‘내면의 종교’입니다. 그래서 중세 교부들은 겉으로 드러난 세상에서 떠나 깊은 숲속이나 사막의 동굴 속으로 들어가 하나님과 깊은 만남을 가졌습니다.


자 이제, 우리는 기독교의 본질인 ‘내면의 여행’을 한번 해 보십시다. 그것은 마음속으로 떠나는 여행입니다. 사람들은 마음에 대해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의외로 ‘내 마음 나도 몰라’입니다. 제가 잘 안내할 터이니 겁내지 말고 잘 따라 오시기 바랍니다.


3.소트라테스 ‘너 자신을 알라’고 했습니다.


기원 전 약 450년 전 고대 그리스 철학자 소크라테스(BC470-399)는 ‘너 자신을 알라’고 했습니다. 이 질문은 지금까지 인류가 한 질문 중에 가장 큰 영향력을 끼친 질문이라고 합니다. 그것은 인간 실존에 대한 질문입니다. 그 질문은 소크라테스를 세계 4대 성인의 반열에 올려놓았습니다.


그리스 아테네에 모인 세계적인 석학들은 그동안 ‘우주는 어떻게 생겼는지’ ‘물질의 근원은 무엇인지’와 같은 질문과 토론으로 날밤을 샜는데 정작 ‘인간’에 대해서는 생각조차 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소크라테스의 ‘너 자신을 알라’는 말은 2600년 서양철학사의 중심사상이라고 할 수있는 관념론의 사실상의 기원이 되었고 소크라테스 덕분에 ‘인간론’ 연구가 활발하게 진행되었습니다. 그것은 그의 제자인 ‘플라톤’의 영향이 컸습니다.
플라톤(Plato BC428-347)은 스승인 스크라테스 못지 않은 위대한 철학의 아버지인데, 스승의 말대로 ‘너 자신을 알기 위해’ 열심히 사유를 한 끝에 나를 이 세상에 있게 한 근원을 연구하게 됩니다. 형이하학 연구가 형이상학으로 바뀐 것입니다. 즉, 플라톤은 절대자에 대해 연구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그 연구는 플라톤의 제자인 아리스토델레스에 이어지며 꽃이 피게 됩니다.


요즘엔 세계 5대 성인이라고 하지요. 우리나라에 최근에 공자와 소크라테스를 능가하는 다섯 번째 성인이 탄생했습니다. 공자, 맹자 같은 자짜 돌림인데 ‘금자’씨라고 그는 친절하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너나 잘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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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크라테스의 영향을 받은 사람이 어거스틴(Augustine 354-430)입니다. 어거스틴은 그의 저서들을 통해 기독교 인간론을 발전시킵니다. 어거스틴은 신플라톤 주의에 신학을 입혔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믿고 있는 인간에 대한 이해는 거의 어거스틴이 정립해 놓은 것을 믿고 있는 것입니다.


플라톤의 영향을 받은 사람은 칼빈(Calvin 1509-1564)입니다. 어거스틴 사상이 지나치게 인간 중심인 것에 대한 반발로 칼빈은 그의 저서 ‘기독교강요’에 대부분을 하나님에 대한 이야기로 채웁니다.
그래서 어거스틴의 영향력 아래 있는 천주교는 인간이해에 탁월하고,
칼빈의 영향력 아래 있는 기독교는 ‘신론’에 탁월합니다.


4.생명은 심장 안에 있고 심장은 마음입니다.


소크라테스와 플라톤 어거스틴과 칼빈이 말하는 인간의 내면세계에 대해 자세히 알아보겠습니다. 21세기 첨단 과학의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가 옛날 사람들보다 똑똑한 것 같지만 알고 보면 우리는 그들에 비해 참 멍청합니다. 자본주의 세상에서 그저 ‘돈’만 알았지 훨씬 더 중요한 ‘자신’에 대해서는 정말 모릅니다. 오늘날 철학이든 신학이든 그들이 만들어 놓은 틀에서 벗어나기 힘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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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와 하나님께서 아담을 부르시며 말씀하셨습니다. “네가 어디에 있느냐?”(창3:9) 에덴동산에서 아담을 부르신 하나님께서 오늘 나도 부르십니다. “네가 어디에 있느냐?” 지금 여기에 있는 것을 뻔히 아시는 하나님께서 “네가 어디 있느냐?” 하고 부르시는 것은 “네가 무슨 생각과 무슨 가치관과 무슨 생활방식으로 어떻게 살아가느냐?” 즉, 네 마음 속을 한번 찬찬히 들여다보라는 말씀입니다.


우리 몸 안에 마음은 어디에 있는 것일까요? 심장입니다. 그래서 마음 심(心)이라고 합니다. 마음이 심장이라는 증거는 무궁무진 합니다. 심장이 멈추면 ‘죽었다’고 합니다. 사람이 죽고 살고는 ‘심장’에 달려 있습니다. 심장은 인간의 감정이 표현되는 장기입니다. 심장이 뛴다. 심장이 터질 것 같다. 심장이 얼어붙었다. 등등 어떤 사람은 뇌에서 명령하기 때문에 뇌에 마음이 있다고 생각하는데, 마음은 그릇입니다. 마음에 담긴 ‘생각’이 뇌의 작용으로 표현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뇌는 마음의 ‘종’입니다.


마음의 구조를 살펴보면 마치 ‘심장’처럼 4심방(좌심방, 우심방, 좌심실, 우심실)로 구분이 되어 있습니다. 철학 심리학 상담학도 인간의 마음을 들여다봅니다. 철학은 마음 안에 ‘이성’을 공부하는 학문이고, 심리학은 ‘마음의 지성’을 공부하는 학문이고, 상담학은 ‘마음의 교류’를 분석합니다. 그러나 아직까지 마음속에 미지의 세계로 남아있는 곳이 있으니 ‘영성의 방’입니다.


하나님은 우리 마음속에 영성의 방에 계십니다. 흔히 우리가 ‘내 영혼’이라고 하는 곳입니다. 우리 믿음의 선배들 중에 교부시대 사막교부들은 이곳을 가장 깊숙이 들어가 탐험을 했던 분들입니다. 교부들의 글을 읽어보면 정말 영성의 ‘보물창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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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심장 안에 하나님을 만나는 ‘골방’이 있습니다.


오늘 성경 본문은 ‘너는 기도할 때에,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고서, 은밀하게 계시는 네 아버지께 기도하여라.’고 했습니다. 그 골방이 어디에 있을까요? 교회에도 골방이 없고, 목사님 집에도 골방이 없고, 하나님을 만나야 되는 그 중요한 골방을 왜 교회에서 만들지 않는 것일까요?


성경은 ‘우리 몸은 하나님이 거하는 성전’이라고 합니다. 골방은 우리 몸 안에 있습니다. 심장은 마음입니다. 바로 심장 안에 골방이 있습니다.


심장은 전신을 돌아 들어온 피를 걸러서 다시 내보내는 ‘우심방’ ‘우심실’이 있고, 숨을 쉬면서 허파로 들어온 공기 중에서 산소를 뽑아 피와 합쳐서 온 몸에 공급하는 ‘좌심방’ ‘좌심실’이 있습니다. ‘우심방’은 이성의 방입니다. 우심실은 이성이 작용하게 하는 ‘욕’(欲)이 들어있는 방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성’으로 살아갑니다. 신앙생활도 대부분 이성적으로 합니다.


‘영혼’은 좌심방에 있습니다. 하나님은 영(푸뉴마, 공기)이시고 숨을 통해 ‘좌심방’에 영향을 끼칩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좌심실에 좌정하고 계십니다. 그곳이 ‘골방’입니다. 하나님을 만나려면 호흡을 통해 영혼이 깨어나고 그 영혼이 골방으로 들어가야 하나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


사람들은 나의 체면과 지위와 입장과 자존심에 민감하게 반응하지만, 하나님은 나의 외면에 별로 관심이 없으십니다. 그런 외적 행위로는 하나님을 거의 만날 수 없습니다. 안타깝게도 오늘날 대부분의 종교 활동은 이성의 영향을 받는 ‘외면 활동’에 맞추어져 있습니다. 교회도 무슨 행사를 그렇게 많이 하는지 늘 복작거리고, 예배도 끊임없이 외적인 프로그램으로 가득하여서 도무지 내면으로 들어가 조용히 하나님을 만날 기회조차 없습니다.  하나님을 조용히 만나 그분과의 인격적인 교제를 나누지 않으니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영적으로 허전’하고, 그 허전함을 여러 가지 행사나 성경공부나 그런 외적인 것으로 채우려 하는 것이 현실입니다. 오늘날 기독교는 너무 전투적이고 일방적이고 거칠고 무섭습니다. 좌심방 좌심실에 있는 내면의 기독교는 온유와 겸손, 부드러움, 친절함, 관용, 용서, 사랑 같은 것이 흘러나옵니다. ‘안으로의 여행’은 이런 기독교의 본래 모습을 되찾아가는 거룩한 여행입니다. 


6.호흡은 심장으로 들어가는 통로입니다.


저는 산에 자주 갑니다. 산을 오르면 당연히 힘들어서 숨이 거칠어지고 심장이 요동치면서 큰 숨을 쉬게 됩니다. 처음에는 내 폐 안에 있는 오염된 불순물들이 마구 빠져나가는 느낌이 듭니다. 그 다음에는 신선한 산소가 폐 속에 들어와 몸이 평온해짐을 느낍니다. 체육관이나 평지에서는 마실 수 없고 일정한 높이의 산에 올라가야만 호흡할 수 있는 공기층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내 안에 영으로 들어오실 때는 산소처럼 들어오십니다. 신선한 야생화의 향기나 높은 산의 공기처럼 하나님은 그렇게 생명의 호흡으로 임하십니다. 숨을 들이쉴 때(들숨) 마치 하나님을 들이마시는 것처럼 천천히 호흡을 해 보세요. 향기롭고, 달콤하고, 은은하고, 기분 좋은 향기와 산소를 들이마시듯 하나님을 호흡으로 마셔보세요.


기도의 방법은 아주 간단합니다. 혼자서 고요히 숨을 들이마시면서 ‘주 예수 그리스도시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고 계속 반복하는 것입니다. 숨을 들이마시면서 ‘주 예수 그리스도시여’ 하고 숨을 내쉬면서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기도 합니다. 조용히 입을 벌려서 작은 소리로 이 말을 하기도 하고 아니면 그저 속으로 이 단어들을 생각하면서 드리기도 하지요.


또한 심장의 고동에 초점을 맞추어서 이 기도를 드리기도 합니다. 처음 심장이 뛸 때 “주” 라고 말하고 두 번째 고동에 맞추어서는 “예수”, 세 번째 고동에는 “그리스도시여” 네 번째 고동에는 “나를”. 그리고 다섯 번째 고동에서는 “불쌍히 여기소서” 라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숨을 들이마실 때 하나님을 들이마신다 생각하면서 호흡을 조절세요. 그리고 그 분이 내 속에 들어와 계심을 가만히 느껴보세요. 숨을 내쉴 때(날숨)에도 그분을 내쉰다 생각하며 숨을 내쉬어 보세요. 이런 산소 같은 사랑을 ‘아가의 사랑’이라고 합니다. 하나님이 알아지고, 느껴지고, 참여되고, 체험되는 사랑의 실재입니다. 호흡으로 하나님을 마시는 기도는 오랜 세월동안 수도원에서 전통적으로 행해지면서 전해져 내려오는 기도의 한 방법입니다.


7.호흡으로 영혼이 깨어납니다.


우리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우리 안에는 영혼이 있고 마음을 담고있는 혼이 있습니다. 어쨌든 눈에 보이지 않는 전파가 있는 것처럼, 우리 안에는 눈에 보이지 않는 어떤 존재가 분명히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내 안에는 선을 행하려는 마음과, 악을 행하려는 두 마음이 있다.”고 했습니다. 양심이란 두 가지 마음이라는 뜻인데, 나의 의지로 통제가 되는 ‘혼’ 과, 나의 의지로 통제가 안 되는 ‘영혼’이 있어 이것을 두 마음, 즉 양심이라고 합니다.


내 안에서 나를 하나님께로 이끄는 역할은 ‘영혼’이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의지를 사용하여 영혼에게 말합니다. “찬양하라 내 영혼아 찬양하라 내 영혼아 온맘과 정성을 다하여 주님을 찬양하라...”


찬송가 621장은 많은 교회에서 예배를 시작하는 입례송으로 사용합니다. 그런데 새로 바뀐 찬송가에서 엄청난 실수를 저질렀습니다. 가사 중에 ‘내 속에 있는 것들아’를 빼버린 것입니다. 내 속에 있는 것들인 영혼이 주님을 찬양하면서 주 앞에 나아가는 것이 예배인데, 찬양하는 주체인 ‘내 속에 있는 것들’이라는 주어를 빼버림으로 도대체 누가 누구에게 ‘찬양하라’고 하는지 모르게 되어버린 것입니다.


원래 -내 속에 있는 것들아 -나를 하나님께로 이끄는 영혼과 성령님
바뀜 -온 맘과 정성을 다하여 -나의 의지와 노력을 다하여


하나님께 예배하러 나아가는 자는 ‘신령과 진정으로’(내 속에 있는 영으로) 하나님께 나아가는 것이지 ‘온 맘과 정성으로’(인간의 육체적 행위)로 나아가는 것이 아닙니다. 더 큰 문제는 찬송가 621장 가사는 성경 시편103:1절을 그대로 가져온 것인데, 가사를 바꿔 버림으로 성경이 변해버린 것입니다. 오! 세상에 성경을 변개시키다니... 찬송가 가사 수정을 대학생 아르바이트생에게 시켰다는 말이 있는데, 루머가 아닌 사실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불현 듯 듭니다.
영혼이 깨어나는 것은 관념이나 이론이 아니고 실제입니다. 영혼이 깨어나면 세상이 다르게 보입니다. 거짓말을 할 수 없게 됩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체험하게 됩니다.


8.성령님께서 문을 여십니다.


개혁교회의 개신교 수도원인 남자갈멜수도원의 창건자인 십자가의 요한은 의심심장한 시 한편을 남겼습니다. 수도원 설립에 많은 물질을 댄 영주의 딸이 관심을 갖자 그녀를 위해 시를 해석해 주었습니다. 그것은 심장 안에 있는 ‘골방’까지 가서 하나님을 만나는 여정을 은유적으로 쓴 시였습니다. 그 글이 ‘어두운밤’이라는 책으로 만들어져 지금까지 전해져 내려오고 있습니다.


어느 어두운 밤에, 초조함과 불타오르는 사랑에서,
오! 복된 행운이여! 들키지 않고 나왔네.
이미 고요해진 내 집에 있으면서
   -십자가의 요한
부부라도 깊은 사랑을 나누기 위해서는 누구에게도 간섭을 받지 않는 장소와 시간과 분위기가 필요합니다. 하나님과의 깊은 사랑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과 깊은 사랑을 훼방하는 것이 세 가지 있으니 ‘세상’과 ‘마귀’와 ‘육신’입니다.
어느 어두운 밤에 -깊은 사랑을 나눌 가장 좋은 시간은 모두가 잠든 '깊은밤'입니다. 세상의 방해를 받지 않는 세상과 끊어진 시간입니다.


초조함과 불타오르는 사랑에서 - 오 하나님과 빨리 하나가 되기를 갈망하는 초조함. 하나님과의 사랑의 순간은 가장 달콤한 포도주 보다 더 달콤하고, 꿀단지의 꿀보다도 더 달고, 가장 어둡고 추운 새벽 2시에 따서 만든다는 발칸 산맥의 장미 향수보다도 더 향기롭습니다.


오! 복된 행운이여! 들키지 않고 나왔네. - 내 마음속엔 오만가지 잡생각이 다 들어있네. 조용히 조용히 그 생각들을 바닥으로 서서히 가라앉히고(감각의 정화) 고요해진 내 마음에서 내 영혼이 살며시 일어나 내 님이 계신 곳으로 들키지 않고 나왔구나! 오 복된 행운이여.


이미 고요해진 내 집에 있으면서 - 이제는 내 영혼이 하나님과 일치가 되는 시간. 세상의 그 어떤 언어로도 표현할 수 없는 시간. 누구든 한번이라도 경험을 하면 평생 그 순간을 잊지 못하고 그 시간을 사모하게 되는 절정의 시간. 하나님과의 감미로운 사랑의 밀어를 나누는 그 시간. 생명이 잉태되는 깊은 시간.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단순히 입술의 고백이 아니라 그러한 깊은 단계까지 나아가는 것을 목표로 삼는 것입니다.


9.하나님께서 임재하십니다.


골방에 들어가 하나님을 만나는 과정을 비유로 들자면 마치 한양(서울)에 가서 4대문(동대문, 서대문, 남대문, 북대문) 안으로 들어가 -광화문을 으로 들어가 -홍례문으로 들어가 -근정문으로 들어가 -근정전으로 들어가 -교태전(왕의 침실)까지 도착하는 과정과 같습니다.


하나님을 만나는 데 가장 큰 방해꺼리는 그 누구나 무엇도 아닌 바로 나 자신입니다. 내 의식 안에 있는 무수히 많은 생각들을 어떻게 정리 하느냐? 그것을 ‘정화(淨化)라고 합니다. 생각의 뒤편에 하나님이 계십니다. 내 생각이 가득 차 있어서 하나님이 안 보이는 것입니다. 마치 유리 뒷면에 알루미늄이나 은을 화학처리하여 얇게 펴서 붙이면 내 얼굴은 잘 보이는데 뒤쪽은 안 보이는 거울이 것과 같습니다. 하나님을 만나는 과정을 크게 3단계로 ①정화 -②조명 -③일치로 나눌 수 있습니다. 이것은 교회 안에 오랫동안 전해져 내려오는 전통입니다.


①정화 -는 조용히 침묵하면서 내 안의 생각을 가라앉히는 과정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끌리면서도 세속의 유혹과 죄의 습성, 윤리적 약점이나 단순한 무지로 하나님의 사랑을 찾는 길에서 어떤 때는 뜨거워지고 어떤 때는 차가워집니다. 우리의 기도는 겨우 무엇을 해 달라고 청하는 가장 낮은 단계에 머물러 있습니다. 걸을 수 있게 되기 전에 먼저 기는 법부터 배워야 합니다. 정화의 과정도 여러 가지로 나눌 수 있습니다.


②조명 -은 하나님께서 나의 모습을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신다는 것을 깨닫고 우리 쪽에서 하나님을 사랑하는 길을 열심히 찾습니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에 하나님께서 나를 쑥 끌어올려주시는 것을 경험하게 되는데 그것이 조명입니다. 나중에 달릴 수 있으려면 먼저 걷기부터 해야 한다.


③일치 -란 하나님과 내가 하나가 되는 우리 신앙의 종착역입니다. 사도바울은 ‘내가 하나님 안에 하나님이 내 안에’라고 표현했습니다. 일치는 오직 ‘하나님의 사랑하는 연인들’만을 위한 단계입니다. 일치는 나의 노력으로는 불가능한 단계입니다. 하나님의 일방적이고 특별하신 은총으로만 가능합니다. 잘 걷는 사람이 신기록을 내기 위해 힘껏 달리는 과정입니다.


10.임재의 증거는 ‘기쁨’으로 나타납니다.


인간의 존재 목적은 하나님과 교제하고 알아 가는 것이며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것입니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깊어지면 하나님과 내가 혼연일치(渾然一致)가 됩니다. 부부처럼 남들이 모르는 깊은 것까지 서로 아는 관계가 됩니다. 부부는 육체로 하나가 되지만 하나님과는 영으로 하나가 됩니다.


하나님의 임재가 충만하여 하나님과 일치가 되려면 나의 영이 깨어나야 하고 영이 자라나야 합니다. 영이 어리면 ‘자기의 방식으로 자기의 욕망을 따라 자기의 소원을 이루며’ 살 뿐입니다. 그러나 영이 성숙하면 하나님의 뜻을 알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드리는 삶을 살게 되며, 진정한 임재의 기쁨이 넘치게 됩니다.


많은 사람들이 신앙생활을 하지만 대부분 겉껍질이 단단하여 깨지지 않은 상태에 있어 진정한 신앙생활의 깊은 맛을 모르고 있습니다. 웟치만 니 는 이를 가리켜 ‘자아의 파쇄’라는 책에서 단단한 자아의 겉껍질이 깨어져야 비로소 하나님을 만나러 나아간다고 했습니다. 내면으로 들어가야 비로소 하나님을 만나는 체험이 시작됩니다.


자아가 파쇄 되어 하나님을 만나는 체험에는 세 단계를 거칩니다. ‘권능을 경험하는 단계’ ‘기쁨을 경험하는 단계’ ‘거룩을 경험하는 단계’입니다. 이것을 애굽의 경험, 광야의 경험, 가나안의 경험이라고 부를 수도 있고 바깥뜰의 경험, 성소의 경험, 지성소의 경험이라고 부를 수도 있습니다. ⓒ최용우


설교 후기 -------
<안으로의 여행>책을 쓰려고 준비 중인 내용 중 일부를 설교 하였다.
원래는 1회분으로 준비한 설교인데 굉장히 생소한 개념이라서 자세히 풀어 설교하느라 3회로 나누어 설교를 했다. 더 자세히 풀면 10회로도 부족하지만 그냥 나중에 책으로 내기로 하고 수박 겉핥기식으로 한번 쓱 지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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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일말씀 [안으로의 여행1-3] 안으로의 여행 (a trip in) file 마6:5-6  주님의교회  2015-12-27 751
610 주일말씀 오늘의 십계명 출20:1-17  들꽃편지560호  2015-08-14 2180
609 1189장별 죽으면 죽으리이다 [1] 에4장  장별묵상430  2014-12-08 851
608 1189장별 하만과 모르드개 [1] 에3장  장별묵상429  2014-12-04 1001
607 1189장별 왕후가 된 에스더 [1] 에2장  장별묵상428  2014-11-21 1600
606 1189장별 흥청망청 잔치판 [1] 에1장  장별묵상427  2014-11-17 905
605 1189장별 다시 또다시 [1] 느13장  장별묵상426  2014-11-11 480
604 1189장별 성벽 봉헌식 [1] 느12장  장별묵상425  2014-11-04 538
603 1189장별 예루살렘 구하기 [1] 느11장  장별묵상424  2014-10-28 928
602 1189장별 도장 찍은 사람들 [1] 느10장  장별묵상423  2014-10-20 756
601 1189장별 신앙 실천 운동 [1] 느9장  장별묵상422  2014-10-13 589
600 1189장별 신앙개혁 운동 [1] 느8장  장별묵상421  2014-10-07 585
599 1189장별 성벽 재건 후에 [1] 느7장  장별묵상420  2014-09-29 1032
598 1189장별 그럼에도 불구하고 [1] 느6장  장별묵상419  2014-09-24 908
597 1189장별 내부적 장애물 [1] 느5장  장별묵상418  2014-09-16 535
596 1189장별 외부적 장애물 [1] 느4장  장별묵상417  2014-09-08 503
595 1189장별 총력 성벽 재건 [1] 느3장  장별묵상416  2014-09-01 660
594 1189장별 일주명창(一炷明窓) [1] 느2장  장별묵상415  2014-08-25 926
593 1189장별 느헤미야의 기도 느1장  장별묵상414  2014-08-18 540
592 1189장별 대각성 회개집회 스10장  장별묵상413  2014-08-09 1577
591 1189장별 신성모독(神性冒瀆) 스9장  장별묵상412  2014-08-04 1443
590 1189장별 동행(同行) 스8장  장별묵상411  2014-07-30 643
589 1189장별 에스라의 등장 스7장  장별묵상410  2014-07-19 919
588 1189장별 혹 붙였다 스6장  장별묵상409  2014-07-14 970
587 1189장별 정신을 차리고 스5장  장별묵상408  2014-07-07 1379
586 1189장별 방해공작 스4장  장별묵상407  2014-06-27 1232
585 1189장별 예배 시작 스3장  장별묵상406  2014-06-23 1616
584 1189장별 돌아온 사람들 스2장  장별묵상405  2014-06-16 974
583 1189장별 마음의 감동 스1장  장별묵상404  2014-06-09 1379
582 1189장별 유다의 멸망 대하36장  장별묵상403  2014-06-01 1213
581 1189장별 요시아의 개혁 대하35장  장별묵상402  2014-05-25 1393
580 1189장별 찾아간 사람 대하34장  장별묵상401  2014-05-18 1198
579 1189장별 자녀교육 성공비결 대하33장  장별묵상400  2014-05-12 1358
578 1189장별 시대의 인물 대하32장  장별묵상399  2014-05-04 12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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