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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마26:6-1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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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김경형 목사 |
참고 : | 궁극교회 주일예배 |
26장 6절~13절: 예수께서 베다니 문둥이 시몬의 집에 계실 때에 한 여자가 매우 귀한 향유 한 옥합을 가지고 나아와서 식사하시는 예수의 머리에 부으니 제자들이 보고 분하여 가로되 무슨 의사로 이것을 허비하느뇨 이것을 많은 값에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줄 수 있었겠도다 하거늘 예수께서 아시고 저희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어찌하여 이 여자를 괴롭게 하느냐 저가 내게 좋은 일을 하였느니라 가난한 자들은 항상 너희와 함께 있거니와 나는 항상 함께 있지 아니하리라 이 여자가 내 몸에 이 향유를 부은 것은 내 장사를 위하여 함이니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온 천하에 어디서든지 이 복음이 전파되는 곳에는 이 여자의 행한 일도 말하여 저를 기념하리라 하시니라
종교지도자들이 예수님을 죽일 묘책을 찾고 있는 동안에 예수님은 베다니 문둥이 시몬의 집으로 들어가신 것입니다. 모든 사람이 다 싫어하는 문둥이 집으로 들어가신 것입니다. 그도 하나님의 백성이요, 예수님의 일은 죄에서 구원이니 그의 집에 그 일을 하러 들어가신 것입니다.
한 여자가 매우 귀한 향유 한 옥합을 가지고 나와서 식사를 하시는 예수님의 머리에 부어드린 것입니다. 향유냄새는 온 방안을 진동을 하고 문틈으로 새어나와 그 여자의 신앙이 향기로운 향유로 우리의 마음에까지 전달이 됩니다.
그 여자가 값비싼 향을 만들기 위해 얼마나 시간과 노력을 많이 들였을까요? 여자의 전 재산이기도 할 터인데 예수님의 머리에 아낌없이 부을 수 있다는 것은 주님으로부터 대단히 큰 은혜를 받았음이 틀림이 없습니다. 그러나 이 여자는 예수님께서 마지막 길인 줄 모릅니다. 하지만 여자는 성령의 감동에 의해 지금 이 일을 한 것입니다. 예수님의 고난과 부활 승천이 다 지나갔을 때 여자는 자기가 한 일에 대해 ‘만일 좀 더 있다가 하자 했더라면 그냥 놓쳐 버릴 뻔 했을 텐데’ 하며 주님께 향유를 부은 일에 스스로 잘 했다고 아멘이 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여자의 감사의 선행을 받아 주실 때 여자는 얼마나 기뻤을까?
무엇이든지 진리가 있을 때 천국복음을 위해서 하자! 부모가 살아 계실 때 주안에서 부모를 섬기자! 복음을 위해서, 자타의 구원을 위해서!
그러나 제자들은 분을 낸 것입니다.
‘무슨 의사로 이것을 허비하느뇨 많은 값에 팔아서 가난한 자들에게 구제를 했더라면 좋았을 것을 머리에 쏟아 붓다니’
세상 이방인의 눈으로 보면 일반적으로 타당한 말입니다. 주님의 은혜를 받지 못한 자들의 입장에서는 그런 말이 나올 만합니다. 하지만 큰 은혜를 받은 여자의 입장에서는 그것이 아닙니다. 여자가 일반적인 경우도 모르는 정신없는 여자는 아닙니다. 예수님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께서 말씀하시기를 여자를 괴롭게 말라 물질을 구하는 가난한 자들은 항상 너희와 함께 있지만 나는 항상 너희와 함께 있지 아니하다 이 여자가 향유를 부은 것은 나의 장례준비를 위해서 한 것이다 온 천하에 어디서든지 복음이 전파되는 곳마다 이 여자의 행한 일도 말하여 기념하리라’
‘물질구제하는 것이 예수 믿는 목적이라면 항상 너희들은 그 일을 면치 못할 것이다, 왜냐하면 사람들에게 거지근성만 만들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라는 말씀입니다. 돈구걸하는 가룟유다가 항상 있을 것이라는 말입니다.
신앙인의 장례준비는 살아있을 때 하는 것입니다. 진리의 사람이 되도록 진리에다 쓰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9장 40절에 보면 부자 니고데모는 몰약과 침향 섞은 것을 100근쯤 가지고 와서 예수님의 시체에 부었습니다. 이왕이면 주님이 살아 계실 때 쓰여졌으면 얼마나 좋을까? 남의 눈치를 봐 가면서 하느라고 했지만 이 여자보다 못한 느낌이 듭니다. 니고데모가 주님을 찾아오는 것도 낮에는 자기 볼일 다 보고 밤에 찾아오더니만 씁쓸한 느낌이 듭니다. 참으로 복음이 전파되는 곳에 여자의 신행도 영원히 기념될 신앙입니다. 마지막 만찬의 밤도 그렇습니다. 우리는 영원히 기념될 아름다운 진리로 된 신행이 있어야 합니다.
26장 14절~16절: 그 때에 열 둘 중에 하나인 가룟유다라 하는 자가 대제사장들에게 가서 말하되 내가 예수를 너희에게 넘겨주리니 얼마나 주려느냐 하니 그들이 은 삼십을 달아 주거늘 저가 그 때부터 예수를 넘겨 줄 기회를 찾더라
가룟유다가 예수를 팝니다. 영원히 기념될 여자의 신행과는 반대로 언제 슬며시 빠져 나왔는지 대제사장에게 번개처럼 달려가서 ‘내가 예수를 넘겨 줄 터이니 얼마나 값을 쳐주겠느냐?’ 은 30을 달아주니 가룟유다는 ‘싸다, 비싸다’ 시비도 없이 서슴없이 은 30을 덜렁 받은 것입니다. 은 30은 노예 한 사람의 몸값이랍니다. 가룟유다나 대제사장들이나 그들에게는 예수님이 그 가치밖에 안 되었던 모양입니다.
오늘날 사람을 팔아먹는다고 하면 죄로 여기지만 목숨보다 귀중한 진리를 세상 것과 바꾸면 죄로 여깁니까? 당시의 종교계는 제도와 조직과 전통과 의식으로 이루어진 세계입니다. 이들에게 예수를 팔아먹은 신앙자가 있듯이 오늘날도 마찬가지로 가룟유다와 같은 정신사상을 가진 자가 기독교 안에, 종들의 세계에 한 두 명이 아닐 것입니다.
가룟유다는 12제자 중의 하나요, 12사도 중에 하나요, 이스라엘 중에서 선택된 사도로서 앞으로 영원히 궁극적 구원을, 천국복음을 전할 사명자의 한 사람입니다. 가룟유다 입장에서 보면 예수님께서 죄인 자기 하나를 구하시려고 천국의 영광의 보좌를 버리시고 이 땅으로 자기를 찾아오셔서 자기를 제자로 삼아주시고, 또 사도로 만들어서 마지막 날에는 천국의 12보좌에 앉는 영원히 해와 같이 빛나는 천국의 영광자로 만들어 주시려고 3년 동안을 밤낮을 가리지 않고 이곳 저곳을 데리고 다니면서 가르쳐 놓았더니 자기 스승을, 자기 구원을, 자기 양심을, 자기 하나님을, 자기의 영원한 영광을, 하나밖에 없는 진리를 돈 몇 푼에 팔아먹다니 앙화도 이런 앙화가 또 있을까요?
사람이 안 되면 가치 판단 평가성을 모르기 때문에 앙화를 불러들이는 것입니다. 예수, 진리보다 전통으로, 단체 큰 것으로, 숫자 큰 것으로, 간판 큰 것으로, 물질 많은 곳으로 가는 자는 필연적으로 제 2의 가룟유다가 안 된다는 보장은 없습니다.
어떤 제자는 순종하여 주님과 함께 유월절 잡수실 곳을 찾고, 어떤 제자는 진리 되신 자기의 스승을 죽이려고 넘겨 줄 기회를 찾아다니고! 다 같은 예수님의 이름난 제자들인데 가는 길이 정반대입니다. 너무나도 대조적입니다. 마지막도 같을 리는 없겠지요?
26장 17절~19절: 무교절의 첫 날에 제자들이 예수께 나아와서 가로되 유월절 잡수실 것을 우리가 어디서 예비하기를 원하시나이까 가라사대 성 안 아무에게 가서 이르되 선생님 말씀이 내 때가 가까왔으니 내 제자들과 함께 유월절을 네 집에서 지키겠다 하시더라 하라 하신대 제자들이 예수의 시키신 대로 하여 유월절을 예비하였더라
‘성 안 아무에게 가서’
성 안 아무개가 누군지 알고 찾아갈 것인가? 도무지 말도 안 되는 말이지만 주님의 제자는 순종하여 나가기만 하면 아무개가 만나지도록 되어 있는 것입니다. 순종만 하면 아무개를 만날 수 있도록 주님이 빈틈없이 일을 하시는 것입니다.
만났을 때의 장면을 예를 들어 말한다면 성안에 들어가서 제자는 제자대로, 아무개는 아무개대로 서로가 찾느라고 온 동네를 돌아다니다가 한참 후에 그들이 또 만났을 때 ‘당신이 성 안 아무개요?’ ‘예, 그렇습니다’ ‘에이, 몇 바퀴나 돌아서 이제야 찾았네!’ ‘아이구, 다리 아파 죽겠네!’ 하며 만나는 것이 아니라 이쪽이나 저쪽이나 둘 다 정면으로 들어가고 정면으로 나오다가 첫 눈에 ‘실례지만 당신이 성 안 아무개요?’ ‘예, 그렇습니다’ ‘어서 주님 모시고 오십시오,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1년 동안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하는 이 사람이 성 안 아무개야! 그런데 지금은 주님께서 유월절 마지막 만찬을 잡수실 집이나 사람을 찾기란 참 어렵습니다. 성 안 아무개를 찾기란 참 어렵습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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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도가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신앙생활을 하려면 인격자이신 하나님의 가장 깊은 심원인 하나님의 의지세계에서부터 당신의 애성에서 발로된 인간창조의 원인과 동기와 목적을 따라 신앙을 해야만 됩니다. 이래야 기독교 본질에서 이탈하지 않고 가장 효율적 적중적으로 하나님의 온전한 성품을 덧입을 수 있고, 성도 각자가 이 땅에서 이렇게 덧입은 하나님의 성품의 양에 따라 장차 천국에서의 누림에 차등이 생기게 됨을 성경을 통해 알 수가 있습니다.
김경형목사님께서 교역자 및 신학생을 대상으로 20여년 동안 매 주 정례적으로 진행하는 신학 및 성경연구 모임을 통해 하나님의 의지세계에서 예수 그리스도로 통한 인간구원을 설정하게 된 원인과 동기와 목적을 깨닫고 하나님의 본질의 신앙으로 나가는 주의 종들이 누룩처럼 퍼져나가고 있습니다.
참석하실 분은 031-207-5159, 또는 010-8886-5159로 문의해 주세요.(평신도도 참석 가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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