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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마태복음 궁극이............... 조회 수 554 추천 수 0 2018.06.17 14:00:01
.........
성경본문 : 마26:39-46 
설교자 : 김경형 목사 
참고 : 궁극교회 주일예배 

2639: 내 아버지여 할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여기서 우리가 생각할 점이 있습니다. 아버지의 소원이 따로 있고, 아들의 소원이 따로 있느냐?

 

아버지의 소원이 무엇이냐? 아버지의 소원은 영원 전서부터 설정된 그리스도께서 성육신 되어 예수로 오셔서 택자들을 위해서 십자가에 죽는 것.

 

그러면 예수님의 소원은 무엇이냐? 역시 영원 전서부터 설정된 성육신 예수로 오셔서 택자들을 위해서 십자가에 죽는 것입니다. 억지가 아니고, 할 수 없이가 아니고, 강권에 못 이겨서가 아니고 지극한 사랑에 의해서 오셔서 죽는 것입니다.

 

원래는 예수 그리스도가 오지 않는 것인데 인간이 선악과를 따먹고 죽었기 때문에 택자들을 위해서 할 수 없이 온 것인가? 이렇게 되면 하나님은 무능자가 되는 격이고, 택자의 구원은 뒤죽박죽이 됩니다. 이런 신앙사상을 가지면 인간 자기의 신앙사상 면도 구원에 대하여 뒤죽박죽입니다.

 

아버지의 소원과 아들의 소원도 성령의 소원도 모두 다 똑 같습니다. 그런데 왜 다른 것처럼 들리게 말씀을 했을까?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무엇을 놓고 말하느냐 하면 을 놓고 말함입니다. 잔은 곧 십자가를 말하는 것입니다.

 

할만하시거든

 

하나님 아버지께서 못 할 것이 뭐가 있느냐? 아무 것도 없습니다. 창조의 주시요, 만능의 능력자시요, 무에서 유를 창조하신 분이십니다. 예수님 당신도 바로 그런 분이십니다. 영원 전서부터 설정된 십자가 사건이 들어 있고, 그리고 미리부터 외친 선지자들의 예언이 있고, 그리고 십자가 사건이 될 수 있겠금 모든 존재와 시간과 환경이 다 동원이 되겠금 4천년 동안이나 진행이 되어 온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 못박히려고 하는 장면을 다 해체시켜 버릴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또 아닌 말로 구경꾼을 붙잡아 너 왜 십자가 앞에서 얼쩡거려, 네가 십자가에 죽어봐라하고 예수님 대신 못박혀 죽게 할 수도 있습니다. 천사들을 불러서 대제사장이나 로마군인들을 한꺼번에 못박아 버릴 수도 있으십니다. 무슨 능력인들 없겠느냐? 그러나 그렇게 되면 택자들의 구원이 안 됩니다.

십자가로 이 십자가에 달려 죽는 사건은 필연적입니다. 그런데 이 십자가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죽는 것은 필연적인데 무슨 마음으로 죽느냐 하는 이것이 문제입니다.

 

하면 빈 잔을 들고 마시는 사람은 없습니다. ‘하면 유리잔, 놋대접, 사기대접, 큰 잔, 작은 잔, 모양도 질도 다양합니다. 그런데 그 잔 속에 무엇이 들어 있느냐 하는 이것이 문제입니다. 잔 속에 든 것이 소주냐, 맥주냐, 탁주냐, 청주냐, 감주냐? 그 잔 속에 청산가리나 수면제가 들어있는 잔이냐?

 

마귀에게 허용된 십자가의 방편 속에 사단 마귀의 무슨 함정이 들어 있느냐? 보통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죽는 것을 제사장의 재판 하에 로마군인들이 십자가에 못을 박아 죽이는 그것만 알지 그 속에 사단 마귀의 예수를 넘어지게 하려는 고차원적인 꾀가 들어 있는 것은 모르고들 있습니다.

 

이것을 이기려면 어떤 마음과 생각을 가지고 죽어야 택자들의 구원이 되느냐?

예수 말고는 죽을 사람도 없고,

예수 말고는 죽어 줄 사람도 없고,

예수 말고는 죽을 자격도 없고,

죽는 것을 누구에게 미룰 수도 없고,

죽는 것을 다음 날로 미룰 수도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 아버지도 도와주지 않습니다. 안 아프도록 도와주면 누군들 못 하겠느냐?

 

잔 속의 내용물이 중요하듯이 십자가 사건 속에 어떤 내용물이 눈에 안 보이게 들어 있느냐? 기독자로서 이것을 모르면 이단소리 하게 됩니다.

 

예수님께서 죽으시는 십자가 사건 속에는 영원 전 그리스도 안에서 예정된 택자의 구원이 들어 있는데

 

첫째는 선악과를 따먹은 아담 하와가 대표로 된 곧, 우리의 죄와 허물로 죽은 우리의 죄를 사하고 죽은 영을 살리는 것.

 

두 번째는 살리되 죄 짓기 이전 생태의 영이 아닌 하나님의 본질과 본성의 상태로 단일성으로 중생시킴입니다.

 

이 중생된 영은 사단 마귀가 만질 수도 없고, 죽이지도 못하고, 중생된 영은 죄를 짓지도 못합니다. 지옥도 못 갑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이 입혀졌기 때문에 죄를 짓는 것은 중생된 영이 아닌 이성이 세상성을 붙잡고 살 때에 이성과 몸이 죄를 짓게 됩니다. 그렇게 되면 지옥은 못 가고 지옥 같은 징계를 받게 됩니다.

 

세 번째는 죄인으로서 죄에 속하여 하나님과 원수 되었던 우리를 십자가의 중보사역으로 우리를 하나님과 화목을 이루는 사건입니다.

 

네 번째는 우리가 하나님의 성품의 온전, 인격의 온전을 향해 갈 수 있는 교훈적인 길을 열어주고.

 

다섯 번째는 이 십자가 사역의 효력성을 영원세계 천국에까지 가게 하는 것입니다.

이 어마어마한 목적들이 들어 있는 사건입니다.

 

그런데 십자가를 지되 문제는 정신 마음입니다.

예수님의 전 인격, 예수님의 정신 마음 사상, 예수님의 전 신경집중이, 초점이 어디로 가서 있느냐?

어떤 상태에서 끊어지지 않아야 되느냐?

이것이 제일 큰 문제입니다.

 

예수님의 한 손은 하나님 아버지의 손을, 또 한 손은 우리의 손을 붙잡으시고 하나님 아버지의 손과 우리의 손을 직접 붙잡게 만드시는 중보의 순간인데 이 중보의 사역이 안 되게 하나님으로부터 허용된 사단 마귀의 역사가 십자가라는 표면적인 방편을 가지고 별의 별 수단으로 최대의 발악을 하는 것입니다. 말하자면 우리를 사랑하시는 그 극치의 마음을 순간적으로 끊으려고, 딴 곳으로 마음을 뺏으려고 여러 가지 최고의 자극들을 줄 것입니다.

 

만약의 경우 그 마음이 순간적으로 끊어지는 경우는 영원 전 그리스도 안에서부터 흘러나오는 우리의 구원은 영원히 없어지고 맙니다. 인간창조의 원인도 동기도 목적도 없어지고, 천국의 상속도 없는 것이고, 지구존재 자체도, 천국이 있다는 자체도, 하나님이 계시다고 하는 것 자체도 아무런 의미가 없어지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도록 하려고 예수님의 마음과 정신을 뺏어가기 위해 양쪽의 강도들을 먼저 못을 박는데 예수님이 누운 바로 옆에다 붙여놓고 못을 박습니다. ‘아이고 아파라, 나 죽네고함을 지르면서 너 이놈들, 천하의 무법자 바라바의 살인강도를 몰라보다니! 내가 살아나기만 해 봐라, 너 이놈들 내가 단칼에 다 죽여버릴 것이다!’ 예수님의 귓전에서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면 예수님의 마음이 어찌 되겠느냐? 그 소리가 귀로 들어올 때에 예수님의 전 인격 신경이 우리를 사랑하는 극치의 사랑에서 순간적으로 안 끊어질까?

 

또 한 쪽 강도가 못을 박히는데 이제는 반대로 흐느끼면서 자기 집 어린아이의 이름을 부르면서 엄마 없이 큰 아이야, 너 혼자 이 험한 세상에 어찌 살래. 아빠는 죄를 지었기 때문에 죽는다하면서 흐느껴 울면 예수님의 마음도 그만 거기에 동화되어 가지고 눈물을 흘리면서 훌쩍훌쩍 하지 않겠느냐?

 

우리의 마음도 그런 것이 있지? 전철 안에서 소경된 어른이 피리를 불고 갈 때는 마음에 동화되는 것이 별로 없는데 조그만 어린아이가 맨발벗고 껌 몇 개 손에 쥐고 발발 떨면서 저는 엄마 아빠도 없어요. 집에는 할머니가 병들어 누워 계시고 동생은 돌아가신 엄마 찾다가 잠이 들었어요!’ 슬픈 목소리로 이렇게 나오면 그만 마음이 동화되어 버립니다. 어떻게 마음이 동화가 잘 되는지!

 

그런 것만이 아닙니다. 한참 기도하다 보면 뒤에서 누가 나보다 더 큰소리로 기로를 하면 그만 내 기도소리는 어느 새 멈추어지고 그만 그 사람의 기도를 듣게 되네. 귓구멍이 뚫렸으니 안 들을 수도 없고, 그 사람보고 기도소리 낮추라고 할 수도 없고. 그러다 보니 그 사람의 기도에 나까지 얼렁뚱땅 아멘!’ 하게 돼.

 

어떤 때는 내 자신이 우스워서 이래서는 안 되겠다하고 그 남의 기도소리 안 들으려고 나도 큰소리로 하네. 그러면 그 사람도 더 큰소리로 기도를 하고. 그렇게 하다 보니 무슨 기도 경쟁하는 것 같아서 내 자신이 우습고, 어떤 때는 통성기도 때 기도가 멋들어지게 술술 나오면 괜찮은데 기도가 나오다가 콱 막히네. 저쪽에서는 술술 잘도 나오는데. 그러다 보니 그만 저 사람이 나보다 기도를 더 잘 하니까 그 사람 기도소리 들으면서 언제 아멘이 나오나 하고 기다려지고. 이러다 보니 내가 지금 무슨 꼴이람, 나처럼 웃기는 놈도 있을까? 이래서 통성기도 합시다하면 속으로 조금 하다가 안 해 버려. 통성기도도 오래 하니까 점점 불이 더 붙을 줄 알았는데 할 말이 없는지 조금 가다가 다 조용해지네. 아직도 난 통성기도의 장단점이 뭔지 연구 중입니다.

 

어느 교회에 가서 보니 신비주의 교회야. ‘통성기도 합시다하니까 마루로 된 예배당인데 통성기도를 하는데 속된 말로 어떻게 발광을 하는지 옆 사람이고 앞 사람이고 생각이 없어. 기도를 하면서 팔을 휘젓고 발버둥을 치고 하는데 가만 보니 자기 주위의 사람이 막 얻어맞아. 나랑 몇 사람이 갔는데 다 몇 대씩 발길로 차이고 얻어맞았어. 지금쯤 그 사람들 다 정신병원에 안 갔는지 모르겠어. 정신병원에 안 가려면 마음 빼앗기지 말아야 돼.

 

또 개인적으로 조용하게 기도하다 보면 중얼중얼 하면서 어느새 마음은 은행 문 앞에 가서 은행 문을 두드리고 있어.

 

예수님의 마음을 뺏으려고 예수를 못박기 위해 못소리를 쨍그랑 쨍그랑내면서 이 못은 오른손에 박고, 이 못은 왼손에 박자. , 못 하나가 없네. , 빌라도 졸병 빌도라야, 발에 박을 못 하나 더 가져와라하는 그 소리를 듣는 예수님의 마음은 어떨까? ‘저 놈들이 죽이려면 빨리 빨리 죽이지 왜 사람의 마음을 녹이고 있나그럴까, 딴 생각을 하고 있을까?

 

못을 박을 때도 세 군데를 한꺼번에 셋이서 박는 것이 아니고 오른쪽에 박고 나서 왼쪽에 박고, 다음엔 발쪽을 박을 때 우지직하며 큰못이 살 속으로 뚫으며 신경전달로 들어오는 그 아픔! 그럴 때 예수님의 전 인격, 전 신경, 그 마음 초점이 어디 가서 움직였겠느냐?

 

예를 들면 마당에서 놀던 어린아이가 마당 한쪽 구석에 있는 턱이 없는 우물로 기어가서 빠지려는 순간이고 마당에는 아이들이 놀다가 남겨놓은 유리조각이 있고 할 때 엄마가 방안에서 바느질하다가 우물가로 기어가는 아이를 보고 후다닥 뛰쳐나오면서 유리조각을 밟았다 할 때 아얏하면서 마당에 쭈그려 앉아서 그 유리를 뽑고 있을까, 아니면 유리조각이 있는 것을 보고 가만 있자, 양말부터 찾아서 신고, 신발은 또 어디 있지? 얘들이 어디다 던져 놓았니?’ 하면서 신발을 찾는다고 어슬렁거릴까? 그럴 사이가 있겠습니까? 후다닥 전 신경 마음 초점은 어린아이에게 가 있고, 유리조각이 눈에 보이겠어? 마당 한 가운데로 최단거리 직선으로 아이를 붙잡으러 뛰지 않겠느냐? 어린아이들 학교 운동회 때 학부형들이 뛰는데 팬티의 고무줄이 터진 줄도 모르고 1등만 보고 뛰는 아비도 있는데!

 

마음초점 신경초점이 집중적으로 멈춰져 있으면 옆에서 큰소리로 불러도 잘 모를 때도 있습니다. 그런 것처럼 예수님께서 우리를 지극히 사랑하심과 하나님의 지공법에 만족을 이루어 드리는 그 연속적 중보적 사역에 전 인격, 전 신경, 전 마음의 초점이 가서 진하게 맞추어져 있는데 여기서 순간적 찰나적이나마 그 마음이 끊어지면 이것이 바로 예수님에게는 실패의 쓴잔이 되는 것입니다. 설령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었다 하더라도 그렇게 해서 죽는다면 우리의 구원은 영원히 실패가 되는 것입니다. 바로 이 실패의 잔을 마시지 않게, 지나가게 해 달라는 것입니다. 외부로 볼 때는 예수님이 죽으니 실패처럼 보이나 예수님의 그 정신 사상 마음은 굽히지 않고, 정복당하지 않고 이기는 것입니다.

 

이것이 예수님의 소원이신데, 아버지의 소원이신데 이 소원에 맞는 옳은 기도이니 응답이 있을 줄 알았는데 세 번이나 기도했는데도 응답이 없습니다.

 

왜 응답이 안 왔을까?

기도가 모자랐던지,

하나님의 뜻이 아닌 기도를 한 것인지?

하나님 아버지가 밤이니까 곤히 주무시는지,

베드로 야고보 요한이 깨어서 기도로 합세를 안 해서인지?

이 가운데 정답이 있다면 몇 번인지?

 

하나님 아버지로부터 응답이 없었습니다. 응답이 없었던 것은 신성으로 하지 말고 인성으로 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 아버지가 도와 줄 바에야 누군들 못하겠습니까? 말하자면 예수님이 못박히실 때 전혀 안 아프게 만들 수도 있습니다. 마취제를 맞은 것처럼 발바닥을 간지르듯이 못질을 할 때 아픈 것이 아니라 간지럽도록 할 수도 있습니다. 시원하게 만들 수도 있고, 예수님이 죽을 때도 전혀 고통 없이 죽게 할 수도 있습니다. 만능의 능력자 하나님께서 무엇을 못하시겠느냐?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죽는 것은 신성이 한 것이 아니고 인성으로 하신 것입니다. 인성이 피 흘려 고난당하신 것입니다.

 

그러면 예수의 신성은 어찌 되었느냐? 신성을 전혀 쓰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러니 이를 악물고 그 아픈 마음을 참아내느라고 얼마나 애를 먹었겠느냐? 그렇지요? 극기 극복하느라고 얼마나 용을 썼겠느냐? 그렇지요?

 

예수님은 초월입니다. 안 아프다가 아니고 아플 사이가 없었습니다. 우리를 사랑하는 사랑의 도수가 극치로써 모든 육신의 아픔을 다 집어 삼켜버린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의 사건을 놓고 기도하신 그 마음을 모른 자들은 모두 잠을 잔 자들로 딴소리들을 하는데 예수님의 마음과 다른 거짓 같은 소리들을 하고, 이단 같은 소리들을 하는 것입니다.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십자가를 안 지겠다는 소리인가?

주님을 일반적인 선악과를 따먹은 사람들보다, 세상적인 사람들보다 더 비굴하게 만드는 자들이 많습니다. 교회에서 목사들이 그렇습니다. 일반적으로 국가와 민족을 위해서, 또는 인류를 위해서 자기 목숨을 투자하는 일반적으로 훌륭한 사람들이 많습니다.

 

아프지만 억지로 참고 견디셨느냐?

 

얼마나 아팠으면 엘리엘리 라마 사박다니했겠느냐? 일반개념을 가지고 주님의 말을 해석하려 들고 있습니다. 누가? 목사들이! 이것은 다 마귀가 예수님의 마음을 육신의 고통 쪽으로 끌고 가려고 한 것과 같은 것입니다. 우리는 그와 같은 수법이 되어서는 아니 됩니다. 자기가 사단 마귀의 졸병이 아니라면 말입니다.

 

이제 우리가 주님의 마음을 어느 정도 알진대 누구 때문에 마음이 심히 고민하고 죽게 생긴 것으로 생각이 되느냐?

예수님 당신 때문인가?

우리 때문인가?

 

나와 함께 깨어 있자그 말씀은?

예수님 당신 때문인가?

우리 문제 때문인가?

 

이 잔을 옮겨달라는 그 말씀은?

예수님 당신 때문인가?

우리 때문인가?

 

예수님의 환난, 진리환난 때에 육신 쪽으로 마음이 기울어지는 것은 사단 마귀의 수법에 걸려든 것입니다. 그런 마음에서 이기려면 주님의 기도와 같은 그 정신 사상 마음을 가져야 이길 수 있는 것이니 그 정신 마음은 주님과 함께 깨어 있는 신앙입니다.

 

시험에 들지 않게 기도하라는 말씀은

 

첫째는 예수 나 때문에, 진리 때문에 너희들이 꾀임을 받지 말라는 것이고, 말하자면 저렇게 의롭고 사랑이 많으신 분이 죽으니 저렇게까지 살 것이 없고

 

적당히 살다가 가자한다거나, ‘유별나게 믿지도 말고, 또 너무 뒤떨어지게 믿지도 말고 적당히 믿자하는 사고방식.

 

우리도 죽을 터이니 이제는 예수 믿지 말자하는 것 등.

 

두 번째는 너희들이 믿고 싶어도 몰라 가지고 어리석어서 피해를 당하지 말라입니다.

 

세 번째는 육신 몸은 순교를 당하더라도 그 신앙 정신 사상만큼은 부활을 바라보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그 인격적 결합이 순간이라도 끊어지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세 번이나 잠을 잤으니 이것을 어찌 알겠습니까?

 

사실 마지막 잠도 예수님이 안 깨웠으면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이 다 지나가도록 자 버렸을지도 모르지! 예수님께서 찾아오실 적마다 제자들은 침을 흘리면서 콧구멍으로 풍선을 만들며 자고 있었습니다. 그러면서도 다 주를 버릴지라도 죽는 자리까지 주와 함께 가겠다는 것이니 귀엽게 봐줘야지 뭐!

 

마음은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도다

 

마음은 좋다고 주님을 따라왔는데 육신이 따라주지를 않습니다. 육신이 건강치 못하면 진리환난을 준비를 못하는 수가 있습니다.

 

시험에 걸리지 않도록 자는 제자들을 자꾸 깨우지만 눈을 뜨지를 못합니다. 마음은 진리가 좋다고 따라왔지만 인간성이 들어서 주저할 때 두 번 세 번 권고를 하지만 결국 눈을 뜨지를 못하고 시험에 걸려드는 것입니다. 제자들에게로 두 번 세 번 오시는 것은 사건의 긴박성입니다.

 

깨어나라 일어나라

 

종교적 혼합주의가 다가옵니다. 종교의 세상과 제자가 합세한 혼합주의입니다.

 

2645: 이에 제자들에게 오사 이르시되 이제는 자고 쉬라 보라 때가 가까왔으니 인자가 죄인의 손에 팔리우느니라

 

깨어 있는 기회는 항상 있는 것이 아닙니다. 주님의 권고성이 항상 있는 것은 아닙니다. 제자들이 무엇을 팔아먹었는지, 종교계가 무엇을 헐뜯고 죽이는지 볼 줄을 알고, 준비를 할 줄 알아야 합니다.

 

진리가 죄인의 손에 팔린다. 주님이 죄인들의 손에 넘기운다. 이렇게 넘기우는데 어떻게 잠만 잘 수가 있겠느냐? 어떻게 태만할 수가 있겠느냐?

 

이제 일어나라 함께 가자

 

도망을 가자는 말인가? 아닙니다.

진리 팔고, 스승 팔고, 동역자들을 배반한 얼굴을 바라보라는 말입니다.

 

누가 주님을 팔아먹고, 누가 예수를 팔아먹고, 누가 진리를 팔아먹고 하겠느냐? 불신자가 하겠느냐, 예수 믿는 자가 하겠느냐? 예수를 믿는 사람이 세상욕심 물질욕심을 버리지 못하면 평신도이던 교역자이던 예수를 100% 팔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사실상 지금 팔고 있는 상태입니다. (계속)

 

 *************************

성도가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신앙생활을 하려면 인격자이신 하나님의 가장 깊은 심원인 하나님의 의지세계에서부터 당신의 애성에서 발로된 인간창조의 원인과 동기와 목적을 따라 신앙을 해야만 됩니다. 이래야 기독교 본질에서 이탈하지 않고 가장 효율적 적중적으로 하나님의 온전한 성품을 덧입을 수 있고, 성도 각자가 이 땅에서 이렇게 덧입은 하나님의 성품의 양에 따라 장차 천국에서의 누림에 차등이 생기게 됨을 성경을 통해 알 수가 있습니다.


김경형목사님께서 교역자 및 신학생을 대상으로 20여년 동안 매 주 정례적으로 진행하는 신학 및 성경연구 모임을 통해 하나님의 의지세계에서 예수 그리스도로 통한 인간구원을 설정하게 된 원인과 동기와 목적을 깨닫고 하나님의 본질의 신앙으로 나가는 주의 종들이 누룩처럼 퍼져나가고 있습니다.

참석하실 분은 031-207-5159, 또는 010-8886-5159로 문의해 주세요.(평신도도 참석 가능합니다)

http://cafe.daum.net/909k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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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071 에배소서 잘 분별해서 들으라 엡1:15-17  이한규 목사  2018-06-20 277
» 마태복음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마26:39-46  김경형 목사  2018-06-17 554
15069 요한복음 38년 된 병자의 치유 요5:1-15  강종수 목사  2018-06-17 404
15068 사도행전 복음의 보편적 능력 행8:26-40  정용섭 목사  2018-06-17 326
15067 요한일서 믿음과 사랑 요일3:16-24  정용섭 목사  2018-06-17 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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