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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을 항해하면서 발견한 다시 읽고 싶은 글을 스크랩했습니다. 인터넷 공간이 워낙 넓다보니 전에 봐 두었던 글을 다시 찾기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닙니다. 그래서 스크랩할만한 글을 갈무리합니다. (출처 표시를 하지 않으면 글이 게시가 안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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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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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의 옷은 벗고 세상 옷을 입는 현대 교회들》
고은교회 황부일목사
일반종교가 그렇듯이 오늘날 대부분의 교회들이 신앙을 통해 세상을 구하고 있습니다. 일반 종교화된 기독교의 모습이 오히려 공감을 얻고 그런 면으로 커지고 다방면이 된 교회들이 서로 인정하는 시대입니다.
<세상옷을 입는 현대교회들>
"외형적인 옷"
교회가 세상 옷을 입는 다는 것은 곧
세상을 벗하고 세상을 따라 가는 것을 말합니다.
그것을 살펴보면 외형적인 옷과 사상적인 옷으로 나누워 볼 수 있습니다.
그중에 먼저 외형적인을 옷을 입는 것을 보면 교회들이 세상 업계들 처럼 외형적 건물이나 교인 숫자 크기로 서로 성장의 경쟁을 한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교회들이 대부분 사람들이 원하고 좋아하고 기대하는 대로 교회를 꾸미며 바꾸어 가는데 전념합니다.
그것은 마치 장사하는 가게나 사업장이 손님이나 고객을 위해 새 건물을 짓거나 시스템을 잘 시설하고 마케팅적이나 이벤트식 행사를 하는 것과 같습니다.
교회들이 지금 그렇습니다.
건물 내외부를 어떻게 하면 특별하고 새롭게 단장을 입힐까 많은 재정을 들여 무리하게 빚까지 지면서 건물을 더 크게 지으려 하고 또한 임대로 있는 예배당 건물인데도 재정을 많이 들여 리모델리하고 모든 시스템이나 프로그램을 사람들이 기대하는 데로 정하고 시행해 가는데 여념이 없습니다.
오늘날 교회 행정이나 운영 시스템이 너무 사업적이고 인본적입니다.
요즘 기독교는 문화종교가 되어가고 예배당은 거대 이방신전화 되어 가고
하나님을 통한 세상이고 인간중심이 된 것입니다.
사람은 외모를 보고 하나님은 중심을 보신다 했는데(삼상16:7) 오늘날 교회들은 사람들 보기에 좋고 멋있고
그럴싸한 모습이나 모양로 지어져가는 것입니다.
"시상적인 옷"
시대가 갈 수록 교회에는.세상 사조가 유행물결 처럼 밀려들어 오고 여러 인본주의 사상들이 기독교의 사랑이나 의나 개혁이나 선을 인본적으로 잘 해석 이용하여 기독교 이상주의를 꿈두며 지식층이나 젊은
층들을 끌어 모으고 있습니다.
로마서 10:2~3절을 보면 "내가 증거하노니 저희가 하나님께 열심이 있으나 지식을 좇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의를 모르고 자기 의를 세우려고 힘써 하나님의 의를 복종치 아니하였느니라"는 말씀같이 인간의 의를 기독교의 의로 여기고 힘쓰는 교회들이 많습니다.
예전엔 보수교단이던 교회들도 세상 유행같은 사조의 흐름을 받아 들이고 동조해 갑니다.
하나님보다 인권을 더 사랑하고 예수를 박애주의자로 믿는 기독교 이상주의적인
인본주의의 옷을 서로 공감하며 입어 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스도로 옷입은 교회를 아는가?>
갈라디아서3:26-27절을 보면 “너희가 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예수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아들이 되었으니 누구든지 그리스도와 합하여 세례를 받은 자는 그리스도로 옷입었느니라”고 말씀했습니다.
이 말씀은 성령이 임하셔서 예수를 구주로 고백하게 하는 구원의 은혜의 믿음으로 거룩하게된 교회된자의 본질과 실제의 모습이 어디에 있는지를 잘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와 합하여 세례를 받음에 대해 사도바울은 증거하기를 “무릇 예수 그리스도와 합하여 세례를 받은 우리는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 받은 줄을 알지 못하느뇨 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죽음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나니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은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도 또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니라 만일 우리가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 연합한 자가 되었으면 또한 그의 부활을 본받아 연합한자가 되리라”(롬6:3-5) 그리스도의 교회된 자들은 그리스도께서 십자가 형틀에서 죽으실 때 옛죄의 몸이 함께 죽은 것으로 되는 것이며 또한 그리스도께서 다시 부활 하실 때 교회도 함께 새 생명으로 다시 산자가 된 것입니다.
이것이 그리스도안에 있는 교회의 본질적인 상태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교회로 택함을 입은 자들은 그리스도의 한 생명으로 구원을 얻었고 그리스도의 한 몸으로 거룩한 연합체가 된 것입니다. 그래서 교회를 그리스도의 몸으로 말씀하는 것입니다.(엡1:23)
우리가 알다시피 교회된 자들은 그리스도의 대속의 은혜로 죄에서 벗어나 의롭다함을 얻었습니다. 그러니까 그리스도의 피로 죄가 가려짐을 얻게 되었고 죄의 몸이었던 옛 사람에서 의의 새옷을 입고 영원한 그리스도의 사람이 된 것이 교회입니다.
그리스도와 합하여 세례를 받았다는 것은 교회에 행하는 세례의식이 아니고 하나님께서 성령의 역사를 통해 우리를 그리스도를 믿게하고 중생케되는 은혜의 역사로 거룩케되는 영적과정의 한 상태인데 오직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의 역사로서 신령한 상태로 새롭게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그리스도로 옷입고 그리스도와 합하여 그리스도의 사람인 성도가 되고 또한 한 연합체로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교회된 자들은 이미 그리스도로 의의 거룩한 옷을 입은 자가 된 것입니다.
이것은 계시적 언약속에 이미 나타난 대로인데 보면 "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과 그 아내를 위하여 가죽옷을 지어 입히시니라"(창3:21)
이말씀에 보면 죄의 수치를 입고 부끄러운 모습으로 영원히 하나님께 나갈 수없는 우리를 하나님은 가축의 희생으로 가죽옷을 지어 입히신 것입니다.
이것은 오실 메시야의 죽으심으로 우리 죄의 부끄러움을 가려주시는 은혜의 예표되는 말씀입니다.
우리는 이렇게 그리스도로 옷입고 하나님께 당당히 나갈 수 있게된 것입니다.
때문에 교회된 성도나 그들이 모인 교회나 그리스도로 옷입은 자답게 그리스도로 더욱 거룩해져 가는 모습이 나타나져야 합니다. 이것이 그리스도의 교회의 진실이고 합당한 모습입니다.
그런데 로마서13:12-14절을 보면 “밤이 깊고 낮이 가까웠으니 그러므로 우리가 어둠의 일을 벗고 빛의 갑옷을 입자 낮에와 같이 단정히 행하고 방탕과 술취하지 말며 음란과 호색하지 말며 쟁투와 시기하지 말고 오직 주예수 그리스도로 옷입고 정욕을 위하여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말라”고 바울은 증거했습니다.
갈라디아서3:27절에서는 이미 그리스도로 옷입은 자인데 로마서에 서는 지금 진행적으로 그리스도로 점점 옷입으라고 하는 것은 오직 은혜의 역사로 그리스도로 옷입어 본질적으로 그리스도의 의로운 성도가 되었으나 실제 우리 모습은 아직 육체라고 하는 죄의 옛몸된 본성이나 모습이 남아 있기 때문에 이제 그리스도로 옷입혀 주심을 입은자답게 실제로 그리스도로 옷입는 거룩한 신앙생활로 어디서나 그리스도의 증인된 성도요 또한 그리스도로 바로 서가는 그리스도의 교회가 되라고 말씀하는 것입니다.
<입은 그대로 보여지고 나타나지는 현대교회 모습들>
오늘날 보면 주변에 건너건너 보이는 것이 예배당 건물이고 이런저런 일로 만나는 사람 중에 교인들이 항상 있음을 보면서 안타깝게 느끼는 점은 순전한 모습을 찾기 어렵다는 점입니다.
대부분 세상 적이고 인간 적입니다.
교회의 거룩성이 상실한 시대, 아니 교회 거룩함을 일려는 중심이나 신앙이 아예 없는 상태입니다.
예수님 당시에 세상 옷을 입는 교권주의자들에 대해 예수님은 질책하셨는데 보면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잔과 대접의 겉은 깨끗이 하되 그 안에는 탐욕과 방탕이 가득하게 하는도다, 소경된 바리새인아 너는 먼저 안을 깨끗이 하라 그리하면 겉도 깨끗하리라” 또한 예수님은 그런 그들을 향해 회칠한 무덤 같으니 겉으로는 아름답게 보이나 그 안에는 죽은 시체와 더러운 것이 가득하다고 하셨고 이와같이 너희도 겉으로는 사람에게 옳게 보이되 안으로는 외식과 불법이 가득하다고 지적하셨습니다.(마23:25-28)
사람들에게 인정받고 좋게 여김받고 사람들이 알아주는 모습으로 만들어 가는 것이 바로 교회에 있어 인본주의 현상이고 교회의 타락상태인 세속화 현상인 것입니다.
오늘날 교회들이 건물을 짓고 더 크게 늘려 지으려는 예배당 건물만 보아도 무엇에 치중하려는지 잘 보입니다.
내부는 온갖 세상적인 시스템으로 빈틈없이 잘 갖추어져 돌아가고 이곳이 예배당인지 콘서트장인지 현대식 극장인지 음악당인지 구분이 안 갈 정도며 조명이나 음향이나 내부장식등도 놀라울 정도입니다.
이런 곳에서의 예배는 현란하고 요란하고 감흥적이고 크게는 오케스트라에서 몇인조 밴드로까지 있어 예배인지 음악회인지 쇼무대인지 구분이 안가는 것입니다. 말은 교회 음악이고 찬양이라지만 간간히 들리는 신앙적 용어 몇마디 빼고는 광적인 세상음악과 차이가 없는 상태입니다. 또한 예배당외에 현대교회들은 비젼센타라 하여 일반적인 문화공간이나 카페나 체육시설까지 갖추고 세상과 벗하려고 무던히들 애쓰고 있습니다.
오늘날 교회들이 세상 어떤 단체나 공공기관이나 여러 문화장소 처럼 꾸미려 하고 그런 시스템을 갖추려 하고 거기에 많은 재정과 인력을 투자 동원하려 하는지 그 답은 한 가지입니다.
많은 사람들에게 좋게 여김받고 공감하게 하고 그래서 더 많은 사람들을 끌려함에 있고 주변이나 사회로부터 인정받고 알려지기를 바라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주님이 원하시는 교회 모습으로 갖추고 그 모습을 입기 위한 중심은 어느 구석에도 찾아보기 어렵고 모두가 사람들이 보기에 알아주는 것으로 세우고 치장하는데만 여념이 없는 것입니다.
요새보면 실제 지도자나 평교인들을 볼 것 같으면 예수님 당시 유대주의자들 그 이상입니다.
목회자들은 진리로 옷입고 복음으로 무장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종으로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모습과 삶으로나 사도 바울처럼 언제나 변함없이 살든지 죽든지 그리스도를 존귀케 하는 모습으로 중심을 가지려 하지 않습니다.
대부분이 하나님의 영광보다 사람들의 영광으로 갖추려 하고 그 영광의 화려한 옷과 인기와 높은 자리를 가지는데만 열중합니다.
그러기위해서는 또한 출신 학위 간판의 옷을 화려하게 입는데 역점을 둡니다.
때문에 이런 지도자들이 하는 교회는 그리스도로 옷입는 모습과는 너무도 거리가 먼 것입니다.
거룩히 그리스도로 서가는 교회의 합당한 모습이 전혀 보이질 않는 것입니다.
그들은 세상기업들처럼 그저 크고 많고자 하는데만 서로 인정하며 경쟁할 뿐입니다. 때문에 거기에 속해있는 교인들 또한 거룩한 교회 모습을 입을 수가 없습니다.
이 시대 많은 현대교회 지도자들은 그리스도로 서가는 교회를 하지 않습니다.
아니 할 수 없다는 것이 더 맞을 것입니다.
그들은 교회 이름으로 욕망을 성취하려 합니다. 때문에 그들이 말하고 세워가는 교회는 세상으로 옷입을 수밖에 없고 거기에 몰려있는 수많은 교인들은 예수이름으로 더욱 크고 높고 많은 세상것을 얻고 성취하려는데 힘쓰며 또한 좀더 크고 나은 세상것을 가지고 성취한 자는 축복받았다며 하나님 이름으로 자랑하며 간증 하면서 다른 사람도 세상적으로 더 옷입기를 서로 자랑 유도하는 것입니다.
당시에 현존해 있었으면서도 마지막 때 현상으로서 조명되고 계시되는 계시록에 나오는 일곱교회 가운데 라오디게아 교회가 있습니다.(계3:14-22)
그 교회를 볼 것 같으면 차지도 않고 더웁지도 아니한 미지근한 모습의 교회로 책망 받는데 오늘날 현대교회들이 그렇습니다. 세상도 아니고 교회도 아니고 사람중심인지 하나님 중심인지 거기서 왔다갔다 하는 현대판 열린교회들 그대로입니다. 그래도 그들은 “나는 부자라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고 자랑했고 자부심을 가졌습니다. 오늘날 현대교회들이 외형중심으로 크고 많은것을 서로 경쟁하며 자랑함과 같고 그것이 성공한 목회요 교회인양 내세우고 높여주고 잘 성장한 교회의 모델이 되고 그렇지 못한 적은형편의 교회 목회자나 교인들의 부러움을 사는교회인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이렇게 자부하고 있는 라오디게아교회에 대해 교회의 주인되신 주께서 책망하시기를 “네 곤고한 것과 가련한 것과 가난한 것과 눈먼 것과 벌거벗은 것을 알지 못하도다 내가 너를 권하노니 내게서 불로 연단한 금을 사서 부요하게 하고 흰옷을 사서 입어 벌거벗은 수치를 보이지 않게 하고 안약을 사서 눈에 발라 보게 하라”
(계3:17-18)고 말씀하십니다.
아무리 사람들 보기에 좋고 아름답고 대단한 것으로 세워졌다해도 그것은 교회모습이 아닙니다. 교회는 주께서 언약하시고 뜻하신 대로 서가고 구원이 이루어져 가야 합니다.
아무리 교인들이 찬사를 하고 교계가 알아주고 사회가 인정해도 주님 보시기에 그리스도로 옷 입어가는 모습이 안되면 모두 벌거벗은 부끄러운 교회요 교회가 뭔지도 모르고 어떻게 서가야 하는지도 모르는 눈 멀고 어리석은 교인들이요 소경된 인도자들에 불과합니다.
이 모두가 그리스도로 서가고 그리스도로 옷입어가야 하는 교회의 본질과 신앙의 진실을 보지 못하고 예수 이름으로 인간의 영광이나 세상에서의 으뜸을 기대하며 사모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요한일서2:15-17절을 보면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치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속에 있지 아니하니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 좇아 온것이 아니요 세상으로 좇아 온것이라 이 세상도 그 정욕도 지나가되 오직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이는 영원히 거하느니라”고 말씁 했습니다.
바울은 보이는 것은 잠간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하다고 증거 했습니다.
(고후4:18)
현대교회들에 있어 교회성장은 교인수가 많아지고 더 큰 건물로 세워져 가는 것으로 기준되어 있습니다. 그러니까 교회 건물이 크고 좋은 외형으로 잘 입고 현대적 장식이나 시스템으로 완벽하게 갖추는 것으로 웅장하게 서가는 것입니다. 이런 외형중심으로 크고 멋있게 입고 서가려는 교회들에게서는 거룩하고 진실한 교회 모습은 이미 본질적으로 안맞게 되어 있습니다. 때문에 이런 교회들은 세상적으로 사람들이 원하고 좋아하는 것으로 옷입을 수 밖에 없습니다.
스바냐 1:8에 보면 이방의 옷을 입은 자들을 벌할 것이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당시 이방의 모습을 따라 가는 이스라엘에 대한 징벌의 말씀입니다.
또한 이 시대 세상으로 잘 입고 크게 섰다고 자랑하는 무리들에게 대한 경고의 말씀임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레위기 18:3~4을 보면 "너희는 그 거하던 애굽 땅의 풍속을 좇지 말며 내가 너희를 인도할 가나안 땅의 풍속과 규례도 행하지 말고
너희는 나의 법도를 좇으며 나의 규례를 지켜 그대로 행하라 나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니라"고 말씀했습니다.
한마디로 옛 세상이나 현 세상이나 세상을 본받지 말고 오직 말씀중심의 삶을 살라는 것입니다.
<그리스도로 옷입는 교회는 사람이 세워갈 수 없다>
“누구든지 그리스도와 합하여 세례를 받은자는 그리스도로 옷입었느니라”(갈3:27)고 말씀했습니다. 이렇게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로 그리스도의 의로 옷입은 의로운자가 되고 영원히 그리스도의 생명에 한 연합체가 되었건만 실제 교회된 우리 모습에는 그리스도의 모습이 왜 없는 것인지······.
에베소서4:22-24에 보면 “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좇는 옛사람을 벗어 버리고 오직 심령으로 새롭게 되어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사람을 입으라”고 말씀했습니다. 분명 교회된 자는 새로운 피조물입니다.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다(고후5:17)고 했습니다. 그래서 성도는 죄에서 의롭게 된자요 어둠에서 빛의 자녀가 된것이고 멸망의 세상에서 영원 구원의 하나님 나라로 시민권을 가진 자가 된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전적인 은혜로 된것이요 아직 우리 몸은 육체로 된모습 그대로 남아있어 아직 죄의 옛 본성을 따라 세상처럼 썩어져가는 구습을 좇는 모습과 삶이 그대로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기독교가 사람에게 맞추어 주면 하나님을 통한 세상이 되기 때문에 거룩한 교회 모습은커녕 세상옷을 입은 타락한 일반종교가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썩어질 것을 좇는 옛사람의 모습을(더러워진 옛 옷처럼) 벗어 버리라고 말씀하는 것이며 또한 어둠의 일을 벗고 빛의 갑옷을 입으라고 하는 것이며 빛의 자녀답게 단정히 행하고 방탕과 술 취하지 말며 음란과 호색하지 말며 쟁투와 시기하지 말며 정욕을 위하여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말고 오직 주예수 그리스도로 옷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까지 자라 가라는 것입니다. 그래야 진정한 그리스도의 증인된 자가 되는 것이며 그리스도로 서가는 참된 교회 모습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가 분명하게 알고 있어야 할 것이 있는데 어떤 교회든지 복음적이지 않으면 절대로 그리스도로 옷입을 수 없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복음에 그리스도의 교회 구원이 언약되어 있고 또한 그 복음의 능력만이 그리스도로 성장해가는 교회를 이룰 수 있기 때문입니다.
로마서1:16-17절에 보면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고 바울은 증거한 것입니다.
복음에만 그리스도의 교회 구원이 언약되어 있고 그 의가 나타나는 복음만이 그리스도의 교회로 구원을 온전히 이룹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의가 있는 복음이 아니고는 그리스도의 의를 입는 믿음의 본질적인 은혜부터 시작될 수 없으며 혹 복음의 증거로 그리스도의 의를 입는 은혜를 입었다 해도 계속적으로 구원에 이르게 하는 복음의 가르침을 받지 않고는 실제로 그리스도로 옷입는 변화된 모습은 오질 않는 것입니다.
골로새서 1:6절에 보면 " 이 복음이 이미 너희에게 이르매 너희가 듣고 참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깨달은 날부터 너희 중에서와 같이 또한 온 천하에서도 열매를 맺어 자라는도다"고 분명 말씀했습니다.
오늘날 대부분의 교회가 서로 세상을 옷입고 경쟁하며 자랑하는 것은 바로 변질된 다른 복음이 판치고 있기 때문입니다. 다른 복음은 그리스도로 옷입게 하는 가르침이나 그런 은혜의 역사가 없습니다.
다른 복음은 교회가 인간의 기대와 영광으로 맞추어 주는 비진리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누구도 인간은 그리스도로 옷입을 수도 없고 무엇보다 그것을 원치 않습니다.
인간 모두는 육체의 소욕을 따라 공동적이거나 개인적으로 남이 알아 주는 기대의 옷 입길 원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순전한 복음 그 능력으로 만이 그리스도로 거룩히 서 갈 수 있는 것입니다.
세상으로 옷입는 인간적 교회와 그리스도로 옷입는 거룩한 교회가 어떻게 다른지 잘 분별하고 진리로 인도받는 이땅에 성도들이 모두 되길 바랍니다
고은교회 황부일목사
일반종교가 그렇듯이 오늘날 대부분의 교회들이 신앙을 통해 세상을 구하고 있습니다. 일반 종교화된 기독교의 모습이 오히려 공감을 얻고 그런 면으로 커지고 다방면이 된 교회들이 서로 인정하는 시대입니다.
<세상옷을 입는 현대교회들>
"외형적인 옷"
교회가 세상 옷을 입는 다는 것은 곧
세상을 벗하고 세상을 따라 가는 것을 말합니다.
그것을 살펴보면 외형적인 옷과 사상적인 옷으로 나누워 볼 수 있습니다.
그중에 먼저 외형적인을 옷을 입는 것을 보면 교회들이 세상 업계들 처럼 외형적 건물이나 교인 숫자 크기로 서로 성장의 경쟁을 한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교회들이 대부분 사람들이 원하고 좋아하고 기대하는 대로 교회를 꾸미며 바꾸어 가는데 전념합니다.
그것은 마치 장사하는 가게나 사업장이 손님이나 고객을 위해 새 건물을 짓거나 시스템을 잘 시설하고 마케팅적이나 이벤트식 행사를 하는 것과 같습니다.
교회들이 지금 그렇습니다.
건물 내외부를 어떻게 하면 특별하고 새롭게 단장을 입힐까 많은 재정을 들여 무리하게 빚까지 지면서 건물을 더 크게 지으려 하고 또한 임대로 있는 예배당 건물인데도 재정을 많이 들여 리모델리하고 모든 시스템이나 프로그램을 사람들이 기대하는 데로 정하고 시행해 가는데 여념이 없습니다.
오늘날 교회 행정이나 운영 시스템이 너무 사업적이고 인본적입니다.
요즘 기독교는 문화종교가 되어가고 예배당은 거대 이방신전화 되어 가고
하나님을 통한 세상이고 인간중심이 된 것입니다.
사람은 외모를 보고 하나님은 중심을 보신다 했는데(삼상16:7) 오늘날 교회들은 사람들 보기에 좋고 멋있고
그럴싸한 모습이나 모양로 지어져가는 것입니다.
"시상적인 옷"
시대가 갈 수록 교회에는.세상 사조가 유행물결 처럼 밀려들어 오고 여러 인본주의 사상들이 기독교의 사랑이나 의나 개혁이나 선을 인본적으로 잘 해석 이용하여 기독교 이상주의를 꿈두며 지식층이나 젊은
층들을 끌어 모으고 있습니다.
로마서 10:2~3절을 보면 "내가 증거하노니 저희가 하나님께 열심이 있으나 지식을 좇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의를 모르고 자기 의를 세우려고 힘써 하나님의 의를 복종치 아니하였느니라"는 말씀같이 인간의 의를 기독교의 의로 여기고 힘쓰는 교회들이 많습니다.
예전엔 보수교단이던 교회들도 세상 유행같은 사조의 흐름을 받아 들이고 동조해 갑니다.
하나님보다 인권을 더 사랑하고 예수를 박애주의자로 믿는 기독교 이상주의적인
인본주의의 옷을 서로 공감하며 입어 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스도로 옷입은 교회를 아는가?>
갈라디아서3:26-27절을 보면 “너희가 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예수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아들이 되었으니 누구든지 그리스도와 합하여 세례를 받은 자는 그리스도로 옷입었느니라”고 말씀했습니다.
이 말씀은 성령이 임하셔서 예수를 구주로 고백하게 하는 구원의 은혜의 믿음으로 거룩하게된 교회된자의 본질과 실제의 모습이 어디에 있는지를 잘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와 합하여 세례를 받음에 대해 사도바울은 증거하기를 “무릇 예수 그리스도와 합하여 세례를 받은 우리는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 받은 줄을 알지 못하느뇨 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죽음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나니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은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도 또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니라 만일 우리가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 연합한 자가 되었으면 또한 그의 부활을 본받아 연합한자가 되리라”(롬6:3-5) 그리스도의 교회된 자들은 그리스도께서 십자가 형틀에서 죽으실 때 옛죄의 몸이 함께 죽은 것으로 되는 것이며 또한 그리스도께서 다시 부활 하실 때 교회도 함께 새 생명으로 다시 산자가 된 것입니다.
이것이 그리스도안에 있는 교회의 본질적인 상태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교회로 택함을 입은 자들은 그리스도의 한 생명으로 구원을 얻었고 그리스도의 한 몸으로 거룩한 연합체가 된 것입니다. 그래서 교회를 그리스도의 몸으로 말씀하는 것입니다.(엡1:23)
우리가 알다시피 교회된 자들은 그리스도의 대속의 은혜로 죄에서 벗어나 의롭다함을 얻었습니다. 그러니까 그리스도의 피로 죄가 가려짐을 얻게 되었고 죄의 몸이었던 옛 사람에서 의의 새옷을 입고 영원한 그리스도의 사람이 된 것이 교회입니다.
그리스도와 합하여 세례를 받았다는 것은 교회에 행하는 세례의식이 아니고 하나님께서 성령의 역사를 통해 우리를 그리스도를 믿게하고 중생케되는 은혜의 역사로 거룩케되는 영적과정의 한 상태인데 오직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의 역사로서 신령한 상태로 새롭게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그리스도로 옷입고 그리스도와 합하여 그리스도의 사람인 성도가 되고 또한 한 연합체로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교회된 자들은 이미 그리스도로 의의 거룩한 옷을 입은 자가 된 것입니다.
이것은 계시적 언약속에 이미 나타난 대로인데 보면 "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과 그 아내를 위하여 가죽옷을 지어 입히시니라"(창3:21)
이말씀에 보면 죄의 수치를 입고 부끄러운 모습으로 영원히 하나님께 나갈 수없는 우리를 하나님은 가축의 희생으로 가죽옷을 지어 입히신 것입니다.
이것은 오실 메시야의 죽으심으로 우리 죄의 부끄러움을 가려주시는 은혜의 예표되는 말씀입니다.
우리는 이렇게 그리스도로 옷입고 하나님께 당당히 나갈 수 있게된 것입니다.
때문에 교회된 성도나 그들이 모인 교회나 그리스도로 옷입은 자답게 그리스도로 더욱 거룩해져 가는 모습이 나타나져야 합니다. 이것이 그리스도의 교회의 진실이고 합당한 모습입니다.
그런데 로마서13:12-14절을 보면 “밤이 깊고 낮이 가까웠으니 그러므로 우리가 어둠의 일을 벗고 빛의 갑옷을 입자 낮에와 같이 단정히 행하고 방탕과 술취하지 말며 음란과 호색하지 말며 쟁투와 시기하지 말고 오직 주예수 그리스도로 옷입고 정욕을 위하여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말라”고 바울은 증거했습니다.
갈라디아서3:27절에서는 이미 그리스도로 옷입은 자인데 로마서에 서는 지금 진행적으로 그리스도로 점점 옷입으라고 하는 것은 오직 은혜의 역사로 그리스도로 옷입어 본질적으로 그리스도의 의로운 성도가 되었으나 실제 우리 모습은 아직 육체라고 하는 죄의 옛몸된 본성이나 모습이 남아 있기 때문에 이제 그리스도로 옷입혀 주심을 입은자답게 실제로 그리스도로 옷입는 거룩한 신앙생활로 어디서나 그리스도의 증인된 성도요 또한 그리스도로 바로 서가는 그리스도의 교회가 되라고 말씀하는 것입니다.
<입은 그대로 보여지고 나타나지는 현대교회 모습들>
오늘날 보면 주변에 건너건너 보이는 것이 예배당 건물이고 이런저런 일로 만나는 사람 중에 교인들이 항상 있음을 보면서 안타깝게 느끼는 점은 순전한 모습을 찾기 어렵다는 점입니다.
대부분 세상 적이고 인간 적입니다.
교회의 거룩성이 상실한 시대, 아니 교회 거룩함을 일려는 중심이나 신앙이 아예 없는 상태입니다.
예수님 당시에 세상 옷을 입는 교권주의자들에 대해 예수님은 질책하셨는데 보면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잔과 대접의 겉은 깨끗이 하되 그 안에는 탐욕과 방탕이 가득하게 하는도다, 소경된 바리새인아 너는 먼저 안을 깨끗이 하라 그리하면 겉도 깨끗하리라” 또한 예수님은 그런 그들을 향해 회칠한 무덤 같으니 겉으로는 아름답게 보이나 그 안에는 죽은 시체와 더러운 것이 가득하다고 하셨고 이와같이 너희도 겉으로는 사람에게 옳게 보이되 안으로는 외식과 불법이 가득하다고 지적하셨습니다.(마23:25-28)
사람들에게 인정받고 좋게 여김받고 사람들이 알아주는 모습으로 만들어 가는 것이 바로 교회에 있어 인본주의 현상이고 교회의 타락상태인 세속화 현상인 것입니다.
오늘날 교회들이 건물을 짓고 더 크게 늘려 지으려는 예배당 건물만 보아도 무엇에 치중하려는지 잘 보입니다.
내부는 온갖 세상적인 시스템으로 빈틈없이 잘 갖추어져 돌아가고 이곳이 예배당인지 콘서트장인지 현대식 극장인지 음악당인지 구분이 안 갈 정도며 조명이나 음향이나 내부장식등도 놀라울 정도입니다.
이런 곳에서의 예배는 현란하고 요란하고 감흥적이고 크게는 오케스트라에서 몇인조 밴드로까지 있어 예배인지 음악회인지 쇼무대인지 구분이 안가는 것입니다. 말은 교회 음악이고 찬양이라지만 간간히 들리는 신앙적 용어 몇마디 빼고는 광적인 세상음악과 차이가 없는 상태입니다. 또한 예배당외에 현대교회들은 비젼센타라 하여 일반적인 문화공간이나 카페나 체육시설까지 갖추고 세상과 벗하려고 무던히들 애쓰고 있습니다.
오늘날 교회들이 세상 어떤 단체나 공공기관이나 여러 문화장소 처럼 꾸미려 하고 그런 시스템을 갖추려 하고 거기에 많은 재정과 인력을 투자 동원하려 하는지 그 답은 한 가지입니다.
많은 사람들에게 좋게 여김받고 공감하게 하고 그래서 더 많은 사람들을 끌려함에 있고 주변이나 사회로부터 인정받고 알려지기를 바라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주님이 원하시는 교회 모습으로 갖추고 그 모습을 입기 위한 중심은 어느 구석에도 찾아보기 어렵고 모두가 사람들이 보기에 알아주는 것으로 세우고 치장하는데만 여념이 없는 것입니다.
요새보면 실제 지도자나 평교인들을 볼 것 같으면 예수님 당시 유대주의자들 그 이상입니다.
목회자들은 진리로 옷입고 복음으로 무장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종으로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모습과 삶으로나 사도 바울처럼 언제나 변함없이 살든지 죽든지 그리스도를 존귀케 하는 모습으로 중심을 가지려 하지 않습니다.
대부분이 하나님의 영광보다 사람들의 영광으로 갖추려 하고 그 영광의 화려한 옷과 인기와 높은 자리를 가지는데만 열중합니다.
그러기위해서는 또한 출신 학위 간판의 옷을 화려하게 입는데 역점을 둡니다.
때문에 이런 지도자들이 하는 교회는 그리스도로 옷입는 모습과는 너무도 거리가 먼 것입니다.
거룩히 그리스도로 서가는 교회의 합당한 모습이 전혀 보이질 않는 것입니다.
그들은 세상기업들처럼 그저 크고 많고자 하는데만 서로 인정하며 경쟁할 뿐입니다. 때문에 거기에 속해있는 교인들 또한 거룩한 교회 모습을 입을 수가 없습니다.
이 시대 많은 현대교회 지도자들은 그리스도로 서가는 교회를 하지 않습니다.
아니 할 수 없다는 것이 더 맞을 것입니다.
그들은 교회 이름으로 욕망을 성취하려 합니다. 때문에 그들이 말하고 세워가는 교회는 세상으로 옷입을 수밖에 없고 거기에 몰려있는 수많은 교인들은 예수이름으로 더욱 크고 높고 많은 세상것을 얻고 성취하려는데 힘쓰며 또한 좀더 크고 나은 세상것을 가지고 성취한 자는 축복받았다며 하나님 이름으로 자랑하며 간증 하면서 다른 사람도 세상적으로 더 옷입기를 서로 자랑 유도하는 것입니다.
당시에 현존해 있었으면서도 마지막 때 현상으로서 조명되고 계시되는 계시록에 나오는 일곱교회 가운데 라오디게아 교회가 있습니다.(계3:14-22)
그 교회를 볼 것 같으면 차지도 않고 더웁지도 아니한 미지근한 모습의 교회로 책망 받는데 오늘날 현대교회들이 그렇습니다. 세상도 아니고 교회도 아니고 사람중심인지 하나님 중심인지 거기서 왔다갔다 하는 현대판 열린교회들 그대로입니다. 그래도 그들은 “나는 부자라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고 자랑했고 자부심을 가졌습니다. 오늘날 현대교회들이 외형중심으로 크고 많은것을 서로 경쟁하며 자랑함과 같고 그것이 성공한 목회요 교회인양 내세우고 높여주고 잘 성장한 교회의 모델이 되고 그렇지 못한 적은형편의 교회 목회자나 교인들의 부러움을 사는교회인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이렇게 자부하고 있는 라오디게아교회에 대해 교회의 주인되신 주께서 책망하시기를 “네 곤고한 것과 가련한 것과 가난한 것과 눈먼 것과 벌거벗은 것을 알지 못하도다 내가 너를 권하노니 내게서 불로 연단한 금을 사서 부요하게 하고 흰옷을 사서 입어 벌거벗은 수치를 보이지 않게 하고 안약을 사서 눈에 발라 보게 하라”
(계3:17-18)고 말씀하십니다.
아무리 사람들 보기에 좋고 아름답고 대단한 것으로 세워졌다해도 그것은 교회모습이 아닙니다. 교회는 주께서 언약하시고 뜻하신 대로 서가고 구원이 이루어져 가야 합니다.
아무리 교인들이 찬사를 하고 교계가 알아주고 사회가 인정해도 주님 보시기에 그리스도로 옷 입어가는 모습이 안되면 모두 벌거벗은 부끄러운 교회요 교회가 뭔지도 모르고 어떻게 서가야 하는지도 모르는 눈 멀고 어리석은 교인들이요 소경된 인도자들에 불과합니다.
이 모두가 그리스도로 서가고 그리스도로 옷입어가야 하는 교회의 본질과 신앙의 진실을 보지 못하고 예수 이름으로 인간의 영광이나 세상에서의 으뜸을 기대하며 사모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요한일서2:15-17절을 보면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치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속에 있지 아니하니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 좇아 온것이 아니요 세상으로 좇아 온것이라 이 세상도 그 정욕도 지나가되 오직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이는 영원히 거하느니라”고 말씁 했습니다.
바울은 보이는 것은 잠간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하다고 증거 했습니다.
(고후4:18)
현대교회들에 있어 교회성장은 교인수가 많아지고 더 큰 건물로 세워져 가는 것으로 기준되어 있습니다. 그러니까 교회 건물이 크고 좋은 외형으로 잘 입고 현대적 장식이나 시스템으로 완벽하게 갖추는 것으로 웅장하게 서가는 것입니다. 이런 외형중심으로 크고 멋있게 입고 서가려는 교회들에게서는 거룩하고 진실한 교회 모습은 이미 본질적으로 안맞게 되어 있습니다. 때문에 이런 교회들은 세상적으로 사람들이 원하고 좋아하는 것으로 옷입을 수 밖에 없습니다.
스바냐 1:8에 보면 이방의 옷을 입은 자들을 벌할 것이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당시 이방의 모습을 따라 가는 이스라엘에 대한 징벌의 말씀입니다.
또한 이 시대 세상으로 잘 입고 크게 섰다고 자랑하는 무리들에게 대한 경고의 말씀임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레위기 18:3~4을 보면 "너희는 그 거하던 애굽 땅의 풍속을 좇지 말며 내가 너희를 인도할 가나안 땅의 풍속과 규례도 행하지 말고
너희는 나의 법도를 좇으며 나의 규례를 지켜 그대로 행하라 나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니라"고 말씀했습니다.
한마디로 옛 세상이나 현 세상이나 세상을 본받지 말고 오직 말씀중심의 삶을 살라는 것입니다.
<그리스도로 옷입는 교회는 사람이 세워갈 수 없다>
“누구든지 그리스도와 합하여 세례를 받은자는 그리스도로 옷입었느니라”(갈3:27)고 말씀했습니다. 이렇게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로 그리스도의 의로 옷입은 의로운자가 되고 영원히 그리스도의 생명에 한 연합체가 되었건만 실제 교회된 우리 모습에는 그리스도의 모습이 왜 없는 것인지······.
에베소서4:22-24에 보면 “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좇는 옛사람을 벗어 버리고 오직 심령으로 새롭게 되어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사람을 입으라”고 말씀했습니다. 분명 교회된 자는 새로운 피조물입니다.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다(고후5:17)고 했습니다. 그래서 성도는 죄에서 의롭게 된자요 어둠에서 빛의 자녀가 된것이고 멸망의 세상에서 영원 구원의 하나님 나라로 시민권을 가진 자가 된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전적인 은혜로 된것이요 아직 우리 몸은 육체로 된모습 그대로 남아있어 아직 죄의 옛 본성을 따라 세상처럼 썩어져가는 구습을 좇는 모습과 삶이 그대로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기독교가 사람에게 맞추어 주면 하나님을 통한 세상이 되기 때문에 거룩한 교회 모습은커녕 세상옷을 입은 타락한 일반종교가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썩어질 것을 좇는 옛사람의 모습을(더러워진 옛 옷처럼) 벗어 버리라고 말씀하는 것이며 또한 어둠의 일을 벗고 빛의 갑옷을 입으라고 하는 것이며 빛의 자녀답게 단정히 행하고 방탕과 술 취하지 말며 음란과 호색하지 말며 쟁투와 시기하지 말며 정욕을 위하여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말고 오직 주예수 그리스도로 옷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까지 자라 가라는 것입니다. 그래야 진정한 그리스도의 증인된 자가 되는 것이며 그리스도로 서가는 참된 교회 모습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가 분명하게 알고 있어야 할 것이 있는데 어떤 교회든지 복음적이지 않으면 절대로 그리스도로 옷입을 수 없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복음에 그리스도의 교회 구원이 언약되어 있고 또한 그 복음의 능력만이 그리스도로 성장해가는 교회를 이룰 수 있기 때문입니다.
로마서1:16-17절에 보면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고 바울은 증거한 것입니다.
복음에만 그리스도의 교회 구원이 언약되어 있고 그 의가 나타나는 복음만이 그리스도의 교회로 구원을 온전히 이룹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의가 있는 복음이 아니고는 그리스도의 의를 입는 믿음의 본질적인 은혜부터 시작될 수 없으며 혹 복음의 증거로 그리스도의 의를 입는 은혜를 입었다 해도 계속적으로 구원에 이르게 하는 복음의 가르침을 받지 않고는 실제로 그리스도로 옷입는 변화된 모습은 오질 않는 것입니다.
골로새서 1:6절에 보면 " 이 복음이 이미 너희에게 이르매 너희가 듣고 참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깨달은 날부터 너희 중에서와 같이 또한 온 천하에서도 열매를 맺어 자라는도다"고 분명 말씀했습니다.
오늘날 대부분의 교회가 서로 세상을 옷입고 경쟁하며 자랑하는 것은 바로 변질된 다른 복음이 판치고 있기 때문입니다. 다른 복음은 그리스도로 옷입게 하는 가르침이나 그런 은혜의 역사가 없습니다.
다른 복음은 교회가 인간의 기대와 영광으로 맞추어 주는 비진리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누구도 인간은 그리스도로 옷입을 수도 없고 무엇보다 그것을 원치 않습니다.
인간 모두는 육체의 소욕을 따라 공동적이거나 개인적으로 남이 알아 주는 기대의 옷 입길 원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순전한 복음 그 능력으로 만이 그리스도로 거룩히 서 갈 수 있는 것입니다.
세상으로 옷입는 인간적 교회와 그리스도로 옷입는 거룩한 교회가 어떻게 다른지 잘 분별하고 진리로 인도받는 이땅에 성도들이 모두 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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