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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을 항해하면서 발견한 다시 읽고 싶은 글을 스크랩했습니다. 인터넷 공간이 워낙 넓다보니 전에 봐 두었던 글을 다시 찾기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닙니다. 그래서 스크랩할만한 글을 갈무리합니다. (출처 표시를 하지 않으면 글이 게시가 안됩니다.) |
이스라엘 수도원을 찾아서(5)게라시모스 수도원, 세례 요한 빈들 수도원
수도관상피정 당당뉴스............... 조회 수 274 추천 수 0 2018.07.02 00:04:17출처 : | http://www.dangdang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2704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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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 수도원을 찾아서(5)게라시모스 수도원, 세례 요한 빈들 수도원
선각자의 시계는 5분 빠릅니다. 후각자는 10분 정도 지나야 이해하게 됩니다. 뜻있는 많은 분들이 수도원 영성이 필요한 때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더구나 한국에 개신교 봉쇄 수도원은 단 한 곳도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나에게 봉쇄 수도원 영감을 주셨습니다. 한번 들어가면 살아서는 물론 해골도 나오지 않는 곳이 봉쇄 수도원입니다.
하나님의 뜻 찾기
봉쇄 수도원을 세우는 것이 하나님의 뜻인지 내 생각인지 분별할 수가 없었습니다. 농사군 기드온에게 하나님께서 지휘관이 되어 미디안을 물리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이 정말 하나님의 뜻인지 알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기도하였습니다.
“기드온이 하나님께 여쭈되 주께서 이미 말씀하심 같이 내 손으로 이스라엘을 구원하시려거든 보소서 내가 양털 한 뭉치를 타작 마당에 두리니 만일 이슬이 양털에만 있고 주변 땅은 마르면 주께서 이미 말씀하심 같이 내 손으로 이스라엘을 구원하실 줄을 내가 알겠나이다”(삿 6:36-37)
기드온이 아침에 일어나서 양털을 짜니 물이 그릇에 가득하게 되었습니다. 기도한 그대로 되었습니다. 기드온은 한번 더 확인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한번 더 요청을 하였습니다.
“기드온이 또 하나님께 여쭈되 주여 내게 노하지 마옵소서. 내가 이번만 말하리이다. 구하옵나니 내게 이번만 양털로 시험하게 하소서. 원하건대 양털만 마르고 그 주변 땅에는 다 이슬이 있게 하옵소서”(삿 6:39)
그 밤에 하나님은 그렇게 하여 주셨습니다. 주변 땅에는 이슬이 있고 양털만 마른 상태 그대로 있었습니다. 나도 내가 봉쇄 수도원을 세우는 것이 하나님의 뜻인 지 알아 보고 싶었습니다. 우리 교회는 내가 개척한 교회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모든 일이 평탄하였습니다. 그런데 봉쇄 수도원을 세운다고 하니까 반대에 부딪쳤습니다. 아내부터 반대자의 대열에 섰습니다. 장로님들도 물론이고 교인들이 반대하였습니다. 나는 무소유로 살았습니다. 그래서 수도원을 세울 돈이 없습니다. 교회가 세워주어야 합니다. 그런데 모두 반대입니다. 그래서 이런 기도를 드렸습니다.
“우리 교회 돈 사용하지 않고, 빚지지 않고 수도원을 세워 주시면 하나님의 뜻으로 알고 순종하겠습니다. 봉쇄 수도원을 세우고 안 나가겠습니다.”
이렇게 기도하면서 2년 동안 수도원 세울 땅을 찾았습니다. 경상도, 전라도, 강원도, 충청도 서울 근교 헤메고 다녔습니다. 정자좋고 물 좋은 곳은 없었습니다. 좋은 땅이라고 하면 비쌌습니다. 벌써 누군가가 멋지게 개발해 놓았습니다. 싼 곳은 내가 들어가서 평생 동안 안 나오기에는 조건이 맞지 않았습니다. 그 동안 수도원을 세우겠다고 하면 기증하겠다고 한 곳이 9곳이었습니다.
1. 강화도 땅 600평을 순복음 교회 반인홍 목사님이 제일 먼저 기증 제안을 하였습니다.
2. 상주 땅 13만평.
3. 강릉에 6,800평.
4. 옥천에 손기석 집사가 자기 집과 땅을 기증하겠다고 하였습니다.
5. 옥천에 정찬희 장로가 1만평.
6. 대전에 이선희 집사가 자기 집과 1000평을 수도원으로 내놓았습니다.
7. 충주에 이회학 장로가 땅 1000평과 건물을 수도원으로 제공하였습니다.
8. 홍성에 김걸 권사가 땅 10,000평을 수도원에 제공하겠다고 제안하였습니다.
9. 우리 교회 김의중 권사가 전라도 무안에 자기 땅을 제공하겠다고 하였습니다.
모두 답사하였습니다. 내가 들어가서 평생 살기에는 적합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예수님 오시는 날까지 수도원으로 존립하기에는 적당한 곳이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모두 거절하였습니다. 그러던 중에 충주 산척면에 폐교가 있는데 수도원 자리로 좋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가보았습니다. 2년 동안 찾던 자리라는 마음이 단번에 들었습니다. 계약하기로 하였습니다.
내가 좋다고 하니까 정찬희 장로 부부, 김재성 장로, 아내 그리고 충주 이회학 장로부부 모두 여섯 분이 계약하겠다고 모였습니다. 막상 계약하러 가자고 하니까 나는 왠지 내 감옥소같이 느껴졌습니다. 들어가면 평생 나오지 않을 곳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다른 핑계를 대고 가지 않았습니다. 계약금 3억원은 정찬희 장로님이 주셨습니다. 6명이 계약을 치루면서 서로 말했습니다.
“우리가 다 지불하자.”
그래서 계약하면서 3명이 모든 금액을 다 치루었습니다. 교회 헌금 한 푼 없이, 빚 없이 이루어졌습니다. 기도대로였습니다. 나는 하나님이 봉쇄 수도원을 허락하신 것으로 확신하게 되었습니다. 더 이상 의심하면 하나님을 욕되게 할 것 같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제 봉쇄 수도원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 아름다운 산으로 둘러쌓인 충주 수도원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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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쇄 수도원에 들어가면
답답함을 느끼거나 후회할 지도 모릅니다. 평생 봉쇄 수도원에서 살고 있는 수도사에게 방문자가 물었습니다.
“매일 무엇을 하시나요?” 수도사가 말했습니다.
“매일 넘어졌다 일어났다 합니다.”
이것이 수도사의 삶입니다. 나는 봉쇄 수도원에 들어 간 것을 후회하는 마음이 들 때마다 이런 생각을 할 작정입니다.
1. 덤으로 사는 삶이라는 것을 되새길 것입니다.
이미 나는 3번 죽었던 몸입니다.
나는 두 살 때 이북에서 피난나왔습니다. 1.4 후퇴때였습니다. 과림리에 방을 하나 얻어서 할아버지 할머니가 어른이니까 아랫목에 누웠습니다. 큰 어머니가 아들을 안고 가운데, 어머니가 나를 안고 추운 윗목에 누워 잘 때였습니다. 어머니는 너무 추워 내가 얼어 죽을까 두려워 사타구니에 나를 넣고 잤습니다. B29가 날라와 폭탄을 떨어뜨렸습니다. 아랫목에 떨어져 4명이 다 비참하게 죽었습니다. 이튿날 영하 10도 날씨에 무덤 하나를 파고 같이 묻었습니다. 어머니는 그 때 심장병을 얻었습니다. 고생하시다가 20년 후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나만 살아남았습니다. 나는 이미 죽은 몸입니다.
월남전에서도 그랬습니다.
월남전에 참전하였을 때였습니다. 나 혼자 미군 부대에서 통역으로 근무하고 있었습니다. 주일이면 짚차가 나를 데리러 왔습니다. 나트랑 야전사령부 교회 반주자로 일할 때였습니다. 비가 앞이 안 보일 정도로 쏟아지는 날이었습니다. 짚차가 굴러 옆에 있는 냇가로 굴러 거꾸로 박혔습니다. 정신을 잃고 있다가 깨어 보니 내 코밑으로 물이 흐르고 있었습니다. 밖에서 소리가 들렸습니다.
“강 병장은 죽었나 보다.” 만일 그 때 짚차가 10cm 만 더 깊이 빠졌어도 나는 죽었을 것입니다. 나는 이미 두 번째 죽은 몸입니다.
세 번째 죽었던 때가 있습니다.
대치동에서 부흥회를 인도할 때였습니다. 배가 쥐어 뜯는 것처럼 아팠습니다. 그 교회가 일년 동안 준비한 집회라고 생각하니 중단할 수가 없었습니다. 약국에 가서 진통제를 사서 한 주먹씩 먹으면서 집회를 인도하였습니다. 3일 지났습니다. 교회로 돌아 와서 주일 예배를 마치고 병원으로 달렸습니다. 맹장이 터진지 3일 지났습니다. 창자가 썩어서 30 cm 짤라냈습니다. 의사가 말했습니다.
“의사 생활 수 십년에 가장 미련한 사람을 만났습니다. 당신입니다. 당신은 이미 죽었어야 했습니다.”
나는 덤으로 사는 생명입니다. 그래서 봉쇄 수도원에서 감사하면서 살 것입니다.
2. 35년 발레 여인을 생각할 것입니다.
미국 네바다 주 어느 한 마을 이야기였습니다. 대평원이 수 백 km 펼쳐지고 있는 중간에 한 마을이 있었습니다. 차가 달리다가 기름이 떨어지면 들어와 기름을 넣는 주유소가 하나 있었습니다. 그리고 몇 일이고 달리다가 정 피곤하면 와서 자는 여관 한 개가 이 마을 전부였습니다. 주민은 총 7명이었습니다. 어느 날 한 여인이 가다가 기름이 떨어 졌습니다. 그 여인은 기름을 넣으러 그 마을에 들어 갔다가 그 마을에 반해 버렸습니다. 조용하고 사람이 사람을 그리워 하고 친절하고 한 가정 식구처럼 살아가는 모습에 지상천국같은 느낌을 받았습니다. 스트레스 받을 일도 줄 사건도 없는 곳이었습니다. 그래서 그 여인은 이 곳을 떠나지 않고 같이 살기로 작정하였습니다.
그 여자의 직업은 발레리나였습니다. 그는 그 마을에 극장을 만들고 무대를 만들었습니다. 그가 하고 싶은 일은 발레였습니다. 매일 혼자 그 극장에서 발레 춤을 추었습니다. 보는 이는 단 한 명도 없었습니다. 그저 그것이 하고 싶었을 뿐입니다. 누가 미쳤다고 손가락질 하여 보아야 7명밖에 없다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그런데 그런 생활이 그렇게 좋을 수가 없었습니다. 놀라운 것은 35년간을 단 하루도 빠지지 않고 혼자 발레를 침묵속에 하였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던 어느 날 그 여인은 수많은 관객들이 몰려 오는 꿈을 꾸었습니다. 그래서 극장 벽에 사람들을 빼곡하게 그려 놓았습니다. 그림 관객앞에서 즐겁게 혼자서 춤을 추었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일이 생기기 시작하였습니다.
기름을 넣으러 왔던 이들이 발레를 구경하고 가기 시작하였습니다. 여관에 자러 왔던 이들이 관람을 시작하였습니다. 소문이 나기 시작하였습니다. 사람들이 몰려 들기 시작하였습니다. 이제는 60세가 넘었습니다. 혼자서 35년간 발레 춤을 단 하루도 빠지지 않고 극장에서 침묵속에 추었다는 소문은 꼬리에 꼬리를 물었습니다. 그 여자의 춤보다는 그 여자를 보러 수많은 인파가 몰리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래서 그 마을 사람들 7명은 모두 부자가 되었고 그 마을은 이제 큰 마을이 되었습니다. 이 여인을 생각하며 봉쇄 수도원에서 살 것입니다.
3. 벤구리온을 생각하며 살 것입니다.
이스라엘 초대 수상 벤구리온은 13년 수상직을 수행하고 퇴임하는 날 차를 네게브 사막으로 몰았습니다. 67세였습니다. 그는 1973년 12월 1일 87세로 숨을 거둘 때까지 사막에서 지냈습니다. 한 평이라도 더 옥토로 만들며 살았습니다. 그 분을 기억하면서 살 것입니다. 나는 이제 죽음을 준비하며 살 때입니다. 잘 죽기 위하여 잘 살 것입니다.
내일 죽을 것처럼 거룩하게 살며, 100년 후에 살 것처럼 계획을 세울 것입니다.
한국교회를 위한 대안
한국 교회는 지금 “마이너스 성장”, “하향 성장 곡선”이라는 말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이를 “프러스 성장”, “상향 곡선”이라는 말로 바꿀 대안은 수도원 운동이라고 생각합니다. 사실, ‘성장’, ‘상향’ ‘속도’ 이런 것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방향이 중요하니까요. 뻐꾸기는 노래하게 되어 있듯이 사람은 영혼을 사모하게 되어 있습니다. 깊은 영을 그리워하는 본능을 하나님이 사람들에게 넣어 주셨습니다. 수도원 운동의 깊은 영성은 한국 교회가 나아갈 방향을 제시해 줄 것입니다.
수도원 운동에 반대 이론
수도원 운동은 성경과 반대된다고 주장하기도 합니다. 세상을 피하여 사막이나 산속이나 동굴에 들어가서 사는 것은 성경적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은둔 수도는 다음과 같은 문제가 있다고 지적하고 있습니다.
1. 성경의 전통과 어긋난다.
성경은 은둔을 원하고 있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급에서 가나안에 들여보낼 때에는 수도원적인 삶을 원하지 않으셨습니다. 금욕과 고행은 성경적이 아닙니다. 예수님도 수도원에 대하여 언급조차 하지 않으셨습니다. 은둔은 박해받던 시대에 나타난 산물에 불과합니다.
2. 정통 교리에 어긋난다.
정통교리는 하나님은 세상을 사랑하셔서 세상 속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셨습니다. 예수님은 세상에 오셔서 세상 속에서 사셨습니다. 세상 속에서 순교하는 것이 성경적 전통입니다. 완전한 인간이 되신 하나님 예수 그리스도는 세상을 구원하시기 위하여 세상에서 사셨습니다. 그래서 세상을 떠나는 것은 반 그리스도적입니다.
3. 닫힌 길이다.
수도원 영성은 누구나 갈 수 있는 보편적인 길이 아닙니다. 금욕의 길, 은둔의 삶은 보편적인 삶이 아닙니다. 특별한 사람만 들어갈 수 있는 길은 길이 아닙니다. 그림의 떡은 배고픈 사람에게 아무 유익이 되지 않습니다. 참 진리는 숨겨져 있지 않습니다. 진리는 세상 속에서 있어야 합니다.
4. 현실과 무관하다.
은둔은 세상을 등짐으로 시작합니다. 예수님처럼 거룩해지기 위하여 은둔하는 것은 예수님의 방법이 아닙니다. 이 땅에서 다른 사람을 섬기고 발을 닦아주고 사랑하는 것이 예수님의 방법입니다. 세상에 대하여 무관심 하는 것은 예수님의 방법이 아닙니다. 세상에서 죽어가는 영혼에 대하여 무관심합니다. 그래서 수도원 운동은 <은총의 종교>를 <행위의 종교>로 전락시켰습니다. <타력 신앙>을 <자력 신앙>으로 변질시켰습니다. 바리새파형으로 방향을 전환시킨 것이 수도원 운동이기에 수도원 운동을 반대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지만은 않습니다. 우리는 수도원에 대한 인식을 바꾸어야 합니다.
1. 수도원은 구시대 유물이 아니라 새로운 삶의 추구이다.
2. 수도원은 천주교 전통이 아니라 성경적 모델이다.
3. 수도원은 도피 아니라 세상 포용이다.
4. 수도원은 사람을 떠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로 접근하는 것이다.
5. 수도원은 세상으로부터의 잊혀짐이 아니라 하나님의 관심을 끄는 것이다.
6. 수도원은 무의미가 아니라 영원을 찾는 순례이다.
7. 수도원은 세상을 등짐이 아니라 기도의 화력을 일으키는 기도 발전소이다.
8. 수도원은 가난을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영적 부요 창고를 건설하는 것이다.
9. 수도원은 외적 고통의 회피가 아니라 내적 전쟁터로의 참전이다.
10. 수도원은 영적 영웅이 되는 것이 아니라 고독한 겸손으로 내려감이다.
11. 수도원은 체험 추구가 아니라 조용한 침묵을 시작하는 것이다.
12. 수도원은 매력이 아니라 끊임없는 자기와의 싸움이다.
13. 수도원은 세상으로부터 이방인이 되는 것이 아니라 진정한 하나님의 식구가 되는 것이다.
14. 수도원은 세상으로부터의 자유함을 얻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구속을 받는 것이다.
15. 수도원은 자기를 세우려는 것이 아니라 자기 비움이다.
16. 수도원은 혈연 가정을 떠나는 것이 아니라 복음 가정을 건설하는 것이다.
17. 수도원은 현실을 거절하는 것이 아니라 내일을 보는 것이다.
18. 수도원은 세상을 떠나는 것이 아니라 영원한 생명의 오아시스에 머무름이다.
19. 수도원은 육적 생활의 기피가 아니라 영적 보화의 탄광 개발이다.
20. 수도원은 고행이 아니라 자유함이다.
21. 수도원은 입술의 떠남이 아니라 귀사용의 시작이다.
22. 수도원은 세상에 대하여 말하기를 침묵하는 것이 아니라 세상을 듣지 아니하려함의 침묵이다.
23. 수도원은 울면서 떠나는 길이 아니라 웃으면서 머무는 안식처다.
한국 교회를 다시 성장시킬 수 있는 대안은 수도원 운동입니다.
수도원의 교회론적인 이해
이미 개신교 수도원 영성을 흘리고 있는 김락현 목사는 그의 책 <개신교 수도원 생활 신학>이라는 책에서 교회를 위한 교회 사역을 다음과 같이 정리하여 주고 있습니다. 수도원은 교회를 위한 기관이 되어야 합니다. 수도원과 교회는 다음과 같은 관계를 가져야 합니다.
1. 수도 생활은 교회 사역의 한 영역이다.
수도 생활은 하나님의 백성들의 성역적 성격에 한 분야다. 특별한 참여 부분이다.
2. 특수한 방법으로 하나님을 섬기는 유익이 되어야 한다.
교회 생활과 분리되면 안 된다. 특별한 사명에 참여하는 특별한 분야다.
3. 수도사는 교회를 위하여 존재한다.
수도사는 자신이 교회의 일부라는 것을 잊지 말고 하나님의 성품에 참여하는 모델이 되어야 하는 사명자다. 교회를 한 차원 높은 영성으로 끌어 올리는 데 기여하여야 한다.
4. 수도사는 성화 사명을 감당하여야 한다.
수도사의 존재이유가 분명하다. 세상을 등지고 오직 십자가, 오직 하나님의 세계를 보여주는 예수 그리스도의 편지가 되어야 한다.
5. 수도사와 수도원은 지역 교회를 섬겨야 한다.
이런 의미에서 이스라엘에서 91 곳 수도원을 본 중에 두 곳을 소개합니다.
▲ 게라시모스 수도원 내부 전경 |
게라시모스 수녀원(Gerassimos Monastery)
바람이 몹시 부는 날이었습니다. 45도 날씨가 에어컨을 무색하게 했습니다. 광야의 더위는 더 더웁게 느껴집니다.
여리고 광야에 우뚝 솟아 있는 게라시모스(Gerassimos) 수녀원을 찾아갔습니다. 나에게 게라시모스라는 이름은 처음이었습니다. 생소하였습니다. 그러나 들어가 보는 순간 역사성을 실감할 수 있었습니다. 이 수도원에는 평생 수도하다가 죽은 수녀들의 유골이 많았습니다. 해골뿐만 아니라 손발 뼈까지 모두 진열장에 넣어 두고 있었습니다. 누구에게든지 공개하고 아무나 사진을 찍을 수 있도록 했습니다. 해골을 보면 등골이 오싹해야 하는데 거룩의 향기가 나는 듯 했습니다.
게라시모스(Gerassimos) 수녀원 창립
게라시모스(Gerassimos) 수녀원은 455년에 세워졌습니다. 약 1600년의 역사를 지니고 견디어 온 수녀원입니다. 아보트 게라시모스(Abbot Gerassimos)가 세웠습니다. 그는 “유대 광야의 아버지”라는 별명을 지니고 있습니다. “유대 광야의 스승”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해마다 3월 4일 사순절로 접어들면서 게라시모스 축제를 벌이고 있는 것이 정교회의 정통입니다.
게라시무스는 루기아 (Lycia) 출신입니다. 루기아는 바울이 로마로 압송되어 갈 때, 배의 행선지 중의 한 곳입니다(행 27:5). 루기아에서 이미 수도사 생활을 경험한 게라시모스는 요단 평야의 수도원 운동에 중대한 영향을 미쳤습니다.
게라시모스가 수녀원을 세우게 된 동기
게라시모스가 수녀원을 유대 광야에 세우게 된 특별한 동기가 있습니다. 게라시모스는 늘 동굴에서 기도를 드렸습니다. 그가 기도한 동굴이 마리아와 요셉이 아기 예수를 데리고 애굽으로 피난 갈 때 하룻밤 머물렀던 동굴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 동굴을 찾았습니다. 요단강을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요단강은 세 번 갈라졌습니다. 처음 여호수아가 갈랐습니다. 그 다음 엘리야가 요단강을 갈라 건너고 승천했습니다. 엘리사가 그 곳을 다시 가르고 돌아왔습니다. 바로 게라시모스 수녀원 근처입니다.
요단강을 바라보며 광야에 동굴이 있었습니다. 바람이 몹시 불었습니다. 내 생애에서 최고의 먼지를 뒤집어 쓴 날이었습니다. 광야의 사막 모래와 흙이 3미터 앞을 볼 수 없게 만들고 있었습니다. 바람이 세차게 부는 날이었습니다. 멀리서 보니 동굴 언덕위에서 소리를 지르며 기도하는 10여명의 무리가 있었습니다.
한국말로 “주여!”를 외치는 소리를 들으니 분명히 한국인이었습니다. 한국사람 외에는 그가 기도했던 동굴 근처에 단 한명도 없었습니다. 반가워서 다가가 만났습니다. 서로 반가워했습니다. 알고 보니 성막 세미나에 참여했던 분들이었습니다. 내가 이미 알고 있는 부산에서 오신 목사님들이었습니다. 우리 민족은 하나님보시기에 아름다운 민족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깎아지른 듯한 절벽을 타고 내려갔습니다. 게라시모스가 기도하던 동굴이 나타났습니다. 지금도 그 동굴 안에서 기도하는 이들이 많다고 합니다. 게라시모스는 이곳에서 촛불을 켜놓고 초가 다 사라질 때까지 기도했다고 합니다. 동굴 여기저기에 물건을 올려놓을 수 있도록 파놓은 곳이 보였습니다.
게라시모스가 이 동굴에서 기도할 때 유명한 일화가 있습니다. 소책자 한 권이 될 정도의 이야기입니다. 게라시모스가 간절히 하나님께 기도드릴 때 사자 한 마리가 나타났습니다. 사자는 옆에 와서 같이 기도했습니다. 게라시모스가 사자를 쓰다듬어 주었습니다. 부산 이옥란 감림산 기도원 수도사님이 생각났습니다. 그가 지금 감림산 기도원 자리에서 50여 년 전 기도할 때였다고 합니다. 늑대가 나타나서 옆에서 울부짖으며 같이 기도했다고 합니다. 게라시모스에게는 사자가 나타나 기도하는 그를 도왔습니다.
어느 날 사자 왼 발에 가시가 박혀 있었습니다. 사자는 절룩이면서 게라시모스에게 왔습니다. 게라시모스는 가시를 빼주고 기도해주었습니다. 상처가 깨끗이 나았습니다. 그 후부터 사자와 게라시모스는 한 식구가 되었습니다. 게라시모스는 사자와 같이 지냈습니다. 기도할 때 다른 맹수가 오지 못하도록 사자는 굴 입구를 막고 앉아 지켜주었습니다. 밤에는 찬바람이 들어오지 못하도록 굴 입구를 막아주기도 했습니다.
어느 날 게라시모스가 타고 다니는 나귀가 강물에 빠져 휩쓸려 내려갔습니다. 사자가 건져주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도둑이 와서 나귀를 훔쳐 갔습니다. 사자를 훔쳐갈 수는 없었기 때문입니다. 사자는 도둑이 나귀를 훔쳐가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게라시모스에게 가서 이 사실을 말했습니다. 게라시모스는 사자의 말을 알아들을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게라시모스가 사자에게 조용히 물었습니다.
“네가 잡아먹었니?”
그 후 사자는 말없이 더욱 충성했습니다. 뒷발로 항아리를 잡고 절룩거리면서 요단강에서 물을 길어다 주었습니다. 사자는 평생 게라시모스의 동반자가 되었습니다. 게라시모스가 죽었을 때 그 사자도 그의 무덤위에서 애통하다가 죽었습니다.
▲ IMG_9605 게라시모스에서 수도하던 수도사들의 해골을 전시해 놓았다. 이외에도 전시된 해골이 더 많이 있다. 해골 밑 사진속에 주인공들의 살아생전 초상화가 있다. |
게라시모스
게라시모스는 미라(Myra of Lycia)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리고 475년 주 안에서 부름을 받아 그 후부터 늘 하나님과 함께 살았습니다. 그는 깊은 기도와 탁월한 영성으로 지혜와 슬기가 남달랐습니다.
지금 게라시모스 수도원에는 20명의 수녀가 함께 살고 있습니다. 남자들과 접촉을 금하고 있었습니다. 안내하는 늙은 수녀만이 관광객들을 맞이했습니다. 마주친 여인에게 말을 걸었습니다. 독일에서 온 여자인데 이 수도원 게스트하우스에서 3개월 머물며 기도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맑은 영을 전달받으려고 몸부림치는 중이라고 했습니다.
중국을 짝퉁의 천국이라고 합니다. 모조품을 잘 만드는 나라입니다. 지난번 TV를 보니까 달걀까지 똑같이 만들어내고 있었습니다. 가짜 달걀입니다. 그런데 어느 날 한 분이 삶을 비관하여 자살하려고 농약을 마셨습니다. 그런데 죽지 않았습니다. 농약이 짝퉁 가짜였기 때문입니다.
참 목사, 참 장로, 참 성도가 그리워지는 세상입니다. 이런 세상에서 게라시모스는 참으로 하나님의 사람으로 살았습니다. 참 그리스도인이 되려고 몸부림치며 살았습니다. 돌아서는 길은 먼지로 뒤범벅되는 순간이었습니다. 한 치 앞이 안 보인다는 표현이 정확했습니다. 안개로 시야가 그렇게 가려진 적은 몇 번 있었습니다. 그러나 모래먼지로 이렇게 앞이 안 보이는 것은 처음입니다. 같이 갔던 이들이 신음소리를 냈습니다. 우리를 인도하던 강종인 목사가 말했습니다.
"게라시모스는 이런 날에도 기도하러 동굴로 갔거든요."
세례 요한 빈들 수도원(St. John of the desert fraciscan Convent)
신약 성경에 나타난 최초의 수도사는 세례 요한일 수도 있습니다. 빈들에서 메뚜기와 석청을 먹으면서, 약대 털옷을 입고 살았습니다. 그리고 바른 말을 했습니다. 할 말을 했습니다.
수도원에 있는 수도사가 아니라 수도원 밖에서 외치는 수도사였습니다. 먹는 것, 입는 것, 자는 것이 세상 사람과 다른 모습의 수도사였습니다. 그는 “광야에서 외치는 소리”였습니다. 세례 요한이 그렇게 외쳤던 빈들에 세례요한 수도원이 세워져 있었습니다. 아침 일찍 찾아갔습니다.
▲ 세례요한 빈들수도원 전경이다. |
세례요한 탄생일
절벽에 절묘하게 붙여 지은 수도원이었습니다. 여기저기 만국기가 시골 초등학교 운동회 때처럼 늘어져 있었습니다. 이벤트가 있느냐고 물었습니다.
“오늘 저녁 6시부터 세례 요한 탄생 기념 축제가 있습니다.”
2천년이 지나도 생일을 차려주는 이들이 있다는 것은 얼마나 잘 산 인생일까요? 비록 헤롯에게 목베임을 당해죽었지만 그를 그리워하는 이들이 온 세계에서 끊임없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2천년 후 누가 나를 알아주고, 내 생일을 기억하고 만국기를 걸어 생일을 차려줄 사람이 있을까 생각해보았습니다.
▲ 세례요한의 모친인 엘리사벳의 무덤이다. 1층은 무덤이고 2층은 수녀들이 수도처가 세워져 있다. |
엘리사벳 무덤
수도원 건물에서 산으로 약 200m쯤 올라갔습니다. 세례 요한의 어머니 엘리사벳의 무덤이 있었습니다. 2천 년 전 살았던 분이라 뼈는 없고 무덤만 남아 있었습니다. 유대인의 장례법대로 돌을 파고 굴을 만들어 그 안에 시신을 넣어 두었기에 시신은 가루가 되었어도 돌무덤은 수천 년이 지난 지금도 그대로 남아있습니다. 그 곳에 예배실을 만들었습니다. 기도실도 세웠습니다. 많은 이들이 세례요한을 잘 길러 민족에 내놓은 어머니 엘리사벳을 기리며 기도하고 예배드리는 처소입니다.
세례 요한 동굴
예수님이 태어나셨을 때 헤롯은 두 살 이하 어린이를 모두 잡아 죽였습니다. 유대인들은 환란이 많은 민족입니다. 하늘을 두루마리 삼고 바다를 먹물로 삼아도 그들이 핍박받은 역사를 다 기록할 수 없을 정도라고 자기들이 말하고 있습니다.
애굽에서는 바로 왕이 아들을 낳으면 모두 나일강에 던져 죽게 했습니다. 헤롯은 두 살 이하 어린아이를 모두 죽였습니다. 그런 가운데 세례 요한은 죽지 않고 살아남았습니다. 애굽왕 바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아들을 낳으면 모두 죽였습니다. 모세 어머니 요게벳은 모세를 몰래 숨겨 길렀습니다. 그가 나중에 민족을 이끄는 지도자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임에 틀림없지만 어머니의 지혜였습니다. 생명을 걸고 모세를 지켰기에 모세가 있게 된 것입니다.
세례요한도 같습니다. 어머니 엘리사벳이 세례요한을 업고 이 동굴로 도망쳐왔습니다. 그리고 빈들의 동굴에서 요한을 길렀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오실 길을 예비하는 위대한 인물을 탄생시켰습니다. 어머니의 지혜입니다. 목숨을 걸고 동굴에서 산 어머니의 지혜입니다. 수도원 안에 그 동굴이 있었습니다.
그 동굴 안에서 기도하면서 하나님의 사람은 하나님이 지키신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위대한 사람 뒤에는 지혜로운 어머니가 있음도 깨달았습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이 쓰실 사람을 지키십니다. 하나님은 지원병을 쓰시지 않고 차출병을 쓰십니다. 자기가 하나님의 일을 하겠다고 나서는 이를 하나님은 특별하게 사용하지 않으셨습니다. 모세도, 바울도, 베드로도, 기드온도, 아브라함도 모두 하나님이 차출하셨습니다. 싫다는 것을 억지로 불러 사용하셨습니다.
▲ 헤롯이 두살아래의 모든남자 아이들을 죽이라는 칙령을 내렸을때 엘리사벳이 세례요한을 데리고 와서 숨었다는 동굴이다. |
열 네 분 수도사
세례 요한 빈들 수도원은 수도사 7명, 수녀 7명이 살고 있는 혼성 수도원이었습니다. 물론 수도사들이 사는 숙소는 완전히 독립되어 있습니다. 철저한 금욕생활과 규칙생활을 하고 있었습니다. 일과시간이 정확했습니다. 규율 있는 군대보다 더 엄격한 것이 이 수도원의 생명이었습니다. 세상 모든 것을 포기하고 오직 세례 요한의 영을 임파테이션 받으려는 몸부림이 수도사들에게서 보였습니다. 암모니우스 수도사 같은 영의 사람들이었습니다.
수도사 암모니우스는 사막에서 수도하며 살았습니다. 어느 날 많은 사람들이 알렉산드리아 대주교를 찾아가서 말했습니다.
“암모니우스를 우리들의 감독으로 임명해주십시오.”
대주교는 사막에서 수도하고 있는 그를 불러오면 감독으로 임명해주겠다고 말했습니다. 사람들이 찾아가서 말했습니다.
“세상으로 나와 우리의 감독이 되어 주십시오.”
그러나 암모니우스는 거절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도 포기하지 않고 매달렸습니다. 암모니우스는 가위를 가지고 오더니 자기 왼쪽 귀를 잘랐습니다. 그리고 말했습니다.
“성경은 말하고 있습니다. 레위기 21장 17절에 ‘육체에 흠이 있는 자는 그 하나님의 음식을 드리려고 가까지 오지 못할 것이니라’고 하셨습니다. 나는 이제 제사장이 될 수 없습니다.”
하는 수 없이 사람들은 사막을 떠났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보고했습니다. 이 말을 들은 대주교가 말했습니다.
“그 율법은 유대인들이나 지키는 율법입니다. 만일 여러분이 코 없는 사람을 데리고 와도 나는 인격만 된다면 그를 감독으로 임명하겠습니다.”
사람들은 그 말을 듣고 다시 수도하고 있는 암모니우스에게 갔습니다. 암모니우스는 단호하게 말했습니다.
“만일 당신들이 자꾸만 요구하면 나는 내 혀를 잘라 버리겠습니다.”
그리고 고집스럽게 살면서 평생 수도했습니다. 정욕이 몸에서 올라오면 불인두로 자기 몸을 지졌습니다. 온 몸이 곪아서 고름이 흘렀습니다. 그는 죽기까지 불로 요리한 음식은 빵 외에는 먹지 않고 지냈습니다. 후에 사람들은 암모니우스에 대해 말했습니다.
“우리는 정욕으로부터 암모니우스만큼 자유로운 사람을 본 적이 없습니다.”
그가 세상을 떠나 무덤을 남겼습니다. 그의 무덤에 병자들이 가서 기도하면 병이 나았습니다. 세례요한 빈들 수도원에 샘물이 솟아 흐르고 있었습니다. 사막 빈들에 이런 물이 나온다는 것은 기적 중에 기적이요, 하나님의 은혜 중에 은혜입니다. 수녀님이 와서 말했습니다.
“이 물을 마시고 수많은 이들이 병고침을 받았습니다.”
이 수도원에 하나님이 특별 선물을 주셨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하나님이 긍휼이 여기셨기 때문일 것입니다.
연재를 끝내며
이제 <이스라엘 수도원을 찾아서> 5번 연재로 끝내려고 합니다. 당당뉴스에 연재하면서 수도원 운동에 반대하는 목소리를 많이 들었습니다. 그러나 수도원 영성을 사모하는 이들도 많이 만났습니다.
91곳 방문기가 곧 책 한권으로 출판될 것입니다. 8월 안에 손에 들려진다고 연락이 왔습니다. 나의 나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라는 말씀이 생각납니다. 수도원을 방문할 생각부터 방문까지 모두가 하나님의 은혜였습니다. 수도원 영성을 한국에 전하는 계기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드립니다. 그리고 이렇게 기도하고 있습니다.
“하나님! 1% 감리교인이 수도원 영성으로 수도원을 찾게 하시고, 99% 감리교도들이 거룩, 청빈, 순복의 수도원 영성으로 세상에서 빛되게 살게 하옵소서. 예수님 믿는 차원에서 예수님 닮기로 승화되게 하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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