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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을 항해하면서 발견한 다시 읽고 싶은 글을 스크랩했습니다. 인터넷 공간이 워낙 넓다보니 전에 봐 두었던 글을 다시 찾기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닙니다. 그래서 스크랩할만한 글을 갈무리합니다. (출처 표시를 하지 않으면 글이 게시가 안됩니다.) |
출처 : | http://www.dangdang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3023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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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원은 멋이 아니다.(2)
당당뉴스 2018년 05월 31일
지성수
나는 십대 시절 가정이 불행해서 매우 비관적이었다. 현실에 희망이 없으니까 오히려 비현실적인 꿈을 꾸게 되어 십대답지 않게 현실을 초월해서 수도자가 되려고 했다. 한참 대중문화에 관심을 갖는 고등학교 때도 친구들이 팝송을 들으며 가사를 옮겨 적고 했었는데도 나는 한 번도 관심을 가진 없었다는 것도 떠올려졌다. 성인전에 관심이 많았었던 나에게 사랑이니 이별이니 하는 대부분의 팝송의 내용들이 유치하게 느껴졌었다.
그러나 천주교가 신부나 수도사가 되고 싶었던 나나 수녀가 되었으면 마더 테레사의 사촌쯤은 되었을 내 여동생도 받아주지 않아서 결국 술주정뱅이의 아내가 되어서 별 볼일 없이 평범한 주부로서 살고 있다.
한참 종교적 감수성이 예민하던 나이에 성인에 대한 동경을 하게 만든 결정적인 인물이 있었다. 그는 명동 성당 뒷마당의 한 쪽 구석에 축대에 기대어 무허가로 방 한 칸 판잣집을 들여서 28년을 살다가 간 배 옹 때문이었다. 태어나면서부터 뇌성마비 장애인이었던 배 옹은 교육도 받지 못하고 걸인으로서 살아오면서도 거리에서 담배꽁초를 주워 모아서 팔아서 한 달에 쌀 두 말씩을 고아원에 기증했다. 그가 하는 말은 알아듣기가 어려워서 대화가 안됐지만 나는 그를 자주 만났다. 바보 같은(?) 웃음을 띤 얼굴로 달을 쳐다보면서 앉아 있던 그 분이 혀가 잘 돌아가지 않아 알아듣기 어려운 발음으로 “사람에게 가장 좋은 친구와 원수가 누구냐?” 하고 묻고는 ‘자기 자신’이라고 했다. 그의 성자적 삶은 천주교인들에게 전형적인 수도사의 모델이었다.
전형적인 수도원의 모습을 잘 보여준 영화로 기획부터 완성까지 20 여 년의 세월이 걸려 만든 ‘위대한 침묵’이라는 영화가 있다. 1984년. 필립 그로닝 감독은 '침묵'에 관한 영화를 기획하고 그랑드 샤르트뢰즈 수도원의 문을 두드렸다. 하지만 수도원에서는 "아직 때가 아니다. 10년 뒤에나 가능할 것"이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그로부터 15년 뒤인 1999년 그로닝 감독은 긴 기다림 끝에 수도원으로부터 "이제 준비가 됐다"는 연락을 받게 된다. 그로닝 감독은 6개월간 수도원에서 수도사와 같은 생활을 하며 2년에 걸쳐 촬영을 한 끝에 2005년 영화를 완성했다.
수도원 측은 영화 촬영을 허가하는 대신 몇 가지 조건을 내 걸었다.
첫째 인공조명을 사용하지 않을 것,
둘째 자연적 소리 외 어떤 음악이나 인공 사운드를 추가하지 말 것,
셋째 다른 스태프 없이 감독 혼자 촬영 할 것 등이 그것이다.
덕분에 영화가 상영되는 2시간 40여분 동안 관객은 수도원의 수도사와 함께 하고 있는 듯한 경험을 하게 된다. 이렇다 할 대사도 없고 수도사의 삶과 수도원의 정경이 대부분이다.
내가 호주에서 이 영화를 보았을 당시 단 2개 밖에 없는 비영어권 영화만 상영하는 특수 영화관의 관객은 10 여명뿐이었다. 후배 목사와 나와 가톨릭 신자로 보이는 나이 먹은 사람들 몇 명뿐. 얼마나 지루했는지 나는 한 번 졸도를 했고 같이 갔던 친구 목사님은 3번이나 졸도를 하셨다. 그나마 코를 골지 않아서 천만다행이었지만. 당시 나는 이 영화가 한국에서는 상영이 못 될 것이라고 생각했었는데 몇 년 후 한국에서 성황을 이루었다. 238개 좌석의 단관 개봉으로 시작했지만 조용한 소문을 타고 개봉 26일만에 관객 2 만 명을 돌파했고, 결국 코엑스 메가박스ㆍ압구정 CGVㆍ구로 CGVㆍ광주극장 등에 확대 개봉이 됐다고 한다.
어떻게 그런 현상이 나타났을까? 그것은 천주교와 개신교를 합한 한국의 기독교 자원이 풍부하기 때문이다. 한국의 기독교에는 멜 깁슨이 만든 예수 영화는 낮은 수준에서 기독교 대중을 파고 들었지만 ‘침묵’ 같은 고급 영화도 파고 들어갈 여지가 있다는 것을 보여 준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나는 다소 뜬금없어 보이는 강문호 목사의 수도원 운동도 성공할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 상품으로 비교한다면 한국은 기독교인의 수량도 많고 품종도 다양한 셈이다.
교회사에서 볼 때 수도원은 신비주의의 보고였다. 모든 종교에는 신비주의적인 요소가 있다. 신비주의는 삶을 신비로 바라보는 것이 아니다. 신비주의(mysticism)란 인간이 언어를 넘어서서 직접 초월적인 존재와 접촉할 수 있다는 믿음, 혹은 사상체계를 말한다. 죽은 후에 천국에 간다는 '믿음' 혹은 교리가 신비주의가 아니고 살아서 천국을 체험할 수 있다고 믿는 것이 신비주의이다.
어떤 사람이 랍비 모쉐 라이브에게 물었다.
"당신은 12년 동안이나 스승과 함께 생활했습니다. 그에게서 배운 것이 무엇입니까? 무엇을 얻었습니까? 12년은 긴 세월입니다. 그에게서 경전들의 어떤 의미를 배웠습니까?"
랍비 라이브는 대답했다.
"아니다. 나는 토라를 배우기 위해 스승과 함께 생활했던 것이 아니다. 나는 스승을 관찰하기 위해 그 곳에 있었다. 그가 어떻게 신발 끈을 풀고, 어떻게 그것을 다시 매는가를 지켜보기 위해 그곳에 있었다. 그의 단순한 움직임들을 지켜보는 데에 12년이 걸렸던 것이다. 그가 숨쉬는 방식, 그가 서 있는 방식, 그가 잠자는 방식....이 모든 것이 하나의 명상이었다. 그 모든 것이 하나의 신비였기 때문에 나에게 그토록 오랜 세월이 걸렸던 것이다.
처음에는 내 자신의 생각이 장애물이었다. 그래서 나는 내가 알고 있는 모든 것을 내 머리 속에서 비워내기 시작했다. 그러자 서서히 구름이 걷히고 나는 내 스승을 볼 수가 있었다."
수행자는 행주좌와(行住坐臥), 즉 행하고 머물고 앉고 누울 때 그 어떤 순간도 놓치지 않고 항상 깨어서 자신의 행동을 관찰한다. 결코 '현재'를 놓치지 않는다. 그래서 진정한 제자는 스승의 말과 행동을 보며 그의 ‘깨어있음’을 배운다. 결코 경전과 말을 배우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두 눈으로 신을 볼 수도 없고 이성으로서 신을 궁리할 수도 없지만 우리가 사는 ‘지금’, ‘여기‘에서 우리의 감수성을 연마함으로서 신비적인 경험을 할 수 있다. 예를 들면 마더 테레사가 목적지를 정하지 못하고 기차를 탔는데 “캘커타로 가라.” 는 신의 음성을 분명히 들었다고 하는 것이다.
과학적 자각이 경험에 대한 평면적 접근이라면 신비주의는 입체적인 접근 방법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신비주의는 결코 우리가 사는 세계, 우리의 경험을 뛰어 넘는 피안의 세계로 가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현재 우리가 사는 세계의 ‘깊이’를 발견하고 직시함으로 경험 할 수 있는 것이다. 수도원은 그런 경험으로 인도할 수 있는 좋은 도구인 것이다. 그러므로 아무쪼록 강 목사가 실험하는 개신교 봉쇄수도원에서 아름다운 소식이 많이 들려지기를 기대한다.
지성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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