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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을 항해하면서 발견한 다시 읽고 싶은 글을 스크랩했습니다. 인터넷 공간이 워낙 넓다보니 전에 봐 두었던 글을 다시 찾기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닙니다. 그래서 스크랩할만한 글을 갈무리합니다. (출처 표시를 하지 않으면 글이 게시가 안됩니다.) |
출처 : | http://www.christiantoday.co.kr/news/31521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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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민 문제… 인도주의 앞세운 순진한 다문화주의는 ‘썩은 동아줄’
[최덕성 칼럼] 레바논 참극과 코라비아 로맨스
크리스천투데이 2018.08.17 17:58
1. 기윤실의 성명
...주일예배를 마치고 하버드대학 스퀘어까지 택시를 탔다. 택시운전사는 내전을 피해 미국으로 온 레바논 사람이었다. 운전사에게 “한국인들 상당수는 인도주의 차원에서 제주에 머무는 예멘인 무슬림 난민들을 환영해야 한다고 한다, 당신은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었다.
그는 갑자기 손을 가로젓고 고개를 쩔쩔 흔들었다. “레바논 꼴 난다. 레바논처럼 참극을 겪을 수 있다”고 했다. 그 까닭이 무엇이냐고 하니, “인간의 보편적 가치에 모순되는 이슬람 율법과 무슬림의 특이한 문화와 정신성 때문”이라고 했다. 자신이 미국으로 이주한 것도 그러한 까닭이라고 했다. 기독교인이냐고 물으니 “그렇다”고 했다. 프로테스탄트, 정교회, 로마가톨릭 신자 중 무엇을 믿는지는 물어보지 않았다.
제주도의 무슬림 난민 문제가 화두로 떠오르고 있다. 일부 기독교계가 난민 환영성명을 발표했고, 대한민국 국민 71만명은 청와대에 난민 수용을 반대하는 청원을 했다. 대한민국은 국제연합(UN) 난민기구와 OECD 난민협약 가입 국가다. 난민을 외면할 수 없는 처지다.
하나님은 기독교인과 무슬림에게, 한국인과 예멘인에게 똑같이 해를 비추시고 비를 내리신다. 예수께서는 “네 이웃을 사랑하고 네 원수를 미워하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박해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고 했다. 적극적으로 사랑하라는 말씀이다.
상해 임시정부 요인들은 난민이었다. 예수께서도 출생 직후 헤롯 왕의 위협을 피해 피난길에 올랐다. 그는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남을 대접하라”고 했다. 모든 인간은 사랑의 대상이다. 사랑은 차별, 배제, 혐오, 폭력을 넘어 창녀, 세리, 병자, 장애인, 이방인, 이족을 환대할 때 드러난다.
기독교윤리실천운동(이하 기윤실)은 한국의 진보 기독교계 21개 단체와 함께 예멘 무슬림 난민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라는 성명(2018. 7. 16.)을 발표했다. “벼랑 끝에 내몰린 우리 이웃, 난민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제목의 연대 성명이다. 인도주의, 관용주의, 연민, 긍휼의 심정으로 난민을 전향적으로 받아들이라고 한다.
공동 성명은 이슬람 난민들이 위험한 범죄 집단이라는 말은 근거가 없는 가짜 뉴스, ‘난민 괴담’이라고 한다. 가난한 나라, 낯선 종교에 대한 편견, 낭설이라고 한다. 근거 없는 부정적 여론을 확산시키지 말고, 차별과 배제를 버리라고 한다. 개신교인들을 향하여 “이슬람 혐오주의를 참회하라”고 꾸짖는다.
공동 성명은 인도주의를 앞세운 다문화주의에 기초하고 있다. 다문화주의-문화상대주의는 다양한 문화를 상호 존중하는 태도이다. 무슬림 난민 문제는 다문화주의에 직결되어 있다. 과연 기독교인들이 알고 있는 제주 난민 지식은 가짜 뉴스, 난민 괴담, 편견, 낭설인가? 무슬림 난민 문제는 엄중한 국가적 사회적 민족적 사안이다. 박혀 있는 돌을 빼낼 굴러 들어오는 돌일 수 있다.
2. 레바논 다문화주의
레바논은 다문화주의 정책 때문에 초토화된 국가다. 다문화주의가 불러온 참극으로, 기독교 국가에서 이슬람 국가로 전환되고 있다. 레바논은 ‘종교 모자이크(Mosaic) 사회’다. 국민은 크게 기독교와 이슬람으로 나뉜다. 공식 27개, 비공식 40여개의 종파가 존재한다. 각 종교 간 다양한 문화, 삶의 방식, 신념 등을 서로 존중하는 사회였다. 한동안 국가와 국민들 사이에 여러 종교인들과 다양한 문화를 가진 사람들이 사이좋게 공존했다. 국가 권력은 종교 분포에 따라 균형 있게 배분됐다. 국가와 사회는 다문화주의에 자부심을 갖고 있었다.
그래서 레바논은 한때 ‘중동의 파리’라 불렸다. “이집트 사람이 책을 쓰면 레바논에서 출판하고, 이라크 사람이 읽는다”는 말이 있다. 중동 무슬림 학생들이 문화 수준이 높은 레바논으로 유학을 왔고, 졸업 후 돌아가지 않고 정착했다. 그러다 일부다처제, 다자녀 문화에 따라 무슬림 인구가 늘어났다. 이스라엘이 독립하면서 팔레스타인 무슬림 난민들이 몰려들었다.
어느 시점에 이르자, 무슬림은 힘을 결집하여 기독교 정부군을 공격했다. 교회당에 들어와 예배드리는 기독교인들을 사살했다. 기독교인 대통령을 살해했다. 들어온 돌이 박힌 돌을 빼낸 것이다. 기독교 국가 레바논은 유학생 정착과 난민 환영 정책으로 궤멸될 지경이 되었고, 도시들은 마비됐다. 무슬림은 세력을 규합하여 기독교 정부군을 공격했다. 이슬람 시아파와 수니파는 자기들끼리 격전을 벌였다. 유혈 참극이 그치지 않는다. 현재 레바논 기독교인들은 대부분 이스라엘 점령지인 남부에 살고 있다고 한다.
3. 마론파 기독교
이스라엘 왕 솔로몬은 성전과 궁전 건축에 레바논산 백향목을 많이 사용했다. 성경은 레바논을 산, 숲, 수풀, 백향목, 들짐승과 관련시켜 언급한다. 레바논은 동지중해 해안 국가이며, 남쪽은 이스라엘, 북쪽과 동쪽은 시리아에 접해 있다. 영토는 경기도 크기만 하다. 현재의 인구는 609만 3,500명(2018 추계)이다. 국가 독립 당시 인구의 85% 이상이 기독교인이었으나, 무슬림 유학생들의 정착과 팔레스타인 난민 유입으로 상황은 역전됐다. 2018년 현재 무슬림이 60%, 기독교인이 39%로 바뀌었다.
레바논은 인류의 오랜 정착지다. 지중해를 누비던 페니키아인, 앗시리아인, 바빌로니아인, 페르시아인, 로마인들이 들어와 살았다. 아랍권 무역의 교두보였다. 로마 제국 시대에는 로마의 통치 아래 있었다. 4세기에 콘스탄티노플 중심의 동로마 제국, 곧 비잔틴 제국의 일부가 되었다.
레바논은 마론파 기독교인이 다수인 나라였다. 수도사 마론(410 또는 423 몰)의 이름을 딴 시리아 기독교를 받아들였다. 7세기 말 무슬림들이 지중해 동부 해안 지역을 점령하자, 마론파 신도들은 레바논 산지로 거주지를 옮겼다. 685년 비잔틴 교회의 통제를 벗어나 독자적인 교회를 세우고 직접 주교를 임명했다.
마론파 기독교 신자들은 12세기에 서방교회가 보낸 십자군을 해방군으로 환영했다. 서방교회는 십자군 전쟁에 기여한 마론파 기독교를 1182년 서방교회의 일원으로 받아들였다. 마론파 신자들은 로마 교회와 유럽 국가들의 지원을 받으면서 지중해 연안에서 기독교 세력을 키웠다. 십자군이 중동에서 마지막 요새를 잃은 1302년 이후에도, 이들은 서유럽과 친분을 유지했다.
프랑스는 1638년 오스만 터키제국 내 기독교 집단을 보호하겠다고 선언했다. 레바논은 복잡한 과정을 거쳐 1918년 프랑스의 지배 하에 들어갔고, 오랫동안 중동의 활발한 상업적·문화적 중심지 역할을 했다. 1929년 프랑스의 식민 통치에서 벗어나 공화국이 됐다. 마론파 기독교인들은 프랑스의 보호 아래 1943년 자치권을 획득하고 독립된 기독교 국가를 세웠다.
4. 단성론, 정교회, 프로테스탄트
마론파 기독교는 단성론(單性論, Monophysitism)을 추종했다. 단성론은 그리스도의 완전한 인성을 인정하면서도, 그것이 신성과 결합하여 ‘유일한 본성’ 곧 단성이 되었다고 본다. 인성이 신성에 흡수됐다고 믿는다. 451년 칼케돈 공의회는 단성론을 이단으로 정죄했다.
단성론 추종자들은 로마 제국의 군대의 힘이 미치지 않는 바깥 지역에서 번성했다. 시리아, 레바논, 이집트, 에티오피아, 아르메니아 등지에 산재했다. 이집트의 콥트 교회와 시리아의 야곱파 교회도 단성을 수용한다. 동방의 민족주의적 경향과 결합하여 다종교-다문화주의라는 정치 이데올로기를 발전시켰다.
레바논 동방정교회는 유독 다문화주의를 선호했다. 해변 도시에 사는 정교회 신자들은 평지를 선호하는 압도적인 무슬림 세력들에 둘러싸여 살고 있었기 때문이다. 신학적으로 동방 교회 특히 시리아 교회와 맥을 같이 했고, 민족적으로는 자신들을 아랍인으로 여긴 까닭이다.
이들은 무슬림과 연계된 상황에서 아랍 세계와 범아랍주의를 받아들였고, 이슬람, 무슬림에게 호의적이었다. 레바논에는 이와 비슷한 성향을 지닌 아르메니아계 정교회가 있다. 소수의 프로테스탄트 교회들도 존재한다.
5. 대통령 살해
레바논에는 수니파와 시아파, 그리고 시아파에서 갈라져 나온 드루즈파 무슬림들, 그리고 작은 무슬림 그룹들이 있다. 무슬림 유학생들의 정착과 팔레스타인 난민 유입으로 인구 수가 증가했다. 이슬람 수니파와 시아파의 불만이 고양됐다. 자기들끼리 대립하고 분쟁했다.
그러면서도 기독교 정부군에 대항할 때는 세력을 규합했다. 1975년부터 1990년까지, 기독교 세력과 이슬람 세력의 대립은 수도 베이루트를 파편 더미로 만들었다.
레바논은 종교적 폐쇄성으로 말미암아 다문화사회의 근간이 흔들리자, 종교적 세력에 따른 ‘나눠먹기’식 정치 구도를 만들었다. 대통령은 마론파 기독교인이 맡고, 수상과 국회의장 자리는 무슬림의 양대 종파 출신들이 차지하기로 했다.
기독교인 대통령은 프랑스의 지지를 등에 업는 친서방 정책을 추구했고, 무슬림 출신의 수상과 국회의장은 반서방 정책을 고수했다. 정파 갈등이 국가 전체로 퍼졌다. 1982년 9월 기독교인 대통령 바시르 제나엘(Bashir Genayel)이 폭탄 테러로 무슬림에 의해 살해당했다. 대통령 당선 후 21일 만에 피살된 것이다.
래바논은 1989년 국회위원 의석을 기독교인과 무슬림 동석으로 배분했다. 국회의원은 ‘국민’을 대표하는 자가 아니라, 자신의 종파와 그 공동체를 대표했다. 네번째로 개정한 현행 헌법(2000년)은 종파간 충돌을 막기 위해 국회의원 의석 수를 종파별로 배분했다. 이 때도 1926년 5월 제정한 ‘대통령은 마론파, 수상은 수니파 무슬림, 국회의장은 시아파 무슬림’이 맡는다는 헌법 조항은 유지됐다.
국가는 영토를 지키는 전쟁조직이다. 그러나 레바논 정부군은 중앙통제 기능을 발휘하지 못하고, 국방력을 제대로 갖추지 못했다. 나라 안의 종교적 갈등을 통제할 수 없었다. 무장 세력 간의 갈등이 일어나도 지켜볼 수밖에 없다.
레바논은 힘을 가진 치안 조직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그 틈을 타 무슬림 수니파와 시아파 그리고 드루즈파는 각각 무장 민병대를 조직했다. 기독교 정부군에 뒤지지 않는 무장을 갖췄다.
갈등이 심화되자, 대통령은 외국의 지원을 요청했다. 무슬림 민병대는 대통령이 자국의 내란을 스스로 막지 못하고 외국 지원 요청을 했다는 이유로 기독교 정부군을 공격했다. 시아파 민병대와 수니파 민병대가 단합해 공동의 적인 기독교 정부군을 공격했다. 무슬림들은 정부가 쓰레기를 제때 처리하지 못한다는 이유로, 또 다시 기독교 정부군을 공격했다.
남쪽의 이스라엘은 1979년 남부 레바논 일부를 점령했다. 국경지대에 안전지대를 설정했고, 점령지 방어를 레바논 정부군에게 일임했다. 반이스라엘 무슬림 무장세력들의 도발을 막아달라는 것이었다. 레바논의 기독교 정부군은 친이스라엘이었고, 이슬람 민병대들은 반이스라엘이었다. 이스라엘을 둘러싸고, 무슬림 민병대들은 반정부 무력도발, 내전을 시작했다.
레바논의 교육은 다문화주의 정책 탓에 한 나라의 정체성을 형성시킬 수 있는 국민교육을 시키지 못했다. 마론파 신도들은 자신들의 교육기관에서 프랑스어를 배우고, 프랑스 역사와 유럽 역사, 그리고 기독교를 배웠다. 프로테스탄트들은 미국 정복사와 개척사를, 영어와 기독교를 배웠다. 무슬림들은 아랍어, 이슬람 역사, 샤리아법, 꾸란을 배웠다.
레바논은 역사적으로나 현실적으로 마론파 기독교 국가였다. 그러나 무슬림 유학생들의 정착과 팔레스타인 난민 유입으로, 나라가 이슬람국가로 바뀌어 가고 있다. 인도주의를 앞세운 다문화주의 정책은 굴러들어온 돌이 박힌 돌을 빼낼 수 있도록 도왔다. 순진한 문화다원주의는 썩은 동아줄이었다.
▲샤리아법 적용을 주장하는 영국 내 무슬림들.
6. 신음하는 유럽
유럽은 제1·2차 세계대전으로 말미암아 남성이 부족하자, 무슬림 난민을 받아들이고 노동자들의 체류를 허용했다. 다문화주의가 세계적으로 확산될 때였다. 유럽의 이슬람화는 순진한 인도주의, 진리상대주의, 종교다원주의, 기독교 가치를 부정하는 반기독교운동, 출산율을 떨어뜨린 개인주의 등이 크게 이바지했다.
대부분의 유럽은 ‘소수자 차별금지법’을 받아들였다. 무슬림 문화를 비판할 수 없다. 혐오감을 표현하는 발언을 할 수 없다. 복지국가 스웨덴은 이슬람국가 등 다른 나라에서 재판을 받은 결과를 자기 나라에서도 인정해 주는 법을 만들었다.
영국은 영국 내 무슬림을 위한 샤리아법 법원을 130개나 운영하고 있다. 이슬람은 다른 나라들과 자신들의 법이 충돌할 때, 이슬람법을 우선시한다는 원칙을 가지고 있다. 유럽의 갈등을 목도한 미국의 여러 주들은, 자기 주에서는 미국 법만이 효력을 가진다는 새로운 법을 통과시켰다.
유럽은 무슬림의 종교적·문화적 배타성, 성폭력, 성추행, 테러, ‘타하루시’라고 하는 성폭력-윤간 사건에 시달리고 있다. 명예살인, 일부다처제, 다자녀, 노예제도, 납치 결혼, 여성차별, 학대, 여성할례, 아동성애, 강간, ‘지하드’라고 일컫는 성전, 참수, 화형 등에 공포를 느끼고 있다.
출산율이 낮은 유럽 국가들의 인구는 급격하게 줄어들고, 다자녀 일부다처제를 따르는 무슬림 인구는 급격히 증가하고 있다. 기독교 가치는 소멸되고, 기독교인 수는 급격히 줄어들었다. 프랑스 인구의 10%, 네덜란드 인구의 7%가 무슬림이다. 폴란드, 헝가리, 체코공화국은 유럽연합의 난민 할당을 거부하고 있다. 복지정책이 약한 탓이기도 하지만, 이슬람화를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7. 이슬람 제국 건설
한 국가에 무슬림 인구가 1% 안팎일 때, 그들은 평화를 사랑하는 소수 그룹을 지향하며 수면 밑에 잠복한다. 미국, 오스트레일리아, 캐나다, 중국, 이탈리아, 노르웨이 등이 1단계에 해당한다. 잠복(incubation) 단계에는 큰 문제가 없어 보인다.
무슬림 인구가 2-3%로 증가할 때는 감옥에 수감된 재소자들과 군대, 그리고 소외계층 사람들을 집중적으로 이슬람화시켜 무슬림으로 개종시킨다. 덴마크, 독일, 영국, 스페인, 태국 등이다(2단계). 인정(recognition) 단계에서 샤리아법으로 무슬림을 통제하라고 요구한다.
무슬림 인구가 5%를 넘어서면, 무슬림 인구의 비율을 더욱 높이려는 본격적 전략이 시작된다. 프랑스, 필리핀, 스웨덴, 스위스, 네덜란드, 트리니다드 토바고 등이다(3단계). 침투(infiltration) 단계에서는 사회 각 기관에 중요한 직책을 맡는다. 시민단체를 결성한다.
무슬림 인구가 20%를 넘는 경우, 이를 기점으로 폭동과 소요사태가 시작되고 테러단을 조직한다. 단발성 살해 사건이 발생하며, 기독교 교회나 회당을 공격하고 방화·파괴한다. 에티오피아가 그 대표적인 예이다(4단계). 대결(confrontation) 단계에 진입한 것이다. 샤리아법을 기존의 국가 헌법 체제에 통합하라고 요구한다.
무슬림 인구가 40%를 넘어설 때는 광범위한 학살을 자행하고, 상습적인 테러를 한다, 조직화된 세력에 의한 전시체제로 이행한다. 보스니아, 차드, 레바논 등이다(5단계). 강요(imposition) 단계에서 샤리아법을 근간으로 하는 이슬람 신앙을 강요한다.
무슬림 인구가 60%를 넘어서면 기독교와 다른 종교를 박해하고 탄압하며, 정권 쟁탈과 인종청소를 하기도 한다. 이슬람 율법 샤리아를 근간으로 이슬람 신앙을 강요하고, 이슬람에서 개종한 배교자를 무자비하게 살육한다(6단계).
다음 단계는 국가를 이슬람국가로 만든다(7단계). 이상은 이슬람 연구가 피터 하몬드 박사의 <노예, 테러, 이슬람(Peter Hammond, Slavery, Terrorism and Islam: The Historical Roots and Contemporary Threat, Cape Town: Christian Library Books, 2005, 105)>을 참고한 것이다.
마지막 단계는 무슬림의 최종 목표로 이슬람 제국 건설이다. 이슬람권에서 걸출한 정치-종교 지도자가 나타나면, 인구 18억 명을 가진 이슬람제국 건설이 가능해진다(8단계).
8. 코라비아 로맨스
브리지트 가브리엘(Brigitte Gabriel, 54세, 여)은 기독교인으로 레바논 남부 기독교 마을, 곰팡이 피는 방공호에서 7년 동안 숨어 지내다 이스라엘군이 들어오자 이스라엘을 거쳐 미국으로 이민을 갔다. 그녀는 “내가 어렸을 때는 베이루트가 중동의 파리였다. 지금은 파리가 유럽의 중동이다”라고 말한다.
그녀는 다문화 사회에서 무슬림과 공존이 가능한가 하는 질문에 단호히 “아니다”라고 답한다. “이슬람은 평화의 종교가 아니며, 공존 가능하다는 생각은 착각이다. 죽기를 각오하고 투쟁하지 않으면 심지어 미국조차 레바논 꼴 난다”고 말한다.
윌리 딜리(Willie Dillie, 53세, 여)는 네덜란드 헤이그 시의원이었다. 무슬림 난민 반대운동에 앞장서다 지난 8월 8일 자살했다. 죽기 전 남긴 동영상에서 무슬림이 지난해인 2017년 3월 15일, 자신을 납치·강간·집단 성폭행했다고 말했다. 이들은 의회에서 입을 다물지 않으면 목 잘라 죽이겠다고 협박했다고 한다.
딜리는 무슬림을 지지하는 전 자유민주당 동료 의원이 이 같은 공격을 지시했다고 주장한다. 무슬림의 여성 차별, 이슬람 혐오 표현자들에 대한 악행, 미움, 자기 자녀들을 해칠 위험과 두려움을 자기의 자살로 멈추기로 했다고 한다.
기윤실과 진보 기독교계 단체들이 주장과 근거가 일치하지 않는 제주 무슬림 난민 환영 성명을 발표한 동기는 무엇인가? 이슬람과 관련한 인도주의를 앞세운 순진한 다문화주의는 ‘썩은 동아줄’이다.
기윤실과 진보 교계 단체들을 따라가면, 서울은 베이루트처럼 휴혈이 낭자한 파편덩이 도시로 바뀐다. 대한민국이 죽기를 각오하고 투쟁하지 않으면, 레바논 꼴 난다. ‘대한이슬람국’으로 바뀌고, 이슬람제국의 일부로 편입되는 것은 시간 문제다.
현 대한민국 정부는 ‘코라비아 로맨스’ 시대를 향해 문을 활짝 열고 있다. 코리아와 아라비아의 로맨스 시대를 지향하는 듯하다. 헌법의 기본권의 주체를 ‘국민’에서 ‘사람’으로 바꾸고, 무슬림을 포함한 난민보호 정책을 펼친다.
유럽을 이슬람화하고 기독교 국가 레바논을 참극으로 몰고 간 개방적 이민정책, 보편적 복지, 다문화주의를 적극 지지한다. 국회로 넘긴 ‘차별금지법’이 통과되면, 무슬림에 대한 혐오 감정 표현이나 문제 지적의 글과 발언도 제재와 처벌의 대상이 된다.
조선 여성들이 새까만 부르카, 니캅, 케도루를 쓰고 눈만 빼꼼 내놓고 서울 광화문, 대구 수성로, 부산 남포동, 광주 5·18 기념공원을 활보하는 모습이 그림처럼 떠오른다.
최덕성 박사(브니엘신학교 총장, 전 고신대학교 고려신학대학원 교수)
<크리스천투데이, 2018.0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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