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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의 결실

누가복음 신윤식 목사............... 조회 수 230 추천 수 0 2018.09.29 23:1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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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눅8:16-18 
설교자 : 신윤식 목사 
참고 : 은석교회(대구시 국우동) http://www.onlycross.net/ 

누가복음 (36강) 말씀의 결실

2012.11.18 10:09 

눅8:16-18


<본문>

 

16 누구든지 등불을 켜서 그릇으로 덮거나 평상 아래에 두지 아니하고 등경 위에 두나니 이는 들어가는 자들로 그 빛을 보게 하려 함이라

17 숨은 것이 장차 드러나지 아니할 것이 없고 감추인 것이 장차 알려지고 나타나지 않을 것이 없느니라

18 그러므로 너희가 어떻게 들을까 스스로 삼가라 누구든지 있는 자는 받겠고 없는 자는 그 있는 줄로 아는 것까지도 빼앗기리라 하시니라


<설교>

 

◉ 말씀의 특성 ◉

 
하나님의 말씀은 보아도 보지 못하고 들어도 깨달을 수 없는 특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깨달을 수 있는 것은 인간의 영역이 아니라는 것을 뜻합니다. 따라서 말씀을 듣고 깨닫고 알게 되는 것은 오직 허락된 자들에게만 가능한 일이라는 것이 말씀의 특성이라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말씀의 특성을 안다면 누구도 자신이 하나님의 말씀을 안다는 것을 내세울 수 없습니다. 다만 내게 말씀을 아는 것이 허락되어서 십자가에 피 흘려 죽으신 예수님의 은혜를 깨닫게 되었음을 감사하게 될 뿐입니다.

 

인간은 본래 말씀에 대해서는 철저하게 소경, 귀머거리, 어리석은 자로 태어납니다. 말씀에 대한 감각이 전혀 없습니다. 그래서 말씀에 대한 간절함이 없는 것은 물론이고 말씀을 알지 못한 것에 대한 한탄도 아쉬움도 없는 것입니다.

 

만약 말씀이 세상적 교훈과 윤리를 담고 있다면 말씀에 대해 그처럼 어두울 수가 없습니다. 세상의 지식으로는 도무지 깨달을 수 없는 하나님 나라의 비밀을 담고 있기에 보아도 보지 못하고 듣고도 깨닫지 못하는 현상이 있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으로 세상은 어둠이라는 것이 드러납니다.

 

이처럼 어둠의 세상에 말씀을 아는 것이 허락된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이 바로 예수님의 제자들이었습니다. 비유로 말씀하신 예수님께 제자들이 비유의 뜻을 묻자 “이르시되 하나님 나라의 비밀을 아는 것이 너희에게는 허락되었으나”라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제자들이 비유의 뜻을 묻는 것은 비유의 의미를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즉 그들도 비유로 하신 말씀을 듣고 깨닫지 못했던 것입니다. 하지만 제자들은 하나님 나라의 비밀을 아는 것이 허락되었습니다. 따라서 제자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 나라의 비밀을 깨달아 알게 될 것입니다. 이것이 말씀에 대한 신자의 입장입니다.

 

말씀에 대해서는 누구도 자신의 지식을 자랑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허락하심으로 알게 되고 깨닫게 된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말씀은 앎에 있어서부터 세상과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나아갑니다. 세상은 모든 앎을 개인의 노력의 결과로 연결합니다.

 

앎을 개인의 노력과 상관없이 오직 허락된 자에게 주어진 특권으로 말할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의 세계 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말씀의 세계에서 신자는 ‘내가 안다’는 말을 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또한 앎을 자신의 실력과 우월의 수단으로 삼을 수도 없습니다. 이것이 말씀의 의미와 가치를 제대로 깨달은 신자의 모습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 말씀이 보게 하는 것 ◉

 

말씀을 듣는 신자에게 중요한 것은 ‘말씀을 어떻게 듣는가’입니다. 여기에 대해서 말하는 것이 본문의 이야기입니다. 16절의 말씀처럼 누구든 등불을 켜면 그것을 그릇으로 덮거나 평상 아래에 두지 않고 등경 위에 둡니다. 왜냐하면 등불을 켠 목적이 들어가는 자들로 하여금 빛을 보게 하기 위함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빛으로 인해서 모든 것이 드러나고 보게 되었을 때 그 다음에 따라오는 것은 무엇일까요? 사람이 집에 들어가게 되면 가장 먼저 하는 것이 전등을 켜는 것입니다. 집안의 사물이 눈에 보여야 생활에 불편이 없습니다. 어둠의 상태에서 움직이면 놓여 있는 물건에 부딪히기 일쑤일 뿐입니다. 빛이 있어야 어질러진 방을 정리하고 놓여 있는 물건에 부딪히지 않으며 움직일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신자 된 우리에게 예수님이 등불로 오셨습니다. 그리고 세상을 비추시면서 세상이 어떠한가를 제대로 보게 하십니다. 말씀을 듣고 깨달아 알게 하심으로 “숨은 것이 장차 드러나지 아니할 것이 없고 감추인 것이 장차 알려지고 나타나지 않을 것이 없느니라”(17절)고 말씀하신 것처럼 모든 것이 드러나게 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말씀을 아는 것이 허락된 신자는 어둠의 세상을 보게 된 사람입니다.

 

말씀이 여러분에게 보게 하는 것은 어둠에 감추어져 있던 빛의 세계입니다. 무엇이 빛이고 무엇이 어둠인가를 분별할 수 있게 합니다. 그리고 어둠이 아닌 빛의 세계를 살게 하는 것입니다. 빛으로 인해서 어둠에 숨겨져 있던 것이 드러나고 그것을 보게 되었다면 신자는 당연히 빛을 따라 살아가야 합니다. 빛으로 인해서 알게 된 그 세계로 들어가야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말씀을 들을 때 무엇을 보게 됩니까? 말씀을 듣는다고 하는 많은 사람들이 말씀을 들으면서 자신의 욕망이 이루어질 것에 대한 기대만 부풀립니다. 말씀을 들으면서 말씀에 순종하고 신앙생활 잘하면 자신의 일이 형통하고 자식이 잘될 것이라는 기대만 키웁니다. 이것을 빛으로 인해서 숨겨지고 감추어져 있던 것이 드러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자신의 욕망을 성취하고자 하는 것은 어둠의 속성입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의 말씀이 인간의 욕망을 자극하며 욕망을 더욱 키우는 일은 있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신자는 말씀을 주의해서 들어야 합니다.

 

◉ 어떻게 들을까 ◉

 
18절에 보면 “그러므로 너희가 어떻게 들을까 스스로 삼가라 누구든지 있는 자는 받겠고 없는 자는 그 있는 줄로 아는 것까지도 빼앗기리라 하시니라”고 말씀합니다.

 

세상은 현재 자신이 가지고 있는 것에 더 많은 것이 추가로 주어지기를 원합니다. 신을 찾고 그 이름을 부르는 것도 이러한 욕망과 결코 무관하지 않습니다. 현재보다 더 많은 것을 소유하고 싶어서 신을 찾는 것입니다. 신이 내게 있다는 것으로는 결코 만족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신이 있다면 내가 만족할 수 있는 것을 주어야 한다는 생각을 버리지 않습니다.

 

그래서 세상은 신의 가르침이라는 것을 자신의 부요와, 평안과, 성공으로 연결해서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신의 가르침대로 행하면 복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어둠의 생각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어둠의 생각이 소위 말씀이 주어져 있고 말씀을 따라 산다고 하는 교회를 장악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말씀은 우리에게 하나님의 나라를 보게 합니다. “무명한 자 같으나 유명한 자요 죽은 자 같으나 보라 우리가 살아 있고 징계를 받는 자 같으나 죽임을 당하지 아니하고 근심하는 자 같으나 항상 기뻐하고 가난한 자 같으나 많은 사람을 부요하게 하고 아무 것도 없는 자 같으나 모든 것을 가진 자로다”(고후 6:9-10)는 말씀처럼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풍성하게 있는 자로 살게 하는 은혜의 세계를 보게 하는 것이 말씀입니다.

 

그래서 신자는 말씀을 들을 때 주의해야 하는 것입니다. 말씀이 과연 우리를 나 개인의 욕망을 이루는 세계로 이끌어 가기 위해 주어지는 것인지 아니면 어둠에 숨겨져 있고 감추어져 있던 비밀의 세계를 보게 하며 그 세계로 이끌어 가기 위해 주어지는 것인지 부터 분명히 해야 합니다. 그럴 때 신자는 말씀을 들으면서 스스로를 삼갈 수 있는 것입니다.

 

신자는 그 속에 예수님이 있습니다. 예수님이 있다면 자기에게 있는 그 어떤 것도 자기 것으로 여기지 않습니다. 실천과 행함도 자신의 것이 아닙니다. 다만 예수님의 은혜의 산물로 여길 뿐입니다.

 

예수님이 내 속에 없었다면 나올 수 없는 것으로 바라보기 때문에 그 어떤 선한 행함도 자신의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있으되 아무것도 없는 사람입니다. 이것이 예수님이 있는 신자입니다. 예수님은 이러한 자가 받을 것이라고 합니다. 무엇을 받을까요? 자유고 생명입니다.

 

하지만 없는 자는 있는 줄로 아는 것까지도 빼앗긴다고 하십니다. 없는 자란 예수님이 없음을 의미합니다. 그 속에 예수님이 없는 자는 모든 것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고 싶어 합니다. 모든 행함도 자신의 것으로 여기며 자신을 더욱 가치 있는 존재로 격상하고자 합니다. 물론 구원은 당연한 것으로 생각합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있는 줄로 아는 것까지 빼앗긴다고 하심으로써 그러한 자는 구원이 없는 자임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 현실을 초월한 말씀의 세계 ◉

 

하나님의 말씀은 복지 사회를 목표로 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말씀이 우리에게 이루는 것을 일상적인 삶의 문제와 연결하여 생각할 수 없습니다. 일상적인 삶의 문제가 해결되고 삶의 환경과 조건들이 좀 더 편하게 나아지는 것이 필요 없다거나 무의미하다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그러한 것들이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에게 드러내고자 하는 감추어지고 숨겨진 하나님 나라의 비밀이 아니란 것입니다.

 

이런 점에서 하나님의 말씀은 현실에 매인 것이 아니라 초월해 있습니다. 일상적인 삶에서 겪는 어려움과 고통을 근원적으로 넘어선 다른 세계를 보게 합니다. 이것이 영의 세계이며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신자는 이러한 세계를 보고 알게 되기를 원해서 말씀 앞에 나오는 것입니다. 이것이 그 속에 예수님이 있는 신자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말씀은 우리의 욕망을 무너뜨립니다. 그리고 그 자리에 예수님의 뜻을 세우십니다. 나의 뜻이 예수님의 뜻 아래 묻히는 것을 경험하게 합니다. 이것이 말씀의 기능이며 우리에게 말씀을 주시는 근원적인 이유인데, 여러분은 과연 말씀을 어떻게 듣고 있습니까?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뜻이 무너지는 것을 거부합니다. 예수님의 뜻을 말하지만 대부분이 자신의 욕망을 편드는 뜻으로 바꾸어 말합니다. 즉 예수님의 뜻이라는 말을 자신의 뜻과 일치하여 자기 편한 대로 자신을 위해 이용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것이 여전히 어둠에 갇혀서 숨겨지고 감추어진 것이 드러나는 것을 보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속에 예수님이 없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하지만 말씀을 어떻게 들을까 스스로 삼가셔야 합니다. 말씀이 무엇인가를 먼저 깊이 생각하시고 주의하면서 들어야 합니다. 여러분의 마음에 들지 않는 말이고 귀를 즐겁게 하지 않는다고 해서 배척해서는 안 됩니다. 말씀이 죄로 가득한 우리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은 당연한 것이고 귀에 즐거움으로 다가오지 않는 것도 당연하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무엇보다도 말씀 앞에 나와 있는 여러분이 말씀을 통해서 무엇을 듣고자 하고 어떤 세계를 보고자 하는지 여러분의 마음과 생각을 다시 살피셔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그 뜻과 일치된 마음과 생각으로 말씀을 대하고 있는지 스스로를 돌아보셔야 합니다. 이것이 말씀을 주의해서 듣는 것입니다.

 

이러한 신자가 말씀을 듣고 지키어 인내로 결실하게 됩니다. 말씀이 무엇인가를 알기에 삶의 형편과 상관없이 하나님의 나라를 소망하고 바라보는 인내로 결실이 있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그 속에 예수님이 있기에 가능한 결실입니다.

 

그래서 추수감사절은 예수님으로 인해서 맺어진 이 결실이 있는 자로 하나님께 나오는 것을 말합니다. 이들은 자신의 공로와 자기 의와 자신의 가치에 연연하지 않습니다. 세상에서의 자기 세계가 아닌 예수님의 십자가의 피의 은혜로 기뻐하는 하나님의 나라를 사모할 뿐입니다. 이러한 결실이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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