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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 좀 줘
아, 목마르다. 몸에 기운이 하나도 없다. 무더운 칠월 날씨가 더욱 힘을 뺀다. 물을 마셔본 지가 언제쯤인지 모르겠다.
뻣뻣한 목으로 주위를 둘러보았다. 스무 명 정도 되는 아이들이 나와 같은 교실에서 숨을 쉬고 있었다. 하지만 누구도 내게 눈길을 보내주는 친구가 없었다. 앞의 선생님도 마찬가지였다. 몰래 떠드는 아이들이나 귀신같이 잡아낼 뿐, 내겐 관심조차 없었다. 바짝 말라 들어가는 내 목이 쩍쩍 신음을 냈다.
쉬는 시간이 되자, 아이들이 시끄럽게 떠들어댔다. 남자애들이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장난을 주고받는 사이,
“어머, 진짜야?”
“그럼. 너만 알고 있어야 해.”
여자애들 두 명이 내 앞에서 속닥속닥 비밀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지금 내가 다 듣고 있다는 걸 모르나 보다. 귀를 기울여보니 ‘건수’의 이름이 들렸다. 옆 반 여학생 누군가가 건수를 좋아한다는 얘기였다. 건수는 내가 유일하게 이름을 알고 있는 아이다. 내게도 붙은 이름이었기 때문이다.
건수가 있는 쪽을 바라보았다. 남자아이들 여러 명이 건수의 자리 주변에 둘러 서 있었다. 건수가 뭐라고 한 마디 하면 아이들이 자지러지는 시늉을 하며 웃었다. 그럴수록 건수는 여유롭게 앉아 분위기를 이끌었다. 아이들에게 인기도 많고 몰래 좋아해 주는 여자애도 있는 건수. 내가 본 아이 중에 건수는 가장 화려했다.
그런데 건수는 한 번도 날 쳐다봐주지 않았다. 난 매일 같이 이렇게 바라보고 있는데……. 지금껏 눈을 마주쳐본 적도 없었다. 이러면 안 된다는 걸 건수는 알기나 하는 걸까? 멀리서 건수가 웃고 떠들 때마다 조바심이 났다. 그럴수록 내 목은 더욱 바짝 말라갔다. 참을 수 없는 갈증에 점점 지쳐간다.
하루가 지나갔다. 이젠 힘이 없다. 유리창을 넘은 햇볕이 나를 쨍쨍 옭아맸다. 점심 시간이라 아이들이 모두 운동장으로 나가고 없었다. 이젠 창가에서 친구들의 모습을 내려다보는 게 버릇이 되었다. 여자애들은 늑목 주변의 그늘에 옹기종기 앉아 수다를 떨고 있었다. 건수가 공을 몰고 가니 아이들이 송사리 떼처럼 달려들었다. 건수가 미꾸라지처럼 빠져나와 슛을 하자, 공이 그물망에 빨려 들어갔다.
와!
아이들 함성이 여기까지 들렸다. 자랑스럽게 팔을 휘저으며 뛰는 건수 뒤로 친구들이 웃으며 따라붙었다. 그 모습을 보니 나도 기분이 좋아졌다.
그런데 바로 그때,
드르륵―.
교실 뒷문이 열리며 여학생 하나가 들어왔다. 무척 말랐고 머리카락도 힘없이 처져 기운 없어 보이는 여자애였다. 누구지? 우리 반이었던가? 기억에 없으니 이름도 모르겠다. 여자애와 잠시 눈이 마주쳤다. 한 번 말을 걸고 싶어졌다.
‘저기……, 물 좀 주지 않을래?’
하지만 이 말이 전해질 수는 없었다. 나는 이 교실에서 누군가 다가오길 기다려야만 하는 처지니까. 내 기분도 모른 채, 그 여자애는 멀찍이 떨어진 앞쪽 의자에 앉더니 이내 힘없이 책상에 엎드렸다.
교실이 쥐죽은 듯 조용해졌다. 지금 이곳엔 나와 이름 모를 여자아이뿐이었다. 꼼짝 않고 엎드린 모습을 보니 왠지 나와 비슷한 느낌이 들었다.
점심 시간이 끝나자 여학생들이 교실에 하나둘씩 들어왔다. 아무도 엎드려 있는 여자아이에게 말을 걸지 않았다. 이윽고 떠들썩한 소리와 함께 남학생들도 들어오기 시작했다.
“야호, 오늘도 세 골 넣었다.”
건수가 으스대며 땀을 닦고는 물컵을 시원하게 들이켰다. 물이 꼴깍꼴깍 넘어가는 소리를 들으니 목이 바짝 타들어갔다. 누구도 내게 신경을 써주지 않는다. 저쪽에 축 처져 있는 저 여자애도 내 처지와 같았다. 우리의 그런 기분도 모른 채, 교실의 시간은 그저 흘러가고 있었다.
또다시 하루가 지나갔다. 이제 내 몸도 축 처지기 시작했다. 선생님이 오랜만에 출석을 불러준 덕분에 어제 그 여자애 이름이 ‘단비’라는 걸 알았다. 내가 이 교실에서 두 번째로 기억하게 된 이름이다. 단비는 수업 시간에 발표한다거나 쉬는 시간에 아이들과 말을 섞는 일이 한 번도 없었다. 온종일 나처럼 꼼짝 않고 있었다.
창 밖 날씨가 온종일 꾸물거렸다. 한바탕 비라도 내릴 기세다. 지난번처럼 이 비도 내겐 그림의 떡이겠지. 이제 내 목은 완전히 말라버린 지 오래다. 종례 시간이 되면 선생님은 그날 생활 태도가 제일 좋았던 학생 한 명을 뽑아 스티커를 준다. 그건 지금도 마찬가지였다.
“오늘의 우수상은…… 박건수!”
짝짝짝.
칠판 왼쪽에 건수의 스티커가 드디어 열 개째 채워졌다. 선생님은 약속한 대로 건수에게 선물을 주었다. 아이들은 부러움이 섞인 축하의 말을 건넸다.
“와, 건수가 처음으로 받네.”
건수가 받은 선물은 하늘색으로 예쁘게 포장된 문구세트였다. 건수가 싱글벙글 다가오며 내 옆의 사물함에 선물을 넣었다. 그렇게 나를 지나치면서도 건수는 날 바라봐주지 않았다.
“차렷, 열중쉬어, 차렷, 선생님께 경례!”
“차 조심, 길 조심, 사람 조심. 친구들 안녕!”
아이들은 경례가 끝나자마자 줄지어 교실 뒷문으로 빠져나갔다. 단비만 느릿느릿 책상 속 물건을 정리하느라 제자리에 있었다.
어느덧 교실에는 단비와 나, 그리고 선생님만 남았다. 우리는 서로 아는 척도 하지 않고 침묵을 지켰다. 단비의 책가방 채워지는 소리만 들릴 뿐이었다.
“…… 안녕히 계세요.”
단비가 교실을 나서며 축 처진 목소리로 선생님에게 인사했다. 선생님은 모니터에 시선을 고정한 채로 대답했다.
“주말 잘 보내렴.”
잠깐, 주말? 이제 끔찍한 주말이라고? 미처 생각 못 했다. 내 마음이 다급해지기 시작했다.
‘선생님, 여기 좀 보세요!’
내 목소리가 들릴 리 없었다. 선생님은 이쪽을 아예 쳐다볼 기미도 없었다. 조금 뒤에 숫제 밖으로 나가버렸다. 교실에 나 혼자 남았다. 시계 소리만 “척, 척.”하고 들려왔다. 이제는 이 고요함이 두렵다. 앞으로 사흘 동안 버틸 생각을 하니 눈앞이 캄캄했다.
후두둑―.
잠시 후, 창문 밖에 굵은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운동장이 금세 물기를 먹어 촉촉해졌다. 교정 옆에 드리운 나무와 풀들이 물을 마시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니 괴로워 견딜 수가 없었다. 저쪽은 저렇게 맛있게 물을 마시고 있는데 나는 창문 하나를 두고 구경만 해야 하다니! 너무나도 서러웠다. 그런데도 눈물이 나오질 않았다. 이미 눈물조차도 말라버린 지 오래였기 때문이다.
슬퍼하던 바로 그때, 교실 문이 드르륵 소리를 내며 활짝 열렸다. 건수였다! 내 앞으로 뚜벅뚜벅 걸어오고 있었다. 나를 구해주려고 온 건가?
‘나 좀 창 밖으로 내보내 줘!’
하지만 건수는 날 쳐다보지 않았다. 바로 옆의 사물함에서 상품으로 받은 문구세트를 꺼내 들며 웃을 뿐이었다.
“휴, 깜빡 잊을 뻔했네.”
창 밖엔 아까운 비가 흐르고 있었다. 건수마저 날 외면하면 이제 정말로 끝나버릴지 모른다.
‘건수야, 저 비를 흠뻑 맞도록 해줘! 제발…… 내 담당은 바로 너잖아.’
쾅!
내 바람과 달리 건수가 매몰차게 사물함을 닫고는 쌩하니 밖으로 나가버렸다. 야속한 빗소리만 창문에 부딪히며 내 마음을 두들겼다.
흐릿한 창문 너머로 건수가 우산을 쓰며 달려가고 있었다. 화려한 무지갯빛 우산이었다. 운동장 저편엔 비를 피해 나무 밑에 들어간 단비가 보였다. 건수가 그런 단비 앞을 바쁘게 지나갔다. 우산이 없는 단비는 건수의 뒷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비에 젖은 단비가 오늘따라 더욱 축 처져 보였다.
어지럽고 눈앞이 흐릿하다. 기절했다 깨는 걸 몇 번 반복했더니 월요일이 되었다. 내 몸은 이제 완전히 말라버려서 내 것 같지가 않았다. 딱딱한 흙이 나를 겨우 지탱해줄 뿐이었다. 이젠 축 처진 팔을 들어 올릴 힘조차도 없다. 창틀 너머로 아이들의 왁자지껄한 소리가 여기까지 들려왔다. 옆 반과 발야구를 하고 있었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그저 지켜보는 일뿐이었다.
단비가 굴러오는 공을 어색한 몸짓으로 찼다. 빗맞은 공이 아이들 사이로 데굴데굴 굴러갔다. 단비가 재빨리 뛰어 1루에 먼저 도착하자 환호성이 들렸다. 열없는 단비의 얼굴에 처음 보는 미소가 번졌다.
“역전, 역전!”
다음에 건수가 들어서자, 아이들의 응원 소리가 더욱 커졌다. 건수가 굴러온 공을 “뻥!” 소리 나도록 힘껏 찼다.
“단비야, 뛰어!”
단비는 아이들의 외침만 듣고 달리기 시작했다. 큰 소리와 함께 공이 위로 높게 떴다.
“아아―!”
건수가 찬 공이 상대 팀 아이의 품 속에 빨려 들어가듯이 잡혔다. 그 바람에 무작정 뛰었던 단비도 같이 아웃되었다. 그대로 발야구 경기가 끝나버렸다. 아이들은 원망 섞인 눈초리로 단비를 쏘아보았다. 단비의 어깨가 더욱 움츠러들었다.
잠시 후, 아이들이 가까운 수돗가에서 단비를 둘러싼 모습이 보였다. 건수가 제일 먼저 단비에게 소리쳤다.
“너 때문에 졌잖아, 이 바보야!”
그러자 다른 아이들도 저마다 단비에게 한 마디씩 던졌다. 대개가 듣기 불편한 말이었다. 내 기억으로 아이들이 단비에게 처음 말을 거는 풍경이었다. 결국 단비는 수돗가에서 물을 마시지도 못하고 교실로 도망치듯 뛰어왔다.
“흐흑…… 흑…….”
단비는 교실에 들어오자마자 책상에 엎드려 흐느꼈다. 내가 단비를 처음 만났을 때 모습 그대로였다. 어쩌면 처음 본 그 날도 지금처럼 울고 있었는지 모른다.
드르륵―.
선생님이 들어왔다. 방금까지 흐느끼던 단비가 소리를 뚝 그쳤다. 이상하게도 우리 셋만 있으면 고요해진다. 시계 소리가 “척, 척.”하고 들려오기 시작했다.
“단비야, 운동장에 애들 좀 빨리 들어오라고 해줄래?”
정적을 깨는 선생님의 목소리에 단비가 흠칫 놀라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얼빠진 얼굴로 내 쪽의 창가에 다가왔다. 단비는 창 밖의 아이들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방금까지 비난을 퍼붓던 아이들에게 말을 걸기가 두려운 표정이었다. 선생님이 짜증을 섞어 단비를 재촉했다.
“쉬는 시간 끝났는데 다들 뭐 하고 있는 거야? 빨리 오라고 해.”
선생님은 오로지 수돗가에 모여 있는 아이들만 신경 쓰는 눈치였다. 여기 얼굴에 눈물이 흥건한 단비와 말라 죽어가고 있는 내 모습은 안 보이나 보다.
그때, 갑자기 정신이 흐릿해졌다. 나는 마지막이란 생각에 온몸으로 절규했다.
‘제발…… 물 좀 줘!’
그 순간 단비가 창문을 열려고 손을 뻗으려다 팔꿈치가 내 몸에 부딪혔다.
툭!
아찔한 기분과 함께 내 몸이 기울더니 난간 위에 통째로 쓰러졌다. 나를 지탱하던 흙이 다 쏟아지면 이제 정말로 끝장이다.
그런데 신기한 일이 벌어졌다. 모로 쓰러진 내 밑으로 흙이 한 줌도 쏟아지지 않은 것이다. 깜짝 놀란 단비가 황급히 나를 세웠다. 그리고는 걱정스러운 눈으로 내 밑의 흙을 꾹꾹 눌러보았다. 돌처럼 딱딱한 감촉을 느낀 단비가 안타까움이 섞인 헛숨을 내뱉었다. 단비는 곧바로 싱크대에서 물 한 컵을 떠 와 내 머리에 흠뻑 뿌려주었다.
꿀꺽꿀꺽―.
이대로 끝나는 줄 알았는데 물을 들이켜니 살 것 같았다. 내 몸에 물이 채워짐과 동시에 눈물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그 동안 겪었던 서러움 때문이었다. 내게 물을 줘야 할 사람은 건수였다. 난 매일같이 건수를 바라봤지만 외면당했다. 그래서 지금 물을 먹는 게 기쁘지만은 않다. 건수가 다가오기만을 처음부터 다시 기다려야 하니까.
잠시 후, 선생님이 차갑게 쏘아붙였다.
“뭐 해? 애들 부르라고 했잖아. 왜 자꾸 여러 번 말하게 하니!”
단비는 다시 막막한 표정으로 창 밖의 아이들과 선생님을 번갈아 보았다. 어느 쪽도 단비의 마음이 향할 수 없었다. 내게 물을 주었던 단비의 고운 손이 어느새 눈물을 닦고 있었다.
그때 마침, 복도에 아이들이 몰려오는 소리가 들렸다. 단비는 소리 없이 제자리로 돌아갔다. 선생님은 답답한 나머지 모니터만 바라보며 한숨을 푹 쉬었다. 단비가 다시 책상에 엎드렸다. 나는 이제 저것이 단비가 우는 모습이란 걸 알고 있다. 힘없이 축 처진 모습이 나와 서글프게 닮았다.겨우 기운을 차린 내가 선생님을 향해 간절히 소리쳤다.
‘단비에게도 제발 물 좀 주세요!’
하지만 내 목소리가 들릴 리 없었다. 어느새 교실은 왁자지껄 몰려드는 아이들로 정신없이 채워지고 있었다.
동화 물 좀 줘 박상기(33ㆍ충남 공주시 웅진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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