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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부산일보] 마음약국 프로젝트 -김점선

신춘문예 김점선............... 조회 수 145 추천 수 0 2018.10.30 20:32: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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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약국 프로젝트 -김점선

Cap 2018-10-30 20-29-46-733.jpg


행복한 학급 만들기 프로젝트, 3월의 학급회의 안건이었다. 우리는 '마음약국'을 열기로 했다. 3월 18일. 날짜도 잊어버리지 않았다. 그날 약사명찰을 차지하기 위해 벌였던 경쟁은 반장선거보다도 더 치열했으니까.

약사 김준석

반짝반짝 빛나는 명찰이 멀리에서도 그 존재감을 드러낸다.

마음약국에서는 몇 가지 조제된 약을 판다. 기분이 좋아지는 약, 목소리가 커지는 약, 달리기를 잘하게 되는 약 등. 나는 마음이 아픈 친구들에게 상담을 해주고 알맞은 약을 판매한다.

약사가 된 후 친구들이 나를 대하는 눈빛도 달라졌다. 단 한명만 빼고 말이다. 공부를 잘한다고 해서 마음에 속상한 일이 없지는 않을 것이다. 그런데도 그 자식은 보란 듯 내 약국을 한 번도 찾지 않았다. 불현듯 그 자식 생각이 떠오르자 무엇인가가 울컥 솟구쳤다.

"선미야, 오늘은 중간놀이 시간에 6월 모둠바꾸기 하잖아. 그러니까 약국은 점심시간에 열거야."

괜시리 약국 앞에 서성거리고 있던 선미에게 버럭 하고 말았다.

나는 애써 마음을 진정시키고 모둠발표를 기다렸다. 제발, 제발 예쁜 윤서랑 같은 모둠이 되게 해주세요.

"김준석, 최윤서,"

역시! 4학년이 돼서는 모든 일이 잘 풀린다.

"주태현, 박선재"

1초 만에 산산조각이 났다. 꼭 세상일은 끝까지 살아봐야 한다더니, 선재가 우리 모둠이 되었다.

"우와, 약사랑 같은 모둠이다!"

태현이의 말에도 아랑곳 않고 선재는 자기 짐 옮기는 일에만 집중하고 있었다. 주는 거 없이 미운 놈이 있다더니, 선재가 딱 그런 꼴이다.

"태현아, 책상 좀 앞으로 당겨줘!"

큰소리에 놀란 내 가슴이 두방망이질 쳤다. 치와와처럼 얍삽하게 생긴 놈이 어찌나 목소리가 큰지.

"개미처럼 목소리가 작아지는 약을 먹으면 좀 좋아?"

나는 누가 들으라는 듯 일부러 큰 소리로 말했지만, 정작 선재는 못들은 척했다. 아무 일 없다는 듯 책상 속에 교과서를 집어넣고 있었다.

선재는 마음약국의 약을 믿지 않는 것이 틀림없다. 느낌으로 알 수 있었다. 나도 아직 약을 먹어보지 않아 장담을 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선재는 정말 약이 필요해 보였다.

"아얏!"

갑자기 날아온 선재 팔꿈치에 내 몸이 기우뚱하고 흔들렸다. 정말 재수 없는 자식이다.

"미안해, 다쳤냐?"

선재가 휘청거리는 내 왼팔을 한 손으로 낚아채며 붙잡았다. 겨우 제자리에 바로 설 수 있었다.

"조심 좀 하시지?"

퉁명스럽게 내뱉고는 돌아섰다. 속이 확 뒤틀렸다.

"애들아, 어디에서 구린내 나지 않냐?

나는 태현이와 윤서 쪽을 바라보며 말했다. 옆쪽에서 나는 것이 분명 선재가 범인인 것 같았다.

"선재, 너 안 씻고 다니는 거 아냐?"

옆 모둠 깔끔쟁이 선미가 불쑥 끼어들었다. 반 친구들이 숙덕거리기 시작했다. 선재 얼굴이 빨개졌다. 나는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우리 할머니가 요즘 청국장 만들거든. 그게 뭐?"

선재는 정말 아무렇지도 않은 듯 큰소리로 말했다. 이미 친구들은 코를 틀어막으며 킥킥거리고 있었다.

'그러게 나한테 좀 잘 보이지. 자식!'

마음속을 짓누르던 납덩이 하나가 날아가는 것 같았다.

점심시간, 콧노래를 부르며 급식실로 발걸음을 재게 놀렸다. 점심을 후다닥 먹고 약국을 열기 위해 교실로 향했다.

교실에는 선재 뿐이었다. 선재는 약국 앞에 서더니 책상 위 무언가를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왠지 예감이 좋지 않았다.

뭐하는 거지? 마음약국을 엉망으로 만들려는 거 아냐? 현장을 잡아야 했다.

눈을 문틈으로 바짝 대봐도 잘 보이지 않았다. 교실 뒤편, 약국에 가서 고양이 눈이 되는 약이라도 지어먹고 싶었다.

그때 교실 뒷문이 열리더니 선재가 나왔다. 나도 모르게 한 발짝 뒤로 물러섰다. 교실 문을 닫은 선재가 잠시 나를 쳐다봤다.

"뭐, 할 말 있어?"

나도 녀석의 두 눈을 정면으로 쏘아보았다. 그렁그렁한 눈물이 맺힌 선재의 눈이 보였다. 머뭇거리던 선재는 그대로 복도를 가로질러 뛰어갔다. 심장이 두근두근했다.

'무슨 짓을 한 거지? 울긴 왜 울어?'

나는 마음약국을 향해 몸을 돌렸다.

따뜻한 햇살이 드는 교실 창문 한 켠에 『마음약국』이라는 간판이 아픈 친구들의 마음을 다 치료할 듯 따뜻하게 웃는 듯 했다. 책상 위에 놓여 있던 빈 약포지가 눈에 띄었다. 약포지를 만진 건가? 간의 탁자에 놓인 약수납함에 생각이 미쳤다. 다행히 약수납함은 건들지 않은 듯 했다.

나는 의자 뒤로 가서 흰색 가운을 입었다. 마음을 다독였다. 흰 가운을 입으면 난 약사 김준석이 된다. 친구들이 급식실에서 돌아오는 소리가 들렸다.

"김약사, 벌써 약국 열었네?"

선미 눈초리가 잔뜩 올라가 있었다.

"선미야. 무엇을 도와줄까?"

"나한테 약 제대로 준거야? 분명히 친구와 사이좋게 지내는 약을 먹었어. 하지만, 난 여전히 재정이가 미워!"

선미가 잔뜩 골이 난 얼굴로 말했다.

"약은 처방에 맞게 판매했어. 마음약국 이용수칙 알지?"

나는 두 번째 손가락으로 간판 옆을 가리켰다.


마음약국 이용수칙

1. 약값은 100원이며, 직접 이웃돕기 함에 넣는다.

2. 약의 남용을 막기 위해 주 1회 이하로 이용을 제한한다.

3. 마음 깊이 진심으로 원할수록 약효가 커진다.


"휴. 난 이제부터 재정이랑 싸우지 않겠어!"

선미가 한숨을 푹 내쉬더니, 결의에 찬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마음약국은 점점 더 인기가 높아지고 있었다. 그 후로도 다섯명의 친구들이 다녀갔다.

막 약국 문을 닫을 준비를 할 때였다. 선재가 내 약국을 찾아온 것이다. 눈언저리가 아직도 발갛게 보였다.

"목소리가 작아서 왔어."

평소 선재답지 않게 풀이 죽어 있었다.

"선재야. 지금도 네 목소리 충분히 크거든."

나는 선재의 얼굴을 살폈다. 내 말은 씨알도 먹히지 않은 것 같았다.

"목소리가 커지는 약이 필요해!"

선재는 머리를 세차게 흔들었다.

"지금 너한테 필요한 약은 목소리가 작아지는 약이야."

선재가 일부러 나를 골탕 먹이려는 것이다. 마음이 부글부글 끓어올랐다. 하지만 꾹 참았다.

"진심이야, 목소리 커지는 약을 줘!"

절대 포기하지 않겠다는 듯 선재는 고집스럽게 서 있었다. 3개월 만에 처음 약국을 찾아서 필요한 약이 큰 목소리를 갖게 해달라니. 미칠 노릇이다. 난 최대한 약사의 품위를 지키려 애셨다.

"알았어."

나는 약수납함에서 약을 꺼냈다. 약포지에 기차화통 삶아먹은 것처럼 목소리가 커지는 약이라고 적은 후 선재에게 건넸다.

선재는 약포지를 받더니, 이웃돕기 함에 100원을 넣었다. 그러고는 큰 걸음으로 자리에 돌아갔다. 찜찜한 기분이 줄곧 내 머리를 괴롭혔다.

'네가 약사인 날 놀려?'

온갖 생각이 뒤엉켜 수업시간에 집중할 수가 없었다.

"집으로 갈 때는 어떻게 해야 되죠?"

종례시간, 언제나처럼 선생님이 물었다.

"차조심, 사람조심, 개조심."

그 누구보다도 큰 소리로 외쳤다. 하지만 내 소리는 선재 목소리에 묻혀 들리지도 않았다. 선재와 대화가 필요했다. 여간 신경이 쓰이는 것이 아니었다.

"선재야?"

옆을 봤지만, 이미 선재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나는 급히 교실을 나왔다. 선재를 따라잡기 위해 부랴부랴 신발을 신었다.

운동장을 가로질러 뛰어가는 선재의 모습이 보였다. 나 몰래 말처럼 빠르게 달리는 약이라도 먹은 것 같았다.

"같이 가!"

태현이가 불렀지만 뒤도 돌아보지 않고 뛰었다. 덕분에 막 교문을 나서는 선재의 뒷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다. 하지만, 미처 말 붙일 새도 없이 선재는 부지런히 학교 담장 옆 골목길로 접어들었다.

살금살금 도둑고양이처럼 선재 뒤를 따라갔다. 대부분 큰길로 학교에 가긴 하지만, 가끔 이 골목길을 지나가기도 했었다.

'그동안 선재를 왜 한 번도 못 만난거지?'

못 만날 수밖에. 저렇게 학교 끝나자마자 쌩 하고 가버리는데, 못 만나는 게 당연했다. 선재는 아무 의심 없이 자기 갈 길만 바쁘게 걸어갔다.

어느덧 파란색 대문 앞에 서는 선재 모습이 보였다. 조금만 앞으로 가서 오른쪽으로 꺾으면 우리 아파트 후문이 나온다. 집에 가다가 우연히 본 척하면 되겠다.

"선재야!"

내 목소리를 듣지 못한 것 같았다.

선재가 호주머니에서 뭔가를 꺼냈다. 그러더니 입에 털어 넣었다. 분명 마음약국에서 산 약을 먹는 것 같았다.

'어? 지금 약을 먹는 거야?'

선재의 수상한 행동에 나는 멈칫했다.

"할머니, 할! 머! 니, 학교에 다녀왔어요!"

선재가 쩌렁쩌렁한 목소리를 내며 대문을 두드렸다. 문이 열리자 선재는 개선장군처럼 안으로 들어갔다. 철컥, 대문이 닫혔다.

나는 대문 앞에 바짝 붙어서 집안을 살펴보았다.

잠시 후, 지팡이를 짚고 더듬더듬 나오시는 할머니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이건 도대체 무슨 상황인지, 졸지에 난 남의 집 안을 엿보는 이상한 아이가 되어있었다.

"오야, 내 강아지. 잘 다녀왔어? 재미있었고?"

할머니가 연신 선재의 얼굴을 어루만지며 새된 목소리로 말했다. 선재는 학교에서는 볼 수 없었던 웃음을 웃어대면서 할머니의 손에 얼굴을 맡겼다.

"할머니, 나 없는 동안 심심했지? 이제 나랑 운동가게."

책가방을 내려놓은 선재가 할머니에게서 한 발짝 떨어지더니, 두 팔을 크게 앞뒤로 저어 보이며 말을 했다.

"의사 선생님이 집에만 있으면 안 된대, 많이 걸으래."

할머니는 선재의 큰 목소리와 허우적대는 발놀림을 보고서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대문 옆 담벼락으로 몸을 숨겼다. 선재가 지팡이를 짚은 할머니의 손을 잡고 대문 쪽으로 걸어 나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선재와 할머니는 발걸음을 맞추며 걸었다. 천천히, 천천히 파란색 대문을 나와 걸어갔다.

"할머니, 오늘도 청국장 찌개 끓였지?"

선재의 목소리가 골목을 가득 채웠다.

"두부 넣고 맛나게 끓여 놨제."

"두부까지! 우와, 맛있겠다."

선재가 어깨까지 들썩이며 말했다.

"할!머!니, 오늘은 선재 목소리 더 잘 들리지?"

선재가 신이 나서 우렁우렁 소리쳤다.

"오야. 오야! 할미는 선재 목소리가 젤로 잘 들린다."

행복해 보이는 할머니 얼굴이 커다랗게 다가왔다.

"내가 노래 불러줄까? 으흠. 다른 사람들이 선재를 부르면 한참을 생각해 보겠지만, 할머니가 나를 불러준다면 무조건 달려갈 거야…."

선재의 노랫소리가 골목길에 퍼져나갔다. 나는 넋을 놓고 선재와 할머니를 바라보고 있었다.

잠시 후, 선재와 할머니가 다시 파란색 대문 집 앞으로 도착했다. 선재가 대문 앞에 우두커니 서있는 나를 쳐다보았다.

"준석아, 마음약국 약이 정말 효과 있나 봐! 우리 할머니 좋아하는 얼굴 좀 봐!"

녀석의 표정에서 기쁨이 한가득 묻어났다.

"그러게."

나는 멍하니, 선재 얼굴을 바라보았다. 할머니 때문에 고민하고, 마음약국을 찾은 선재에게 미안해서 견딜 수가 없었다. 내일은 나도 친구 믿어주는 약을 먹어야겠다.

마음약국 프로젝트가 이렇게 성공하리라고는 약사인 나도 믿지 않았는데….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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