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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꿈이의 꿈날개 -김주현
작은 파리 날꿈이는 막 번데기에서 나와 햇볕에 몸을 말리고 있었어요.
"…아흔 여덟, 아흔 아홉, 백. 됐다! 이 정도면 날 수 있겠지?"
백까지 세면서 날개가 다 마르길 기다리는 일은 정말 힘들었어요. 날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거든요.
날꿈이는 얇은 날개를 파르르 떨어보았어요. 그러고는 곧바로 하늘로 날아올랐어요.
"야호, 내가 해냈어! 신난다!"
날꿈이는 자신이 나는 게 무척 자랑스러웠지요. 하늘에 떠있는 자기 모습을 모두에게 보여주고 싶었어요.
"세상에서 가장 멋진 파리가 될 거야! 모두들 날 좋아하게 될 걸?"
날꿈이는 바람을 타고 빠르게 날아갔어요. 높이 올라가기도 하고, 낮게 훅 떨어져 보기도 하고, 방향을 홱 바꾸기도 했어요.
어디선가 맛있는 냄새가 솔솔 풍겨왔어요. 냄새를 따라가 보았어요. 그곳에는 사람 아이들이 바글바글했어요. 음식을 먹는 아이도 있고, 줄을 서 있는 아이도 있었어요.
"나 계란말이 하나만 더 줘!"
"아휴, 당근 또 나왔어."
아이들은 쉴 새 없이 떠들었어요.
'이야, 저 하얀 건 뭐지? 모락모락 김이 나는 게 참 맛있어 보인다.'
날꿈이는 그 위에 앉아 맛을 보았어요. 구수한 냄새가 입 안에 가득 찼어요. 날꿈이를 발견한 아이들이 소리를 지르며 호들갑을 떨었어요.
"으악! 밥에 파리가 앉았다!"
"으웨엑, 더러워! 똥파리잖아! 선생님, 큰일 났어요!"
밥을 안 먹겠다는 아이도 있었어요.
날꿈이는 깜짝 놀라서 포르르 날아올랐어요. 키 큰 사람이 오더니 아이들을 조용히 시켰어요.
"얘들아, 파리 한 마리 갖고 뭘 그러니. 파리가 앉았던 곳만 덜어놓으면 되잖아."
아이들은 웅성거리면서 다시 밥을 먹었어요. 하지만 날꿈이는 먹고 싶은 마음이 싹 사라졌어요.
'내가 더럽다고? 내가 앉은 곳은 먹지도 않을 만큼?'
아이들 말이 자꾸만 생각났어요. 가슴이 아파왔어요.
'난 그냥 맛만 보려고 한 것뿐인데. 사람들은 날 좋아하지 않는구나.'
날꿈이는 힘없이 학교를 빠져나와 나무가 우거진 숲으로 왔어요.
'여기라면 날 싫어하는 이들은 없겠지.'
날꿈이는 날갯짓을 멈추고 내려와 길고 통통한 나뭇가지 위에 앉았어요. 그런데, 나뭇가지가 꿈틀하며 신경질을 내지 뭐예요?
"어머, 저리 가! 더러운 파리 녀석! 매끈하고 촉촉한 이 지렁이님 피부에 엉덩이를 들이밀어?"
날꿈이는 미안한 마음에 곧바로 사과를 했어요.
"죄송합니다. 미처 못 봤어요."
"죄송하면 다야? 아휴, 지저분한 것들은 어딜 가나 문제야. 생긴 것도 맘에 안 드네."
지렁이는 미안하다는 말을 듣고도 욕을 하지 뭐예요. 날꿈이는 발끈 화가 났어요. 그래서 지렁이에게 막 소리치려는데,
땅이 울룩불룩 하더니 커다란 앞발을 가진 곤충이 톡 튀어나왔어요. 머리도 무척이나 컸어요. 아주 단단해 보였고요. 그 곤충은 눈 깜짝할 사이 지렁이를 먹어치웠어요.
"이제야 배가 좀 차네. 아, 맛있다!"
날꿈이는 놀라서 꿈쩍도 못 하고 그 자리에 있었어요. 다른 벌레가 먹히는 걸 처음 봤거든요. 지렁이를 먹어치운 곤충이 벌벌 떨고 있는 날꿈이에게 말했어요.
"꼬마야, 난 널 안 먹어. 우리 땅강아지들은 풀뿌리도 먹고, 채소도 먹고, 지렁이도 먹지만 파리 같은 건 먹지 않아. 털만 많고 맛도 없거든."
파리를 먹지 않는다니 마음이 놓였지만, 왠지 기분이 좋지 않았어요. '파리 같은 것'이라니요!
"땅강아지 아저씨도 우리를 좋아하지 않나 봐요?"
"뭐? 하하! 너 참 웃기는 애구나. 나뿐만이 아니야. 못생기고 지저분한 파리를 누가 좋아하겠어?"
날꿈이는 땅강아지 아저씨의 말에 속이 상했어요.
'난 잘못한 것도 없는데….'
날꿈이는 아저씨를 뒤로 하고 숲 속으로 들어갔어요. 나무가 우거져서 햇볕이 땅에 드문드문 퍼져 있었어요.
'난 왜 모두가 싫어하는 파리로 태어났을까? 차라리 태어나지 않았으면 좋았을 걸….'
그때 누군가 소리쳤어요.
"저기, 파리야!"
날꿈이는 자신을 부르는 소리에 멈칫하며 내려다보았어요. 배가 통통한 개미 한 마리가 있었어요.
"저 말이에요?"
"그래. 나 좀 도와줄 수 있니?"
날꿈이는 개미의 사근사근한 말투에 망설임 없이 쪼르르 내려갔어요.
"나는 여왕개미란다. 짝짓기를 끝내고 내려왔는데, 알을 너무 일찍 낳아버렸지 뭐니. 내가 굴을 파는 동안 알들을 보살펴 주지 않을래?"
날꿈이는 여왕개미의 말에 환하게 웃었어요. 여왕개미는 날꿈이를 더럽다고 하지도, 못생겼다고 하지도 않았잖아요. 오히려 도와달라고 했는걸요?
"좋아요! 제가 돌볼게요."
여왕개미 옆에 하얗고 길쭉한 알들이 놓여 있었어요. 날꿈이는 여왕개미가 굴을 파는 동안 알을 쓰다듬어주기도 하고, 다른 곤충이 가까이 오지 못하도록 지켜주었어요.
"고마워, 파리야. 아직 작지만, 이 정도면 굴에 알들을 넣을 수 있을 거야."
여왕개미는 알들을 차례로 굴 안쪽으로 옮겼어요. 날꿈이가 보기에도 굴은 작았지만, 굉장히 포근해 보였어요.
날꿈이는 여왕개미와 작별인사를 하고 다시 하늘로 솟아올랐어요. 눈을 감고서 올라가다가 그만 어딘가에 머리를 꽝 부딪치고 말았어요.
"아야!"
"아이쿠, 깜짝이야!"
굵고 낮은 목소리가 들렸어요. 날꿈이가 부딪친 곤충은 머리에 큰 뿔이 두 개나 달려 있었어요.
"죄송해요. 다치셨어요?"
"괜찮아. 우리 사슴벌레는 껍질이 딱딱해서 파리가 부딪치는 건 아무렇지도 않아. 나이가 들긴 했지만 힘은 여전하단다."
짙은 갈색 몸의 흉터를 보면 나이 많은 곤충인 걸 한눈에 알 수 있었어요.
"아까부터 보고 있었는데, 너처럼 남을 돕는 곤충은 처음 봤다. 개미와 진딧물이 함께 지내긴 하지만 파리가 개미를 돕다니. 착한 게야, 별난 게야?"
날꿈이는 사슴벌레 할아버지 말씀을 곰곰이 생각해보았어요. 별난 걸까요, 착한 걸까요?
'그래. 난 다른 파리와는 달라. 남들을 행복하게 하는 파리가 되고 싶어!'
그때, 사슴벌레 할아버지가 고개를 갸우뚱 하더니 숨을 깊게 들이마셨어요.
"바람에 비 냄새가 섞여 있어. 잔뜩 쏟아질 것 같은데…."
날꿈이도 따라서 킁킁거렸지만 아무 낌새도 느끼지 못했어요. 그런데 잠시 후, 저 멀리서 콰르릉! 소리가 들리더니 축축한 기운이 스멀스멀 밀려오기 시작했어요. 아니나 다를까, 하늘에서 물이 조금씩 떨어졌어요. 참나무 잎사귀를 톡톡 두드리던 작은 빗방울은 곧 굵은 빗줄기로 변했어요.
투다닥! 투다다닥!
빗방울이 바닥에 떨어지면서 흙이 튀어 올랐어요.
"와아, 굉장해요!"
"소나기가 아주 매섭게 내리는구나."
날꿈이는 비 오는 풍경을 처음 봤어요. 태어난 지 얼마 안 됐으니까요. 그런데 저 아래에서 작은 목소리가 들려왔어요.
"내 알들! 내 아기들…!"
여왕개미가 굴보다 높은 곳에 핀 노란 버섯 밑으로 알을 하나씩 옮기고 있었어요. 만든 지 얼마 안 된 굴은 너무 작아서 소나기에 무너져 엉망이 되고 말았거든요. 남은 알들은 흙 속에 묻혔어요.
여왕개미가 개미굴과 버섯을 왔다 갔다 하는 동안, 길 가운데에 빗물이 강을 만들었어요.
여왕개미는 꼼짝달싹 못하고 노란 버섯 밑에 있을 수밖에 없었어요. 여왕개미는 힘들게 구해낸 하얀 알 몇 개를 껴안고 엉엉 울었어요. 그 모습을 본 날꿈이는 여왕개미에게 날아가려 했어요. 그런데, 사슴벌레 할아버지가 날꿈이를 막았어요.
"얘야, 곤충들은 비올 때 날지 않아."
"네? 왜요?"
"비에 젖으면 날개가 제 구실을 못하거든. 잘못하면 다칠 수도 있어."
날꿈이는 슬픔에 잠긴 여왕개미 얼굴을 보았어요. 이렇게 앉아서 보고만 있을 수는 없었어요.
"걱정 마세요. 빗방울을 피해 요리조리 날 수 있을 거예요!"
날꿈이는 숨을 한번 크게 들이마시고서 빗속으로 날아갔어요. 노란 버섯에 도착하자, 흠뻑 젖어서 잔털이 몸에 찰싹 붙어있었어요. 여왕개미가 날꿈이를 보고 놀라서 외쳤어요.
"파리야…!"
"제가 도와줄게요."
날꿈이는 여왕개미에게 힘주어 말했어요. 하지만 흙탕물에 잠긴 개미굴에서 알을 어떻게 찾지요? 날꿈이의 다리는 흙을 파기엔 너무 가늘었어요.
그때, 문득 땅강아지 아저씨 생각이 났어요. 흙 속에 사는 아저씨에겐 땅 파는 일은 식은 죽 먹기일 거예요!
"다른 곤충을 데려올게요. 잠깐만 기다리세요!"
날꿈이는 또다시 빗속으로 날아올랐어요. 비를 맞지 않으려고 이리저리 움직였지만, 모두 피할 수는 없었어요.
날꿈이 몸이 젖고, 날개가 점점 무거워졌어요. 하지만 날꿈이는 알들을 구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느라 그런 줄도 몰랐어요. 날꿈이는 땅강아지 아저씨를 만났던 곳으로 갔어요.
"땅강아지 아저씨! 나와 보세요!"
배에 힘을 꽉 주고 크게 외쳤어요. 땅강아지 아저씨가 고개를 내밀었어요.
무슨 일이야? 비 오는데 이렇게 시끄럽게 굴고."
"저랑 같이 가실 데가 있어요. 여왕개미 좀 도와주세요."
"개미가 나랑 무슨 상관이야? 난 관심 없어."
아저씨는 차가운 말투로 대답했어요. 하지만 날꿈이는 포기하지 않았어요.
"여왕개미의 알들이 땅에 파묻혔는데, 꺼낼 수 있는 분이 아저씨밖에 없어요! 아저씨 없이는 전 여기서 꼼짝도 하지 않을 거예요!"
날꿈이는 삽처럼 생긴 땅강아지 아저씨의 앞발을 꼭 붙잡았어요. 아저씨가 놀란 얼굴로 물어봤어요.
"알이라고?"
"네, 비 때문에 참나무 아래 개미굴이 무너져서…."
땅강아지 아저씨는 날꿈이 말이 끝나기도 전에 숲으로 빠르게 날아갔어요.
'다행이야. 아저씨께서 도와주시기로 해서! 나도 어서 따라 가야지.'
날꿈이는 힘차게 날갯짓을 했어요. 그런데, 날아오르나 싶더니만 그 자리에 도로 똑 떨어지고 말았어요. 비에 푹 젖어 날개를 쓸 수 없게 된 거예요.
비는 줄기차게 내렸어요. 몸이 으슬으슬 떨려오고, 힘이 쫙 빠졌어요.
"살려줘요…."
날꿈이가 할 수 있는 건 아무 것도 없었어요. 날개는 물론이고, 다리도 까딱할 수 없었지요. 날꿈이는 땅에 찰싹 붙어서 겨우겨우 숨만 쉬고 있었어요.
"꼬마야, 정신 차려!"
사슴벌레 할아버지의 목소리에요. 날꿈이는 누군가 자신을 안아주는 게 느껴졌어요. 그러고는 위로 붕 뜨고 날아가는 느낌도 들었고요. 빗방울도 떨어지지 않았어요.
날꿈이는 눈을 비비고 정신을 차렸어요. 사슴벌레 할아버지가 날꿈이를 등에 싣고 날고 있었어요!
"할아버지! 저를 구하러 오신 거예요?"
"어린 네가 이렇게 나서는데, 어른이 가만히 있을 수는 없지."
사슴벌레 할아버지의 두 뿔에 커다란 잎이 끼워져 있었어요. 잎 덕분에 날꿈이도 비를 맞지 않고, 사슴벌레 할아버지의 날개도 젖지 않았던 거예요.
개미굴에 다시 돌아와 보니, 땅강아지가 빠르게 땅을 파고 있었어요. 커다란 앞발이 바쁘게 움직였고, 흙덩이가 여기저기 튀었어요.
"찾았다!"
날꿈이는 땅강아지 아저씨에게 알을 받아 여왕개미에게 날랐어요. 여왕개미는 허겁지겁 알들을 핥아주었어요.
땅강아지 아저씨가 촉촉한 눈빛으로 알들을 바라보며 말했어요.
"나는 태풍 때문에 부인과 알들을 잃었어. 세상이 무너진 기분이었고, 늘 화가 나 있었지. 그런데 이 알들 이야기를 들으니 내 아기들 생각이 퍼뜩 떠오르는 거야…. 파리야, 불러줘서 고맙구나."
날꿈이는 땅강아지 아저씨의 등을 토닥여주었어요.
이제야 숨을 돌린 여왕개미가 생긋 웃으며 말했어요.
"고마워, 파리야. 널 만난 건 큰 행운이야."
"빗속으로 뛰어들다니, 정말 용감하구나."
사슴벌레 할아버지가 날꿈이의 날개를 쓰다듬어 주었어요. 날꿈이는 기분이 좋았어요.
'나를 싫어하는 이들도 있었지만, 괜찮아. 난 남을 도울 줄 아는 멋진 파리인걸!'
날꿈이와 곤충들은 버섯 밑에 옹기종기 앉아 비가 그치길 기다렸어요. 비는 차차 잦아들었지요. 바로 그때, 알껍데기가 바스락거리더니 개미 애벌레가 보드라운 머리를 내밀었어요. 한 마리, 또 한 마리. 아기 개미들이 깨어났어요. 앞으로도 멋진 일들이 일어나겠죠?
[2015 신춘문예] 동화 당선 소감
김주현 씨
당선 소식을 알려준 통화가 끝난 후 펑펑 울었습니다. 마음 추스르는 데 한참 걸렸어요. 괜찮아졌나 싶더니 갑자기 웃음이 나기 시작했습니다.
온갖 생각이 꼬리를 물고 이어지다 문득 뱃속에서 짜릿한 느낌이 올라오면 또다시 웃음이 터져 나오고. 결국엔 밤잠을 설치고 말았습니다. 다음날에는 신 나고 신기한 마음에 길 가다가 난데없이 뜀박질을 하기도 했습니다.
저는 제 자신을 믿는 편입니다. 제가 선택한 게 옳은 길이라면 무엇이든 할 수 있다고 생각해왔지요. 그래서 돈을 많이 벌거나, 안정적인 직장을 찾는 것을 우선으로 두기보다는, 진정으로 내가 좋아하는 일이 무엇인지 스스로 묻고 가슴을 뛰게 하는 일들을 찾아왔습니다.
그렇지만 미래와 진로에 대해 고민 많을 시기인지라 불안감에 휩싸일 때도 많았습니다. 복학을 앞둔 요즘도 마찬가지였고요. 이런 제게 당선 소식은, 마치 보이지 않는 누군가가 다가와 등을 토닥여준 것 같았습니다. 하지만 '잘했어!'보다는, '잘해라!'라는 소리가 들렸어요. 소식을 들은 지 이틀이 지났지만, 아직까지도 두근거리고 떨립니다. 더욱 열심히 배우고 꾸준히 써야겠다고 마음먹게 됩니다. 좋은 글, 밝은 글을 쓰는 즐거운 작가가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믿어준 가족들, 시작을 차근차근 이끌어주신 신현수 선생님께 감사드립니다. 응원해주고, 사랑해주고, 아껴주시는 지인들, 가족 같은 초록담쟁이 글벗들, 마지막으로 제 등에 꿈날개를 달아준 날꿈이. 모두 고맙습니다.
▶약력=1991년 서울 출생.
연세대 아동가족학과 재학 중.
연세대 미래교육원 동화창작교실 수료.
현재 서울에 살며 문학을 공부하고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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