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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을 항해하면서 발견한 다시 읽고 싶은 글을 스크랩했습니다. 인터넷 공간이 워낙 넓다보니 전에 봐 두었던 글을 다시 찾기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닙니다. 그래서 스크랩할만한 글을 갈무리합니다. (출처 표시를 하지 않으면 글이 게시가 안됩니다.) |
출처 : | https://cafe.naver.com/ghkdqndlf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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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에서 산다는 말에 대해
고은교회: 황 부 일목사
<산다는 말의 두가지 의미>
성경에서 산다는 말의 의미에는 두가지가 있습니다.
그중에 하나는 “구원의 삶”으로 "산다"는 것이고,
또 하나는 “사망의 삶”을 "산다"는 것입니다.
(사망의 싦으로 사는것)
여기서 먼저 사망의 삶을 산다는 것 부터 보겠습니다.
바울은 사망의 삶을 죄로 인해 형벌을 살아가는 인생들의 싦으로 이렇게 증거 합니다.
"너희의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그 때에 너희가 그 가운데서 행하여 이 세상 풍속을 좇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으니 곧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이라.전에는 우리도 다 그 가운데서 우리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하여 다른이들과 같이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었더니"(엡2:1~3)
죄의 권세는 욕망의 권세고 곧 사망의 권세 입니다.죄아래 있는 모든 인생은 죄다 육체의 욕심을 따라 죽음에 이르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욕심때문에 싸우고 죽이고 미워하고 헐뜯고 원수지고 하면서 사망에 이르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야고보서 1:15절 말씀 그대로,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
이런 인생이 바로 죄의 권세에 따라 죽음의 삶을 사는 인생들인 것입니다
원리적으로 볼때 죄인된 인간들이 산다는 것은 흙으로 돌아 가는 죽음의 삶이고 영원한 죽음의 지옥 고통으로 가는 형벌의 삶이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지금 육신은 살아 있지만 죄로 죽은 자들의 사망에 이르는 비참한 형벌의 삶이 모든 세상 사람들의 산다는 본질적인 생인 것입니다.
전도서 5:17말씀이 그 증거입니다. "일평생을 어두운데서 먹으며 번뇌와 병과 분노가 저에게 있느니라"
(구원의 삶으로 산다는것)
죄와 사망에서 해방 되고 저주와 형벌된 고통과 죽음의 삶에서 벗어난 삶입니다.
이제는 세상 그 어떤 형편과 상관없이 하나님나라의 영원한 기쁨과 평안을 누릴 수 있는 삶이 주어진 것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구원을 통해 성도된 우리에게 주어진 새로운 삶은 세상에서 죄로 죽은자다운 삶에서 천국의 산자다운 삶으로 뒤바뀐 것입니다.
여기에 성도된 우리가 산다는 것의 진실이 있습니다.
본질적으로 우리의 죄된 옛 사람은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고 우리를 죄의 형벌된 죽음의 삶으로 이끌던 욕망도 육체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혔다고 말씀합니다. (갈 5:24)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생명으로 다시 산자가 된 것입니다. 때문에 우리에게 있어 삶의 길과 차원과 목적과 의미와 가치와 진실은 사망의 삶에서 구원을 이루는 삶으로 온전히 뒤바뀐 것입니다. 본질적으로 그렇게 되어진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하나님자녀 된 자들에게 구원의 거룩한 삶을 신구약 공통적으로 요구하는 것입니다.
장로교 교리서인 소요리문답 제 1문에 보면 “인생의 제일되는 목적은 무엇인가?
답: 인생의 제일되는 목적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그를 영원토록 즐거워하는 일이다” 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처음에 그렇게 지으셨습니다. 그러나 사탄의 미혹으로 죄를 짓고 타락한 인생은 마귀의 본성을 따라 자기를 위한 욕심으로 사망의 삶을 사는 자가 된 것입니다. 여기서 그리스도로 인한 구원은 영생을 얻는 것 이며 다시 회복된 하나님의 형상의 본래의 영광된 삶을 찾아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증거하기를 ,“저가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으심은 산 자들로 하여금 다시는 저희 자신을 위하여 살지 않고 오직 저희를 대신하여 죽었다가 다시 사신 자를 위하여 살게 하려 함이니다” 했고 (고후 5:15)
또한 “우리중에 누구든지 자기를 위하여 사는 자가 없고 자기를 위하여 죽는 자도 없도다.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다. 이를 위하여 그리스도께서 죽었다가 다시 살으셨으니 곧 죽은자와 산자의 주가 되려 하심이니라.”며 (롬 14:7-9) 그리스도의 구속의 목적과 구원받은 자의 삶의 목적이 어디 있는지를 밝혀주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이제 산다는 것은 산자다운 삶으로서 자기를 위한 이 세대를 본받지 않고 하나님의 기뻐하시고 온전하시고 선하신 뜻을 좇아 우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산제사로 드리는 것입니다.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고 하나님의 공의를 실현 시켜가는 선한 삶이 주어진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오늘날 대다수의 교인들이 하나님을 통해 세상을 기대하며 육체의 소욕띠라 살려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세상 죽은자 들과 같이 세상 차원에서 자기 비전을 찾고 부귀영화를 구하며 욕망의 더하는 싦을 살기위해 하나님을 찾는 것입니다.
교회들은 한술 더 떠서 세상에서 번영과 성공과 출세와 영광을 얻은 자들을 하나님의 축복을 특별히 받은 자들로 공개하며 간증케 해서 그들이 그렇게 되기까지 자기 유익을 위해 이교도들 처럼 열심히 주를 찾고 봉사하고 어려운 가운데서도 헌금하고 한 것을 본받아 살게 합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는 헛된 삶과 썩어질 면류관이 무엇이며 욕망과 탐심이 곧 우상숭배로서 하나님의 진노의 삶이됨을 말해주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구원받은 교회된 자들을 산자답게 먼저 그의 나라와 그 의를 구하여 살게 하는 것이 아니라 죽은자의 모습과 헛된 삶에 머물게 하거나 더욱 그리로 빠져서 헛된 영광을 구하기 위해 투기 하고 격동하여 대적을 만들게 하는 경우가 더 많습니다. 그래서 오늘날 많은 교회들이 “살았다 하는 이름은 가졌으나 죽은 자로다” 고 책망 받은 사데 교회와 같은 실태로 보여 지는 것입니다.
어떻게 하나님나라의 이름을 가진 교회가 순간적인 육신의 정욕이요 안목의 정욕이요 이생의 자랑이 되는 세상과 세상의 것들을 하나님을 통해 구하게 하는 역리적 상태로 돌아가게 되는지 모르겠습니다. 살았다는 교회가 죽은자들의 차원과 별다름 없는 모순이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이런 교회는 그리스도의 생명된 역사가 없는 교회일 것입니다.
또 한 가지 교회가 산다는 것에 대해 잘못 말하고 있는 것이 있는데 한동안 교계에 유행되던 말입니다. “교사가 살아야 교회가 산다.”, “사모가 살아야 교회가 산다.”, “주일학교가, 청년이 살아야 교회가 산다.”, “가정이, 구역이 살아야 교회도 산다” “찬송이 ,열심이,새로운 시스템이나 조직 경영이 살아야 교회가 산다” 는 등 이런 주제로 세미나도 많이 했습니다.
이런 얘기는 어떤 것을 바탕으로 활성화 시키고 성장을 가져간다는 논리인데 세상사회에서 보통 잘 써먹는 일반 논리입니다. 예를 들어 “경제가 살아야 나라가 산다.”, “말단사원이 살아야 회사가 산다.”등입니다.
교회는 그렇게 사는게 아닙니다. 어떤 여건으로 해서 교회가 활성화 되고 크게 성장하고 부흥했다고 교회가 산 것 이라는 논리는 인간의 사업적 개념에 불과합니다.
교회는 무엇이 잘 갖추어져 있고 특별히 누가 능력 있고 또는 어떤 부서가 잘 돌아간다고 교회가 사는 것이 아니라 그런 것이 없어도 많은 것이 부족하고 무능해도 여건이 전혀 안되도 이미 그리스도의 생명으로 살아있는 것이며 또한 하나님의 언약 안에서 은혜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교회는, 성도된 우리는 구원의 삶으로 살아갑니다.
세상 형편이 극과 극에 처할지라도, 하박국 선지자처럼 되는 것이 하나 없고 환난의 소식은 두려움으로 다가와도 구원의 하나님 한분으로 인해 기뻐하며 살 수 있고, 때론 비천하고 궁핍하며 때론 풍부한 형편에 처해져도 그것의 영향없이 사도바울처럼 자족하며 하나님나라로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빌 4:11-13)
그렇습니다. 때문에 성경은 하나님 백성된 자들이 사는 것에 대해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 말씀했고 (마 4:4)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고 말씀한 것입니다 (합 2:4) 이것이 우리에게 주어진 영원한 구원의 삶이요 복음으로 약속된 은혜의 삶입니다, 우리는 진정 하나님의 말씀으로 삽니다. 하나님 말씀만이 우리에게 영생의 구원을 주고 또한 우리를 구원을 이루며 살아가게 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내말을 듣는 자는 살아나리라 했고 내말이 곧 영이요 생명이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구약에서 종종 내 말을 순종하고 내 계명을 지키면 살 것 이라고 한 것이 또한 그렇습니다. (신 4:1)
이스라엘 백성들이 은혜의 언약으로 구원을 이미 얻었지만 앞으로 약속의 땅에서 누리는 축복의 삶은 약속된 말씀을 지킴에서 실현되기 때문입니다. 성도된 우리가 산다는 것은 오로지 복음을 통한 교회구원 안에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구원을 살아가게 하는 교회가 그리스도의 생명을 가진 참 은혜의 교회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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