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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눅7:36-5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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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이정원 목사 |
참고 : | 2017.11.26 희망의교회 http://hopech.kr |
두 죄인 이야기
눅7:36-50
성경은 모든 사람이 죄를 범했다고 선언하고 있습니다.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롬3:23) 그러므로 모든 사람은 예외 없이 죄인입니다. 그런데 세상에는 두 종류의 죄인이 있습니다. 하나는 자신이 죄인임을 깨닫고 인정하는 죄인, 다른 하나는 자신이 죄인임을 인정하지 않는 죄인입니다.
대개 선하고 바르게 살아온 사람들은 자신이 죄인이라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는 경향이 많습니다. 그런 사람들만이 아니라 보통 사람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예외 없이 죄인입니다. 자신이 죄인임을 인정하지 않는 사람은 소망이 없는 사람입니다. 죄 사함을 받을 수 없고, 구원도 받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자신이 죄인임을 정직하게 인정하는 사람은 소망이 있습니다. 자신이 죄임임을 깊이 자각하는 사람일수록 복 있는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일수록 죄 사함을 받게 되고 은혜를 많이 받기 때문입니다. 당신은 어떻습니까?
예수님을 초대한 바리새인
한 바리새인이 예수님을 식사에 초대했습니다. “한 바리새인이 예수께 자기와 함께 잡수시기를 청하니 이에 바리새인의 집에 들어가 앉으셨을 때에”(36절) 바리새인이 예수님을 식사에 초대하여 예수님께서 그들과 함께 식사하신 일은 복음서에 단 한 번 기록되어 있습니다. 바리새인이 예수님을 식사에 초대했다는 것은 그만큼 특별한 일이었습니다. 왜냐하면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을 배척하고 비난했으며, 갈수록 예수님을 대적하고 핍박했기 때문입니다.
바리새인들은 당시 종교의 지도자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율법의 전문가들이었고 선생들이었습니다. 바리새인들은 백성들로부터 경건하고 믿음 좋은 사람들로 인정을 받았고, 존경을 받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바리새인들의 율법준수는 형식적이었고, 그들은 진심으로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이 율법을 철저히 지키는 것은 하나님을 진정으로 사랑하기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율법 지키는 자체를 목적으로 삼았고, 율법에 세부 조항과 주석을 붙여 철저히 지켰습니다. 누구든지 그들이 규정한 율법의 세부 조항들을 지키지 않으면 정죄하고 비난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께서 안식일을 지키지 않는다고 비난하고 정죄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들의 위선을 지적하시고 책망하셨습니다.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잔과 대접의 겉은 깨끗이 하되 그 안에는 탐욕과 방탕으로 가득하게 하는도다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회칠한 무덤 같으니 겉으로는 아름답게 보이나 그 안에는 죽은 사람의 뼈와 모든 더러운 것이 가득하도다”(마23:25,27) 지금까지 바리새인들을 그렇게 책망한 사람은 없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이들의 위선을 적나라하게 드러내시고 신랄하게 책망하시자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을 미워하고 핍박했습니다.
그뿐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사역을 시작하시기 전에는 바리새인들이 백성들의 존경을 받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경건하고 믿음 좋은 선생과 지도자로 인정을 받았던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말씀을 선포하시고 이적을 행하시자, 모든 백성들이 예수님께로 몰려갔습니다. 바리새인들은 오랫동안 받아왔던 존경과 인기를 빼앗겼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예수님을 시기하여 미워하고 핍박했습니다.
그런데 한 바리새인이 예수님을 식사에 초대했습니다. 이제 우리는 이 일이 얼마나 특별한 일인지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바리새인이 예수님을 식사에 초대한 것은 예수님께 대한 존경과 호의로 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이 바리새인은 예수님을 식사에 초대했지만, 정작 예수님을 존경하거나 합당한 예의로 영접하지는 않았습니다. “그 여자를 돌아보시며 시몬에게 이르시되 이 여자를 보느냐 내가 네 집에 들어올 때에 너는 내게 발 씻을 물도 주지 아니하였으되 이 여자는 눈물로 내 발을 적시고 그 머리털로 닦았으며 너는 내게 입 맞추지 아니하였으되 그는 내가 들어올 때부터 내 발에 입 맞추기를 그치지 아니하였으며 너는 내 머리에 감람유도 붓지 아니하였으되 그는 향유를 내 발에 부었느니라”(44-46절)
당시 사람들은 샌들을 신고 먼지 나는 길을 걸어 다녔기 때문에 집에 들어갈 때는 반드시 발을 씻어야 했습니다. 손님을 초대한 경우에는 종에게 손님의 발을 씻기게 했고, 귀한 손님은 주인이 직접 발을 씻겼습니다. 그리고 손님을 환영하고 존경하는 의미로 머리에 기름을 발라주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초대한 이 바리새인은 예수님께 발 씻을 물도 드리지 않았고, 머리에 기름도 발라드리지 않았습니다. 이것을 통해 우리는 이 바리새인이 예수님을 초대한 것이 호의와 존경심에서 한 일이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면 이 바리새인은 왜 예수님을 초대했을까요? 존경심과 호의에서 한 일이 아니라면 뻔합니다. 바리새인들은 언제나 예수님을 시험하고 책잡을 일만 노리고 있었습니다. 이 바리새인이 예수님을 식사에 초대한 것도 이러한 목적으로 한 것이었습니다.
바리새인의 초대에 응하신 예수님
예수님께서는 이 바리새인의 초대에 기꺼이 응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사람의 마음과 동기를 모르셨을까요? 사람의 마음과 생각을 아시는 예수님께서는 그가 예수님을 초대한 동기와 생각을 잘 아셨습니다. 그런데 왜 그 초대에 응하셨을까요?
바리새인들이 예수님에 대하여 적대감을 가지고 있었지만,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거부감을 갖고 계시지 않았으며, 그들을 포기하시거나 버리지도 않으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도 구원 받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이 바리새인의 초대에 기꺼이 응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바리새인의 초대에 응하셔서 그의 집에 식사하러 오신 것은 이 사람에게 일생일대의 큰 기회였습니다. 하나님이신 그분, 죄인을 구원하시기 위해 하늘 영광의 보좌를 떠나 이 세상에 오신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께서 그의 집에 오셨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바리새인은 큰 축복과 은혜를 받을 기회를 얻은 것이었습니다. 이 사람은 과연 이 놀라운 기회를 잘 잡았을까요?
죄를 지은 한 여자
예수님께서 이 바래새인의 초대를 받아 식사 자리에 앉으셨을 때 돌발적인 한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그 동네에서 부정한 죄인으로 소문난 한 여자가 예수님께로 왔던 것입니다. 이 여자는 울면서 눈물로 예수님의 발을 적셨으며, 그녀의 머리털로 주님의 발을 닦았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발에 입을 맞추고 향유를 부었습니다. “그 동네에 죄를 지은 한 여자가 있어 예수께서 바리새인의 집에 앉아 계심을 알고 향유 담은 옥합을 가지고 와서 예수의 뒤로 그 발 곁에 서서 울며 눈물로 그 발을 적시고 자기 머리털로 닦고 그 발에 입 맞추고 향유를 부으니”(37-38절)
이 여자는 어떤 사람이었으며, 왜 이런 일을 했을까요? 누가는 이 여자에 대해서 ‘죄를 지은 한 여자’라고만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 여자는 창녀였을 가능성이 많습니다. 이 여자는 사람들에게 욕을 먹고 있었습니다. 이 여자는 하나님께서도 자신을 추하게 여기시고 미워하시며 심판하실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어느 날, 이 여자는 예수님의 말씀을 듣게 되었습니다. 주님의 말씀을 들은 이 여자는 자신의 죄를 회개했으며, 하나님께서 자신을 용서해주신 것을 확신하게 되었습니다. 그녀는 죄에서 해방되었고 참된 평안과 자유를 얻었습니다. 자신을 향하신 하나님의 크신 사랑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녀는 말로 다할 수 없는 기쁨과 감격을 맛보았습니다.
그런데 그 날 예수님께서 그녀가 살고 있는 동네에 오셨습니다. 이 사실을 알게 된 여자는 예수님을 뵙기 위해 바리새인의 집으로 갔습니다. 사람들은 그녀에게 손가락질하며 욕했을 것입니다. 특히 바리새인들은 그녀 같은 창녀들을 멸시하고 저주하며 상대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이 여자는 예수님을 뵙기 위해서 그 모든 것을 감수했습니다. 주님만 만날 수 있다면 그 무엇도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드디어 이 여자는 바리새인의 집에 앉아계시는 예수님을 뵙게 되었습니다. 여자는 뜨거운 감사와 경외하는 마음으로 주님을 바라보며 주님 가까이에 다가왔습니다. 그리고 이 여자의 눈에서는 뜨거운 눈물이 폭포처럼 흘러내렸습니다. 자신의 죄를 사해주신 주님의 사랑과 은혜가 더욱 강하고 뜨겁게 그녀를 사로잡았던 것입니다. 그녀는 자신의 머리를 풀어 주님의 발을 닦았습니다. 그리고 그 발에 입을 맞추고 준비해온 향유를 부었습니다. 그 향유는 그녀가 가지고 있는 것 중에 가장 귀한 것이었습니다.
이 여자는 자신의 죄를 사해주시고, 자신 같은 죄인을 받아주신 주님의 은혜가 너무나도 감사했습니다. 그 무엇으로도 그 은혜를 갚을 수 없었습니다. 그녀가 주님을 위해 행한 모든 일들은 그녀의 뜨거운 감사와 사랑과 최고의 존경을 나타내는 것이었습니다. 당신은 이 여자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겠습니까? 자신이 얼마나 소망 없는 죄인인지를 아는 사람이라면, 나 같은 죄인을 받아주시고 구원해주신 주님의 은혜를 깊이 깨닫고 뜨겁게 감사하는 성도라면, 그래서 주님을 위해 모든 것을 다 바쳐도 부족하다고 생각하는 성도라면 이 여자의 심정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이 여자의 마음을 잘 아셨으며, 그녀의 감사와 사랑과 헌신을 기쁘게 받아주셨습니다.
바리새인의 생각
예수님을 초대했던 바리새인은 이 여자의 돌발적인 행동에 불쾌감을 느꼈습니다. 그러나 사실 이 바리새인은 내심 이런 일을 기대하고 있었습니다. 여자가 예수님께 행한 일을 보고서 이 바리새인은 “그러면 그렇지!”하며 쾌재를 불렀습니다. “예수를 청한 바리새인이 그것을 보고 마음에 이르되 이 사람이 만일 선지자라면 자기를 만지는 이 여자가 누구이며 어떠한 자 곧 죄인인 줄 알았으리라 하거늘”(39절)
사람들은 예수님을 큰 선지자로 생각했습니다. 더 나아가서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메시아라고 믿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바리새인들은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 메시아이심을 인정하지 않았으며, 선지자라고도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이 일을 보니 자기들이 생각하는 것이 맞았다는 것입니다. 만일 예수님께서 선지자라면 이 여자가 어떤 사람인지를 아셨을 것이며, 자신에게 그런 일을 하지 못하게 하셨을 것이 분명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이 여자의 행동을 그냥 두신 것을 보니 선지자가 아니라는 것이 분명하다는 것이었습니다. 이 바리새인은 이제 예수님께서 선지자가 아니라는 증거를 잡았다고 생각했습니다.
많이 탕감 받는 자
모든 것을 아시는 주님께서는 바리새인의 생각과 여자의 마음을 아셨습니다. 여자가 왜 이런 행동을 하는지, 그리고 이 바리새인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아셨습니다. 주님께서는 바리새인의 생각을 아시고 그에게 물으셨습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시몬아 내가 네게 이를 말이 있다 하시니 그가 이르되 선생님 말씀하소서 이르시되 빚 주는 사람에게 빚진 자가 둘이 있어 하나는 오백 데나리온을 졌고 하나는 오십 데나리온을 졌는데 갚을 것이 없으므로 둘 다 탕감하여 주었으니 둘 중에 누가 그를 더 사랑하겠느냐”(40-42절)
예수님께서는 이 여자가 주님 곁에 와서 울면서 눈물로 주님의 발을 씻기고 머리털로 닦고 입 맞추며, 주님의 머리에 값비싼 향유를 부은 것은 자기 같은 죄인을 용서해주시고 사랑해주신 은혜가 너무나도 크고 감사하여 한 행동이라는 것을 알고 계셨습니다. 그러나 이 바리새인은 부정한 여자가 예수님께 합당하지 못한 행동을 했다고 생각했으며, 예수님께서 그것을 그냥 두신 것을 보니 선지자가 아닌 것이 분명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이 바리새인은 예수님을 시험하고 책잡을 궁리로 예수님을 자기 집에 초대했습니다. 모든 것을 아시는 주님께서는 이들의 생각을 아셨고, 바리새인과는 너무나도 대조적인 여자의 마음과 행동을 설명해주셨습니다.
데나리온의 노동자의 하루 품삯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오백 데나리온은 줄잡아도 오천만원 정도 되는 돈입니다. 바리새인은 많은 빚을 탕감 받은 사람이 주인을 더 사랑할 것이라고 대답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비유를 통해 죄를 많이 사함 받은 사람이 주님을 더 많이 사랑하는 것은 당연하다는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이 여자가 한 모든 행동은 그녀의 많은 죄를 사함 받은 것에 대한 감사과 사랑에서 나온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러므로 내가 네게 말하노니 그의 많은 죄가 사하여졌도다 이는 그의 사랑함이 많음이라 사함을 받은 일이 적은 자는 적게 사랑하느니라”(47절)
바리새인 시몬은 예수님의 사랑과 은혜를 알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예수님을 자기 집에 초대했으나 사랑과 감사에서 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예수님을 책잡아 비난할 거리를 잡고자 했습니다. 부정한 한 여자가 예수님께 와서 한 행동을 보고, 이 바리새인은 드디어 예수님을 책잡고 비난할 거리를 찾았다고 무릎을 쳤습니다. 이 바리새인은 예수님의 사랑과 은혜를 전혀 알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이 여자는 자기 같은 죄인에게 베풀어주신 사죄의 은총에 감사하고 감격하여 모든 것을 주님께 다 드려도 부족했습니다.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예수님께서는 이 여자의 감사와 사랑과 헌신을 기쁘게 받아주셨고, 그녀에게 죄 사함과 구원을 선포해주셨습니다. “이에 여자에게 이르시되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함께 있는 자들이 속으로 말하되 이가 누구이기에 죄도 사하는가 하더라 예수께서 여자에게 이르시되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 평안히 가라 하시니라”(48-49절)
바리새인들은 예수님께서 죄를 사함 선포하시는 것을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께서 하나님이심을 알지 못했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미 이 여자의 죄를 사해주셨습니다. 이제 주님께서는 공개적으로 사죄를 선포하셨으며, 그녀가 구원을 받았다고 선언하셨습니다. 주님께서는 그녀의 믿음을 기뻐하셨고, 넘치는 은총을 베풀어주셨던 것입니다.
우리는 모두 죄인입니다. 본래 죄인에게는 오직 하나님의 심판과 진노와 영원한 멸망만 있을 뿐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독생자를 보내시고, 그분의 십자가 보혈로 우리 죄를 대속해주셨습니다. 예수 믿고 구원 받은 우리는 모두 이 은혜를 받았습니다. 그런데 당신은 이 은혜를 얼마나 깊이 깨닫고 감사하며 감격하고 있습니까? 주님께서는 사함을 많이 받은 사람은 주님을 많이 사랑하며, 사함을 적게 받은 자는 주님을 적게 사랑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많은 죄를 지은 죄인일수록 죄 사함 받은 은혜를 더 많이 감사하며, 하나님을 더욱 많이 사랑한다는 뜻입니다.
그러나 다른 면에서 이 말씀을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사실 따지고 보면 우리는 누구나 다 죄인입니다. 하나님 보시기에 별 차이가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죄 사함 받은 은혜에 뜨겁게 감격하며 충성을 다해 주님을 섬깁니다. 그런데 어떤 성도는 그저 평범하게 신앙생활을 합니다. 이 차이는 어디서 오는 것일까요?
문제는 내가 얼마나 소망 없는 흉악한 죄인인지를 깊이 깨닫는 데 있습니다. 자신의 죄를 깊이 깨달아야 죄 사함 받고 구원 받은 은혜가 얼마나 큰지를 더 깊이 깨닫게 됩니다. 그리고 더욱 뜨겁게 감사하고 감격하며, 마음을 다해 주님을 사랑하게 되고, 생명까지도 바쳐 주님께 충성하게 됩니다. 이런 성도는 가장 복된 사람입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심령이 가난한 자가 복이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당신은 자신의 죄를 얼마나 깊이 깨닫고 있습니까? 나 같은 흉악한 죄인을 용서해주시고 구원해주시고 자녀 삼아주신 하나님의 사랑을 얼마나 깊이 깨닫고 있습니까? 나의 죄를 대속하시려고 십자가에 달려 고난당하시고 죽으신 주님의 사랑과 은혜를 얼마나 깊이 깨닫고 있습니까? 얼마나 뜨겁게 감사하며 감격하고 있습니까? 주님을 위해 생명을 다 바쳐 충성하며 남은 삶을 살기로 작정하고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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