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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고백과 제자도

누가복음 이정원 목사............... 조회 수 234 추천 수 0 2018.11.18 08:1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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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눅9:18-27 
설교자 : 이정원 목사 
참고 : 2018.1.14 희망의교회 http://hopech.kr 

신앙고백과 제자도                      

눅9:18-27


  인간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구원입니다. 이 구원은 다른 어떤 것과 비교조차 할 수 없는 절대적인 문제입니다. 만일 구원을 받지 못했다면 이 세상에서의 짧은 인생을 아무리 훌륭하게 살았다 해도, 온갖 좋은 것들을 맘껏 즐기며 살았다 해도, 아무리 위대한 일을 이루었다 해도, 그 인생은 완전히 실패한 인생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구원받지 못하고 인생을 마친다면 영원히 아무 소망도 없게 되고 맙니다. 그러나 구원을 받았다면 더 이상 바랄 것 없는 축복을 받은 것입니다. 구원을 받으려면 하나님의 구원자 예수 그리스도를 분명히 믿어야만 합니다. 그 외에는 구원의 길이 없습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고 영접하여 구원을 받았습니다. 얼마나 복되고 감사한 일인지 모릅니다. 그런데 이렇게 예수 믿고 구원받았으면 모든 것이 끝난 것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예수 믿고 구원 받은 성도는 주님 따르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구원 받은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아무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오늘 본문은 죄인이 구원 받는 데 절대적으로 필요한 신앙고백과, 예수 믿고 구원 받은 성도가 살아가야 할 참된 제자도에 대해 말씀하고 있습니다.


    무리가 나를 누구라 하느냐


  누가복음 9장은 예수님 사역의 일대 전환점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예수님께서는 갈릴리 지방에서 사역하셨습니다. 그런데 이제 갈릴리를 떠나 유대로 가십니다. 유대 지방으로 가신 예수님께서는 예루살렘에 입성하시고,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십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유대 지방으로 사역지를 옮기시는 9장은 예수님 사역의 전환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시점에서 예수님께서는 예수님께 대한 제자들의 신앙을 확인하셨습니다. 그리고 비로소 고난당하시고 십자가에 죽으신 후 부활하실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마태와 마가는 이 중요한 일이 가이사랴 빌립보에서 있었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예수께서 빌립보 가이사랴 지방에 이르러 제자들에게 물어 이르시되 사람들이 인자를 누구라 하느냐”(마16:13) 가이사랴 빌립보에서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사람들이 예수님을 누구라고 하는지 물으셨습니다. “예수께서 따로 기도하실 때에 제자들이 주와 함께 있더니 물어 이르시되 무리가 나를 누구라 하느냐”(18절) 제자들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세례 요한이나 엘리야, 또는 옛 선지자 중의 하나라고 생각한다고 대답했습니다.


  사람들이 예수님을 죽은 세례 요한이 살아난 것이라고 생각한 것은 예수님께서 설교하시고 제자를 택하신 것이 세례 요한과 비슷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행하신 놀라운 이적들을 본 사람들은 예수님을 이적을 많이 행한 구약의 엘리야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밖에 예수님을 구약의 옛 선지자 중 한 사람이 살아 돌아온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예수님의 놀라운 능력은 인정했으나, 예수님을 하나님의 메시아로 생각하지는 못했습니다. 당시 사람들은 예수님에 대해서 확실하게 알지 못하고 있었으며, 혼란스러워하고 있었습니다. 그 이유는 그들이 구약성경에 예언된 메시아를 찾으려 하지 않고, 당시 사람들이 생각하고 기대하던 메시아를 찾으려 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오늘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에 대해서 알기를 원하는 사람은 성경을 읽어야 합니다.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사람들이 예수님을 누구라고 하는지 물으셨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진정 관심을 가지고 계셨던 것은 제자들이 예수님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느냐 하는 것이었습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하나님의 그리스도니이다 하니”(20절) 마태는 베드로의 대답을 이렇게 기록했습니다.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마16:16)


  베드로의 대답은 제자들이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 메시아로 분명히 알게 되었다는 사실을 잘 보여줍니다. 지금까지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데리고 다니시면서 가르치시고 양육하신 결과였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베드로의 고백을 들으시고 흡족해 하셨습니다. 그리고 이것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고 경계하셨습니다. “경고하사 이 말을 아무에게도 이르지 말라 명하시고”(21절)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이 드디어 예수님에 대해 바르게 알고 고백한 것을 기뻐하셨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왜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메시아이심을 사람들에게 말하지 말라고 경계하셨을까요? 그것은 당시 유대인들이 가지고 있었던 왜곡된 메시아관 때문이었습니다.


  당시 유대인들은 로마의 지배를 받고 있는 나라를 해방시켜줄 정치적 군사적 영웅으로서의 메시아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유대인들은 메시아는 이스라엘 역사상 가장 위대한 왕이었던 다윗과 같은 인물일 것이라고 기대했습니다. 그러한 메시아에 대한 대망이 가득한 상황이었기 때문에, 유대인들은 메시아가 나타났다고 하면 추종할 만반의 준비가 되어 있었습니다. 그들은 메시아의 지도하에 로마와 투쟁하여 독립을 쟁취하게 될 것을 기대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실제로 오병이어의 이적 후에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억지로 임금 삼으려 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께서 그들이 와서 자기를 억지로 붙들어 임금으로 삼으려는 줄 아시고 다시 혼자 산으로 떠나가시니라”(요6:15) 예수님께 메시아라는 사실이 널리 알려지면, 유대인들은 이렇게 예수님을 왕으로 세우고 로마와 싸우려 할 것이었습니다. 그러면 로마 당국은 예수님을 잡아 없애려고 혈안이 될 것입니다. 만일 그렇게 되면 예수님의 남은 사역은 큰 방해를 받게 될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메시아이심을 사람들에게 말하지 말라고 경계하셨던 것입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을 ‘하나님의 그리스도’라고 고백했습니다. 마태복음에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베드로의 이 고백은 예수님은 구약에 예언된 메시아,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구원자시라는 뜻입니다. 예수님은 사람의 몸을 입고 세상에 오셨습니다. 그러나 그분은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성부 하나님과 동등한 하나님이셨습니다. 하나님이신 그분이 사람으로 오셔서 우리를 대신하여 십자가에 못 박혀 고난당하시고 죽으셨습니다. 당신은 이 복음을 분명히 믿습니까? 누구나 우리를 위해 고난당하시고 죽으시고 부활하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는 구원을 받습니다.


    수난에 대한 첫 번째 예언


  베드로의 신앙고백 후, 예수님께서는 비로소 고난당하시고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신 후 사흘 만에 부활하실 것을 제자들에게 가르치기 시작하셨습니다. “이르시되 인자가 많은 고난을 받고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버린 바 되어 죽임을 당하고 제삼일에 살아나리라 하시고”(22절)


  앞에서 살펴본 대로 당시 유대인들은 잘못된 메시아관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제자들도 예수님께서 이스라엘의 왕이 되실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누가 더 크냐 하는 문제로 자주 다투었습니다.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왕이 되시면 더 높은 자리를 차지하게 되기를 원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정치적 군사적 메시아로서 유다의 주권을 회복시키시기 위해 오신 것이 아니었습니다. 예수님은 백성들의 갈채와 환호에도 관심이 없으셨습니다. 주님은 인류의 구원을 위해 십자가에서 고난을 당하시고 죽으시기 위해 오셨습니다. 이제 제자들이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메시아이심을 분명히 알고 고백했습니다. 그 때부터 예수님께서는 비로소 제자들에게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부활하실 것을 말씀하기 시작하셨습니다.

 

   제자도 ? 자기 부인


  예수님께서 고난당하시고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신 후 부활하실 것이라는 말씀을 들은 제자들은 당황하고 두려워했습니다. 제자들은 십자가 죽음을 통해 성취될 메시아의 구속사역을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제자들은 다른 유대인들과 마찬가지로 영광중에 임하시는 메시아를 기대하고 있었으며, 이제 예수님께서 곧 왕이 되실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면 제자들도 주님과 함께 영광을 누리게 될 것을 기대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러한 제자들에게 참된 제자도에 대해 가르치셨습니다. “또 무리에게 이르시되 아무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23절)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아들이신 자기를 부인하시고, 죄인처럼 십자가에 못 박혀 고난을 당하시고 죽으심으로 죄인들의 구속을 이루실 것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구속사역을 위해 세상에 오셨습니다. 그렇다면 주님을 따르려는 제자들 역시 주님처럼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라야 한다는 것입니다.


  주님을 따르려는 자는 무엇보다 먼저 자기를 부인해야 합니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중심적인 본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자기가 원하는 대로, 자기만족을 위해 살기를 원합니다. 그러나 예수 믿고 구원받아 주님을 따르는 제자가 된 성도는 그러한 자기를 부인해야 합니다. 자기중심적인 옛 사람의 고집과 욕심을 가지고는 주님의 뜻에 순종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매일 순간마다 자신의 뜻과 생각을 부인하고 이기적인 정욕을 버려야 합니다.


  자기를 부인하는 것은 자아를 버리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자기가 자기 인생의 주인인 줄 알고 살아갑니다. 무엇보다 우선적으로 자기만족과 유익을 추구합니다. 누가 뭐래도 자기주장과 생각대로 살기를 원합니다. 현대인들은 이 자아를 최대한 존중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문제는 이 자아가 심히 타락하여 악하게 왜곡되었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자아는 하나님께 복종하기를 거부합니다. 누군가 이 자아를 침범하거나 건드리면 속이 뒤집어져 싸우거나 갈등을 일으킵니다. 그래서 사람을 증오하고 공격하며 되갚아 주어야 속이 시원해집니다. 이런 자아를 버리지 않으면, 이 자아가 깨지지 않으면 우리는 주님을 따라갈 수 없습니다. 주님께 순종하며, 주님께 쓰임 받는 제자가 될 수 없습니다.


  우리는 이 자아를 깨뜨리고 주님께 온전히 복종해야 합니다. 내 맘과 뜻대로 살고자 하는 생각을 버리고 오직 하나님의 뜻에 순종해야 합니다. 자아를 깨뜨리려면 내가 얼마나 죄인이며 악하고 추한 자인지를 깊이 자각해야 합니다. 내가 하나님 앞에 얼마나 가증하고 부끄러우며 소망 없는 자인지를 절감해야 합니다. 이런 자아를 버리고 오직 성령님의 도우심과 하나님의 은혜만을 간절히 구해야 합니다. 자신의 죄악된 모습을 돌아보며 통회자복하기를 힘써야 합니다. 언제나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자가 되기를 갈망하며 힘써야 합니다.


  이렇게 자아를 버리며 자기를 부인하면 성령께서 우리를 온전히 다스리십니다. 갈수록 성령의 능력과 도우심을 강하고 풍성하게 힘입게 됩니다. 주님께서는 이런 사람을 기쁘게 사용하십니다. 참된 제자의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자아를 깨뜨리고 주님께 귀하게 쓰임 받는 참된 제자가 되시기 바랍니다.


    제자도 ? 십자가를 짐


  예수님께서는 주님을 따르려는 자는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자기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라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신 십자가는 무엇을 의미할까요? 이 십자가는 주님을 믿고 따르는 것 때문에 당하게 되는 고난을 의미합니다. 사도들은 이것을 ‘그리스도를 위한 고난’이라고 불렀습니다. “나는 이제 너희를 위하여 받는 괴로움을 기뻐하고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그의 몸 된 교회를 위하여 내 육체에 채우노라”(골1:24) “오히려 너희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는 것으로 즐거워하라 이는 그의 영광을 나타내실 때에 너희로 즐거워하고 기뻐하게 하려 함이라”(벧전4:13) 주님의 참된 제자는 주님을 따르며 믿음으로 살 때 당하게 되는 고난을 두려워하거나 피하지 않습니다. 당신은 어떻습니까?


  어떤 분들은 이 십자가를 사명이라고 설명하기도 합니다. 그 이유는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사명을 감당할 때 고난과 희생을 감수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십자가 보혈로 구원을 받은 성도라면, 주님을 위해 충성을 다해 살아가는 것이 당연합니다. 주님의 몸된 교회를 위해 힘써 봉사하는 것이 당연합니다. 이렇게 사명 감당하는 것은 우리 인생을 가장 가치 있고 영광스럽게 만들어주며, 우리의 신앙을 더욱 견고하게 성숙시킵니다. 그래서 주기철 목사님은 “처음에는 내가 십자가를 지고 가는 줄 알았는데, 나중에 보니 십자가가 나를 지고 가더라.”고 말했습니다. 주님을 위해 지고 가는 이 십자가는 우리에게 축복이며 특권입니다.


  당신은 주님을 따르며 믿음대로 살기 위해 손해와 고통을 기꺼이 당하고 있습니까? 주님께서 맡겨주신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 고난과 희생을 감수하고 있습니까? 거기서 주님을 더욱 뜨겁게 만나며, 믿음이 더욱 견고하게 성숙되고 있습니까? 각자의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르는 성도가 되시기 바랍니다.


    천하보다 귀한 영혼


  당신은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제자도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자기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라야 한다는 말씀이 혹시 부담스럽습니까? 감당하거나 지불하기에 너무 큰 손해와 희생이라는 생각이 듭니까? 아마 제자들도 그랬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이 길이야말로 진정으로 사는 길이요, 영광을 받게 될 승리의 길임을 말씀하셨습니다.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하고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구원하리라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자기를 잃든지 빼앗기든지 하면 무엇이 유익하리요”(24-25절)


  자기를 부인하지 못하는 사람은 자신을 위한 삶을 고집하며, 세상 부귀영화와 자기만족을 추구하며 살아갑니다. 이렇게 살아가는 사람은 주님을 따를 때 당하게 되는 핍박과 손해를 피할 수 있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영원한 생명과 하나님 나라를 잃어버리게 될 것입니다. 세상이 주는 부와 명예와 쾌락을 아무리 많이 차지하고 누렸다 한들 영혼을 잃어버리게 된다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주님께서 자랑스러워하시는 제자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주님의 구속의 은혜를 힘입어 구원받았습니다. 오직 주님만 우리의 구원이시며 소망이시고, 우리 인생의 주인이시며 삶의 목적이 되십니다. 그런데 주님을 따르며 믿음을 지키고 사명을 감당해나갈 때 고난과 희생이 따를 것입니다. 때로는 주님 따르는 것이 세상적인 기준으로 볼 때 인생에 실패한 것처럼 보일 때도 있을 것입니다. 그럴 때도 제자는 주님 따르는 것을 부끄러워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세상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사는 주님의 제자들입니다. 예수 이름으로 죄와 싸우며, 예수 이름으로 복음을 전하여 멸망하는 자들을 건지는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어떻게 주님을 부끄러워하겠습니까?


  당신은 사람들에게 우리 구주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자랑하고 있습니까? 당신의 신앙고백을 담대하게 나타내고 있습니까? 욕을 먹거나 이상한 취급을 당해도 주님을 자랑스러워합니까? 주님 따르는 것을 부끄러워하거나 주저하는 것에 대해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누구든지 나와 내 말을 부끄러워하면 인자도 자기와 아버지와 거룩한 천사들의 영광으로 올 때에 그 사람을 부끄러워하리라”(26절) 무슨 일을 당해도, 어떤 경우에도 감사와 기쁨으로 담대하게 주님 따르는 성도가 되시기 바랍니다.
 
  영원히 멸망당할 죄인인 내가 그리스도의 십자가 보혈로 구원을 받았습니다. 이제 어떻게 살아가야 하겠습니까?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자기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라야 합니다. 어떤 시험과 환난을 당한다 해도 오직 믿음을 굳게 지키며, 주님께서 맡겨주신 사명을 따라 충성을 다해야 합니다. 믿음과 사명을 따라 충성을 다해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살아가며, 주님 오실 때 영광과 상을 받는 성도가 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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