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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어린양

요한계시 양주섭 목사............... 조회 수 145 추천 수 0 2018.12.20 23:59: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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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계5:1-7 
설교자 : 양주섭 목사 
참고 : 탈라하시장로교회 http://tallakoreanchurch.net 

책과 어린양 (요한계시록 5:1-7/ 2016년 4월10일)


서론
 
제가 가장 좋아하는 2가지 취미는 운동과 영화감상입니다. 그래서 틈나는대로 운동을 하려고 하고 보는 것도 굉장히 좋아해 야구와 농구 경기를 시간가는줄 모르고 볼때도 있습니다. 그리고 영화감상도 굉장히 좋아합니다. 이처럼 운동과 영화감상은 저에게 사역의 고단함을 풀어주는 활력소와도 같습니다. 미국에 와서도 시간이 나면 Mall에 있는AMC 같은 극장에 가서 영화감상을 즐깁니다. 제가 최근에 본 영화 중에서 Maze Runner라는 기존에 없던 굉장히 특이한 내용의 영화가 있습니다. 미스터리한 조직 ‘위키드’에게 잡혀 기억이 삭제당한 젊은이들이 위키드가 만든 미로에 갖히게 됩니다. 그래서 미로에 갖힌 청년들이 모여 서로 탓도하고 싸우기도 하다가 결국에는 힘을 합쳐 같이 미로를 탈출한다는 내용입니다.
 
미로에 갖혔을 때에 그 젊은이들이 절망과 핍박을 당합니다. 그리고 미로를 다니다 보면 괴물과 짐승등 무서운 장애물들도 많이 만나게 됩니다. 그런데 그들이 결국 미로를 탈출하고 밖으로 나왔을때, 빛으로 나왔을때는 구원과 생명이 있는 것입니다. 그 미로를 빠져나갈려면 미로를 탈출할 수 있는 길이 그려진 비밀지도가 있습니다. 저는 이런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만약 책은 있지만 아무도 볼 수 없게 봉해져 있으면 어떨까? 당장 탈출안하면 죽게되는 긴박한 상황에서 만약 그렇게 되어있다면 얼마나 애가 타겠습니까?
 
저는 오늘 말씀을 준비하면서 계속 영화속의 미로 생각이 났습니다. 우리는 세상이라는 미로에 살고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사단이 권세잡아 절망과 핍박이 가득한 세상에서 우리는 정신없이 바쁘게 살지만, 주님을 모르고 참 구원의 길을 모르는 자들은 파멸의 길을 날마다 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이 미로를 벗어나서 빛이 가득한 영생과 구원의 길로 가는 길로 갈수 있는 비밀을 풀수 있는 사람이 누구냐?  봉인을 떼기에 합당한 자가 누구냐? 그 분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 밖에 없다고 오늘 본문은 말하고 있습니다.  
 
지난시간에 하늘 보좌의 광경을 묘사하고 있는 요한계시록 4장을 나눴습니다. 오늘은 이어서 5장 1-7절을 나누겠습니다. 오늘 본문은 하늘 보좌에 앉으신 이의 손에 봉인된 두리마리 책이 있는데, 누구도 그 인을 떼고 책을 펼칠 자가 없었으나 일찍 죽임 당한 어린양이 그 책을 취하시는 광경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본론
 
“내가 보매 보좌에 앉으신 이의 오른손에 두루마리가 있으니 안팎으로 썼고 일곱 인으로 봉하였더라(1)” 1절은 ‘일곱 인으로 봉한 하나님의 두루마리 책’을 소개합니다. 보좌에 앉으신 하나님의 오른손에 계시의 완전성과 비밀성을 상징하는 일곱 인으로 봉하여진 책이 들려있습니다. 여기서 ‘안팎으로 썼다’는 것은 그 내용이 충실하여 하나도 빠짐이 없고 완전함을 의미합니다. 또한 ‘일곱 인으로 봉하였다’는 것은 일곱이 완전수를 상징하는 것에서 보듯 그 내용이 완전한 비밀로 감추어져 있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두루마리가 권능을 상징하는 하나님의 오른손에 들려 있다는 것은 인류와 우주의 미래에 대한 모든 계획과 집행은 오직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으며, 하나님의 허락 없이는 그 누구도 알 수 없는 완전한 비밀임을 말해 줍니다.
 
이어 2-5절은 ‘유일하게 하나님의 책을 펼 수 있는 다윗의 뿌리’에 관한 설명입니다. 이 세상 피조물 중에는 그 인을 떼기에 합당한 존재가 없어 환상을 보는 요한이 심히 슬퍼하는 중에 있을 때, 하늘 보좌 주위에 있던 이십사 장로 중의 하나가 요한을 위로하며 유대  지파의 사자이자 다윗의 뿌리가 이기었으니 그가 일곱 인을 떼고 책을 펴실 것이라고 일러줍니다. “또 보매 힘있는 천사가 큰 음성으로 외치기를 누가 그 두루마리를 펴며 그 인을 떼기에 합당하냐 하나(2)” 한 천사가 나와 온 땅을 향해 누가 과연 하나님의 손에 들린 저 두루마리의 인을 떼기에 합당한 자격을 갖추었느냐고 외쳤습니다.
 
그런데 이처럼 우렁차고 당당한 천사의 도전에 하늘 위에나 땅 위에나 땅 아래에, 어느 곳에도 ‘바로 나다’하고 나설 수 있는 자가 하나도 없었습니다. “하늘 위에나 땅 위에나 땅 아래에 능히 그 두루마리를 펴거나 보거나 할 자가 없더라(3)” 우리 인간 가운데는 그 누구도 스스로의 힘으로는 우리의 구원과 심판에 관한 하나님의 뜻과 계획을 알 수 있는 자가 없습니다. 뿐만 아니라 천사나 사단조차도 하나님의 뜻을 알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도대체 누가 하나님의 뜻과 계획을 알 수 있습니까? 바로 우리 주님과 성령이십니다. 고린도전서 2장 10절에 성령은 하나님의 깊은 것까지도 통달하시는 영이라고 말했습니다. 또한 우리 주님은 본질과 성품에 있어서 성부 하나님과 동등하신 분이십니다. 따라서 그리스도와 성령 외에는 이 우주 가운데 하나님 속에 감추어진 그 깊은 경륜(dispensation)과 계획, 비밀을 알 수 있는 존재는 결코 없는 것입니다.
 
그 두루마리를 펴보아야만 비로소 하나님의 계획이 집행되어 그토록 기다리던 성도의 구원과 사단에 대한 심판이 이루어질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두루마리를 펴볼수 없다는 천사의 큰 음성을 들은 사도요한은 대성 통곡하게 됩니다. “그 두루마리를 펴거나 보거나 하기에 합당한 자가 보이지 아니하기로 내가 크게 울었더니(4)”
 
이처럼 울음을 터뜨리던 사도 요한에게 곁에 섰던 한 장로가 그리스도께서 그 책의 인을 떼고 두루마리를 펴실 것이라는 말을 합니다. “장로 중의 한 사람이 내게 말하되 울지 말라 유대 지파의 사자 다윗의 뿌리가 이겼으니 그 두루마리와 그 일곱 인을 떼시리라 하더라(5)”사도요한은 이 말을 듣고 너무나 기뻐서 방방 뛰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말은 절망에 빠져 통곡하고 있는 그에게 한줄기 빛과 같은 소망의 말이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유대 지파의 사자’와 ‘다윗의 뿌리’는 각각 창세기49:9과 이사야11:1을 배경으로 한 것으로 곧 유대 지파 가운데서도 다윗의 후손으로 나신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킵니다. 한마디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일곱 인으로 봉해진 두루마리의 인을 떼고 거기에 기록된 모든 구원과 심판을 집행할 것이라는 말입니다. 하나님의 손에 들린 두루마리의 인을 뗄 수 있는 자는 석가모니나 소크라테스나 마호메트가 아니라 오직 유다 지파의 후손으로 다윗의 혈통을 이어받은 예수 그리스도 한 분 뿐입니다. 다시말해 이 불의한 세상을 심판하고 의로운 자들을 구원할 이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 한 분뿐이십니다.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요14:6)”
 
여러분, 종교간의 화해와 종교의 혼합은 다른 것입니다. 우리는 타종교를 존중하여 가급적 평화로운 관계를 유지할 수는 있어도 그리스도의 유일성을 결코 부정해서는 안됩니다. 종교혼합주의 사상이 만연한 이 시대에 우리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 만이 세상의 유일한 구원자요 절망에 빠진 인류의 유일한 소망임을 믿어야 겠습니다.
 
6,7절은 ‘인봉된 책을 취하신 죽임당하신 어린 양’을 설명합니다. 일찍 죽임을 당했던 어린 양으로서 일곱  뿔과 일곱 눈을 가지신 이가 하나님의 보좌와 네 생물들과 장로들 사이에서 나아와 보좌에 앉으신 하나님의 오른손에서 봉인된 책을 취하십니다. “내가 또 보니 보좌와 네 생물과 장로들 사이에 한 어린 양이 서 있는데 일찍이 죽임을 당한 것 같더라 그에게 일곱 뿔과 일곱 눈이 있으니 이 눈들은 온 땅에 보내심을 받은 하나님의 일곱 영이더라(6)” 여기서 ‘어린 양’은 하나님의 오른손에 있는 두루마리의 인을 떼실 자를 말합니다. 그런데 본절을 앞절과 비교하면 갑작스럽게 분위기를 전환하는 듯한 느낌을 받게 됩니다. 앞절에서는 두루마리의 인을 떼실자를 ‘유대 지파의 사자(lion)’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사도 요한은 당연히 인을 떼실 자로서, 우렁찬 포효로 세상을 떨게 할 사자를 보게 될 것으로 기대하였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가 본 것은 사자가 아니라 양(lamb)이었습니다. 그것도 죽임을 당한 흔적이 있는 힘없는 어린 양입니다.
 
그런데 여기에 복음의 역설과 위대성이 있습니다. 세상은 흔히 정복자, 힘, 능력이라고 하면 강한 것을 생각합니다. 그래서 그 상징도 사자, 호랑이, 독수리 등을 떠올립니다. 하지만 만왕의 왕이시며 온 세상의 심판주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대표적인 상징은 다름아니라 가장 연약하게 여겨지는 ‘어린 양’입니다. 따라서 그 자제로만 보면 예수께서 인류의 구원자와 세상의 심판주가 되신다는 것이 잘 납득되지 않습니다. 사실 인간적으로 보면 반역자로 몰려 아무런 저항도 하지 못하고 힘없이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신 예수는 그저 한 불쌍한 인간일 뿐입니다. 때문에 예수께서 십자가에 달리셨을 때 대다수의 사람들은 자신을 메시아로 선언하신 예수를 조롱하였습니다.
 
그런데 비록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어린 양이 되어 십자가에서 죽임을 당하셨지만 결코 무기력하여 그리 되신 것이 아닙니다. 본문에 보면 이 어린 양에게는 ‘일곱 뿔과 일곱 눈’이 있다고 했습니다. 여기서 ‘일곱 뿔’은 ‘완전한 권세’를 의미하고, ‘일곱 눈’은 온 세상을 두루 다니시는 성령의 상징으로 모든 것을 알고 살피는 전지(全知)성을 나타냅니다. 따라서 어린 양이 일곱 뿐과 일곱 눈을 가졌다는 것은 그가 전지 전능하신 분으로서 세상을 이기고 심판할 분이라는 의미입니다.
 
실제로 예수 그리스도는 어떻게 되었습니까? 그는 비록 하나님의 어린 양이 되사 우리 죄인들을 위하여 십자가에 죽으셨지만 결코 무덤에 영원히 머물러 계시지 않았습니다. 그분은 장사된 지 삼 일만에 죽음을 이기시고 부활하셨습니다. 그리고 승천하여 하나님의 보좌 우편에 앉으심으로 만유에 대한 통치권을 회복하셨습니다. 어린 양 되신 그리스도께서는 장차 마지막 때에 당신의 능력으로 세상을 심판하고 당신의 택한 백성들을 심판에서 건져 영원한 하나님 나라로 들여 영원한 복을 누리게 하실 것입니다.
 
이 사실에서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교훈이 무엇입니까? 바로 죄와 사망을 이기는 능력은 다름아니라 어린 양의 희생으로 상징되는 그리스도의 십자가뿐이라는 것입니다. 어린 양은 그 자체로는 가장 연약한 존재지만 출애굽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 피를 문설주에 바른 집에 거하였을 때 죽음으로부터 구원을 받았습니다. 그와 같이 그리스도는 세상적으로 볼 때 연약해 보이고 그의 십자가 역시 미련하고 수치스러워 보이지만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그의 십자가를 의지하기만 하면 영원한 사망의 권세로부터 구원받게 됩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은 고린도전서1장18절에서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받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고 말했습니다.
 
인간을 죄와 사망으로부터 구원할 수 있는 것은 어린 양 되신 그리스도 희생의 십자가뿐인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다른 길은 업습니다. 그래서 사도행전4장 12절에 “다른 이로써는 구원을 받을 수 없나니 천하 사람 중에 구원을 받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라”고 기록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오직 어린 양 되신 예수 그리스도만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세상의 강하다고 하는 것들, 세상적으로 볼 때 우리를 구원할 수 있다고 여겨지는 것들에 현혹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것은 사단의 속임수입니다. 오직 죄인들을 위하여 하나님의 어린 양이 되사 스스로 십자가 제단에서 자신을 희생하신 예수 그리스도만이 우리를 구원할 유일한 능력이 됨을 믿고 , 그리스도의 십자가만 의지하시기 바랍니다.
 
“그 어린 양이 나아와서 보좌에 앉으신 이의 오른손에서 두루마리를 취하시니라(7)” ‘누가 그 두루마리를 펴며 그 인을 떼기에 합당하냐’라는 천사의 외침에 하늘과 땅 아래에 있는 모든 자들이 그저 침묵하고 있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때 하나님의 어린 양, 곧 우리 주 그리스도께서 당당히 나아와 하나님의 손에서 그 책을 취하셨습니다. 저는 이 말씀을 볼 때 마치 올림픽에서 일등을 한 자가 당당한 모습으로 최고의 자리에 올라 온 세상이 지켜보는 가운데 자랑스럽게 금메달을 받는 모습을 연상하게 됩니다.
 
그런데 우리 주님은 이러한 권세와 영광을 거저 얻으신 것이 아닙니다. 주님은 하나님의 아들임에도 불구하고 어떠한 특권 없이 오직 최선의 노력을 다해 온전한 영광을 얻으신 것입니다. 주님은 하나님의 영광의 본체이시면서도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스스로 낮추사 종의 형체를 취하셨고, 이 땅에 계실 때에 머리 둘 곳도 없는 어려운 환경 속에서 식사할 겨를도 없이 바쁘게 사역하셨으며, 최후에는 땀이 피가 되도록 자신과 싸우며 기도하면서 십자가를 지심으로 맡겨진 사명을 다 이루셨습니다. 그래서 히브리서 기자는 히브리서 5장8, 9절에서 “그가 아들이시면서도 받으신 고난으로 순종함을 배워서 온전하게 되셨다”라고 말합니다. 우리도 주님을 본받아 받은 사명을 위해 전심으로 수고하고 죽기까지 충성해야 겠습니다. 그리하면 주님께서 우리에게 영원히 쇠하지 않을 하늘의 권세와 영광을 주실 줄로 믿습니다.
 
결론
 
우리 주님은 사도 요한이 하늘 위나 땅 아래까지 하나님의 손에서 책을 취할 자가 없어 울고 있을때에 당당한 모습으로 나아가 그 책을 취하심으로 세상의 유일한 소망이 되셨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주님의 권세와 영광은 십자가를 지시기까지 최선을 다한 수고와 충성의 결과였습니다. 세상의 죄를 심판하고 사망에서 우리를 구원할 분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 한분뿐이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주님을 본받아 받은 사명을 위해 최선을 다하고 날마다 자기 십자가를 지며 십자가의 흔적을 지닌 몸으로 천국에 들어가는 저와 여러분 모두가 되길 바랍니다. 그리하여 하나님께서 주시는 영원히 쇠하지 않을 권세와 영광을 누리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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