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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눅1:67-7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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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김경형 목사 |
참고 : | 궁극교회 주일예배 |
1장 67절-70절.
67절: 그 부친 사가랴가 성령의 충만함을 입어 예언하여 가로되.
성령의 충만함을 입으면 예언을 하게 됩니다. 지금 뭐 교회에서들 ‘보았네 들었네 꾸었네’ 지금 그런 의미가 아닙니다. 성령의 충만함을 입으면 반드시 예언을 하게 된다. 그러면 그 예언의 효력성은 그 예언의 소리를 듣고 만들어진 사람은 그 효력성이 어디까지 가는 거요? 영원 궁극적인 세계까지 가는 거다. 그러니까 성령의 충만함을 입은 사람은 거기에 해당되는 예언이 들어있다. 뜻이 들어있다. 그러면 그 뜻이 들어있는 사람은 그 뜻이 들어있는 말을 한다면 그것이 무엇이지요? 보통 말입니까 예언입니까? 예언이란 말이요.
예언이란 의미를 바로 가져야 돼. 예언관을 바로 가져야 돼. 누구든지 영원 궁극적인 그 결과성을 미리 내다보고 성경의 풀이로 되어있다거나 하나님의 온전의 성품으로 들어가 있으면 그건 예언이다. 예언임과 동시에 그 사람은 성령의 충만함을 입고 있는 거다. 이해갑니까? 성령충만을 벌벌 떨거나 눈깔 뒤집거나 무슨 뜨겁거나 그런데서 찾지 말란 말이요. 성령의 충만함을 입으면 예언을 하게 된다. 예언을 하는 사람은 이미 충만이 들어가 있단 말이요. 그 말의 표현이라든지 그 결과 그 목적이 이미 죽음 저 너머 세계에 그게 들어있는 말로 하는 거다 그 말이요.
그러면 사단 마귀가 그런 말 합니까? 거짓 종들이 그런 말 합니까? 못해요. 안 되는 거요. 거짓 종들 악령의 충만함을 입으면 영원 궁극적인 세계의 말이 아니라 현세에서 부자살고 어떻게 하고 세상욕심에 대한 그것을 자꾸 말을 하게 돼요. 근데 ‘축복 축복’ 하니까, 이 성경에 ‘복 복’ 하니까 이 세상의 복으로 목적이 돼 있는지 알고 ‘복 받으라’ 그러면 ‘뭐 어쩌라’ 그러면 그게 그만 성령의 충만인 줄 알게 된다 그 말이요. 착각하지 마라. 그건 악령의 충만이다.
예, 그러니까 예언의 궁극적인 사실을 알고 ‘내가 그것을 반대하고 안 들어야 되겠다. 내가 딴 교회로 나가야 되겠다’ 해야지 개인적인 감정을 품었다간 어느 교회에서 어느 목사님이 예언을 하는데 궁극적인 결과를 미리 내다보고 말씀을 전하는데 그게 성령의 충만 인데 그 성령의 옳은 충만한 소리를 듣고 싫다고 개인의 감정을 품고 이랬다면 그 사람은 성령 훼방 죄를 짓고 이건 예언을 무시하는 사람이 된다. 교회 다니면서 예수 믿으면서 그런 때가 없었느냐 그 말이요. 많단 말이요. 많아도 ‘이게 지금 내가 어떻게 하나님 앞에 살았나’ 하는 그걸 모르는 거요. 그걸 알아야 돼요. 어느 교회 목사 앞이든 이 영원 궁극적인 예언이 들어있다면 그것은 성령 충만이다. 성령으로 나오는 소리다. 그거 무시하면 안 된다. 그거 무시하면 네가 다친다. 네가 다친다. 근데 거짓 종들이 공갈협박을 치니 거기는 무서워서 벌벌 떨고.
몰라서 그렇다. 모르면 그렇게 된다. 모르면 거짓 앞에서도 고개 숙이게 되고 모르면 거짓 앞에서 슬슬 기게 된다. 옳은 것 앞에서는 하나님의 말씀이기 때문에 그 말씀 앞에 고개 숙이고 마음을 하나님께로 가다듬어야 되겠는데 그러지 않고 자기에게 받히거든? 그러니까 개인적인 감정을 갖고. 딴 교회 가면 그렇지 않거든. 얼마든지 듣기 편한 말만 하거든. 그래, 그렇게 자라고 그렇게 신앙이 들어가면 너희들의 결국이 어떻게 되겠느냐 그 말이요. 결국이 어떻게 되겠느냐?
주님을 믿는 성도는 거룩한 마음이나 성격이나 성질이나 즉 하나님께 드려질 수 있고 또 기쁘게 받으실만한 성품으로 되어질 수 있다. 그 마음을 받는단 말이요. 평소에 신앙의 질이 세상 넓은 길로 가는 옛사람이 주격이 된 신앙에는 성령이 아닌 악령으로 들어있게 된다. 그 어떤 사건이 오면 그 악령적인 마음이 튀어나오게 되어있다. 평소 때는 모른단 말이요.
68절: 찬송하리로다 주 이스라엘의 하나님이여 그 백성을 돌아보사 속량하시며.
성령의 감동을 입은 자가 무엇이라고 합니까? 무슨 말을 해요? ‘그 백성을 돌아보사 속량하시며.’ 그러니까 주님의 속량을 말합니다. 속량은 무엇이냐? 자유자로 만들어주는 것. 어디로부터 자유자냐? 죄에서 탈출. 자유지. 그리고 세상 그 어떤 압박에서 자유. 세상 상황에서도 환경적으로 딱 매여 있으면 자유가 없어요. 답답하고 고통스럽지요? 그 우리가 살면서 늘 겪는 거요. 자유가 없어. 답답하고 고통스럽고. ‘누가 자기를 거기에서 좀 자유자로 구원해 줄 수 없는가’ 그런 게 있거든. 누가 자유자로 만들어 준다고? 누가요? 예, 이스라엘의 하나님. 이방인들의 하나님이 아니고 이스라엘의 하나님.
그럼 자기가 이스라엘이냐? 당신의 백성을 자유자로 만들어 주심에 있어서 누가 제일 기뻐하느냐? 누가 제일 기뻐할까요? 누가 기뻐하겠어요? 아, 이스라엘 백성을 당신의 백성을 자유롭게 만들어 놓으면 누가 기뻐하느냐 그 말이요. 자기가 기뻐해요 슬퍼서 통곡해요? 애굽에서 자유자로 만들어 놓으니까 누가 기뻐요? 이스라엘 백성이 기쁘고, 기뻐하는 그 모습을 보고 당신이 기쁘고. 세상물질 밑으로 들어가면 매여져요. 그 종으로 매여져요. 그러면 창살 없는 감옥 같아서 마음이 딱 매여져가지고 못 나와요. 그거 알아라.
신정통치를 원하고 하나님의 진리통치를 원하고 기다린 자들이 찬송을 하게 되더라. 말하자면 자유가 얼마나 기쁘냐 그 말이요. 자유가 얼마나 기쁘냐? 노예로 배터지게 먹고 사는 그게 기쁩니까 없이 살아도 자유가 기쁩니까? 그걸 못 따지지. 왜? 배부른 것만 생각을 하니까 그걸 못 따져. 그렇지요? 우리교회 교인들은 자기가 어느 정신 사상에 속박이 돼 있는가 그걸 알아차려야 된다. 그걸 알아차려야 된다.
그 백성을 돌아본 증거가 무엇이냐? 그 백성, 당신의 백성을 돌아본 증거가 무엇이냐 하면 세례요한을 먼저 보내어 주님을 영접할 준비를 하게 한 것. 당신의 백성이기 때문에 당신의 종부터 보내가지고 영접할 준비를 하게 하는 것. 당신의 백성을 당신이 그렇게 돌아봤단 말이요. 준비를 시키게 하는 거고. 주님이 보내시는 종은 주님을 잘 맞을 수 있도록 세례를 받는 마음바탕에 회개를 하여 신앙을 나침반처럼 하나님을 향하도록 하는 거다. 하나님을 향하도록 하면 주님영접이 빠르다.
길을 닦아놓으면 다니기 쉽지요? 자기 집 앞을 길 닦아놓으면 차가 쉽게 들어옵니까? 말하자면? 사람이 사는 곳에 세상 사는 곳에 집부터 지어놓고 길을 내야 합니까 길부터 내놓고 집을 지어야 합니까? 길부터 내고 집을 지어야 된다. 그래야 맞습니까? 이치가? 집을 지으려면 물건 같은 거 재료 같은 거 길이 없는데 어떻게 날라요? ‘그냥 아무데로 다니면 된다’ 지금 그 생각들 하고 있지요? 이치적으로 틀린 거다. 꽉 막혔다. 이건. 길부터 내놓고 그 다음에 집을 짓든지 뭘 하든지. 그러니까 모든 재료를 다 쉽게 쉽게 실어 나를 수 있지 않은가?
요즘 그래, 가만 보면 신탄진 갈 때 기차 타고 내려갈 때 보면 옛날에는 논이 그냥 꼬불꼬불 별스런 논이 다 있는데 이게 아주 사각으로 딱딱 해놓고 군데군데 경운기가 다닐 수 있는 이런 길로 탁탁 내놓으니까 추수하기도 쉽고 모내기도 쉽고 참 좋다. 그래야 된다. 일하기 편리하고. 옛날에는 꼬불꼬불한데 길이 없어. 논두렁을 길로 가니 얼마나 미끄럽고 짊어지고 가다가 자빠져 버리고. 그마나도 욕심이 생겨서 양쪽 논 주인이 밑으로 싹싹 파먹어 들어가니 디디면 푹 무너지고, 그것 때문에 도둑놈이니 나쁜 놈이니 또 싸우고. 정말 목구멍까지 똥만 찼구나. 정말 똥만 찼어.
그래, 논에 수로 옆으로 쭉 가면서 필요한 데로 물이 쏙쏙 들어가게 하니 그 얼마나 편하냐? 이 수로도 없이 위에부터 물대고 밑으로 내려가야 할 텐데 그거 욕심 조금 부리느라고 채우니 밑의 사람은 심기는 심어야 하는데 비올 땐 대판 싸움 나고 삽을 막 들고 나오고. 삽을 들고 나오면 어떻게 치겠다는 거요? 목을? 그러니 참말로 머리가 어두워서 그래. 미련해서 죽는 수밖에 없다. 욕심 많은 사람은 미련한 사람이다. 반드시 그 욕심 때문에 너는 죽는다. 네가 죽는다. 욕심내지 말아요. 예, 자기 있는 것이나 잘 다스려 나가. 욕심내도 남의 호주머니까지. 그 오래 살겠어요? 오래 살아야 돼요 빨리 죽어야 돼요? 괜히 부자 사는 사람을 또 시기질투 하지. 부자도 정당하게 벌었으면 옳은 거예요. 하나님 앞에 어떻게 쓰느냐? 옳게 바로 벌었으면 하나님 앞에 옳은 마음이 나오는 거요.
자유가 참 기쁩니다. 이 자유는 생각 마음속에서 나오는 건데, 자유자가 다스리는 건데 다스림을 받게 되면 자유가 별로 없어요. 더더군다나 물질적 사상에 자기가 지배돼서 다스림을 받는다면 그 사람은 생각하기를 ‘물질이 풍부해야 자유롭다’ 그렇게 생각할 거란 말이요. 아니요. 풍부하면 네가 또 그 밑에 깔려죽는다. 마음이 그렇고 생각이 그렇고. 자유가 될 것 같으냐? 아니다. 그것 때문에 매인다. 네가 아무 것도 없는데서 자유롭게 더 나올 수가 있는데 풍부하면 자유가 될까요? 아니요. 무슨 소리. 모르는 소리.
‘여기저기서 다른 사람들이 주의 종을 하니 나도 못할 것이 무엇이냐? 나도 주의 종이 돼야지’ 하는 거짓된 종이 많다. ‘나도 주의 종이 돼야지’ 해서 주의 종이 되는 겁니까 주님의 종 되는 것은 사람으로 성령님의 감화 감동과 많은 시련이 있은 후에 들어 쓰시는 종이 된 겁니까? 이게 달라요. 그게 다르다.
그 백성을 돌아보는 속량을 알아야 한다. 즉 죄에서 구원해 내는 이치를 알아야 한다 그 말이요. 주 하나님의 역사는 당신의 백성을 세상에서 자유자로 하나님의 온전한 성품의 사람으로 만들어 놓는 것. 성령에 감동된 자가 무엇이라고 그랬지요? 아까? 당신의 백성을 죄에서 속량. 자유자. 오늘날 이 교회 목사님들은 성도들이 어느 정신에게 잡혀있는지 하는 그거 알고 풀어내는, 이 노예에서 자유자로 사망에서 생명으로. 설교가 그게 다 이치적으로 나와야 된다. ‘예수 믿어 부자살고 뭐 어쩌고’ 세상에다 대면 이건 죄에서 풀릴 길도 없고 세상을 다스리지 못한다. 세상을 다스리는 것은 정신, 지혜로운 정신 지식을 가지고 다스리게 되는 거지 그거 없으면 이용만 당하는 거지요.
물질풍부하다고 너나 나나 다 국회 가서 됐다 그럽시다. 이게 뭐가 되는지 알아요? 뭐가 되겠어요? 이게? 백성을 잘 다스릴 것 같아요? 안 된다. 백성을 다스리려면 사람을 알아야 돼. 근데 일반세상은 그래요. 가난한 백성 잘 먹이고 잘 입히고 부자 만들어 놓으면 세상은 그거밖에 없어요. 그런데 그것도 제 마음대로 되는 게 아니다. 성도들의 구원을 위해서 세상역사를 하나님이 돌리시는데. 세상정치인들은 그게 제일 좋지 뭐. 기독교에서도 예수 믿으면서 그거냐? 완전히 이건 틀린 거다.
69절: 우리를 위하여 구원의 뿔을 그 종 다윗의 집에 일으키셨으니.
구원의 뿔이 어디서 나온 겁니까? 어디서 일으켰어요? 다윗의 집에서 일으켰다. 구원의 뿔을 다윗의 집에서 일으키는구나. 우리가 역사적으로 보면 다윗을 일으켰고 다윗의 집에서 일으키고 또 우리가 교훈으로 보면 다윗의 진리진실의 신앙노선에서 일으키고 그 사상에서 일으키고 앞으로도 다윗의 그 신앙사상을 가진 그것이 다윗의 집이라 그 말이요. 다윗의 집은 그 사상을 가지고 사는 집이라. 이해가요? 그 집 사상에서 일으킨다. 다윗의 집에서 일으킨다. 반드시 그렇다. 그러니까 우리 모두 자기의 신앙노선이 다윗의 집인지 사울의 집인지? 이 다윗이 나온 것은 사울과 지금 비교를 하라고 다윗을 내놓은 거요. 사울의 집인지 그걸 잘 분석을 하란 말이요. 아니면 바로의 집인지 아니면 헤롯의 집인지 로마황제의 집인지 석가의 집인지 공자의 집인지 무당집인지 잘 알아봐야 한다. 그 집이 있다
목사님들, 오늘날 각 교회마다 설교하는 목사님들의 집이 있다. ‘이게 어느 노선에서 나온 뿔이냐? 이게 후손이냐?’ 그게 있다. 반드시 있다. 그걸 분별하고 분석을 해라. 왜? 구원의 뿔을 다윗의 집에서 일으켰다. 딴 데서 일으키지 않는다. 반드시. 뿔은 무엇이냐? 힘 권세 능력. 소가 뿔이 없었다면 떠받으려고 그러겠어요? 소가 뿔이 없다면 받으려고 그러겠냐고요? 뿔이 있으니까 받으려고 그러지. 그 힘이란 말이요. 소가 자기 뿔을 믿고. 물론 본능이지만.
다윗은 어떤 신앙자였더냐? 다윗의 신앙정신과 사상이 무엇이더냐? 첫째는 하나님의 사랑. 하나님 사랑. 다윗이 하나님을 그렇게 사랑했어요. 하나님 사랑하는 증거가 뭐냐?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 그 말씀이 그렇게 좋다. 두 번째는 인간사랑. 하나님의 사랑을 가지고 인간을 사랑하는 것. 하나님 제일주의. 그래서 백성들에게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통치한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백성들이 자기의 백성들이 누구를 닮겠느냐 그 말이요. 하나님을 닮아간다. 그러면 정치하기가 얼마나 쉽겠느냐? 그 백성들의 수준이 올라간단 말이요. 굉장히 올라간다. 그거 알아라.
예, 우리 모두 다른 교회 교인들과 이렇게 대화도 해보고 그들보다 자기의 수준이 낮으면 ‘아이고, 내가 이게 궁극교회 안 나가야 되겠다’ 그렇게 들어가야지. 그 바르게 들어가는 거지? 그러나 그들은 10년 믿었는데 자기는 5년 믿었는데 훨씬 수준이 높다 그러면 계속 다녀야지. 맞잖아요? 내가 지금 우리교회 나오라고 하는 거요? 더 좋은데 있으면 가라는 거요. 자기 살 길 찾아서 가는데 더 옳고 바른 진리말씀 그걸 찾아야 돼. 그래야 네가 산다.
우리는 역사적으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다윗의 가문에서 나신 것을 전제로 하고. 왜? 전제로 안 하면 계시가 안 나와. 교훈이 안 나와. 전제를 해야 교훈이 나온다. 그러니까 이런 신앙사상을 가진 자는 그 말이요. 누구 신앙사상? 신앙사상을 가진 자는 어디에서 태어났던 그 사람의 사상은 다윗의 가문의 정신을 갖고 있구나. 다윗의 후손이다. 요건 다윗의 후손이다. 그러니까 그 신앙사상적인 그 신앙정신에서 그 교훈의 질에서 구원의 뿔이 나온다. 권이 나온다. 주권이 나오고 왕권도 나오고. 통치권이 들어있다. 교훈에서 그게 나와야 된다. 긍지를 가지라 그 말이요. 교회를 가도 그런 교회를 가라 그 말이요. 그래야 옳다 그 말이요. 그게 아니면 너는 죽었다. 세상에서 밥 먹고 뭐 등 두들겨주고 이게 다인 줄 아느냐? 너는 하나의 종교인으로서 하나님의 심판을 면할 길이 없구나.
집사람한테 얘기 들었어요. 토마토가 과일입니까 채소입니까? 채소? 열매가 맺혔는데? 왜 채소라 그러는 거요. 난 그건 이해가 안 돼. 왜 채소요? 일년생? 그럼 다른 과일은 일년생 없나? 아, 나무로 심어서 되고 이러니까. 그럼 딸기 같은 거는? 토마토는 일년생이요. 그럼 ‘일 년 과일’ 그러면 될 거 아니요? 그럼 수박은? 수박도 채소요? 그럼 채소입장에서 보면 이게 뭔가 이상하다. 허허. 과일입장에서 볼 때도 이게 이상하고. 그 어디 그렇더구만. 시를 써놨는데 대나무를 보고 ‘나무도 아닌 것이 풀도 아닌 것이.’ 허허허. 대나무는 ‘큰 대’ 자 쓰는 거요? 그 어떻게 보면 풀도 아니고 나무도 아닌 것이 속만 텅텅 비었구나. 이건 내가 지은 거고.
그런 걸 가만 봐서 ‘이게 무슨 과에 속한다’ 이런 게 나온단 말이요. 사람은 어느 과에 속하는 거요? 하나님과에 속해. 허허. 벌레과에 안 속하나? 동물과에 안 속해? 안 믿는 사람들은 인간이 어느 과에 속한다는 거요? 동물과? 그럼 이게 좀 느낌이 이상하다. 어느 동물과에 속하는 거요? 원숭이과? 영장과에 속한다. 인간은 특수한 건데 왜 동물처럼 그런 어떤 걸로 분류할까? 사람은 특수에요. 특수. 예, 부분적으로는 사람보다 나은 것도 있긴 있어요. 개는 청력이 굉장히 좋지요? 개보다 더 좋은 건 없나? 청력이? 이를테면 전쟁 나가서 개귀를 딱 달면 총알이 자기 앞으로 날아오는 소리가 들릴 거 아니겠냐? 그럼 눈은 누가 제일 밝아요? 올빼미 눈? 불 다 꺼도 보이는 눈? 고양이 눈이 밝아? 불 다 꺼버려도? 그럼 전쟁에서 개 귀 갖고 올빼미 눈 갖고 그러면. 허허. 기계적으로 다 만든 것 있지요? 써서 보면 열이 있는 것이 움직이면 그냥 보인단 말이요. 참 근데 영을 보는 눈은 없어. 영을 보는 안경을 누가 좀 개발을 해봐라.
주권이나 권세나 힘이 나옵니다. 구원의 뿔. 구원의 뿔은 존재적으로는 예수 그리스도. 그러니까 예수 그리스도와 질이 맞지 않는 모든 언행심사는 이건 심판이다. 심판이다. 그 분의 의사단일성에 맞지 않는 것은 전부는 심판이다. 이단이고 삼단이고 ‘뭐 저 사람이 이단이었습니다.’ ‘잔소리 하지 말아. 어디 예수님에게 맞춰보자.’ 하늘로 들어가지 못하는 이건 전부 심판으로 들어가요. 그걸 우리가 알아야 된다. 그래서 세상에는 별스런 이단들이 다 있지만 남 보기 전에 먼저 자기 속부터 심사를 해야 된다. 참 지혜롭다. 그게.
예수 그리스도께서 말씀이 육신이 되어 오신 것은 우리의 죄를 사해주심도 있지만 그러나 또 죄를 사해주실 분은 오직 그 분밖에 없다는 겁니다. 지은 죄도, 지은 죄가 뭐요? 죄라 그러니까 자꾸 남 두들겨 패고 욕심 부리고 자꾸 그런 것만 생각을 하는데 제일 큰 죄는 하나님의 말씀을 어긴데서 그 다음에 다 나오는 거요. 그걸 알아야 된다. 예, 그게 죄다. 명령불복종이 죄다 그 말이요. 명령불복종 해놓고 ‘나는 선한데요.’ 아니다. 너는 죄인이다. 왜 죄냐? 이미 사망이 네 위에서 왕 노릇하고 있다. 너는 죽는다. 근데 그런 사고방식을 잘 모른단 말이요. 남 두들겨 패고 욕하고 미워하고 자꾸 요것만 죄라고 착각을 하고 있어. 자기는 말씀에서 떠난 것은 모르고. 그렇게 되면 못 깨닫는다. 수십 년을 교회 다녀도 못 깨닫는다.
그리고 죄 사함을 받은 자는 오직 완전하신 그 분처럼 사람이 하나님의 온전한 성품으로 만들어져 간다는 것. 모든 면에서 하나님의 온전 된 지식을 가지면 하나님을 향한 지혜가 나오고 삶이 나오고 도덕성이 나오고. 그 바로 만들어져 가는 거요. 잘 만들어져 나가면서 하나님께서 그 사람위주로 역사를 또 하신다. 그걸 알아야 된다.
우리에게 영원 전 그리스도 안에 있는 우리의 구원인 참 인간의 기준을 보여주시고 예수 그리스도를 보여주시고 그 분의 말씀대로 우리를 만들어지게 한다는 것. 그래, 이제 구원의 뿔이 나오는 거요. 그래서 구원의 뿔은 예수 그리스도시요 예수 그리스도를 붙들면 산다는 것. 영원히 산다는 것. 힘 있고 권세가 있는 거지요? 다른 사람은 다 죽는데 죄 아래 다 죽는데 바람에 다 날려 가는데 자기는 다 붙들고 생생하게 살아있단 말이요.
번제단의 뿔은 잡아매는 뿔. 죽이는 뿔. 그 제단은 하나님의 설계로 만들어진 것. 그 설계 그 척도 그 기준의 틀 안에서 죽이는 겁니다. 죽이는 것도. 그래서 번제단이 있는 거요. 반드시 거기에서. 그러니까 그 기준 척도는 전 안에 있다. 하나님의 전 안에 있다. 그 규격에 맞추어서 옛사람의 부패성적 인간의 죄 된 모든 사고방식 소원 목적이 말씀에 의해서 죽어져야 된다 그 말이요. 쉽게 말해서 딴 데서 죽여 오는 것은 안 된다. 사실 그건 죽은 게 아니에요. 사실은 알고 보면. 그걸 알아야 된다. 인간 보기에 죽어진 것 같으나 아니다.
당신의 백성을 돌아보신 증거는 다윗의 후손 그 신앙노선의 질에서 하나님의 기준 척도를 가진 후손이 하나님의 백성을 위한 구원의 일을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언제부터 예언된 것이냐? 그렇게 된다고 하는 것이 언제부터 예언 된 것이냐?
70절: 이것은 주께서 예로부터 거룩한 선지자의 입으로 말씀하신 바와 같이.
70절만 한 번 읽어봐요. 예, 언제부터? 예로부터? 언제? 예로부터? 언제 전에? ‘전에’ 하면 언제 전에요? 내가 얘기하나 할 게. 옛날 옛날 아주 옛날에. 그 몇 백 년 전이요 몇 천 년 전이요? 예, ‘선지자의 입으로부터 말씀 하신바와 같이.’ 그 참 안에 들어가서 보면 그게 다 들어있다. 역사적으로도 증명이 된 거고, 그 다음에 우리 입장에서는 그 역사에는 그 다음에 다윗이 나왔으니 ‘다윗이 어떤 정신으로 누굴 사랑하고 살았나’ 이게 나온단 말이요. 그러니까 그 정신 신앙사상의 노선을 우리가 잘 봐야 된다. 그리고 예수를 바로 믿고 교회를 다녀도 바로 다니고. 그게 나오는 거지.
이게 참 교회라 그럴 때는 제일 중요한 것은 목사다. 참말로 중요하다. 이거 정말 잘못되면 가정 뒤집어지고 사람 왕창 망해버린다. 그게 실감이 안 되거들랑 이단자들의 그런 모임을 한 번 봐라. 그 집회를 보면 참 기가 막힌다. 참말로 기가 막힌다. 말씀을 드렸습니다만 그 이단자들이 한두 명이 아니요. 굉장히 많아요. 근데 우리교인들도 잘 모를 거요. ‘기독교 무슨 무슨 협회’ 그러면 정상적인 교회를 생각을 하지. 이게 이단자들의 어떤 가려진 간판이다. 그런 걸 잘 모를 거요. 예를 들자면 ‘사모들의 무슨 훈련모임이다’ 그러면 그만 ‘목사님 사모님들만 모여지겠지’ 그렇게 생각을 하지? 아니요.
그리고 그런 이단자들은 ‘보았네 들었네 꾸었네’ 하는 그런 신비스런 어떤 몸의 격동성을 가지고 교회 다니는 사람들이요. 그런 식으로 들어가서 이게 커져버렸어. 우리교회서는 그런 식으로는 이건 용납이 안 되고 그런 걸 원하는 사람은 딴 데로 가는 거요. 여기 있으면 안 돼요. 절대로. 여기는 좀 딱딱하지만 말씀의 이치대로 듣고 만들어지고 사람의 머리가 영특해지면서 이게 분별하고 나가야지. 그냥 ‘충성봉사 사랑 사랑’ 뭐 이런 거. 그래서는 안 된다. 사랑이 뭔지 똑바로 알아야 되고. (계속)
(궁극교회 김경형목사님의 설교를 정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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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도가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신앙생활을 하려면 인격자이신 하나님의 가장 깊은 심원인 하나님의 의지세계에서부터 당신의 애성에서 발로된 인간창조의 원인과 동기와 목적을 따라 신앙을 해야만 됩니다. 이래야 기독교 본질에서 이탈하지 않고 가장 효율적 적중적으로 하나님의 온전한 성품을 덧입을 수 있고, 성도 각자가 이 땅에서 이렇게 덧입은 하나님의 성품의 양에 따라 장차 천국에서의 누림에 차등이 생기게 됨을 성경을 통해 알 수가 있습니다.
김경형목사님께서 교역자 및 신학생을 대상으로 20여년 동안 매 주 정례적으로 진행하는 신학 및 성경연구 모임을 통해 하나님의 의지세계에서 예수 그리스도로 통한 인간구원을 설정하게 된 원인과 동기와 목적을 깨닫고 하나님의 본질의 신앙으로 나가는 주의 종들이 누룩처럼 퍼져나가고 있습니다.
참석하실 분은 031-207-5159, 또는 010-8886-5159로 문의해 주세요.(평신도도 참석 가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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