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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눅1:70-7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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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김경형 목사 |
참고 : | 궁극교회 주일예배 |
1장 70절-71절.
70절: 이것은 주께서 예로부터 거룩한 선지자의 입으로 말씀하신 바와 같이.
‘이것은 예로부터 거룩한 선지자의 입으로부터 말씀하신 바와 같이’: 언제부터 예언된 것이라고요? 구약시대부터 선지자의 입으로부터. 그러면 무엇이 언제부터 예언된 것입니까? 그 내용 면에서 그 말이요. 이제? 그것이 이제 앞 절에 쭉 나오게 돼 있는 내용들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약속은 그렇게 지켜진다 그 말이요.
기독교인들이 하나의 종교생활을 하면 안 돼요. 성경을 보고 깨닫는 것은 우리 모두가 믿음의 선진들이 걸어간 그 길을 걸어가며 그들이 받은 축복을 우리가 받는 것. 한 대열 속에서. 근데 오늘날 기독교세계가 그것과 무관하게 세상을 향하여 걸어가고 있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성경과 관계가 없다 그 말이요.
‘예로부터’란 의지계시적으로 보면 하나님의 의지 마음속에 하나님께서 ‘이렇게 이렇게 해야 되겠다’ 그 마음먹는 것. 의지계시적으로 보면 인간이 생기기 전에 그리고 생기면서 말의 표현은 선지자들의 예언으로 나타났습니다. 그러니까 선지자들의 그 말로 된 예언으로 된 표현은 당신의 의지계시 의지 속에 들었던 것을 말씀을 하는 겁니다.
그런데 선지자라고 하면 지명된 선지자도 있지만 지명되지 않았어도 상황적으로 선지자처럼 미래적 예언자적 역할을 한 자들이 많이 있습니다. 예를 들자면 노아라든지 아브라함이라든지 야곱이라든지 등등. 또 제사장도 마찬가지. 지명되기 이전에 제사장적 역할도 들어있습니다. 말하자면 믿음의 선조들에게 그런 요소들이 다 들어있습니다.
이제 참 하나님의 진리 본질적인 구원계대의 역사가 어디로 어느 교회로 또 누구에게로 흘러가고 있느냐? 영의 눈을 가지고 이것을 눈여겨 볼 줄을 알아야 합니다. 인도자들의 세계에서는 영의 눈을 가지고 이것을 눈여겨 볼 줄 알아야 한다. 이론적으로 학식적으로는 달달달 하는데 생명적으로는 생명이 없는 종들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역사는 생명이 종으로 통해서 역사는 흘러가요. 그걸 알아야 한다. 그러면 생명의 종은 인격의 변화가 들어있다. 속성적으로 변화가 들어있다. 속성적 인격적 변화 속에서는 늘 성령의 감화 감동성이 마음속에서 뜨겁게 달구어지고 있어요. 그것을 알아야 한다.
참 하나님의 종은 다윗의 신앙사상으로 사는 그 자리에서 참 하나님의 종이 나올 수 있는 확률이 많은 겁니다. 우리가 그게 안 믿어지면 일반적 차원으로 한 번 대충 훑어보란 말이요. 선생님 가정에서 자녀들이 선생이 많이 나오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까? 아버지가 국회의원이라면 또 그 자녀들이 그런 식으로 밟아가는 게 많이 있습니까? 피아노 치는 그 부모 밑에 또 자녀도 그렇게 피아노 치는 자녀가 나올 가능성이 많습니까? 술 먹고 담배 피고 만날 놀음하고 그러면 그 밑의 자녀들이 그런 식으로 많이 본받고 나올 가능성이 많습니까?
예수 믿는 것도 이 참 무시 못해요. 무시하면 안 돼요. 그건 왜 그러냐? 그 각 교회마다 목사님들이 주시는 그 말씀 안에는 소원 목적이 다 들어있어요. 그 나름대로 하늘을 향했던 천국을 향했던 신비주의를 향했던 ‘복 복’으로 향했던 그게 다 들어있어. 예, 못 속인다. 유형교회적으로 여러 종류의 다양하게 교회들이 활동을 하고 있는데 어느 교회에서 어느 교훈에서 참 하나님의 종이 나올 수 있는 확률이 많은 교회냐? 이걸 눈 여겨 봐야 된다. 무시하면 무시하는 너도 무시당한다. 영의 눈은 어둡다.
그런 사람들도 보면 세상 이해타산으로 많이 들어가요. 일반사람들이 가치 평가성을 가진 그 가치 평가성으로 예수 믿는 사람들이 가진 경우가 허다하게 많다. 죽을 때가지 밥을 먹고 살는지 모르지만 신앙 믿음에 있어서 하나님의 은혜는 죽을 때까지 없을 수도 있다. 교회 다녀도 하나의 일반인의 생활이라. 어디 쓰겠냐 그 말이요. 인생을 그렇게 살아서야 쓰겠냐? 교회는 전부는 예수님을 믿는 사람으로 누굴 따라가는 겁니까? 예수님 따라가는 거지. 세상을 왜 따라가요? 왜 세상의 이해타산 평가성 세상목적성을 가지고 왜 따라가요? 그 예수 따라가는 거요? 언제 고쳐지겠냐?
이 성경 보면 예수 믿으면서 아니, 구약적으로 볼 때 하나님을 믿으면서도 거짓말하면 거짓말한 것만큼 속였으면 속인만큼 그것이 그대로 들어가면서, 이게 참 하나의 예를 들자면 늘 ‘축복 축복.’ 오늘날 교인들처럼 ‘축복 축복.’ 야곱이 ‘축복 축복’ 했지요? 축복 받으려고 형 속이고 아버지 속이고. 거기에 누가 주동역할을 했지요? 어머니가. 그 어머니가 나중에 야곱을 만났을까요? 못 만나고 죽었다. ‘여호와 하나님을 안 믿는다’가 아니고 믿는데 못 만나고 죽었어. 야곱은 또 야곱대로의 그 속인 죄로 삼촌 집에 가서 몇 번이나 속았어요?
근데 이상하게 자기가 남을 속인 것에 대해서는 별로 생각이 안 들고요 남이 자기를 속인 것에 대해서는 굉장히 분하게 여기고 그게 나와. 예, 그래서 우리는 자기가 어떤 피해를 봤을 때에 은연중에 하나님 앞에 바로 못 산 것이 있을 것이다. 분명히 있을 것이다. 그걸 깨달아라. 깨달아야 또 ‘미래적으로 자기가 그렇게 안 살아야 되겠다’ 하는 그것이 돼 나오는 거지 깨닫지 못하면 여전히 그러고 여전히 그러고 남 원망불평만 하다가 죽는 수밖에 없는 거다. 쓰겠느냐?
참 하나님의 종은 어느 신앙의 노선에서 나올 확률이 많다고요? 다윗의 신앙사상에서. 그래서 교회마다 다윗의 신앙사상의 노선을 찾으란 말이요. 오늘날 교인들이 왜 못 깨닫느냐? 활동 속에 사상이 들어있는데 그건 안 보이고 활동만 보인단 말이요. 그러니 속는 수밖에 없다. 예를 들면 사람을 볼 때에 허우대 껍데기만 보는 거와 같다. 왜 중심사상을 못 보느냐? 예수 믿고 교회 다닌다고 하는 효력이 있어야지.
로마황제 가이사 아구스도 통치 아래 헤롯 왕의 말을 듣고 종노릇하고 사는 서기관 율법사 대제사장 바리새인 등 지금 이들이 우리 앞에서는 그 사상을 가지고 보면 많은 교회를 볼 수가 있다. 그런 교회가 아닌 집단자들에게는 아무리 단체가 크고 보수정통이니 해도 건물이 으리으리하고 헌금이 쏟아져 나와도 그곳에는 예수가 없더라. 역사적으로 그곳에는 예수가 없더라. 그래도 모르겠냐? 그곳에는 예수님이 안 계시니 구원의 뿔이 없다고 하는 것을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재앙으로 선포를 했고 역사에서 하나님의 형벌로 사라졌다. 성경을 못 깨닫거들랑 역사라도 봐봐라. 하나님의 형벌로 사라졌어. 일반역사에도 남아있다 그 말이요.
그런데 예수님은 눈에 안 보이고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요’ 하는 이 교훈적으로 다가오는 예수님은 안 보이고 보혜사 성령의 역사는 안 보이고 눈에 보이는 건물 사람 활동만 보이니 그들과 똑같다. 어쩌면 그들과 똑같은 그 길을 걸어가느냐? 완전히 영의 눈이 감겼어요.
우리가 영의 눈으로 보면 여전히 불탈 세상을 구하고 있고, 안 믿는 사람들이 불탈 세상을 구하고 있지요. 세상소원 목적적이니까. 세상 속화된 이 거짓된 교회는 예수이름 가지고 종교운동 활동목적으로 나가고 있지요? 그 보이지요? 안 보입니까? 보여요 안 보여요? 우리교회 교인들은 다 보여야 돼. 그리고 자기 속도 들여다보고. 세상을 구하고 있고 거기에 소속되어 있고 그 입장에 서 있는 것을 볼 수가 있을 것이다. 예를 들면 한 단체에 있어도 자기 마음은 딴 데 가서 있는 것도 있습니까? 그 자신을 발견할 수 있습니까?
우리의 구원자는 어디서 나온다고 그랬지요? 예로부터. 언제 그게 예언이 돼 있습니까? 우리의 구원자는 어디서 나온다고요? 금방 읽었잖아요? 다? 예수님이 누구의 가문에서 나왔어요? 다윗의 가문에서 나온다는 거요. 이게 옛날부터 선지자로 예언됐다 그 말이요. 이게. 오늘날로 계시적으로 말씀을 드리자면 다윗의 가문이라고 하는 것은 육적 혈통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신앙혈통을 말하는 거요. 신앙. 신앙사상적 혈통을 말하는 거요. 거기에서 구원자가 나온다 그 말이요. 구원의 일을 하는 종이 나온다 그 말이요. 당신의 이름을 걸고 예언이 됐다 그 말이요. 어느 길로 갈 거냐 그 말이요?
71절: 우리 원수에게서와 우리를 미워하는 모든 자의 손에서 구원하시는 구원이라.
‘우리 원수에게서와 우리를 미워하는 모든 자의 손에서 구원하시는 구원이라’: 우리를 어디에서 구원이라 그래요? 아, 거기 다 나왔는데? 예, 우리를 미워하는 자들이 누구요? 원수요 친구요? 원수지. 우리의 원수에게서 구원이다. 그럼 우리의 원수가 누구요? 자기의 원수가 누구요? 원수 있어요 없어요? 몸 밖에 있던 몸 안에 있던 자기의 원수가 있어요 없어요? 그럼 자기 원수는 무슨 짓을 하는 거요? 자기에게 어떤 면에 손해를 끼칩니까? 이룰구원 차원에서 하나님의 성품을 닮지 못하게 하는 자기 속의 옛사람도 될 수 있고 또 자기 몸 밖에 얼마든지 거짓된 자 이단자가 있을 수 있어. 우리의 원수에게서 구원이다.
우리의 원수는 우리를 자꾸 죽음으로 몰아가고 하나님의 형벌을 받는 쪽으로 자꾸 몰아가는 거요. 다시 말씀드리면 하나님의 온전한 성품으로 닮지 못하게 하는 모든 수단과 방법은 전부는 우리의 원수요. 그런데 아주 이 원수가 직접적으로 대립과 충돌과 마찰로 오면 이건 알 수가 있겠는데 이게 호응적으로 웃으면서 슬슬 도와주는 척 하면서 오는 게 있다 그 말이요. 여기에는 거의가 넘어가더라.
그래, 원수가 믿는 자기의 눈을 속이려면 변장을 하지요? 자기처럼 변장을 하지요? 자기 마음처럼 변장을 하고 들어오는 거지요? 기독교 같으면 예수이름으로 들어온단 말이요. 예수이름으로. 어린아이들 동화책에도 있습니까? 할머니 잡아먹은 이 늑대가 누구 소리로 다가와요? 할머니 잡아먹은 늑대가 애들에게 올 때는 누구 목소리로 다가옵니까? 할머니 목소리로. 예수 믿는 자기에게 무엇을 손해 보게 하려고 어떤 이름을 가지고 어떻게 다가오느냐?
우리의 원수는 나에게도 원수고 너에게도 원수고. 나 개인적 원수는 있을 수가 없어요. 나 개인적 원수는 먼저 그 이전에 하나님 앞에 원수 짓을 하는 게 돼야. 돼 그래야 그게 내 원수요. 내 원수는 우리교회 전체 원수가 돼야 돼. 개인적 어떤 원수로 들어가 있으면 이건 뭔가가 이게 잘못돼 있다. 원수관을 바라보는 눈도 지식적으로 지식의 관을 높여. 원수관을 높여. 바꾸어. 주님께서 보시고 ‘그래, 그것이 너희들 성도들의 원수다’ 라고 인정을 해주는 것. 만약의 경우에 ‘그것이 너희들의 원수가 아니다’ 라고 한다면 그러면 그것은 주님 편이 되겠습니까 반대로 우리가 주님의 원수일 수도 있습니까?
보통 보면 자기가 주님의 원수가 돼 있으면서 자기를 자꾸 도와달라고 그래요. 어떻게 주님이 도와줄까요? 주님으로부터 원수가 돼 있는데. 돕는 자는 인도자는 그것을 눈여겨보라고요.
우리가 세상에서 보면 자기의 개인적인 원수가 있고, 개인적인 원수. 이웃사람도 원수가 아니고 다른 사람에게도 원수가 아닌데 개인적인 원수가 있더라 그 말이요. 많이 있잖아요? 그리고 또 국가적으로 보는 원수가 있습니다. 국가적으로 보는 원수. 그게 자기 개인적인 원수입니까? 국가 전체적으로 되는 원수는 나도 들어가 있습니까? 전쟁이지. 전쟁. 또 국가적으로는 원수인데 개인적으로는 아닐 수도 있더란 말이요. 가만 보니까. 그래 그 뭐 누가 자명고를 찢었다고? 그 개인적으로 원수가 아니란 말이요. 연인끼리는 그 뭐요? 로미오와 줄리엣. 양쪽 부모는 원수였습니까? 근데 둘이는 원수가 아니었습니까?
우리는 원수관이 하나님 앞에서 서 있어야 돼. 그래야 사람이 지혜로워지고 폭이 넓어져요. 안 그러면 세상 원수관을 가지고 있으면 그 사람은 속이 엄청나게 좁다. 이해도 없고 용서도 없고 이기적이고. 그래서는 안 된다. 물질적 개념을 가지고 절대로 원수 삼지 말아라. 하나님 앞에서 이룰구원 차원에서 돼야 된다. 안 그러면 너는 속 좁고 너는 망한다.
그런데 인간을 만드신 창조주 여호와 하나님은 어느 나라이든 어느 개인이든 우리 인간의 영원 궁극적 구원을 방해하는 자는 즉 이룰구원을 이룰 수 없도록 방해하는 자는 이건 원수로 여긴다는 말입니다. 아무리 예수이름으로 예배를 하고 성경을 보고 찬송을 해도 하나님의 소원 목적, 이 당신의 온전에서 이탈된 세상으로 향한 그 예배 설교 복은 하나님 앞에 원수다. 우리도 원수로 보는 거요. 그게 크게 될수록 하나님의 형벌은 자꾸 강화되고 크게 된다. 그래서 요한계시록에 보면 ‘내 백성아, 거기서 나오너라.’ ‘왜 그들이 받을 형벌을 네가 받고자 하느냐? 나와라.’ 그런데 그걸 몰라요. 어디서 나와야 될는지 그걸 몰라요. 들어있다고 하는 것은 마음이 맞으니까 들어있는 거요. 여러 소리 할 것 없어.
그런데 이 원수를 허용해 두는 것은 하나님의 선하시고 공의에서 나온 즉 우리 성도들의 영능의 실력을 키우라고 허용해 주신 것이다 그 말이요. 영능의 실력을 키워라. 영적 차원에서 기능 지능 면이 활발해야 되겠고 자기의 성품이 도덕성적으로 신적 도덕성적으로 올라가야 되겠고. 성도의 이룰구원의 일은 영원 궁극적 구원의 일로 성령님께서 도우시는 겁니다. 성령님께서 하시는 일은 우리 영원 궁극적 구원을 놓고 그 목적으로 일을 하세요. 성도가 그 소원 목적을 가지고 일을 할 때는 성령님께서 도우신다 그 말이요. 예언하고 방언하고 하는 것은 상관이 없어요.
세상적으로 흐르는 교회가 아무리 떠들어도 그건 보혜사 성령은 없어. 그래서 이룰구원이 안 돼. 이룰구원이 안 된다고 하는 것은 하나님의 온전한 성품으로 사람이 바꿔지지 않고 있다 그 말이요. 그게 증거야. 증거. 교회를 수십 년 다녔어도 하나도 바꿔진 게 없다? 너는 믿음 없다. 교회를 그만큼 다니고 했으면 젊은이 같으면 주일학교도 가르치고 청년들 같으면 복음을 가지고 구약시대처럼 청년이 나가서 군대로 싸우는 것처럼 복음을 가지고 싸울 줄을 알아야지. 선한 것을 가지고 의로운 것을 가지고 싸울 줄을 알아야지. 맥이 빠져가지고 모두 다 자기 좋아하는 대로 해달고 하고 있으니 이거 어디다 쓰겠느냐? 이건 식충이 밥충이. 사람이 무슨 매력이 있느냐 그 말이요. 원수가 하는 일은 하나님의 온전한 성품을 입지 못하도록 자기를 참 주님과 같은 참 사람이 되지 못하도록 그 말이요. 하나님의 자녀로 하나님의 속 성품으로 이게 입지 못하도록 한다면 이런 괘씸한 일이 어디 있느냐 그 말이요.
이 마지막 시대에 세상에 속한 교회가 많아요. 마귀의 수법이요. 그게. 하나님의 성품을 입지 못하도록 마찰과 충돌과 대립적으로 방해를 합니다. 그 원수가 하는 일. 그 다음에 또 두 번째 보면 성경을 가르치기를 영원 궁극적 목적이 아닌 즉 하나님의 온전이 아닌 곧 세상 불타질 것, 세상을 위해서 가르치더라. 세상을 위해서. 세상 밑에 들어가서 충성봉사하고 교회는 자꾸 그런 프로그램을 만들고.
오늘날 어떻게 일거리가 없는 겁니까 일거리가 있는 겁니까? 일거리가 없어서 외국사람들을 쓰는 겁니까? 어떻게 된 거요? 외국사람을 자꾸 쓴다는 것은 일이 있다는 거요 없다는 거요? 일이 있다는 거지. 아무리 돈이 적어도 거기 가서 일을 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지. 그 돈이 적다고 다리 밑에서 자고 밥 해주는 거 얻어먹고. 그 사람생각이요? 그게? 그게 사람생각이냐고요? 사람이면서 사람생각을 안 해. 그래, 동사무소 그런데서 일 시키려면 이만 원이고 삼만 원이고 그렇습니까? 그래, 거기 가서 일을 하고 삼만 원 타면 담배 사고 술 사먹고 나면 없다고 안 간다고? 왜 줘요? 일하기 싫거든 성경에는 먹지도 마라 안 그래요? 그 속에 몹쓸 것이 들어앉아 있어. 사람이 가질 수 있는 정신이 벌써 틀려먹었어. 틀려먹었어. 정신을 바로 차려야 돼요. 하나님 앞에 정신을 바로 가져야지. 일 하는 자에게서 뭐가 나와요? 먹는 것이 나와. 자꾸 세상 원망만 하고 있으면 누가 자기를 가만 앉혀서 먹여줄 사람이 어디 있어?
이 교회 안에서 불타질 세상과 세상 것을 위해서 가르치는 것은 원수가 하는 일이요. 영원 궁극적 구원의 이치를 모르면 자기도 속고 남도 속이는 꼴이 돼 버립니다. 사명의식이 문제가 아니라 분별을 못하면 바리새파 교인들과 같이 되고 유대인들과 종교지도자들까지 신앙생활을 한다 하면서도 역사적으로 심판만 받고 가게 되더라. 주님 앞에 대적노릇을 하고.
그들이 가지고 있는 그 사상이 그들의 행동으로 예수 죽였지요? 오늘날 길이요 진리요 생명의 이치를 무시하고 있는 그 사상이 성령님의 감화 감동을 죽이고 들어간단 말이요. 예수 믿는다고 그러면서 자기가 보이는 예수를 어떻게 따르는 거요? 예수가 보여요? 안 보여. 그 안 보이는 예수를 뭘 보고 따라? 뭘 보고? 모양 보고 따라요? 건물 보고 따라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의 교훈이 아니면 아니다 그 말이요. 아니다. 보혜사 성령님이 와서 죄를 깨닫게 하고 심판을 알게 하고 진리를 깨닫게 하고. 그 교훈이 있는 곳이면 그 곳에 보혜사 성령이 있는 거다. 예수님께서 주신 보혜사 성령이 있다. 다시 말씀드리면 보혜사 성령의 말씀 깨닫고 결합을 하기 위해서 보혜사로 오신 거다. 근데 그것을 물리치고 안 받고 틀리다? 다르다? 뭐 예수 뭘 보고 따라요? 종교운동 활동 보고 따라요? 건물 보고 따라요? 헌금 보고 따라요? 껍데기 보고 따라요? 뭘 보고 따라요?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을 어떻게 보시느냐? 하나님도 너희들이 보는 것처럼 껍데기로 보느냐?
이제 우리의 영원 궁극적 구원을 방해하는 자가 누구냐 하면 거짓 종들. 예수이름 가지고 세상을 자랑하는 것. 종교활동 자랑하고 건물 자랑하고 연조나 자랑하고. 이 거짓 종들 그리고 이단자들. 이단자들 많아요. 이게 거짓 종들 속에 이단자들 많아. 그리고 자기 속의 옛사람. 둘 다 또는 누구든지 옛사람 주격자로 살면 그는 심판 받고 가는 거다. 별 수 없다. 그러니까 우리가 분별하고 구별하고 해야지. 안 하고는 안 돼요.
우리 모두 자기 속의 옛사람의 성격이나 성질이나 성분을 구별 분별 못하고 이룰구원의 사람으로 적극적으로 살지 못하면 자기 심판 자기 처절이 되는 수밖에 없다. 자기 처절이다. 비참하다. 거지가 되고 그렇게만 보지 말아라. 사람 됨됨이가 돼먹지를 못했으면 그게 인간의 처절성이다. 비참한 거다. 그거. 환경적으로 오는 것은 그 다음에 말을 할 필요가 없어. 오늘날 다리 밑에서 자고 어쩌고 집에 안 들어가고 이게 다 어디서 나온 거요? 생각이 그렇더라 그 말이요. 제 생각에서 그 모양이 돼버렸어. 왜 세상원망을 해. 자기보다 어려운 사람도 열심히 일해서 알콩달콩 사는데.
이게요 사람이 일을 하는 버릇이 되면 자꾸 일을 하게 돼요. 그래서 시골 할머니들이 도시 아파트에 가서 가만있으면 병이 들어버려. 일을 해야 돼. 일을 하는 사람은 일 하다가 죽는 한이 있더라도 일을 하는 거요. 아예 그게 몸에 뱄어. 근데 늘 놀기만 하는 사람은 이게 일이 안 되는 거요. 솔직히 말해서 일주일만 재밌게 놀아 봐요. 그 다음에 일이 손에 잡히나 안 잡히나? 안 잡혀요. 뭐가 되겠어. 이제 사람이 누가 자기 인생을 살아주겠냐? 사람은 일하는 존재로 들어가 있어. 일을 안 하면 신체적 모든 조건이 다 망가져버려. 일을 해야 튼튼하게 되어지게 돼 있어.
오늘날 봐요. 사람들 보라고요. 왜 더운 물에 들어갔다가 찬물에 들어갔다가 왜 그런 짓을 해? 일을 안 했기 때문에 그렇다. 그렇게라도 살아야지. 이제. 안 그래요? 맛있는 거 영양 있는 거만 먹고 이제 먹으면 일을 해야지 일을 안 하고 돌아다녀. 마냥 돌아다니는 거요. 얼마 안 가서 자기 눈에 피눈물이 나는 거다.
적극적으로 살지 못하면 자기 심판 자기 처절이 돼버린다. 반대편에 가서 공격하는 것은 원수가 되는 것이고, 미워하는 것은 동참 협조 없이 같이 있으면서 헐뜯고 깎아내리는 것. 그런 거 많이 있지요? 교회 안에도 있을 수 있지요? 동참 협조 없이 자꾸 깎아내리기만 하지요? 아니면 반대편에 가서 또 공격을 하고. 구원운동은 하나님의 진리본질의 사람을 향해서 빼내고 추려내고 하나님의 의사단일성으로 사람이 만들어져야 이게 구원이고 또 그 일을 하는 것이 구원운동이라 그 말이요.
앞으로 포도원제일교회에서도 우리 목사님들, 어린아이들 가르치는 것처럼 성경얘기 좀 많이 하도록 해야 되겠고 우리교회서도 직분 있고 없고 간에 성경을 보고 성경에 관한 아이들을 가르치는 것처럼 성경얘기를 많이 하도록 좀 그렇게 할 계획이요. 그러니까 다 성경 읽고 자기 마음대로 노아방주를 하든지 다윗을 하든지 골리앗에 대해서 하든지 하여튼 자기 나름대로 그런 걸 준비를 다 해 놓으세요. 한 시간씩 내가 줄 테니 다 준비를 해 놓으세요. 해야 돼요.
우리교회는 세계 그 어느 교회가 못 따라오도록 그런 일꾼이 나와야지. 그냥은 안 된다. 밥 먹고 교회 와서 졸기만 하다가 가고 그 어디 쓰겠느냐? 안 된다. 사람은 정신을 자꾸 쓰면 이게 잘 돌아가게 돼 있지만, 제가 경험을 해 봤어요. 피곤하다고 그 자리에서 눈 딱 감고 있으면 그 다음 오는 게 뭐요? 그 다음 진행되는 게 뭐요? 눈 감고 있으면? 잠이 와요. 그 참 이상해요. 그게 그렇게 돼있어. (계속)
(궁극교회 김경형목사님의 설교를 정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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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도가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신앙생활을 하려면 인격자이신 하나님의 가장 깊은 심원인 하나님의 의지세계에서부터 당신의 애성에서 발로된 인간창조의 원인과 동기와 목적을 따라 신앙을 해야만 됩니다. 이래야 기독교 본질에서 이탈하지 않고 가장 효율적 적중적으로 하나님의 온전한 성품을 덧입을 수 있고, 성도 각자가 이 땅에서 이렇게 덧입은 하나님의 성품의 양에 따라 장차 천국에서의 누림에 차등이 생기게 됨을 성경을 통해 알 수가 있습니다.
김경형목사님께서 교역자 및 신학생을 대상으로 20여년 동안 매 주 정례적으로 진행하는 신학 및 성경연구 모임을 통해 하나님의 의지세계에서 예수 그리스도로 통한 인간구원을 설정하게 된 원인과 동기와 목적을 깨닫고 하나님의 본질의 신앙으로 나가는 주의 종들이 누룩처럼 퍼져나가고 있습니다.
참석하실 분은 031-207-5159, 또는 010-8886-5159로 문의해 주세요.(평신도도 참석 가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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