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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눅1:76-7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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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김경형 목사 |
참고 : | 궁극교회 주일예배 |
1장 76절-77절.
76절: 이 아이여 네가 지극히 높으신 이의 선지자라 일컬음을 받고 주 앞에 앞서 가서 그 길을 예비하여.
미래적으로 사가랴가 이제 성령의 충만함을 입어 예언합니다. 성령의 충만함을 입으면 무엇을 한다고요? 예언. 무엇에 대해 예언입니까? 지금 ‘네가 잘 먹고 잘 산다. 네가 앞으로 뭐가 될 것이다.’ 지금 세상적으로 말하는 그런 겁니까? 무당 점쟁이가 말하듯이? ‘너는 주의 종이 될 것이다.’ 주의 종 될 사람은 현재적으로 그 길을 밟고 있는 사람에게 그 말은 해당됩니다. 세상 놀고 깡패처럼 다니는데 ‘너는 주의 종이 될 것이다?’ 무당 점쟁이 같은 소리. 말하자면 공부를 열심히 하는 사람은 ‘너는 앞으로 이대로 하면 선생이 된다.’ 그건 이해가 되지요?
그런데 기독교 안에서 ‘성령을 받았다’ 그러면서 예언하는 그 예언성은 성경과 관계가 없어요. 성경의 흉내를 내려고 하는 건데, 그 사람은 자기가 성경구절대로 했다고 해서 예언이냐? 아니요. 그 예언은 이미 성경에 있어. 왜 그렇게 어리석으냐? 참 어리석어. 어리석은 사람은 날마다 속아. 날마다 속으면 자기 일생이 어떻게 되겠느냐? 자기 일생의 종말이 어떻게 되겠느냐?
우리교회 교인들은 좀 똑똑해집시다. 세상 속화된 그런 사람들은 성령이라고 하지만 우리 입장에서는 그거 귀신들의 놀음이야. 진리 한 이치 깨달아지는 이것이 성령님의 역사야. 성경 한 이치도 깨닫지를 못하면서 쓸데없는 잡소리 하는 건 그건 성령의 역사가 아니야. 단정을 지어라.
미래적으로 선지자가 될 이 아이가 어디서 났습니까? 이 예언을 어떻게 산에 소나무 밑에서 기도하다가 들은 거요 성전 안에서 하나님 앞에 제사 드리다가 된 거요? 성전 안에서. 자기의 신앙사상의 범위가 성전 안에 있어. 예배당 안에서냐? 교회당 안에서냐? 아니요. 그런 게 아니고 ‘성전이라’ 그럴 때는 하나님의 성격과 성질로 질적으로 들어있는 그 범위성이야 돼. 라인이 있어.
하나님 앞에 제사드릴 때에 성경에 보니까 그래, 그 말을 안 믿었지요? 사가랴가? 그 벙어리가 됐지. 안 믿으면 벙어리 된다. 벙어리 되면 말을 못한다. 말 못하는 것은 안 믿었다는 증거다. 교회 수 년 수십 년 동안 다녀도 옳은 진리이치 인간창조의 원인과 동기와 목적, 재세기간에 할 일을 말을 못한다면 벙어리다.
벙어리 어디다 쓰겠어요? 벙어리? 아무 쓸모가 없다. 의사소통이 되나? 안 된다. 밥은 먹지. 옷은 입지. 이건 소비성이다. 이건. 왜 소비성의 인간으로 살려고 그러느냐? 일반 세상사람들은 넓은 길 사망 길로 전부 소비성이요 하나님께 영생으로 해당되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먹는 입만 되어있지 하나님의 의사성으로 나아가서 살리는 것은 없구나.
하나님께서 인간의 코에다가 당신의 입김을 불어넣었어. 인간은 당신의 입김으로 산다. 예, 그걸 자꾸 ‘성령으로 산다’ 이렇게 붙이지 말아요. ‘입김으로 산다’ 그렇게 되면 거기에는 하나님의 말씀도 들어있고 교훈이 들어있고 이치가 들어있고. 당신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니라. ‘성령으로 산다’는 말의 의미하고 조금 생각을 달리해야 돼. 그 다음 성령은 자동적으로 당신이 알아서. 그렇게 들어가요.
근데 이걸 자칫 잘못 생각하면 밤새도록 기도하고, 성경 한 절도 깨닫지를 못하는 상태에서 성경도 읽지 않은 상태에서 기도해서 성령 받으면 마귀가 제일 좋아하는 것들이다. 마귀 밥이다. 성경을 안 보면 사람이 참 어리석어. 학교 다니는 학생이 교과서를 안 보면 어떻게? 교과서를 안 보고 교과서에 나오는 문제를 어떻게 풀 수가 있냐? 이치가 안 맞잖아. 예수 믿는 사람은 예수 믿는 이치가 정확해야 돼. 얼렁뚱땅이 아니다. 감정이 아니다. 흥분이 아니다.
미래적으로 선지자가 될 이 아이가 어디서 났어요? 성전 안에서 났습니까? 불교를 믿는 가정에서 나왔는지 유교를 믿는 그 가정에서 나왔는지? 사가랴와 엘리사벳은 어떤 사람이요? 신앙 믿음이 좋은, 하나님 보시기에 그 말이요. 하나님 앞에 의로운 부부. 하나님 당신이 보실 때 그 말이요. 근데 왜 성전 안에서 안 믿었을까? 다 좋은데 왜 그걸 안 믿었을까? 그걸 가만히 보면 ‘늙어서 경수가 끊어지고 못 낳으리라’ 그렇게 생각했던 모양이요. 근데 신앙의 세계에서는 인간의 사고방식으로 들어가지를 않는 거다. 신앙 믿음의 세계에서는 순전히 신의 역사 하나님의 역사로서 되어지는 것이 이게 기독교의 신앙의 세계야. 그걸 알아야 돼.
인간의 수단 방법으로 아브라함이 자녀를 낳았습니까? 하나님의 약속으로 낳은 그 자녀와 어떻게 의좋게 잘 삽니까? 역사적으로 보면 오늘날까지 저 싸움입니까? 역사가 증명을 하지요? 하나님의 말씀을 증명을 하지요? 기독교 세계 안에도 신본주의로 나가는 교회와 인본주의로 나가는 교회. 인본주의는 세상주의 무당 구복주의 뭐 이런 게 몽땅 들어있어요. 그런 인본주의로 나가는 교회와 정신 사상적으로 소원 목적적으로 이건 대립이 되는 겁니다. ‘성경이 말하고 있는 대립성을 너는 왜 하나님 앞에서 그걸 섞으려고 그러느냐?’
거룩한 것과 그렇지 않은 것과 이걸 섞는 사람은 마귀의 종입니까 하나님의 종입니까? ‘거룩한 백성과 애굽백성이 싸우지 말고 좀 손잡고 악수하고 살아라’ 하고 자꾸 희석이 되면 애굽화 되겠습니까 하나님의 백성화 되겠습니까? 이치가 어떻게 나올까요? 하얀 것과 까만 것을 섞으면 하얀 것이 까만 것을 잡아먹어버립니까 까만 것이 하얀 것을 잡아먹고 새까맣습니까? 아니면 그 중간색입니까? 색깔로 보면? 그 중간색이지요? 맞지요? 그 중간색은 본래부터 하얀 거요 이게 까만 쪽으로 속하는 거요? 까만 쪽으로. 그러면 애먹이겠지요. 참 애먹지요?
교회 안의 신앙사상도 마찬가지다. 우리 모두 속에 이질적인 사상이 들어있으면 그만큼 고통이고 힘들다. 예수 믿기 참말로 힘들다. 지옥 간다는 말이 아니라 예수 믿을 바에야 예수님으로 닮아지고 깨달음이 들어가야지? 안 그러면 예수 믿는 효력이 없다. 효력이 없으면 이거 어찌 되겠냐? 너 인간창조의 원인과 동기와 목적이 제대로 되겠냐 그 말이요. 제대로 되겠냐?
비록 타락된 세상이지만 학교에서 수석으로 공부한 사람은 가만히 있어도 돈이 막 부릅니까? 금방 높은 자리 올라가고? 맞지요? 그런데 학교 가기 싫어서 땡땡이로 산 사람은 회사 들어가면 그게 승진이 빨리 될까요? 왜 보여주느냐? 기본급도 아주 적고 올라가지를 않고 평생을 일해야 올라가지 않고. 이거 원망불평 할 게 아니고 기독자들은 성경에서 이치적으로 그걸 보라고요. 성경을 깨닫게 해주기 위해서 있는 거라. 그것이.
세상은 가만히 보면 성경 깨닫게 해주는 게 참 많아요. 일반적으로 보면 원망불평이고 막 ‘왜 그러냐’ 하고 그런 이유가 나올 수 있지요?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런 것이 다 허용이 된 것은 우리 기독자들에게 깨닫게 해주려고 그런다. 자기와 같은 나이 자기와 똑같이 난 시 난 날이 없을까요? 물론 그런 사람들만 죄다 세계적으로 불러모아가지고 실력적 차등적으로 학력적 키 순위대로 쭉 세워보면 이게 차등이 날 거라. 도레미파솔라시도가 될 거란 말이요. 그럼 예수 믿는 자기는 신앙 사상적으로 이게 어디쯤 있을까? 맨 끝일까 맨 앞일까? 아무리 생각을 해도 맨 앞은 아닐 테지요? 우리보다 훨씬 잘 믿는 자기보다 훨씬 잘 믿는 성도가 있겠지요? 한 날 한 시에 태어났는데 그렇지요? 하나님 앞에 달음박질하는 그런 면으로 성경에 있잖아요? ‘먼저 된 자가 나중 되고 나중 된 자가 먼저 되리라.’ 왜 생각을 못 해.
그래서 우리의 인생살이에 시험을 한 번씩 하나님께서 주시지요. 잘 뛰라고. 빨리 깨닫고 뛰라고. 그런데 그래 놓으면 변명하기를 ‘교회 나오기가 이제 아파서 못 나옵니다’ 이런 소리가 슬슬 들려오는 거라. 이유가 붙는 거라.
사가랴와 엘리사벳의 가정에 하나님의 약속으로 태어난 아이다. 사가랴와 엘리사벳의 그 부모의 신앙을 보면서 그 부모의 신앙이 원만한가 그것도 생각을 해야 돼. 사람이란 한 가지만 보지를 않지요. 여러 가지 다양한 면으로 본단 말이요. 그건 왜 그럴까? 이목구비수족신이 있기 때문에 다양하게 보는 거다. 사람이 눈만 하나 있어가지고 눈만 이렇게 활동을 한다면 눈만 보겠지만 이목구비 수족신이 있기 때문에 사람을 다 통틀어서 보는 거다.
우리 모두 이목구비 수족신을 가지고 언행심사를 하면서 살고 있는 우리가 아닌가? 모든 면에서 자기가 어떻게 정화되고 잘 교정이 돼 가는지 그거 있잖아요. 그래서 세상에는 한 번씩 미녀선발대회도 하고 그러지요? 그 사과 날 때나 수박 날 때 무슨 앵두 날 때 그런 축제를 하고 미녀를 뽑을 것 같으면 수박 날 때는 수박처럼 생긴 아가씨를 선발 하는 게 좋겠어요. 그렇지 않은가? 참외 날 때는 참외처럼 생긴 아가씨, 포도가 날 때는 이 좀 새까만 아가씨 뭐 이렇게. 앵두 날 때는 입술이 앵두 같은 아가씨. 그게 옳을 것 같아. 그런데 하나님의 세계는 신령천국은 우리가 갈 곳은 하나님의 온전한 이 성품.
아이를 부모가 기름에 있어서도 ‘어떻게 길렀겠구나’ 하는 것이 짐작이 가는 겁니다. 그래서 그런 가정에 하나님의 약속이 임하더라 그 말이요. 성경을 보니까. 깡패 같은 부모 마음이 고약한 심성이 아주 고약한 그런 가정에 이런 아이를 보내느냐? 그렇지 않더라. ‘예수 그리스도의 나심은 이러하니라’ 하면서 그 계보를 봐봐라 그 말이요. 계보는 왜 놔두느냔 말이요. 이 안 믿는 세계도 자식 결혼시키려면 그 집 가문 계보를 보는 거요. 나는 처음에 ‘그까지 것. 예수 믿음으로’ 이렇게 생각을 했는데 계시적으로 뜻을 깨닫고 보니 일리가 있구나. 참 일리가 있다. 그러니까 우리는 세상적으로 그렇게 따질 것은 아니로되 신앙 믿음으로 이게 신앙 사상적으로 들어가야 된다.
주 앞에 앞서 가면서 길을 예비한다고 합니다. 주 앞에 앞서 가면서. 왕 앞에 누가 가지요? 옛날에 임금이 어느 고을로 행차하려면? 맨 앞에서. 지금 말하자면 경찰차가 되겠지. 백차라든지 ‘웽’ 하고 지나가면 길을 비키지. 이제 그런 것처럼 옛날에는 그런 게 없었으니까 몽둥이 들고 ‘비켜라’ 그러지요. 임금이 행차한다고. 그것도 가만히 보면 그 장면을 성경으로 이렇게 가만 보면 일리가 있다. 참 일리가 있다. 예수님을 많이 닮고 잘 믿는다 그러면 자기가 말하자면 인생길을 갈 때에 앞뒤로 천군천사가 호위를 할까요? 그런 느낌 안 들어요? 신앙 믿음으로 살지도 않으면서 영적 감각성에 둔해빠지고 세상을 생각하는 데는 손이 빠르고 감각이 빠르고 한데 어느 천군천사가 그런 성도를 호위를 하겠느냐? 안 그래요?
주 앞에 앞서 가면서 길을 예비합니다. 누구의 마음대로 주 앞에 가느냐? 누구 맘대로? 세례요한이 자기 마음대로 주님 앞에 먼저 가는 거요? 누가 보낸 거요? 주님이 먼저 보낸 거요. 오늘날 거짓 종들은 자기 마음대로 주 앞에 앞서 가는 교만자가 참 많다. 정말 많다. 눈감고 봐도 아예 잡히는 거다. 얼마나 많은지. 정말 많다. 자기 마음대로 알지도 못하면서 주님을 증거하고 가르친다.
어떻게 주님을, 성경은 전부는 주님의 증거인데 선악 간에 증거, 생명과 사망에 관한 증거가 들어있고, ‘어떻게 사는 것이 하나님 앞에 바로 사는 거다. 바른 길이다’ 이걸 다 증거하고 있는 건데 성경도 보지도 못하면서, 안 봤고 옳은 이치도 안 들었고 한데 뭘 어떻게 주님을 가르쳐요? 주님을 어떻게 가르치겠다는 거요?
이치를 알면 표면을 일단 가르쳐놓고 그 다음에 그 속에 이치를 가르칠 수가 있지요? 근데 속 중심사상을 모르고 기독교 껍데기만 가르쳐 들어가면 그 다음에 ‘성령 받읍시다’ 하면 어떤 장면으로 들어갈까요? 그냥 사람의 마음에 바람을 집어넣고 붕붕 띄워서 야단법석을 하는 거요. 그러니까 표면만 보면 성경 같은데 그 이면을 들여다보면 이건 마귀장난이요. 성경구절 가지고 마귀가 예수님에게 써먹었듯이 그 장면이요. 그렇게 해서 죽어도 그것은 순교가 아니라. 미친개 잡힌 것처럼 잡혔어.
성경을 알기를 도대체 어떻게 알고 있느냐? 성령님의 감화 감동으로 쓰였는데 자기가 읽고 듣고 깨달을 때에 성령님의 감화 감동으로 들어가 있는 거냐? 아니란 말이요. 하나의 일반적인 그런 사고방식으로 보고 뭘 하겠다는 이건 참말로 보통 교만한 게 아니다. 이게. 기독교사회 목사님들이고 일반 평신도고 너무나 많다. 모르면 못 가르친다. 어떻게 가르칠 거요?
그 보통 보면 목사님들 모임에도 내가 그런 말 많이 들었지. 성경대로 하면 교회부흥이 안 된답니다. 그 말의 의미의 부흥은 뭐요? 숫자적 개념의 부흥, 헌금 재산 부흥. 누구에게 하는 말이냐? 성경대로 하면 부흥이 안 된다? 이게 누구보고 하는 소리요? 성경은 누구 말인데? 인간 자기는 가르치는 강사를 보고 하는 말 같으나 그 말의 의미는 그 뜻은 하나님을 향해서 주님을 향해서 ‘예수여, 성경대로 하면 교회부흥이 안 됩니다.’ 이게 하늘이 노래질 소리야. 이게 지금. 한 번 생각을 해봐요. 이게 아마 모르긴 해도 하나님이 기가 막혀서 입이 딱 벌어질 거야. 분명히 그 소리 듣고 내가 가만 생각해보면 ‘너는 차라리 나지 않았으면 좋을 뻔 하였도다’ 하는 어떤 그런 소리 듣기 딱 좋다.
‘성경대로 하면 교회 부흥이 안 된다.’ 기독교 신문에 그런 내용이야. 전부. 제 입장에서 볼 때에 성경대로 안 하고 있으면서 오늘날의 교회걱정을 하고 있어요. 이거 어떻게 된 거요? 그러니까 성경대로 하면 교회부흥이 안 된다고 하니 그럼 어떤 방식으로 하겠다 그 말이지요? 이제? 이론적으로 말하면 인간 수단방법으로 해야 부흥이 잘된다는 그 의미가 들어가는 거지요. 말을 하나 안 하나 그게 딱 붙는 거지요.
인간 수단방법으로 하나님의 온전성이 되어지느냐? 그건 아니요. 불가능이에요. 악령의 운동인데 어떻게. 성령의 운동은 하나님의 온전의 사람으로 들어가 있어. 악령은 그게 없어. 악령은 외부 모양 바깥 덩어리 커지게 하는 것. 자꾸 그 면으로 사람을 치닫게 달음박질 하게 만들어요. 참 슬프다. 예, 모르긴 해도 아마 오늘날 이게 장감성의 목사님들이 거의가 그럴 것이다. 여기 오신 목사님들도 이미 경험한 바지만 그게 그렇더라. 그러니까 이런 사람들은 주님께서 보내신 종이 아닙니다. 아니다.
지극히 높으신 이의 주의 종 선지자는 무엇을 알게 하느냐? 지극히 높으신 주의 종 선지자는 무엇을 알게 하느냐?
77절: 주의 백성에게 그 죄 사함으로 말미암는 구원을 알게 하리니.
뭘 알게 한다고요? 주의 백성에게, ‘안 믿는 사람에게’ 그게 아니고 ‘주의 백성에게’ 그러면 이건 라인이 딱 되지는 거지요? 주의 백성 아닌 백성이 있고. 라인이 딱 들어있는 거요. 현재 예수 믿는 것도 그렇게도 보고 그 다음에 미래적으로, 지금은 예수 안 믿고 있지만 미래적으로 예수 믿을 사람들이 있지요? 있잖아요. 그러니까 지금 살고 있으면서 미래적으로 내일 모레 믿을는지 십 년 후에 믿을는지 숨넘어가면서 믿을는지 모르나 미래적으로 믿을 그 사람들은 우리가 생각을 할 때에 누구누군지는 모르나 그게 하나님의 백성이다 그 말이요. 맞지요? 하나님의 백성이다.
어느 틀 안에 넣고 생각을 해야 하는고 하니 그냥 ‘하나님의 백성이다’ 그렇게 하면 사람이 감각과 느낌이 얕아져버려요. 그렇게 하지 말고 ‘영원 전 그리스도 안에서 구원 얻을 하나님의 백성이다’ 하는 이것이 ‘영원 전서부터 당신의 의지세계에 들어있는 백성이다’ 그렇게 생각하면 옳다 그 말이요. 몇 명인지는 모르나. 그러니까 ‘현재 믿는 백성, 그리고 그 백성까지 그 죄 사함으로 말미암는 구원을 알게 하리니.’
예, 이제 역사적으로 나타난, 즉 구약신약에 나타난. 그러면 그건 시대적이 되겠지요? ‘구약 신약’ 하는 이건 시대적으로 보는 거요. 이렇게 시대적으로 보면 여호와 하나님을 믿는 백성들과 또 이스라엘을 통틀어서 구약시대 여호와 하나님을 믿은 사람이나 그리고 이 뭐요? 그 육적 이스라엘이나 우리에게는 통틀어서 영적 이스라엘. 예, 계시 사상적으로 우리까지 포함되는 영적 이스라엘. 우리는 영적 이스라엘이요. 영적 이스라엘로서 영적 이스라엘을 위해서 역사를 일으키신 구약의 이스라엘의 하나님의 역사를 본다. 그걸 보면서 자기도 보아지는 것. 그게 안 보이면 보이지를 않아.
그런데 우리가 예수 믿는 이 신앙사상은 순간적으로 백 년 앞뒤로 갔다가 천 년 앞뒤로 갔다가. 예, 그건 왜 그러냐? 신앙의 세계에서는 본질을 입각해두고. 여기에서는 본질을 말할 때는 시간적 개념이 들어가면 안 됩니다. 이치가 그래요. 현재 이룰구원의 이치가 들어갈 때는 여기는 시간 사건, 사건이 있다 그러면 시간 안에 든 거지요. 그러나 시간 안에 들어있는 이룰구원이지만 그 이룰구원의 질은 영원에 속하는 거. 시간개념에 들지 않는 거다. 질이.
그러니까 그 하나님의 본질을 가지면 천 년 전에 이천 년 전에 몇 천 년 전에 그 사람의 언행심사를 보고 무엇에 감화됐는지? 이게 성령인지 악령인지 알게 되는 거다. 그거 모르겠거들랑 변화산상에서 나타난 세 분을 만나보아라. 그들이 시간개념으로 살았을까요? 아니요. 하나님의 본질에 입각한 그 신앙을 잡고 산 사람들이다. 시대적으로는 어디 시대에 나타났던. 그래서 한 자리 앉아서 통성명 안 해도 그냥 즉각적으로 알아보고 예수님의 구속에 대해서 말할 수도 있고 그런 거라.
그래서 우리 기독자의 그 두뇌는 하나님 다음. 말 몇 마디 들으면 그 사람 정신 사상 소원목적의 향방이 싹 드러나잖아요. 그리고 ‘사람을 어떻게 인도해야 될 것인지’ 하고 지혜를 써서 인도해내는 거지. 일반 불신세계는 그건 없잖아요. 많이 생각을 해야 된다. 이론만 안다고 그게 아니고 인간의 생각은 이론에 놀지를 않아. 어떻게 빠른지 영의 눈을 가지고 영적으로 감각을 해야지.
시대를 초월하여 영적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여 구원을 이루어가는 자들이고 영적 이스라엘이 아닌 육적 이스라엘은 하나의 세상에 속한 하나의 종교인일 뿐이다. 무슨 말이냐? 예수 믿으면 천국정신 사상이 들어가면 이건 시대를 초월한 정신 사상인데 그게 아니고 예수 믿으면서 세상에 소원목적이 속해있단 말이요. 그러니까 그건 하나님의 자녀로서 들어가야 할 정신 질이 아니라. 그러니까 이건 모양새는 예수 믿는 사람인데 정신을 가만히 보면 이방인들처럼 세상을 소원 목적한 세상을 가지기 위한 하나의 기독교인이면서 종교인이다. 신앙인이 아니고 종교인이다. 그냥 종교인이다.
그럼 그렇게 사는 종교인이 진리 쪽으로 사고방식을 갖겠느냐 세상 쪽으로 사고방식을 갖겠느냐? 그 신앙의 질이? 그 질이, 속에 들어있는 질이? 쉽게 말해서 영적 면으로 들어가겠느냐 육적 면으로 들어가겠느냐? 하나의 기독교 종교인은? 하나님의 말씀의 이치 그 면에 빠르겠느냐? 안 믿는 사람들이 이 세상 물질 소유성 또는 그 마음을 가진 예수 믿는 사람들이 예수 믿으면 축복 받는다는 그 쪽으로 쏠리겠느냐 참사람 만들어지는 데로 쏠리겠느냐? 어느 쪽으로 쏠리겠어요? 기독교 하나의 종교인은? 많이 다 보이잖아요. 너무나도 많이 보이잖아요.
그러면서 자기가 자기를 잘 못 보겠거들랑 거울 앞에 서서 한 번 보고 자기 외모 모양 그거 알았냐? 그러면 성경을 못 깨닫는다 하더라도 이 오늘날 이게 눈에 보이는 교회에 찾아 들어가서 가만히 보라고요. 그러면 거기 가만 보면 자기 입맛에 맞는 교회가 있겠지요? 없을까요? 입맛에 맞는 교회가 있어. 그런 걸 보더라도 자기의 신앙의 바른 질을 찾아라. 여기서 구별해 드렸으니까 괜히 ‘자기 마음에 안 맞는다. 은혜가 안 된다. 잠만 온다’ 그러지 말고 자기가 잠깨는 그런 교회로 찾아 들어가. 뭘 하든지 어떤 식으로 잠을 깨든지.
북 치고 장구 치고 노래하는 그 곳에서 조는 사람 있습니까? 조는 사람 있습니까? 없어요. 그런데 강의시간에는 조는 사람이 많아요. 그러다가도 노래하고 박수 치고 그러면 잠을 홀딱 깨고. 참 그 사람이 그런 요소가 많이 들어있지요. 제일 강의시간에 많이 조는 곳이 어느 곳인가 하니 예비군 인격교육 시간에 엄청나게 졸아요. 뭐 얼마나 둔하냐? 신앙의 말은 아니지만 일반적인 말이라도 아는 것이지만 국가와 민족을 사랑하는 그런 정신을 생각을 해야지. (계속)
(궁극교회 김경형목사님의 설교를 정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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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형목사님께서 교역자 및 신학생을 대상으로 20여년 동안 매 주 정례적으로 진행하는 신학 및 성경연구 모임을 통해 하나님의 의지세계에서 예수 그리스도로 통한 인간구원을 설정하게 된 원인과 동기와 목적을 깨닫고 하나님의 본질의 신앙으로 나가는 주의 종들이 누룩처럼 퍼져나가고 있습니다.
참석하실 분은 031-207-5159, 또는 010-8886-5159로 문의해 주세요.(평신도도 참석 가능합니다)
설교를 올릴 때는 반드시 출처를 밝혀 주세요. 이단 자료는 통보없이 즉시 삭제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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