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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 한국일보 신춘문예 동화 당선작] 가정방문 / 최수연
가정방문 / 최수연
선생님이 오신다. 그것도 내가 제일 좋아하는 황샘이 우리 집에 오신다. 황샘은 친절하고 볼이 빨개지도록 잘 웃고 맛있는 것도 많이 사준다. 나는 아이들이 다 돌아간 뒤에도 지역아동센터에 남아 황샘이 일을 끝내길 기다리곤 했다.
운이 좋으면 황샘이 사주는 떡볶이를 얻어먹을 수 있기 때문이다. 어묵 꼬치 하나에 떡볶이 한 접시면 속이 따뜻해졌다. 선생님은 떡볶이를 한 개도 안 먹고 내가 다 먹을 때까지 지켜보기만 했다. 고마웠다. 선생님이 먹으면 내 몫이 줄어드니까. 난 항상 배가 고팠고 떡볶이 한 접시는 나에게 조금 모자랐다.
냉장고 문을 열었다. 다행히 박카스가 남아 있었다. 저번 주에 복지사 선생님이 다녀가면서 두고 가신 거다. 황샘께 드릴 게 있어 기뻤다. 밥 때만 아니면 박카스 하나로도 괜찮을 것 같았다. 복지관에서 가져다준 반찬통은 텅 비었고 밥솥의 밥은 오래돼서 노랗고 딱딱했다. 선생님이 배가 고파 보여도 밥 드시고 가란 말은 못할 것 같았다.
시계를 봤다. 네 시다. 경은이네만 들렀다가 오신다고 했으니까 그렇게 늦지는 않을 것이다. 청소부터 하려고 창문을 열었다. 높은 시멘트 담이 바로 붙어 있어서 창문으로는 볕이 잘 들지 않았다. 그래도 창을 열 수 있어 좋았다. 전에 반 지하에 살 때는 창이 없어서 이불이 늘 축축했다. 지금 집은 곰팡이도 별로 없고 바람도 잘 들어온다.
방에 흩어져 있는 옷가지를 모았다. 대충 보기 싫지 않게 접어서 옷장 안에 넣었다. 이불을 반듯하게 펴고 비질을 했다. 먼지가 폴폴 날렸다. 오래된 깡통, 과자봉지, 플라스틱 병, 신다가 벗어서 뭉쳐 놓은 양말도 나왔다. 서랍장 밑까지 꼼꼼하게 비질을 했다. 금방 쓰레기봉투 하나가 가득 찼다. 텔레비전 위에도 먼지가 한 겹이었다. 손으로 들어냈더니 얇게 떨어진다. 걸레로 닦아야 할 것 같았다. 그런데 걸레가 보이지 않았다. 이불을 들추고 걸레를 찾았다. 먼지투성이 양말 한 짝만 더 나왔다. 행거 밑에 아무렇게나 쌓여있는 옷 더미를 하나하나 들춰봐도 걸레가 없었다. 아무래도 방에는 없는 것 같았다.
슬리퍼를 신고 방 밖으로 나왔다. 방문을 열고 나오면 세수도 하고 머리도 감고 밥도 하는 부엌이 나온다. 시멘트 바닥에 플라스틱 대야랑 수도꼭지 하나가 다지만 아빠랑 나는 여기를 부엌이라고 불렀다. 한 쪽에 밥솥이랑 휴대용 버너, 그릇도 몇 개 있어 밥을 해 먹을 수 있었다. 부엌 구석에서 걸레를 찾았다. 걸레는 시꺼멓고 더러웠다. 말라 비틀어져 수챗구멍을 막고 있던 것을 간신히 끄집어냈다. 걸레는 빨아도 빨아도 구정물이 나왔다. 비틀어 짜는데도 구정물이 뚝뚝 떨어졌다. 빨리 닦고 황샘이 오기 전에 숨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텔레비전 위에 뽀얗게 앉은 먼지를 닦고 서랍장 위도 닦았다. 방도 박박 닦았다. 걸레로 닦은 곳마다 옅은 물 고린내가 났다. 장판 바닥이 찢어져서 여기저기 테이프를 붙였는데 테이프가 다 들떴다. 테이프에 들러붙은 먼지들은 닦이지도 않았다. 걸레질을 끝내고 방을 휘휘 돌아봤다. 그래도 처음보다는 많이 깨끗해 보였다. 걸레는 부엌 대야 밑에 감췄다. 가까이서 보지 않으면 잘 보이지 않았다. 대야에는 설거지거리가 가득 쌓여 있었다. 설거지를 할까 말까 고민이 됐다. 밖에 나가서 선생님이 오고 있진 않나 내다보기로 했다.
뭐에 걸렸는지 바깥 미닫이문이 잘 열리지 않았다. 간신히 몸이 빠져나갈 정도로 틈을 만들어 밖으로 나왔다. 아빠였다. 문에 등을 기댄 채 아빠가 널브러져 있었다. 술 냄새가 지독했다.
“아빠. 일어나. 일어나.”
큰소리로 아빠를 흔들어 깨웠다. 평소보다 많이 마셨는지 아빠는 눈조차 뜨지 못했다. 문을 열려면 아빠를 문에서 조금 떨어뜨려 놔야 했다. 살짝만 옆으로 밀려고 했는데 아빠는 앉은 그대로 옆으로 고꾸라져 버렸다. 바깥문과 방문을 열 수 있는 데까지 활짝 열었다. 문과 문 사이 걸리적거릴 만한 것들은 한 쪽으로 밀었다. 준비를 끝내고 아빠 뒤에 가서 쪼그려 앉았다. 아빠 등 뒤 겨드랑이 사이로 팔을 넣어 깍지를 끼고 아빠를 안아 올렸다. ‘끙’소리가 절로 났다. 일어서는데 다리가 휘청거렸다. 아빠를 안아 올린 채 한 발짝씩 뒤로 걸었다. 아빠 뒤꿈치가 무겁게 끌려왔다. 아빠 발이 빈 소주병들을 건드렸나보다. 문 옆에 세 줄로 길게 서있던 병들이 짤랑, 짤랑 소리를 내며 쓰러졌다. 몇 개는 떼구르르 길로 굴러갔다. 덜컹. 아빠의 발이 문턱을 간신히 넘었다. 겨우 몇 발자국 떼었을 뿐인데 이마에선 땀이 흘렀다. 아빠를 부엌 벽에 기대놓고 골목을 내다 봤다. 다행히 지나다니는 사람이 없었다. 나는 서둘러 바깥문을 닫았다.
아빠의 작업화를 벗겼다. 낡은 작업화가 힘겹게 떨어져나갔다. 작업화에 흙이 많지 않은 걸 보니 오늘도 일을 공쳤나보다. 당뇨가 심해지면서 아빠는 살이 많이 빠졌다. 그래선지 새벽 시장에서 빠꾸를 당하는 일이 많아졌다고 했다. 아빠는 새벽시장에서 빠꾸를 당하면 슬퍼지고 슬퍼지면 술이 마시고 싶어진다고 했다. 술을 마시면 당뇨가 심해지고 당뇨가 심해지면 살이 빠지고 살이 빠지면 빠꾸를 많이 당하고 빠꾸를 당하면 슬퍼서 술을 마시고. 그래서 아빠는 좀 불쌍하다.
잠깐 숨을 돌렸다가 다시 아빠를 안아 올렸다. 방문 가까운 쪽으로 옮겨야했다. 팔에 힘이 많이 빠졌는지 높이 안아 올릴 수 없었다. 아빠는 부엌 시멘트 바닥에 엉덩이를 쓸면서 끌려왔다. 문을 등지게 아빠를 앉혀놓고 나는 방으로 올라갔다. 방은 부엌보다 한 계단 위에 있었다. 다시 한 번 젖 먹던 힘까지 모아 아빠를 끌어올렸다. 웃옷이 방문에 걸려 올라가면서 아빠 등이 빨갛게 쓸렸다. 조금 아팠는지 아빠는 작게 신음소리를 내면서 몸을 뒤척였다. 방에 올려놓자마자 아빠를 이불 쪽으로 굴렸다. 끌고 가는 것보다는 수월했다. 통나무 같은 아빠 몸통이 몇 번 제자리서 헛도나 싶더니 다행히 이불 위로 무사히 굴러갔다. 아빠는 무슨 일이 있냐는 듯 코까지 드르렁 드르렁 골면서 잘만 잤다.
선생님이 오시기 전에 아빠를 옮겨 놓을 수 있어 다행이었다. 선생님이 다녀가신 뒤에 아빠가 왔으면 더 좋았겠지만 집 앞에 누워 있는 모습을 보이는 것보단 나았다. 술 냄새와 발 냄새로 작은 방이 꽉 찼다. 창문을 열고 방문들을 모두 열었지만 냄새가 지워지지 않았다. 고민하다가 경은이가 준 향수가 생각났다. 학교 복도에서 주웠다는데 장미 냄새가 나쁘지 않았다. 가방을 뒤져 향수를 꺼냈다. 아빠의 얼굴에 한 번 발에 한 번 향수를 뿌렸다. 향수 냄새가 아빠냄새랑 섞이면서 묘한 고린내가 났다. 안 뿌리느니만 못하게 됐다. 옷장에서 두꺼운 이불을 꺼내 아빠 위에 덮었다. 다행히 냄새가 조금 덜 났다.
시계를 보니 벌써 6시가 넘어가고 있었다. 저녁을 먹기에는 이르고 안 먹기에는 아쉬운 시간이었다. 아무래도 박카스 하나 가지고는 안 될 것 같았다. 선생님은 경은이네서 분명히 아무것도 먹지 못했을 것이다. 경은이는 할머니랑 둘이 사는데 할머니가 지독한 구두쇠다. 꽤 여러 번 경은이네 집에 놀러 갔지만 이때껏 할머니가 먹을 거 하나 내오는 걸 못 봤다. 집에 반찬은 없었지만 라면이 남아 있었다. 황샘께 갓 지은 따뜻한 밥에 라면이라도 한 그릇 끓여드리고 싶었다. 밥솥에 남은 오래된 밥을 비닐봉지에 담아 냉동실에 넣었다. 급할 때는 오래된 밥이라도 물 넣고 푹푹 끓이면 먹을 만했다. 포대에서 쌀을 펐다. 포대는 벌써 바닥을 드러내고 있었다. 복지관에서 지원되는 쌀이 들어오는 날까지는 아직 한참 멀었는데. 쌀이 떨어지면 학교랑 아동센터가 쉬는 일요일에는 아무것도 먹을 수 없었다. 당분간 저녁은 굶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밥솥에 밥을 안치고 설거지를 시작했다. 대야에 가득 쌓인 더러운 그릇들을 보면 황샘 밥맛이 떨어질 지도 몰랐다. 부엌을 잘 정리해두고 싶었다. 공들여 설거지를 하고 그릇을 포개 놓았다. 양은 냄비는 선생님께 낼 거니까 더 깨끗하게 닦았다. 거품이 묻어 있지는 않을까 헹굼도 두 번이나 더했다. 휴대용 버너에 냄비를 올리고 라면 봉지를 넣어 두었다.
그러는 사이 주위가 어둑해졌다. 부엌 불을 켰다. 시계는 6시 반을 가리키고 있었다. 아무래도 경은이네서 이야기가 길어지는 모양이었다. 부엌 가득 구수한 밥 냄새가 났다. 바깥문을 열었다. 부엌 불빛이 골목을 비추도록, 문을 있는 대로 활짝 열었다. 집 앞 골목 가로등이 고장나서 밖이 많이 어두웠다. 선생님이 잘 찾아 올 수 있을까 걱정이 되었다. 큰 길까지 마중을 나가기로 했다. 경은이네서 오는 거니까 대문슈퍼 골목으로 들어오실 것이다. 대문슈퍼까지 가는 길에 버려진 쓰레기가 많았다. 큰 것들만 한 개씩 주우면서 걷는다는 게 두 손 가득 쓰레기가 들렸다. 버려진 지 오래된 것들이었는지 손이 금방 더러워졌다. 대문슈퍼 옆 쓰레기통에 쓰레기를 버리고 손을 옷에 쓱쓱 문질러 대충 닦았다. 슈퍼 아줌마가 나와 볼까 봐 조심스럽게 두리번거리며 버렸다.
대문슈퍼 아줌마는 내가 그 쓰레기통을 쓰는 걸 엄청 싫어한다. 아빠 때문인 것도 같고 나 때문인 것도 같다. 아빠가 외상술을 달라고 슈퍼에서 말씨름을 하고 슈퍼에 오는 사람들에게 시비를 걸기도 해서 아줌마가 아빠를 싫어하는 것이다. 나는 슈퍼에서 무얼 사지 않으니까 싫어하는 것 같다. 가끔 친구들이 먹을 걸 사준다고 해서 함께 들어가면 나한테만 사지 않을 거면 빨리 나가라고 통박을 준다. 내가 집 앞 슈퍼를 두고 다른 슈퍼를 다닌다고 생각하는 걸까? 사실 돈이 없어서 슈퍼를 갈 일이 없는 건데. 언젠간 아줌마도 내 사정을 알게 되겠지 생각하고 미워하게 내버려둔다.
슈퍼 옆에 서서 선생님을 기다렸다. 경은이네서 큰 길 접어드는 골목에 혹시 선생님 비슷한 사람이 나오지는 않는지 집중해서 봤다. 파란 옷을 입은 키 큰 여자 하나가 큰 길로 나왔다. 뾰족한 구두굽 소리가 큰 길을 탕탕 울린다. 우리 선생님이 아니다. 황샘은 늘 굽이 낮은 낡은 구두를 신었다. 키도 훨씬 작다. 가까이서 보니 키가 크고 예쁜 언니다. 언니는 핸드폰으로 쉴 새 없이 통화를 하면서 종종 걸음으로 길을 지났다. 또 한 사람이 나왔다. 이번엔 대머리 뚱뚱보 아저씨다. 퇴근길에 한 잔 마셨는지 걸음이 비틀거렸다. 아저씨가 내 앞을 지나칠 때 손에 들린 봉투에서 고소한 통닭 냄새가 났다. 아이들에게 주려고 산 것일까?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났다. 밥을 해두길 잘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선생님도 많이 배가 고프실 것이다. 두 아이 손을 잡은 엄마가 한 아이를 다그치며 큰 길을 지나갔다. 아이는 엄청 큰 소리로 울었다. 고등학교 교복을 입은 언니가 이어폰을 끼고 지나고 꽃 모자를 쓴 할머니가 한 분 지나갔다. 이제 지나는 사람도 드물었다. 선생님은 언제나 오실까? 다리가 아파 그 자리에 쪼그리고 앉았다. 멀리서 사람 그림자가 보이면 고개를 들고 일어섰다가 아닌 것 같으면 다시 앉아 선생님을 기다렸다. 조금 지루해지려던 참이었다. 골목에 한 사람이 나타났다. 키도 작고 여자인 것 같고 굽도 낮은 것 같고. 선생님이 아닐까? 벌떡 일어나 눈을 가늘게 떴다. 그 그림자는 가까워질수록 황샘과 비슷했다. 동글동글한 얼굴에 파마머리 황샘 같았다. 그림자가 가로등 불빛 아래로 모습을 드러냈다. 아! 내가 기다리던 황샘이었다. 황샘이 걸어오고 있었다. 낮에 보았던 감색 투피스에 선한 웃음. 선생님이 분명했다. 선생님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선생님도 나를 알아보았는지 걸음을 서두르신다. 멀리서 선생님이 손을 흔든다. 나도 손을 흔든다. 나는 날아갈 듯 선생님께 뛰어간다. 선생님이 활짝 웃는다. 나도 활짝 웃음이 핀다.
선생님이 오신다. 그것도 내가 제일 좋아하는 황샘이 우리 집에 오신다.
<당선소감>몇 매듭 더 지어도 된다는 허락 같아
읍내에서 누런 서류 봉투를 사 왔습니다. 혹시나 실수가 있을까 두 장을 골랐습니다. 출력한 원고를 넣고 주소를 옮겨 적었습니다.
다행히 틀리지 않고 옮길 수 있었습니다. 테이프를 길게 떼어 봉투를 봉하고 차에 탔습니다. 가을이 가고 있었습니다. 면사무소 옆 우편물 취급소에는 직원이 혼자였습니다. 가슴에는 노란 리본 배지가 달렸습니다. 원고가 담긴 봉투를 내밀었습니다. 뭔가 부끄러웠습니다. 우체국을 찾은 사람이 나뿐이라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벽시계는 세 시를 가리키고 있었습니다. 세 시 전에 맡기면 당일 발송이 가능하다는 문구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우체국 앞에는 우편물을 나르는 트럭이 세워져 있었습니다. 원고가 그 차를 타고 서울로 가겠구나 싶었습니다. 우체국을 나와 차로 걷는 길, 두 손이 허전했습니다. 습작 원고는 많았지만 출력을 해 응모를 하긴 처음이었습니다. 허전한 마음이 오래 계속됐던 걸로 기억합니다.
당선 전화를 받았던 날의 기억은 별로 없습니다. 정신이 없었고 다리가 후들거려 운전이 조금 어려웠었다는 생각은 납니다. 되레 원고를 보내던 날이 선명했습니다. 당선 소감을 적으려고 고쳐 쓰기를 계속하다가 그날 이야기를 해 보자 싶었습니다.
지난 몇 년 쓰고 버리기를 반복했습니다. 원고를 보내던 날 하나의 매듭이 생긴 것 같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당선 전화를 받고도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몇 개의 매듭을 더 지어도 된다는 허락만 같습니다.
준형, 준희, 도연 ‘파란 달’의 친구들에게 고마움을 전합니다. 미진한 습작품들의 첫 독자이자 비평가였던 친구들이 있어 조금 더 힘을 낼 수 있었습니다.
달리기 선수를 꿈꾸는 다섯 살 아들과 구멍 난 양말을 불평 없이 신어 주는 남편, 충청도 산골에서 겨울을 나고 계실 어머니와 함께 기쁨을 나누고 싶습니다.
● 1978년 서울 출생
● 감리교신학대 신학과 졸업
<심사평>서사에 대한 상상력, 단단하고 아름다운 문장
동화작가는 어린이 앞의 어둠을 보여주면서도 어린이가 앞으로 품고 나아갈 빛나는 잠재력을 놓치지 않으려 한다.
요즘처럼 답답한 소식이 이어질 때는 작가들이 ‘어린이라면 신나게 할 수 있는 일’을 조금 더 찾아내줬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든다.
이번 신춘문예에 투고된 작품은 161편이다. 본심에는 ‘꼬마 선생님이 왔다’, ‘할 말이 있어’, ‘두근두근 두드러기’, ‘가정방문’ 등 총 네 편이 올랐다. ‘꼬마 선생님이 왔다’는 자신도 어린이이면서 또래 학생을 이기려고 하는 꼬마 선생님의 캐릭터가 매력적이지만 장미반 아이들이 선생님만큼 형상화되지 않아 아쉬웠다. ‘할 말이 있어’는 아동학대로 죽은 어린이가 화자이다. 그 고통이 차분한 문장에 담겨 끝까지 독자를 아프게 붙드는 서정적인 작품이다. 그러나 계부모에 관한 편견이 그대로 들어있는 점이 안타까웠다. 두 편 모두 아까운 수작이었다.
‘두근두근 두드러기’는 서사에 대한 새로운 상상력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어린이가 자신의 문제점을 스스로 발견하고 해결을 위해 친구와 노력하는 과정이 건강했다. ‘습관적 욕설’이라는 생활 속의 소재를 윤리적 단죄로 가져가지 않고, 언어 그 자체에 대한 어린이의 관심과 더 멋진 말에 대한 호기심으로 다룬 점이 좋았다.
‘가정방문’은 어린이의 눈높이로 단단히 아름다운 문장을 쌓아 올린 감동적인 작품이다. 시간을 손에 쥐고 만들어내는 밀도에서 내공을 짐작할 수 있었다. 알코올 중독 아버지와 사는 주인공은 “내가 제일 좋아하는 황샘”이 집에 오시기까지 온 정성을 다해 기다린다. 작가는 그 잠깐의 시간을 짚으며 주인공의 몸과 마음에 귀를 기울이고 어린이를 둘러싼 우리 사회의 조건을 조망할 수 있게 한다.
‘두근두근 두드러기’와 ‘가정방문’을 두고 논의를 거듭하다가, 두 편 모두 당선작으로 정하였다. 듬직한 시선과 스타일을 지닌 두 작가를 우리 동화가 나란히 환영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심사 내내 긴장을 놓지 않게 해주신 응모자 여러분들의 노고에 감사 드리며 건필을 기원한다. 그리고 당선작이 포함된 두 작가의 첫 번째 작품집을 기대하며 기다린다.
심사위원 : 유은실, 김지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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