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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을 열어라!

아가 이상호 목사............... 조회 수 202 추천 수 0 2019.01.29 23:57: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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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아5:3-5 
설교자 : 이상호 목사 
참고 : 공주세광교회 http://sk8404.or.kr 

문을 열어라!


아가서 5:3-5                                                                                        

2018. 4. 8, 오전


"내가 옷을 벗었으니 어찌 다시 입겠으며 내가 발을 씻었으니 어찌 다시 더럽히랴마는"(3)


2절에서 이미 사랑하는 자가 찾아왔습니다. 문을 열어 달라고 사정을 하고 있습니다. 머리에 밤이슬이 가득할 정도로 떠나지 아니하고 계속 문을 열어달라고 사정을 합니다. 이른바 솔로몬 왕이 술람미 여인을 향해서, 늦은 밤에 찾아와 문을 열어 달라는 말에 “내가 지금 옷을 벗었는데 어찌 다시 입겠으며, 또 발을 씻었는데 어찌 다시 더럽히랴” 고 대답을 합니다. 술람미 여자는 옷을 다 벗고 잠잘 준비를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다시 옷을 입고 나갈 수가 있겠느냐?’ 한 마디로 귀찮다는 듯 말하고 있습니다. 또 발까지 다 씻고 잠자리에 들었는데, 일어나서 먼지를 묻혀 다시 발을 씻을 수 있겠느냐? 는 것입니다.


그토록 사랑하는 사람이 왔는데, 늦은 밤에 찾아와 밤이슬을 가득 머리에 안고 사랑하므로 만나겠다고 애원을 하는데, 귀찮아서 다시 옷을 입을 수 없다고 핑계할 수 있겠는가? 사랑하는 사람이 문밖에 있는데 다시 옷 입는 것이 뭐가 그렇게 문제가 되고 어렵습니까? 또 발 한 번 다시 씻는 것이 뭐 그렇게 힘들겠습니까? 결혼하기 전에는 그렇게 열렬하고, 뜨겁고, 하루라도 못 보면 그리워서 견딜 수 없었던 사람이라 할지라도 결혼을 하게 되면, 그 뜨거웠던 심장이 멎고 불처럼 타오르던 사랑이 온데간데 없이 식어지는 경우들이 많습니다.


주님과 우리의 관계는 어떠합니까? 누가복음 9장을 보면, 변화산에서 예수님께서 용모가 변화 되고 옷에서 광채가 나는 가운데 모세와 엘리야와 대화를 하는 그런 광경이 나옵니다. 이것을 목격했던 베드로는 너무너무 좋았습니다. 신비하고 아름답고, 찬란함에 도취하여 형언할 수 없을 정도로 감격을 하게 됩니다. 그래서 베드로는 초막 셋을 지어서, 하나는 예수님, 하나는 모세, 하나는 엘리야와 같이 여기서 오래오래, 혹은 영원토록 살기를 원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산 아래로 내려가자며 제자들을 데리고 산 아래로 내려왔습니다. 주님이 없는 산 아래는 가관입니다. 귀신 들린 어떤 사람이 경련을 일으키고 거품을 흘리고, 자기 몸을 자기가 상하게 하나 누구하나 그 귀신을 쫓아내지 못하고 안절부절못하고 당황하고 있었습니다. 이 때 예수님께서 오시어 귀신을 쫓아내니, 그 사람은 비로소 정상인이 되었습니다.


예수님의 능력을 인정한 어떤 사람이 예수님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주님께서 어디로 가시든지, 저는 쫓겠습니다. 주님이 어디로 가시든지 저는 주님을 따라가겠습니다." 이 때 예수님께서 뭐라고 말씀하십니까?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에 새도 집이 있는데,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다”(눅 9:58)라고 하십니다. 즉 나는 여우만도 못하고, 새만도 못한 인생이다. 여우는 그래도 굴이 있고, 공중에 나는 새도 깃들일 곳이 있는데, 나는 그것마저 없다. 가난뱅이 예수, 아무 것도 가진 것이 없는 자신을 드러냅니다.


그래도 네가 나를 쫓겠느냐? "나를 쫓으라." (59)고 하셨습니다. 주님을 만나면 호강할 줄 알았는데 오히려 고생이 훤하게 보이니 사람들마다 이 핑계 저 핑계 대는 것을 봅니다. “내 부친을 장사하게 허락하소서.” 내 부친을 장사하고 난 다음에 주님을 따르겠다는 말입니다. 즉 “우리 부친이 지금 60세인데, 그 부친을 모시다가 세상 떠나시면 그 때 내가 주님을 쫓겠습니다” 하고 변명을 합니다. 핑계를 댑니다. 그리고 또 다른 사람은 말합니다. "먼저 내 가족을 작별하게 허락하소서." 내가 주님을 쫓기는 쫓겠는데, 먼저 내 가족들에게 작별인사라도 하고 와서 주님을 쫓겠습니다. 어떻게 해서든지 주님을 따르지 않고 피해보려고 잔꾀를 부리는 것을 봅니다.


변화산의 그 놀라운 광경, 그리고 귀신을 쫓아내는 그 엄청난 능력, 이런 것을 보았을 때는 주님을 따라다니면 수가 생기겠다, 주님 곁에 있으면 아무 걱정도 없겠다, 그렇게 생각했는데 예수님께서 말씀하기를 나는 여우만도 못하고 새만도 못하다고 하십니다.


그런데도 네가 나를 쫓겠느냐 하니 "아이고, 주님을 따르면 가난뱅이가 되겠구나, 주님을 따라서는 아무 것도 손에 쥐는 것이 없겠구나!' 하고 피해 도망갈 궁리를 하는 겁니다. 이 때 주님께서 뭐라고 말씀하십니까?

“손에 쟁기를 잡고 뒤를 돌아보는 자는 하나님 나라에 합당치 아니하느니라."(눅 9:62)


이미 우리는 손에 쟁기를 잡은 자들입니다. 그러므로 뒤를 돌아봐서는 안 될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핑계를 대면서 어떻게 해서든지 주님에게서 도망치려고만 합니다.


▶다시 아가서 말씀을 보면 사랑하는 사람이 찾아왔다면, 버선발로 쫓아 나와 대문을 활짝 열어줘도 부족할 텐데, 내가 옷을 벗었는데 어찌 다시 입겠소. 내가 발을 씻었는데 어찌 다시 일어나 먼지를 묻히겠소. 하면서 사랑하는 사람을 맞이하려 들지 않습니다.


우리는 다시 오시겠다고 약속한 주님을 바라보며 재림을 항상 긴장된 마음으로 기다리는 성도들이 되어야 하는데, 신앙의 옷을 벗어놓고 사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한번 옷을 벗으면 다시 옷 입기가 쉽지 않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주의 백성들은 입어야 할 옷이 있습니다. 성경에 보면, 흰 옷을 입으라, 혹은 빛의 옷을 입으라, 세마포 옷을 입으라, 구원의 옷을 입으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옷들은 결코 벗어놓아서는 안 되는 옷입니다. 술람미 여자가 옷을 벗어놓았던 것처럼, 잠 잘 때 옷을 벗는 것은 당연지사겠지만, 우리가 영적으로 벗어서는 안 될 구원의 옷, 벗어서는 안 될 흰 옷이 있습니다. 성도들은 항시 의의 옷을 입고 준비하는 마음으로 살아야 됩니다.


벗어놓아선 안 될 것이 또 있습니다. 에베소 6장에서 "전신갑주를 취하라 전신갑주를 입으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전신갑주가 무엇입니까? 구원의 투구, 진리의 허리띠, 의의 흉배, 복음의 신, 믿음의 방패,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했습니다. 머리끝서부터 발끝까지 완전 무장해서 살아야 악한 마귀의 궤계를 능히 대적해서 이길 수 있을 것입니다. 전신갑주는 틈이 없도록 온 몸에 무장을 한 것입니다. 누구든 마귀에게 빈틈을 주어서는 안 됩니다.


“나의 사랑하는 자가 문틈으로 손을 들이밀매 내 마음이 움직여서"(4) 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문을 열어달라고 사정을 하며 내 머리가 지금 밤이슬에 다 젖어있다고 말을 하는데도 불구하고, 내가 옷을 벗었는데 어찌 다시 입겠으며, 발을 씻었는데 어찌 다시 먼지를 묻히겠으며, 이런 식으로 문을 열어줄 생각을 안하니 문틈으로 손을 들이밀었다고 했습니다. 술람미 여인은 계속해서 게으름을 피우고 있는 것을 보게 되는데, 이것은 자아가 강해진 것입니다. 전에 같으면 한 마디 말에 그냥 쏜살같이 달려올 여자였는데, 이제 결혼생활 얼마동안 했다고 자아가 강해졌습니다. 고집이 생겼습니다. 우리는 영적으로 내가 죽어야 영혼이 살고, 내가 죽어야 가정이 살고, 내가 죽어야 교회가 살고… 라는 말을 자주 합니다.


그런데 그 자아가 죽는다고 하는 것이 결코 쉬운 것이 아닙니다. 사도 바울은 내가 날마다 죽노라, 이렇게 고백하면서 겸손의 허리띠를 매고 살았던 사람입니다 바울은 포악하고 잔악하기로 말하면 둘째가라면 서러운 사람입니다. 예수 믿는 사람을 그렇게도 모질게 핍박했던 사람이고, 사람을 죽이는데 가담했던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이 예수를 만난 다음에 나는 날마다 죽노라' 자기 자신을 죽이는 생활에 힘썼습니다.


사람들을 보면 대부분 자존심이 대단합니다. 부부지간에도 자존심 대결입니다. 상대가 전적으로 굽혀주기 만을 바랍니다. 한번 싸우게 되면 말을 통 안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하루 동안 말을 안 하는 것은 그래도 괜찮은데, 어떤 사람은 일주일동안 말을 안하기도하고 길게는 한 달 동안 말을 안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누군가가 지는 척 먼저 말을 붙이면 금방 풀어지는데, 그 알량한 자존심 때문에 먼저 말을 걸지 않기 때문에 계속해서 일주일 혹은 한 달씩 냉전 상태가 이어지는 것을 봅니다.


"양말 좀 줘” 그 말도 먼저 하기 싫어 양말을 찾아 신는답시고 옷이란 옷은 죄다 흩어놓은 채로 그냥 나가는 사람이 있습니다. 일종의 화풀이를 하는 겁니다. 사람들이 이토록 자존심이 강합니다.


술람미 여자도 일부러 문을 열어 주지 않는 듯 합니다. 그 동안 무슨 일이 어떻게 있었는지는 모르나 문을 두드려도 못들은 척하는 것 같습니다.


급기야 솔로몬 왕이 문틈으로 손을 내민 것입니다. 화해를 청한 것입니다. 우리는 이 말씀을 보면서 생각나는 것이 있습니다. 우리가 죄인 되었을 때에 누가 찾아왔습니까? 하나님이 우리를 찾아왔습니다. 아담이 범죄 했을 때에 누가 찾아왔습니까? “아담아, 네가 어디 있느냐?" 하나님이 찾아오셨습니다. 하나님은 그것도 부족해서, 이 세상의 죄악을 보고, 차마 견딜 수 없어서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주셨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오셨습니다. 그리고 우리를 위해서 죽으셨습니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한 일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주님의 사랑과 주님의 은혜를 받은 것 밖에 없습니다. 여러분들이 주님을 위해서 한 것이 무엇이 있습니까? 이무 것도 없습니다. 솔로몬 왕이 그 문틈으로 자기의 손을 내밀어, "내가 너를 사랑하고 있다, 내가 너를 사랑해서 찾아왔다” 이렇게 무언으로 대화를 하고 있는 것처럼, 주님은 지금도 우리를 향해서 "내가 너를 얼마만큼 사랑하는지 아느냐, 나는 지금도 너를 사랑하고 있다." 이렇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주님께서 손을 내밀었을 때 붙들기만 하면 되는데, 그것마저 붙들지 못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여기 술람미 여자가 바로 그러했습니다. 우리 주님은 찾아오셨습니다. 나사로의 집에 찾아오셨습니다. 그가 죽었을 때도 찾아오셨습니다. 제자들이 풍랑을 만나 두려움 가운데 떨고 있을 때, 그 바다까지 주님은 찾아오셨습니다. 그리고 "두려워 말라" 하시며 바람을 꾸짖어 풍랑을 잠잠케 해주셨습니다. 이렇게 주님은 우리에게 사랑을 주시고 평화를 주시고, 은혜를 주시는 분입니다. 우리는 나를 향한 주님의 그 사랑에 감동을 해야 합니다.


술람미 여자도 감동을 했습니다. 4절에 보면, “나의 사랑하는 자가 문틈으로 손을 들이 밀매 내 마음이 움직여서" 라고 했습니다. 내 마음이 움직여서, 그 신랑이 자기를 사랑함이 너무도 애틋하고, 너무도 크기 때문에, 감동을 받은 것입니다. 이런 주님의 사랑을 받고도 감동이 없다면 냉혈인간이죠. 주님의 이 엄청난 사랑, 강권하시는 그 사랑을 우리가 깨닫는다면, 그 주님의 은혜에 감동을 받는 것이 당연할 것입니다. 그래서 감격의 눈물도 흘려보고, 감격해서 하나님을 향해서 찬송도 불러보고, 그 은혜가 얼마나 큰지, 주님을 향해서 내 이 한 목숨 바쳐 충성하리라는 결심이 성도들에게 있어야 할 것입니다.


아프리카에 가서 일생동안 회생적인 선교를 하는 사람들은 그렇게 헌신한 사람입니다. 그리고 주님을 위해서 순교의 제물이 된 사람들은 그렇게 결심을 한 사람들입니다. 강권하시는 주님의 사랑에 견딜 수 없어서, 그 뜨거움에 견딜 수 없어서 그들은 죽음을 마다하지 아니하고 고국의 안락하고 편안한 문화생활을 접고 아직 문명의 혜택을 크게 보지 못하고 있는 열악한 아프리카 오지에서 오직 주님을 위해서 회생하고 헌신하는 것입니다.


열애(본문을 묵상하며 쓴 전갑재 목사의 시)


그대 보고 싶어

긴긴밤 뒤척이다 순간에 달려 왔네

내 머리는 밤이슬에 젖었고

내 옷은 별빛에 바래었다.


불 꺼진 창가 달빛은 유난한데

내 발자국 소리

내 숨소리

안 들리는가?


미칠 듯 님 보고 싶어

문가에 매달려 흔들어 보네

바람소리

님의 소리인가 싶어

숨을 멈춘다

흐르는 적막뿐이다


이대로는 갈 수 없어

창틈에 손을 넣어 빗장을 벗겨본다

꽁꽁 잠겨 진 문

님의 순결이리라


아무리 불러도 대답없는 공간이여

님의 얼굴 여기 놓고 간다

그대의 냉담을 사랑하며

당신의 눈에 멀리 선다


“일어나서 나의 사랑하는 자위하여 문을 열 때 몰약이 내 손에서, 몰약의 즙이 내 손가락에서 문빗장에 듣는구나"(5) 라고 했습니다. 무슨 말이냐? 이제 술람미 여자가 일어나서 문을 열려고 문고리를 잡으니까 자기 몸에 얼마나 몰약 향수를 발랐던지 그 향수가 문고리에 묻어난다는 말입니다. 그 시절엔 향수 구경도 못하고 사는 사람이 대부분 이었을 것입니다. 향수가 어떻게 생겼는지, 향수 냄새가 어떤지도 모르고 살 때입니다. 향수는 특수계층만 사용하던 때임으로 향수의 가치는 대단했습니다. 희귀성에 부르는 게 값이었을 것입니다. 세상말로 술람미 여자는 팔자 고친 여자입니다. 솔로몬 왕이 어쩌자고 거무튀튀한 이방 여자한테 마음이 홀딱 빠져서 세상에 없는 사랑을 다 쏟아 붓고 있습니다. 결국은 결혼까지 하고 그 많은 여자들 가운데서 유독 술람미 여자가 특별한 사랑을 받으니 이 여자는 부족한 것이 없게 되었습니다. 비싼 향수도 분에 넘치게 소유할 수 있게 되니 술람미 여인은 옷을 다 벗어 놓고 머리끝서 발끝까지 향수에 목욕을 하고 잔겁니다. 그런데 솔로몬 왕이 찾아와 문을 두드리다 열어주지 아니하니 문 속으로 팔을 넣는 것을 보고 감동을 받아 일어나 문을 열려고 문고리를 잡으니 문고리에 철철 향수가 묻어나는 겁니다.


우리 성도들은 어떻습니까? 자신을 위해서 아낌없이 물질을 쓰면서도 하나님에 대해서 인색한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물질주의에 빠지고 안일주의에 빠지고 쾌락주의에 빠지면 주님을 잃어버릴 수밖에 없습니다. 성도들이 가난할 때에 하나님! 하나님! 부르며 밤을 지새워 부르짖어 기도하던 사람이 어느 날 갑자기 건강을 얻고, 부자가 되고, 문제가 해결 되고 보니 하나님을 잃어버리는 사람이 너무 많습니다. 곤경과 고난의 깊은 수렁에 빠져서 하나님이 아니고서는 살 수 없다고 살려달라고 애원하던 그 사람이 이제는 편안해졌다고 주님을 져버리는 사람이 있습니다. 사람이 세상에 살다보면 물질이 필요합니다. 물론 쾌락도 필요합니다. 그러나 여기에 깊이 빠져서 주님까지 모른다고 한다면, 이것은 하나님 앞에 분명한 죄입니다. 우리는 언제나 변함없는 믿음을 가지고 주님을 사랑할 수 있는 자들이 되어야 됩니다.


결혼 서약할 때 가난할 때나, 부요할 때나, 건강할 때나 병들었을 때나, 사랑하겠노라고 서약을 하고 난 다음에 성혼 공포를 하게 되어 있습니다. 서약할 때 누구든지 “네”, “네” 대답을 합니다. 그러나 살다보면 보험금을 타내기 위해 남편이나 아내를 죽이는 무서운 세상을 봅니다. 돈 몇 푼에 함께 살았던 정도 끊고 돈을 생명과 바꾸는 것입니다. 주님과 나와의 관계는 그런 계산적인 관계가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주님께서 우리를 위해서 자신의 생명까지 주신 것은 주님이 어떤 계산을 가지고 당신의 몸을 주신 것은 아닙니다. 자식과 부모 지간에 계산이 없듯이,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도 계산이 없습니다. 무조건적입니다. 이것을 아가페라고 합니다. 우리는 이런 엄청난 사랑을 받으며 오늘도 살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세상주의에 빠져서 하나님을 져버리는 어리석은 자들이 아니라, 오늘도 주님의 그 크고 깊은 사랑 안에 감동하고, 감격하고, 감사해서 그 주님의 사랑에 헌신하고 희생할 수 있는 이러한 성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사랑하는 주님이 문 밖에 서 계십니다. 문을 여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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