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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문화일보] 그런 하루 - 김수연

신춘문예 김수연............... 조회 수 472 추천 수 0 2019.02.09 23:5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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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 문화일보 신춘문예 동화 당선작] 그런 하루 / 김수연

 

  그런 하루 / 김수연

 

  학교가 끝나고 축구를 한 판 했다. 동전을 긁어모아서 음료수 한 병을 샀다. 넷이서 나눠 먹으니 한 모금씩밖에 못 먹었다. 아직 초여름인데도 햇볕이 너무 뜨거웠다.

  애들은 학원에 가야 한다며 나랑 민규만 남기고 갔다. 민규와 나는 잠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민규도 나처럼 아버지와 둘이만 산다. 우리는 서로 눈치 없이 엄마 얘기를 꺼내지 않았다. 그래서 민규와 둘이 있는 게 편하기도 했지만, 때로는 둘 다 할 말을 잃은 채 있을 때도 많았다.

  “연재한테 가 볼까?”

  “거기 가서 뭐하냐?”

  “있으면 같이 노는 거지 뭐.”

  민규도 나처럼 배가 고픈 거 같았다. 나는 못 이기는 척 민규를 따라 걸었다. 연재네 빵집은 시장 입구에 있다. 우리는 건너편에서 까치발을 든 채 안을 들여다봤다.

  “있어?”

  “없어.”

  빵집 안에는 연재뿐 아니라 손님도 하나 없이 텅 비어 있었다.

  “지금 들어가기 좀 그렇지?”

  “그지, 연재도 없는데 가서 뭐해.”

  나와 민규는 다시 갈 곳을 잃은 채 하늘만 보고 서 있었다. 그때였다.

  “얘들아.”

  키가 크고 깡마른 누나가 말을 걸었다. 검고 숱 많은 머리가 어깨에 닿아 있었다. 새하얀 피부는 새까만 머리와 대조돼 더욱 하얘 보였다. 왼쪽 팔로는 짙은 갈색의 강아지를 안고, 오른쪽 팔 아래에는 만화책을 한 권 끼고 있었다. 

  “부탁이 있는데.”

  누나는 말을 잇지 않고 가만히 우리 앞에 서 있었다. 

  “뭔데요?”

  참지 못한 듯 민규가 물었다.

  “잠깐 얘 좀 맡아 줄래? 빵을 사야 하는데, 안에 개는 못 데리고 들어가서. 잠깐이면 돼.”

  우리 쪽을 보고 있는 듯했지만 앞머리에 가려 확실하지 않았다.

  “얌전하니까 힘들지는 않을 거야. 짖지도 않아. 늙어서 귀도 잘 안 들려.”

  “늙어요? 몇 살인데요?”

  “열세 살.”

  개는 사람이랑 달라서 나이를 몇 배나 빨리 먹는다는 얘기는 들었다. 그래도 나랑 동갑인데 늙었다니 기분이 이상했다. 

  “우리가 데리고 있을게요.”

  나는 누나에게서 개를 받아 안았다. 손 밑에서 팔딱거리는 심장이 느껴졌다.

  민규는 내 품에 안긴 개를 자꾸만 쓰다듬었다. 개는 귀찮은 듯 민규를 쳐다보지도 않고 가만히 있었다.

  “얘 이름은 참깨야.”

  누나가 민규를 보며 말했다.

  “그럼 부탁할게.”

  누나가 우리를 두고 빵집으로 가려고 하자 참깨가 고개를 들었다. 주인이 자기를 두고 가려는 줄 알았는지 낑낑 소리를 냈다. 누나는 몇 번 뒤를 돌아보고 빵집으로 들어갔다.

  “귀엽다.”

  민규는 쉬지 않고 참깨의 등을 어루만졌다. 

  “네가 안을래?”

  생각보다 무게가 있어서 팔이 아팠다. 민규는 대번에 받아 안았다.

  유리문 안을 통해 보니 누나는 빵집을 천천히 돌며 신중하게 빵을 고르고 있었다.

  “얘 봐.”

  민규는 오른손으로 참깨의 턱밑을 살살 긁었다. 참깨는 턱을 앞으로 쭉 내민 채 두 눈을 감고 있었다. 목욕탕에서 할아버지 등을 밀어드렸을 때, 할아버지가 ‘아이고, 시원하다.’ 하는 표정이었다. 나와 민규는 웃음을 터뜨렸다. 

  “이렇게 애기 같은데 할아버지라니 이상하다, 그지?”

  “할아버지야? 할머니 아니고?”

  나와 민규는 서로 마주 봤다.

  “확인해 보자.”

  민규는 참깨의 몸통을 들어 올려 내 쪽으로 배를 보였다. 내 엄지손가락보다도 작은 고추가 아랫배 쪽에 달려 있었다.

  “남자다, 남자. 고추 있어.”

  갑자기 참깨가 앞발로 얼굴을 긁었다. 두 눈을 가린 모습이 마치 부끄러워하는 것 같았다. 나와 민규는 또 한참을 웃었다.

  나는 참깨를 보니 강아지를 키우고 싶어졌다. 조금 귀찮을지는 모르지만 아버지가 오기 전까지 함께 있으면 심심하지 않을 것 같았다. 치킨 집에서 일하는 아버지는 늘 새벽이 돼야 집에 돌아왔다.

  “근데 이 누나 왜 이렇게 안 와? 나 화장실 가고 싶은데.”

  민규가 오줌이 마려운지 다리를 배배 꼬았다. 빵집 안을 들여다보니 누나는 보이지 않았다.

  “내가 가서 물어볼게.”

  민규가 참깨를 맡기고 허둥지둥 빵집으로 들어갔다. 연재네 아줌마와 잠깐 얘기를 하더니 민규가 빵집 안쪽으로 깊숙이 들어갔다. 잠시 보이지 않던 민규가 다시 나타나 아줌마를 향해 꾸벅 인사를 하고 나왔다.

  “뭐래?”

  “화장실 쓰래.”

  “아니, 그 누나. 어디 있냐고.”

  나는 갑자기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화장실 간다더니 그 뒤로 안 돌아왔대.”

  “뭐?”

  “화장실이 빵집 뒷문으로 나가야 있더라. 그리로 나가버렸나 봐.”

  “뭔 소리야?” 

  머릿속이 혼란스러웠다. 민규가 침착하게 말하는 데도 뜻을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버리고 간 거라고. 참깨를.”

  민규는 아무렇지 않게 말했지만 살짝 한숨을 쉬었다.

  참깨를 안은 팔이 저려왔다. 갑자기 참깨가 두 배, 세 배는 더 무거워진 것 같았다. 나는 얼른 참깨를 내려다봤다. 우리가 하는 얘기를 알아들을까?

  “어떻게 하지?”

  좁은 골목길 안을 샅샅이 뒤졌다. 전봇대랑 휴지통 뒤에도 살펴봤다. 어디선가 누나가 숨어서 우리를 보고 있을 것 같았다. 

  그때 뭔가가 머릿속에 퍼뜩 떠올랐다.

  “그러고 보니 아까 그 누나 말이야. 만화책 들고 있지 않았냐?”

  민규는 지금 그게 무슨 상관이냐는 표정으로 나를 쳐다봤다.

  “사냥꾼 빅맨 7권. 그걸 누나가 들고 있었어!”

  “그거 새로 나와서 갈 때마다 없다고 못 본 거잖아!”

  민규가 알은체를 했다. 

  ‘사냥꾼 빅맨’은 우리 학교 남자애들 사이에서 제일 인기 많은 만화책이다. 남자들이 좋아할 만한 내용인데 여자인 누나가 그 책을 들고 있어서 기억 속에 남았나 보다.

  “가자!”

  민규가 먼저 뛰었다. 나는 얼른 민규 뒤를 따라 뛰었다. 빵집이 멀어질수록 심장이 쿵쾅거렸다. 내 품에 안긴 참깨의 심장도 아까보다 더욱 세차게 뛰었다.

  “사냥꾼 빅맨 7권? 방금 들어왔는데 어떻게 귀신같이 알았냐.”

  알바생 형이 시익 웃으며 책을 꺼냈다. 나랑 민규는 침을 꼴깍 삼켰다. 당장 책을 빌려서 그 자리에서 읽고 싶었다. 하지만 지금은 참깨 주인을 찾아야 했다. 어차피 돈도 없었다.

  “방금 이 책 반납한 사람, 여자였죠?”

  형은 두 눈을 동그랗게 뜨더니 깜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어떻게 알았어? 아는 사람이야?”

  우리는 빵집 앞에서 있었던 일을 이야기했다. 형은 고개까지 끄덕이며 열심히 우리 얘기를 들었다. 우리보다 나이 많은 형이 귀 기울여 들어주니 어쩐지 기분이 좋았다. 민규도 나와 같은 마음이었는지 손짓 발짓까지 하며 열심히 얘기했다.

  “그 여자가 기르던 개구나.”

  형이 쥐포를 꺼내 참깨에게 내밀었다. 참깨는 냄새를 킁킁 맡더니 고개를 돌렸다.

  “그래서 어떻게 하려고?”

  “찾아서 돌려줘야죠.”

  “내 말은 어떻게 찾을 거냐고. 너희 오기 훨씬 전에 나갔어.”

  “여기 손님 전화번호 저장해 두잖아요. 처음 가입할 때 나도 썼던 거 같은데.”

  나는 핸드폰이 없어서 아버지 핸드폰 번호로 가입했다. 그랬다가 만화책이 연체됐다고 문자가 오는 바람에 약간 꾸지람을 받은 기억이 떠올랐다.

  “그 번호 아니야.”

  형이 시무룩한 얼굴로 대꾸했다.

  “내가 그 번호로 전화해 봤는데 없는 번호라고 나오더라고.”

  “근데 왜 안 고쳐놨어요?”

  민규가 의심스러운 표정으로 물었다. 

  “한 번도 연체한 적이 없어서 딱히 새 번호를 달라는 말을 못했어.”

  나는 왜 연체도 하지 않은 누나에게 전화했는지 궁금했지만 묻지 않았다. 얼핏 그 이유를 알 것도 같았다. 

  나는 소파에 털썩 주저앉아 그 옆에 참깨를 내려놨다. 참깨는 잠시 소파 위를 네 발로 자근자근 밟더니 내 옆에 얌전히 엎드렸다. 민규가 종이컵에 생수를 담아서 참깨에게 내밀었다. 참깨가 부지런히 물을 마셨다. 

  나와 민규도 물을 들이켰다. 시원한 선풍기 바람이 땀을 식혔다. 그냥 형에게 부탁해서 사냥꾼 빅맨이나 볼까? 컵라면이 쌓여 있는 것을 보니 다시 배가 고팠다. 민규는 기분이 안 좋은지 아까부터 말없이 애꿎은 소파 가죽만 손톱으로 뜯고 있었다.

  “어떻게 할 거냐?”

  “형이 기를래요?”

  “미쳤냐? 나 하나 먹고 살기도 빠듯한데.”

  형이 정색을 하고 말했다. 

  “그럼서 뭘 물어요.”

  나는 입술을 부루퉁 앞으로 내밀었다.

  “그 여자 말이야.”

  형이 은밀한 비밀이라도 말해 주듯이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우리 옆에 앉았다.

  “곧 이사 간다고 하더라. 나한테 괜찮은 부동산 물어보고 갔어.”

  “거기가 어디예요?”

  나는 벌떡 일어나 물었다. 

  “어디로 가냐고? 그냥 이 근처에서 집만 옮기는 거 같던데.”

  “아니, 형이 추천한 부동산 말이에요. 어디 알려줬냐고요.”

  “아, 정 씨 아저씨네 부동산.”

  ‘정 씨 아저씨’라는 말을 듣자 기운이 빠졌다. 그 아저씨 앞에만 가면 주눅이 들었다.

  “얼른 가 보자.”

  민규가 참깨를 안고 일어섰을 때 만화방 문이 열렸다. 교복을 입은 형과 누나들이 들어왔다. 형은 아무 반응이 없는 참깨를 보더니 혀를 찼다.

  “애가 누굴 봐도 짖을 줄도 모르고, 반길 줄도 모르고. 나라도 버리겠다.”

  민규는 카운터로 돌아가는 형의 뒷모습을 한참 째려봤다. 

  정 씨 아저씨네 부동산이라면 ‘정직한 부동산’을 말하는 거다.

  부동산 안을 들여다보니 연재네 빵집이랑 다를 게 없이 손님이 하나도 없다. 아저씨는 우리 동네가 그려진 지도 앞에 앉아 배달 음식을 먹고 있었다.

  “벌써 저녁 먹을 때인가 보다.”

  민규가 중얼거렸다. 부동산 안 시계가 일곱 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평소 같았으면 텔레비전 앞에 앉아서 저녁을 먹고 있었을 것이다. 배는 고팠지만 지금 시각에 누군가와 함께 있는 것이 정말 오랜만이라 기분이 나쁘지는 않았다. 

  “어떡하지? 들어가 볼까?”

  정 씨 아저씨는 우리 아버지가 일하는 치킨 집 ‘큰 사장’이다. 우리 아버지는 ‘작은 사장’이라고 불렸다. 똑같은 사장인데 정 씨 아저씨는 하루에 한 번, 혹은 이틀에 한 번만 치킨 집에 들렀고, 아버지는 매일 아침 일찍부터 일을 하러 나갔다. 닭을 손질하는 것부터 양념을 만들고 전화 주문을 받고, 가끔은 배달까지 직접 하는 것이 작은 사장이 할 일이었다.

  “그냥 가자.”

  나는 민규의 팔을 잡아끌었다. 개는 그냥 경찰서에 갖다 주면 될 것이다. 어쩌면 냄새를 맡아서 집에 찾아갈지도 모른다. 귀가 안 들린다고 했지 코가 나쁘다는 말은 안 했으니까. 어쩌면 개를 키우고 싶어 하는 아이가 키워줄 수도 있겠지. 참깨가 늙었다고 했지만 겉으로 보면 알 수 없으니 누구라도 금방 주워갈 것이다. 나는 민규한테 내 생각을 말했다.

  탁. 가만히 내 이야기를 듣고 있던 민규가 내 어깨를 쳤다.

  “사과해.”

  “뭐?”

  “참깨한테 사과하라고.”

  “사과하라고? 내가? 내가 왜?”

  “너 최선을 다한 거 맞아?”

  민규가 갑작스럽게 질문을 날렸다. 학교 선생님이나 할 법한 질문이었다.

  “최선을 다하지도 않고 이렇게 포기하는 거야?”

  나는 화가 치밀었지만 민규에게 뭐라고 대꾸해야 할지도 몰랐다. ‘최선을 다한다’라는 건 어른들이 나 같은 애들을 위로하기 위해 만들어 낸 말이다. ‘최선을 다했으니 괜찮아.’, ‘결과는 중요하지 않아. 최선을 다했냐가 중요해.’ 따위의 말. 고스란히 어른들에게 돌려주고 싶은 말. ‘최선을 다해서 저를 길러줘서 고마워요.’, ‘최선을 다했으니 엄마와 아빠가 헤어져도 어쩔 수 없죠.’와 같이 얼마든지 말을 만들어 낼 수 있다.

  아무 대꾸도 하지 않고 빙그르 돌아 민규를 등지고 걸었다.

  “진짜 멍청해!”

  한참을 걷다가 눈에 띈 바닥의 돌을 힘껏 찼다. 전봇대에 부딪힌 돌이 그대로 땅에 떨어졌다. 나는 가던 길을 멈추고 ‘최선’이란 무엇인지 한참을 생각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뭔지 모르겠다.

  하지만 내가 지금 저 둘을 두고 떠나도 내 마음이 괜찮을까? 답을 생각하면 ‘아니’였다. 나는 더 오래 함께 있고 싶었다. 참깨를 주인에게 돌려주든 아니든, 셋이 있고 싶었다. 이 바람대로 하는 게 나한테는 ‘최선’이었다. 

  다시 몸을 돌려 민규가 있는 쪽으로 걸어갔다. 걷다가 조금 빠르게 걷다가 더 빠르게 걷다가 어느새 뛰고 있었다. 숨이 턱까지 차오르자 민규가 보였다. 여전히 참깨를 안은 채였다. 나는 민규의 등을 두들겼다. 민규가 돌아봤다. 참깨가 나를 보고   꼬리를 흔들었다. 

  “저기 말이야.”

  나는 뒤통수를 긁적였다.

  “미안해.”

  그제야 민규의 굳은 얼굴이 풀어졌다.

  “참깨한테도.”

  참깨가 컹! 하고 소리를 냈다. 처음 듣는 소리였다. 가래가 낀 듯한 소리였지만 제법 우렁찼다.

  “괜찮다는 거 같은데?”

  민규가 웃음을 터뜨렸다.

  나도 함께 웃었다. 웃음소리를 실은 바람이 시원했다.

  “그럼 들어가 볼까?”

  내가 먼저 앞장서 걸었다.

  우리는 부동산 안으로 들어갔다.

  “어이구, 이게 누구냐. 아버지 잘 계시지?”

  아버지의 안부는 나보다 아저씨가 더 잘 알지도 모른다.

  “무슨 일로 왔어?”

  민규와 나는 참깨와 빵집 앞에서 누나를 만났을 때부터 만화방에서의 이야기까지 차근차근 했다.

  “혹시 머리가 어깨까지 오고 새하얀 아가씨 말하는 거냐?”

  “맞아요!”

  나와 민규는 짝 소리가 나게 손뼉을 쳤다.

  “지금 사는 데보다 훨씬 작은 데로 이사해야 한다고 하더라. 아마 그런 집에서 개는 못 키울 거다.”

  아저씨가 흘끔 참깨를 곁눈질했다. 

  “근데 어째. 그 아가씨라면 아까 갔는데.”

  “알아요. 그래도 아저씨라면 연락처는 아시잖아요.”

  “그런 걸 다른 사람한테 함부로 알려주면 신고당할 수도 있어.”

  아저씨는 팔짱을 낀 채 맞은편에 앉아 있었다. 거대한 산을 마주하고 있는 기분이었다. 더는 말이 나오지 않았다.

  “그럼 참깨는 어떡해요? 얘는 사람 나이로 치면 할아버지나 마찬가지라고요. 앞으로 얼마나 살지도 모르는데 이제 와서 다른 주인을 찾아주란 말이에요?”

  민규가 속사포로 말을 쏟아냈다. 학교에서는 단 한 번도 본 적 없는 모습이었다. 아저씨도 놀란 듯 입을 벌린 채 민규를 보고 있었다.

  “이런 늙은 개를 누가 데려가겠냐.”

  아저씨가 한숨을 쉬었다.

  “이번 주 토요일에 집 보러 오기로 했어. 그때 너희도 오면 만날 수 있겠다.”

  토요일이라면 이틀 뒤다. 안심이 됐다. 그때까지는 나나 민규가 돌봐주면 된다. 막혔던 변기가 뻥 뚫리듯 내 마음도 시원해졌다.

  “감사합니다.”

  나와 민규는 동시에 고개를 꾸벅 숙였다. 아저씨가 고마웠다. 진심이었다. 다음 말을 하기 전까지는 말이다.

  “하여간 사람이나 동물이나 능력 없으면 함부로 키우는 게 아니야.”

  부동산 문이 닫히고 우리는 다시 거리에 나와 있었다.

  하늘이 붉게 물들고 있었다. 나와 민규는 집 쪽으로 걸었다.

  “오늘은 내가 데려갈게.”

  민규가 참깨를 안아 들었다. 참깨는 지쳤는지 눈을 감고 있었다. 나도 다리가 아팠다. 어디든 앉아서 시원한 선풍기 바람을 쐬며 쉬고 싶었다. 하지만 집까지는 한참을 더 걸어야 했다.

  걷다 보니 다시 연재네 빵집 앞이었다.

  빵집 안에는 아까보다는 손님이 조금 있었다. 연재는 여전히 보이지 않았다.

  나는 연재네 아줌마와 눈이 마주쳤다. 괜히 머쓱해져 얼른 얼굴을 돌렸다. 그런데 빵집 문이 열리더니 아줌마가 우릴 향해 달려왔다. 

  나는 아줌마를 뒤따라오는 사람을 보고 깜짝 놀랐다. 누나였다.

  “참깨야!”

  누나는 아줌마를 밀치듯 달려와 민규에게서 참깨를 뺏으려 했다. 민규는 얼른 몸을 돌려 누나를 피했다. 누나를 본 참깨가 마구 꼬리를 흔들었다.

  “너희 어디 갔었니? 이 아가씨가 얼마나 찾았다고. 화장실 갔다 왔더니 너희가 강아지를 데리고 없어졌다고 난리였어.”

  나는 기가 막혔다. 민규의 얼굴을 보니 나와 같은 생각인 것 같았다.

  “아줌마, 여기 화장실 남녀공용이죠?”

  민규가 천천히 물었다.

  “그렇지.”

  “아까 제가 화장실 썼죠?”

  “그랬던가?”

  “제가 화장실 갔을 때 이 누나 없었어요.”

  누나가 고개를 숙이며 우리 눈을 피했다.

  “우린 여기서 한참을 기다렸다고요.”

  “그게 무슨 상관이야. 어쨌든 개 주인이 나타났잖아. 그러니 돌려주면 되지.”

  내 입에서 나도 모르게 불쑥 말이 튀어나왔다.

  “그게 아줌마 최선이에요?”

  “뭐?”

  아줌마는 놀란 표정을 지었다. 눈물이 나오려고 했다. 이유는 알 수 없었다. 민규 앞에서 울지 않으려고 아랫입술을 꼭 깨물었다. 

  “능력 없으면 사람이나 동물이나 함부로 키우면 안 되는 거 모르세요?”

  나는 누나를 똑바로 보고 말했다. 누나가 조금이라도 기분이 나빴으면 했다. 그래야 우리의 하루가 조금이라도 보상받을 것만 같았다.

  아무 말 없이 고개만 숙이고 있던 누나가 새하얀 팔을 내밀어 내 손을 잡았다.

  “미안해.”

  방금 전까지만 해도 토요일에 부동산에 누나를 찾으러 갈 생각까지 했으면서 이상하게 지금은 누나에게 참깨를 돌려주기 싫었다.

  “가자, 민규야!”

  누나 손을 뿌리치고 민규 팔을 잡았다. 민규는 아무 말 없이 나를 따라왔다.

  참깨는 나와 민규가 키우면 된다. 사실 누가 키워도 크게 다를 바는 없을 것이다. 먹이를 주고 잘 곳을 주고 화장실을 만들어 주면 된다. 그럼 참깨는 먹고 자고 똥을 싸면서 나이를 먹을 것이다. 함께 사는 사람이 바뀌었다는 것 외에는 달라지는 게 없다.

  그때였다. 참깨가 심하게 몸을 뒤틀었다. 민규가 팔을 안으로 오므렸는데도 참깨가 거의 방방 뛰다시피 해서 땅에 내려놓았다. 참깨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우리를 떠나 누나한테로 달려갔다.

  “참깨야!”

  누나가 참깨를 안아 들었다. 참깨는 아기처럼 누나 품에 마구 파고들었다.

  누나는 참깨의 등에 코를 박고 뭐라고 중얼거렸다. 나와 민규가 있는 쪽에서는 들리지 않았다. 참깨가 혀를 날름거리며 누나의 팔을 핥았다. 

  연재네 아줌마는 빵집 안으로 들어갔다. 누나는 우릴 향해 고개를 슬쩍 숙이고 반대편으로 갔다. 나와 민규는 누나와 참깨가 보이지 않을 때까지 그 자리에 서 있었다.

  “좋은 누나는 아니야, 그지?”

  “맞아.”

  “그래도 참깨가 좋아해.”

  “그런 것 같아.”

  해가 완전히 져서 어두워졌다. 빵집 간판에 불이 들어왔다. 누군가의 저녁을 배달하는 오토바이들이 지나다니기 시작했다. 저 오토바이 중에 아버지도 있을까. 나는 집을 향해 걸었다.

  “인호야.”

  민규가 불렀다.

  “응?”

  “우리 집에 가서 밥 먹고 가.”

  집에 가서 혼자 밥을 먹는 것보다는 민규와 함께 먹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 남의 집에 가는 게 익숙하지는 않지만, 내일은 민규를 데려가 우리 집에서 먹으면 될 거다. 그럼 어느새 민규도 나도 서로의 집에서 밥을 먹는 게 편해질지도 모른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는 서로의 옆에서 아무 말 없이 걸었다. 마치 산책을 마치고 돌아가는 길 같았다.


  <당선소감>  틀린 길 걸어온 건 아니었구나… 이제야 안심


  나의 할아버지는 어린 나를 데리고 자주 서점에 가셨습니다. 한참을 빙빙 돌며 책을 고르는 동안 묵묵히 기다려 주셨습니다.

  네 권을 고르면 세 권은 할아버지가, 한 권은 내가 들고 집으로 돌아옵니다. 다 읽고 맘에 쏙 들어 여러 번 읽고 싶은 책은 쉽게 손이 닿는 책장 아래에, 나머지는 위에 두었습니다. 그리고 그때마다 생각했습니다. 나도 누군가의 책장 아래에 꽂히는 책을 쓰고 싶다고.

  읽을 때와 달리 쓰는 시간은 항상 즐겁지만은 않았습니다. 혹시 내 길이 아닌 곳을 가고 있는 건 아닌가 몇 번씩 뒤돌아보기도 했습니다.

  당선 소식은 정말로 큰 선물입니다. 적어도 아예 틀린 길을 걸어온 건 아니었구나, 이제야 조금 안심할 수 있었습니다.

  그동안 인내해준 나 자신과 모두에게 감사합니다. 사랑하는 가족, 응원해준 이들과 함께 기쁨을 나누고 싶습니다.

  다시 글쓰기를 시작할 계기를 주시고 동화의 참모습을 보여주신 중앙대 대학원 교수님들, 용기 주신 이송현 선생님, 참으로 감사합니다. 소중한 도란, 학우들과 한겨레 동기들, 덕분에 쓰는 동안 외롭지 않았습니다. 

  오늘의 마음을 잊지 않고 천천히, 그러나 쉬지 않고 나아가겠습니다. 마지막으로 부족한 글을 뽑아주신 문화일보 심사위원님들께도 깊이 감사드립니다. 
  ● 1983년 서울 출생.

  ● 중앙대 대학원 문화예술콘텐츠학과 졸업 예정.


  <심사평> 감각적인 문장·침착한 시선 울림 커… 읽을수록 깊은 여운


  올해 응모작들의 경향은 ‘거칠거나 힘없거나’였다. 화장, 이성 교제, 성폭력, 힙합 등 새로운 이슈들이 등장하기 시작한 점이 눈에 띄었지만 자극적 소재 이상의 이야기는 보이지 않았다. 아이들의 첨예한 삶의 현장을 보다 숙성된 작품으로 만들겠다는 작가적 성찰이 더 필요해 보인다.

‘매일매일 숨바꼭질’은 가장 문장이 좋은 작품이었다. 하지만 엄마와 어린 아들의 지난한 삶이 늪처럼 독자를 끌어들일 뿐 동화적인 전망이 없다는 점이 걸림돌이었다. 내 글을 읽는 어린 독자와 무엇을 소통하고 싶은지 숙고해 보기를 부탁하고 싶다. 

  ‘좋아요’는 한 SNS 매체에 글을 올리면서 ‘좋아요’를 더 많이 받기 위해 경쟁하는 아이들의 이야기가 미묘한 이성감정과 어우러져 펼쳐진다. 시의성 있는 소재이지만 그것을 다루는 방식은 낡은 전형이어서 소재를 충분히 의미 있게 살려내지 못했다. ‘사라진 고추를 찾아라’는 아빠의 사업 실패 후 시골로 간 아이와 다문화가정 급우와의 갈등과 화해를 그린다. 아빠와 아들 두 인물의 사연이 교차 직조되면서 입체적인 이야기가 될 수 있었지만 너무 힘없는 문장이 문제였다.

  당선작은 ‘그런 하루’로 결정되었다. 두 아이가 개를 맡기고 사라진 여자를 찾아다니는 하루저녁의 에피소드가 무게감이 그다지 없어 보인다는 점에서 망설였지만, 읽을수록 깊은 여운을 남기는 작품이었다. 엄마가 없는 두 아이가 ‘할 말을 잃은 채’ ‘갈 곳을 잃은 채’ 저녁을 맞는 도입부에서 아리던 마음은, 아이들이 개 주인을 끈질기게 추적하고 개를 버리려던 주인은 후회하며 돌아오는 말미에서 따뜻하게 다독여진다. 작은 에피소드가 툭 던져진 듯 보이지만 아이들과 아빠들, 개와 그 주인 등 많은 인생들의 고단한 삶이 파문처럼 번져나가며 큰 울림을 준다. 군더더기 없이 깔끔하면서도 감각적인 문장과 침착한 시선이 그 울림을 만들어내는 큰 힘이다. 

  당선을 축하하며, 주인공 아이의 말대로 ‘최선’을 다해 작가의 길을 걷기를 바란다.

심사위원 : 김서정, 황선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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