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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전 밖에서의 삶

예레미야 이익환 목사............... 조회 수 295 추천 수 0 2019.02.14 23:4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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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렘7:3-7 
설교자 : 이익환 목사 
참고 : 텔아비브욥바교회 http://telavivchurch.org (이스라엘) 

텔아비브 욥바교회 2017년 11월 25일 설교 이익환 목사

예레미야 2 성전 밖에서의 삶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너희 길과 행위를 바르게 하라 그리하면 내가 너희로 이 곳에 살게 하리라 [4] 너희는 이것이 여호와의 성전이라, 여호와의 성전이라, 여호와의 성전이라 하는 거짓말을 믿지 말라 [5] 너희가 만일 길과 행위를 참으로 바르게 하여 이웃들 사이에 정의를 행하며 [6] 이방인과 고아와 과부를 압제하지 아니하며 무죄한 자의 피를 이 곳에서 흘리지 아니하며 다른 신들 뒤를 따라 화를 자초하지 아니하면 [7] 내가 너희를 이 곳에 살게 하리니 곧 너희 조상에게 영원무궁토록 준 땅에니라” (렘7:3-7)

 

대부분의 사람들은 중심에 서고 싶어 한다. 중심에 서면 좀처럼 흔들리지 않기 때문이다. 유대 백성들에게 있어서 중심은 성전이었다. 성전은 하나님이 거하시는 곳이었다. 하나님이 거하시는 성전이 있는 한 자신들은 안전했고, 어느 민족도 그것을 흔들 수 없었다. 그런데 예레미야 선지자가 그들의 중심을 흔들었다. 너희들의 삶을 바꾸지 않으면 성전이 무너질 것이라는 것이었다. 이것이 유명한 예레미야의 성전설교였다. 오늘은 이 성전 설교를 중심으로 왜 예레미야는 유대 백성들의 중심을 흔들어야 했는지 살펴보며 함께 은혜를 나누고자 한다.

 

렘 7:1-2, 4, “여호와께로부터 예레미야에게 말씀이 임하니라 이르시되 [2] 너는 여호와의 집 문에 서서 이 말을 선포하여 이르기를 여호와께 예배하러 이 문으로 들어가는 유다 사람들아 여호와의 말씀을 들으라… [4] 너희는 이것이 여호와의 성전이라, 여호와의 성전이라, 여호와의 성전이라 하는 거짓말을 믿지 말라”

 

때는 초막절과 같은 유대 명절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절기를 맞이하여 유다 사람들이 예루살렘 성전에 예배하러 올라올 때 예레미야는 성전 문에 서서 외친다. ‘이것이 여호와의 성전이라 하는 거짓말을 믿지 말라’는 것이다. 여러분이 예배드리러 올 때 누가 입구에 서서 이곳이 하나님의 전이라는 거짓말을 믿지 말라고 외친다면 얼마나 황당할까? 예레미야가 이 설교를 하게 된 배경과 설교 이후의 반응은  예레미야서 26장에서 좀더 자세하게 나온다.

 

렘 26:5-7, “내가 너희에게 나의 종 선지자들을 꾸준히 보내 그들의 말을 순종하라고 하였으나 너희는 순종하지 아니하였느니라 [6] 내가 이 성전을 실로 같이 되게 하고 이 성을 세계 모든 민족의 저줏거리가 되게 하리라 하셨느니라 [7] 예레미야가 여호와의 성전에서 이 말을 하매 제사장들과 선지자들과 모든 백성이 듣더라”

 

예레미야는 여호와의 성막이 있었던 실로가 사라졌던 것처럼 성전도 사라질 것이라고 외쳤다. 실로는 이스라엘의 중심에 위치하고 있다. 모든 지파가 모이기에 좋은 위치였다. 가나안 정복 후 열두 지파는 이 실로에 있는 성막을 중심으로 하나로 뭉쳤다. 그러나 각 지파가 자신들의 땅에서 일상의 평범한 삶을 살기 시작하면서 실로의 역할은 축소되기 시작한다. 더군다나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께서 진멸하라고 하신 가나안 족속과 함께 살면서 그들이 섬기는 우상을 따라 섬기기 시작한다. 가나안 거민들은 손에 쥘만한 크기의 신상인 드라빔이 집집마다 있었다. 굳이 실로에 가지 않아도 편하게 집에서 제사드릴 수 있었다. 편리함에 근거한 우상숭배 신앙이 공을 들여야 하는 실로 중심의 신앙을 대체하여 백성들의 마음을 차지하게 된 것이다. 그 결과 실로는 기원전 1050년 블레셋에 의해 무너지고 만다. 결코 군사력이 약해서 무너진 것이 아니었다.

 

예레미야의 성전설교가 나오게 된 배경을 좀더 살펴보겠다. 예레미야 26:1절에 의하면 이 설교는 여호야김 왕이 다스리기 시작한 때 행해진 것이다. BC 608년 경이다. 남유다 개혁의 영웅이었던 요시야왕은 한 해 전인 BC 609년 애굽 왕 느고에 의해 므깃도에서 죽고 만다. 남유다 온 백성은 그를 위해 애곡한다. 나라의 기강이 서 가던 때에 너무도 선한 왕을 잃게 된 것이다.

 

그동안 남유다 백성에게는 그들을 지켜준 신앙의 두 축이 있었다.하나의 축은 다윗 언약 신앙이었다. 다윗의 왕조가 영원할 것이라는 믿음이었다. 다른 하나는 성전신앙이었다. 성전은 하나님이 거하시는 곳이기에 절대 무너지지 않는다는 믿음이었다. 그런데 요시야 왕의 죽음으로 그들 신앙의 한쪽 축인 다윗 언약에 대한 믿음이 흔들렸다. 하나님이 세우신 다윗 계통의 왕이 평화롭게 이어지지 않고 전쟁에서 죽음을 맞이 했기 때문이다. 이제 그들에게 남은 것은 성전신앙이었다. 그래서 요시야가 죽고난  후 맞이한 절기에 백성들은 예루살렘 성전에 오르면서 그 어느 때 보다도 간절하게 “이곳이 여호와의 성전이라, 이곳이 여호와의 성전이라, 이곳이 여호와의 성전이라” 고 간절히 외쳤던 것이다.

 

유다 백성들의 생각의 중심에는 ‘우리에게 성전이 있다’는 것이다. ‘성전이 있기에 우린 안전하다’는 것이다. 예레미야는 이 맹목적인 성전신앙에서 자유로울 수 있었던 사람이었다. 그가 실로의 성막이 무너졌던 것을 기억하는 아나돗 출신 제사장 가문이었기 때문이다. 실로의 붕괴에 대한 기억은 아나돗 출신 제사장들에게는 누구보다도 생생했다.

 

다윗 왕 때로 거슬러 올라가 보자. 그 때 아비아달이란 사람은 사독과 함께 제사장 가문의 양축을 담당했다. 그런데 솔로몬의 왕위계승 전쟁 중에 아비아달은 솔로몬의 적인 아도니야 편에 서게 된다. 결국 솔로몬이 왕이 되면서 아비아달은 고향 아나돗으로 쫒겨난다. 이 아비아달은 다름 아닌 실로 성소의 대제사장이었던 엘리의 후손이었다. 그리고 예레미야 선지자는 바로 아나돗 제사장 힐기야의 아들이었던 것이다. 아나돗에게 자란 예레미야는 실로가 무너진 이유를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 하나님의 언약궤가 그곳에 있었지만 백성들이 하나님의 뜻과 상관없이 살아갔기에 실로가 멸망한 것임을 그는 잘 알고있었다. 예레미야에게는 지금 예루살렘 백성들의 상태가 실로의 멸망할 때 상황과 별반 다르지 않았던 것이다.

 

유다 백성들이 그들의 잘못된 삶의 방식을 바꾸지 못한 이유는 아이러니하게도 바로 성전에 있었다. ‘하나님이 거하시는 여호와의 집이 있으니 우리가 이 성전에서 제사 드리면 우리는 안전하다’라고 그들은 생각했던 것이다. 그러나 성전이야말로 그들의 회개와 변화를 가로 막았던 근본 원인이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잘못된 신앙을 무너뜨리기 위해 성전을 무너뜨려야 했다. 하나님께서 유다 백성들에게 요구하신 것은 성전 안에서의 제사만이 아니라 성전 밖 일상의 삶에서의 신실함이었다.

 

렘 7:3,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너희 길과 행위를 바르게 하라 그리하면 내가 너희로 이 곳에 살게 하리라” 그들의 길과 행위를 바르게 하는 것은 무엇일까? 그 내용이 5절 이하에 나온다. 렘 7:5-7, “너희가 만일 길과 행위를 참으로 바르게 하여 이웃들 사이에 정의를 행하며 [6] 이방인과 고아와 과부를 압제하지 아니하며 무죄한 자의 피를 이 곳에서 흘리지 아니하며 다른 신들 뒤를 따라 화를 자초하지 아니하면 [7] 내가 너희를 이 곳에 살게 하리니 곧 너희 조상에게 영원무궁토록 준 땅에니라”

 

하나님께서는 예레미야를 통해 백성들이 회개할 기회를 주셨다. 너희 길과 행위를 바르게 하면 이곳에 영원히 살게 하겠다는 약속이었다. 길과 행위를 바르게 한다는 것은 지금 나와 함께 살아가고 있는 가난한 이웃들을 돌아보는 것이었다. 당시 이스라엘 땅에는 전쟁이 많았기에 고아와 과부들이 종종 발생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성전 안에서 제사만 잘 드리라고 하지 않으셨다. 성전 밖에서 달리 도움을 청할 길이 없는 가난한 이웃들도 돌보는 적극적인 정의를 행하라고 하셨다. 예레미야의 입장에서는 다른 우상을 섬기는 것과 가난한 이웃을 돌보지 않는 삶 모두 하나님과 상관없이 사는 삶의 결과였던 것이다. 예레미야의 성전설교의 결론은 성전 안에서의 신앙에 안주하지 말라는 것이다. 오히려 성전 밖에서 이웃들 사이에 정의를 행하고, 이방인과 고아와 과부를 압제하지 말고, 무죄한 자의 피를 흘리지 않으며, 세상 사람들처럼 우상을 섬기지 말라는 것이다.

 

여러분 신앙의 중심은 지금 어디에 기초하고 있는가? 단순히 십일조를 하고 주일성수한다고 해서 하나님이 나를 안전하게 지켜주실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지는 않는가? 그러나 그것은 과거 이스라엘 백성들이 성전에 대해 가졌던 맹목적인 신앙과 다름없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성전 밖에서도 삶의 예배자로 살아가길 원하신다. 그러기 위해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잘못된 중심을 옮기실 때가 있다. 하나님은 당시 백성들이 중심이라고 생각했던 실로를 무너뜨리셨고, 예루살렘 성전도 무너뜨리셨다. 잘못된 중심이 허물어져야 사람들은 비로소 바른 중심을 찾게 된다. 우리의 신앙 중심이 바른 기초 위에 세워지게 되길 바란다. 우리의 삶의 중심이 내가 바라는 풍요로운 삶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 위에 세워지길 바란다. 그렇게 세워진 중심은 아무도 흔들 수 없다. 우리의 중심이 하나님 안에 있기에 하나님께서 흔드시지 않아도 되는 사람들이 되길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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