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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 문화일보 신춘문예 동화 당선작] 다령이가 말한 하늘 / 김용준
다령이가 말한 하늘 / 김용준
이사하던 날 엄마는 제게 미안하다고 했습니다. 전 괜찮았습니다. 한 달 정도 지나면 어디든 익숙해집니다. 엄마는 저를 안고 미안하다 말할 때가 많았습니다. 처녀보살인 엄마가 나를 낳아서 내가 대신 벌을 받는 거라며. 전 앞이 보이지 않는 것을 벌이라고 생각해본 적이 없습니다. 처음부터 갖지 않았던 것이 없다고 불편함을 느끼는 사람은 없으니까요. 가끔 하늘이 어떻게 생겼는지 보고 싶을 때가 있을 뿐입니다. 끝없는 하늘, 끝이 없다는 게 무슨 의미일까. 제가 열두 살이 된 지금, 엄마가 저를 안아 줄 때 전에 없던 뱃살이 저를 밀어내지만, 엄마는 여전히 처녀보살이라고 불립니다.
“요즘은 사람들이 점을 잘 안 봐. 단골들도 싼 부적만 찾고.”
이사 온 집은 경사진 곳에 있었습니다. 좁은 대문으로 들어간 다음 계단을 밟고 아래로 내려가야 합니다. 집 위쪽으로는 골목이 있는데 골목을 따라 담이 길게 이어져 있었습니다. 담은 제 지팡이를 펴서 두드려야 끝이 만져질 정도로 높았습니다. 담 너머에 뭐가 있는지는 주일에 알 수 있었습니다. 제 방 창으로 찬송가 부르는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오전에는 아줌마와 아저씨, 한낮에는 형과 누나, 그리고 저녁에는 아이들 목소리로 바뀌었지만, 부르는 노래는 대부분 같았습니다. 엄마는 점집 옆에 교회가 있다며 투덜거렸습니다.
“그놈의 부동산 여편네! 담 너머에 청소년 쉼터 짓는 거라더니. 교회 옆에 점집 차린 년은 나밖에 없을 거다.”
2년 전부터 공터였던 곳에 지은 교회가 이제야 완성된 거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이사한 뒤에야 십자가가 올려졌다며 엄마는 넋두리했습니다.
엄마는 안방에서 손님을 맞고 있었습니다. 특히 주말에 손님이 많았습니다. 엄마가 일할 때면 전 되도록 방에서 나가지 않았습니다. 방에 혼자 있는데 교회에서 찬송가 부르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남자아이들이 같은 노래를 반복해서 불렀습니다. 성가대가 연습하나? 자세히 들어보니 여자아이 목소리가 하나 섞여 있었습니다. 희미하게 들리던 그 목소리는 어느새 제 귓속에서 다른 목소리를 주변으로 밀어내고 한가운데를 차지했습니다. 피아노 높은음 건반을 누를 때 나는 것처럼 맑고 깨끗한 소리였습니다. 휴대전화에 저장해서 계속 듣고 싶었습니다.
전 조용히 밖으로 나갔습니다. 새로 이사 온 동네라 아주 천천히 걸어야 했지만, 멀리 가지 않을 거니 괜찮았습니다. 지팡이로 담과 땅을 번갈아 짚으며 걸었습니다. 마침내 담이 끝나고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풀냄새가 나고 바닥이 조금씩 꺼졌습니다. 잔디를 밟고 있는 것 같습니다. 노랫소리가 들려오는 곳을 향해 천천히 걸었습니다.
“얘! 너 어디 가니?”
어떤 아저씨 목소리였습니다. 전 소리가 나는 곳을 향해 몸을 돌렸습니다.
“저, 저도 성가대에 들어가려고요.”
잠시 말이 없었습니다. 저를 향해 다가오는 발걸음 소리와 비닐 봉투 스치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팔을 대주는 게 편하니?”
“아, 네.”
부드럽게 물어본 아저씨는 이 교회 목사님이었습니다. 목사님이 절 처음 봤다고 해서 이사 온 지 얼마 되지 않았다고 대답했습니다. 찬송가 부르는 소리가 점점 가깝게 들렸습니다. 목사님은 계단을 오르고 방향을 바꿀 때마다 생김새며 모양을 하나하나 이야기해주었습니다. 어느덧 찬송가 소리가 크게 들리는 곳 앞에 이르렀습니다.
‘똑똑똑’
목사님은 한 차례 문을 두드리고 바로 열었습니다.
“와, 아이스크림!”
노래가 그치고 우르르 발소리가 났습니다. 비닐 봉투를 뒤적이며 아이들이 떠드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목사님은 안쪽으로 저를 데려가 자리에 앉혀 주셨습니다. 목사님은 새로 온 친구가 자기 소개 할 거라고 큰 소리로 말했습니다. 저는 자리에서 일어났습니다.
“6학년 현광채입니다. 반갑습니다.”
“광채야, 혹시 아는 찬송가 있으면 한 곡 불러줄래?”
초콜릿, 딸기, 수박, 여러 가지 냄새가 가득했습니다. 전 주말마다 교회에서 들려왔던 노래를 불렀습니다. 제가 노래하는데 갑자기 따라 부르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그 여자아이 목소리였습니다. 전 귀가 예민한데 그 아이는 음정이 낮아지거나 높아지는 일 없이 정확하게 음을 맞췄습니다. 우리는 노래 한 곡을 끝냈습니다.
“우와!”
아이들이 큰소리로 손뼉을 쳤습니다.
“광채야 대단하다!”
목사님이 칭찬하고, 아이들이 환호했지만, 전 그 여자아이가 어디 있는지 궁금할 뿐이었습니다. 성가대가 다시 연습을 시작했습니다. 남자아이들 목소리만 들렸습니다. 전 제가 모르는 사이 여자아이가 집으로 갔나 생각했습니다. 그때였습니다. 제 바로 뒤에서 그 아이가 노래했습니다. 제가 가장 뒷자리에 앉은 줄 알았는데 아니었습니다. 가까이서 들으니 그 아이 목소리는 더 맑고 시원했습니다. 사이다를 마셨을 때 혀에서 목구멍으로 퍼지는 느낌과 비슷하다고 할까요. 입안에서 오렌지 알갱이가 터질 때 콧속을 가득 채우는 향기와도 같았습니다. 같이 노래하는 동안 마음이 탁 트이는 기분이었습니다.
찬송가 연습이 끝났습니다.
“다음 주에도 늦지 말고.”
목사님이 말을 마치자 아이들이 일어나 나가는 소리가 났습니다. 몇몇 아이는 남아 떠들었습니다. 목사님이 저를 향해 걸어오는지 구두 발걸음 소리가 났습니다.
“광채야 너 혹시 MP3 있니? 내일 예배 때 가져오면 외울 노래 넣어줄게.”
“제목 알려주시면 인터넷으로 찾아서 들을게요.”
“집에는 어떻게 가니?”
“교회 담 너머라 금방 가요. 걱정하지 마세요.”
목사님은 노래 제목 몇 곡을 알려준 다음 제 머리를 쓰다듬어 주고 나갔습니다. 남아 있던 아이들 몇이 제 곁으로 와서 이것저것 물어보았습니다. 정말 궁금한 건 제가 앞이 하나도 보이지 않는지, 언제부터 그랬는지 따위일 텐데, 학교는 어디 다니는지, 교회 다닌 적은 있는지, 그런 것들만 물어보았습니다. 저는 자세하게 대답해주었고, 이내 저에게 흥미를 잃은 아이들은 인사하고 연습실을 나갔습니다. 전 옆에 있던 아이가 일어설 때 용기 내어 물었습니다.
“여자애는 갔니?”
“여자애? 성가대에 여자 없어. 내가 우리 반 여자애한테 같이 가자고 했는데 남자애들만 있어서 싫다더라. 너 안 가?”
전 조금만 앉아 있다가 가겠다고 대답했습니다. 그 아이는 문 쪽으로 걸어가다 서서 저를 향해 말했습니다.
“이쪽으로 나가서 왼쪽으로 가면 돼. 계단 조심하고.”
“그래. 고마워.”
전 잠시 앉아 있었습니다. 벽에 걸린 시계의 바늘이 움직이는 소리만 들립니다. 모두 간 걸까요?
“얘!”
곁에서 누가 저를 불렀습니다.
“난 다령이야. 너 노래 정말 잘하더라.”
바로 그 아이였습니다. 전 놀란 마음을 들키지 않으려고 애썼습니다.
“다영?”
“리엉.”
“아, 령. 다령이구나.”
다령이라고 하니 여자아이가 맞을 겁니다. 가끔 남자아이 중에 목소리가 여자처럼 나는 애들도 있습니다. 그런 아이들은 말하는 걸 좀 들어야 여자인지 남자인지 확실히 알 수 있습니다. 다령이는 노래할 때와 말할 때 목소리가 같았습니다. 입안에 젤리를 넣고 우물거릴 때처럼 다령이 목소리는 제 귀를 울렸습니다.
“난 이 동네 이사 온 지 얼마 안 됐어.”
“난 여기서 태어났어. 한 번도 떠난 적 없지.”
저와 다령이는 한동안 이야기했습니다. 다령이 목소리를 듣는 것만으로 가슴이 떨렸습니다. 손끝을 심장에 대고 만지는 것처럼 두근거림이 느껴졌습니다. 떨림이 등을 타고 목 위로 올라와 얼굴이 후끈합니다. 불안할 때도 비슷한 기분이 들지만, 지금은 좋은 느낌이 마음에 가득합니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는지 알 수 없었습니다. 품속에서 휴대전화가 울렸습니다.
“다령아 내일 예배 때 보자.”
전 한쪽 손을 들었다 내렸습니다. 다령이는 아쉬워했습니다.
“너 가야 해?”
“응. 엄마가 찾나 봐.”
“그래. 내일 예배 때 와.”
전 일어서서 지팡이를 폈습니다.
교회를 나와 천천히 집으로 향했습니다. 대문 근처에 이르자 제 지팡이 소리를 들었는지 엄마가 나왔습니다.
“광채야, 문자만 남기고 어딜 갔다 와?”
“손님은 다 갔어요? 요 옆에 교회 잠깐.”
“처녀보살 아들이 교회는 왜?”
“한번 가보고 싶었어요.”
엄마는 잠시 말이 없었습니다. 저를 살피는 것 같았습니다.
“그래, 엄마는 너의 종교를 존중한다. 앞으로는 갈 땐 엄마한테 말하고.”
엄마는 제 손을 잡아 자기 팔 위에 얹었습니다. 저는 엄마와 함께 조심조심 계단을 밟고 내려갔습니다.
다음 날 일요일 예배에 갔습니다. 전날 밤에 엄마가 인터넷으로 음악을 받아주어서 찬송가도 외웠습니다. 엄마는 처녀보살이 찬송가 다운받고 있다며 투덜대긴 했습니다. 들어간 지 하루밖에 되지 않아서 예배 때 성가대 자리에 앉아 찬송가를 부르지는 못했습니다. 전 성가대 근처에 앉아 다령이가 노래하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예배 뒤 성가대 연습도 마쳤습니다. 전 연습실에 남아서 다령이와 이야기했습니다. 다령이가 저에게 가장 보고 싶은 게 뭐냐고 물었습니다. 전 하늘이라고 말했습니다. 속으론 너. 네 얼굴.
“하늘? 그냥 휑해. 넓기만 하고.”
다령이는 하늘에 별거 없다고 했습니다. 끝없는 공간에 가끔 솜사탕 같은 구름이 떠다닐 뿐이라고 했습니다. 밤에는 시커먼 하늘에 별이 반짝이는데 하늘 위에 사는 천사들이 구멍 뚫고 내려다보는 것 같다고 했습니다.
“천사들이 왜?”
“나를 데려가려고.”
그리고 낮에 보이는 하늘은 파란색, 다령이는 잠시 말이 없었습니다. 전 어떤 파란색이냐고 물었습니다. 다령이는 교회 종소리가 멀리 퍼져나가는 느낌 같다고 했습니다.
“바다도 파란색이지 않아?”
다령이는 바다가 내는 파란색은 레몬을 씹었을 때 신맛, 그 신맛이 지나간 다음 입속에 남는 시원함 같다고 했습니다. 다령이 이야기를 듣고 있으면 손으로 만져야 알 수 있던 세상이 가슴 속에 들어오는 느낌이었습니다. 전 다령이 얼굴을 만져보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함부로 손을 댈 수는 없는 일입니다. 다령이 목소리를 듣는 것으로 만족했습니다.
주말을 기다리는 게 저의 일상이 됐습니다. 교회에 가지 않을 때도 다령이와 이야기하고 싶었지만, 다령이는 휴대전화가 없었습니다. 하루는 교회에 가려는데 엄마가 다가와 제 손을 잡고 말했습니다.
“우리 아들 얼굴이 왜 이리 수척하지?”
그날도 성가대 연습이 끝나고 전 다령이와 연습실에 남아 이야기했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가수, 다령이가 좋아하는 노래. 제가 재미없는 이야기를 해도 다령이는 소리 내어 웃어주었습니다. 다령이와 같이 있으면 시간이 빨리 흘렀습니다. 시간이 그렇게 오래 지났는지 몰랐습니다. 누군가 연습실 안으로 들어왔습니다.
“광채야, 어머님 오셨다.”
목사님 목소리였습니다.
“광채야!”
당황한 엄마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엄마는 제 쪽으로 와 다짜고짜 저를 일으켰습니다.
“어, 엄마.”
제가 뭔가 잘못했나요? 평소 제게 팔을 내주던 때와 달리, 엄마는 제 팔을 잡아 저를 끌고 나갔습니다. 제가 교회에 너무 빠진 것 같아서 엄마 기분이 상한 걸까요?
평소 저를 들이지 않던 안방으로 엄마는 저를 데려갔습니다. 향냄새가 코를 찔렀습니다. 엄마는 누구와 함께 있었느냐고 물었습니다. 전 다령이에 관해 이야기했습니다. 엄마가 제 손을 꼭 잡았습니다.
“광채야, 지금부터 엄마가 하는 말 잘 들어. 너한테…….”
엄마는 저에게 귀신이 붙었다고 했습니다. 얼굴이 허물어지고 팔과 다리가 없는. 엄마는 저에게 다시는 교회에 가면 안 된다고 했습니다. 이대로 가다간 제가 죽을 거라고 했습니다.
다음 날 전 방에 누워 있었습니다. 주말이 아닌데 교회에서 노래 부르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다령이가 혼자 찬송가를 부르고 있었습니다. 엄마는 안방에서 손님을 맞고 있었습니다. 전 조용히 교회로 갔습니다. 교회 마당에 들어섰을 때 목사님이 저를 부르는 소리가 났습니다. 전 목사님에게 물었습니다.
“목사님 혹시 전에 여기서 죽은 사람 있어요?”
목사님은 교회가 세워지기 전 그곳에 있던 청소년 쉼터에 큰불이 났었다고 했습니다. 그때 여자아이 하나가 죽었다고 했습니다. 전 찬송가 연습을 하러 왔다고 목사님에게 말했습니다. 제가 성가대 연습실로 들어가자 다령이가 노래를 멈췄습니다.
“왜 이제 왔어?”
전 다령이 옆으로 가 앉았습니다. 다령이가 어떻게 생겼는지는 제게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예쁘든, 못생겼든, 팔이 없든, 다리가 없든, 다령이 목소리를 듣는 게 좋았습니다. 다령이와 함께 있는 게 행복했습니다. 다령이도 그렇게 느끼는 걸 알 수 있었습니다. 좋아하는 아이와 친구가 된다는 건 정말……. 그때 연습실 문 열리는 소리가 났습니다.
“광채야!”
제가 혼자 말하는 모습을 보고 목사님이 엄마를 불렀다는 사실은 나중에 알았습니다. 엄마는 교회에서 굿을 해야겠다고 소리쳤습니다. 저에게 교회에 살던 귀신이 들러붙었다며 목사님을 탓했습니다. 목사님은 교회에서 굿은 안 된다고 했습니다. 다른 사람 같으면 엄마를 이상한 사람 취급 했을지도 모르지만, 목사님은 부드럽게 엄마를 이해시켰습니다.
엄마는 제 어깨를 감싸고 저를 집으로 데려갔습니다. 집으로 가는 동안에도 교회에서 다령이가 부르는 찬송가 소리가 계속 들렸습니다. 집 안에 들어가자마자 엄마는 손님들에게 사과하며 다음에 와달라고 했습니다. 엄마는 교회 담 골목 아래로 몇 차례 무언가를 날랐습니다. 알고 보니 담 아래 굿판을 차린 거였습니다. 엄마는 저를 담 옆에 무릎 꿇리고 굿을 시작했습니다.
“천지신명께서 오신다. 워허이, 잡귀야 물렀거라!”
엄마가 굿을 시작함과 동시에 교회 안에서 찬송가를 부르던 다령이 목소리가 점점 가까워졌습니다. 그럴수록 주위가 뜨거워지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집 앞까지 와서 들리던 노랫소리가 갑자기 멈췄습니다. 얼굴이 뜨거워졌습니다. 제 바로 앞에서 다령이 목소리가 났습니다.
“왜 나를 보내려는 거야?”
엄마가 한 시간 동안 굿을 하면서 뜨거운 느낌이 조금씩 사라졌습니다. 교회가 쉬는 월요일이어서 다행이었습니다. 일요일에 교회 옆에서 굿을 했다면 교회 신도들과 큰 싸움이 났을지도 모릅니다. 목사님이 와서 말리려고 했지만, 엄마는 굿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불길이 사라졌는데도 왜 떠나질 않는 거냐?”
다령이는 우는 목소리로 저에게 말했습니다.
“광채야. 너도 내가 갔으면 좋겠어?”
엄마가 굿하는 통에 거의 쓰러졌던 저는 가까스로 정신을 차렸습니다. 저는 다령이가 떠나는 게 싫었습니다. 그 목소리 그대로 제 곁에 남아주길 바랐습니다.
“가지 마.”
제 말을 들은 엄마가 소리쳤습니다.
“광채야, 정신 차려! 귀신은 스스로 거부해야 쫓아낼 수 있어!”
엄마가 무슨 말을 해도 전 다령이를 보내고 싶지 않았습니다.
“가지 마. 난 네가 가지 않았으면 좋겠어.”
잠시 적막이 흘렀습니다. 조금 뒤 차분해진 다령이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고마워.”
무언가 제 얼굴을 건드렸습니다. 다령이 손길. 차가운 느낌이 났지만, 부드러웠습니다. 순간 제 몸을 감싸고 있던 무거운 느낌이 한순간에 사라졌습니다. 머리가 상쾌해졌지만, 가슴 속 깊은 곳은 슬펐습니다.
“성불하는구나!”
엄마가 소리쳤습니다. 엄마가 가라고 할 땐 그토록 안 갔던 다령이가, 왜 가지 말라는 제 말을 듣고 가려는지 알 수 없었습니다.
그때 제 얼굴 쪽, 눈이 있어야 할 자리에 이상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아무것도 없던 세상이 알 수 없는 것들로 가득 찼습니다. 머리부터 코끝까지 온통 찌릿했습니다. 제 앞에 무언가 있었습니다. 전 그게 사람 모습이라는 걸 알 수 있었습니다. 그 모습에서 얼굴을 찾았습니다. 다령이는 무섭지 않았습니다. 얼굴이 허물어진 것도 몸이 불편한 것도 저에게는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아프진 않았니. 제 눈가를 시리게 하는 새하얀 것이 다령이를 온통 휘감았습니다. 다령이는 천천히 떠올라 끝이 보이지 않는 하늘을 향해 갔습니다. 어느덧 다령이는 먼 하늘 속으로 사라졌습니다. 다령이가 떠난 뒤 모든 것이 원래대로 돌아갔지만, 기억납니다. 하늘은 다령이가 말했던 것처럼 넓고 파란빛이었습니다.
<당선소감> 누가 읽더라도 마음에 닿는 글 쓰는 작가 될 것
기대하지 못한 당선 소식을 전해 듣고 뛸 듯이 기뻤습니다. 얼떨떨한 기분도 잠시, 작가에게 새로운 길을 열어주기 위해 애쓰셨을 신춘문예 담당자 여러분과 심사위원님께 감사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저는 컴퓨터 프로그래밍과 관련된 일을 하다가 몇 년 전 대학원에 진학해 글쓰기를 공부했습니다. 전공인 소설과 드라마 분야보다 더 관심이 갔던 것은 동화였습니다. 누구라도 편하게 읽을 수 있는 글이 동화인 것 같았습니다. 한때 어린이 과학 잡지에 만화 시나리오를 쓴 적이 있어서인지 저의 글은 묘사보다는 이야기 진행에만 급급한 때가 많았습니다. ‘다령이가 말한 하늘’을 통해서 저는 보이는 것에만 치우쳤던 묘사 방식을 풍부히 하고자 노력했습니다. 시각장애 아동의 교육에 관해 알아보면서 냄새와 소리, 손끝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아이들의 기분을 조금이나마 느낄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앞이 보이지 않으면 어둠뿐일 거라던 저의 생각은 틀렸습니다. 시각장애 아동들도 다른 감각으로 똑같이 세상을 느끼고 있었습니다. 앞으로 누가 읽더라도 마음에 닿는 글을 쓰는 작가가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어머니와 누나, 선생님과 선후배, 동기 여러분, 친구 민국과 정욱, 시덕, 규석, 윤기, 동생 필경, 여자 친구 보연에게 깊은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 1976년 서울 출생 .
● 중앙대 예술대학원 문학예술학과 졸업.
<심사평>서로 이해·배려하는 전통무속 - 현대종교… 설정·반전 ‘눈길’
문화일보 신춘문예 동화 부문은 50매 내외의 원고를 공모하는데, 30매 내외인 다른 신문에 비해 운동장이 넓은 셈이다. 올해는 290편이 응모한 가운데 많이 다듬은 작품들이 눈에 띄었지만 기대하던 패기와 신선함은 덜한 편이었다.
유행의 반영인지 고양이를 소재로 한 작품이 너무 많았다. 독자가 좋아하는 소재를 쓴다고 독자가 좋아하는 이야기가 되는 것은 아니다. 다문화가족, 따돌림, 옛이야기의 변주, 가상현실이나 증강현실을 응용한 SF 등도 흔한 소재들이다.
본심에서 논의한 작품은 ‘엉망진창 내 인생’ ‘안개 속 여행자’ ‘다령이가 말한 하늘’이다. ‘엉망진창 내 인생’은 가난한 데다 사이마저 나쁜 아버지와 내가 미래에서 온 또 다른 나인 ‘형’의 도움으로 위기를 극복하고 관계를 회복하는 내용으로 곳곳에 흥미로운 설정이 돋보였지만 전체적으로 거친 느낌이었고 설정이 조금 더 정교했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았다.
‘안개 속 여행자’는 스마트폰 앱과 비형랑 설화를 결합하여 아빠의 제삿날에 젊은 아빠를 만나게 되는 구성이 좋았다. 작품 전반에 걸쳐 안개처럼 몽환적인 분위기가 독특했는데 독자만 알 수 있도록 아빠의 존재를 마지막까지 옅은 안개 속에 두었으면 처음 느낌을 끝까지 가져갈 수 있었을 것이다. ‘다령이가 말한 하늘’은 처녀보살의 아들이며 앞을 보지 못하는 주인공 ‘광채’가 가까운 교회의 성가대원이 되면서 펼쳐지는 이야기가 재미있었다. 목소리가 아름다운 소녀인 다령이와 광채가 친해졌다가 헤어지는 가슴 뛰는 과정에 놀라운 반전도 눈길을 끌었다. 대립하기 쉬운 전통 무속과 현대 종교가 사람을 중심으로 서로 이해하고 배려하는 설정이 좋았다. 독자를 의식한 듯한 문체가 걸리긴 했지만 작품의 감동을 크게 해칠 정도는 아니어서 무리 없이 당선작으로 선정할 수 있었다. 당선자에게 축하를 보내며 사랑과 사람이 우선하는 동화로 향후 우리 아동문학의 지평을 넓혀주길 기대한다.
심사위원 : 김서정, 김남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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