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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은 자 비유

누가복음 이정원 목사............... 조회 수 318 추천 수 0 2019.03.28 21:58: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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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눅15:1-14 
설교자 : 이정원 목사 
참고 : 2018.7.22 주일 희망의교회 http://hopech.kr 

잃은 자 비유

눅15:1-14

 

하나님께서 사람을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하시고 세상을 다스리게 하셨습니다. 그래서 사람은 존귀하고 복된 존재가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하신 사람을 매우 기뻐하셨습니다. 사람은 하나님의 창조의 면류관이며, 하나님의 동역자이고, 하나님의 자녀였습니다. 그런데 사람은 범죄하고 타락하여 하나님을 떠나갔습니다. 그 후로 사람은 끊임없이 하나님을 거역하고 범죄하여 하나님의 진노와 심판을 받을 수밖에 없는 소망 없는 존재가 되고 말았습니다.


범죄하고 하나님을 떠나가자 존귀한 하나님의 자녀, 하나님의 동역자, 하나님의 종이었던 사람은 아무 소망도 없는 비참한 처지가 되고 말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하나님을 떠나가 비참하고 소망 없게 된 사람을 불쌍히 여기시고 구원하기 원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잃어버린 죄인들을 구원하시기 위해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시고 십자가에 내어 주시기까지 하셨습니다. 하나님을 떠나 소망 없게 된 사람의 처지와, 이러한 죄인들을 불쌍히 여기사 구원하시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잘 나타내는 것이 바로 본문에 기록된 세 가지 잃은 자 비유입니다.

 

이 비유들을 말씀하신 동기


누가는 15장에서 잃은 양 비유, 잃은 드라크마 비유, 그리고 잃은 아들(탕자) 비유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누가는 예수님께서 이 세 가지 비유를 말씀하신 동기를 이렇게 기록했습니다. “모든 세리와 죄인들이 말씀을 들으러 가까이 나아오니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 수군거려 이르되 이 사람이 죄인을 영접하고 음식을 같이 먹는다 하더라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 비유로 이르시되”(1-3절)


‘모든 세리와 죄인들’이 예수님 말씀을 들으러 나왔습니다. 우리가 잘 아는 대로 세리는 로마의 앞잡이, 민족의 반역자, 매국노라는 비난을 듣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죄인들은 당시 바리새인들의 유전과 전통을 제대로 지키지 못하여 바리새인들에게 정죄와 멸시를 당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바리새인들은 세리와 죄인들은 절대로 구원을 받을 수 없다고 생각했고, 그들을 부정하게 여겨 상종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런데 많은 세리와 죄인들이 예수님의 말씀을 듣기 위해 몰려들었습니다. 그러자 그 자리에 있던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 매우 불쾌해하며 예수님을 비난했습니다. “이 사람이 죄인을 영접하고 음식을 같이 먹는다.”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은 예수님께서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어울리시며 식사하시는 것을 비난하며 예수님을 ‘이 사람’이라 불렀습니다. 세리와 죄인들을 가까이 하신다고 하여 예수님까지도 경멸하며 죄인으로 몰아세우려고 했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러한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의 태도와 비난에 대한 대답으로 이 비유들을 말씀하셨습니다.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이 세리와 죄인들을 경멸하고 비난하자, 이 비유들을 통해 그들을 변호해주셨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세리와 죄인들을 잃어버린 하나님의 양, 집을 나간 아들로 보셨습니다. 이 비유를 통해 예수님께서는 하나님 아버지께서 세리와 죄인들을 불쌍히 여기시며, 그들이 하나님께로 돌아와 구원받기를 간절히 원하신다는 것을 가르쳐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세리와 죄인들을 불쌍히 여기시고 영접해주셨습니다. 세리였던 마태를 불러 제자로 삼으셨으며, 세리였던 삭개오의 집에 가셔서 천국 복음을 들려주셨고 구원해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사회에서 지탄받고 소외당하던 그들을 불쌍히 여겨주셨으며, 그들도 구원받아야 할 하나님의 자녀로 보셨습니다. 이 비유들은 우리를 위한 말씀이며, 우리에 대한 말씀이기도 합니다.

 

잃은 자 비유


누가복음 15장에 기록되어 있는 세 가지 잃은 자 비유는 같은 메시지를 담고 있지만 차이점도 있습니다. 특히 이 세 비유는 우리를 구원하시는 삼위 하나님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성경은 삼위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하신 일을 구분해서 기록하고 있습니다.


성부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택하시고 예정하셨습니다. “찬송하리로다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을 우리에게 주시되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엡1:3-5)


성자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서 피 흘려 죽으심으로 우리 죄를 대속하셨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은혜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피로 말미암아 속량 곧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엡1:7)


성령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복음을 듣고 믿어 구원을 받게 하셨습니다. “그 안에서 너희도 진리의 말씀 곧 너희의 구원의 복음을 듣고 그 안에서 또한 믿어 약속의 성령으로 인치심을 받았으니”(엡1:13)


‘잃은 양을 찾은 목자 비유’에는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고난당하신 성자 예수님의 모습이 나타나 있습니다. 목자는 잃어버린 양을 찾기 위해 사방을 찾아다니며 가시에 찢기고 고난을 당합니다. 신학자들은 ‘잃은 드라크마를 찾은 여인 비유’에서 등불을 들고 은전을 찾는 여인이 성령을 상징한다고 해석합니다. ‘잃은 아들을 되찾은 아버지 비유’에서 아버지가 성부 하나님을 나타낸다는 것은 누구나 쉽게 알 수 있습니다.


삼위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이렇게 함께 하셨습니다. 삼위 하나님께는 우리를 구원하시는 일을 가장 크고 중요하게 여기십니다. 그리고 여기에 천사들이 동원되어 쓰임을 받습니다. 놀라운 것은 이 엄청난 구원의 역사에서 잃어버린 죄인들에게 직접 복음 전하는 일은 우리에게 맡겨졌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복음을 전하여 한 영혼이 돌아올 때, 하나님께서는 천사들과 함께 크게 기뻐하십니다.


이 세 가지 비유에는 ‘잃은’이라는 말이 8번, ‘찾은’이라는 말이 6번 나옵니다. 이 세 비유의 핵심은 ‘잃은 양’이나 ‘잃은 드라크마’ ‘잃은 아들’에게 있지 않고, ‘잃은 자를 찾으시는 하나님’께 있습니다. 자비와 긍휼이 무궁하신 하나님께서는 잃은 자들이 돌아오기를 간절히 기다리시며, 그들을 찾으셨을 때 한없는 기쁨으로 기뻐하십니다. 이 비유들은 우리의 구원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이며, 인간의 노력과 공로에 달려 있지 않다는 것을 잘 보여줍니다.


잃은 양을 찾은 목자 비유


첫 번째 비유의 정확한 명칭은 ‘잃은 양 비유’가 아니라 ‘잃은 양을 찾은 목자 비유’입니다. 이 말은 이 비유의 초점이 잃은 양에게 있지 않고, 잃은 양을 찾은 목자에게 있다는 의미입니다.


팔레스타인에서 목자는 자기가 돌보는 양을 한 마리 한 마리 다 압니다. 숫자가 많아도 하나하나가 다 소중합니다. 목자는 저녁에 양을 우리에 몰아넣을 때 수를 세어보며 체크합니다. 만일 한 마리라도 없으면 목자는 즉시 알아차립니다. 그리고 사방을 돌아다니며 양을 찾습니다. 그냥 두면 맹수에게 잡아먹히거나 낭떠러지에 떨어져 죽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어느 목자에게 양 백 마리가 있었는데, 그 중 하나를 잃어버렸습니다. 목자는 양 아흔아홉 마리를 들에 두고 잃어버린 양을 찾아 나섭니다. 천신만고 끝에 잃어버린 양을 찾은 목자는 양을 어깨에 메고 돌아와 친구들과 이웃들을 불러 함께 잔치를 즐기며 기뻐했습니다.


“너희 중에 어떤 사람이 양 백 마리가 있는데 그 중의 하나를 잃으면 아흔아홉 마리를 들에 두고 그 잃은 것을 찾아내기까지 찾아다니지 아니하겠느냐 또 찾아낸즉 즐거워 어깨에 메고 집에 와서 그 벗과 이웃을 불러 모으고 말하되 나와 함께 즐기자 나의 잃은 양을 찾아내었노라 하리라”(4-6절)


잃어버린 양은 하나님을 떠나 타락한 세상에서 방황하는 죄인들을 가리킵니다. 우리는 다 하나님을 거역하고 제 멋대로 범죄하여 영원히 멸망을 당하게 되었습니다. 잃어버린 한 마리의 양을 찾아 헤매는 목자의 모습은 성자 하나님이신 예수님의 사역을 나타냅니다. 성자 예수님께서는 잃은 자를 찾기 위해 온 산과 계곡과 들을 찾아 헤매는 수고를 아끼지 않으셨으며, 그 양을 찾기 위해 기꺼이 고난을 당하셨습니다.


성자 예수님께서는 잃어버린 양 같은 우리를 찾아 구원하시려고 세상에 오셨습니다. 우리의 목자이신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고난당하시고 목숨을 버리셨습니다.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며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모두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사53:5-6)


잃어버린 양을 찾아 나선 목자는 산과 들을 헤매다가 결국 양을 찾았습니다. 양을 찾은 목자는 잃어버렸던 양을 꾸짖거나 벌하지 않았습니다. 그 양을 찾기 위해 고생한 것에 대해 불평하지도 않았습니다. 오히려 크게 기뻐하여 양을 어깨에 메고 돌아왔습니다. 목자는 죽은 줄만 알았던 양을 다시 찾았으므로 이웃과 친구들을 불러 잔치를 열고 함께 즐거워했습니다. “또 찾아낸즉 즐거워 어깨에 메고 집에 와서 그 벗과 이웃을 불러 모으고 말하되 나와 함께 즐기자 나의 잃은 양을 찾아내었노라 하리라”(5-6절)


죄인 한 사람이 회개하고 하나님께로 돌아올 때 하나님께서는 그렇게 기뻐하십니다. 스바냐는 하나님의 이 사랑을 이렇게 기록했습니다.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너의 가운데에 계시니 그는 구원을 베푸실 전능자이시라 그가 너로 말미암아 기쁨을 이기지 못하시며 너를 잠잠히 사랑하시며 너로 말미암아 즐거이 부르며 기뻐하시리라 하리라”(습3:17)

 

잃은 드라크마를 찾은 여인 비유


예수님께서는 비슷한 두 번째 비유를 말씀하셨습니다. “어느 여자가 열 드라크마가 있는데 하나를 잃으면 등불을 켜고 집을 쓸며 찾아내기까지 부지런히 찾지 아니하겠느냐 또 찾아낸즉 벗과 이웃을 불러 모으고 말하되 나와 함께 즐기자 잃은 드라크마를 찾아내었노라 하리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와 같이 죄인 한 사람이 회개하면 하나님의 사자들 앞에 기쁨이 되느니라”(8-10절)


이 비유 역시 ‘잃은 드라크마 비유’가 아니라 ‘잃은 드라크마를 찾은 여인 비유’입니다. 이 비유의 핵심은 잃은 드라크마에 있지 않고, 잃은 드라크마를 찾은 여인에게 있습니다. 앞의 비유에서 ‘잃어버린 양’은 스스로 집을 찾아오지 못합니다. 그래서 목자가 산과 들을 헤매며 그 양을 찾아왔습니다. 그런데 이 비유에 나오는 드라크마는 아예 움직일 줄도 모르는 존재입니다.


하나님을 거역하고 멀리 떠나 영원히 멸망을 당하게 된 죄인이 이와 같습니다. 죄인은 스스로 하나님께로 돌아와 구원받을 아무 능력이 없습니다. 그래서 소망이 없습니다. 그런데 성부 하나님께서 한 영혼을 택하시고, 성자 예수님께서 그 영혼을 구원하시기 위해 십자가에서 피 흘려 죽으셨습니다. 그리고 성령 하나님께서 그 사람의 마음을 여시고 감화하셔서, 복음을 듣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구주로 영접하게 하십니다. 그러면 이 사람은 예수 믿고 구원을 받는 것입니다. 구원받는 데 있어서 인간은 철저하게 무능하여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을 받습니다. 성령의 역사로 믿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등불을 들고 잃어버린 드라크마를 찾는 여인이 성령을 상징한다고 보는 것입니다.

 

열 드라크마


드라크마는 그리스의 은전인데, 노동자의 하루 품삯에 해당합니다. 그러므로 데나리온과 같은 가치를 가졌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 여인은 열 드라크마를 가지고 있었는데, 그것은 결혼할 때 신랑이 준 선물이었습니다. 대개 팔레스타인에서는 결혼할 때 신랑이 신부에게 열 드라크마를 주었는데, 지금 우리의 결혼반지에 해당하는 선물이었다고 합니다. 이 예물은 사랑의 징표였기 때문에 신부는 이 예물을 잃어버리면 안 되었습니다. 신부는 이 드라크마를 잃어버리지 않기 위해 줄에 꿰어서 머리에 장신구로 사용했습니다. 그러므로 열 드라크마는 하나라도 없으면 안 되는 중요한 악세사리의 일부였습니다.


그런데 이 여인은 열 드라크마 중 하나를 잃어버렸습니다. 잃어버린 드라크마는 단순한 한 드라크마가 아니었습니다. 남편이 아내에게 준 선물이었으며, 사랑의 징표였습니다. 은전 열 개를 줄에 꿰어 악세사리로 만들었기 때문에, 잃어버린 드라크마가 없으면 그 선물은 온전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여인은 등불을 켜고 집을 쓸며 찾아낼 때까지 부지런히 찾았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잃어버린 드라크마를 찾았을 때 너무나도 기뻐서 벗과 이웃들을 불러 잔치를 즐기며 기뻐했습니다.


한 드라크마는 노동자의 하루 품삯에 해당되는 돈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한 드라크마를 찾았다고 친구들과 이웃들을 불러 잔치를 열었습니다. 비용을 따진다면 잃어버렸다가 찾은 한 드라크마보다 더 많은 비용이 들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차라리 그 드라크마를 찾지 않는 것이 이익일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 여인에게 잃어버린 드라크마는 돈으로 계산할 수 없을 만큼 귀했습니다. 이것은 한 사람의 영혼을 천하보다 귀하게 여기시는 주님의 마음을 잘 보여줍니다.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자기를 잃든지 빼앗기든지 하면 무엇이 유익하리요”(눅9:25) 주님께서는 한 영혼을 이처럼 귀하게 여기십니다.

 

구원의 기쁨


잃어버린 양을 찾은 목자는 즐거워 그 양을 어깨에 메고 돌아와 친구들과 이웃들을 불러 잔치를 즐기며 기뻐했습니다. “또 찾아낸즉 즐거워 어깨에 메고 집에 와서 그 벗과 이웃을 불러 모으고 말하되 나와 함께 즐기자 나의 잃은 양을 찾아내었노라 하리라”(5-6절) 잃어버린 드라크마를 찾은 여인도 벗들과 이웃들을 불러 잔치하며 즐거워했습니다. “또 찾아낸즉 벗과 이웃을 불러 모으고 말하되 나와 함께 즐기자 잃은 드라크마를 찾아내었노라 하리라”(9절) 잃은 아들을 되찾은 아버지도 잔치를 열어 함께 즐기며 기뻐했습니다. “아버지는 종들에게 이르되 제일 좋은 옷을 내어다가 입히고 손에 가락지를 끼우고 발에 신을 신기라 그리고 살진 송아지를 끌어다가 잡으라 우리가 먹고 즐기자 이 내 아들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으며 내가 잃었다가 다시 얻었노라 하니 그들이 즐거워하더라”(22-24절)


목자와 여인과 아버지의 기쁨은 잃어버린 영혼이 회개하고 하나님께 돌아와 구원받을 때 하늘에서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것을 나타냅니다.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와 같이 죄인 한 사람이 회개하면 하늘에서는 회개할 것 없는 의인 아흔아홉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는 것보다 더하리라”(7절)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와 같이 죄인 한 사람이 회개하면 하나님의 사자들 앞에 기쁨이 되느니라”(10절) 세 번째 비유에는 이런 구절이 없지만, 세 비유 중에서 하나님의 기쁨을 가장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 비유들을 통해 하나님께서 죄인이 회개하고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것을 얼마나 기뻐하시는지 알 수 있습니다. 죄인이 하나님께로 돌아와 구원받을 때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기쁨은 우리의 상상을 초월합니다. 한 15년 전의 일입니다. 주일 아침에 우리 아이가 집에서 찬양을 틀어놓았는데, 그 가사가 특이했습니다. 지금은 자주 부르는 그 찬양의 가사는 이렇습니다.


예수 이름이 온 땅에 / 온 땅에 퍼져가네 잃어버린 영혼 예수 이름 / 그 이름 듣고 돌아오네 예수님 기뻐 노래하시리 / 잃어버린 영혼 돌아올 때 예수님 기뻐 춤추시리 / 잃어버린 영혼 돌아올 때


예수 이름이 온 땅에 / 온 땅에 선포되네 하나님의 나라 열방 중에 / 열방 중에 임하시네하나님 기뻐 노래하시리 / 열방이 주께 돌아올 때 하나님 기뻐 춤추시리 / 열방이 주께 돌아올 때


처음 이 찬양을 들을 때 곡조와 가사가 특이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춤을 추시다니, 하나님께서 춤을 추시다니, 좀 지나친 가사 아닌가 싶었습니다. 그런데 이 찬양을 계속 듣다보니 가슴이 뜨거워지고 눈물이 났습니다. 한 영혼이 회개하고 하나님께 돌아와 구원받을 때 하나님 아버지께서 얼마나 기뻐하시는지를 새롭게 느끼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나는 한 영혼을 그렇게 귀하게 여기고 있는가? 잃어버린 영혼 구원하기를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는가? 깊이 묵상하며 반성했습니다.


예수님께서 그렇게 기뻐하신다는데, 하나님께서 그렇게 기뻐하신다는데, 이 일을 소홀히 할 수 있겠습니까? 힘써 전도하여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며, 그 기쁨에 동참하는 성도가 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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