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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경남신문] 리코더 부는 아이 - 김지연

신춘문예 김지연............... 조회 수 684 추천 수 0 2019.04.01 23:02: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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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 경남신문 신춘문예 동화 당선작] 리코더 부는 아이 / 김지연


   너라도 그럴 거야 / 박명희

 

  비가 그친 토요일 오후는 고요했습니다. 혼자 침대에서 뒹굴던 현수가 불쑥 이불을 들춰봅니다. 이불 밑에서 파란 구슬이 나왔습니다.

  잃어버리는 바람에 한참을 찾았던, 단짝 도윤이가 준 구슬이었습니다.

  구슬을 보고 반가웠던 현수의 표정이 울상으로 변했습니다.

  오늘 아침, 놀이터에서 만나자는 도윤이의 문자를 받았습니다. 현수의 생일을 깜박하고 넘어간 일을 사과하고 싶다고 말입니다. 현수는 놀이터에 나가지 않았습니다.

  ‘내가 안 가도 다른 애들이랑 재밌게 놀고 있겠지….’

  무거운 마음으로 돌아누운 현수의 귀에 쨍쨍한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누군가 리코더로 동요를 연주하고 있습니다.

  도!도!솔솔 라라솔 파파미미 레!레!도!

  “반짝반짝 작은 별 아름답게 비치네.”

  익숙한 리듬을 따라 현수는 어느새 콧노래를 부르고 있습니다. 현수도 요즘 학교에서 리코더 연습을 하고 있던 참이었습니다. 쟤도 나랑 같은 학년인가?

  그런데 들을수록 리코더 연주가 좀 이상합니다. 들쭉날쭉 음정에 제멋대로 박자. 소리가 중간에 사라졌다가 한참 뒤에 이어지기도 했습니다. 차례대로 계이름이 올라가는데 특히 낮은 ‘도’와 ‘레’는 괴상하게 쉰 소리를 냈지요.

  리코더 연주는 끊길 듯 말 듯 계속되었습니다. 현수의 이마에 짜증이 몰려왔습니다. 자기가 음치인 줄도 모르고 노래를 부르는 사람 같습니다.

  청진기로 진단하는 의사처럼, 현수는 벽에다 바닥에다 귀를 대봅니다. 책상을 밟고 올라가 천장에도 귀를 기울여봅니다. 현수를 약 올리듯 리코더 소리는 사방에서 울려 퍼집니다.

  에잇. 다시 잠이나 자자.

  그러나 얼마 안 가 허공을 가르는 성난 소리에 현수는 이불 속에서 다리를 동동거렸습니다.

  결국 현수는 씩씩거리며 이불을 박차고 나왔습니다.

  두 달 전 현수는 이곳 초록맨션으로 이사를 왔습니다. 원래 현수네가 살았던 아파트 단지를 지나 언덕길을 오르면, 산 아래 자리한 여섯 채의 건물이 나옵니다. 그중에서도 현수네 집은 4동이었습니다.

  현수는 작고 낡은 이 집이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여기로 이사 온 뒤부터 도윤이와 같이 학교에 가거나 놀이터에서 노는 일이 부쩍 줄었습니다.

  오늘도 리코더 소리가 아니었다면 두더지처럼 방에 콕 박혀 있었을 테지요.

  ‘리코더 부는 애를 어떻게 찾는담? 집집마다 문을 두드려 볼 수도 없고. 누군지 당장 나오라고 고함을 질러볼까?’

  탐정놀이라도 하는 것처럼 현수는 심각하게 주차장을 서성였습니다.

  그때 저쪽에서 현수를 부르는 이가 있었습니다.

  “이리 온. 얘야.”

  아카시아나무 밑 평상에 지팡이를 짚은 할머니가 앉아 계십니다. 처음 보는 분입니다. 현수는 자신을 향해 손짓하는 할머니에게로 쭈뼛쭈뼛 다가갔습니다.

  비가 온 후라 평상이 조금 젖어 있습니다. 할머니가 옷소매로 앉을 자리를 슥슥 닦아내주었습니다. 현수가 망설이다가 할머니 옆에 엉거주춤 걸터앉았습니다.

  “혼자 무얼 그리 찾고 있누?”

  “그냥 좀… 어떤 애를 찾고 있었어요.”

  “친구를 찾고 있는 게로구나.”

  “친구는 필요 없어요. 그런데 할머니도 여기 사세요?”

  “으응. 나는 1동에 산단다. 여기 오래 살았지. 아카시아 향이 참 좋은 곳이거든.”

  현수는 고개를 들어 공기 중에 섞인 아카시아 내음을 맡아 보았습니다.

  작은 날개를 단 듯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습니다.

  “그럼 혹시 리코더 부는 애가 누군지 아시겠네요?”

  “응? 뭐라고? 리코코? 잘 안 들리니 크게 말해다오.”

  “리코더요! 리.코.더. 이렇게 부는 거 있잖아요. 이렇게. 아이 참.”

  현수는 답답한 나머지 벌떡 일어나서 양 손으로 피리 부는 시늉을 해보였습니다. 할머니가 고개를 갸우뚱합니다. 현수는 뚜루루 뚜루루 입으로 소리를 냈습니다.

  그러자 할머니는 잘한다고 손뼉으로 장단을 맞춰주었습니다.

  현수는 할머니 앞에서 재롱을 떠는 손자가 된 것 같아 쑥스러웠습니다. 그래도 할머니 얼굴에 번진 미소를 보니 즉석연주가 썩 나쁘지만은 않았나 봅니다.

  “맞아. 너만 한 아이를 본 것 같은데…. 경비실에 가보려무나. 경비 아저씨는 모르는 사람이 없으니까.”

  꾸벅 인사를 하고 걸어가던 현수가 뒤를 돌아봤습니다.

  아카시아 이파리에 맺혀 있던 빗방울이 평상 위로 똑 떨어졌습니다. 어제도 그제도, 그 자리에서 할머니가 인자한 미소로 현수를 바라보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창고에 도착한 현수가 까치발을 하고 빼꼼 안을 들여다보았습니다. 각종 우편물과 재활용품, 가지런히 접어놓은 상자들 사이로 현수가 버린 장난감 상자가 보입니다.

  ‘아저씨가 다 정리해 놓으셨구나…’

  처음 이사 온 날, 현수의 머리를 쓰다듬던 아저씨가 떠올랐습니다. 아저씨는 경비복 대신 허름한 점퍼를, 모자 대신 털 귀마개를 하고 있었습니다.

  히죽 웃는 아저씨를 보며 왠지 바보 같다고 생각했던 현수였습니다.

  “현수 아니니? 네가 여기까지 웬일이야.” 빗자루를 든 아저씨가 나타났습니다.

  “아, 안녕하세요.”

  아저씨가 현수를 향해 또 히죽 웃었습니다. 현수의 입가에도 부끄러운 미소가 걸렸습니다.

  “아저씨. 저기… 리코더 부는 아이가 누군지 아세요? 1동 할머니께서 아저씨한테 여쭤보면 알 거라고 하셨거든요.”

  “리코더 부는 아이라고? 글쎄다…. 리코더 부는 아이라….”

  골똘히 생각하던 아저씨가 무릎을 탁 치며 말했습니다.

  “그래, 우진이! 리코더 부는 아이라면 3동에 사는 우진이가 틀림없어.”

  “3동에 사는 우진이요?”

  “너랑 동갑이란다. 둘이 아마 좋은 친구가 될 수 있을 게야.”

  좋은 친구라니 그럴 리가요. 어쨌든 현수는 막무가내 리코더를 불어대는 그 녀석 얼굴이 더욱 궁금해졌습니다. 아저씨가 마침 우진이네 집에 갖다줄 것이 있는데 함께 가보겠냐고 물었습니다. 현수는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창고 앞 손수레에 책상 하나가 실려 있었습니다. 아저씨가 앞장서 손수레를 끌기 시작했습니다. 멋쩍게 뒤따르던 현수가 손수레 쪽으로 점점 가까이 붙어 섰습니다. 그리고는 뒤에서 힘껏 손수레를 밀었습니다.

  3동은 골목 하나를 사이에 두고 현수가 사는 4동 바로 뒤편에 있었습니다. 이렇게 가까운데 골목을 건너온 적이 없었단 사실이 이상할 정도였습니다.

  아저씨가 손수레에서 책상을 내리는 사이, 현수가 외쳤습니다.

  “야아~ 리코더 나와라!”

  대답이 없자 현수가 또 한 번 소리쳤습니다.

  “리코더 못 부는 애 나와라!”

  잠시 후, 입구 쪽에서 누군가의 그림자가 삐죽 튀어나왔습니다. 저벅저벅 현수를 향해 걸어오는 두 다리가 막대처럼 뻣뻣했습니다. 이윽고 그림자의 주인공이 현수를 빤히 쳐다보았습니다. 뜻밖에도 양 갈래로 머리를 묶은 여자아이였습니다.

  불편한 다리로 서 있는 여자아이의 오른쪽 새끼손가락과 넷째손가락이 서로 맞닿아 있었습니다. 리코더에서 낮은 ‘도’와 ‘레’를 담당하는 자리였습니다.

  그제야 현수는 리코더 연주가 이상했던 이유를 알 수 있었습니다.

  “네가 우진이… 여자였어?”

  “그래. 내가 김우진인데 넌 누구야?”

  우진이가 현수를 쏘아보았습니다. 우진이네 엄마도 현수를 보고 아리송한 표정을 짓긴 마찬가지였습니다.

  현수의 방과 크기도 구조도 똑같은 우진이의 방안에 새 책상이 놓였습니다. 물론 책상을 나르는데 현수도 힘을 보탰지요. 경비 아저씨가 돌아가고, 현수는 우진이네 엄마가 주신 음료수를 마시며 숨을 돌렸습니다.

  현수가 찾아오게 된 자초지종을 들은 우진이네 엄마가 미안한 얼굴로 말했습니다.

  “우리 우진이가 얼마 전부터 몸이 더 안 좋아져서 거의 방안에만 있는데… 유일하게 좋아하는 게 리코더란다. 혼자 연습을 하는데 그렇게 소리가 클 줄은 몰랐구나. 정말 미안하다.”

  새 책상이 마음에 드는지 우진이는 손등으로 책상 위를 어루만지고 있었습니다. 불편하게 붙어 있는 우진이의 손가락을 보자 현수는 어쩐지 미안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우진이는 입을 쭉 내밀고 현수를 모른 체했습니다. 이름 때문에 남자라고 오해한 데다 리코더를 못 분다고 한 게 화가 났던 겁니다.

  어떻게 기분을 풀어줄지 고민하던 현수의 눈에 들어온 것이 있었습니다.

  책상 위에 놓인 리코더였습니다.

  “내가 리코더 가르쳐줄까?”

  “됐어.”

  “나도 요즘 리코더 연습하는데 쉽지가 않더라. 구멍 막기도 힘들고… 이렇게 침도 막 튀고. 퉤퉤퉤.”

  현수가 호들갑스럽게 침 나오는 시늉을 하자 우진이는 어이없는 듯 피식 웃었습니다. 작전이 통한 모양입니다.

  “있잖아. 아래에서부터 올라가지 말고 위에서부터 내려오는 거야. 높은 도부터 낮은 도까지 하나씩… 너무 세게 불지 말고 입술로 두두두 불어야 한대. 한번 해볼래?”

  현수가 자꾸 권하자 우진이는 못 이기는 척 리코더를 건네받았습니다. 리코더를 쥔 양손이 불안하게 떨렸지만, 우진이는 현수의 말대로 최대한 천천히 침착하게 음을 하나씩 내려고 노력했습니다.

  도시라솔 파미레도-도시라솔 파미레도-

  소리가 한결 나아졌습니다. 현수는 신이 나서 짝짝짝 박수를 쳤습니다. 우진이의 얼굴에도 환한 생기가 돌았습니다.

  용기를 얻은 우진이가 현수 앞에서 다시 ‘작은 별’을 불기 시작했습니다.

  아까보다 크기는 작아졌지만 훨씬 또렷하고 예쁜 연주였습니다.

  “네 말대로 하니까 정말 잘 되네. 고마워.”

  “고맙긴. 나도 친구한테 배운 거야. 지금은 아니지만…”

  “지금은 아니라니?”

  “원래 제일 친한 친구였는데 내가 이사 온 다음부터 사이가 멀어졌어.”

  현수의 어깨가 시무룩하게 처졌습니다. 현수는 오늘 도윤이와 만나기로 했던 놀이터에 나가지 않았다는 것을 털어놓았습니다.

  “그 친구 지금쯤 널 많이 걱정하고 있을 걸?”

  “이제 걔는 같은 아파트 사는 애들하고만 놀 텐데 뭐. 저번에도 그랬어. 내 생일도 잊어버리고…”

  “아냐. 나라면 네가 왜 안 나왔는지, 무슨 일이 생긴 건 아닌지 궁금해하고 있을 거야.”

  “정말 그럴까?”

  우진이가 고개를 끄덕입니다. 현수의 어깨 위로 우진이의 따뜻한 눈빛이 와닿습니다. 리코더를 들고 있는 우진이의 두 눈이 별처럼 반짝반짝 빛납니다.

  집으로 돌아가기 전에 현수가 말했습니다.

  “내일 비 안 오면 평상에서 같이 리코더 연습할래? 바람도 솔솔 불고 꼭 소풍 나온 기분일 거야.”

  “평상이 어디 있는데?”

  “주차장 아카시아나무 밑에 있잖아. 몰랐어?”

  “와~ 그거 좋겠다! 야 근데 현수나 우진이나 남자 이름이지만 여자 이름도 되잖아. 너도 몰랐어?”

  3동 건물을 빠져나오던 현수가 뒤를 돌아보았습니다. 우진이가 베란다 난간에 기대어 힘차게 손을 흔들고 있었습니다.

  그제야 현수는 핸드폰을 집에 두고 나왔다는 사실이 생각났습니다. 집에서 나온 지 꽤 시간이 흘렀을 터였습니다. 현수는 서둘러 집으로 갔습니다.

  집에 도착해 핸드폰을 열자 역시 부재중 전화가 여러 통 와 있었습니다. 엄마, 아빠, 그리고 도윤이의 이름도 보였습니다. 우진이의 말이 맞았습니다.

  잃어버렸던 파란 구슬을 찾았다고 하면 도윤이는 몹시 기뻐할 겁니다.

  리코더 소리를 따라 발랄한 새 친구를 만난 얘기를 들려주면, 역시 엉뚱한 이현수답다고 웃음을 터트리겠지요.

  말갛게 갠 얼굴로, 현수는 도윤이에게 전화를 걸었습니다.


  <당선소감>  내 안의 어린아이를 만나는 시간


  당선 소식을 듣고 기쁨보다는 부끄러움이 앞섰습니다.

  아직 실력도 노력도 자세도 부족함을 스스로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처음에는 동화를 가볍게 여기고 접근했습니다. 하지만 점점 동화가 지닌 재미와 깊이를 통해 오히려 위로받고 있는 저를 보았습니다. 동화를 쓸 때면 제 안의 어린아이와 함께 행복합니다.

  혼자 습작을 하면서 방향이 흐릿하곤 했는데 나아갈 용기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맑지만 강한 아이들을 닮은 글을 쓸 수 있도록, 정진하겠습니다. 
  ● 1984년 서울 출생.

  ● 고려대학교 노어노문학과 졸업.

  ● 2017 마로니에전국여성백일장 아동문학 부문 입선.


  <심사평>보물찾기하듯 곳곳에 숨겨진 재미


  응모 작품이 56편으로 다소 적은 편수였으나 작품의 수준이 높아서 심사하는 사람으로 흐뭇했다.

  끝까지 남은 작품은 5편이었다.

  가출한 베트남 엄마와 주인공을 낳다가 돌아가신 조선족 엄마를 둔 두 아이가 토끼를 키우면서 엄마를 이해하고 우정을 쌓아 가는 ‘베트맨과 족장’, 핸드폰을 사기 위해 기른 염소를 축구하느라고 돌보지 못해 죽게 한 주인공의 슬픔과 죄책감을 다룬 ‘차지만의 염소’, 여린 감성에 여자다운 취향을 갖고 있어 놀림 받는 남자 주인공의 성정체성을 다룬 ‘흔들리지 않는 꽃잎’, 치매 할머니 때문에 일어나는 불화와 할머니가 만들어주던 만두에 대한 향수 이야기 ‘라면 만두’.

  네 작품 모두 탈락시키기에는 아까운 작품들이었으나 최종 ‘리코더를 부는 아이’를 당선작으로 선정했다. 이 작품은 주제와 소재가 자칫 지루해질 수도 있는 작품이었으나 곳곳에 숨겨 둔 장치가 읽는 이로 하여금 보물을 찾아가는 듯 이야기 속으로 빠져들게 했다. 침대에서 찾은 친구의 구슬이 그렇고, 평상에 앉아 이야기를 거는 할머니와 리코더 부는 아이에게 안내해주는 경비실 아저씨의 자연스러운 동작이 그랬다. 친구의 우정과는 전혀 관계가 없을 것 같은 리코더를 부는 아이와의 만남이 결국에 옛 친구와의 우정을 되찾게 해 준다는 설정도 이 글의 재미를 더해 주었다. ‘리코더를 부는 아이’가 당선작으로 선정된 이유가 곧 다른 작품을 내려놓은 이유이기도 하다. 주제를 향해 전속력으로 달려가는, 그래서 결말이 훤히 짐작되는 단점과 문장을 좀 더 다듬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탈락 작품에 대한 평이다.

  응모자 모두가 신춘문예 열병을 앓느라 마음고생이 심했으리라 짐작된다. 그러나 당선과 탈락과는 관계없이 열심히, 계속 쓰는 사람만이 훌륭한 작가로 남는다는 것을 꼭 말씀드리고 싶다.

심사위원 : 배익천, 소중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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