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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요19: 26-2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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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김성호 목사 |
참고 : |
오늘 본문의 내용은 예수님께서 육신의 어머니 마리아를 요한에게 부탁하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실 곰곰히 생각해보면 예수께서 마리아를 제자 요한에게 부탁하는 것은 좀 이상한 것입니다. 그 이유는 어머니 마리아에게는 예수님외에도 다른 아들들이 있었기 때문입니다.(막6:3)
오늘 본문은 예수님을 마리아의 육신의 아들로서 하신 말씀으로 이해하여 교훈을 얻는 것도 의미가 있겠지만 그 보다는 요한복음에서 계속 강조하는 하나님의 소명을 감당하시는 하나님의 아들로서 보면서 해석할 때 비로서 참 의미를 알 수 있습니다.
카톨릭에서는 이 본문을 마리아 개인을 위해 해석을 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 본문에서 예수께서 요한에게 마리아를 부탁하신 것을 들어 마리아에게 예수님 외에는 자식이 없었다고 주장을 하며 그녀가 평생 동정녀였다고 합니다. 이러한 해석은 마가복음 6장 3절에서 증거하는 예수님의 형제에 대한 말씀을 부정하는 것이 됩니다. 카톨릭에서는 마리아가 예수님의 어머니라는 것 때문에 그녀의 존재 자체를 특별하게 생각합니다. 그러다 보니 이런 억지 주장을 하게 된 것입니다.
그러나 기독교에서 마리아가 특별한 것은 예수님의 어머니라는 존재 때문이 아니라, 예수님의 육신의 어머니가 되기로 순종을 하였고 예수님에 대한 믿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는 마리아에게 예수님의 임신을 알리는 누가복음 1장의 38절의 고백(주의 여종이오니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이다)에서 그리고 요한복음 2장의 가나의 혼인잔치에서(종들에게 말씀하시는 대로 그대로 하라고 함) 잘 알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은 마리아를 특별하게 생각하는 본문이 아닙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마리아의 육신의 아들로서 죄송한 마음을 표현하는 말씀으로 보는 것도 충분하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이 보다 더 큰 의미가 있습니다. 오늘 본문은 예수께서 성육신으로서는 마지막으로 인간에게 하시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소명의 마지막 부분에 이른 것입니다.
오늘 본문을 통해서 우리가 깨달아야 하는 것은 예수님의 죽으심을 통해서 새로운 가족이 형성이 된다는 것입니다. 나아가서 새로운 가족의 형성을 명령하신 것입니다. 어머니 마리아에게 제자 요한은 새로운 아들입니다. 제자 요한에게 마리아는 새로운 어머니가 됩니다.
이 새로운 가족의 탄생이 의미하는 것은 큰 의미를 줍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이 마리아에게 슬픔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이 제자들에게 절망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은 마리아와 요한을 하나로 묶는 것입니다. 새로운 가족을 형성하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은 새로운 창조를 향하여 가는 것임을 밝히시는 것입니다.
십자가는 사람들에게 두려움이었습니다. 죽음이었습니다. 비참함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다릅니다. 새로운 가족을 형성하는 생명을 부여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본문은 절망에 대한 희망의 외침이며 죄를 향한 승리의 외침입니다.
오늘 예수님은 우리에게도 동일한 말씀을 하십니다. 우리는 타인으로 둘러 쌓인 세계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은 십자가를 통해서 타인을 ‘보라’는 주님의 말씀입니다. 예수님을 통해서 타인을 ‘보라’는 말씀입니다. 십자가를 통해 타인을 볼 때 의미 없는 사람은 없습니다.
죄는 타인을 경쟁자로만 생각하게 합니다. 죄는 관계를 깨뜨리는 것입니다. 에덴에서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께 불순종하므로 하나님과의 관계만 깨진 것이 아닙니다. 그 둘의 관계도 깨졌습니다.(창3:12-13절) 후에 가인과 아벨의 관계가 깨졌습니다.(창4:8) 그리고 나아가서 라멕은 깨어진 관계를 넘어 관계를 깨뜨리게 한 자신의 힘을 자랑합니다.(창세기 4장 23-24절) 타인을 겁주어 두려움을 주어 지배하기 쉽게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죄는 관계를 깨지게 하는 것에서 나아가 깨뜨리는 존재로 만들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십자가를 통해 새로운 연결을 하시는 것입니다. 이 새로운 연결을 하시는 주님에 대해 바울은 ‘그는 우리의 화평이시라’고 고백을 합니다.(에베소서 2장 14절)
‘그는 우리의 화평이신지라 둘로 하나를 만드사 원수된 것 곧 중간에 막힌 담을 자기 육체로 허시고 법조문으로 된 계명의 율법을 페하셨으니 이는 이 둘로 자기 안에서 한 새 사람을 지어 화평하게 하시고 또 십자가로 이 둘을 한 몸으로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려 하심이라 원수 된 것을 십자가로 소멸하시고 또 오혀서 먼 데 있는 너희에게 평안을 전하시고 가까운 데 있는 자들에게 평안을 전하셨으니 이는 그로 말미암아 우리 둘이 한 성령안에서 아버지께 나아감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에베소서 2장 14-18절)
예수님은 유대인과 이방인을 하나가 되게 하셨습니다. 새사람이 되게 하셨고 그 새사람을 하나님과 하나가 되게 하셨습니다. 십자가에서 예수님은 이 세상 사람들을 ‘보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의 생각과 경험이 아닌 십자가로 ‘보라’ 고 말씀하십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십자가에서 ‘보라’는 말씀은 부활하시어서 ‘가라’는 말씀으로 변합니다.
마태복음 28장 19-20절 말씀입니다.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십자가로 세상을 볼 때 모든 사람들이 다 십자가로 변할 수 있는 사람들로 보이게 됩니다. 타인이 아니라 예수안에서 한 가족의 가능성으로 변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세상에 사명자로 나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
주님은 십자가 상에서 ‘보라’고 말씀하셨고 부활하셔서 ‘가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을 지금 저와 여러분들에게도 동일하게 하고 있습니다. 세상을 십자가로 보아야 합니다.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로 볼 때 세상 사람들은 다 우리의 아들이고 어머니가 됩니다. 새로운 가족이 됩니다.
이 말씀을 기억하며 우리는 ‘가야’ 합니다. 땅 끝까지 가야 합니다. 내가 있는 일터에서 선교사로 일해야 합니다. 기도하는 마음으로 누구를 만나도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십자가를 통한 새롭게 볼 수 있음을 통해 그리고 부활의 주님의 ‘가라’는 명령을 통해 복음의 역동성 속에서 살아가시는 복음의 풍요로움을 맞이하시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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