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 : 김남준  | 출판사 : 생명의말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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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가, 불변하는 구원의 길더 이상 십자가가 감격스럽지 않은 그리스도인들을 위한 참 회복의 복음▣ 책 소개십자가의 감격을 잃어버린 이름뿐인 그리스도인의 신앙 회복을 위한 가상칠언 해설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 위에서 남기신 일곱 마디의 말씀을 통해복음이 감격적이지 않고,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의 교리를 묵상해도 눈물이 흐르지 않는 신자들로 하여금하나님의 구원 계획의 위대함을 재각성하고 그리스도의 십자가 대속에 대한 감격을 다시 누리도록 하는 책第1言.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눅 23:34)第2言.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눅 23:43)第3言. 보라 네 어머니라(요 19:26-27)第4言.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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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십자가를 잃은 강단


오늘날 십자가의 감격에 무지한 그리스도인들이 많은 것은 조국 교회의 강단이 십자가에 대한 설교를 잃어버리고 있기 때문이며, 강단이 이 두드러진 성경의 진리를 선포하는 일을 그치고 있는 것은 설교자들의 가슴속에서 복음의 감격이 역사하지 않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십자가에서 이루신 영광스러운 일에 대한 무지와 무관심은 꼭 필요한 선포의 주제들을 버리고 꼭 필요하지 않은 주제들을 설교하도록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조국 교회의 이 같은 영적 상황은 복음에 대하여 냉담한 설교자들과 안일하고 형식적인 신앙생활을 선호하는 교인들이 이루어 놓은 합작품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사실이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십자가를 통하지 않고는 기독교에 대하여 결코 말씀하지 않으셨다는 사실입니다.


2.십자가와 고난신앙


성경책의 가장자리 부분을 붉은 색으로 칠한 까닭을 아는 분은 그리 많지 않을 것입니다. 그것은 바로 순교의 붉은 피를 의미합니다. 그리스도인들이 성경을 펴서 복음 진리에 접하는 순간마다 자신에게까지 도달한 이 영광스러운 복음이 순교자들의 피 뿌리는 헌신을 통하여 전해지게 되었다는 사실을 상기하게 하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더 이상 가장자리를 붉게 물들인 성경을 찾아보기 힘들게 되었습니다. 금박으로 물들인 성경이 유행하는 것처럼, 고난과 희생보다는 현세의 번영과 성공이 그리스도인들이 추구해야 할 덕목인 것처럼 오해되고 있는 것이 오늘날 우리의 영적 현실입니다.


3.거룩한 힘


여러분이 지금 어디에 있든지 하나님을 마음 깊이 “아버지!”하고 부를 수 있는 친밀함이 있습니까? 마음은 하나님 아버지와 하나 되고 있습니까? 기도 속에서 하나님을 만나고 계십니까? 말씀을 대할 때나 찬양을 부를 때 여러분을 향한 아버지의 마음이 전해집니까?
험악한 세상의 풍조를 이기며 살아가게 하는 힘은 우리 안에도 없고 세상 안에도 없습니다. 우리로 하여금 거룩하고 구별된 삶을 살아서 하나님을 보여주게 하는 힘은 오로지 하늘로부터 옵니다. 그리고 우리가 그 보좌의 능력을 우리의 것으로 삼아 살아가게 하는 것은 아버지와의 말할 수 없는 친밀함을 통해서입니다.


4. 그 마음을 나눠주소서


우리가 진정 십자가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은 성도들이라면 오히려 이렇게 기도할 수 있어야 합니다.
“주님, 저를 이 세상에서 안락하게 살게 하시려고 과도히 마음쓰지 마옵소서. 오히려 주님, 지금도 제 마음에 저려 오는 아픔을 기억하여 주시옵소서. 십자가의 놀라운 사랑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죄사함을 거절하는, 구원받지 못한 세상을 위한 저의 통곡과 눈물을 긍휼로 돌아보아 주소서. 당신을 못 박은 이 세상, 이 패역한 죄인들을 위해 죄 사함을 간구하시던 주님의 그 심정을 오늘 우리 교회에도 나누어 주옵소서.


5. 두 가지 큰 진리


성경의 내용은 모두 하나님의 진리들입니다. 그러나 성경 속에는 크게 두드러진 진리와 덜 두드러진 진리가 있습니다. 십자가와 부활, 종말 같은 진리들이 바로 기독교로 하여금 기독교 되게 하는 독특하고 현저한 진리입니다. 이러한 두드러진 진리는 곧 성경 전체의 구원 역사를 타고 흐르는 커다란 맥을 형성합니다. 이러한 성경의 맥을 붙잡지 않으면 우리가 알고 있는 성경의 이해는 참된 기독교 신앙이 무엇인지를 알게 하는 데 매우 적은 도움밖에는 주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6.내세 신앙을 회복하라


신자가 세상을 적당히 경멸하고 하찮게 여기는 것은 죄를 이기는 중요한 비결입니다. 또한 세속적인 욕망을 누르는 중요한 방법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존 칼빈은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눈멀고 미련한 육신의 소욕이 저항한다 할지라도 보다 확고한 견해를 붙듭시다. 주님께서 다시 오시는 날을 기다림에 있어서 지체함이 없도록 합시다. 그 일을 이 세상에서 가장 커다란 행복으로 여기며 사모함뿐만 아니라 신음하고 탄식함으로 기다립시다.”


7.복음 주님의 마음


우리 주님의 마음을 가진 교회와 그리스도인으로 변화되어야 합니다. 십자가에 달리신 주님을 생각해 보십시오.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고난 받으신 주님의 관심이 무엇이었는지를 보여줍니다. 지옥 갈 영혼을 긍휼히 여기시는 사랑의 마음이었습니다. 그리고 잃어버린 세상을 향한 가슴 저미는 아픈 마음이 바로 교회를 세우시고 그리스도인들을 세상으로 보내시는 주님의 마음입니다. 
가슴 깊이 새겨야 할 사실이 있습니다. 우리는 이 세상 끝 날까지 그리고 땅 끝까지 그리스도의 증인들입니다. 하나님께서 구원의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살려두신 사람들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복음이 승리와 함께 울고 웃으며 살아가도록 부름받은 사람들입니다.


8.가치관을 바꾼 십자가


오늘날 조국 교회 그리스도인들의 십자가를 상실한 신앙은 뚜렷한 회심이 사라진 것과 깊은 관계가 있습니다. 회심은 즉각적인 가치관의 변화를 가져오고 삶과 죽음에 대한 새로운 의미를 알게 만들어줍니다. 그리고 인간은 가치관의 분명한 변화가 없이는 세상 사람들과 다른 삶을 사는 것이 불가능합니다. 누구든지 십자가의 예수 그리스도를 깊이 만나지 않고는 변화된 가치관을 갖는 것이 불가능하고, 그 십자가의 감격을 현재적으로 체험하는 영적 생활 없이는 그 가치관을 따라 살아가는 것이 불가능합니다.


9. 어느 형제의 충격


지금은 목회자가 된 형제에게서 이런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대학시절 그리스도를 만나고 주님의 사랑과 은혜가 너무나 고마워서 참된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려고 교회에 들어갔는데, 형제는 그때 교회에 들어와서 받은 충격을 이렇게 증언하였습니다.
“제가 교회에 들어와 보니, 이미 제가 교회에 들어오기 위해서 세상에 버렸던 것들을 교회 안에서는 다시 모으고 있었고, 그리스도를 만났기 때문에 해롭고 배설물처럼 여겼던 것들이 교회 안에서는 여전히 귀중한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었습니다. 있는 사람들은 그것으로 인하여 자랑하고, 없는 사람들은 못가진 것 때문에 스스로 비참하게 생각하는 모습이 가장 충격적이었습니다.”


10.세상을 너무 사랑한다


내세에 대한 신앙이 없기 때문에 많은 그리스도인들은 마치 사후 세계가 없는 것 같은 방만한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천국의 복락이 없는 것처럼 오직 세상만을 사랑하며 살아가기도 하고, 지옥이 없는 것처럼 육욕을 따라 마음이 원하는 대로 살아가기도 합니다.
여러분은 진실로 사후의 세계를 믿고 계십니까? 진실로 천국이 여러분의 소망이 되고 있습니까? 죽음 이후에 천국과 지옥이 있다는 그 복된 복음 진리로부터 위로와 격려와 소망을 얻고 있습니까? 그래서 더욱 주님만을 기쁘시게 하기 위하여 살아야 할 이유를 발견하게 됩니까?


11. 값싼 복음엔 본향이 없다


기독교 신앙은 이 땅에서 하늘로 맞닿아 있는 신앙입니다. 지상의 존재가 하늘의 진리를 붙들고 이 땅에서 저 천국을 위하여 사는 것입니다. 이 땅에서 하늘에 속한 것을 느껴야만 비로소 세상을 위해서 살지 않고 천국을 위해서 살 수 있습니다. 우리에게는 좀더 견고한 내세 신앙이 필요합니다. 모든 죄와 탐심의 출발은 내세를 현세에서 느끼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내세를 믿지 못하는 사람들의 남은 일은 세상을 사랑하는 것이고 세상을 사랑하는 사람들은 범죄를 피할 수 없습니다. 오늘날 조국 교회 안에서 유행하고 있는 싸구려 복음을 보십시오. 그런 복음에서는 구원이 헐값으로 취급됩니다.


12. 하나님을 두려워 함


오늘날은 그리스도인들 조차도 하나님을 친구처럼 생각하며 살아가는 시대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이 농담 가운데 하나님의 이름을 들먹이며 경박하게 말하는 것을 보면서 믿지 않는 사람들은 무슨 생각을 할까요? 과연 그들이 그러한 우리의 태도를 보면서 하나님께서 살아 계시다는 것과 우리에게 경외함을 받으셔야 하는 분임을 깨달을 수 있을까요?
회심하지 못한 자들의 가장 뚜렷한 특징은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반면 하나님의 백성들에게는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사랑하는 것이 모든 삶의 중심이 됩니다.


13.회개의 실종


기독교의 불변하는 진리는 회개를 통하여 구원의 약속이 주어진다는 것입니다. 회개는 하나님께서 잃어버린 영혼을 구원하시는 방법입니다. 잃어버린 바 된 세상 사람들은 구원하시는 방법은 자신이 하나님 앞에서 죄인임을 깊이 깨닫고, 십자가 그늘 아래서 뼈저리게 자기의 죄악을 인하여 아파하는 회개를 통해서입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구원의 방법입니다.
오늘날 조국 교회의 영적인 상태가 쇠퇴하면서 눈에 띄게 나타나는 현상은 바로 진실한 회개의 실종입니다. 참회의 눈물이 없는 예배, 범죄에 대한 아픔이 없는 기도회, 성경을 알아도 그것을 기록하게 하신 하나님의 거룩을 닮아가지 않는 어두운 생활은 모두 참된 회개가 사라진 데서 기인합니다.


14 내세를 위한 기회


오늘이라고 일컫는 이날이야말로 주님을 위해서 살 수 있는 시간이고, 오늘이라고 일컫는 이 지상의 날 동안에 우리는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것인가 믿지 않을 것인가, 순간의 삶으로 마감할 것인가 영원을 향하여 살 것인가를 결정하게 되는 것입니다.
단 한 번밖에 없는 이 세상에서 오늘이라 일컫는 날 동안에 우리의 삶이 영원을 향하여 사는 삶이 아니면 그것은 아무것도 아닙니다. 우리가 무엇을 하든지 그것이 영원을 향하여 의미 있는 것이 되지 않는다면 우리의 인생은 단지 바람을 잡는 것과 같습니다. 


15. 허무를 이기는 두 길


쾌락에 자기 몸을 내어 맡긴 채 살아가는 이 세상 사람들의 탐욕과 방종을 두고 사람들은 욕을 많이 합니다만, 저는 그들을 욕할 수 없습니다. 그것은 그들도 어찌할 수 없는 일종의 질병과 같은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들에게는 비난이 아니라 치료가 필요합니다. 그리고 이렇게 고통하는 세상에 대한 유일한 해답은 그리스도의 복음입니다.


16.오늘은 왜 사셨습니까?


여러분은 오늘 행복하셨습니까? 행복하지도 않은데 왜 사셨습니까? 매 순간 믿음으로 살아가려고 애쓰고 마음을 지키며 주님의 뜻을 좇아 살려고 힘써도 때로는 힘겨울 때도 있지요? 여러분은 오늘 하루 왜 사셨습니까?
우리는 이 세상에서 좋은 날 보려고 사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아무리 낙관적인 사람이라 해도 언젠가 우리 인생이 세상 행복에 들뜬 인생이 될 것이라는 기대 때문에 살아가진 않습니다. 그런 것은 결코 인생을 살아 있게 하는 참된 동기가 될 수 없습니다.


17. 부흥의 중심, 십자가


십자가는 단지 우리의 구원을 위한 일회용 교리가 아니라, 영적인 회복과 깊은 관계가 있습니다. 사람들은 이 십자가의 진리의 위대함에 대하여 너무도 모르고 있습니다. 특히 조국 교회의 그리스도인들은 더욱 그러합니다. 영적인 삶의 가난함은 대부분 십자가의 교리에 대한 무지함과 그것을 현재적으로 체험하지 못하고 살아가는 허(虛)한 신앙생활 때문입니다.


18.어디로 갔을까요?


주님을 믿되 진실로 그분을 향한 사랑이 없는 사람들은 주께서 당하시는 고난의 현장에서 아픔을 같이 할 수 없습니다. 떡과 물고기를 나누어 주는 벳새다의 광야에는 함께 있을 수 있을 것입니다. 병든 자를 고치는 기적의 현장에는 구경 삼아 함께 동참할 수 있을 것입니다. 비바람 몰아치고 풍랑 이는 밤, 파도를 잔잔케 하시는 능력의 예수님 곁에는 함께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자기가 필요로 할 때 주님께로 달려갈 수 있는 사람은 많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우리를 필요로 할 때 그분 곁에 있어 드릴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그리스도께서 고난을 받으실 때, 주님과 함께 죽으러 가는 길에 함께 선 자들은 언제나 소수였습니다.


19.배교에 가까운 냉담함


지금 우리는 마치 첫사랑을 잃어버린 에베소 교회와 같은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종교적인 사람은 많아도 신앙적인 사람을 찾기 힘들고, 분주한 사람은 많아도 하나님의 사랑에 감동을 받은 사람들은 찾기 어려워졌습니다. 사역의 세계에서도 일에 미치고 성공에 정신 팔린 사람들은 많아도 주님 사랑에 주체할 수 없어 하는 사람들은 만나기 어려워졌습니다.
이 글을 읽고 있는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그리스도의 사랑에 감격하여 기도하던 자리가 물같이 쏟아진 마음에서 흘러나온 눈물로 젖어 본 때가 최근 언제입니까? 여러분들의 기도시간은 손수건을 필요로 합니까? 휴지 없이 참여한 것을 불안하게 생각할 만큼 여러분의 예배에는 십자가의 감격이 마르지 않고 있습니까?


20. 피묻은 십자가를


사랑이 메마르고 눈물이 없는 시대에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주님을 향한 뜨거운 사랑으로 다시 태어나는 것입니다. 십자가의 사랑이 온 몸과 영혼에 넘치도록 가득 차서 우리 위하여 죽으신 그리스도의 뒤를 따라가며 외로울지라도 고난의 길 한 복판에 설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리스도인들이 십자가의 감격을 회복하고 교회가 피묻은 십자가를 붙드는 일에 목숨을 거는 일 없이는 이 세상이 하나님의 나라로 변화되는 일은 없습니다.


21.말씀을 깨닫는 길


“저는 왜 성경을 읽어도 깨달음이 없을까요? 시편 기자는 하나님께서 자기에게 지키며 살 수 있는 말씀을 주신 것을 인하여 하루에 일곱 번씩이나 감사하지 않을 수 없다고 말했는데, 제게는 왜 성경말씀이 꿀같이 달지 않을까요? 저는 왜 성경 말씀을 통하여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 감격하는 일이 없을까요?”
먼저 마음을 기울이고 십자가를 묵상하십시오. 십자가 앞으로 다가가 거기 달리신 그리스도와 마주 서시기 바랍니다. 먼저 주님께서 당신을 어떻게 사랑하셨는지를 기억하십시오. 십자가는 언제나 하나님을 생각나게 해줍니다.


22.거슬러 달려온 언덕길


성경은 분명히 제자들이 다 예수님을 버리고 도망갔다고 전하고 있습니다. 요한도 예외가 아니었습니다. 그도 처음에는 다른 제자들과 함께 멀리멀리 도망을 쳤습니다. 예수님이 가장 힘든 순간에 그들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제자들은 모두 두려워 떨며 어디엔가 숨어 있었습니다. 그러나 요한은 다른 제자들보다 먼저 회개하였습니다.
지금 요한이 홀로 주님의 마지막 유언을 들을 수 있었던 것은 이 때문이었습니다. 비록 요한은 모든 제자들과 똑같이 실패했고 주님을 버렸지만, 그래도 그는 제자들 중에 가장 먼저 돌이켜 십자가 언덕으로 달려왔습니다.


23.이 모습 이대로


하나님의 사랑을 많이 경험한 사람들도 신앙적인 실패를 경험합니다. 그리고 그때마다 우리는 깨닫습니다. 바로 주님의 사랑을 많이 받아도 우리는 너무나 연약한 존재일 뿐이라는 사실을 말입니다. 우리는 모두 너무나 어이없게 깨지고 마는 나약한 그릇들입니다.
주님의 사랑을 많이 받은 사람들이 넘어지는 일 없이, 더욱 하나님만을 사랑하며 살아간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주님의 은혜를 배신으로 갚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누구나 그러한 삶을 꿈꾸지만, 사람들은 너무나 쉽게 무너집니다. 적게 사랑 받은 사람들은 가볍게 무너지고, 큰 사람을 받은 사람들은 크게 넘어집니다.


24.불꽃처럼 살아서


여러분의 영적 상태는 어떠합니까? 침체가운데 있습니까? 한때 십자가로 뜨겁던 마음이 냉담해졌습니까? 한때 여러분을 사로잡던 피묻은 복음의 감격이 식어졌습니까? 불순종하는 길에서 영혼의 어두운 밤을 지내고 계십니까? 오늘 골고다 언덕에서 보혈에 젖은 음성으로 실패한 요한을 불러 주시는 주님의 목소리를 들어보십시오. “보라 네 어머니라.”


25 어둠속에 미친 세상


사람들이 빛이신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자, 찬란하게 빛나던 해도 빛을 잃었습니다.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리스도가 없는 삶은 단지 어두움일 뿐입니다. 그래서 주님을 등지고 살아가는 불신앙과 무지는 헤어질 수 없는 친구사이입니다. 하나님을 마음에 두기 싫어하는 불신앙은 어둠과 손잡고 더 많은 죄악의 어두움을 만들어냅니다.
미친 듯이 악으로 치달아 가는 이 세상을 보십시오. 인간 사회에 당연히 존재해야 할 아름다운 미덕이 그 존재 자체로 충격적인 것이 되어버렸습니다. 무엇 때문입니까? 사람들이 어둠 속에서 살아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더욱 어둠을 사랑합니다.  그리고 그 어둠 속에서 행하는 악한 일들은 그들로 하여금 더욱 빛으로부터 멀어지도록 만듭니다.


26 버림받은 구원자?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하는 이 말씀은 어느 모로 보나 구원으로부터 멀어져 멸망하는 죄인이 부르짖는 통곡의 탄식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외치고 계신 분이 예수님이셨습니다. 성경은 그것이 주님께서 구원자가 되시는 방법이었다고 말합니다. 주님께서 이렇듯 하나님 아버지께로부터 버림을 받는 그것이 곧 우리를 구원하시는 방법이었던 것입니다. 우리를 모든 죄와 슬픔으로부터 구원하시는 방법은 이처럼 철저히 버림받으시는 것이었습니다.


27 사단이 삼킨 낚시바늘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셨을 때 그분을 제일 먼저 알아본 자는 사단이었습니다. 사단이 충동한 인간들에 의하여 간악한 방법으로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고 계셨을 때, 그는 자신의 악한 권세에 도전하는 세력을 쓸어버렸다고 안심하였을 것입니다.
그래서 고대 교부중 한 사람은 예수 그리스도를 죽음에 내어주신 것이 사실은 사단을 멸하기 위한 낚싯바늘이었다고 표현합니다. 사단이 어리석게도 이것을 모르고 예수님을 죽임으로써 스스로 파멸로 나아갔던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를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지혜입니다. 그러나 믿음으로 하나님 앞에 나아오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이러한 하나님의 지혜가 이해되지 않습니다.


28 시편을 기도로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는 예수님께서 고통에 겨워 엉겁결에 토해내신 비명도 아니었고, 궁리해 내신 기도도 아니었습니다. 이것은 사실 시편의 말씀이었습니다. “내 하나님이여 내 하나님이여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어찌 나를 멀리하여 돕지 아니하시오며 내 신음소리를 듣지 아니하시나이까”(시22:1)
지옥을 넘나드는 혼절의 고통 가운데 자연스럽게 흘러나온 예수님의 부르짖음은 성경말씀이었습니다. 주님의 생애는 하나님의 말씀 안에서 먹고 마시던 생애였습니다. 말씀으로 양식을 삼으시고, 그 말씀과 율례와 진리를 기도의 제목으로 삼으셨던 생애였습니다.


29 십자가 사랑은 삶으로


그렇습니다. 십자가를 알고, 십자가를 사랑하는 것은 울고 감격하는 것 이상이어야 합니다. 사랑은 분명 그 이상입니다. 흐르는 눈물은 한번 닦으면 지워지지만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으로도 지워지지 않는 진리의 말씀이 우리의 영혼 속에 아로새겨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진리의 말씀을 따라 십자가 지기까지 거룩하게 살다가 영광스럽게 죽는 것입니다.


30 어린양을 버리심


죄에 대한 하나님의 최상의 진노는 인간들을 내버려두시는 것입니다. 우리의 인생은 사망의 음침한 계곡을 지날 때도 있고 잔잔한 물가를 거니는 때도 있습니다. 푸른 초장에 누워 노래를 부르는 때가 있는가 하면 풍랑 이는 바다 한 가운데서 휘몰아치는 파도와 더불어 싸워야 하는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동행하시면 그런 것쯤은 아무것도 아닙니다. 우리가 만약 잔잔한 물가에서 안식한다 할지라도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하시지 않으면 우리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31. 육체로 오신 주님


주님께서는 십자가에 못 박히신 채로 여섯시간 가까이 물과 피를 흘리셨습니다. 생리학적으로 많은 출혈은 반드시 심한 두통과 극도의 갈증을 동반합니다. “내가 목마르다”고 말씀하신 것도 이 때문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아들이셨으나 참사람이기도 하셨습니다. 십자가에 못 박히셔서 물과 피를 남김없이 흘리고 죽어 가신 주님께서는 그러한 고통을 감당하기에 적합한 신적 체질을 갖고 태어나신 분이 아니었습니다. 그분은 우리와 똑같은 인간의 몸을 입으시고 이 땅에 오셨습니다.


32. 당신의 관심사는 무엇입니까?


한 사람의 그리스도인이 참된 신자인지를 확인하는 길은 그의 관심사가 무엇인지를 알아보는 것입니다. 관심사 뒤에는 욕망이 있습니다. 욕망은 그가 누구인지를 정확히 말해줍니다. 그의 인격을 지배하고 있는 욕망이 무엇인지를 보면 그가 어떤 사람인지를 알 수 있다는 뜻입니다. 그가 하나님의 사람이라면 하나님을 향한 갈망이 있을 것입니다. 반면 그가 세속적인 사람이라면 세상의 즐거움에 그렇게 목말라 할 것입니다.


33. 그리스도인의 거룩함과 영성


영성을 소유하려고 하거나 능력을 받으려고 하지 말고 먼저 거룩한 삶을 살아가려고 애쓰십시오 주님을 많이 닯고 싶은 소원을 가지십시오. 죄짓기를 원하는 본성을 억제하려는 노력 때문에 죄의 유혹을 이기는 것이 아니라 죄에 대한 상상 자체가 여러분의 본성에 진저리치게 혐오스러워지도록 노력하십시오. 그것이 바로 하나님과의 온전한 교통 속에서 사는 길입니다.


34. 최고의 가치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이 삶 속에서 거룩함을 잃어가는 것은 하나님의 현존을 느끼지 못하는 형식적인 신앙생활 때문입니다. 성도들이 모이면 거기에는 하나님의 임재하심이 나타나야 합니다. 예배를 드리기 위하여 하나님께 올 때에는 잡다한 생각을 가지고 나왔다고 하더라도 끝나고 돌아갈 때에는 하나님의 현존하신을 느끼면서 거룩한 삶을 위한 목표에 의식과 마음이 고정되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35 우리를 향한 질문


우리는 우리의 뜻이 관철되지 않으면 낙심합니다. 우리의 계획이 성취되지 않으면 좌절합니다. 그러나 오늘 십자가에 못박히신 그리스도를 보십시오. 주님께서도 한때 원하셨던 바는 고난의 잔이 당신 곁을 비껴 지나가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깊은 기도 속에서 아버지의 마음이 아들에게 옮겨왔고, 아들은 힘써 아버지의 원대로 그 모든 일들이 이루어지기를 전심으로 구하게 되었습니다. 십자가는 우리에게 왜 사느냐고 묻습니다. 우리 인생 최고의 가치가 무엇이냐고 묻습니다. 그리고 십자가는 내 뜻을 버리고 아버지의 뜻을 성취하며 사는 삶이 바로 십자가 아래서 살아야 할 성도의 삶이라고 말합니다. 


36 목 놓아 울게 하실 때


오늘날 우리 사회는 성공에 미친 사회입니다. 그리고 그 성공은 다분히 물량과 업적에 의하여 평가됩니다. 오늘날 사회활동의 모든 방면에서 개인의 수기나 성공담 같은 것들이 유행하는 것도 우리 사회의 이러한 가치관을 반영합니다. 학문, 문화, 영성, 사업, 육아, 건강 심지어 살림살이까지 성공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불티나게 팔리고 있습니다. 그런데 더욱 슬픈 것은 이러한 풍조가 번영과 성공을 최고 가치로 생각하는 그리스도인들에 의해 교회 안까지 끌어들여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당연한 그리스도인의 영적 생활이 간증거리가 되고, 기본적인 경건생활 조차도 성공의 지름길로 가는 비법으로 둔갑하는 시대가 된 것입니다. 평신도가 나와서 목회자들의 기도생활을 나무라고, 교회에서 사라진 복음을 돌려달라고 하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37. 구약의 종착역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귀중하지 않은 부분이 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핵심이라고 할만한 사상을 담고 있다는 측면에서 특별히 더 중요한 구절이 있습니다. 바로 신구약성경의 기초라고 할 수 있는 창세기 1장1절과 성경 말씀 전체의 요절이라고 할 수 있는 요한복음 3장 16절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유언을 담고 있으며 구약 39권의 종착지이자 새 언약의 시발점이라고 할 수 있는 요한복음 19장 30절입니다.


38. 허울 좋은 복음주의


오늘날 조국 교회의 비극은 복음주의임을 자처하는 교회 안에서조차 복음이 낯선 것이 되어버렸다는 것입니다. 진정한 복음주의 교회는 복음의 정신을 체험하고 있는 교회여야 합니다. 이 점에 관하여 토저는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우리 모두가 복음주의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노라면서 바울이 주장한 것이라면 뭐든지 다 받아들인다고 하지만 실상 그의 정신은 받아들이지 않고 있으니 이것이야말로 무의미하다. 우리 중에는 바울의 교리를 받아들이면서도 그의 삶과는 거리가 먼 사람들이 있다. 오늘의 신자들은 그리스도를 받아들인 후에는 논리를 생명과 대치하고 단지 교리로 체험을 대신하려는 경향이 있다.”


39. 기다리던 은혜의 시대


이제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믿는 사람들에게는 진노의 시대가 끝나고 은혜의 시대가 열렸습니다. 구약은 오직 십자가 사건을 바라보며 달려온 역사의 기록입니다. 우리는 참으로 은혜의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믿음의 선진들이 희미하게 보던 구속 사건을 이제 우리는 밝히 보고 있습니다. 누구든지 복음 앞에서 자신의 죄를 참회하고 십자가에서 이루신 일들을 믿는 자에게는 그리스도께서 이루신 의를 주시기 때문입니다.


40.이데올로기를 조심하라


성경은 인간의 선행을 다 같은 것으로 보지 않습니다. 성경은 그 동기가 하나님을 향한 사랑이어야 비로소 그것을 선한 삶이라고 말합니다. 따라서 죄에 대한 진실한 참회와 거기서 비롯되는 용서, 하나님과의 교제의 회복은 없고 오직 도적적인 삶만을 최고 가치로 삼으면서 사는 것은 분명 성경이 말하는 선한 삶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은 한 신자와 하나님과의 영적이고 인격적인 관계를 통하여 생겨나는 것이기에, 선한 삶은 반드시 십자가 아래서 사는 삶을 기초로 해야 합니다.


41.더할 것 없는 십자가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심으로 자유에 이르는 모든 길을 열어주셨습니다. 그러면 이제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합니까? 골고다 언덕에 서 있었던 십자가 아래서, 이렇게 은혜로 용서받은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합니까? 잊지 마십시오. 우리가 십자가에서 이루신 주님의 일에 더해야 할 것은 없습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다만 주께서 십자가에서 이루신 그 일을 누리는 것뿐입니다.


42. 즐거운 노예로


십자가는 감당할 수 없는 하나님의 사랑의 표현입니다. 아들을 못박으시는 십자가 말고 다른 것으로는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을 더 잘 확증하실 수 없었습니다.
우리는 그 십자가를 볼 때마다 주님을 위하여 살 수밖에 없는 사람들임을 자각하게 됩니다. 아무리 무쇠같은 심장을 가진 사람들이라도 피묻은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사랑을 알고 나면 어린이처럼 눈물을 흘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십자가 사랑의 감격으로 흐른 눈물을 닦고 나면 이제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합니까? 어떻게 해야만 십자가의 참사랑을 아는 것일까요? 우리는 죄 없이 죽으심으로 우리에게 생명 주신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자유 하라고 해방하셨으나, 우리는 그 십자가의 사랑에 매임으로써 더 행복해질 수 있다고 믿는 사람들입니다.


43. 십자가, 우주적인 사건


성경은 정오의 햇빛이 찬란할 제육시에 온 땅에 어두움이 임하였다고 말합니다. 어떻게 그 시간에 어둠이 온 땅을 뒤덮게 되었는지 우리는 정확히 확인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고난을 목격하였던 증인들이 이 기이한 어둠을 보았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두말할 나위 없이 하나님께서 기상에 초자연적으로 개입하신 결과입니다. 이러한 자연에 대한 하나님의 개입은 십자가 사건이 우주적인 의미를 지닌 사건임을 말해 줍니다.


44. 찢어질 수 없는 휘장


성소와 지성소 사이를 가리고 있던 이 휘장은 청색 자색 홍색실과 가늘게 꼰 베실로 단단히 짠 것이었습니다. 휘장을 이룬 실 자체가 질기기도 하였지만, 휘장의 직조도 상당히 단단하게 되어 있었습니다. 그래서 큰 황소를 양쪽에 밧줄로 잡아매고 각기 반대편에서 모진 채찍을 하여 달리게 하여도 찢어지지 않을 정도로 질기고 단단했다고 합니다.
이렇게 질긴 휘장이 성소와 지성소 사이를 가르고 있었다는 사실이 보여주는 영적 진리는 아담의 범죄로 인해, 인간이 하나님 앞으로 나아가는 길이 얼마나 굳세게 차단되었는지를 보여줍니다.


45.짖어진 휘장


놀라운 이적이 일어났습니다. 일년에 한 차례, 대제사장 단 한사람을 제외하고는 죄인들의 다가옴을 철저하게 거절하며 드리워져 있던 휘장이었습니다. 오랫동안 말없이 지성소를 지키고 있던 그 단단한 휘장의 한 가운데가 찢어졌습니다. 하나님께서 직접 그 휘장을 찢으셨습니다.
성소와 지성소 사이를 구분 짓던 그 휘장이 아무 소용없게 되어버렸다는 것입니다. 이제 성소와 지성소 사이에는 구별이 철폐되고 모든 제사장들이 아무 거치는 것 없이 하나님의 거룩한 임재가 있는 지성소로 들어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46. 핏길을 지나서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이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게 하려 하심이라 너희가 전에는 백성이 아니더니 이제는 하나님의 백성이요 전에는 긍휼을 얻지 못하였더니 이제는 긍휼을 얻은 자니라”(벧전2:9-10)
사도의 선언과 같이, 우리는 단번에 모든 율법의 거치는 것을 뛰어 넘어 제사장으로 부름을 받았으며, 단숨에 하나님의 보좌 앞으로 달려오도록 초청을 받았습니다.


47. 부르다가 죽을 노래


휘장이 찢어지는 사건은 예수님의 죽으심과 동시에 일어났습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당신의 몸을 완전히 깨뜨리시고 자신 속에 남아 있는 모든 힘과 기운을 다 쏟으시고 십자가에 못 박혀 완전히 죽으셨을 때, 그때에 비로소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당신의 보좌 앞으로 죄인들이 나아올 수 있는 구속의 길을 열어주셨던 것입니다. 아아, 그렇습니다. 그분이 비록 하나님의 아들이시라도 온전히 고난을 받으시고 완전히 죽으신 후에야 그 속죄가 효과를 발했습니다.


48 조국 교회에 필요한 것


그리스도 예수의 십자가의 복음이 전해지고, 복음을 듣는 죄인마다 이 십자가 앞에 참회하는 것 말고는 세상은 희망이 없습니다. 교회는 이 일을 위하여 존재합니다. 하나님의 복음에 귀를 귀울이지 않은 채, 고통스러워 하는 세상을 향한 하나님의 대답은 오직 십자가 뿐입니다. 십자가 없이는 이 모든 세상의 비참한 죄악은 해결의 길이 없는 것입니다. 따라서 이 땅을 고치도록 부름받은 조국 교회에 필요한 것은 금이나 은이 아니라 그리스도 자신입니다. 피묻은 그리스도의 복음에 감격하며 십자가를 삶으로 보여주는 그리스도인들과 그 복음의 능력에 대한 확신에 불붙은 교회가 세상 속에서 소명을 따라 존재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그러한 날이 속히 오기를 기다립니다. ⓒ김남준 (열린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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