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 : 김남준  | 출판사 : 생명의말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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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를 어머니로 여기지 않는 자는 하나님을 아버지로 여길 수 없다 키프리아누스(Cyprianus)보이지 않는 그리스도를 향한 사랑은 보이는 교회 안에서 입증되어야 한다신자는 예수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에 남겨진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에 참여함으로써 교회와 함께 온전해져 가며 그렇게 온전해지는 교회를 통해 세계와 인류를 향한 하나님의 우주적 경륜의 성취에 이바지할 수 있다.김남준 목사가 제시하는 우리 시대를 위한 진짜 교회론교회를 향한 비판과 개혁의 요구가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으나, 예수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에 대해 제대로 알지 못하고 던지는 맹목적인 비판은 교회도 세상도 바꿀 수 없다. 어떻게 해야 하나님 …[더보기▶]




김남준 목사님의 <교회와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읽으면서 각 챕트마다 일부분을 옮겨적었습니다.
가능하면 읽어보는 것으로 만족하시고 죽 긁어다가 다른데로 옮기는 것은 좀 삼가해 주시길 바랍니다.
저작권 문제 때문에 글이 여기저기 복사되는 것을 원하지 않습니다. 아시겠지요?
햇볕같은이야기 5876-5930호까지 한편씩 나눈 글입니다. -최용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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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그리스도인은 흑암의 권세에서 옮겨진 자(골1:13)


여기서 권세는 형식적이고 상징적인 권세가 아니라 실질적으로 명령하고 그 명령에 굴복시킬 수 있는 힘이다. 흑암은 사상적인 어둠과 윤리적이 어둠을 말하는데, 사상적인 어둠이 무지와 오류의 상태라면 윤리적 어둠은 진리가 없음으로 말미암은 인간내면의 도덕적 부패다. 그리스도인은 빛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의 나라로 옮겨진 사람이다.


2.그리스도인은 속량, 곧 죄 사람을 얻은 자(골1:14)


그리스도인은 죄 사함을 받은 사람이다. 이 죄사함은 자신의 힘이나 공로가 아니라 속량을 통해서 이루어졌다. 우리는 죄의 노예로 팔린 사람이었으나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라는 속전을 지불하시고 우리를 사서 죄의 사슬에서 해방시켜 주셨다.


3.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의 일부(골1:18)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의 일부이다. 모든 세계는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창조되었고 그리스도께서는 창조와 구속, 완성에서 중보자가 되셨다. 하나님 나라의 완성은 궁극적으로 교회를 통해 성취될 것인데, 그리스도인은 교회의 머리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몸으로 부름 받은 존재이다.


4.하나님께서 거룩하게 하심


성도는 이미 거룩하게 된 사람이자 동시에 계속 거룩해져 가야 할 사람이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거룩하게 하시려는 이유는 우리가 그 거룩함 안에서 가장 행복할 수 있기 때문이다.


5.하나님께서 흠이 없게 하심


하나님께서 말씀으로 우리의 결점을 정확히 짚어내어 고쳐 가시는 것은 우리를 위해서이다. 인생의 불행은 하나님과의 잘못된 관계에 있고, 그것은 인간 본성 안에 작용하여 일그러진 성품으로 살게 한다. 오직 하나님만이 우리를 변화시켜 흠이 없게 바꾸어 가실 수 있다.


6.하나님께서 책망할 것이 없게 하심


우리가 이 세상에서 책망할 것이 없는 완전함을 이루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끊임없이 온전함을 추구해야 한다. 그것이 하나님과 이웃 앞에서, 우리가 받은 구속의 은혜에 부끄럽지 않은 삶이다.


7.구원의 계획에 부합하게 살아가려면- 믿음 안에 거해야


믿음은 구원을 얻을 때 필요한 단회적인 작용이 아니라, 매 순간 신자의 본성 안에서 작용되어야 할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지속적인 반응이다.


8.구원의 계획에 부합하게 살아가려면- 터 위에 굳게 서야


우리가 믿는 바에 대한 확고한 지식과 견고한 체계 위에 우리의 신앙이 서 있어야 한다. 우리는 진리에 대한 지식과 하나님을 향한 사랑에 뿌리박은 견고함 속에서 구원 계획에 부합한 삶을 살 수 있다.


9.구원의 계획에 부합하게 살아가려면- 흔들리지 않아야


비록 우리 눈앞에서 비관적으로 삶의 상황이 전개될지라도 복음이 주는 소망을 붙들고 흔들리지 않고 살아간다면, 우리는 그리스도의 몸의 한 지체로서 하나님의 우주적인 구원의 성취에 참여하게 될 것이다.


10.교회를 위한 소명은- 겪음, 피동적 고난


사도는 자신이 받는 괴로움을 ‘너희를 위하여 받는 괴로움’이라고 했다. 이 괴로움은 그가 존재론적으로 세상과 다르게 겪는 괴로움이었다. 신자의 삶은 교회 밖에서나 안에서나 ‘겪음’의 연속이다. 우리의 삶에 그러한 괴로움이 없다면 그것은 우리가 세상과 다른 존재가 되지 못하였을 뿐 아니라 세상과 타협하며 지내기 때문이다.


11.교회를 위한 소명은- 몸의 고난에 참여함


예수님을 믿고 구원을 받는다는 것은 고난 받는 그리스도의 몸의 일부가 된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그 고난을 그리스도의 몸을 온전케 하는데 사용하시는데, 여기에는 그리스도를 본받는 믿음이 요구된다.


12.교회를 위한 소명은-구원의 계획을 따라 살아감


그리스도인이 되었다는 것은 구원과 함께 깨닫게 된 세계에 대한 하나님의 경륜을 따라 산다는 것이다.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은 교회의 운명에 참여하는 것을 말한다. 그리스도의 몸의 한 세포로서 이 세상에서 온갖 고난에 참여하고 수많은 고통과 괴로움을 인내해야 하는 것이다.


13.그리스도의 몸을 위한 고난


신앙에서 올바름과 열정은 마차의 두 바퀴와 같다. 올바름 없는 열정은 이교적 신앙이고, 열정이 없는 올바름은 생명 없는 바리새주의이다. 종교개혁자들이 구원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써만 주어지는 것이라고 부르짖은 것은 중세의 영적 어둠에서 참된 기독교를 다시 발견한 것이었다. 이로써 이신칭의(二身稱義)의 개신교 교리가 확립될 수 있었다.


14.사도 바울의 고백은


구원이 개인적인 것처럼 보이나 영적으로 그리스도의 몸에 접붙여져 공동체의 일부가 되는 일인 것처럼, 성화도 개인

의 영혼의 정화만을 의미하는 것처럼 보이나 영적인 그리스도의 몸 전체를 온전하게 하는 일이다.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교회를 위해 자신의 육체에 채우겠다고 한 사도 바울의 고백은 바로 이러한 맥락에서 나온 것이다.


15.자신이 고안한 종교


기독교는 혼자 믿는 종교에 대해 아는 바가 없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구원을 얻은 사람은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의 일부가 된다. 이것은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기독교 신앙을 고백하면서도 교회 공동체 속에 소속되기를 거부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이것은 성경과 기독교 신앙에 대한 바른 이해가 현저히 부족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어떤 의미에서 그는 성경이 가르쳐주는 기독교가 아니라 자신이 고안한 종교를 믿고 있는 것이다.


16.교회에 현실적인 고난이 있는 이유-교회 밖으로부터


완전한 머리이신 그리스도가 계심에도 불구하고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가 현실적으로 고난을 겪어야 하는 이유는, 교회는 세상과 다른 사상, 다른 윤리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17.교회에 현실적인 고난이 있는 이유-교회 안으로부터


교회가 고난을 받는 이유는 바로, 그 몸의 불완전함과 내적 분쟁 때문이다. 교회의 불완전함은 지식과 사랑의 불완전함이다. 지식에 있어서 불완전하면 오류에 익숙해져서 악을 행하는 것을 깨달은 바 선을 행하는 것보다 더 쉽게 생각하고, 사랑에 있어서 불완전하면 지체들에게 아픔을 주고 교회에 상처를 남긴다. 교회 분쟁은 이기심과 교만과 영원에 대한 무관심 때문에 일어난다.


18.그리스도의 영적인 몸으로서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


신자로 하여금 자신을 개별적 존재가 아니라 그리스도의 몸의 일부로 인식하게 만들어주는 것은 사랑이다. 그리스도인의 모든 삶은 교회와 한 몸을 이루면서 사는 것이기에 우리의 선한 일은 개인적인 일인 동시에 몸 전체가 하는 일이고, 그리스도의 중보를 통해서 하나님께 봉헌된다.


19.그리스도인의 참된 행복은 참된 신자가 되는 것입니다.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에게 교회는 무엇일까요? 구원받은 신자임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깨우치지 못한 무지와 빗나간 열정으로 교회와 올바른 관계를 설정하지 못한 채 살아가는 것을 보면 가슴이 미어집니다. 왜냐하면 비록 구원을 받았다고 할지라도 그러한 삶은 하나님께서 그들을 구원해 주신 우주적 삶의 경륜을 따르는 삶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20.성경은 그리스도인의 진정한 행복을


교회와 함께 지어져 가는데서 찾습니다. 우리는 이미 구원을 얻고 죄악 된 세상에서 하나님의 나라로 옮겨졌습니다. 무한한 죄를 용서받았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자녀로 입양되었습니다. 이러한 점에서는 이미 완전한 성도들입니다. 그렇지만 아직까지는 우리는 불완전한 세상 속에서 죄인들과 함께 살아가고 있습니다.


21.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인간의 행복을 위해 창조하셨다고 말하려면 그 행복이 무엇인지 규명해야 합니다. 만약에 그 행복이 이 세상에서 쾌락을 즐기고, 부당한 권력으로 많은 사람위에 군림하고, 자원을 무분별하게 사용하고, 자연환경을 파괴해서 얻는 미친 행복이라면, 그러한 행복을 위해 하나님께서 세상을 창조하셨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22.인간은 누구나 행복하기를 소망합니다.


유사 이래 인간이 가장 많이 던진 철학적 질문은 인간의 행복에 대한 것입니다. 그런데 참된 행복은 삶의 우연적 양태 속에서 발견되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것은 인간이 자신의 존재 목적을 분명하게 알고 그것을 따라 살아갈 때 성취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신자의 행복은 그의 소명 안에서 발견됩니다.


23.직업 선택


우리가 어떤 직업을 선택해서 살지는 개인의 자유에 속하는 부분입니다. 도덕적으로 문제만 없다면 판사를 하던 사람이 그만두고 철학 교수가 될 수도 있고, 의사 면허를 가진 사람이 제빵사가 될 수도 있습니다. 그 직업에 임하는 자세와 됨됨이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기에 충분한지가 문제이지, 그 직업이 무엇인지는 그리 중요하지 않습니다.


24.무시할 수 없는 사람


여러분은 주변에서 높은 지위나 부(富)를 가진 것도 아닌데 무시할 수 없는 존재의 울림이 있는 사람을 본 적이 있을 것입니다. 이것은 그가 가진 어느 한 가지 요소 때문이 아닙니다. 순수하고 아름다운 영혼과 함께 그의 기질, 성향, 감정, 지식, 의지의 행사 등 모든 것들이 조화를 이루면서 덕스럽기 때문입니다.


25.교회의 소명은


교회의 소명은 교회다운 교회가 되어서 이 세상에 존재의 울림을 들려주는 것이고, 신자의 소명은 그리스도의 몸에 아름다운 지체가 되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교회와 신자가 맡은 바 소명을 모두 감당하며 살아가고 있을 때, 그 안에서 신자의 진정한 행복이 발견됩니다. 그때 교회는 시대를 향하여 장중하게 진리를 선포할 수 있게 됩니다.(벧전2:9)


26.그리스도의 남은 고난


부부도 살기 싫으면 이혼하고 부모도 마음에 들지 않으면 의절하는 세상입니다. 교회도 분란이 잦으면 차라리 떠나버리는 게 낫다고 생각하는 신자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진정으로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를 사랑한다면 그렇게 말할 수 없습니다. 사랑하면 사랑하는 대상이 당하는 고난을 외면하거나 무관심해질 수 없습니다. 교회가 겪는 고난에 신자가 참여하지 않는 것은 그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향한 사랑이 없기 때문입니다.


27.그리스도인의 정체성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은 교회 안에 있다는 것만으로 유지되지 않는다. 불결한 옛 성품으로부터 끊임없이 순결해져 가는 개인적인 성화의 과정이 필요하다. 그 개인적인 성화의 총화가 현실교회의 거룩함을 유지한다.


28.육체에 채우는 고난


육체에 고난을 채운다는 것의 의미는 무엇인가요? 육체는 ‘죄에 오염된 육체’, ‘옛 사람의 성품’을 의미하고, ‘채우노라’는 ‘바깥에서 쑤셔 넣듯 집어넣어 채우는 것’이 아니라 ‘안으로부터 꽉 차오르도록 채우는 것’을 의미한다. 즉, 육체에 고난을 채운다는 것은 자신의 부패한 본성 안에 있는 죄된 성향에 죽음을 채운다는 의미이다.


29. 하나님의 섭리를 믿음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은 우리의 삶에 어떻게 실재화될까요? 어떠한 고난을 만나든지 사람과 환경 너머에 있는 하나님의 선하심을 바라보면서 이 고통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나를 온전하게 하시고 그리스도의 교회를 순전하게 하시리라는 믿음을 가져야 한다.


30.십자가 고난을 묵상함


그래서 십자가의 고난을 묵상해야 한다. 묵상은 머리에 있는 것을 마음으로 내려 보낸다. 우리는 십자가 고난을 묵상하며 불순종과 악을 미워하게 된다. 그리고 자신이 겪는 고통에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을 투사하게 된다. 이때 열렬한 기도도 나온다.


31.성령으로 육신을 죽임


죄를 죽이는 주체는 성령이시다. 열렬한 기도 속에서 우리는 성령에 힘입어 자신의 죄 된 성향을 죽일 수 있다.


32.그리스도와 함께 부활함


육신의 정욕이 죽는 것을 경험하게 될 때 그리스도와 함께 부활하는 영적인 체험을 누리게 된다. 이것은 그리스도께서 죽고 다시 사신 것처럼 죄 된 육체가 하늘의 새 성품으로 다시 살아나는 것을 말한다. 이때 신자는 그리스도와의 깊은 사랑의 연합을 이루면서 그리스도를 뜨겁게 사랑하는 착한 마음이 솟아오른다. 이러한 그리스도를 향한 사랑은 곧 교회를 향한 사랑을 불러일으킨다.


33.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의 실재화


는 복음적 경건의 심장부라 할 수 있다. 이 경험 없이는 그 누구도 온전한 그리스도인이 되어 갈 수 없다. 우리의 죄성 안에 그리스도의 고난 뒤에 남은 것들을 가득 채움으로써 자기 중심적인 삶을 버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실제적 연합 속에서 살아가자.


34.일꾼으로 부르심


자신의 소명에 대한 사도의 인식은 너무나 명료해서 그 어떤 모함도 발견할 수 없다. 사도는 하나님께서 자신을 ‘교회의 일꾼’으로 부르셨다고 말한다. 여기서 우리는 그가 자신의 소명을 교회와 따로 떼어 생각하지 않음을 알 수 있다. 우리는 교회와 한 몸이라는 인식 속에서 우리의 소명을 발견해야 한다.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몸을 위한 일꾼으로서의 자각이 생기기 전까지는 그리스도인의 삶을 절반만 얻은 것이다.


35.신적 경륜을 따른 부르심


사도는 자신이 일꾼으로 부름 받은 것은 하나님의 경륜을 따른 것이라고 말한다. 여기서 경륜은 인류에 대한 하나님의 구원 계획의 성취이자 하나님께서 이 세상에 당신의 영광을 충만하게 나타내시는 것이다.(엡1:9, 3:9) 이 경륜을 위하여 하나님께서는 사도를 부르셨고 교회를 세우셨다.


36.하나님의 말씀을 이룸


교회를 세우신 경륜의 목적을 사도는 “하나님의 말씀(일)을 이루려 함이니라.”라고 말한다. 타락한 인류를 구원하기 위한 하나님의 계획은 아담에게 계시되었다. 그 구원의 계시는 시간의 흐름에 따라 점점 더 풍성해졌고, 결국에는 교회의 출현으로 나타났다. 하나님께서 한 사람에게 주신 경륜은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를 세우는 것과 관련이 있고, 교회를 온전케 하시려는 경륜은 곧 이 세상을 창조하신 목적의 완성과 관련이 있다. 하나님의 경륜을 이루시는 하나님의 방법은 교회가 진리의 빛을 즐거워하며 그 빛 안에서 사는 것이다.


37.목자와 성도의 연합


헬라어 원문에서 경륜은 “너희 속으로 내게 주어졌다.”라고 말하고 있다. 우리말 성경에는 “너희를 위하여 내게 주신”으로 되어 있는데, 여기서 ‘위하여’ 즉, ‘속으로’는 사도와 골로새 교인들이 하나 되어서 하나님의 경륜의 성취를 위한 소명을 함께 성취해 나가는 것을 보여준다.


38.오랫동안 감춰진 비밀


성경은 “이 비밀은 만세와 만대로부터 감추어졌던 것”이라고 말한다. 여기에서 ‘만세와 만대’는 ‘시대들과 세대들’로 번역할 수 있다. 이것은 수많은 시대와 세대를 품고 있는 장구한 세월 곧 영원동안 있는 것이 하나님의 경륜이라는 것과 그것이 또한 그 장구한 세월동안 감춰져 있었음을 보여준다. 하나님의 경륜은 이미 창조 전에 하나님의 지성 안에 있었다. 인류의 역사 속에서 탁월한 지성인들이 집요하게 세계와 인간의 존재의 의미를 물었지만, 답을 찾지 못한 이유는 ‘하나님의 지혜’에 대한 깨달음이 없었기 때문이다.


39.비밀스런 경륜


하나님의 넘치는 아름다움과 사랑이 이 세계를 창조하게 하셨고, 창조된 세계는 하나님을 의지함으로써 온전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인간은 타락하여 더 이상 자기 지혜로 하나님을 바르게 알 수 없게 되었다. 하나님이 누구신지 그분이 왜 이 세계를 만드셨는지 알 수 없었기에, 자기가 무엇을 위해 태어났는지도 알 수 없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 세계를 창조하신 목적을 포기하지 않으셨고, 하나님의 위대한 경륜은 마침내 그리스도를 통해 밝히 드러났다. 세계를 향한 하나님의 경륜에 대한 지식은 개신교의 지적 전통 안에 잘 간직되어 있다. 우리는 이 비밀스러운 경륜에 대한 지식과 사랑에서 계속 성장해야 한다.


40.그의 성도들에게


교회의 영광은 지식과 사랑의 영광이다. 이 세상의 지혜로운 자들에게는 숨겨진 비밀이 ‘그의 거룩한 자들’, 성도들에게는 밝히 나타났다. ‘거룩함’은 ‘분리됨’을 의미한다. 우리는 예전에 세상과 한 덩어리였으나 예수 그리스도를 향한 믿음을 통해 그분과 연합되었다.(롬11:17). 성도란 얼마나 놀라운 지위인가?


41.밝히 나타남


성경은 “이제는 그의 성도들에게 나타났고”라고 말한다. 여기서 ‘나타났고’는 ‘이 세계의 경륜에 관한 비밀이 이미 과거에 모든 사람이 볼 수 있도록 밝히 드러났다.’, ‘그 일은 하나님에 의해 벌써 성취되었다.’는 의미이다. 그러나 이것은 구약에 비해서 명백하다는 의미이지, 인간 이성으로 신적 경륜을 알 수 있다는 것은 아니다. 이 위대한 비밀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주어진다.(마16:17). 성도는 하나님을 사랑함으로 영원의 세계에 눈을 뜨게 된 사람들이다.


42.비밀의 영광의 경륜


성도는 창조와 구속, 완성에 대한 하나님의 경륜의 비밀을 안 사람들이다. 그러나 성도라고 해서 이 비밀을 충분히 안 것은 아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성도들이 이 비밀을 아는 지식에서 점차 자라기를 원하신다. 성경이 ‘비밀의 영광’이라고 말하는 것은 그 비밀을 알면, 그 비밀 이외의 것들은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처럼 여기게 되기 때문이다. 여기서 ‘영광’이란 ‘그것을 지닌 사물의 중요성과 가치가 너무나 눈부셔서 다른 것들의 의미나 기적을 빛바래도록 만드는 그 무엇’이다.


43.이방인 가운데 풍성함


하나님께서는 그 비밀의 영광의 풍성함이 이방인에게 알려지기를 원하셨다. 유대인들에게는 선민사상이 있었으나 하나님의 생각은 다르셨다. 육적인 이스라엘은 영적인 이스라엘이 태어날 때까지 한시적으로 필요하였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던 순간 성소의 휘장이 찢어진 사건은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의 효과를 믿으면 아버지의 보좌 앞으로 나아가서 하나님을 만날 수 있음을 의미한다.


44.그 비밀이신 그리스도


그 비밀은 그리스도이셨다. 사도는 그리스도를 ‘골고다 언덕에서 십자가에 못 막힌’ 그리스도라고 하지 않고 ‘너희 안에 계신’ 그리스도라고 말한다. 왜냐하면 그의 마음속에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살아계셨기 때문이다. 우리는 세계와 인간과 역사가 짜는 직조물 위에 놓여있는 존재로, 그 위에서 인생의 의미를 물어야 한다. 이 세 가지의 경륜을 커다란 창고에 들어있는 물건이라고 한다면 그 창고의 문을 여는 열쇠는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그러므로 신자의 일생은 그리스도를 알고 사랑하고 섬기며 살아가는 살밍어야 한다. 또한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신자인 우리에게도 여전히 ‘비밀의 영광’이시다.


45.그 소망이신 그리스도


성도의 소망은 예수님 때문에 잘 먹고 잘 살고 성공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가 이 세상에 이루어지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바로 이 일을 위해서 교회를 세우셨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교회의 머리가 되시기에 ‘영광의 소망’이시다.


46.교회의 사명


성도는 영화의 상태에 이르러서야 완전해질 수 있다. 그러나 이 땅에서도 끊임없이 완전을 향해 나아가야 한다. 그것이 신자의 성화이다. 성화의 주체는 성령이시다. 우리는 그리스도를 푯대로 삼아 신자로서의 온전함, 곧 성숙함으로 나아갈 수 있다. 교회의 중요한 사명은 성도들을 온전한 사람으로 세우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성경을 주신 목적은 불신자들은 구원의 지혜에 이르게 하고, 신자들은 인격과 생활에서 온전해지게 하기 위함이었다.


47.교회는 어떤 섬김을 통해 성도를 온전하게 할 수 있을까요?


성경은 “그를 전파하여 각 사람을 권하고 모든 지혜로 각 사람을 가르침은” 이라고 말한다. 헬라어 성경은 ‘권한다’와 ‘가르친다’를 동시적인 행동을 가리키는 분사로 표현했다. 즉, ‘권하면서 가르치면서 선포하는 것’이 교회를 온전케 하는 성도의 섬김이다.


48.그리스도를 선포함


그리스도를 선포하는 것이 성도를 성숙하게 하는 일에 어떻게 도움이 될까? 이것은 두 가지로 설명될 수 있다. 첫째로, 그리스도를 선포하지 않으면 사람들이 더 이상 교회에 들어오지 않기 때문이다. 둘째로, 그리스도가 누구신지를 앎으로써만 신자는 온전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49.모든 사람을 권면함


‘권한다’는 표현에는 ‘정신을 제자리에 두다’ 라는 의미가 있다. 세상에서 만나는 수많은 사건들은 우리의 마음을 굳어지게도 하고, 생각을 올바른 자리에서 이탈시키기도 한다. 목양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어떤 분이시고 그분이 이 세계의 경륜과 어떤 관계가 있는지에 대한 지혜를 통해 이탈하는 성도들의 정신을 제자리에 돌아오게 하는 것이다.


50.모든 사람을 가르침


‘가르친다’는 것은 무엇인가 사람들이 몰랐던 것을 알게 하거나 잘못 알고 있는 것을 올바로 잡아주는 것을 가리킨다. 진리는 억지로 머릿속에 집어 넣어줄 수 있는 것이 아니지만, 먼저 하나님의 사랑을 깨달은 지체들은 어떻게든 다른 지체들에게 진리를 전해주고자 애를 쓴다.


51.섬김


성도는 교회를 사랑하기 위해 교회 안에서 교회와 함께 태어난 하나님의 자녀이다. 우리가 보편 교회에 대한 사랑을 개별 교회에 대한 사랑으로 구체화하여 보이는 교회의 지체들이 온전해지도록 섬겨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52.삼위일체 하나님의 신비


삼위일체 하나님의 신비를 설명해 줄 수 있는 완전한 유비는 이 세상에 없다. 그래서 교회 역사상 세 위격이시면서 동시에 하나의 신적 본질이신 하나님을 설명하고자 고안했던 모든 유비는 그 목적을 달성하는 데 실패하였다. 그러나 지상 세계뿐만 아니라 천상 세계에서조차 존재하는 모든 사물들 중 불완전하게나마 하나님을 본뜨지 않은 것은 없다.


53.생명과 사랑


탁월하게 삼위일체 하나님의 존재 양식을 생각나게 하는 것이 둘 있는데, 인간의 영혼과 교회이다. 그리스도의 몸으로서 교회는 삼위가 서로 다른 위격이면서도 하나의 신적 본질 안에 연합하시는 것처럼, 지체들이 서로 다른 개별자이면서 영적으로 하나를 이룬다. 그리고 그 교통의 본질은 생명과 사랑이다.


54.분투하는 신앙


사도 바울의 공동체적 소명에 대한 언급은 성도들을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한 자로 세우는 일에 대한 자기 고백으로 끝을 맺는다. “이를 위하여 나도 내 속에서 능력으로 역사하시는 이의 역사를 따라 힘을 다하여 수고하노라.”(골1:29) 여기서 우리는 아무리 좋은 교회라고 해도 삶에서 실천하고 적용하려는 분투함이 없다면 충분하지 않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우리가 진리에 대해 말하려면 입술에 침만 바르면 되지만, 그것을 자신에게 적용하려면 때로는 죽기까지 해야 한다.


55.그리스도인의 빛 된 생활


진리는 그것을 우리의 삶에 실천하고 적용하는 고통을 겪으면서 우리의 피와 살, 곧 우리 자신의 일부가 된다. 한 사람이 진리에 대한 짧은 가르침으로 듣는 이들의 심금을 울리기 위해서는, 그 자신이 이미 가혹할 정도로 긴 세월 동안 그 진리 때문에 살을 찢는 고통과 작열하는 환희를 겪은 사람이어야 한다. 그렇게 우리의 일부가 된 진리를 삶을 통해 세상 사람들에게 증언하는 것이 바로 그리스도인의 빛 된 생활이다. ⓒ김남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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