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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씨와 도둑>은 최용우 개인 책방의 이름입니다. 이곳은 최용우가 읽은 책의 기록을 남기는 공간입니다. 최용우 책방 구경하기 클릭! |
저자 : 김남준 | 출판사 : 생명의말씀사 판매가 : 7,000원 → 6,300원 (10.0%, 700↓) ▒ 거룩한 삶을 위한 능력, 교리묵상 - 하나님의 용서 하루를 시작하는 또 하나의 방법, 김남준 목사와 함게 하는 교리묵상!아름다운 삶은 진리에 대한 진지한 숙고와 적용을 통해 흘러 나옵니다.------------------------------------------------------------------------------묵상이란 하나님의 진리를 가슴에 새겨 날마다 그분을 알가고 날마다 그분과 연합되는 것입니다.그래서 날마다 세상이 감당할 수 없는 사람이 되어 가는 것입니다.------------------------------------------------------------------------------하나님의 용서를 경험하지 못했다면 그 사람은 아무 희망이 없는 사람입니다. 독수리처럼 태양을 마주…[더보기▶] |
김남준 목사님의 <하나님의 용서>을 읽으면서 각 챕트마다 일부분을 옮겨적었습니다.
가능하면 읽어보는 것으로 만족하시고 죽 긁어다가 다른데로 옮기는 것은 좀 삼가해 주시길 바랍니다.
저작권 문제 때문에 글이 여기저기 복사되는 것을 원하지 않습니다. 아시겠지요?
햇볕같은이야기 5931-5991호까지 한편씩 나눈 글입니다. -최용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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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빛의 자녀인 그리스도인이
깊은 어두움 가운데 놓이기도 하는 것은 하나님의 용서를 경험하지 못하였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선사받은 용서라는 갚진 선물을 지식의 창고 속에 넣어 둔 채 바라만 보고 있어서는 안 됩니다. 용서는 경험으로 배우는 진리이기 때문입니다.
2.구원받은 신자도
하나님께로부터 버림받은 것 같은 거절감에 휩싸일 수 있습니다. 우리는 성경에서 하나님 앞에 은혜를 많이 받았지만, 커다란 영혼의 침체를 경험하고 가혹하리만치 긴 세월을 영적 어두움 속에 허덕였던 사람들을 만나게 됩니다.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혹시 여러분도 그들처럼 영홈의 깊음 속에서 허덕이고 잇지는 않습니까? 여러분도 모르는 사이 영혼의 깊음 속으로 미끄러져 들어가고 있지는 않습니까?
3.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감각의 상실
영혼의 깊음 속에서 나타나는 현상은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감각의 상실입니다. 하나님과 누리는 사랑으로 말미암은 ‘말할 수 없는 기쁨’이 여러분의 영혼 안에 있습니까?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감각이 사라져가고 있는 것은, 여러분의 영혼이 심각한 위험 가운데 놓여 있다는 증거입니다.
4.생각의 혼란
영혼의 깊음 속에서 나타나는 현상은 생각의 혼란입니다. 영혼의 깊음 속에서는 엄청난 생각의 혼란이 덮쳐옵니다. 이런 혼란들에 스스로 사로잡힌다면, 그것은 더 큰 혼란을 자초하는 일이 될 것입니다. 머릿속에서 일어나는 생각이 아무리 많아도, 그 생각이 정돈되지 않은 것이라면 그것은 아무 쓸모가 없음을 명심하십시오.
5.정죄감
영혼의 깊음 속에서 나타나는 현상은 하나님의 진노를 받으리라는 정죄감입니다. 죄를 붙들고 있는 한, 정죄에 대한 커다란 두려움에서 벗어날 수는 없습니다. 그러므로 죄로 인해 영혼의 깊음 가운데 빠진 신자에게는 평강이 없습니다.
6.영혼의 깊은 고통
영혼의 깊음 속에서 나타나는 현상은 영혼의 깊은 고통입니다. 깊음 속에 있는 영혼은 커다란 고통만 있을 뿐 어떠한 위로도 없습니다. 여러분의 영혼은 어떻습니까? 혹시라도 영혼의 깊음 가운데 있는 것은 아닙니까?
7.생기 없고 무능한 삶
영혼의 깊음 속에서 나타나는 현상은 생기 없고 무능한 삶입니다. 영혼의 깊음 속에서는 하나님으로부터 공급되는 영적 자원을 누릴 수가 없기에, 하나님께서 주신 사명을 따라 생기 있고 유능하게 살아갈 수 없습니다. 그래서 영혼의 깊음 가운데 놓인 사람들은 하늘 자원을 누리며 활기차게 살아가는 사람들을 보면서, 마치 휠체어에 앉아있는 사람이 건강한 사람들의 운동하는 모습을 보며 느끼는 소외감 같은 것들을 경험하게 됩니다.
8.하나님의 용서
신자가 영혼의 깊음 속으로 떨어지는 것은 죄 때문이며, 그 깊음으로부터 구원받는 유일한 길은 하나님의 용서입니다. 신자가 구원의 복된 상태에서 멀어져 영혼의 깊음 가운데로 떨어지는 것은 죄 때문입니다. 죄로 인해 영혼의 깊음 가운데로 떨어진 신자의 유일한 희망은 하나님의 용서하시는 은혜입니다.
9.하나님의 사랑과 자비 아래서 범하는 죄
일상적인 죄라 할지라도 하나님의 사랑과 자비 아래서 범죄 하는 경우 영혼의 깊음 가운데 떨어집니다. 하나님의 특별한 사랑을 경험하셨습니까? 그렇다면 여러분은 이제 예전과 다른 존재입니다. 여러분에게는 은혜 받기 이전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커다란 사명과 책임이 주어졌기 때문입니다.
10.강한 확신에서 이탈하여 범하는 죄
일상적인 죄라 할지라도 강한 확신에서 이탈하여 범죄 하는 경우 영혼의 깊음 가운데 떨어집니다. 일상적인 죄라 할지라도, 그것이 하나님을 슬프게 하는 죄임을 강하게 확신하는 가운데 행한 범죄라면 하나님께서는 매우 가혹하게 다루십니다. 이것이 곧 하나님 자신에 대한 반발이기 때문입니다.
11.헌신을 위한 탁월한 기회와 은사를 외면할 때
헌신을 위한 탁월한 기회와 은사를 외면할 때 영혼의 깊음 가운데 떨어집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헌신할 수 있는 탁월한 기회와 은사를 주실 때 그것을 외면하지 마십시오. 그렇지 않으면 어느 한 순간에 우리의 영혼이 깊음 속에 떨어질 수도 있습니다. 신자에게는 영원히 내 것이 없습니다. 신자의 모든 소유는 하나님의 것입니다. 불안과 불신은 실천이 없는 은사의 녹(綠)을 먹고 자라는 벌레임을 잊지 마십시오.
12.특별한 경고 후에 범죄 하거나
특별한 경고 후에 범죄 하거나, 큰 파장을 불러일으키는 죄를 범할 때 영혼의 깊은 가운데 떨어집니다. 혹시 죄의 크기만 재고 있지는 않습니까? 일상적인 죄라 할지라도 그것이 거듭되는 경고에도 불구하고 행한 범죄이거나, 커다란 파장을 몰고 올 범죄라면 하나님께서는 심각하게 다루십니다. 하나님께 중요한 것은 죄 자체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13.언약관계가 인간의 의지를 초월하지 않음
구원받은 신자임에도 깊음 속에 떨어질 수 있는 것은 언약 관계가 인간의 의지를 초월하여 역사하지는 않기 때문입니다. 새 언약 속에서 구원을 얻게 된 신자에게 하나님께서는 은혜의 공급을 약속하셨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이제 영원히 미끄러지지 않는다는 보증은 아니었습니다. 그 어떤 언약 관계도 우리의 의지와 관계없이 초월적으로 역사하지는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죄를 짓지 않고자 하는 신자에게 죄를 이길 수 있는 힘을 공급해 주시는 것입니다.
14.신자에게도 죄의 유혹이 강하게 역사하기 때문
구원받은 신자임에도 깊음 속에 떨어질 수 있는 것은 신자에게도 죄의 유혹이 강하게 역사하기 때문입니다. 구원을 받았다 해도 신자에게는 여전히 양 극단의 삶이 모두 가능합니다. 순종의 여부에 따라 배교자와 같은 삶을 살 수도, 죄를 이기며 하나님을 영화롭게 할 수도 있는 것입니다. 순종하여 살고 계십니까?
15.순종을 담보로 죄를 이길 능력을 주심
구원받은 신자임에도 깊음 속에 떨어질 수 있는 것은 죄를 이길 능력은 순종을 담보로 주어지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흔히 거룩한 사람을 죄와 무관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는데, 사실 그러한 사람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습니다. 거룩한 사람이란 모든 사람 중에서 죄에 대해 가장 예민하게 반응을 보이며 은혜로 죄를 이기고자 애쓰는 사람입니다.
16.하나님의 주권적인 지혜
구원받은 신자임에도 깊음 속에 떨어질 수 있는 것은 우리를 새롭게 하시려는 하나님의 주권적인 지혜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특별한 지혜 아래, 때때로 우리를 깊음 속에 두십니다. 참된 신자이십니까? 그렇다면 비록 지금 하나님을 떠나 영혼의 깊음 속에 떨어져 있다 할지라도, 이내 사유하시는 은혜를 바라며 하나님 앞에 간절히 나아오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그 쓰라린 경험을 교훈삼아, 쉽게 죄의 유혹 앞에 쓰러지지 않는 보다 강한 하나님의 군사가 될 것입니다.
17.하나님의 용서만이
하나님의 용서만이 영혼의 깊음 가운데에서 우리를 건져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느껴지지 않는 영혼의 깊음 속에 계십니까? 사람이나 세상이 여러분의 상태를 개선시켜 줄 수 있다고 기대하지 마십시오. 하나님 밖에서 나오는 모든 것은 구원의 능력이 없는 허무한 위로일 뿐입니다. 영혼을 깊은 어두움 속에서 건져내는 능력은 오직 하나님께만 있습니다.
18.죄의 자각
하나님의 사유하심을 경험하기 위해서는 죄를 자각하여야 합니다. 죄에 대한 개별적이고 경험적인 자각을 가진 신자는 하나님 앞에 깊이 회개하며 자신을 이 깊음 속에서 건져주시도록 간절히 기도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19.죄를 정직하게 인정
하나님의 사유하심을 경험하기 위해서는 죄를 정직하게 인정해야 합니다. 자신의 죄를 정직하게 인정하고 계십니까? 뼛속 깊이 자리한 죄악 된 본성은 우리의 힘으로는 결코 고칠 수 없는 것임을 인정하고 계십니까? 하나님의 용서 밖에는 자신에게 소망이 없음을 인식하고 계십니까?
20.자기 정죄
하나님의 사유하심을 경험하기 위해서는 자기 정죄가 있어야 합니다. 죄의 자각과 죄에 대한 정직한 인정과 자기 정죄는 죄로 말미암아 영적인 깊음 가운데 빠졌던 사람들이 하나님의 용서로 나아올 때 일어나는 영혼의 움직임입니다. 이 움직임들을 통해서 깊음 가운데 있는 신자가 본격적인 용서의 길로 나아오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내면에서 이러한 영혼의 움직임들이 일어나고 있습니까?
21.자포자기
죄를 확신한 신자가 떨어지기 쉬운 악은 자포자기입니다. 항복하지 마십시오. 우리에게는 끝까지 인내하는 태도가 필요합니다.
22.안주
죄를 확신한 신자가 떨어지기 쉬운 악은 안주입니다. 죄를 확신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안주라는 악에 빠져, 하나님의 용서를 경험하지 못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23.자기 의의 추구
죄를 확신한 신자가 피해야 할 위험은 자기 의의 추구입니다. 죄를 확신하였다고 해서 모두가 하나님의 용서로 나아오는 것은 아닙니다. 죄를 확신한 신자들 앞에, 생각보다 많은 함정과 위험이 도사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죄의 확신이 그릇된 결과를 가져오는 것을 막기 위해, 우리가 피해야 할 첫 번째 위험은 자기의의 추구입니다. 자기 의를 버리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 붙드십시오. 그것이 하나님의 용서를 통해 참된 화목으로 나아가는 비결입니다.
24.열렬함이 없는 기도
죄를 확신한 신자가 피해야 할 위험은 열렬함이 없는 기도입니다. 하나님 앞에 나아가 하나님의 용서를 구하십시오. 용서받지 못한 채 제왕처럼 평생을 사는 것보다 단 하루를 살더라도 용서받고 빛 가운데서 주님의 노예로 살겠노라고 고백하십시오. 그러한 마음과 태도로 하나님께 부르짖을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용서로 나아가는 길을 보여주실 것입니다.
25.용서의 발견
용서의 발견에는 객관적 발견과 주관적 발견이 있습니다. 착실히 교회에 나온다는 사실만으로 자신이 용서받은 죄인이라고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주님을 너무 사랑하기 때문에 그 사랑에 매어서 살고, 자기같이 더러운 인간이 거룩하신 주님을 사랑할 수 있다는 사실 때문에 한없이 감격하는 성도이십니까? 이 질문에 그렇다고 대답할 수 없다면 스스로 아무리 용서를 경험했다 할지라도, 실상은 죄악 가운데 있는 가엾은 영혼입니다. 하나님의 용서를 경험한 사람들은 그렇게 무감각하고 냉랭한 삶을 살 수 없기 때문입니다.
26.신자의 양심의 반향
용서의 경험적 발견이 어려운 원인은 신자의 양심의 반향입니다. 양심의 송사를 경험하고 계십니까? 양심의 송사에 걸려 넘어져, 자신이 결코 용서받을 수 없을 것이라는 절망에 사로잡히는 것은 하나님의 선하심을 온전히 신뢰하지 못하는 ‘악’입니다.
27.율법의 항거
용서의 경험적 발견이 어려운 원인은 율법의 항거입니다. 안타깝게도 너무나 많은 신자들이 양심의 반항과 율법의 항
거 앞에 무릎 꿇어 버리고 맙니다. 그래서 그들은 하나님의 용서를 경험하지 못한 채, 생기 없는 교회생활을 계속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거기에는 이전에 하나님과 누리던 화목도, 놀라운 사랑도 없습니다. 그래서 결국 이 대적들에게 발목 잡힌 사람들의 삶은 마른 뼈와 같은 상태로 영혼의 깊음 속을 헤매는 고통의 나날들일 수밖에 없습니다.
28.하나님의 의에 대한 인식
용서의 경험적 발견이 어려운 원인은 하나님의 의에 대한 인식입니다. 우리는 양심의 반항과 율법의 항거, 그리고 이 두 대적이 가져오는 하나님의 의로우심에 대한 인식 앞에 주저앉지 말고 앞으로 나아가 참된 복음적 용서의 항구에 닻을 내리고 거기에 정착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고 죄를 인식하고 토설하는 데 주저앉아서 자신이 하나님의 용서를 경험한 것으로 착각한다면, 그것은 항구에 도달하지도 않고 닻을 내린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그 사람은 결코 용서라는 든든한 땅을 밟아볼 수 없을 것입니다.
29.하나님의 용서에 대한 인간의 그릇된 견해
하나님의 용서에 대한 인간의 그릇된 견해는 무신론적 견해와 유신론적 견해로 나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용서’라는 개념을 여러분은 어떻게 이해하고 계십니까? 하나님의 용서의 참된 경험으로부터 멀어지게 된 것은 우리가 복음적 용서의 깊은 세계에 무지하기 때문입니다. 올바로 알지 못하기에 온전히 기대하지 못하고, 온전히 기대하지 못하기에 하나님께서 약속해 주셨음에도 누리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30.용서는 개념이 아니라 능력입니다.
하나님의 용서에 대한 피상적 이해와 용서에 대한 복음적 믿음의 차이는 전자는 개념일 뿐이지만, 후자는 능력을 동반한다는 것입니다. 용서는 개념이 아니라 능력입니다. 죄로부터의 자유를 선사하고, 예수 그리스도와의 연합을 회복시키는 용서의 능력을 경험하고 계십니까?
31.용서는 영적 경험의 산물
하나님의 용서에 대한 피상적 이해와 용서에 대한 복음적 믿음의 차이는 전자는 설득된 개념일 뿐이지만, 후자는 피 어린 확신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용서에 대한 여러분의 견해는 관념적 설득의 선물입니까? 영적 경험의 산물입니까? 설득된 견해만으로는 하나님의 용서를 누리며 살 수 없음을 명십하십시오.
32.죄에 대한 혐오감
하나님의 용서에 대한 피상적 이해와 용서에 대한 복음적 믿음의 차이는 전자는 죄에 대한 친화감이 남아 있지만, 후자는 죄에 대한 혐오감을 소유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복음적인 용서를 경험한 사람들은 죄의 달콤함 보다는 죄로 인해 치룬 고통을 보다 분명히 기억합니다. 그래서 그들은 죄를 경계하고 성화를 갈망합니다.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죄를 향해 진지한 혐오감을 가지고 계십니까?
33.절대 의존의 마음
하나님의 용서에 대한 피상적 이해와 용서에 대한 복음적 믿음의 차이는 전자는 자기 의를 확신하지만 후자는 그리스도께 절대적으로 의존한다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향한 절대 의존의 마음이 있습니까? 혹시라도, 자신의 섬김과 봉사가 자신의 의가 되고 있지는 않습니까?
34.용서를 믿는 믿음
복음적 용서를 경험하기 위해서는 용서를 믿는 믿음이 필요합니다. 영혼의 깊은 어두움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먼저 하나님의 용서가 있다는 사실을 믿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용서하시고 회복시키실 것이라는 사실을 정말로 믿고 계십니까?
35.환한 지식의 빛으로
하나님의 용서를 믿는 믿음은 지식에서 나옵니다. 환경적인 어려움과 영적 고통이 실타래처럼 얽혀 있습니까? 그 실타래를 풀기 위해 가장 먼저 필요한 일은 환한 지식의 빛으로 그것을 비추는 것입니다. 그래야 왜 그렇게 엉키게 되었는지, 그리고 어디서부터 손대야 그것을 잘 풀 수 있는지 알 수 있기 때문입니다.
36.하나님과 함께 하겠다는 결단
하나님의 용서를 발견하고 그 용서를 믿게 된 영혼은 하나님과 함께 하겠다는 결단을 합니다. 하나님과 함께 하고 싶다는 간절한 결단은 용서의 확신을 가로막는 대적들과 하나님의 용서가 아닌 다른 것들을 통해 위로받으라는 죄의 유혹과 맞서 싸우는, 두 가지 방향으로 나타납니다. 그리고 그 결단이 마음속에 계속해서 살아 역사할 때, 모든 어려움을 뚫고 진정한 하나님의 자유가 있는 용서 속으로 들어갈 수 있게 됩니다.
37.용서를 기다리는 결단
하나님의 용서를 발견하고 그 용서를 믿게 된 영혼은 하나님의 용서를 기다리겠다는 결단을 합니다. 하나님의 용서를 기다리십니까? 먼저 지쳐 포기하지 않고, 하나님의 고치시는 손길이 우리에게 임할 때까지 끈질기게 기다릴 수 있는 힘을 주는 것이 바로 용서를 믿는 믿음입니다.
38.구원받겠다는 결단
하나님의 용서를 발견하고 그 용서를 믿게 된 영혼은 영혼의 깊음으로부터 구원받겠다는 결단을 합니다. 영혼의 깊음으로부터 반드시 구원받겠다는 결단이 있습니까? 하나님의 용서 안에 참된 자유와 사랑, 영광이 있음을 인식하고 있습니까?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 구속을 통해 이루신 화목에 참여하고자 하는 갈망이 있습니까?
39.하나님은 정당하신 분
하나님의 용서를 믿는다는 것은 하나님이 정당하신 분임을 확신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향한 원망의 마음을 가지고 계십니까? 자신을 다루시는 하나님의 태도가 잘못 되었다는 생각을 가지고 계십니까? 그렇다면 여러분이 열렬하게 기도한다 할지라도, 하나님께서는 결코 그것을 듣지 않으실 것입니다. 여러분이 그러한 태도를 버리고 회개하기 전까지는 하나님으로부터 경험하는 차가운 거절감이 끝나지 않을 것입니다.
40.하나님 앞에서 살고 싶어 함
하나님의 용서를 믿는다는 것은 하나님 앞에서 살고 싶어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산다는 것은 우리의 모든 삶 속에서 하나님의 호불호를 분명하게 인지하며, 우리를 대하여 하나님이 느끼시는 불쾌와 유쾌, 사랑과 미움을 생생하게 경험하면서 사는 것을 의미합니다. 여러분에게는 하나님 앞에서 살고 싶어 하는 소망이 있습니까?
41.자신의 전적 무능
하나님의 용서를 믿는다는 것은 죄를 갚음에 있어 자신의 전적 무능을 확신하는 것입니다. 청교도 존 오웬은 “신자가 죄를 짓는 순간, 그는 하나님을 버리는 것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죄는 이처럼 하나님 앞에 커다란 반역이요, 배신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에게는 죄를 저지를 능력만 있을 뿐 해결할 능력은 없습니다. 그러므로 죄인인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자신의 무능을 자각하고 하나님께 간절히 매달리는 것입니다.
42.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하나님의 용서를 믿는다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용서받을 수 있음을 확신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가 예수 믿기 전에 지은 죄뿐만 아니라, 이후에 지을 모든 죄까지도 한 번에 짊어지고 대신 죽으셨다는 사실을 확신하십니까?
43.기도를 통해
하나님의 용서를 실제로 경험하고 싶은 간절한 갈망은 기도를 통해 구체적으로 표현됩니다. 실제적인 죄 죽임을 경험하고 용서의 확신을 얻는 것은 결코 한 번 강력한 은혜를 받는 것으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는 용서가 있다는 믿음을 가지고 열렬함과 지속성으로 기도하는 것이 요구되는 것입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능력이 나를 새롭게 해서, 이 모든 어두움 가운데에서 빛으로 인도해 주실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 간절히 기도할 때 용서의 새벽은 밝아옵니다.
44.우리를 고치시는 하나님의 방법
용서는 망가진 우리를 고치시는 하나님의 방법입니다. 하나님을 슬프게 하는 삶을 살고 있습니까?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살기에는, 자신의 영혼이 너무나 망가져 있다고 느끼십니까? 하나님의 용서 앞으로 나아가십시오. 하나님의 용서만이 우리를 고치실 수 있습니다.
45.스스로를 용서하시는 하나님
하나님께서는 스스로를 용서하시는 하나님으로 소개하십니다. 하나님은 용서하시는 분입니다. 이것을 굳게 믿고, 용서를 사모하며 하나님 앞으로 나아가는 것만이 죄로 인해 깊은 어둠 속을 헤매는 우리의 유일한 희망입니다.
46.용서는 죄를 두려워하게 만든다
용서는 죄를 하찮게 여기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두려워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용서에 대한 참된 경험이 우리에게 죄에 대한 올바른 태도를 심어줍니다.
47.하나님의 용서를 경험하는 일
형식만 남았을 뿐, 생명력을 잃어버린 신자에게 필요한 것은 하나님의 용서입니다. 죄로 인한 혼란 가운데 계십니까? 신앙의 힘을 잃은 채 영혼의 깊음 속에서 고통하고 계십니까? 여러분에게 필요한 것은 하나님의 용서를 경험하는 일입니다.
48.용서의 핵심은 적대감의 해소
용서의 핵심은 적대감의 해소입니다. 십자가의 보혈의 공로를 힘입어 하나님 앞으로 나아가십시오. 그러면 하나님께서 사죄와 치유의 역사로 우리의 심령을 어루만지시고, 죄로 말미암아 끊어져 버린 관계의 교통을 회복하실 것입니다.
49.인간의 회개를 사용하여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회개를 사용하여 용서를 이루십니다. 지금 여러분은 말할 수 없이 크고 놀랍고 감격적인 소식을 듣고 있습니다. 바로 더 이상 영혼의 침체와 깊은 어둠 속에서 고통 할 필요가 없다는 선포입니다. 우리는 용서받을 수 있습니다. 우리가 회개하고 하나님의 용서를 간절히 바라면,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용서하시고 빛 가운데로 불러주실 것입니다. 그리하여 하나님과의 참된 화목과 평화를 누리며 살게 하실 것입니다.
50.진정한 회개
진정한 회개는 언제나 자기 깨어짐을 동반합니다. 그래서 회개하고, 용서하시는 하나님 앞으로 나아간 사람들의 공통적인 특징은 깨어져 고운 가루같이 된 자아입니다. 여러분에게는 이러한 깨뜨려짐의 증거가 있습니까?
51.회개의 주체는 성령님
회개의 주체는 성령님이십니다. 우리에게 회개가 없는 것은, 하나님께서 주시지 않아서가 아닙니다. 우리가 간절함과 끈질김으로 회개의 은혜를 구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52.용서를 경험하지 못했다면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영원히 끝나지 않을 하나님과의 사랑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용서를 경험하지 못했다면 그 사람은 아무 희망이 없는 사람입니다.
53.용서받지 못한 사람
하나님의 용서를 믿는다고 말하면서 하나님의 용서를 구하지 않고 있다면, 하나님과 화목한지 반문해 보아야 합니다. 하나님과 화목을 실제적으로 누리고 있습니까? “나는 하나님의 용서를 믿고, 그런 용서를 받은 가운데 살아가고 있다.”라고 믿기만 할 뿐, 실제적인 화목의 증거들이 없다면 그 사람은 아직 용서받지 못한 사람입니다.
54.화목의 본질은 적대감과 거리감의 해소
화목의 본질은 적대감과 거리감의 해소입니다. 하나님과 화목을 누린다는 것은, 하나님과 사랑과 연합의 관계를 형성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깊이 사랑하고, 그분으로부터 깊이 사랑받고 계십니까? 하나님과의 친밀한 연합 가운데 계십니까? 여기에 “예”라고 대답할 수 없다면, 여러분은 간절히 용서를 구해야 할 사람입니다.
55.하나님과의 불화
우리가 세상의 유혹에 타협하지 않고, 환란과 핍박 앞에 두려워하지 않고 맞설 수 있는 힘은 하나님과의 화목에서 나옵니다. 독수리처럼 태양을 마주보며 창공을 날 수 있는 특권을 부여받았음에도 불구하고, 꺾인 날개를 늘어뜨린 채 절름거리며 선창가에서 먹다버린 생선 찌꺼기를 쪼아먹기 위해 피터지게 서로의 이마를 쪼는 갈매기떼처럼 살아가는 신자들에게 묻고 싶습니다. 무엇이 여러분을 그러한 비참함 속에 빠뜨렸는지 아십니까? 바로 하나님과의 불화입니다.
56.피상적인 신앙생활
하나님의 용서를 믿는다고 말하면서, 하나님의 용서를 구하지 않고 있다면 피상적인 종교생활을 철저히 후회해야 합니다. 아무리 긴 세월이 흘러도 피상적인 신앙생활을 통해서는 얻을 것이 없습니다. 피상적인 신앙생활은 실패하면 배교의 삶을 낳고, 성공하면 고도의 외식 속에서 살아가는 삶을 낳습니다.
57.자신의 완고함
하나님의 용서를 믿는다고 말하면서 하나님의 용서를 구하지 않고 있다면, 자신의 완고함을 미워해야 합니다. 언제까지 완고한 채로 살아가겠습니까? 완고함이 여러분에게 가져다 준 것은 고통과 비참함 뿐이었습니다. 그리고 앞으로도 그것은 파멸밖에는 가져오지 않을 것입니다. 그런데도 게속 완고함을 사랑하시겠습니까? 완고함에 대한 신자의 가장 좋은 반응은 적극적으로 미워하는 것입니다.
58.용서의 탁월한 은혜
하나님의 용서를 믿는다고 말하면서 하나님의 용서를 구하지 않고 있다면, 용서의 탁월한 은혜를 생각해야 합니다. 우리가 오랜 세월동안 하나님과의 거리감을 느끼며 살아온 것은 하나님이 너무 엄격하시기 때문이 아니라, 우리가 진심으로 회개하고 복음적인 용서의 진리 안으로 들어오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이제는 돌이켜야 할 때입니다. 용서의 탁월한 은혜 속으로 들어가야 할 때인 것입니다.
59.용서를 구하는 기도
하나님의 용서를 믿는다고 말하면서 하나님의 용서를 구하지 않고 있다면, 오직 그리스도를 의지해야 합니다. 그리스도를 의지한다는 것의 의미는 용서 없는 삶보다는 용서가 있는 죽음을 택하리라 결심하고, 하나님께서 용서해 주시기까지 물러서지 않고 구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예수 그리스도를 온전히 의지하는 사람이라면 여러분에게는 용서를 구하는 간절하고도 끈질긴 기도가 있을 것입니다.
60.용서받는 삶
용서받지 않고도 살만하다고 느끼는 것은 용서받는 삶이 어떤 것인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용서를 경험하지 못하는 삶이 고통스럽지 않습니까? 고통스럽지 않다면 여러분은 하나님의 용서의 은혜를 어렴풋하게 조차 모르는 사람입니다.
61.하나님께로 나아갈 때
이제 용서하시는 하나님께로 나아갈 때입니다. 늘 하나님 아버지로 부르지만 한 번도 그 아버지 앞에 친자식처럼 사랑받아 본 적이 없는 사람으로 살아갈 것인지, 아니면 어두움 가운데서 빛으로 나아와 자기를 부르시는 우리 하나님의 품안에 안겨서 기쁨으로 주님을 의지하면서 살아갈 것인지 결정하는 것은 우리의 몫입니다. 그리고 이 결정은 머리가 아닌 실천으로 내려야만 합니다. ⓒ김남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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