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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씨와 도둑>은 최용우 개인 책방의 이름입니다. 이곳은 최용우가 읽은 책의 기록을 남기는 공간입니다. 최용우 책방 구경하기 클릭! |
저자 : 김남준 | 출판사 : 생명의말씀사 판매가 : 14,000원 → 12,600원 (10.0%, 1,400↓) 사랑해야 함을 알면서도 그 사랑이 고통이 되는 이 시대의 아버지와 어머니, 아들과 딸, 남편과 아내를 위한 김남준 목사의 관계 회복서가슴 시리도록 아프지만 그리운 이름, 가족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아도 외로울 수 있지만, 단 한 사람이라도 사랑하는 사람은 외롭지 않습니다.참인간이 되는 기초는 가족의 소중함을 아는 것입니다.상처투성이 가정에 실망과 좌절을 느끼고 있는가? 차라리 부모가 없었으면 더 나을 뻔했다고 생각한 적이 있는가? 자기 이익 챙기기에만 바쁜 형제들에게 분노를 느끼고 있는가? 수십 년간 온갖 정성을 다해 양육한 자녀들이 다 컸다고 부모를 무시하고 소외시키는가? 우리 가족이 사랑으로 하나가 …[더보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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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남준 목사님의 <가족>를 읽으면서 각 챕트마다 일부분을 옮겨적었습니다.
가능하면 읽어보는 것으로 만족하시고 죽 긁어다가 다른데로 옮기는 것은 좀 삼가해 주시길 바랍니다.
저작권 문제 때문에 글이 여기저기 복사되는 것을 원하지 않습니다. 아시겠지요?
햇볕같은이야기 6052-6128호까지 한편씩 나눈 글입니다. -최용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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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가정을 세우신 하나님
가정과 교회는 하나님께서 이 땅에 직접 세우신 기관입니다. 또 다른 기관인 국가는 죄가 들어온 다음 인간의 악한 성향을 따라 이루어진 것이므로 하나님께서 직접 세우셨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호13:11) 가정은 인간의 필요에 의해, 인간에 의해 만들어진 기관이 아닙니다. 가정은 이 세상을 창조하시고 인간을 만드신 하나님에 의해서,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질서를 따라, 하나님의 방법으로 세워진 기관입니다.(창2:20-24)
2.사람을 지으심
하나님께서는 두 세계를 창조하셨습니다. 하나는 천상의 세계이고, 하나는 지상의 세계입니다. 천상의 세계는 천사들의 섬김을 받으시면서 하나님께서 직접 통치하십니다. 그러나 지상의 세계는 인간을 하나님의 대리자로 삼아서 다스리게 하셨습니다.(창1:26) 인간의 지위는 이처럼 높고 고귀한 것이었습니다.
3.남자와 여자로 지으심
하나님께서는 인간을 제외한 모든 피조물들을 말씀으로 창조하셨습니다. 그러나 인간은 다른 피조물과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창조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담을 먼저 창조하셔서 잠시 동안 혼자서 살아보도록 하셨습니다. 그래서 아담 스스로 무엇인가가 모자람을 느끼도록 하였습니다. 이것은 아담이 이후에 만날 하와를 진심으로 필요한 존재요, 사로 사랑하며 살아야 할 존재로 소중히 여기게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4.돕는 배필
하나님께서는 여성을 남성에게 종속되는 열등한 존재로 만들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남성은 여성의 도움 없이는 하나님께서 자기를 지으신 창조 목적을 온전히 이룰 수가 없습니다. 이석은 여성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이처럼 여성은 남성에게 결정적으로 중요한 존재입니다.
5.갈빗대로 만든 여자
하나님께서 남자의 몸의 일부로 여자를 만드신 것은 남자와 여자 중에서 누가 더 우월한지를 보여주기 위함이 아니었습니다. 이것은 둘이 원래 한 몸이라는 사실과 한 몸으로 연합되어 살아가야 하는 결혼의 대의(大義)를 보여주시기 위함이었습니다. 서로가 서로를 향해 온전히 자신의 몸인 것처럼 아끼며 사랑하는 세계가 되기를 바라셨기 때문입니다.
6.생육하고 번성하라
남성들은 여성을 신비한 눈으로 바라보아야 합니다. 이는 여성이 가지고 있는 아주 놀라운 특성 때문입니다. 그것은 바로 여자의 몸 안에 생명의 터전이 있다는 것입니다. 여자는 아이를 잉태하고 온전한 인간으로 출산합니다. 이런 능력은 오직 여자에게만 있습니다. 물론 여자 혼자서는 그 일을 할 수 없고 남자의 도움을 받아야 합니다.
7.부부, 가정의 기초
전통적으로 유교 사상의 영향을 받은 우리나라는 가정의 기초를 부모와 자식의 관계에 두었습니다. 이러한 사상은 기독교 신앙과는 정면으로 충돌합니다. 성경이 가정의 기초를 남편과 아내의 연합으로 규정하고 있기 때문입니다.(창2:24) 가정의 기초는 남편과 아내입니다. 부부가 있음으로 자녀가 생겨나고, 자녀가 생겨나기에 부모가 되는 것입니다.
8.인격적인 사랑으로
청교도들은 배우자가 될 사람의 조건 중에서 신앙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습니다. 배우자를 선택함에 있어서 함께 하나님을 사랑하며 그분을 섬기는 생활을 할 수 있는지가 가장 중요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다음으로 성품을 고려하였습니다. 일평생을 친구처럼 신뢰하며 인생길을 걸어갈 수 있는 사람인지를 살폈습니다. 그들은 부부간의 사랑이 단번에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일생 동안 함께 추구하며 이루어가야 할 원대한 목표라고 생각했습니다. 진정 그들은 좋은 신앙의 동지를 구하는 마음으로 배우자를 선택했습니다.
9.남자가 부모를 떠나는 가정
결혼에 소명을 받은 남녀가 서로를 사랑할 때 결혼이 이루어지는데, 결혼을 한다는 것은 부모를 떠나는 것을 전재로 합니다. 여기서 ‘떠나다’에 해당하는 히브리어는 ‘아자브’로, 이 단어의 정확한 의미는 ‘버리다’입니다.(창2:24) 결혼은 남자가 부모를 버림으로써 이루어진다고 성경은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10.부모도 자녀를 버려야
결혼 생활을 꽤 오래 했음에도 불구하고 부부간에 인격적인 연합을 온전히 이루지 못한 부모는 대체로 자신의 자녀에게 비정상적으로 집착합니다. 그러한 집착은 자녀의 부부 사이의 연합에도 걸림돌이 됩니다. 그러므로 결혼함으로써 자녀가 부모를 떠날 뿐 아니라 부모도 자녀를 떠나보내야 합니다. 마땅히 부모는 자녀가 결혼할 때까지는 돌봐주어야 하며 그것으로 족하다고 생각해야 합니다.
11.육체적인 연합
육체적인 연합은 부부는 장소적으로 한곳에서 살아야 함을 말합니다. 부부는 한 집에서 함께 살 뿐만 아니라 한 방에서 지내도록 부름 받았습니다. 사도 바울도 부부 사이에 기도하는 일 외에는 방을 따로 쓰지 말라고 가르쳤습니다. 아우구스티누스는 결혼은 첫째로 자녀를 낳기 위함(말2:25)이다. 둘째로 정욕을 피하기 위함(고전7:9)이다. 셋째로 부부의 성례전적인 연합(고전7:10-11)을 위함이라고 했습니다.
12.정신적인 연합
정신적인 연합은 육체적인 연합보다 더 본질적입니다. 부부를 부부되게 하는 것은 육체적인 연합이 아니라 정신적인 연합입니다. 부부는 같은 관심사를 공유할 뿐 아니라, 서로가 서로를 향하여 소속감과 책임감을 느껴야 합니다. 이 세상에서 자신을 가장 잘 이해하고, 그 어떤 경우에도 자신과 잡은 손을 놓지 않을 사람이 바로 자신의 배우자임을 확신할 수 있어야 합니다.
13.영적인 연합
행복한 결혼 생활을 하려면 먼저 두 사람이 모두 하나님을 믿어야 합니다. 하나님을 믿을 뿐만 아니라 온전한 신자가 되기를 노력하며 그 사랑에 붙들려 있기를 힘써야 합니다. 이것이 행복한 가정을 이루는 첫 번째 조건입니다. 아직 결혼하지 않은 분들은 불신자와의 결혼을 꿈구지 마십시오.(고후6:14) 하나님을 의지하면서 믿음과 사랑의 교통을 나눌 수 있는 배우자를 구하십시오. 불신자와의 결혼은 하나님께서 세우신 결혼 제도를 이탈한 것입니다.
14.아내의 덕목-복종
“아내들아 남편에게 복종하라 이는 주 안에서 마땅하니라”(골3:18) 이 일에 있어서는 아내의 의견을 묻는 것이 아니라 명령하고 있음을 주목하십시오. 성경은 남편에 대한 아내의 덕목을 복종이라고 보고 남편에게 복종하라고 지시합니다. 성경은 여러 곳에서 아내의 덕목으로 복종을 꼽습니다.(엡5:22,벧전3:1) 이것은 세월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 하나님의 통치의 원리를 보여 줍니다. 이는 남편을 향한 아내의 복종이 가정 안의 올바른 가족 관계 형성에 기초가 되기 때문입니다.
15.복종의 의미
아내가 남편에게 복종한다는 말의 의미는 하나님께서 세우신 질서 아래로 자신을 복종시켜 그 질서에 맞게끔 배치하고 정리하여 온전한 질서 속으로 들어간다는 의미입니다. 하나님께서 가정을 정하실 때 여성은 남성에게 복종하도록 질서를 세우셨습니다. 그 질서에 복종하는 것이므로, 엄밀한 의미에서 남편을 향한 아내의 복종은 사실 남편이 아니라 질서를 세우신 하나님에 대한 복종입니다.
16.남편을 머리로 하는 질서
하나님께서는 가정을 세우시고 남편을 그 가정의 머리로 삼았습니다. 이는 남편이 아내보다 더 우월하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가정을 통해 창조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 질서를 세우신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가정에서 남편의 머리됨은 아내와 자녀를 지배하고 착취하는 머리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가정을 향해 보여주신 뜻이 이루어지도록 가족을 돌보고 섬기는 머리입니다.
17.훌륭한 남편이 아닐지라도
어떤 사람은 이렇게 말합니다. “남편이 존경할만해야 복종하죠. 그가 존경할 만 하면 제가 왜 복종하지 않겠어요?” 하나님께서 아내에게 복종하라고 명령하는 것은 남편이 아내보다 더 우월한 사람이기 때문이 아닙니다. 아내는 남편이 별볼일없는 사람일 때도 복종할 것을 요구받습니다. 아내가 남편에게 복종하는 것은 그것이 하나님께서 세우신 질서이기 때문에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복종하는 것입니다. 가정을 향한 하나님의 질서를 알고 그분께서 세우신 질서에 순종하는 아내가 가정의 행복을 위해서 필요합니다.
18.아내에게 주신 신앙적인 명령
남편에게 복종하라는 성경의 말씀을 읽을 때마다 남편들은 기가 살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복종하라는 명령은 남편의 기를 살려주기 위해서 주신 명령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리스도의 몸의 지체로서 장성한 분량에 충만한 데까지 성화(聖化)되어야 할 아내에게 주시는 신앙적인 명령입니다.
19.복종과 정신적 연합
남편은 아내가 얼마나 도덕적인 사람인가에 감동받지 않습니다. 남편이 원하는 아내는 윤리교사가 아닙니다. 남편은 아내가 자신을 깊이 의존하는 관계 속에서 감동을 받습니다. 남편은 그 가정의 리더라는 사실이 존중될 때, 자신이 그 가정의 책임자라는 사실과 함께 이 가정에 소속되어 있음을 느낍니다, 그러면서 사랑이 깊어집니다.
20.마땅하니라
성경은 아내들이 남편에게 복종하는 것이 주 안에서 마땅하다고 말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가정을 만드실 때 그 가정을 통해 이루고자 하는 목적이 있으셨습니다. 아내가 남편에게 복종하는 것이 가정을 향한 바로 그 하나님의 목적을 이루는데 가장 적합하고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21.하나님의 사랑으로 복종하라
오늘 밤 잠들어 있는 남편의 얼굴을 한번 유심히 바라보십시오. 한없이 측은하지 않습니까? 그런 남편을 긍휼히 여기면서 가족으로 품으십시오. ‘우리 남편이 그동안 얼마나 외로웠을까! 세상에서 시달리고 가정에서 인정받지 못하였으니 얼마나 마음이 힘들었을까! 그런 남편을 이해하고 불쌍히 여길 수 있는 마지막 사람이 내가 아닌가!’ “당신이 우리 집 가장이어서, 나의 남편이어서 고맙다.”라고 말해보십시오.
22.우리가 사랑할 수 있을까?
부부로 살다보면 아내를 사랑하는 것이 정말 어려울 때가 있습니다. 아내가 자신의 자존심에 상처를 내었을 때, 폭력과 폭언으로 수치심을 안겨 주었을 때, 자신을 외롭게 할 때가 바로 그때입니다. 이런 상황이 반복되면 남편은 때때로 깊은 고독감을 느끼면서 이 여자와의 결혼 관계의 끈을 계속 붙들어야 하는지에 대해 고민하게 됩니다.
23.아가페와 까리따스
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의 아가페 사랑의 현현이셨습니다. 그 아가페 사랑에 대한 인간의 반응이 까리따스, 곧 ‘지순한 사랑’입니다.(엡5:2) 다시 말해서 까리따스는 하나님의 아가페 사랑에 대한 인간의 반응으로서, 아무런 이기심이나 그릇된 동기가 섞이지 않은 하나님께서 베푸신 사랑 때문에 하나님과 이웃을 향해 갖게 된 지순의 사랑입니다. 성경은 이런 사랑으로 아내를 사랑하라고 합니다. 그리고 오직 하나님의 은혜만이 이런 까리따스를 가져옵니다.
24.아가페의 사랑으로 사랑하라
성경은 남편에게 아내를 사랑하라고 명령하면서 그 사랑이라는 말에 ‘에로스’가 아니라 ‘아가페’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남편에게 아내를 아가페의 사랑으로 사랑하도록 가르치고 있습니다.
25.절망적인 기준
아내들은 지금이 어떤 시대인데 남편에게 복종하라고 하느냐고 말할지 모르지만, 남편들은 더 높은 수준의 명령을 받고 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죽기까지 교회를 사랑하신 것처럼 아내를 사랑하라는 명령입니다. 도대체 이것이 가능하기나 한 명령입니까? 사랑이 되지 않을 때도 아내를 사랑하되 건성으로가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위해 십자가에 못 박혀 생명을 버린 것처럼 그렇게 아내를 사랑하라니요?
26.사랑의 힘을 공급받아
한 사람을 마음 바쳐 사랑하는 일은 결코 쉽지 않습니다. 인류를 사랑하는 것보다 훨씬 더 어려운 일은 바로 내 옆에 있는 한 사람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아프리카 아이들의 굶주림 때문에는 눈물 흘리기 쉽습니다. 그러나 자기 옆에 있는 한 사람을 사랑하여 그 사랑에 끝까지 책임지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입니다.
27.어떻게 사셨습니까?
최근 10년 사이에 황혼이혼이 사회문제로 대두되었습니다. 대부분의 황혼 이혼이 평생 동안 숨죽이며 살아왔던 아내들이 은퇴한 남편에게 요구해서 이루어지는 양상입니다. 이러한 황혼 이혼의 경우 젊은 시절에 아내를 억눌러서 복종시켰던 남편들이 자신이 뿌린 것을 거두는 것일 때가 많습니다. 이혼과 같은 극단적인 현실은 아니더라도, 많은 남편들이 은퇴 이후 씁쓸한 현실과 마주합니다.
28.사랑함과 괴롭게 하지 않음
성경은 아내를 사랑하라는 명령에 이어 남편에게 말합니다. “아내를 괴롭게 하지 말라”(골3:19) 이것은 아내를 사랑하라는 명령과 별도의 것이 아닙니다. ‘괴롭게 하다’에 해당하는 헬라어 피크라이네스데는 사람에게 쓰리게 하다, 격분하게 하다, 아프게 하다, 쓰디 쓴, 심한, 비통한, 가혹한 등을 의미합니다. 성경은 남편들에게 아내가 이런 감정을 느끼지 않도록 주의하라고 경고합니다.
29.사랑 없음에서 나오는 괴롭힘
기질상으로도 맞지 않고 생각도 서로 다름 남자와 여자가 만나 서로를 용납하고 받아들여서 남편과 아내로 살아가야 하는데, 사람 안에는 그 모든 일을 감당할 충분한 사랑이 없습니다. 우리는 그 힘을 우리를 구원하신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랑에서 받습니다. 십자가의 사랑을 점점 더 깊이 깨닫게 될 때 상대방을 용납하고 사랑할 수 있게 됩니다. 그러한 과정을 통해서 우리는 주님의 성품을 풍성하게 경험할 뿐 아니라 우리를 통해서 주님을 드러내게 됩니다. 하나님께 서는 이 일을 위해 여러분을 부부로 불러 주셨습니다.
30.자기를 완성하는 길
참다운 신자는 아내의 결함과 약점을 발견할 때마다 그녀의 약점과 결함을 보충하여 온전한 사람이 되도록 돕는 것이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기대하시는 일임을 깨닫습니다. 그래서 배우자의 결점을 볼 때마다 자신의 소명을 발견합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을 그녀의 남편으로 부르셨다는 사실과 아내를 용납하지 못하는 자신의 모습 사이에서 이 소명을 이루는데 방해가 되는 요인이 무엇인지를 발견하는 것입니다.
31.아내를 억압하지 말라
남편들은 이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자신이 생각하는 것이 아무리 옳다고 하더라도, 자신이 생각하기에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라는 사실이 아무리 분명하다고 하더라도 그것으로 아내에 대한 억압을 정당화할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어떠한 경우라도 독단과 강압은 가정을 주신 하나님의 뜻에 대한 올바른 태도가 아닙니다.
32.아내와의 관계를 소중히 여기라
주님을 위한 섬김은 이 세상을 바꾸는 거대한 일들에만 달린 것이 아닙니다. 매일 주님의 말씀을 따라 아내를 사랑하며 괴롭게 하지 않으려는 모든 노력이 주님을 섬기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아내와의 관계를 포기하지 마십시오. 그것이 하나님의 명령이고 지금까지 치영하게 살아온 여러분의 인생에 대한 예의입니다.
33.인생의 성공
다른 모든 일에 성공했다고 하더라도 아내와의 관계에서 실패한 사람은 성공한 사람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생명의 은혜를 받는 하나님과의 관계가 아내와의 관계에 달려 있기 때문입니다.
34.선물을 하십시오
자신은 별로 잘못한 것이 없는 것 같은데 크게 화를 내는 아내가 이해되지 않습니다. 그래도 아내를 위해 선물을 준비하십시오. 필수품을 선물하는 것도 경제적이어서 좋지만 때로는 사치품이 더 좋은 선물일 수 있습니다. 피천득 선생은 <인연>이라는 수필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선물은 아름다운 물건이라야 한다. 진주 목걸이, 다이아 반지, 댄스 할 때 흔들릴 팔찌, 이런 사치품들도 좋은 선물이다.”
35.최고의 가치
기독교 신앙에서 최고의 가치는 사랑입니다. 사랑은 모든 은사를 능가하고, 한 사람이 가지고 있는 모든 자연적인 특성들의 우수함 보다도 더 탁월합니다. 한 아내의 남편으로 사는 동안 아내를 깊이 사랑하십시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일체의 오래 참으심으로 교회를 사랑하신 것처럼 그렇게 아내를 사랑하여 하나님께서 세우신 가정의 질서를 이루십시오.
36.상처가 있습니까?
부모가 자식에게 받은 상처는 흘러가는 물에 새긴 글씨와 같아서 부모의 마음속에서 쉽게 잊혀지지만, 자식이 부모에게 받은 상처는 돌에 새긴 글씨와 같아서 긴 세월이 흘러도 쉽게 사라지지 않습니다. 자식의 마음이 부모보다 악해서가 아닙니다. 인간의 사랑은 내리 흐르도록 섭리되었기에 부모는 자식에게 상처받은 것이 있어도 그것을 흘려보내면서 이내 치유되지만, 자식이 부모에게 상처를 받으면 일생동안 비참의 멍에를 지고 살아가게 되기 십상입니다.
37.부모와 자식 관계의 경륜
하나님께서는 인간을 창조하시기 전에 이미 그들과 어떤 관계를 맺어야 할지에 대한 그림을 당신의 지성 안에 갖고 계셨습니다. 그래서 인간에게는 동물들에게 주지 않은 영혼을 주셨습니다. 영혼을 가진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아 하나님과 다른 사람, 자기 자신과 사물을 이해할 수 있는 능력을 갖게 되었습니다. 또한 하나님을 사랑하게 하셨고, 분노와 고통, 기쁨과 슬픔을 느낄 수 있게 하셨습니다.
38.부모와 자식, 인류의 보존 방식
태어나서 자신의 힘으로 살 수 있을 때까지의 기간이 인간만큼 오래 걸리는 존재도 없습니다. 거기에는 부모의 희생이 많이 따릅니다. 그런데도 부모는 그 일을 당연하게 받아들입니다. 간혹 그렇지 않은 부모도 있지만 말입니다. 그래서 아무리 악한 자라도 자기 자식에게는 선한 경우가 많습니다. 성격 차이 때문에 헤어졌다는 부부 이야기는 들어봤어도 성격 차이 때문에 자녀와 헤어진 부모가 있다는 얘기는 들어보지 못한 것 같습니다.
39.자녀로서의 의무
부모는 인격이나 교육의 정도, 재산의 유무 정도에 따라서 공경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단지 그분이 자신을 낳아 길러주셨다는 사실 때문에 공경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부모의 요구가 아니라 하나님의 명령입니다. 자식이 부모의 사랑 깊은 희생 속에서참 사람으로 성장하는 것처럼 부모 또한 자녀의 온전한 사랑 속에서 섬김을 받아야 합니다.
40.자녀들아
어린 아이들은 순수한 마음으로 어떠한 사실이라도 잘 믿고 받아들입니다. 그렇기에 부모는 어린아이들에게 초월적인 진리, 인생에서 의존하면서 살아야 될 항구적인 가치들을 가르쳐 주어야 합니다. 부모의 충분한 사랑 속에서 이런 교육이 잘 이루어진다면 아이들은 다른 지식들도 올바르게 쌓을 수 있을 것입니다. 성경은 이런 아이들을 부르면서 부모에게 순종하라고 합니다.
41.부모에게 순종하라
부모에게 진정으로 순종하기 위해서는 자녀의 마음 바탕에 부모에 대한 깊은 공경심이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성경의 여러 곳에서 부모를 공경하라고 명령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부모를 가볍게 여기지 말고 깊은 존중심과 두려움 안에서 따뜻한 사랑으로, 주께 하듯이 부모를 섬기기를 바라셨습니다.
42.좋은 부모를 만났습니까?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타락 후에도 인간 사회를 올바르게 하는 원리와 질서에 대한 흔적을 부모에게 만큼은 상당부분 남겨 놓았습니다. 그리하여 어린 아이들은 부모에게서 선악에 대해 배우고 인간의 도리를 배우면서 참사람으로서의 덕스러운 습관들을 익힙니다. 그 일에 있어서 아이들은 부모를 절대적으로 의존합니다.
43.상처와 용서
부모 공경은 부모의 사람됨과는 상관없이 그가 나의 부모이기 때문에 마땅히 해야 할 일입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부여하신 창조의 질서입니다. 성경은 자식이 잘못하면 매를 때려서라도 바로 잡으라고 하지만, 어느 곳에서도 부모가 올바르지 않을 때 그 부모를 무시해도 된다고 가르치지 않습니다.
44.용기가 필요하다
부모에게 상처를 받은 아이들의 희망은 빨리 독립을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빨리 결혼해 분가하고 싶어 합니다. 그러나 상처 입은 남녀가 만나서 가정을 꾸리면 깨어진 또 다른 가정을 만들기 쉽습니다. 새로운 인생을 시작하려고 해도 당사자가 새사람이 아닌데 어떻게 새로운 인생이 될 수 있겠습니까? 그렇게 깨어진 가정에서 태어난 아이들 또한 온전하기 어렵습니다. 그런 가정이 많은 사회 또한 온전할 수 없습니다. 그렇기에 하나님께서는 부모 공경의 계명에 상급을 약속 하시면서 까지 우리에게 부모를 공경하라고 격려하십니다.
45.드러난 것이 전부가 아니다
자녀가 모르는 사실이 하나 있습니다. 드러난 것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부모는 자신의 마음에 있는 모든 것을 다 자녀에게 표현하지 않습니다.
46.부모입니까?
어린아이들은 안전한 환경에서 건강하게 자랄 수 있도록 돌봄을 받아야 합니다. 특히 그들의 영혼은 가정의 교훈과 훈계로 양육받아야 합니다.(엡6:4) 그래서 부모는 자녀를 양육하는 데 영양가 있는 음식과 안전한 환경뿐만 아니라 어린 자녀가 마땅히 섭취하여야 할 정신적인 자양분들 그리고 정서를 순화시키는 교양이 있는 환경을 제공하여야 합니다. 무엇보다도 부모는 아이가 거듭나고 회심하여 참사람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말씀과 은혜로써 충분한 영적 자양분을 제공하여야 합니다. 그러므로 부모는 아이에게 지상의 자원과 천상의 자원을 적절히 공급해 줌으로써 아이를 육체적, 정신적으로 그리고 영적, 사회적으로 온전한 사람이 되도록 양육하여야 합니다.
47.참사람이 되게 하기 위해서
인간이 타락한 후에는 모든 사람이 하나님의 뜻대로 살 수 없게끔 망가진 채로 태어납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고 유지하게 하는 일을 가정만으로는 감당하기 어렵게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하나님께서는 교회를 세우심으로 하나님의 지혜를 알게 하셨습니다.(엡3:10) 결국 가정과 교회를 통해서 한 사람은 참 사람이 되어 갑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인생은 교회와 가정, 이 두 기관과 어떻게 올바른 관계를 맺느냐에 따라 좌우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48.어린 아이는
어린 아이는 엄마의 얼굴을 보면서 선악을 배우고, 아빠의 얼굴을 보면서 사랑과 정의를 배웁니다. 어린아이들에게 엄마 아빠는 전지 전능한 존재이고 그 엄마 아빠의 생각은 아이들이 모든 것을 판단하는 절대적인 기준이 됩니다. 어린아이들은 엄마아빠를 통해서 사람답게 생각하고 살 수 있는 기본적인 자질을 갖추게 됩니다.
49.인간의 가장 큰 행복
자녀는 부모를 통해 하나님 앞에서 살아가는 것이 무엇인지, 자기를 사용하여 하나님과 이웃을 이롭게 하며 살아가는 덕스러운 삶이 무엇인지를 본받아 따르게 됩니다. 그렇기에 인간의 가장 큰 행복은 부유한 지에서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올바른 지식과 올바른 삶의 방식을 터득한 참 사람다운 부모 밑에서 태어나 자라는 것입니다.
50.덕이 있는 사람
인간의 진정한 행복은 기술이 아니라 덕에서 옵니다. 덕은 ‘영혼이 가지고 있는 힘’이라고 할 수 있는데, 더 정확히 말하자면 ‘다른 사람과 사랑하는 관계를 맺을 수 있는 영혼의 힘’을 가리킵니다. 덕이 풍부한 사람은 덕이 부족한 사람을 만나도 그 모자라는 부분을 채워 주면서 사랑의 관계를 유지합니다. 반면에 덕이 모자라는 사람은 항상 다른 사람으로부터 덕을 입어야지 그 사람과의 관계를 지속할 수 있습니다.
51.덕스러운 삶의 비결
덕스러운 삶의 비결은 사랑입니다. 따라서 덕이 있는 사람은 사랑의 사람입니다. 그는 마음속에 하나님과 이웃을 향한 사랑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 사랑은 영혼의 힘으로써 용서할 수 없는 사람을 용서하고 사랑하기 힘든 사람을 사랑하여 궁극적으로 남을 이롭게 하고 불완전한 자신도 완성해 갑니다. 이처럼 인간은 남을 사랑함으로써 덕의 삶을 살아갈 수 있으니, 이 사랑은 이기적인 자기 사랑이 아니라 모든 사람을 선하게 대하는 하나님의 사랑이며 이는 은혜를 통해서 옵니다.
52.낙심하는 아이들
부모가 자녀안에 심겨진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시켜 그들을 덕이 있는 참사람으로 길러내기 위해서는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아야 합니다. 아이들은 노엽게 되어도 그 분노를 표현할 힘이 없는데, 그때 그 분노가 아이 내면에 지속적으로 쌓이면 일평생 그를 지배하는 굽은 성품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부모가 자녀를 노엽게 하는 것은 커다란 정신적 폭력행위이며, 하나님의 형상에 대한 파괴 행위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53.부모의 과도한 기대
어떤 부모는 자신도 못 해본 일들을 혹은 자녀의 능력을 넘어서는 일들을 자녀에게 기대합니다. 이것은 자녀를 사랑해서라기보다는 자기 사랑을 자녀에게로 확대하는 것에 불과합니다. 물론 자녀의 판단이 항상 옳은 것은 아니기에 부모의 조언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부모가 원하는 모습으로 자녀를 만들 수는 없습니다. 하나님 이외에 어느 누구도 다른 사람을 자신이 원하는 존재로 만들 권한이 없고, 그럴 능력도 없습니다.
54.자녀에게 비인격적으로 집착하는 것
집착과 인격적인 사랑은 다릅니다. 인간은 그 누구를 향해서도 그 사람이 없으면 살 수 없을 것 같은 마음의 상태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가족이 주님 안에서 사랑하기를 원하시지 누군가에게 자신의 인생 전체가 달린 것처럼 관계를 맺고 살기를 바라시지는 않습니다. 더욱이 부모가 자녀에게 그런 집착으로 자녀를 노엽게 하는 것은 부모와 자녀의 관계를 허락하신 하나님의 뜻이 아닙니다.
55.과도한 징계
징계는 사랑과 기대의 표시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 징계가 과도하면 부모와 자녀 사이의 사랑의 연합이 깨어집니다.
하나님께서 자녀를 징계할 수 있는 권한을 주신 것은 그들로 하여금 선악을 분별할 수 있는 사람으로 자라게 하기 위함입니다.
부모는 자녀에게 선과 악이 무엇인지를 가르쳐 줄 뿐만 아니라 상과 벌을 통해서 선악에 대한 판단력을 기르고 거기에 부합하는 삶을 살도록 자극할 수 있습니다.
56.부모의 그릇된 모본
신앙적으로 혹은 윤리적으로 그릇된 부모의 모본은 자녀에 대한 강력한 폭력입니다. 이럴 경우 부모가 자녀에게 회초리 한 번 안 들고 따귀 한 번 안 때려도 자녀는 부모로부터 큰 상처를 받고 분노할 수 있습니다.
57.무관심과 방치
부모로서 자녀에 대한 도리가 무엇인지, 자녀를 어떻게 양육해야 하는 지에 대한 깊은 숙고 없이 무관심으로 방치하는 것은 자녀를 노엽게 합니다. 부모가 자녀에 대한 사랑이 없어서 자녀를 사랑과 관심으로 돌보지 않는 것 자체가 자녀에게 커다란 상처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이 부모라면 자녀를 무관심으로 방치하지 마십시오. 그것은 명백한 죄입니다.
58.사랑으로 양육하라
여러분의 자녀 안에 있는 주님의 형상을 발견하고 그를 귀히 여기십시오. 자녀는 부모가 낳았고 부모가 돌보기 때문에 맘대로 할 수 있는 소유물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형상을 지닌 독립적인 인간으로,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는 그 무엇에 의해서 훼손되어서는 안 됩니다. 육신의 장애 여부나 정신 수준의 높고 낮음, 부모의 사회적 지위에 상관없이 그 안에 있는 하나님의 형상으로 인해서 자녀는 모든 사람에게 존귀히 여김을 받아야 합니다.
59.부모의 가장 큰 의무
부모의 가장 큰 의무는 아이를 온 마음으로 사랑하는 것입니다. 어떠한 경우에도 그 아이를 버리거나 포기하지 말아야 할 마지막 사람이 바로 부모입니다. 아이가 하나님의 말씀 안에서 온전한 자유를 누리면서 성장하도록 그 아이를 품어주는 것이 부모가 하여야 할 마땅한 일입니다.
60.세계와 사회를 위한 하나님의 계획
하나님께서 세상을 창조하셨을 때 이 세계는 아름다웠습니다. 이 세상을 하나님의 창조의 의도에 맞게끔 이끌어 가시기 위해서는 많은 사람들이 필요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 안에 있는 아름다운 성품을 남자와 여자에게 나누어 주셨습니다. 그리고 그 남자와 여자의 결합을 통해서 태어나는 아이들이 부모를 바라보면서 하나님의 성품을 발견하도록 하셨습니다. 이처럼 부모를 통해 하나님에 대해서 배운 아이들은 아름다운 사람으로 자랄 것입니다. 이러한 사람들이 이 땅에 많아짐으로써 인류 사회가 번성해 갑니다. 이러한 인류 사회 건설을 위한 위대한 출발이 바로 ‘혼인’입니다.
61.이혼은 하나님의 계획에 어긋남
“하나님이 짝지어 주신 것을 사람이 나누지 못할 지니라.”(마19:6) 이 말씀에 의하면 결혼은 하나님의 뜻을 따라 이루어진 일이고, 이혼은 사람이 하는 일이라는 것입니다. 원칙적으로 이혼이 하나님께서 남녀를 만드시고 그들을 통해 아름다운 인류 사회를 이루시려는 위대한 계획에 어긋나는 일임을 명백히 말씀하신 것입니다.
62.이혼이 허락될 때에도
그리스도인들에게도 이혼이 허락되는 때가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도 배우자의 음행이 사유인 경우에는 이혼을 허락하셨습니다.(마19:9) 사도 바울의 가르침에는 이혼을 허락하는 사유가 한 가지 더 등장합니다. 신실하게 신앙생활을 하려고 하는데 다른 배우자가 그것을 싫어하면서 지속적으로 박해하고 신앙생활을 하지 못하도록 강요하여 결혼생활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신앙을 포기할 수밖에 없는 경우에는 이혼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고전7:15)
63.정신적인 연합이 풀어질 때
육체적인 연합보다 더 중요한 것이 정신적인 연합입니다. 많은 여성들은 남편의 외도를 육체적인 쾌락을 탐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하는데 그렇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렇게 함으로써 남편은 아내에게서 누리지 못한 정신적인 연합을 밖에서 찾는 것입니다.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느 날 아내가 바람이 났습니다. 남편은 통탄을 합니다. 매일 뼈 빠지게 돈 벌어다 주고 가정밖에 몰랐는데 아내가 배신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여자는 남편이 돈만 많이 벌어다 준다고 해서 살 수 있는 존재가 아닙니다. 아내가 외도하기 전에 혼인의 정신적 연합이 깨지고 외로움을 느끼는 긴 시간이 먼저 있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64.하나님과의 관계를 파괴
이혼은 하나님과의 관계를 파괴합니다. 오랫동안 부부로 살던 사람들이 결혼생활을 접고 이혼을 결심하기까지 얼마나 많은 어둠의 시간들이 있었겠습니까? 그 고통스러운 사연들을 당사자 외에 누가 알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분명한 사실 하나는 성령 충만한 상태에서 이혼을 결심하는 사람은 없다는 것입니다.
65.이혼 이후
대부분의 사람들은 제법 오랜 시간 동안 영혼의 어두운 시기를 지나면서 이혼을 결정합니다. 기도하기조차 힘든 혼란스러운 상황에서 이혼을 결정하는 것입니다. 그러다 보니 이혼 후에 어떤 일들을 만나게 될지에 대해서는 깊이 생각할 겨를이 없습니다. 지금 자신이 상처받았고 고통스럽다는 것에만 몰두합니다. 그래서 고통스러운 이 부부 관계만 청산하면 살 길이 있을 것처럼 여기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66.자녀와의 관계에서
이혼은 자녀와의 관계를 파괴합니다. 결혼은 연애와 다릅니다. 결혼은 부부가 관계 속으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관계는 단지 두 사람만의 관계가 아니라 가족과 함께하는 관계입니다. 그들이 아플 때 함께 아파하고 그들이 기쁠 때 함께 기뻐하는 가족관계 속으로 들어가야 합니다. 그런데 이혼을 하게 되면 그 모른 관계가 파괴됩니다. 그리고 그때 가장 충격을 받는 사람은 바로 자녀입니다. 이혼을 선택한 남편과 아내는 자신들의 결정으로 각자의 행복을 찾아갑니다. 그러면 아이들은 어떻게 되겠습니까? 아이들은 무슨 죄입니까?
67.아이들의 인간성
아이들은 엄마 아빠와 함께 한 집에서 살을 맞대고 살면서 사랑이 무엇이며 서로 돕는 것이 무엇인지를 배워야 합니다. 서로 이해하고 용서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부모를 통해서 터득해야 합니다. 그때 아이들은 자연스럽게 가족 이외의 사람들과도 어울려 사는 법을 익히게 됩니다. 더욱 나이가 어린 아이에게는 엄마 아빠가 자신이 아는 세계의 거의 전부입니다. 그리하여 이 세상이 무너지고 혼란이 와도 엄마 아빠 두 사람만 견고히 서서 자신들을 사랑해 주면 인간성은 아주 망가지지 않는 법입니다.
68.자신과의 관계에서
이혼은 자신과의 관계를 파괴합니다. 한 사람이 이혼할 때가 되면 생각이 비상하리만치 하나의 초점으로 모아집니다. 그것은 자신이 이혼하기만 하면 삶은 편안해지고 모든 것이 다 잘 될 것이라는 생각입니다. 그러나 이혼하고 난 후 그 이혼의 결과는 사라지지 않고 항상 자기 앞에 있습니다.(시51:3)
자신들이 가정을 깨뜨렸다는 양심적인 가책, 두고 온 자식에 대한 기억이 가슴 속에서 사라지지 않고 죽을 때까지 주홍글씨처럼 자신을 따라 다닙니다. 이처럼 깨어진 가정의 결과를 짊어지고 살아야 하는 아픔은 그리 만만하지 않습니다. 때로는 이러한 마음이 사탄의 좋은 올무거리가 되기도 합니다.
69.사랑으로 고난을 이기라
여러분이 선택한 결혼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선택에는 책임이 뒤따릅니다. 이제 여러분이 참아야 합니다. 그러나 인간의 힘으로는 참을 수 없기에 하나님의 은혜가 필요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우리에게 인내할 힘을 줍니다. 은혜가 하나님의 사랑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목숨 걸고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십시오. 이혼은 할 수 없다고 생각하고 고난도 이기고 슬픔도 극복하게 하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구하십시오. 주님의 사랑이 가득하면 남편이 그렇게 불쌍해 보일 수가 없습니다. 아내가 그렇게 가엾게 보일 수가 없습니다. 부모로서 아이들에 대한 사랑에 목이 메입니다.
70.우리의 십자가
결혼은 항상 달콤한 꿀덩어리가 아닙니다. 그저 우리 삶의 또 다른 십자가라고 여겨야 할 때가 있습니다. 신자가 십자가를 지고 승리하는 비결은 하나님의 사랑으로 고난을 극복하는 것입니다. 고난을 받을 때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당하신 고난을 생각하면서 자신의 고난을 그리스도의 고난에 투사하여 하나님 앞에 살아야 합니다.(히3:1) 남편이나 아내, 아이들 때문이 아니라 나를 위해 대신 고난 받으신 그리스도 때문에 말입니다.
71.결혼의 십자가를 지고
사람에게 아프지 않은 관계는 없습니다. 그러나 달면 삼키고 쓰면 뱉어 버린다면 그것이 어떻게 진정한 가족관계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가족은 무엇인가 나에게 유익한 것을 해주었기 때문에 가족이 아닙니다. 단지 가족이기에 허물과 잘못까지도 용납하면서 살지 않으면 안되는 관계입니다. 남편과 아내는 만난 사람이 아니라 만나게 해주신 하나님을 생각하며 그분을 의지하면서 살아야 합니다.
72.자기를 꺾으며 양보하는 삶
우리가 언뜻 생각하기에는 자라면서 모든 것을 다 누리며 자기 뜻대로 사는 아이가, 많은 형제들 속에서 결핍을 느끼며 자란 아이보다 행복한 유년시절을 보낼 것 같지요? 그리고 어른이 되어서도 더 행복할 것 같습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아이들은 형이 입던 옷을 물려받고 누나로부터 공부도 배우면서 인간으로 사는 법을 알게 됩니다. 이렇게 자란 아이들은 대부분 결혼해서도 배우자와 가족을 배려하며 잘 살아갑니다. 어려움이 닥치더라도 함께 해결하려 하고, 자기를 내세우기 보다는 꺾으면서 가정의 평화를 유지해 가려고 합니다. 인간은 이렇게 자기를 꺾으며 양보하는 삶을 살 때 더욱 행복해집니다.
73.하나님 앞에서
인생은 결혼보다 그 의미가 더 크고 살아갈 세월은 더 깁니다. 여러분이 이혼을 했다고 하더라도 인생이 끝난 것은 아닙니다. 깨어진 가정의 상처로 인해서 때로는 살기 싫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여전히 여러분 앞에 펼쳐진 인생을 살아가야 합니다. 남편과 아내를 비롯한 가족과의 깨어진 인간관계는 당장 회복할 수 없다고 하더라도 하나님과의 관계는 회복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74.어떠한 이혼이라도
어떠한 이혼이라도 어느 한 사람이 일방적으로 잘못해서 가해자가 된 경우는 그리 많지 않습니다. 물론 더 많이 책임을 져야 할 쪽은 분명히 있을 것입니다. 한때는 그렇게 사랑스럽던 배우자가 왜 마음에서 멀어졌을까요? 부부 사이에 정신적인 연합이 깨어진 것이 어떻게 어느 한쪽만의 책임일까요? 그러나 이혼으로 이미 많은 상철를 입은 사람들에게 자신의 잘못을 돌아보는 일은 결코 쉬운 것이 아닙니다.
75.교회 앞에서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와 교회 사이의 우주적 연합의 비밀이 결혼관계에 예시되어 있다고 봤습니다. 그렇습니다, 결혼은 개인적인 일이 아닙니다. 남편과 아내 모두 상대방의 배우자이기 전에 하나님의 자녀이며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에 접붙여진 지체입니다. 그것을 기초로 남편과 아내 사이의 영적인 연합인 부부관계가 생겨납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자녀가 그리스도의 몸의 지체로서 혼인의 연합을 깨는 것이 어떻게 개인적인 일일 수 있습니까? 그것은 교회의 몸에 교통을 주는 일입니다.
76.이혼을 했어도
이혼은 부부만의 문제가 아니라 교회의 문제입니다. 어떤 식으로든지 성도가 이혼을 함으로써 교회의 몸은 상처를 받고 고통을 당합니다. 그런데도 자신의 이혼을 통해서 교회가 상처와 고통을 받았다는 사실에 관심을 기울이는 사람들은 거의 없습니다. 제가 이런 말씀을 드리는 것은 이미 이혼을 하고 아파하는 여러분을 정죄하여 더욱 힘들게 하기 위함이 아닙니다. 어쩔 수 없이 이혼을 했다고 할지라도 그 때문에 교회도, 하나님을 멀리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강조하기 위함입니다.
77.변함없는 하나님의 사랑
이혼, 그것은 인생을 송두리째 뒤흔드는 어마어마한 일입니다. 그 일이 일어나기 전 얼마나 많은 시간 동안 당사자는 어둠 속에서 남이 알지 못하는 고통을 겪었겠습니까? 양심은 끊임없이 마음에 송사하고 속의 걱정, 밖의 근심이 홀로 된 외로움에 고통을 더합니다. 거울을 볼 때마다 가정을 깨뜨린 자신을 발견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는 아무것도 변한 것이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언제나 선하시고 자비로우십니다. 여러분은 하나님 앞에서 상처받은 한 마리 어린양에 불과합니다. 여러분이 아파하는 것보다 하나님께서 더 많아 아파하십니다. ⓒ김남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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