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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골3:1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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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김남준 목사 |
참고 : | 2014.5.18/5.25/6.8 http://www.yullin.org(평촌) |
583.아내와 남편(1)
2014-05-18
“아내들아 남편에게 복종하라 이는 주 안에서 마땅하니라”(골3:18)
Ⅰ. 본문해설
장엄한 우주적 기독론을 담고 있는 골로새서의 마지막 부분에서 사도는 가정에 관한 교훈을 줌으로써 가정의 질서의 회복이 모든 가족 관계 형성에 기초가 됨을 보여준다.
Ⅱ. 아내와 남편의 관계
A. 남자와 여자를 만드심
하나님은 인간을 남자와 여자로 만드셨는데 남자는 흙으로 빚어 그 코에 생기를 불어넣으심으로 창조하셨고 여자는 남자의 갈비뼈를 취하여 지으셨다. 이는 남녀가 본래 한 몸임을 보여준다. 하나님은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그들에게 공통적인 본성도 주셨지만 남자에게는 남성성을, 여자에게는 여성성을 주어 둘이 결합으로써 하나님이 창조하신 이 세계의 질서를 온전히 이루도록 하셨다.
B. 서로의 필요를 채워줌
하나님은 인간에게 두 가지 명령을 주셨다. 하나는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를 먹지 말라는 즉, 모든 인간이 하나님의 명령에 복종하라는 종교명령이고 다른 하나는 생육하고 번성하며 정복하고 다스리라는 것 즉, 이 세계를 하나님이 창조하셨을 때 의도하셨던 질서를 구축하라는 문화명령(노동명령)이다.
“생육하고 번성하라”는 명령은 남녀의 생식을 통한 인류의 번성을 명령하는 것이었고 “정복하고 다스리라”라는 계명은 남성성과 여성성을 반영한다. ‘정복’이라는 것은 자신의 지배권을 확장해서 통치권을 행사하는 것이다. 이 일을 위해서는 개척정신과 용기와 투지, 그리고 결단과 희생이 요구되고 이것은 남성성에 어울린다. 그리고 ‘다스림’은 덕으로써 나라를 다스리는 것을 의미하는데 고통받는 사람들의 눈물을 닦아줄 수 있는 어머니와 같은 마음이 필요한데 여성에게 적합하다. 하나님은 이처럼 남성과 여성을 처음부터 다르게 창조하셨고 이것은 서로의 부족한 부분을 채워서 하나님이 이 세상을 창조하신 목적을 이루어가기 위함이었다. 그래서 우리에게는 먼저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는 신앙이 요구된다.
Ⅲ. 남편에 대한 아내의 덕목
A. “복종하라”의 의미
가정이 온전해지기 위해서는 사랑보다 질서가 더 필요하다. 질서와 사랑 이 두 가지가 견고하게 자리 잡고 있어야지만 진정한 행복이 오래 간다. 성경은 그 질서를 “아내들아 남편에게 복종하라”고 말씀한다.
여기에서 복종하다의 의미는 희랍어로 ‘under, 아래’라는 뜻을 가진 ‘휘포’와 ‘배치하다, 정리하다, 균형을 이루다’의 의미를 가진 ‘타쏘’의 합성이다. 그러므로 이 말은 아내가 남편 아래에서 하나님이 세우신 질서 밑에 들어가 자신을 복종시켜 그 질서에 맞게끔 배치하고 정리하여 온전한 질서 속으로 들어감을 의미한다.
B. 하나님 사랑으로 복종함
아내가 남편에게 복종하는 것은 남편이 사랑해 주거나 위대하기 때문이 아니다. 그것이 하나님이 세우신 가정의 질서이기 때문에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복종하는 것이다. 자신을 낮은 자리에 두신 하나님의 질서를 발견하고 그 질서에 확고히 설 수 있는 아내가 가정의 행복을 위해서 너무나 필요하다. 그렇기에 이 복종은 노예적이고 힘에 의한 어쩔 수 없는 복종이 아니라 인격적이고 신앙적인 복종이며 하나님이 가정을 세우신 커다란 경륜을 성취할 수 있는 방식의 질서에 복종함을 의미한다.
그런데 문제는 누가 먼저 이 질서 속으로 들어가느냐이다. 성경은 아내들에게 이 질서로 들어가라고 명령하고 있다. 만약 아내가 남편을 사랑하는 것이 외모의 아름다움이나 자신에게 어떠한 좋은 것들을 주는 것을 보고 하는 것이라면 그것이 얼마나 가겠는가? 그래서 하나님 안에서 사랑하는 일이 필요하다. 하나님을 향한 까리따스의 사랑만이 신적인 질서를 온전히 이룰 수 있기 때문이다. 결국 한 사람이 하나님의 사랑으로 감화되지 않으면 가정의 질서가 회복되지 못한다. 아내와 남편, 양 쪽에서 자신이 얼마나 큰 상처를 받았고 시련을 겪었는지를 주장한다면 가정은 회복되지 않는다. 누군가 먼저 허물어져서 자기를 부정할 수 있어야 한다.
Ⅳ. 결론
성경은 이것이 “주 안에서 마땅하니라”라고 말한다. ‘마땅하다’는 희랍어로 ‘적합하다, 꼭 맞다, 어울린다’의 의미이다. 무엇에 어울리고 적합하다는 것일까? 아내가 하나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주님이 세우신 가정의 질서로 돌아가는 것이 그 가정을 통해 애루고자 하는 하나님의 존재 목적이 성취되는 그 일에 어울리고 적합하다는 것이다. 이러한 사랑의 질서로 돌아가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빈다.
584.아내와 남편(2)
2014-05-25
“남편들아 아내를 사랑하며 괴롭게 하지 말라”(골 3:19)
Ⅰ. 본문해설
골로새서는 죄 때문에 망가진 세상이 그리스도를 다시 머리로 하여 어떻게 창조시의 영광을 회복하는지를 말한다. 우주적인 회복과 세계의 완성을 위해서 오늘을 살아가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구체적으로 보여준다.
Ⅱ. 아내에 대한 남편의 덕목1: 사랑함
사도는 남편의 덕목에 대해서 “아내를 사랑하며 괴롭게 하지 말라”라고 가르친다. 여기에서 ‘사랑하라’의 희랍어 원문은 ‘아가폐테’라는 명령형 동사를 사용하였다. 여기에서의 사랑은 ‘아가페’이다. 로마인은 사랑을 네 가지로 구분하였는데 남녀 간의 사랑인 에로스, 형제간의 사랑인 필리아, 부모자식간의 사랑은 스톨게이며 아가페의 사랑은 인간에 대한 신의 사랑으로 무조적적인 사랑을 말한다. 사도는 에로스의 사랑이 아니라 아가페의 사랑으로 아내를 사랑하라고 명령한다.
A. 로마사회와 아내
이 성경이 쓰인 주후 1세기 로마 사회는 남존여비의 사상이 팽배하여 남성우월주의가 강한 사회였다. 그렇기에 아내의 역할은 가정이라는 울타리를 벗어날 수 없었고, 여성의 위치는 매우 불안하였다. 로마의 시민들은 아내를 앝잡아 보았고 위협하며 강박으로 다스려야 할 존재로 이해하였다. 그러나 사도는 ‘아가페’의 사랑으로 아내를 사랑하라고 말하면서 하나님의 나라 백성다운 가정의 새로운 질서와 모습을 보여준다.
B. 사랑: 성향과 행위
사랑은 타자와 끊임없이 관계를 갖고자 하는 영혼과 정신의 작용이다. 그래서 사랑은 영혼의 경향성이고, 이 경향성이 마음에서 나타날 때 성향으로 나타난다. 이것은 단순한 감정의 문제가 아니라 이성에 속한 문제이다. 즉 사랑을 단순히 좋아하는 감정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성경의 지지를 받지 못한다. 사랑은 이성과 감정 전체에 걸쳐 있는 전인적인 작용이다. 사랑은 단순히 마음이 움직이기니까 하는 것은 감정의 측면에서 보는 것이고 그런 것이 없어도 해야 하는 것은 이성의 측면에서 보는 것이다. 결혼하여 살다보면 마음이 움직여서 저절로 사랑스러우니까 사랑하는 때도 있지만 마음이 움직이지 않아도 사랑해야 하는 때가 있다.
C. 아가페와 까리따스
그러면 어떻게 아내가 사랑스럽지 않을 때도 사랑할 수 있는가? 성경은 사랑의 원천이 하나님이라고 말씀하신다(요일 4:10). 삼위 하나님은 영원전부터 사랑이셨다. 이 사랑으로 인류를 창조하셨고 인류와 영적인 관계를 맺고 가족과 같은 관계로 들어가고자 하셨다. 그러나 인류는 타락하였고 사람들 간의 관계는 파괴되어 서로가 서로에게 찌르는 칼이 되었다. 이 관계를 고치기 위해 하나님은 끊임없이 자비와 사랑, 용서를 베푸셨고 결국에는 그리스도를 통해서 그 사랑을 보여주셨다.
에베소서는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위해 자신을 주심 같이 아내에게 자신을 주라고 말씀하신다(엡 5:25). 그리스도의 우리의 구속을 위해 희생하셨을 뿐만 아니라 우리를 구원하시고 돌보시며 끊임없이 용서하고 온전케 하기 위해 지금도 사랑하기를 쉬지 않는다. 남편들은 아내를 사랑하되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위해 자기의 생명을 버리신 것처럼 사랑하라는 명령을 받고 있다. 누구도 이 기준 앞에서 아내를 충분히 사랑했다고 말할 수 없다.
그리스도는 완전한 하나님이셨기에 무한히 사랑하셨지만 우리는 아내의 결점과 결함, 악을 끊임없이 발견하기에 그리스도가 교회를 사랑하신 것처럼 사랑하는 것이 쉽지 않다. 자신이 가진 사랑으로 그것을 성취한다는 것이 불가능함을 깨닫게 된다. 아내에게 끝까지 참고 견디는 것은 남편의 사랑의 힘으로는 불가능하다. 그렇기에 그때마다 그리스도께서 베푸신 사랑을 생각하라. 아내를 사랑하는 것이 아무리 어렵고 많은 희생을 동반한다고 하더라도 그리스도께서 나를 용서받게 하기 위해 치르신 십자가의 고난보다 크지 않다는 사실을 생각하라. 그리스도의 오래 참으신 고난과 사랑을 생각한다면 우리는 결혼 생활을 통해서 오히려 주님께로 더 가까이 갈 수 있을 것이다.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신 것은 사랑의 관계가 인간 스스로의 힘으로는 복구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먼저 하나님과의 관계를 올바르게 하고 십자가의 사랑을 받음으로 그 사랑 때문에 사랑의 힘을 공급받으며 용서할 수 없는 사람을 용서하고 타인의 결함을 보면서 그것이 자신의 섬김의 이유라고 생각하게 하기 위해서 십자가의 사랑으로 우리를 구원하셨다.
Ⅲ. 결론
사람의 완성은 사랑을 완성하는 데에 있다. 한 사람의 성숙의 정도는 그가 어떻게 다른 사람과 관계를 맺으며 살아가느냐의 수준에 달렸다. 주님의 말씀과 같이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다(행 20:35). 그러므로 아내를 사랑하는 것이 매우 어려운 일임을 느낄 때마다, 아내의 결함이 너무 크다고 생각될 때마다 완전하신 그리스도가 어떻게 여러분을 사랑하셨는지를 깊이 생각하는 성도들이 되길 빈다.
585.아내와 남편(3)
2014-06-08
“남편들아 아내를 사랑하며 괴롭게 하지 말라”(골 3:19)
Ⅰ. 본문해설
창조의 목적이 완성되는 기초는 그리스도의 구속이고, 그리스도의 구속은 가정을 통해서 세계의 완성으로 나아가게 된다. 바로 그 가정 안에서 인류는 태어나고 양육되어 번성하기에 남편과 아내는 참다운 가정의 질서와 사랑을 자녀들에게 보여주어야 한다.
Ⅱ. 아내에 대한 남편의 덕목: 2. 괴롭게 하지 않음
아내에 대한 남편의 덕목 두 번째는 괴롭게 하지 않는 것이다. “괴롭게 하지 말라”라는 희랍어 원어적인 뜻은 ‘사람을 괴롭히는 것’, ‘격분하게 하는 것’, ‘쓰라린 고통을 느끼게 하는 것’ 등을 의미한다. 사도 바울은 아내에게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남편에게 요구한다. 그렇다면 아내가 남편에게 당하게 되는 괴롭힘, 괴로움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A. 일반적 고난이 아님
첫째로 이것은 일반적인 의미의 고난이 아니라는 것이다. 죄가 들어온 이후 인간의 삶에는 언제나 고난이 있게 마련이다. 홀로 살아도 홀로 져야 하는 십자가와 같은 고난이 있고 남녀가 결합하여 한 가정을 이루고 살아도 고난이 있다. 이러한 고난은 세상과 인간의 일반적인 불완전함 때문에 생기는 고난으로 본문에서 사도 바울이 말하는 고난이 이런 의미의 고난이 아니다.
B. 하나님 뜻 따름이 아님
또한 둘째로 아내가 겪는 괴로움은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데서 오는 그런 괴로움도 아니다. 누구든지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고자 할 때는 반드시 희생과 고통이 따르기 마련이다. 인간이 불완전하기에 하나님께 순종하기 위해서는 자기를 꺾는 희생이 필요하고, 주님을 위해 헌신하기 위해서는 무엇인가를 하나님 앞에 양보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희생하고 하나님께 헌신할 때 우리에게 힘듦이 있기 마련이다. 그러나 이러한 고난도 본문에서 말하는 고난이 아니다.
C. 사랑 없음에서 나옴
아내와 남편은 서로가 서로를 섬기는 사람이기 전에 하나님 앞에 부름 받고 하나님 앞에 살도록 부름 받은 하나님의 자녀이다.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들은 결혼을 통해서 그저 둘이 만나 행복하게 살 수 있기를 바라지만 하나님의 자녀들에게는 또 다른 소명이 있다. 그것은 부족한 사람들끼리 만나서 살아가면서 하나님의 성품의 영광을 드러내는 것이다. 기질과 생각이 다른 남편과 아내가 자기를 구원하신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사랑으로 서로를 용납하고 받아들이는 과정을 통해서 우리 주님의 성품을 드러내도록 하나님은 우리를 부르신다.
남편들은 자신이 아내를 괴롭게 하는 원인이 아내에게 있다고 생각한다. 자신의 아내가 부족하고 결함이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참된 사랑은 언제나 자신의 부족을 알고 사랑하는 사람에 대해서 자기가 그런 사람밖에 못 되는 실존에 대해 용서를 빌게 한다. 그렇기에 아내를 사랑하지 못하는 것은 아내의 결함 때문이 아니라 자신의 결함 때문이고, 상대방을 끝까지 용납하지 못하는 사랑 없음 때문이다. 그렇기에 남편이 아내를 괴롭게 한다는 것은 사랑 없음에서 나오는 것이다.
사랑하고 헌신하면 어떤 대가가 돌아올 것이라는 기대를 갖는 것은 사랑이 아니다. 아무 대가없이 사랑하기에 베풀고 헌신하는 것이 진정한 사랑이다. 그러한 사랑으로 아내를 사랑하려고 하면 할수록 남편은 자기가 한 사람을 사랑하기에도 얼마나 부족한 존재인지를 깊이 깨닫게 된다. 그래서 인간은 사랑 받음으로써 완성되는 것이 아니다. 자기의 완성은 다른 사람에 의해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다른 사람을 끝까지 사랑하고 참아줌으로써 자기를 완성하게 된다.
Ⅲ. 사랑의 힘을 공급받음
결함이 많은 아내를 사랑하면 사랑할수록 우리 자신은 그렇게 한 인간을 끝까지 사랑할 수 있는 힘이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래서 사랑하도록 부름받은 소명과 사랑의 능력이 없는 자신 사이에서 갈등한다. 그렇기에 하나님으로부터 매일매일 큰 사랑이 부어지지 않으면 자신도 다른 사람을 사랑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더욱더 주님 앞에 매달려 그의 은혜를 간구한다. 자신이 지금까지 아내를 사랑하며 살 수 있었던 것도 하나님이 주신 사랑 때문에 가능하였음을 깨닫고 겸비해 된다.
Ⅳ. 결론
다른 모든 일에 성공했다고 하더라도 아내와의 관계에서 실패한 사람은 성공한 사람일 수 없다. 생명의 은혜를 받은 하나님과의 관계가 아내와의 관계에 달렸기 때문이다. 아내와의 관계가 힘들고 어려울 때마다 그리스도께서 어떻게 여러분을 끝까지 사랑하고 용납하셨는지 기억하라. 하나님의 사랑을 깊이 생각하고 그 은혜를 바라보면서 아내를 깊이 사랑하는 남편들이 되길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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