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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을 항해하면서 발견한 다시 읽고 싶은 글을 스크랩했습니다. 인터넷 공간이 워낙 넓다보니 전에 봐 두었던 글을 다시 찾기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닙니다. 그래서 스크랩할만한 글을 갈무리합니다. (출처 표시를 하지 않으면 글이 게시가 안됩니다.) |
| 출처 : | https://news.khan.kr/kS7a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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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태어나 숨을 쉬는 땅
겨레와 가족이 있는 땅
부르면 정답게 어머니로 대답하는
나의 나라 우리나라를 생각하면
마냥 기쁘지 않은가요
말 없는 겨울산을 보며
우리도 고요해지기로 해요
봄을 감추고 흐르는 강을 보며
기다림의 따뜻함을 배우기로 해요
좀처럼 나라를 위해 기도하지 않고
습관처럼 나무라기만 한 죄를
산과 강이 내게 묻고 있네요
부끄러워 얼굴을 가리고 고백하렵니다
나라가 있어 진정 고마운 마음
하루에 한 번씩 새롭히겠다고
부끄럽지 않게 사랑하겠다고
- 산문집 <풀꽃단상>에서
며칠간 서울에 다녀오니 매화는 지고 산수유, 수선화, 민들레, 제비꽃, 명자꽃이 피어나 남쪽의 봄을 알리고 있습니다. “어서 오렴 3월아(Dear March, Come in…)”로 시작하는 에밀리 디킨슨의 시를 기억하게 되는 3월. 이번 3월은 내게도 좀 특별하게 다가옵니다. 3·1운동 100주년을 지낸 뜻깊은 달이고, 내가 기차를 타고 부산에 내려와 수도생활을 처음 시작한 달이기도 합니다. 우리 수녀원에 새로 입회한 4명의 지원자들을 보니 새삼스레 가슴이 뛰고 눈물이 났습니다. 요즘은 왜 이리 안팎으로 눈물이 고여오는지요!
오래전 우리나라의 독립을 위해 목숨 바친 이들에 대한 감사의 마음도 올해는 더 새롭게 솟구쳤습니다. 3·1절은 금요일이어서 원래 단식을 하는 날이지만 100주년 축하의 뜻으로 아침밥을 먹었고, 저녁엔 <말모이>라는 영화를 함께 보며 나라말을 지키느라 희생한 이들을 구체적으로 기억하는 시간도 가졌습니다. 해외에 머물 때는 태극기만 보아도, 애국가만 들어도 너무 반가워 눈물이 나곤 했는데 지금은 무디어졌습니다. 내 나라에 대한 고마움보다는 오히려 비난과 불평을 더 많이 한 자신의 모습을 돌아보며 슬그머니 부끄러워집니다.
여기저기 대서특필하는 3·1운동의 역사적 배경과 의미, 독립운동의 주인공들에 관한 여러 일화들, 숨겨진 이야기들을 읽으며 그동안의 내 무심함이 부끄럽고 나라의 역사에 대한 공부를 더 해야겠구나 다짐하는 계기도 되었습니다. 현재 내가 몸담고 있는 우리 수녀원을 각별히 아끼고 내가 살고 있는 부산을 사랑하는 애향심을 키워가듯 내가 태어난 모국을 좀 더 열심히 사랑하고 자랑스러워하는 애국심을 사명처럼 지니고 살아야겠다는 결심을 해봅니다. 젊은 수녀 시절 필리핀에서 공부할 때 만난 어느 일본인 주재원의 ‘나는 출장가는 곳마다 우리나라 국기를 들고 다니며 힘든 일이 있으면 나라 사랑하는 맘으로 인내한다’는 고백을 듣고 감동한 일이 있습니다. 그동안 한참 잊고 있었던 내 아버지의 빛바랜 사진 한 장에 요즘은 자주 눈길이 머뭅니다. 1950년 9월에 행방불명된 아버지. 여섯 살 이후로 뵌 적이 없으나 늘 깊고 따뜻한 그리움으로 살아계신 그분의 존재가 새삼 크게 살아오며 남북으로 갈라진 민족의 아픔 또한 사무쳐옵니다.
‘주님, 평화로 가는 길은 왜 이리 먼가요. 얼마나 더 어둡게 부서져야 한 줄기 빛을 볼 수 있는 건가요. 멀고도 가까운 나의 이웃에게 가깝고도 먼 내 안의 나에게 맑고 깊고 넓은 평화가 흘러 마침내 하나로 만들기를 간절히 기도하며 울겠습니다’라고 기도한 일이 있습니다. 일이 제대로 안 풀려 살기 힘들고 속상한 때라도 미움, 저주, 한탄, 분노의 부정적인 푸념보다는 한 줄기 희망과 긍정이 담긴 말을 더 하도록 애써야겠습니다. 모국어를 좋아하고 이웃을 사랑하고 맡은 일을 충실히 해 나가는 일상 속의 애국자가 먼저 되어야지 다짐하며 3월의 바람 속에 경건히 두 손 모읍니다.
이해인 수녀
경향신문 2019.0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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