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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을 항해하면서 발견한 다시 읽고 싶은 글을 스크랩했습니다. 인터넷 공간이 워낙 넓다보니 전에 봐 두었던 글을 다시 찾기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닙니다. 그래서 스크랩할만한 글을 갈무리합니다. (출처 표시를 하지 않으면 글이 게시가 안됩니다.) |
| 출처 : | https://news.khan.kr/VdUJ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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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인 수녀의 詩편지](8)아픈 이들을 위하여
몸 마음이 아파서
외롭고 우울한 이들 위해
오늘은 무릎 꿇고 기도합니다
고통을 더는 일에
필요한 힘과 도움 되지 못하는
미안함, 부끄러움,
면목없음, 안타까움
그대로 안고 기도합니다
정작 위로가 필요할 땐 곁에 없고
문병을 가서는 헛말만 많이 해
서운할 적도 많았지요?
‘자비를 베푸소서!’ 외우는데
눈물이 앞을 가리네요
이 가난하지만 맑은 눈물
작은 위로의 기도로 받아주시면
제게도 작은 위로가 되겠습니다
- 산문집 <풀꽃 단상>에서
연세가 많아 정신에 좀 문제가 있다 해도 어쩌다 나를 만나면 “삶이 바쁜 시인 수녀님” 하며 웃어주던 선배 수녀님, 며칠 전에 만난 자리에서 “수녀님 저 기억하시죠?” 했더니 “얼굴은 알겠는데 이름은 모르겠네” 했습니다. 지난달 병원에서 인지검사를 하니 나 역시 3년 전에 비해 결과가 썩 좋진 않아 약을 하나 더 처방받아왔습니다. ‘기억력만큼은 누구보다 좋았는데’ ‘병과 이만큼 친했으면 됐지. 갈수록 약만 늘어나다니’ 푸념하며 조금 우울했고, 나도 치매 증상으로 사람들을 못 알아보면 어쩌나 하는 두려움이 엄습했습니다. 게다가 정신이 아프고 고장 난 친구들의 부탁으로 덩달아 힘이 든 요즘입니다. 자신의 몸에 악귀가 붙었으니 수녀님이 떼어주어야 살 수 있기에 당장 찾아오겠다는 어느 아가씨의 전화, ‘제가 바로 수녀님이 찾아 헤매는 큰아들입니다’라는 한 재소자의 편지를 받고 황당하기도 했지요.
아픈 이들을 위한 기도 부탁을 받지 않는 날이 하루도 없습니다. 마음의 병뿐만 아니라 육체적인 질병의 종류도 어찌 그리 다양한지 듣기만 해도 걱정되고 저절로 연민의 정이 생깁니다. 이렇게 저렇게 기도를 부탁해오는 환자와 그의 가족들에게 대답을 쉽게 하지만, 실은 어떻게 기도해야 할지? 침묵의 봉헌 외엔 달리 방법이 없는 것 같습니다. 생사의 위기에 있는 아픈 이들을 직접 방문하고 나면 딱히 할 말이 없어지고 위로의 말조차 궁해지곤 합니다. 잠시라도 상대방을 위로하고 기쁘게 해줄 수 있는 ‘사랑의 기술’이 부족한 나 자신의 가난함을 슬퍼하는 순간들이 있습니다.
‘아픈 이들을 위하여’라는 시는 이렇게 아픈 이들에게 별 도움이 되질 못하는 자신의 무력함과 안타까움을 부분적으로 표현해본 노래입니다. 병원에 오래 있다보면 환자뿐 아니라 환자를 간호하는 가족들, 간병인들, 그리고 의료진도 다 나름대로 힘들다는 생각이 새롭게 들곤 합니다. 이왕 내게 온 아픔을 잘 감수하고 다른 이에겐 필요 이상의 요구로 부담을 주지 말아야지 수도 없이 결심해보지만 뜻대로 되질 않기에 어느 날, “마음이 많이 아플 때/ 꼭 하루씩만 살기로 했다/ 몸이 많이 아플 때/ 꼭 한순간씩만 살기로 했다… 고마운 것만 기억하고/ 사랑한 일만 떠올리며/ 어떤 경우에도 남의 탓을 안 하기로 했다”는 시를 적어보기도 했습니다. 건강할 때는 나도 늘 아픈 이의 고통을 헤아리기보다는 자기중심적으로 입에 발린 좋은 말, 상투적이며 교훈적인 말로 위로를 했고 이것이 늘 마음에 걸립니다. 아픈 이는 건강한 이들에게 건강한 이들은 아픈 이들에게 서로를 온전히 헤아리지 못하는 한계를 받아들이며 조금은 미안한 마음, 겸손한 마음으로 사랑의 노력을 하며 살아가는 것만이 우리가 주고받을 수 있는 진정한 위로가 아닐는지요. 진심이 담긴 한마디의 말, 쾌유를 비는 간절한 눈빛, 그리고 대신 아파주지 못하는 안타까움을 나름대로 표현하는 것만으로도 작은 위로의 선물이 될 것입니다.
이해인 수녀 경향신문 2019.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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