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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눅4:1-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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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김경형 목사 |
참고 : | 궁극교회 주일예배 |
4장 1절-4절.
1절-4절: 예수께서 성령의 충만함을 입어 요단강에서 돌아오사 광야에서 사십일 동안 성령에게 이끌리시며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시더라 이 모든 날에 아무 것도 잡수시지 아니하시니 날 수가 다하매 주리신지라 마귀가 가로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이 돌들에게 명하여 떡덩이가 되게 하라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기록하기를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라 하였느니라.
돌을 가지고 떡을 만들어 먹는다. 이치가 바로 됐습니까 잘못됐습니까? ‘돌을 가지고 떡을 만들어 먹어라.’ 마귀가 예수님께 그랬거든요? 그러면 예수님은 만능의 능력자요 영원 전 성육신으로 입고 오시기 전에 선재적 그리스도로 계실 때에 하늘에 계실 때에 말씀으로 우주만물을 다 창조했거든요? 그것보다 더 어려운 당신의 모양과 형상대로 우리 인간을 지으셨습니다. 선재적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시기 전에. 육신으로 입고 오시기 전에.
우리 인간 편에서 보면 육신 이 사람 자체를 두고 보았을 때에 눈에 보이는 육신보다 뭐가 더 어렵겠습니까? 세포 신경조직이 더 어렵지요? 세포 신경조직보다 뭐가 또 더 어렵겠습니까? 마음 정신 생각 어렵습니다. 그것보다 더 어려운 것은 없습니까? 영 영혼. 예, 우리 인간 편에서 생각하면 그래요.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우리 속에 담아서 넣었다. 신앙의 세계에서 영적 감각성으로 생각지 못하면 이건 못하는 겁니다.
일반사람들이 이성적으로 생각하는 것과는 달라요. 일반사람들은 선악과 따먹고 나온 그 지식에서. 그 지식은 타락되고 저주받은 지식이거든요. 성경을 통해서 볼 줄 알아야 됩니다. 저주받고 타락된 그 지식에서 나오는 행복성은 임시적인 불탈 이 세상에 국한돼 있어요. 그 이상은 못 올라간다. 왜 못 올라가느냐? 올라가기 싫어서 못 올라가느냐? 그게 아니고 영은 죽어있기 때문에 질적 차원적으로 못 올라간다 그 말이요. 그러니까 이 성경으로 통해서 생각할 수 있는 이건 죽었다가 깨어나도 일반세계서는 모르는 겁니다. 일반세상은 모른다.
그럼 우리 기독자들은 이 성경이 지시하는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요, 이게 예수님을 말하고 있는데 이 예수는 다른 말로 하면 구원이라. ‘예수가 너를 구원해준다’고 하는 그 말뜻은 ‘내가 너를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요 하나님의 사람으로 질적으로 너를 만들어 놓겠다’ 하는 요것이 적중하게 들어있는 거요. 그걸 떠나서는 해석이 될 수가 없어요. 그런데 그런 차원에서 나와야 할 우리 기독교 또는 모든 교회가 일반세상 사람들의 그 사고방식 이해타산 평가성과 질적으로 차원적으로 이게 달라야 할 텐데 왜 똑같으냐 그 말이요. 문제는? 예수님의 사고방식과 이해타산과 평가성과 예수님의 취미성과 추구성과 간구성이 이방 세상사람들하고 똑같아요? 안 믿는 사람하고 똑같아요?
그리고 성경가지고, 모세오경도 다 주님이 주신 거요. 그 모세오경가지고 율법주의로 나가던 이 유대주의자 그들의 속을 외식자들이라고 찔러버렸지요? 왜 문자로만 쓰냐? 왜 타락된 기존지식에 왜 성경구절을 둘러 덮어씌워서 하나님의 이해타산처럼 말을 하냐? 그러니까 쉬운 예를 든다면 하나님의 사람은 아가페에 진리인데 아가페는 진리가 있고 진리에는 아가페가 질적으로 같이 들어있어요. 근데 그때도 그렇지만 오늘날도 그 지식의 뿌리가 세상에 박혀있으면 성경가지고 ‘하나님 사랑 사랑’ 하면서 이게 인간 조작배기 사랑이 돼버린다. 하나님의 아가페사랑을 인간 조작배기 사랑으로 대치를 시켜놓는다. 정신 사상의 그 질을 알아야 돼요.
그러니까 이 마지막 시대에 ‘거짓 종들을 삼가라’ 하는 것은 하나님의 것과 인간의 것으로 대치를 시켜놓는다 그 말이요. 하나님 자리에다가 인간이 앉고 하나님 자리에다가 소원 목적적으로 세상소원 목적적으로 앉혀놓고. 이게 다 거짓교훈들이요 질적으로 보면 이게 다 이단사상들이요. 주님의 것과 다르다는 그 말이요. 주님의 것과 달라. 마귀가 제일 좋아하는 예수님께 시험을 건 그 사고방식으로 오늘날 교회가 돼가고 있다. 오늘날 교회가 무당집이 아닌가? 산골짜기 기도원마다 세상 붙잡고 세상과 연락하고 연애 거느라고. 영의 눈을 가지고 보면 문제가 심각하다.
‘말세. 말세’ 눈에 보이게 되는지 압니까? 착각하지 마라. 교회라면 자기에요. 영이 중생된 자기.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의 보혈로 영이 중생함을 받은 자기. 영은 중생은 됐지만 질적 본질로 주님처럼 성장이 돼야 할 텐데 성장이 얼마나 됐냐? 성장 됐냐? 세례 받고 주일 구워먹고 들락날락 제 맘대로 했지? 그나마도 인본주의 사고방식에 세상 속화된 교회 들어가서 뭐 배웠냐? 일반 도덕성밖에 못 배웠지. 고작 해봐야 그렇다. 일반도덕성적인 개념. 성경은 일반도덕성적인 개념이냐 그 말이요. 신적인 도덕성적 개념이야. ‘예수 잘 믿는다’ 그러면 예수 믿는 자기가 주일마다 해마다 십 년 전 이십 년 삼십 년을 지나면 신적인 도덕성으로 꽉 들어가 있어야지. 성령의 열매로 들어가 있어야지. 이해타산도 자기의 총결산이 죽음 저 너머에 내려져 있어야지. 왜 이 땅에 내려져있어. 아주 나이롱 교인들 나이롱 목사 불타질 목사 하나님의 심판을 도매금으로 받을 수밖에 없는 자기 존재. 왜 그걸 모를까? 눈에 보이는 것만 따질 줄 알지?
우리 인간은 아무리 타락이 되었어도 일반적으로 보면 사람의 마음을 짐작을 하지요? 예수 믿으면서 이 성경은 하나님의 마음이요 정신이요 소원 목적이요 이게 들어있는데 성경을 배우면서 누굴 닮았어요? 누굴 닮았냐고요? 마귀 안 닮았나? 마귀 안 닮았어요? 하나님 앞에 서서 솔직히 자기를 거울처럼 비쳐보라고요. 이치적으로 한 이치도 깨닫지 못하면 성경구구절절이가 자기 세상을 들어주는 것처럼 보여.
자, 아까로 돌아가서 돌을 가지고 떡을 만들어 먹을 수 있는 이 능력이 예수님께 있어요 없어요? 있지요? 있기 때문에 마귀가 그 말로 나가는 겁니다. 그러면 돌로 가지고 떡을 만들어 먹으면 요게 이치로 바로 들어간 겁니까 이치가 아닙니까? 이게 무슨 말이냐? 액면적으로만 생각지 마라. 예수님은 모든 기독자들의 대표적 시험으로 들어가 있어. ‘네가 예수 믿냐? 예수이름가지고 이방인들이 소원 목적하는 것을 세상을 소원 목적하고 살아라’ 요게 이치입니까? 이치라고 보여요?
많은 부흥강사들이 ‘이 세상의 소원 목적이 뭐냐? 구체적으로 구하라. 구체적으로 안 구하면 안 준다.’ 그 부흥강사가 누구 앞잡이요?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분명한 성경 구절적으로 있잖아요. 그럼 그의 나라는 천국, 그의 의는 천국의 의. 구하라. 그건 자기의 능력성이 되는 건데 인격성이 되고 자기의 속성이 되는 건데 그런 성품은 구할 줄 모르고 계속 예수이름가지고 뭘 구하고 있어요? 예배당을 짓는데, 부자 되는데, 불타고 썩고 변동되고 진동되고 바람 불면 날아갈 것을 전부 구하고 있지 않은가? 그러니까 예수는 열심히 믿는데 표면적으로 열심히 믿는데 마귀시험에 다 넘어간다.
쉬운 예를 듭시다. 눈에 안 보이는 것을 말하면 졸기 쉽고 잘 못 알아들으니까. 우리교회 오면 설교가 어렵다고 자꾸 그래요. 그래, 유치원생 모양으로 무용을 이렇게 하면 그건 쉽겠지요? 언제까지 그런 짓 할 거요? 예수 믿고 한 해 두 해 갔으면 철이 들어야 될 거 아니냐? 언제 머리가 되어서 모르는 자들에게 가르칠 거냐? 주님께로 언제 밀착을 시킬 거냐? 건물 하나 지어놓고 사람 모아놓고 만날 쉭쉭하고 뱀 기어가는 소리하고 그럴 거요? 안수한다고 그러고? 그걸 뭐라 그러냐? 물. 물. 물질축복 하면 팍 엎어지고 ‘성령의 불이다’ 그러면 팍 엎어지고. 그 무슨 병? 지랄병. 성경에 있잖아요? 오늘날 교인들이 그런 형태로 안 보입니까? 일반사회 강연장보다 못 해. 오늘날 교회가. 전부 다 귀신이 들어가지고 자기의 감정과 흥분을 고저로 하고. 그게 예수 믿는 게 아니라 그 말이요. 자기도취에 빠져가지고 사기꾼들에게 다 속고 속이고 이용당하고.
자, 누가 이 소리 들으면 ‘당신만 제일이요?’ 그 소리가 분명히 나와요. 그럼 성경은 믿는 사람에게 주는 거요 안 믿는 사람에게 주는 거요? 그럼 자기가 예수 믿습니까? 예수 믿으면 이 성경을 보라고요. 그러면 이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 진리본질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요 하나님의 신적 도덕성 외에 뭘 말하고 있는가? 뭘 말하고 있는가? 성경에서? 자, 그러면 그것도 잘 못 알아들으면 하나님께서 늘 징계를 하고 형벌을 주고 포로로 잡혀가게 하는 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합디까 이방인들에게 합디까?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하더라. 그것도 못 알아들으면 그러면 부모 된 자로서 자기 자식을 때립니까 남의 부모가 와서 때리고 부모 된 나는 남의 자식을 끌고 와서 때립니까? 그래요? 이치가 그러냐고요? 성경은 전부 교회인 나에게. 나에게 주는 말 아니요?
완전자입니까? 비뚤어진 것이 하나도 없어요? 전부 다 하나님으로 돼 있어요? 완전자요? 배울 것이 없습니까? 고칠게 하나도 없느냐고요? 비뚤어진 것도 없고? 전부는 나에게. 나는 교회야. 전부는 교회에게 주는 말이야. 그러니까 목사가 성경을 읽고 야단을 쳐도 교인들에게 야단을 쳐야지. 교인을 바로 세워야지. 주님의 형상으로 본질로 세워야지. 교회에 교인을 앉혀놓고 안 믿는 사람 불러다가 ‘야 이놈들아, 빨리 안 설래’ 그래요? 엉터리 목사라도 ‘축복 축복’ 하면서 교인들에게 축복합니까 안 믿는 사람보고 축복합니까? 어디로 들어가 있어요?
돌을 가지고 떡을 만들어 먹는 거 이치가 아니다. 오늘날 기독교인들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먹고 살아야 할 텐데 깨달음으로 먹고 살아야 할 텐데, 사는 위주가 그렇고 사는 목적이 그런 건데 이 사는 목적을 먹고 마시고 입고 세상의 것을 기준을 갖고 와서 성경구절로 그거 이루어달라고 그러니 주격이 하나님이 돼 있습니까 세상이 돼 있습니까? 자기 속에서? 세상으로 돼 있잖아요. 맞잖아요. 제가 지금 거짓말하는 거요?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았으면 더 지혜로울 것이고 안 살았으면 고쳐야 된다. 바로 고쳐야 된다.
이치적으로 봅시다. 세상을 붙들고 있으면 세상은 바람 부는 곳이고 전부 다 흔들리고 있어요. 자기가 예수 믿는 사람으로서 정확하게 흔들리지 않고 바로 서 있으려면 바람에 나부끼는 흔들리는 걸 붙잡고 있어야 됩니까? 일반적으로도 예수는 안 믿지만 일반적으로도 가만히 보면 술 먹은 사람이 비틀비틀 할 때에 무엇을 붙잡으면 자기는 흔들리지 않을까요? 사람을 붙잡을까요 튼튼하게 박혀있는 전봇대를 붙잡을까요? 전봇대를 붙잡아야지. 근데 착각해서 전봇대에 나온 못이 자기 집 옷걸이인줄 알고 거기다가 자기 옷을 걸어놓고 그 밑이 ‘내 방이거니’ 하고 자는 이게 문제지. 이제 이치를 말하는 거요.
하나님의 말씀은 진리이치요 생명이치요 신적인 도덕이치요, 여기서 벗어나면 안 된다. 말씀의 이치를 벗어난 그 소원 목적은 마귀에게 빠졌다. 안 믿는 사람들처럼 사람 데리고 거짓말하고 사기치고 그 죄는 말할 필요가 없어. 하나님의 말씀에서 벌써 빗나가 있다면 이건 하나님께서 보실 때 이건 죄로 들어가요. 죄가 뭐요? 법을 어겼다 그 말이요. 하나님의 법을 어기는 여기에서 그 다음에 모든 죄는 다 나와요. 모든 사고방식 행동 활동 죄는 다 나와. 그거 알아야 돼. ‘먼저 속을 깨끗이 하라. 그리하면 겉도 깨끗하리라.’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지금 연속적으로 하는 겁니다. 마귀가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님의 아들인지 아닌지 알아요 몰라요? 마귀가? 압니다. 잘 압니다. 귀신들도 잘 압니까? 예수님을? 잘 알아요. 그러면 오늘날 여기 오신 교인들은 예수님을 잘 압니까? 잘 알아요? 예수님의 눈맛 코맛 입맛, 이 맛이 다 있어요. 사람은 오각의 오감성의 맛이 있어요. 예수님의 입맛을 압니까? 예수님의 귀맛을 압니까?
자, 이건 좀 우리에게 영감적으로 느끼게 하는 말인데 하늘나라 가면, 문자적으로 봤을 때 하늘나라가면 무슨 과일이 있다고 그랬어요? 생명시냇가에 생명나무가 있다. 달마다 과일이 한 과일만 달립니까 여러 가지 과일이 달립니까? 여러 가지 과일. 여러 가지 과일이 달린다면 맛도 다를 테지요? 맞잖아요? 고소한 맛 신맛 단맛 그 입맛대로 이제. 그러나 생명과거든. 이걸 우리가 또 자기 앞에 가만 놓고 보면 하나님의 진리 이 말씀에 은혜의 강 속에 자기의 소원 목적이 이성과 정신 모든 감성이 딱 뿌리를 박아놓으면 이 세상에서도 여러 가지 크고 작은 사건 환경을 지나면서 맛을 느끼겠구나. 살아가면서 맛을 느끼겠구나. 무슨 맛? 하나님의 생명의 맛. 맛을 느껴. 사람도 맛이 있습니까? 맛이 있지요? 음악도 맛이 있습니까? 맛이 있지요? 반찬도 맛이 있습니까? 맛이 있지요.
귀신들도 예수님을 잘 압니다. 우리는 잘 아느냐? 예수님을 얼마나 알고 있습니까? 귀신보다 더 잘 알아요? ‘하나님의 자녀 너희는 나를 따르라.’ 내가 예수님을 따랐다고 한다면 그 누구보다 더 잘 알아야 되지 않겠냐? 맞잖아요? 이치가. 왜 모르지요? 왜 모르느냐고요? 모두 하나님의 자녀고 하나님의 백성이고 그렇습니다. 천국에 가면 신령천국을 유업으로 받아 다스릴 우리들입니다. 그게 전제가 돼 있습니다. 실력 없으면 못 다스릴 거고.
자, 그러면 예수 믿는 자기가 하나님께서 왜 인간 자기를 인간으로 만들었는지? 자기는 인간 아닙니까? 하나님의 형상이요 모형이요. 이게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진리본질로 자체화 사상화 실상화로 예수님처럼 만들어져가는 이런 단계에 있는데. 자, 믿는 사람으로서 인간 자기를 만든 즉 나를 창조한 원인 동기 목적이 뭐냐 그 말이요. 하나님께서 나를 인간으로 만들어 놓으신 원인 동기 목적이 뭐냐? 그걸 안다면 성경해석은 절로 되는 거요. 모든 성경해석은 그 쪽으로 다 맞춰져 있기 때문에. 다른 말로 하면 그것이 영원 전 그리스도 안에 있는 구원입니다. 그게 구원. 자, 예수 믿는 사람이 이걸 똑바로 아는 사람이 몇 명이나 있을까? 알기는 알까? 생각이나 해 보았을까? 예수 믿는 사람이 알아야지. 자기가 인간이라면 하나님의 자녀라면 알아야지. 알지 못하고 뭐가 잘 났어요? 인간 자기의 존재목적 출생목적을 모르는데 뭐가 잘났어요? 뭐가. 노래도 있습니까? 내가 나를 모르는데 뭐라고요? 어떻게 딴 사람을 알아요?
자기가 자기 마음 잘 알아요? 얼마나 잘 알아요? 자기 속에 자라고 있는 병도 모르는데 뭘 잘 알아요? 뭘? 자기 속에 자라고 있는 병도 몰라서 병원에 가서 기계를 넣어서 보게 하고 뭘 잘 알아요? 자기가 자기 생각 이게 비스듬하게 놓여있는지 산 밑에 저 아래 있는지 산꼭대기에 있는지 이게 지금 동서남북으로 이게 어느 쪽을 향해있는지 자기 마음에 생각하는 성향이 방향이 있어요. 아느냐? 모르고 있다. 모른다. 기독교회에서는 성경을 통해 가르쳐줘야 하는데 모른다. 전혀 모른다. 그저 예수 믿고 부자 살고 그저 병이나 낫게 해주고 그러면 다 된 거다. 그렇지요? 그 사고방식이 병이 들어있어. 그게 지금 병이야.
영의 눈을 가지고 예수님께서 병자 고치신 것을 그게 무슨 병에 해당하는지 그거 모르니까 자기는 육신적으로 그런 병이 안 들었다 그 말이지. 바리새교인들하고 똑같아. 눈을 떴다고 했으나 예수님이 딱 보니까 소경이다. 맞잖아요? ‘나는 부자라’ 하고 있지만 예수님이 볼 때는 헐벗었고 불쌍하고 처량하고 가련하고. 그런 차원 알아요? 영의 눈을 가지고 보는 이 신앙 면에서 이게 벗었는지 입었는지 헐벗었는지 그 알아요? 예수님께서 보듯이 그 눈을 따라가야 할 텐데 왜 이방인의 눈을 가지고 교회를 보지요? 왜 이방인의 눈을 가지고 예수님을 보지요? 이게 바로 된 거요? 바로 안 됐으면 고쳐. 당장 고쳐야 돼. 당장. 하나님의 자녀라면 당장 고쳐야 돼.
상대가 누군지도 모르고 그런 어리석은 시험을 할까요? 마귀가? 상대가 누군지도 모르고 어리석은 시험을 할까요? 그런데 이놈의 마귀가 왜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그렇게 말을 할까? 잘 알아요. 누구 들으라고 그 말을 할까? 혹시 그런 말 들었습니까? 혹시 예수 믿는 자기를 보고 ‘네가 믿음이 좋거든 요즘 비가 안 오잖아요. 하늘로부터 비 좀 내리게 해라. 하나님이 네 아버지라며?’ 그런 소리 혹 들어봤습니까? 그 때 뿔이 안 납니까? 뭔가 속에서 울화통이 안 터져요?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이 말에다가 겹으로 붙인다면 ‘네가 예수님을 믿는 성도냐?’ 똑같은 이치가 들어가는 겁니다. ‘성도냐? 네가 그 천국을 이어받을 하나님의 아들이냐? 그렇다면 만능의 능력자를 이용해서 밥 먹고 살아라. 예수 믿으면 세상부자 되는 거부터 해결해 달라고 그래라.’ 그것이 속에 중복적으로 깔려있는 말이요. 그러니까 이 마귀하고 예수님하고 지금 머리싸움이요. 이것을 모르시고 마귀의 그 말에 예수님이 넘어가시겠느냐? 안 넘어가지요. 그런데 인간 자기는 그냥 넘어갑니까? 그걸 이겨야 지혜로운 구원이 또 나오겠는데 넘어져 버렸어. 돈바람 휘 부니까 돈 잡으려고 막 따라가지요?
요즘도 그런 게 있는지 모르겠어요. 옛날에는 얼마나 돈이 궁했습니까? 장난 잘 치는 아이가 돈 백 원짜리 딱 묶어놓고 실은 눈에 안 보이게 해놓고 딱 길에 있으면 어른이 가면서 주우려고 하거든. 그러니까 줄을 살짝 잡아당기면 바람이 부는 느낌에 돈이 날아가는 것 같아. 주우려고 하면 그럼 또 잡아당기고. 돈이 잡히겠어요? 마귀가 그런 식.
학교공부는 왜 합니까? 돈 잡으러 가라고 학교공부 합니까 돈이 따라오도록 하느라고 학교공부 하는 겁니까? 어느 거요? 어느 해석이요? 배우고 듣고 알고 기술부터 배웁니까 돈부터 먼저 붙잡고 그렇게 합니까? 이치가. 세상이치가? 왜 이치를 어기고 살지요? 왜 자기의 사고방식을 거꾸로 뒤집어 놓지요?
어린애가 힘센 씨름장사보고, 씨름하는 장사는 힘이 세지 않아요? 큰 돌이 하나 있습니다. 어린애가 씨름장사보고 ‘이 돌 들 수 있어?’ ‘어, 내가 어제 들었다.’ ‘나는 안 봤다. 이거 들어봐. 지금 못 들면 못 드는 거다’ 그러니까 자기는 들 수 있거든요. 못 드는 게 아니고 들었고 언제든지 들 수 있어. 그러니까 이 힘 있는 장사가 그 돌을 번쩍 들었어. ‘자, 들었지? 봤지? 확실하지?’ ‘아, 그래. 아, 이제 내가 알겠다.’ 자, 머리싸움에 누가 이겼습니까? 싸움이 붙은 건 알아요? 지금? 예수 믿는 것 좀 생각을 해. 자기 위치 자기 수준 자기 신분적으로 이게 어떤 사람인지? 지금. 안 그러면 신분도 모르고 이치도 모르고 자기 수준도 모른다면 이건 얻어맞아야 된다. 학교에서 공부 못하면 어때요? 얻어맞다가 변소청소나 하고 그 다음에는 왕따 당합니까? 사회 나와도 왕따 당해요. 그 보여주지요?
예수 믿으면서 몰라가지고 성경을 몰라가지고 분이 난 때 있습니까? 이단자들 여호와의 증인자이나 또 뭐 ‘하나님 어머니’ 하고 돌아다니는 그런 분들도 있어요. 앞으로 이상한 종교들이 나올 가능성이 많아요. 그 싸움 붙으면 이깁니까? 그런 사람들이 성경 이렇게 잘 뒤져가지고 ‘이거 읽어보라고.’ 성경인데 안 읽어볼 수 있어? 벌써 넘어갔어. 벌써 넘어간 거요. 왜 지고도 자기 실력 없는 면에서 분해서 못 견디는 그런 마음이 있어야 되는데 몰라가지고 있는 자기 처지를, 멍청하고 바보 같은 자기 처지를 생각할 줄 모르고 밥만 잘 먹고 살면 그거 땡이요? 잘 배워서 제가 실지로 한 것처럼, 여호와의 증인들은 둘씩 꼭 짝으로 다녀. 그리고 아주 깔끔하게 다녀요. 참 사람들이 보면 깔끔해. 여자 분들도 아주 깔끔하고 예쁜 여자 분들도 다니게 하는 모양이요. 그 옷 하나 잘 입어요. 깔끔하다. 사실 많은 사람 만나려면 깔끔하게 해야지.
좌우지간 하나님 앞에 예배 올리는데 이게 뭐 품행가지고 말하지 않게 해요. 꼭 시장 장바닥에 돌다가 들어오는 것처럼 어디서 놀다가 들어오는 것처럼. 또 뿐만 아니고 가만 보면 젊은이들 속에 많이 볼 수 있어. 그 외국사람들 오토바이 타고 머리에 이게 뭐요? 로얄제리를 발랐는지 이상하게 세워가지고 뭐 이상하게 다니는 족속이 있지? 제발 좀 사람이 편안하게 인격적으로 보이고 무난하게 보이면 그 얼마나 좋습니까?
그리고 여자분들, 하나님께서 ‘미간에 털을 밀지 마라’ 그랬어요. 미간이 어딘지 알아요? 눈썹 다 밀고 뽑은 사람도 있고, 뽑고 거기다가 바늘로 쑤셔서 검정 물을 집어넣은 사람도 있고. 이거 아직은 내 발견을 못 했어요. 이거 분명 이유가 있다. 아닌 말로 ‘털을 밀면 네 목숨이 십 년은 짧아진다’ 그러면 기가 막힐 거요. 이게. 사실 그래요. 요기 딱 이렇게 하면 굉장히 아프지요? 뾰로지 여드름 같은 거 짜면 엄청 아프지요? 잘못 건들면 죽는 데요. 부지런히 건들어요. 우리를 위해서 하는 거요. 건강을 위해서 하는 거요. 오래 살라고 하는 거요. 말씀으로 살라고 한 거요. 그 왜 비 오면 비 맞지 말라고 하나님께서 차양을 딱 달아놓은 건데.
참 오늘날 문제요. 머리싸움에 그냥 우리는 넘어가 버려요. 구원이 뭔지 모르니까. ‘예수 믿고 지옥에서 천당’ 이것은 1학년짜리고. 예수 믿으면 천국 가기는 가죠. 인간 편에서 보면. 그러나 성경은 그 차원을 말하는 게 아니고 ‘이미 너는 천국 갈 사람이다. 그러니까 천국 갈 영능의 실력을 키워라.’ 그래서 자기에게 미운사람 고운사람 부요도 가난도 이런 저런 사건 환경을 몰아붙이는 거다. 영능의 실력을 키워라. 예수 잘못 믿어놓으면 그것도 몰라. 자기 어려우면 자꾸 자기 기도 들어달라고 그러지. 어려움의 그 사건도 누가 준 거냐? 하나님께서 줬어. 바로 세우려고 준 건데 바로 세우는 이치는 알지 못하고 까맣게 알지 못하고 자꾸 자기 도와달라고 하는 거요. 이게 교만이요 패역이요 어그러졌어요.
인간 자기를 지으신 창조의 원인 동기 목적을 모르면 자기는 자기 자신을 모르는 사람이다. 누가 그랬어요? ‘네 자신을 알라.’ 누가? 소크라테스. 그럼 소크라테스는 자기를 인간으로 지은 하나님의 창조 원인 동기 목적을 알까요? 알고 지금 그 말 한 거요? 모른다. 어른들이 ‘네 분수를 알라’ 그러면 교육적인 말이고 참 좋은 말이지만 그 말씀을 하는 그 어른은 자기를 인간으로 지은 창조의 원인 동기 목적을 압니까? 몰라요.
이 성경에 보면 ‘하나님께서 너의 죄를 사했다. 네 믿음으로 너는 구원받았다’ 이런 말씀들이 많이 있어요. 그냥 병에서 건강으로, 가난에서 부요로 이것도 영의 눈을 가지고 보면 구원의 하나의 과정이에요. 가만히 보면. 병에서 건강으로. 그런데 ‘죄를 사했다’ 하는 이 면에서 행동 죄 이전에 말씀에서 어그러진 그 자신을 먼저 발견을 해야 돼요. 그래야 그 다음 것은 하나님의 긍휼로 역사가 돼 들어간다. 그런 게 들었다는 거.
어쨌든 출생목적 세상 존재목적을 모르면 너는 네 자신을 잘 모른다. 내가 내 자신을 잘 안다고 교만을 떨지만 사실 엄밀히 들여다보면 잘 모르고 있습니다. 모르기 때문에 실수연발이고 고통연발이 아니더냐? 몰라서 그런데서 나오는 거다. 그거는. 그런데 이게 인간 전체적으로 보면 인간 자신이 누군지 모르고 사는 사람이 많습니까? 성경을 통해서 보면 그래요. 그런데 좀 좁혀서 쉽게 그저 아버지 역할도 모르고 사는 아버지가 있습니까? 그렇잖아요? 왜 그럴까? 그게 왜 그래요? 출생목적 재세기간의 존재목적을 몰라서 그렇다. 간단히 말하면 왜 하나님이 자기를 인간으로 지었는지 이거 몰라서 그렇다. 큰 죄다. 이게. 하나님 앞에 바로 못 서니 인인관계 남편과 아내 자식 이웃 온 다른 사람에게 전부 죄짓고 가는구나. 죄만 짓고 가는구나.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무슨 말인 것 같아요? 신분을 시험하는구나.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신분. 만일 예수님께 ‘그래, 내가 하나님의 아들이다. 하나님의 아들 된 증거를 보여줄까?’ 하고 돌로 떡을 만들었다면 이것은 마귀에게 진 겁니까 이긴 겁니까? 졌어. 그렇다면 예수님을 통한 우리의 구원은 없어지는 겁니다. 알겠어요? 자기가 그렇게 개인적으로 넘어가 있다면, 이치가 아니게 세상을 소원 목적하고 살고 있다면 마귀에게 넘어갔다. 그런 면에서는 이룰구원 차원에서 영능의 실력은 예수 수십 년을 믿어도 넌 실력 없다. 집사라도 목사라도 넌 실력 없는 사람이다. 이해갑니까?
십자가에 달렸을 때도 누가 그랬지요?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스스로 내려오라.’ 어쩌면 마귀 말하고 그 질이 똑같으냐? 역시 오늘날 예수 믿는 사람들도 마귀입장에 서 있으면서 자기가 마귀입장에 섰다 그래요? 안 그래요. ‘예수 믿어 부자 되라 그래야 전도가 잘되지.’ 누구 말이요? 하나님의 말이요 마귀 말이요? 마귀 말이야. 그 이치가, 그 정신 사상이. 전도 잘되게 해 줄 것 같으면 만능의 능력가지고 우리를 다 부자 못 만들 것 같아요? 부자 다 만들어주면 다 좋은 사람 되고 잘 살 것 같아요? 그날로 네가 죽을 수 있다. 돈이 너무 많아가지고 돈 때문에 망하는 사람들도 있습니까? 폐인이 되고. 왜 돈에다가 행복의 다림줄을 놓아? 행복은 누가 만드는데요? 인간이 만들어? 자기가 만들어? 왜 자꾸 외국에 뭐 다른 사람들이 노력해서 천국처럼 꾸민 거기 가면 행복할 것 같아요?
그 이치가 어디 있는지 알아요? 에덴동산이 하늘나라와 비슷해요. 하나님이 거니시는 동산이라 그랬지요. 얼마나 아름다운 동산인데. 근데 거기서도 죄를 짓습디까? 말씀불순종이 돼 나옵디까? 이치를 알아야 돼. 이치를. 십자가에 달렸을 때도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스스로 내려오라.’ 그랬다면 우리의 구원은 없다. 최악의 어려운 상황 상태에서 사십 일 금식기도 완전히 바닥으로 다 내려갔어. 삼일만 굶어도 밥 냄새가 코로 들어오면 미칠 지경인데 사십 일을 굶었으니 최악의 상태. 상태가 최악의 상태에서 신분을 시험하는 거다. 돌로 떡 만들어 먹는 것은 구원도리가 아니다. 아무리 배가 고프다고 예수님의 신분 성도의 신분을 떨어뜨리는 짓은 하지 말아야 된다. 이해가시죠? (계속)
(궁극교회 김경형목사님의 설교를 정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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