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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볕같은이야기는 최용우가 1만편을 목표로 1995.8.12일부터 매일 한편씩 써오고 있는 1천자 길이의 칼럼입니다. 그동안 쓴 글을 300-350쪽 분량의 단행본 26권으로 만들었고 그중 13권을 교보문고에서 판매중입니다.글이 필요하시면 언제든지 동의 없이 가져다 쓰셔도 됩니다. 책구입 클릭!

고난과 나

2019년 하동 최용우............... 조회 수 192 추천 수 0 2019.09.03 10:2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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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아침차 한잔 마시면서 전해드리는 햇볕같은이야기 그 6453번째 쪽지!


□고난과 나


벗들과 등산을 가는 차 안 라디오에서 사고로 두 다리를 잃은 사람이 힘들게 사는 사연이 나왔습니다. 하지만 저는 새로 산 등산화 깔창이 내 발에 맞을지 안 맞을지 그것을 걱정하고 있었습니다. 신발에 맞게 끝부분을 가위로 잘라냈어야 하는데 시간이 없어 그냥 넣었더니 발가락 끝이 걸려 산행을 하는 내내 신경 쓰이게 했습니다.
두 발이 없는 사람에 비해 나의 발가락 끝을 불편하게 하는 깔창 따위는 얼마나 작은 일입니까? 그러나 저는 짜증을 내고 말았습니다. 나에게는 남의 큰 고통보다도 나의 작은 고통이 훨씬 현실적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사실 고통이나 고난은 크고 작은 것이 아닙니다. 그냥 나에게 닥친 고난이 이 세상에서 가장 큰 것입니다.
도대체 사람들에게 고난(苦難)이라는 것은 왜 있는 것일까요? 불교에서는 ‘인생은 고해(苦海)다’라고 해석합니다. 어쩌면 세상사는 그 자체가 괴로움의 바다가 아닐 런지요? 그래서 부처님은 “태어나는 것, 늙는 것, 병드는 것, 죽는 것, 싫어하는 사람과 만나는 것, 좋아하는 사람과 헤어지는 것, 바라는 것을 얻지 못하는 것을 고성제(苦聖諦)라고 한다. 그냥 존재한다는 것은 괴로움(dukkha)”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욥은 자신의 고난을 이겨내는 과정에서 놀라운 사실을 깨닫고 그것을 마지막으로 고백하면서 욥기를 끝냅니다. 고난은 자신의 이성을 초월하는 것이며, 고난은 인간의 이해의 테두리 안에 있지 않고 전적으로 하나님의 권한에 속한 것이라는 것입니다.
고난은 불교에서 말하는 것처럼 괴로운 것도 아니며 그렇다고 즐거운 것도 아니며, 고난은 인간과 열방들의 궁극적인 운명을 통제하시는 하나님의 신비한 방식이니 고난에 대해 인간들이 왈가왈부하지 말라는 것입니다.(욥40:1-8) ⓒ최용우


♥2019.9.3. 불날에 좋은해, 밝은달 아빠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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