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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볕같은이야기는 최용우가 1만편을 목표로 1995.8.12일부터 매일 한편씩 써오고 있는 1천자 길이의 칼럼입니다. 그동안 쓴 글을 300-350쪽 분량의 단행본 26권으로 만들었고 그중 13권을 교보문고에서 판매중입니다.글이 필요하시면 언제든지 동의 없이 가져다 쓰셔도 됩니다. 책구입 클릭!

선지자와 목사

2019년 하동 최용우............... 조회 수 201 추천 수 0 2019.09.24 07:14: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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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아침차 한잔 마시면서 전해드리는 햇볕같은이야기 그 6469번째 쪽지!


□선지자와 목사


목사는 선지자인가? 목사가 선지자는 아닙니다. 그러나 목사 중에 선지자가 많습니다. 왜냐하면 보통의 사람들은 일주일의 대부분을 직장에서 보내기 때문에 하나님 앞에서 오랜 시간 깊은 기도를 할 수 있는 기회가 상대적으로 적습니다. 그러나 목사는 일주일의 대부분을 목회활동으로 ‘오랜 시간 깊은 기도’를 할 수 있는 기회가 많기 때문에 선지지가 될 가능성이 많습니다. 하지만 교회가 부흥하여 정신없이 바쁜 목사는 선지자가 될 가능성이 현저하게 낮습니다.
선지자는 ‘예언자’와 다릅니다. 예언자는 개인의 미래에 어떤 일이 일어날지 미리 알아맞히기 때문에 ‘미리 예(豫)’자를 써서 ‘예언자’라고 하지만, 선지자는 미래를 보고 예언을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받은 메시지를 맡아서 전하기 때문에 ‘맡길 예(預)’자를 씁니다.
선지자는 미래를 예측하는 예지 능력으로 예언을 하는 것이 아니라 깊은 기도를 통해 하나님과 일치되어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하나님의 마음을 전합니다. 그래서 예언자는 사람들 귀에 듣기 좋은 말로 예언을 하지만, 선지자는 하나님과 인간의 연결고리의 역할이기 때문에 전하는 메시지는 듣기 좋은 말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천주교는 전통을 따라 수도원에서 하루 종일 기도에 전무하는 수도사들이 깊은 기도를 통해서 받은 선지적 메시지를 소속 성당에 전하면 신부들이 선포합니다.(신부들에게는 설교준비가 없습니다.)
그러나 기독교는 기도만 전무하는 수도원이 없기 때문에 선지적 메시지를 전해주는 곳이 없습니다. 설교 준비는 온전히 목사의 몫이기 때문에 개교회의 교인들은 바쁜 목사가 급하게 준비해서 전하는 굉장히 제한적인 말씀을 매주 들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니 평생 교회 다녀도 선지적 설교가 뭔지도 모를수도 있는 것이죠. ⓒ최용우


♥2019.9.24. 불날에 좋은해, 밝은달 아빠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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