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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사람들

마가복음 크리스 킴............... 조회 수 322 추천 수 0 2019.10.10 00:3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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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막1:1-7 
설교자 : 김기성 목사 
참고 : 말씀의 숲 교회(대한예수교 장로회) 

행복한 사람들(막1:1-7)


많은 사람들이 오해를 해요. 마가복음을 썼던 마가는 예수님의 12제자 중에 한 사람이라고 하지요. 하지만 마가복음의 저자 마가는 예수님의 12제자가 아닙니다.


여러분, 예수님님이 돌아가시고 많은 사람들이 다락방에 모였잖아요? 그 다락방 이름 기억나세요? 누구의 다락방이라고 하나요? 마가의 다락방입니다. 120여명 정도 그 다락방에 모일 정도면, 상당히 부유층에 해당하겠지요. 그 집안의 아들이 바로 오늘 마가복음을 쓴 저자 마가예요.


예수님이 돌아가시고 난 후에 64년 정도 지났어요. (AD64년경)이었어요. 정말 역사책에도 나올 정도로 로마에 큰 불이 일어났어요. 로마시의 16개 구역 중에 10개 구역이 넘게 타 버리는 엄청난 화재이지요. 그 당시 로마의 상당한 지역이 완전히 잿더미로 변해 버렸어요.


얼마 되지 않아 로마 전역에 이상한 소문이 떠돌기 시작했어요. 그 당시 로마 황제가 우리가 잘 알 고 있는 ‘네로’입니다. 요즘 아이들 말로 말하면 상당히 ‘똘 아이’ 였어요. 이 네로 황제가 불을 지르도록 했지요.


네로가 불을 질렀다는 소문이 점점 퍼져나가기 시작해요. 이 사실이 잠잠해 지지 않고, 오히려 불길처럼 점점 솟아오르기 시작했지요. 많은 시민들의 분노가, 네로 황제에게 향하고 있었어요. 조금 있으면 폭동이 일어날 상황까지 이르게 됩니다.


사태가 점점 커지기 시작하니까, 로마 정부는 거짓 정보를 흘리기 시작하지요. 로마에 예수를 믿는 그리스도인들이 자기네들의 이권을 위해 로마 곳곳에 불을 질렀다고, 거짓 소문을 흘리기 시작합니다.


그래서 로마 시민들은 예수 믿는 사람들에 대한 증오심이 불같이 일어났지요. 그로 인해, 많은 예수 믿는 그리스도인들이 로마시 방화 혐의로 체포되어 구금되거나, 처형되지요. 그나마 살아남은 그리스도인들은 ‘카타콤’이라고 하는 깊은 동굴로 숨어들었고, 더러는 목숨을 보존하기 위해 해외로 흩어졌지요.


그런데 이런 사건이 일어난 직후에, 작은 책자 하나가 로마의 그리스도인들 사이에 비밀리에 건네어지기 시작해요. 이 소책자는 이렇게 시작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복음의 시작이라’ 그 책이 바로 마가복음이었던 거예요.


이런 가운데 쓰인 마가복음의 첫 문장은 사뭇 긴장되고, 다급한 모습을 보여 주지요. 여러분, 마태복음은 예수님의 족보로부터 아브람의 후손으로, 예수님을 표현하고 있고요. 또한 누가복음은 예수님의 탄생사건으로부터 시작하지요. 그런데, 마가복음은 굳이 많고 많은 문장 중에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시작이라’ 라고 시작했을까요?


여러분, 복음이라는 말은 무슨 뜻일까요? 기쁜 소식(Good News)이지요. 즉 예수님의 ‘기쁜 소식’이 시작이 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복음을 위해 쫓기고 있는 로마에 살고 있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예수는 기쁜 소식이 된다고 고백하는 마가의 첫 문장이 그들에게는 어떻게 받아들여졌을까요?


이제, 그 기쁜 소식에 대한, 한 사람으로 마가는 광야에서 외치는 ‘세례요한’을 마가복음의 첫 문장 다음으로 쓰고 있어요. 그리고 그의 생애를 쓰고 있지요. 그의 별명은 ‘주의 길을 예비하는 자’였지요. 오실 주님의 길을 평탄케 하는 자로 소개하지요.


하지만, 우리가 알고 있듯이, 세례요한의 마지막은 목이 잘려 소반에 담겨 죽었어요. 여러분, 언제 죽일지도 모르는 로마의 그리스도인들이 숨어 있으면서, 돌아다니는 이 책자의 첫 페이지를 읽을 때, 그들의 마음은 어떠했을까요?


그들이 들고 있는 마가복음이라는 소책자에 소개된 ‘세례요한’! 그와 같이 주의 일을 하다가 목이 잘려 죽고 마는 그 책자가, 과연 그들에게 어떠한 위로가 되었을까요?


오늘 마가는 이 글을 읽는 절망 속에서, 그나마 한 줄기 희망을 발견하고자 하고, 그리고 어두운 동굴의 카타콤에서 언제 죽을지도 모르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예수님을 위해 무대 뒤로 쓸쓸히 사라져 가는 것을 복음이라고 말하고, 더 나아가 복된 자라고 말하는, 어떻게 보면 어처구니없는 말을 하고 있어요.


여러분, 이 말씀을 읽고, 절망 가운데 도망 다니고 있는 그들에게 소망이 생겼쓸까요? 세례요한의 행복이 그들 가슴에도 와 다 왔을까요? 그래서 예수를 위해 무대 뒤로 살아져가는 것을, 가장 ‘행복한 자’라고 믿고, 말없이 사자의 밥이 되어, 죽어 갈 수 있었을까요?


그러나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분명 그들에게 다가오셨을 것입니다. 그리고 이 복음의 위력을 통해, 절망 가운데 있는 그들에게 말 할 수 없는 기쁨과 위로를 분명 주었을 것입니다. 그것이 무엇이었을까요?


그렇다면 그들에게 다가왔던 말할 수 없는 위로의 힘은, 아마 우리가 생각하는 위로와 다를 것입니다.


여러분, 어쩌면 우리의 믿음이라고 하는 것은, 우리가 인생을 살아갈 때 어려운 문제를 만나지요. 그리고 그 어려운 문제를 믿음으로 잘 극복하지요. 그리고 극복하고 나서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드지요.


과연 이것이 믿음의 전부일까? 어쩌면 그것이 우리가 생각하는 ‘믿음’이라고 할 수 있어요. 하지만 우리는, 어쩌면 우리가 생각하는 이런 믿음의 울타리에 갇혀 있는지도 모릅니다. 나에게 찾아오는 어려움이 해결되고, 그리고 문제가 해결되기 위해 필요한 것이, ‘믿음’이라고만 생각한다는 것이죠.


하지만, 오늘 마가복음은 그 믿음의 한계를 뛰어 넘고 있는 거예요. 마가는 절망 가운데 있는 그들에게, 쓸쓸히 죽어가는 세례요한을 보여주며, 믿음은 극복하고 이겨내는 것이 아니라, ‘죽는 것이다!’ 마치 소개하는 것 같습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생각하는 믿음과 얼마나 상반됩니까?


여러분, 최소한 우리 신앙의 논리로는, 예수님을 위해서 내가 무엇인가를 열심히 하면, 내가 사는 동안에는 내 삶이 편안해야 한다는 논리가 우리들에게 있지 않습니까? 그런데, 그러한 논리는 최소한 오늘 본문에서는 그렇게 말하고 있지 않아요.


마가가 그들에게 주었던, 절망 속의 위로는 ‘죽으라’는 겁니다. 세례요한이 형장의 이슬로 살아졌던 것처럼, 너희도 ‘죽으라는’ 겁니다. 이렇게 숨어 있다가 발각되어 쓸쓸이 죽어가는 것이 과연 복일까?


여러분 그것이 복 일 수 있다고, 마가는 소개하는 것이죠. 목이 잘려 죽어가는 세례요한처럼, 앞으로 내 뒤에 오실 예수님을 소개하며, 그는 흥하여야 하겠고, 나는 쇄하여야 하리라고 고백하며, 인생의 뒤안길로 쓸쓸히 사라져 버리는 그 세례요한이, 행복한 사람이라고 소개하는 겁니다.


여러분, 여러분이 믿음으로 살면서, 여러분이 얻고자 하는 행복은 무엇일까요? 병들고, 가난하고, 인생이 잘 안 풀리고, 돈이 없을 때 불행하다고 말하고, 잘 살고, 오래 사는 것이 진정한 행복으로 말하는 것에서, 성경이 말하는 행복의 기준은, 더 넓고, 더 깊은 것은 아닐까요?


성경이 말하는 행복의 기준은 이렇게 말합니다. 주를 위하여 내가 희생 할 때, 주를 위해 헌신해야 하고, 내가 주를 위해 섬겨야 할 때, 내 자아가 죽고 내 안에 예수가 사는 것! 그것을 진정한 행복이라고 말해요.


여러분, 지금 이 순간에 가장 슬픈 것 중에 하나는, 자신의 삶이 세상에 변화를 주길 싫어한다는 거예요.


그저 사람들이 좋아해 주길 바라고, 그냥 어쩌면 학교를 졸업하고, 새로운 직장을 얻고, 남편 아니면 아내를 얻고, 좋은 집, 좋은 차, 그리고 즐거운 휴식을 하고, 가끔 해외여행을 하며, 늙어서 건강하고, 은퇴생활을 만끽하고, 편하게 죽는 것, 그리고 한 가지 더, 지옥 안 가는 것이겠지요.


단지 이것을 이루기 위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어쩌면 ‘알량한 믿음’이 아닐까요? 이 땅의 삶이 영원한 삶에 들어갈 수 있을만한 삶인지, 전혀 신경 쓰지 않습니다. 이렇다면 우리의 삶은 비극일 수 있습니다.


예) 아프리카 선교를 가셨던 두 간호사분이 있으셨대요. 한분은 80세이고, 간호사로서 전 삶을 내 던지셨지요. 가장 어렵고 다가가기 힘든 곳에서, 열심히 아프리카 인들을 위해 자신의 삶을 내 던졌지요.


또 한분은 여자 의사였어요. 이 분도 은퇴하신 후에 아프리카에 와서 의료선교를 펼쳤지요. 어느덧 이분도 80세가 되었어요. 그런데, 아프리카의 마을과 마을을 차로 다니는 도중, 그만 브레이크가 고장 나서 절벽 너머로 떨어지고 말았어요. 그리고 바로 이 두 분은 죽었습니다.


여러분, 이것이 비극일까요? 사람들은 비극이라고 말하지요. 인생 참 허무하다고 말합니다. 80세가 되신 이 두 분, 그리고 한가지의 전 삶을 내건 이분들, 예수님을 위하여 끝까지 헌신하며 복음을 전한 이분들!! 한 순간의 죽음으로 영원한 삶으로 날아간 이 분들의 삶은, 과연 비극일까? 여러분, 이것을 우리는 비극이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비극적인 삶이 있어요. 학교를 졸업하고, 직장을 얻고, 결혼하고, 아파트 평수를 넓혀 가지요. 그리고 좋은 차, 그리고 즐거운 휴식을 하고, 가끔 해외여행도 다닙니다. 늙어서 건강하게 누리고 있다가 편하게 죽어요. 그런데 그 안에 예수가 없었어요.


여러분, 이것이 비극입니다. 그런데 우리에게는 이런 삶을 최고의 삶으로 끊임없이 동경하게 만들어요. 그래서 이런 삶을 동경하게 만들고, 그 비극을 위해 살도록 계속 만들어 놓습니다.


우리의 ‘믿음’도 어쩌면 이런 삶을 동경하기 위해 이런 믿음이라는 것이 필요하지는 않을까요? 좋은 집, 좋은 차, 좋은 직장, 좋은 가족, 행복한 은퇴 이 모든 것을 잘 이루기 위해서 어쩌면 우리에게 믿음이라는 것이 필요함을 말하고 있지는 않는지요?


여러분, 최소한 오늘 성경은~~ 그것을 믿음이라 말하지 않습니다. 최소한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그 삶이 행복이라 말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내가 주를 위해 희생하고, 내가 죽고 주가 살아날 때, 그곳에 진정한 행복이 있다고 마가는 마가복음을 시작하는 첫 장에 소개하고 있는 것이지요. 여러분, 참 행복은, 내가 주를 위해 살 때, 다가오는 것인 줄 믿습니다.


세례요한은 주를 위해 그의 목이 잘렸고, 당신들은 주를 위해 이 깜깜한 어두운 동굴 카다콤에 숨어 있는데, 이것이 바로 행복입니다 라고 말하고, 그렇다면 지금 당신들은 어떠한 삶을 사는 것이 행복입니까? 라고 우리에게 질문을 하는 거예요.


여러분, 올 해는 우리의 삶 속에서 이런 행복이 좀 더 세상의 기준을 넘어서, 성경의 기준으로 더욱 바뀌어 갔으면 좋겠습니다. 주를 위해 내가 희생할 때, 그곳에서 찾아오는 행복이, 진정한 행복임을 믿는 그런 믿음의 전환이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예) 저희 교회가 개척한지 다음 달이면 2년이지요. 여러분, 행복했습니까? 개척한지 3년까지가 ‘개척교회’라고 하니까, 우리는 아직도 개척교횝니다.


힘들지요. 어렵지요. 좀 쉬고 싶지요. 남들은 편안하게 교회 다니며 교회가 주는 혜택 참 잘도 누리고 있는데, 나는 뭔가? 이렇게 불편한 곳에서 오늘 또 있어야 하는가? 그런 생각을 할 수 있어요.


얼마 전에 돌집을 갔어요. 돌잡이 하는 아가씨가 사회를 보면서 이런 질문을 합니다. ‘오늘 돌잔치에서 가장 멀리에서 오신 분 손들어 주세요’. ‘상품을 드릴게요’ 라고 하는 거예요.


그러면서 저는 또 교회 생각을 해 보죠. ‘우리 교회도 이렇게 할까?’ 예배 끝나고, 광고시간에 오늘 예배드리러 오시기 위해서 가장 멀리서 오신 분 손들어 보세요? (박종필 집사)

 

수원에서 사역할 때도, 매 주일이면 춘천에서 시외버스를 타고 예배를 드리러 수원까지 오시는 부부 집사님이 계셨어요? 그래서 제가 여쭈어 보았어요. “집사님, 춘천에도 좋은 교회가 많은데요. 구지 수원까지 오세요?” 라고 물어 보았지요? 그분이 하시는 말씀이

 

“목사님 제가 다른 교회 어찌 다 안 가봤겠어요?” “설교 잘하시는 목사님들도 많고요. 좋은 교회들도 많아요. 그런데 가서 앉아 있으면, 우리 집 같지가 않아요” 꼭 남에 집에 온 것 같고, 앉아 있으면 ‘빨리 나와야지’ 하는 생각밖에 없어요. 그래서 멀지만 우리교회, 우리 집 찾아오는 마음으로 교회 옵니다.


여러분, 이것이 행복이 아닐까요? 나를 희생하고, 나를 헌신할 때, 내 안에 찾아오는 기쁨!! 그것이 저는 진정한 행복이라 믿습니다.


2017년, 2018년 우리는 공동체가 되어 함께 살았어요. 저희 교회 네이버 카페에 들어가 보시면, 사진을 한번 보세요. 교회 일들이 얼마나 많아요? 전도해야 하고, 밥해야 하고, 교회 청소해야 하고, 하지만 사진 속에 얼굴들은 ‘웃음’이 떠나지 않아요. 여러분, 힘든데도 힘들지 않는 행복을, 저는 그 사진 속에서 찾아 낼 수 있었습니다. 


여러분, 내 안에 예수님이 더욱 살아나고, 나는 예수님 때문에 점점 무대 뒤로 사라져 가는 것을 행복으로 믿는 사람! 그 사람이 바로 행복한 사람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 행복하십니까? 무대 뒤로 살아져 가는 연습이 우리에게는 필요합니다. 마치 세례요한이 오실 주님을 준비한 것처럼, 우리에게는 다시 오실 주님을 준비하는 ‘행복한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올해도 정말 행복한 사람 되시길 바랍니다. 힘들지만 힘들지 않는 참 행복의 비결을 찾으셔서, ‘나는 예수님 때문에 행복한 사람입니다!!’ 고백하실 수 있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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