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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리와 제자 사이

마가복음 크리스 킴............... 조회 수 341 추천 수 0 2019.10.14 21:35: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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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막3:13-19 
설교자 : 김기성 목사 
참고 : 말씀의 숲 교회(대한예수교장로회) 

무리와 제자 사이(막3:13-19)


오늘날 성도님들을 보면, 일반적으로 두 종류의 성도님들이 있는 것 같습니다. 어떤 성도는 교회만 다니는 성도가 있습니다. 이런 분들의 특징이 있습니다. 정시 예배가 시작할 때도 예배당에 보이지 않습니다. 송영을 부르고, 사도신경을 고백할 때가 되면, 그때서야 예배당 위층을 채우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예배시간 내내 고개를 숙이거나, 눈을 감거나, 팔 장을 끼고 있지요. 그러다가 설교가 끝나면 서서히 나갈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예배시간 광고가 길어지기나 하면, 엉덩이를 꼬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축도가 끝나기 전에 벌써 예배당을 빠져 나갑니다.


교회 다니면서 부담 받는 것도 싫고, 부담 주는 것도 싫어합니다. 단지 예배를 드렸다는 자기만족에, 주일을 지킨 것으로 도장을 찍었다 하지요. 우리는 이런 분들을 교회만 다니는 분들이라 합니다.


또 어떤 성도는 교회를 세우며 다니는 분들이 있습니다. 어떻게 보면 편안하게 교회를 다니고, 적당한 봉사와 적당한 헌신과, 적당한 헌금으로, 생색만 낼 수 있는데, 어떻게 보면 고생스러운 일들을 골라서 하고, 찾아서하는 것 같습니다.


우리 교회 성도님들을 보면, 참 담임목사 입장에서 보면 안돼 보입니다. 교회 오면 보이는 것이 일거리이고, 해도 해도 끝이 없는 게 교회 일인데, 그래도 그 모든 것을 마다하지 아니하고 팔 걷어붙이고 교회를 섬깁니다.


토요일이 되면, 저만 주일을 준비하는 것이 아니라, 교회에 나와서 전도도 하고, 주일을 위해 쓸고, 닦고, 청소하고, 주일 점심을 준비하느라 분주하게 움직이는 우리 성도들이 있습니다. 저는 이분들을 교회를 세우는 분들이라 말합니다.


어느 쪽이 하나님이 보시기에 더 복된 삶일까요? 교회만 다는 사람을, 저는 무리라 말하고 싶고, 교회를 세우는 사람을 저는 제자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예수님 당시에도 무리가 있었고, 제자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지금도, 교회는 똑같이 다니지만, 무리가 있고 제자가 있습니다.


어쩌면 우리는 그 무리와 제자 사이에 있는 사람인줄 모릅니다. 여전히 무리에 속하는 사람도 있고, 또 열심히 예수님의 제자에 속하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무리의 특징은, 지난 시간에 우리가 살펴보았듯이, 자신의 것에만 관심이 있고, 제자의 특징은 예수님에게 관심이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예수님은 무리를 뒤로 하고 산으로 가셨습니다. 그리고 기도하셨습니다. 간절히 기도하시고 예수님이 하신 것은 무엇일까요? 예수님이 하신 것은 제자를 부르신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들에게 예수님이 원하시는 것은, 무리를 원하시는 것이 아니라, 제자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어쩌면 무리와 제자 사이에 있는지 모른다. 나는 무리인가? 제자인가? 그렇다면 제자가 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첫째, 우리 13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시작)


“부르시니 나아온지라” 여러분 제자는 무리와 다르게 예수님이 부르셨다는 것입니다. 무리는 예수님이 부르시지 아니하고, 자신들의 필요에 따라 예수님을 쫓는 사람이라면, 제자는 예수님이 부르셨다는 거지요.


자기가 원하는 자들을 예수님이 부르셨어요. 여러분, 하나님이 부르지 아니하면, 아무도 올 자가 없다고 하셨어요. 우리의 상태가 어찌되었든, 자격이 있든 없든, 예수님이 우리가 마음에 들었대요. 그래서 불렀대요.


때로는 우리는 우리 자신의 신분을 모를 때가 있습니다. 여러분은 무리일까요? 제자일까요? 가만히 보면, 내가 주님께로 나온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나를 불렀기 때문에 나온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제자입니다. 그런데 내가 제자라는 사실을 모를 때가 있습니다. 그저 나는 ‘무리’라 생각할 때가 있다는 것이죠. 하지만, 하나님이 나를 먼저 부르시지 아니하면, 우리는 하나님께로 올 자가 없기 때문에, 우리는 제자입니다.

  

어떻게 보면 무리는 편해요. 어떻게 보면 제자는 부담이 됩니다. 그래서 억지로라도 무리에 있고 싶어 해요. “나의 관심, 내 만족을 위해 나의 필요만 채우고 나면, 나는 돼!” 라고 생각하여 스스로 무리가 되어 있고 싶어 합니다. 하지만 제자는 먼저 예수님이 부르심으로 시작된다는 것입니다.


예) 제가 지난번 라오스에 가서 현지 분들에게 강의하고 왔잖아요. 예수를 믿지 않는 땅에, 철저한 불교의 나라에, 그들이 하나님을 믿게 되었지요. 복음이 그들에게 들어가니 그들이 예수를 믿게 되고, 그 부르심에 그들이 순종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 중에 한 젊은 친구가 예수를 믿게 되었는데, 아버지는 의사이고, 어머니는 치과 의사입니다. 그 젊은 친구도 치과 대학을 나와서, 이제 부모의 길을 가면 됩니다. 아주 부유층에 살고, 부자이지요.


그런데 어느 날 복음을 접하게 되고, 예수를 믿게 됩니다. 그런데 그의 아버지가 예수를 믿는다면 자식으로 보지 않겠다고 했대요. 그리고 더 이상 생활비도 주지 않겠다고 했대요.


그런데 그 부르심에 그는 포기하지 아니하고, 아버지를 설득을 합니다. 끝까지 설득합니다. 결국 아버지도 예수를 믿게 되고, 어머니와 온 가족이 예수를 믿게 되었다고 합니다.


여러분도, 이 자리에 있는 것은, 하나님이 부르시지 아니하면, 여기에 올 수 없습니다. 그리고 그 부르심에 순종할 때, 여러분은 ’무리‘가 아니라 ’제자‘임을 믿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여러분, 내가 먼저 예수를 믿는다고 말하기 전에, 예수님이 저와 여러분을 부르셨기에 우리가 여기에 있는 줄 믿습니다. 그래서 저와 여러분은 무리가 아니라, 제자임을 기억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둘째는 14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시작)


“이는 자기와 함께 있게 하시고”, 예수님은 그 제자를 가르치시는 방법은 간단합니다. 그들과 함께 하는 것이지요. 예수님은 그들과 함께 3년 동안 함께 사셨습니다. 함께 하면서, 자신의 모든 부분들 다 보여주었습니다.


아마도 예수님은 당신의 모든 부분들을 보여 주셨을 것입니다. 그런데 가끔 이런 생각도 해 봅니다. ‘예수님도 배가 아프셔서 급하게 화장실 가셨을까?’ ‘어 잠깐만 배가 아픈데 화장실... 화장실좀 갔다 와야 겠다’ 하지 않았을까?


그러다가 예수님과 제자들은 들로, 산으로, 호숫가로 다니다 보면 화장실도 제대로 있었겠는가? 아무도 없는 곳에, 예수님은 제자들과 함께 노상방뇨도 하셨을 것이다 라는 생각도 하게 됩니다. 여러분, 함께 했다는 것은, 모든 것을 다 보여 주셨다는 의미일 것입니다. 인간적인 모습도 다 보여 주셨을 것입니다.

   

또한 예수님의 영적인 부분도 배우지 않았을까요? 예수님이 새벽에 일찍 일어나서 기도하러 가십니다. 제자들이 피곤해도, 예수님 따라 기도하러 가겠지요. 예수님이 밤이 맞도록


기도하십니다. 그리고 나도 내 인생에 문제가 있으면, 예수님처럼 밤을 세어서도 기도해야

되겠다는 것을 배우게 됩니다.


예수님과 함께 살아가다 보면, 우리 예수님이 사람을 대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부자나 가난한자나, 있는 자나 없는 자나, 배운 자나 배우지 못한 자나, 예수님은 똑같이 대하셨습니다. 똑같이 사랑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과 함께 하면서 똑같이 사랑하는 방법은 가르쳐 주셨습니다. 예수님과 함께 살다 보면, 예수님의 언행일치도 보게 되겠지요. 말씀하신 것 그대로 행동으로 옮기지요.


또한 제자들도 예수님과 같이 살면서 제자들은 자신들의 연약함이 다 들어 납니다. 같이 살면 들어나게 되어 있지요. 약한 것들, 추한 것들, 죄 된 것들이, 다 들어 나지요.


그래서 예수님이 때로는 책망도 하시지요. 때로는 강하게 질책도 하시지요. 때로는 위로하십니다. 그러면서 제자들도 자기 자신을 보이고, 예수님도 자신을 보이고, 그렇게 함께 함으로 훈련받아 가는 것입니다.


함께 함으로 자신의 약한 것들, 연약한 것들, 추한 것들이 다 보입니다. 그리고 그 안에서 함께 함으로 고침을 받고 치유함을 받습니다.

  

에) 십여 년 영국에 살면서, 저는 영국 목사님들 하고 많은 시간들을 보냈습니다. 제가 본 영국 목사님들은 늘 성도님들에게 평범한 친구의 모습들이었습니다. 주일을 빼고는 늘 청바지를 즐겨 입고, 같이 어깨동무 하고, 같이 웃고 우는 평범한 모습을 보여 주었습니다.(한국에서 늘 위엄 있는 목사님. 가까이 하기엔 너무나 먼...거룩(?)


그런데, 영적인 부분에서는 언제나 위엄이 있었습니다. 기도를 하거나, 그리고 설교단 위에 올라섰을 때는 정말 위엄을 가지고, 때로는 진지하고, 엄숙하게 모든 일들을 처리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때로는 친구처럼 친근하면서, 때로는 영적으로 위엄을 보이는 모습이 참 저에게 신선하게 다가 왔습니다.


예수님은 그들과 함께 함으로 자신의 모든 것을 보여 주셨고, 제자들 또한 함께 함으로 자신의 모든 것을 보여 주었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이 우리에게 ‘교회’ 라는 공동체를 주신 이유는, 함께함을 배우게 하심입니다. 함께 하며 부대끼게 만드시고, 함께하며 배우고, 느끼고, 깨닫고, 경험하게 하십니다. 그래서 점점 제자가 되어 가는 것입니다.


셋째로 14절을 다시한번 볼까요?


이에 열둘을 세우셨으니, 세우셨으니~~ 이 ‘세우셨으니’ 라는 단어는 아주 중요한 단어입니다. 헬라어로 ‘포이에오’라는 말로 사용되고 있어요. 이 ‘포이에오’ 라는 말 속에는 ‘만들다’ ‘제조하다’ 라는 뜻이 들어 있습니다.

  

그리고 또, 어떤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 ‘계속해서 실천하게 하다’ 라는 뜻이 그 안에 있어요. 그러니까 예수님이 저와 여러분을 제자를 먼저 부르세요. 그리고 불러서 목적이 하나 나오는데, 만들고 싶다는 거예요. 우리를 제조하고 싶대요. 그래서 그 만든 것이 계속해서 실천되도록 하고 싶대요.


그래서, 제자는 만들어져 가는 것입니다. 여러분, 예수님의 제자들은 다양한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직업을 보면, 어부도 있고, 세리도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목수였지요. 다양한 직업군이구요.


지역도 다양했습니다. 갈릴리 출신도 있었고, 가룟 출신의 제자도 있었습니다. 정치적으로도 색깔이 전혀 다른 사람들도 있었지요. 가나나인 시몬이라는 사람은 열심당원 이었습니다. 열심당원은 정치적으로 행동하는 사람들이었고, 늘 가슴에 칼을 품고 다닌 사람들입니다. 이런 사람도 예수님의 제자가 되었습니다.


돈을 좋아하는 가롯유다도 있었고, 성격이 불같은 사람 우레의 아들들도 있었고, 베드로 같은 사람도 예수님의 제자가 되었습니다.


여러분, 이 12명이 함께 살아가면서 어떤 일이 일어났을까요? 우레의 아들들끼리 다투지 않았을까요? 불같은 성격의 베드로와 다툼이 없었을까요? 지역이 다른 사람들끼리 지방색을 드러내지 않았을 까요? 직업이 다른 사람들끼리 생각이 얼마나 달랐을까요?


그렇게 부대끼면서,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모난 부분들이 점점 깎여져 갑니다. 모난 모습들이 훈련되어져 갑니다. 날카롭던 성격들이 그들과 부대끼면서 둥글둥글해 져 갑니다.


여러분, 하나님은 우리 말씀의 숲 이라는 공동체를 주셨습니다. 이곳에서 섬기는 목사를 주셨고, 그리고 부대끼며 함께 살아가도록 만들어 주셨습니다. 전혀 다른 사람들이 모여, 예수님의 제자들처럼 서로가 부대끼게 만들어 놓았습니다. 그리고 그 안에서 서로의 모난 부분들이 부대끼면서 깎여 나가면서 훈련받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서서히 제자로 만들어 가시지요. 그래서 제자는 만들어 가는 것입니다.


여러분, 그렇다면 예수님께서 우리를 무리가 아니라 제자로 만드셔야만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교회는 건물이 아닙니다. 교회는 사람입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훈련받은 각 사람이 교회입니다. 예수님은 그들 각자가 교회가 될 수 있도록 만들기 위해, 훈련시켜 주신 것입니다. 그래서 그 각각의 교회들이 세상에 나가 교회의 모습으로 살 수 있도록, 세워 나가기 위한 것입니다.


우리는 그런 교회를 만들어 갈 것입니다. 사람을 세우고, 그 사람 각자가 교회가 될 수 있도록 그 훈련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아멘) 우리 말씀의 숲 교회의 공동체는 지금 이 훈련을 하고 있는 것이지요. 예수님과 함께 함으로 예수님을 배우고, 서로 다른 사람들끼리 부대끼면서 내가 만들어져 가는 것입니다.


여러분, 저와 여러분이 나의 모난 부분들이 깎여 나가면서, 진정한 제자로 만들어져서, 하나님이 세우고자 하는, 여러분이 교회가 되어 가는 것이 축복인 줄 믿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무리와 제자 사이, 어디에 있습니까? 교회만 다니는 사람이 있고, 교회를 세우는 사람이 있습니다.

제자는 부르심이 있는 자들입니다. 그리고 공동체 안에서 함께 하며, 오늘도 만들어져 가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꿈이 있습니다. 우리 각자가 진정한 교회가 되어,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어 가는 것입니다. 그것이 복된 삶이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삶인 줄 믿습니다. 무리로 남는 것이 아니라, 진정한 제자가 되는 여러분 되시기를 축원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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