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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눅4:42-5:1 
설교자 : 김경형 목사 
참고 : 궁극교회 주일예배 

442-51.

 

42: 날이 밝으매 예수께서 나오사 한적한 곳에 가시니 무리가 찾다가 만나서 자기들에게서 떠나시지 못하게 만류하려 하매.

 

날이 밝으매 예수님께서 나오셔서 한적한 곳에 가셨습니다. 날짜 시간적으로 보면 어제 일 잘하고 밤에 잠 잘 자고 아침에 일어나서 기도시간을 가졌다고 하겠지요? 그렇게 들어가 있는 것 같지요? 계시적으로 보면 정신사상 신앙의 그 흐름들 그 계시적으로 보면 어두운 귀신들린 신앙에 붙잡혀 있지 말고 빨리 고침을 받고 밝은 데로 나오라는 겁니다. 이해갑니까? 기회적으로 보면 예수님께서는 또 다른 동리로 가신다는 것이지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요 역사가 왔을 때에 너는 기회를 놓치지 말라그 말이요. 이해가요? 지금? 어두움에 있는 그 정신 사상들을 빨리 고치고 어두운 마음들을 빨리 고치고 밝은 데로 생명의 세계로 나오라는 겁니다.

 

, 우리가 만물의 모든 이치를 볼 때에 신앙이치를 깨달아야 돼요. 왜 그러냐? 우리의 온전을 위해서 전부 다 만들어 놨기 때문에 해석은 그렇다 그 말이요. 그러니까 성경을 통해서 계시를 깨닫지 못하면 만물을 보고도 소경처럼 아무 것도 알지를 못하는구나. 미련한 사람이 되지 마라 그 말이요. 예수님께서 당신이 만들어 놓으신 자연만물을 보고 우리의 구원에 다 이용을 하더라 그 말이요. 그러니까 우리도 옳은 진리이치 말씀을 깨달아서 모든 만물을 나와 다른 사람의 이룰구원을 위해서 이용 활용 사용할 줄 알아야 한다. 그게 하나님의 사람들이요 예수 믿는 사람들이다. 그게.

 

이치에 눈이 어두우면 미련한 사람이 되고 멍청이가 되고 바보가 되고 자기 스스로가 고통당하고, 당할 뿐만 아니라 자기 스스로가 고통을 만들고 있어. 그러니 하나님 보시기에 얼마나 답답하실까? 마치 어린 아기가 물론 어린 아기니까 그렇지요. 그런데 신앙 면에서도 이치를 갖다가 가만히 보면 예를 들자면 마치 어린 아기가 자기가 오줌 마려우면 화장실에 가면 되겠지요? 어른 같으면? 근데 자기가 오줌 싸놓고 차갑다고 자기가 울고 있어요. 그게 어린 아기지요. 정신의 세계로 끌고 와서 신앙적으로 이걸 봤을 때에 어른이 그런 식으로 살고 있구나. 그 얼마나 미련하고 답답하고. 어린애 키우면서 그런 걸 많이 발견하고 깨달아야 돼요. 신앙이치를 가지고 깨닫지 못하면 아무 것도 할 수가 없어요.

 

자기 사상의 소속 정신 사상 이 자기의 정신자세의 입장이 어두움에 처해있으면 예수님께서 역사하신 것을 깨닫고 밝은 데로 나와서 천국복음이 누구에게로 향해져 있는지 점검을 하라는 겁니다. 그 면도 들어있어요. 이 세상사람들, 자기가 소원하고 목적하고 사는 모든 그 행복성 기쁨성이 그게 어두움에 살고 있습니까, 밝음에 살고 있습니까? 질이? 선악과 따먹은 그 지식의 기준으로 판단 평가하고. 아무리 행복하게 살아도 그거는 어두움이란 말이요. 죄악이고 사망계고 하는 것마다 영생으로 되는 게 없고 전부는 죽어나가는 것. 사망계로 전부 죽어나가는 것. 땅의 지식의 소원 목적은 전부는 그래요. 아무리 행복해도 세상 끝나면 자기도 끝나는 거요. 아무리 행복하고 좋은 일을 많이 해놔도 하나님 앞에 해당되는 건 하나도 없어. 선악과 따먹고 이미 저주를 받은 거요.

 

우리가 예수 믿는 건 생명과 먹는 것. 다시 말씀드리면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요 예수님의 교훈을 들으니 그건 생명과 먹는 거요. 그걸 들으니 그 정신이 자기 속에 열매 맺히는 거. 그게 생명과요. 예수정신 사상. 이건 생명과요. 그건 밝은 거. 그런 사람이 되면 그 지식을 받고 그 소원 목적을 갖게 되지. 그 취미를 갖게 되지. 전부 밝은 거. 밝은 거는 전부 사람을 살리는 거. 너도 살고 딴 사람도 살리고. 그 생각을 가지고 자타의 구원을 위해서 하면 할수록 여기는 기쁨이고 행복이고 즐거움이고 하나님의 축복의 역사가 계속 따르는 거고. 그게 예수 믿는 거다. 교회 다니면 그런 걸 배워라 그 말이요.

 

예수는 그걸 가르쳐주고 건너가고 딴 동네로 가고 하더라. 그런데 거짓된 이 종들은 모아놓고 귀신을 불어넣어주고 세상바람을 불어넣어주고 그러니까 이 뭐요? 귀신 난장판이고 귀신의 집이다. 그게. 뭐하나 똑바르게 생각하는 게 있느냐 그 말이요? 없다. 없어.

 

무리들이 예수님을 무척이나 찾았습니다. 본문에 보니까. 어디서 찾았느냐? 어디서 찾았습니까? 예수님을? 어두운 데서 찾았습니까, 밝은 데서 찾았습니까? 밝은 후에 한적한 곳에서 찾았다. 그 신앙의 정신세계를 다 말해주는 거요. 그거. 이치적으로 생각해봐요. 사람을 찾으려면 밝은 곳에 가서 찾아야 얼굴이 어떻게 생겼고 키가 어떻고 , 내가 옛날에 만난 사람이구나. 내가 이 사람을 찾는다.’ 그 이치가 맞잖아요? 캄캄하고 불이 없는 어두운 곳에서 누굴 찾아요? 찾기는? 안 그래요?

 

사람의 마음을 보더라도 그게 짐승의 마음인지 사람의 마음인지 여우같은 마음인지 그게 들어있단 말이요. 영의 눈을 가지고 보면 사람의 마음도 여러 가지 형태야. 굼벵이 같은 마음이 있고, 성경에 보니까 더러운 귀신들린 그런 마음도 있고. 더러운 귀신은 항상 더러운 생각, ‘어떻게 남을 해코자 할까? 어떻게 다른 사람을 씹어볼까?’ 아주 더러운 거야. 아주 더러운 거. 자기 싫은 사람이 눈앞에 나타나 봐요. 그 다음에 어떻게 되죠? 그냥 막 나가는 거야. 그냥. 딴 사람이 볼 때 그게 어떻게 좋게 생각이 되겠어요? ‘저것들이 미쳤나보다.’ 안 그래요?

 

밝은 후에 한적한 곳에서 예수님을 찾았습니다. 무리들이 몰려와서 예수님을 보고 불쌍한 우리를 떠나지 마라는 겁니다. 만류를 한다는 것은, ‘떠나지 마십시오이렇게 하는 것은 첫째는 예수님의 마음을 붙잡아 놓으려고. 자기들의 불쌍하고 가련한 처지들을 말을 하려고. 그 역전이나 계단 내려갈 때에 바구니 앞에 놓고 어린 아기 안고 불쌍한 모습으로 앉아있는 거 지나가는 사람들의 마음을 붙잡으려고. ‘내 처지가 참 불쌍하지요그거 있잖아요.

 

두 번째는 예수님의 마음을 붙잡아 놓으려고 예수님의 처지와 형편을 말하는 거. 예수님의 처지와 형편을 말하는 거. 무슨 말이냐? 이건? ‘가면 어디로 갈 겁니까?’ 예수님 보고 당신 가면 어디로 갈 거요? 오라는 데가 있습니까?’ 동리사람이 그러는 거요. ‘돌아다니면 당신 고생합니다. 세상이 악한 시대라 도둑놈도 많고 마적 떼들도 많은데 우리와 함께 있으면 병 고치는 능력도 슬슬 풀어먹고 귀신도 쫓아주고 병도 고쳐주면 돈도 생길 것이고.’ 맞잖아요? 그 말 맞지요? ‘아직 장가도 안 갔으니 우리 동네에 허리가 S라인 처녀도 많으니까.’ 어디 솔깃하지요? ‘장가도 가고 아들 딸 낳고 오순도순 한 평생 우리와 같이 살았으면 좋겠구만. 우리 딸도 예쁜데. 우리 동네 예수능력 병원도 하나 있을만한데해서 예수청년을 가지 말게 하는 뜻으로서 붙잡는 거.

 

무슨 말인지 이해 가요? 하나는 자기 불쌍한 거. ‘나 불쌍하지 않아요? 날 버리고 가지 마세요하는 식. 또 하나는 예수 당신 저렇게 돌아다니면 당신이 고생한다. 그러니까 우리 동네 있으면서 병원도 하나 차리고 장가도 가도 이렇게 해서 행복하게 사십시오.’ 예수님을 생각해서. 그 어느 쪽이 신앙 믿음이 있는 거요? 자기를 생각해달라는 겁니까, 예수님을 생각해서 하는 말입니까? 어느 쪽이 신앙이 있는 말입니까? 둘 다 신앙 없어요? 그럼 둘 다 신앙 없으면 어떤 게 신앙 있어요? 그것도 이치를 찾아야지? 어쨌든 이 만류하는 것은 잡다한 소리가 나오는구나.

 

앞으로 목사 될 후보생, 청년전도사들 어느 대목에서 귀가 솔깃해지느냐? 앞에 말한 것 중에. 말하자면 동네사람들이 전도사 젊은 사람을 붙들고 아, 이렇게 예수님에게 하는 말처럼 그렇게 해 달라고 그러면 대부분 붙들리지요? 안 붙들릴까? 안 붙들릴까요? 그런 인정 선에 안 붙들릴까? 앞에 말한 그런 조건을 다 제시하면서 어떤 아가씨가 S라인 몸을 흔들면서 장미꽃을, 아니 해바라기 꽃을 입에 물고 자기에게 주면서 손을 잡고 끌고 가면 못 이기는 척하면서 그냥 따라가겠지요? 그렇지요?

 

오늘날 자기에게 그런 정신머리가 충분하게 들어있다? 아니면 하나도 없다? 어느 쪽을 손을 들 만해요? 말세교회들을 보면 대부분 진리생명 말씀 때문에 따르는 자는 많지 않지요? 거의가 보면 첫째는 자기 상황 자기 형편에다 예수님을 끌어당긴 꼴이더라. 기도가 그렇고 설교가 그렇고. 맞잖아요? 흔히 들을 수 있지요? 진리가 좋다 해도 자기 주격 자기 조건에다가 진리로 이렇게 딱 둘러씌워서 포장이 돼 있구나. 그런 걸 가만히 생각해 봐요.

 

43: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다른 동네에서도 하나님의 나라 복음을 전하여야 하리니 나는 이 일로 보내심을 입었노라 하시고.

 

그러니까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이 속에 들어있는 그 정신이 네 주관성에다가 끌어당겨 나를 생각해주는 척하면서 나를 붙잡지 말아라그렇게 느껴집니까? 그 참 사람의 마음이 참 희한하지요? 남 생각해주는 척하면서 자기 볼 장 챙기는 거 있어요, 없어요? 있어요? 참 그 마음이 참.

 

나는 하나님 나라 복음을 전하는 일에 보내심을 입었노라하시고 갈릴리 여러 회당으로 가셔서 전도를 하셨습니다. 그러니까 첫째는 단순히 육신의 병을 고쳐줄 목적으로 오신 것이 아니라는 하는 것이 여기 나오지요? 두 번째 천국복음은 어두움이 오기 전에 밝을 때 전해야 한다는 것이지요. 어두움이 닥쳐오면 낮에 준비한 기름에 불을 댕겨야 하는 거지요. 신앙이 그렇지요? 그 다음 세 번째, 연령적으로 신체적으로 젊었을 때부터 신체적으로 건강할 때 생활적으로 여유가 있을 때 부지런히 깨닫고 진리 자체화 시켜라. 어두워지면 귀신들린 자가 많아진다. 환란에 접어드는 줄 알아야 한다.

 

지금 시간적으로 밝아요, 어두워요? 밝아요. 시대적으로는? 어두워요? 확실해요. 그 어두운 증거를 대봐요. 내가 신앙이 없는 건지? 거짓 종들이 많이 보인다 그 말인지. 내가 어둡더라도 일단은 들어놓으면 어둡긴 어둡지요. 안 그래요? 그러나 그런 지식이라도 가져야지.

 

44: 갈릴리 여러 회당에서 전도하시더라.

예수전도는 하늘나라의 도를 설교를 하며 가르치며 하나님의 온전의 사람으로 만들어지도록 깨닫도록 하는 이것이 전도입니다. 알겠습니까? 간혹 가다가 그런 거 있지요? ‘예수 천당, 불신 지옥하면서 뭐 이상한 거 들고 외치고 있지요? 그게 전도가 아니다 그 말이요. 좋게 말하면 전도는 전도지요? 그런데 우리입장에서 보면 전도는 그렇게 하는 게 아니다 그 말이요. 그럼 어떻게 하는 거요? 사람을 붙들고 인간 너를 만든 창조의 원인 동기 목적을 가르쳐주는 거. 그게 바로 구원이요. ‘예수 믿어라말은 그렇게 하지 않아도 예수를 믿을 수밖에 없는 그 내용이 들어가고 있다 그 말이요. ‘예수 믿으라한 마디 소리를 안 했는데 듣는 입장에서 예수냄새가 풀풀 나고 있단 말이요. 내용이 예수란 말이요. 내용이. ‘예수 믿으라그래놓으면 내용은 예수가 없어. 그런데 내용면에서 잘 전하면 내용이 바로 예수라. 이해 가요?

 

갈릴리 여러 회당에서 전도를 하는 것은 회당마다 찾아가서 전도를 한 것이지만 그 계시성은 어느 곳에서든지 외치고 가르치시는 것은 천국복음이었다고 하는 것이지요. 말하자면 어느 동네 어느 교회서든지 천국복음이어야 한다는 말인데, 예수님께서 그렇게 하셨다 그 말이요. 그래서 자기가 전하는 것이 목사님들마다 도시고 시골이고 어디고 간에 자기가 전하는 것이 과연 천국복음 전도냐? 이게 문제가 되는 거지요. 아니면 세상에서 잘 살아보자고 하는 세상복음을 전하는 목사냐?

 

무슨 목적으로 하든지 간에 예수이름으로만 하면 복음이라고 우겨대면 천국복음이 되는 것이냐? 내용이 천국의 성질이 들어가고 하나님의 소원 목적이 들어가야지 예수 믿어 세상에서 부자 된다그러면 그게 어떻게 천국복음이요? 그게 이단소리고 거짓 종들의 소리고 하나님 앞에 심판받을 소리지.

 

51: 무리가 옹위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새 예수는 게네사렛 호숫가에 서서.

 

예수님께서 무리들을 데리고 무엇을 하고 계셨던가? 예수님은 말씀을 전하시고 무리들은 그 말씀을 듣고 있었던 장면입니다. 그러면 그 장면이 그 풍경이 교회입니까, 교회가 아닙니까? 예수님이 계시고 말씀이 나오고 무리들이 듣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듣고 있어요. 그럼 그곳이 바로 교회입니까, 아닙니까? 그건 교회요. 알겠어요? 그게 교회요. 그러면 그 때 그 장면이 교회 십자가도 안 세웠는데 교회입니까? 강대상도 없는데? 이런 것 도 없는데? 찬양대도 없고 헌금통도 없는데? 장로기도도 없고 주보도 없는데 그래도 교회입니까? 그래요.

 

어떤 목사와 교인들은 말하기를 건물도 없고 십자가도 없고 교회이름도 없고 소속도 없는데 그렇게 되면 그들이 입장에서 이단이라고 그러지요? 그럼 이단들은 다 건물이 없는 겁니까? 말이 안 되잖아요? 말의 이치가. 그럼 그런 사람들을 향해서 주님은 무엇이라고 책망을 할까요? 예수님이 그들에게 묻기를 그러냐? 그러면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한 곳이 어딘 줄 아느냐?’ 묻는다면 어디죠? 그 우물가에 그것도 낮에는 물 팔고 밤에는 몸 팔고 하는 이 여자 창녀지 뭐. 예수님이 물 얻어먹으러 왔다가 얻어먹었다거나 못 얻어먹었다거나 그 말은 없어요. 어떻게 된 게. 그러니까 물 먹을 목적이 아니고 그 여자에게 하늘나라의 복음을 전하는 목적이 그 안에 들어있지요. 방편은 물 좀 달라그렇게 되어있고.

 

오늘날 교회가 정확하게 바로 알고 있어야 돼요. 예수님께서 대낮에 물 길러 나온 남편 다섯 있는, 다섯이냐, 여섯이냐? ‘네 남편 몇이냐그러니까 다섯이라 그랬어요? 또 하나 있었어요? 그러니까 여섯이지. 남편 여섯인 이 여자와 우물가에서 대화 몇 마디였어요. 시간적으로 보면 여자하고 예수님하고 대화 몇 마디. 아무리 시간이 길어봐야 몇 분이겠습니까? 대화 몇 마디? 한 오 분만에 끝났을까? 오 분도 사실 길기도 하지요. ‘물 좀 달라했는데 오 분도 더 길 수도 있어. 왜 그러냐? 한참 있다가 한 십 분 지나서 당신이 왜 나한테 말합니까그러면 시간이 긴 거지?

 

, 어쨌든 물 좀 달라그랬으니까 쳐다보고 당신이 왜 물 달라 그러냐? 유대인의 남자로서.’ 이게 뭐 몇 마디가 당신 남편 몇이냐그 묻는 것도 참 희한하지요? 그럼 , 다섯이다. 어쩔래?’ 이러면 어떻게 할 거야. 설령 그렇더라도 오 분도 안 돼서 끝나는 거거든. 무슨 예배가 그런 예배가 있냐? 유대교 율법적인 예배는 얼마나 걸릴까? 예수님 예배는 오 분도 못 돼서 끝났어. 우물가에서. 율법적인 예배는 얼마나 걸릴까? 하루 온 종일 걸려요. 한 두 사람이냐? 양 갖고 와서 잡아서 껍데기 벗기고 묶어서 각을 뜨고 피를 빼고. 오 분만 걸리겠어요? 하루 온 종일 걸리는 건데.

 

그러나 신령과 진정한 예배는, 율법적으로 드리는 이 유대인들은 신령한 예배가 아니었지요? 그러면 우리교회 예배는 시간이 얼마나 걸립니까? 그것도 계산해봐야지. 그리고 과연 신령과 진정이 있는 예배일까그게 문제란 말이요. 신령과 진정을 어디 해석해 봐요. 신령과 진정이 뭔지? 기침소리 안 나지요, 숨 쉬는 소리도 잘 안 나고, 아기 우는 소리도 잘 안 나고, 조는 사람도 한 사람도 없고 그러면 신령하고 진정한 예배지요? 그래요?

 

건물이 큰 교회그러면 그건 큰 교회. 맞지요? 맞잖아요? 건물이 작은 교회는 작은 교회고. 맞지요? 지금 그런 식으로 들어가 있지요? 생각들이? 그러니까 건물이 없는 모임은 교회가 아니지요. 그럼 예수님 말씀이 두 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이는 곳에는한 것은 집을 말하는 게 아니요. ‘무슨 장소든 집이든 아니든 바닷가든 산이든 어디든 내 이름으로 모이면 당신처럼 닮고자 하는 온전을 목적으로 하는 그런 모임이면 나도 거기에 있겠다.’ 그게 교회지요? 따라서 호숫가에 모여서 예수님의 말씀을 듣는 그 장면도 역시 교회지요. ‘나는 길이요 진리요그 예수님이 있고 영이 중생된 성도들의 무리가 있으면 그곳은 교회요. 앉아있는 이 장소가 교회요. 집 뚜껑은 날아가도 교회요. 맞잖아요? 의자 없이 땅바닥에 앉아도 교회요, 이대로 갖다가 산에서 모여도 교회요. 그 궁극교회요. 뿔뿔이 헤어져서 집에서 두 세 사람이 모여도 한 사람이 예배를 해도 교회요. ‘이제 마침 잘 됐다. 날씨 추우면 집에서 나 혼자서 내가 해석은 다 해주지.’ 허허. , 바닷가에서 모이든 산에서 모이든 다락방에서 모이든 안방에서 모이든 그곳은 교회입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향해 건물과 십자가 예배식순 그것을 보라고 했느냐? 예수님께서 바리새교인들 유대종교 지도자들의 가르침을 주의하라고 했습니다. 무슨 말이냐? 분별해라. 가르침을 분별해라. 가르치는 설교를 잘 분별해야 돼요. 아무 교회 간다고 그게 아니라 과연 그것이 천국복음이냐? 천국의 사람으로 만들어지는 것이냐?

 

천국의 사람은 미련하겠습니까, 영특하겠습니까? 천국의 사람이 영특할까요? 천국의 사람은 그 머리가 하나님의 자녀니 하나님의 머리를 가졌으니 얼마나 영특하겠냐? 그 신령한 머리요. ‘예수 믿어 세상에서 부자 되자. 뭐 되자. 뭐 되자.’ 그 머리통 속에 똥밖에 없어. 입만 벌리면 냄새가 나. 세상냄새 풀풀 나고 마지막 날 세상 불탈 연기냄새가 풀풀 나지.

 

세상 속화된 거짓된 교인들은 건물을 보고 또 사람의 수를 보고 또 예배식순을 보고 소속이 됐는지 안 됐는지 그것가지고 따지고 그러니까 예수님께서 가르치신 그 천국복음 그 정신하고는 전혀 다르구나. 참 주님의 신실한 성도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이 주님이 가는 곳이면 또 그 가르침이 있는 곳이면 산에서 모이면 어떻고 바다에서 모이면 어떻고 지하이면 어떻고 다락방이면 어떻고 골고다 산상이면 어떤가? 어디든지 간다 그 말이요. 그 말씀이 가는 곳 그 말씀이 있는 곳이면 어디든지 간다 그 말이요. 어디든지 간다. 이해갑니까? 그게 예수 믿는 거라. 예수 믿는 정신이라. 그게. (계속)

 

궁극교회 김경형목사님의 설교입니다. (http://cafe.daum.net/909k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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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누가복음 내가 다른 동네에서도 하나님의 나라 복음을 전하여야 하리니. 눅4:42-5:1  김경형 목사  2019-10-27 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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