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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막8:27-3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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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김기성 목사 |
참고 : | 말씀의 숲 교회(대한예수교 장로회) |
https://www.youtube.com/watch?v=PZp4pA8KOgM&t=1348s
(여기를 클릭하시면 유튜브 설교 동영상을 보실 수 있습니다)
너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막8:27-31)
지금은 그런 것들이 많이 사라졌지만 저희 어릴 적만 해도 집에 들어가 보면 ‘가훈’이라는 것이 있었습니다. 저희 집 가훈은 ‘진실하게 살자’입니다. 가끔 저희 아버님이 저희 4자녀를 훈계하시거나, 매를 드실 때는 이 가훈을 상기시키기도 하셨습니다.
‘예수 믿는 우리 가정은 하나님 앞에서도 진실해야 하고, 사람들 앞에서도 진실해야 하며, 진실하게 살면 하나님이 복 주신다’ 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힘들 때마다 그것을 상기시키시고 그때마다 힘이 될 때도 있었습니다.
그래도 이런 고백을 마음속에 가지고 사는 것과 그렇지 않고 사는 것과는 분명히 차이가 있을 것입니다. 여러분에게는 그런 신념, 힘들 때 마다 가지는 마음의 고백 같은 것이 있는지요?
오늘 본문 말씀에 보면, 예수님의 중요한 질문이 나옵니다. 오늘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질문을 합니다. 두가지 질문을 합니다. 첫 번째 질문은 제자들에게 ‘다른 사람들은 나를 누구라 하느냐?’ 라는 질문이지요.
그때 대답을 합니다. ‘세례요한이라고도 하고, 엘리야 라고도 하고, 더러는 선지자 중에 한분이라고 하더이다’ 예수님을 평가하는 것이 나쁘지 않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회심하고 돌아오는 많은 사람들을 보면서, 마치 광야에서 ‘독사의 자식들아 회개하고 주 예수를 믿으라’ 하던 세례요한을 생각했을 것이고,
그리고 병든 자를 고치시고, 죽은 자를 살리시는 기적을 베푸시는 예수님을 보면서 구약의 엘리야를 생각했었을 것이고, 또한 사랑으로 사람들을 치유하고, 용기를 주시는 모습을 보면서 선지자 중에 한 사람으로 사람들이 평가를 한 것입니다. 나쁘지 않습니다.
그리고 나서 예수님이 아주 중요한 질문을 던집니다. “그럼 너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제자들을 대표해서 베드로가 고백합니다. ‘주는 그리스도시니이다’ 마태복음 16장16절에 보면, 좀더 자세히 나오지요?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그 고백을 합니다.
여러분, 아마도 이 고백은 예수님의 원하시는 최고의 고백이 아닐까요? 왜요? 그것은 그냥 머리로 나온 고백이 아니라, 가슴에서 나오는 고백이라고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한마디고 베드로가 알고 고백한 것이 아니라, 믿고 고백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마치 불후의 명곡처럼, 불후의 고백이 바로 이 고백입니다. 어느 누구도 이 고백을 능가할 수 없는 불후의 고백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 그렇다면 우리는 질문 하나를 마음속에서 던져 보아야지요? 왜 예수님을 두 가지의 질문을 하셨을까? ‘다른 사람은 나를 누구라 하느냐?’ ‘너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분명히 예수님이 두 개의 질문을 던지신 이유가 있을 것입니다. 그것은 아마도 이것이 아닐까요? 우리 안에는 ‘나의 고백이 아닌, 남의 고백을 가지고 사는 사람이 있다는 것입니다’ 남의 고백이 나의 고백인 것처럼, 고백하며 사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지요.
내가 예수님을 직접 만나고 체험한 그런 고백이 아니라, 남의 고백을 내 고백인 냥! 예수님에 대한 확신이 내 안에 없지만, 남들이 고백하고 말하니까 그것을 주워듣고, 그냥 배워서 그 고배을 할 수 있다는 것이지요. 확신이 없으니 차이가 나는 것이지요. 마치 ‘남들은 그러하더이다!’ 와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의 말에 차이를 두고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 고백의 차이는 엄청난 것입니다. 남의 고백을 착각하고 사는 것과 확신을 가지고 사는 것은 하늘과 땅만큼의 차이가 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오늘 예수님은 세 번째 질문을 남겨 놓으셨고, 오늘 저와 여러분에게 물으십니다. ‘그래서 너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여러분, 내 안에 예수가 있느냐 없느냐는 정말 큰 차이를 주기 때문입니다. 왜냐하면 헤아릴 수 없는 많은 믿음의 사람들이, 그 어려운 시련과 고난 속에서도 자신의 고백한 그 고백으로 모든 것을 견디어 냈기 때문입니다. ‘너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예수님이 물으실 때, 분명하게 신앙의 고백을 갖고 살아가기를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물론 물어보면 대답은 잘 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볼 때 그 신앙고백에 예수님이 확신이 없으신 것이고, 자꾸 의심이 생기시는 것이죠. 마치 예전에 사스 전염병이 발생할 때, 정확하게 사스 환자인지 아닌지 구별을 하지 못하니까, ‘의심 환자’로 구별하여 격리시켜 놓았던 것처럼, 우리 안에도 정말 자신의 고백이 없는, 의심 성도가 있다는 것이지요.
그래서 예수님이 제 3의 질문을 저와 여러분에게 지금 던지시는 것입니다. ‘정말 너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여러분, 고백에는 힘이 있고 능력이 있는 줄 믿습니다. 어떤 것에도 물러섬이 없는 확신이 우리에게는 힘이 됩니다. 그 어떤 것보다 더 놀라운 축복은 바로 이 고백이 나를 영원한 생명으로 이끌어 준다는 것이지요.
예) 어느 집사님이 상담을 하셨어요. 모든 문제와 악재가 너무 겹쳐서 도와달라고 기도해 달라고 하는 상담이었어요. 남편이 명퇴를 당하고, 큰 아들은 취업이 안 되고, 작은 아들은 학교에서 문제를 일으키고, 자신은 너무나 의기소침에 우울증에 걸렸다는 것이죠. 그래서 이 문제 하나 하나를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지... ‘목사님 하나 하나 기도해 주세요!’
그래서 이런 말씀을 드렸어요. 집사님 문제는 많지만 예수님의 질문은 하나이네요. “그래도 너는 나를 사랑하느냐?” 라는 거네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는 나를 사랑하느냐 라는 것이죠. 그 확신 하나를 예수님이 물어 보시는데, 확신을 가지고 답변을 하시면, 집사님의 모든 문제를 해결 될 줄 믿습니다 라고 기도해 드렸습니다.
여러분, 마음 깊은 곳에서 예수님을 고백하게 되면, 그 고백이 우리의 마음을 움직이고, 그리고 우리가 감당할 수 없는 현실을 감당하게 하고, 이겨낼 수 있는 힘을, 분명히 공급해 주시는 이는 예수님 이신 줄 믿습니다.
자, 예수님은 이 고백을 물으신 후, 아니 이 고백이 있어야만 다음 단계로 넘어갈 수 있고 이해할 수 있단다! 라고 말씀하십니다. 31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시작)
예수님은 앞으로 자신의 일들을 말씀하세요. 그것은 바로 자신이 십자가 지심과 죽으심에 관한 말씀입니다. 그런데 이 고백이 있어야만 십자가의 죽음을 이해할 수 있기에 예수님이 먼저 ‘너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라고 물어 보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고난과 죽음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네가 이 고백을 할 때 십자가의 삶을 이해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예수님이 나를 위해 십자가를 지심으로 나의 모든 고통을 가져가셨다는 것이지요. 그래서 예수님의 고통으로, 피 흘리심으로 우리가 나음을 얻었기에 그 십자가는 우리에게는 영광이요. 영원한 소망이 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십자가에는 영원한 생명도 있지만, 고난도 있을 알게 하십니다. 예수님은 그 십자가의 양면성을 우리에게 보여 주시기 원하셨던 것입니다. 고난의 십자가 뒤에는 영광의 십자가가 있고, 영광의 십자가 뒤에는 고난의 십자가가 마치 동전의 양면처럼 같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예수를 믿으면 영원한 꽃길만 있는 것도 아니요, 고난도 있다는 것이구요. 우리가 그 고난을 찾아가지는 않지만, 이 땅을 살아갈 때 고난은 여전히 우리를 찾아온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예수 믿으면 이 땅을 살아갈 때, 여전히 어려움이 있고, 여전히 고난이 있고, 여전히 고통이 있습니다. 이 땅이 우리를 그렇게 만들고 있지요. 이 땅은 그럴 수 밖에 없습니다. 선한 것이 없고, 영원한 것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삶은 참으로 힘들지 않나요? 하루에도 몇 번이고 주저 않고 싶지 않겠어요? 자신감은 점점 없어지고, 불안해 지고, 두려워지고, 사는 것이 겁나고, 무능한 자신이 한심스럽고, 남들처럼 앞서지 못하는 자신이 원망스럽기 까지 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자기를 붙들어 주는 손도 없고, 불안해지고 두려워지고 사는 것이 점점 겁이 나지요. 마치 우리네 삶이 십자가의 고난의 삶처럼 보여지는 것이지요.
그러나 예수님은 그 고난의 십자가 통해, 그 십자가 뒤에 영광의 십자가를 숨겨 두셨다는 것입니다. ‘나를 확신하고, 나를 끝까지 믿는 자에게, 그 십자가를 통해 힘을 주고, 능력을 주겠다’ 고 약속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나를 믿고 끝까지 확신하는 자에 그 힘을 주겠다고 하신 것입니다.
여러분, 힘든 우리의 삶 속에 살아 갈 수 있는 이유와 그 힘이 필요하지 않을까요? 세상을 살아 갈 수 있는 힘이요. 나를 일어나게 하는 힘이요. 나를 절대 기죽지 않게 하는 힘이요. 넘어질 때마다 나를 붙들어 주는 힘이요. 어떤 형편이든지 감사할 수 있게 만드는 힘이요. 사실 우리에게는 그 힘이 필요합니다. 그 십자가를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십자가 십자가 내가 처음 볼 때에 나의 맘에 큰 고통 사라져. 오늘 믿고서 내 눈 밝았네 참 내 기쁨영원하도다”
여러분, 나를 사랑하시고 나를 위해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그 십자가를 붙들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분의 사랑을 내 안에 고백하고, 또 고백하고, 고백할 때!! 그 사랑이 우리 안에 능력으로 넘쳐날 수 있습니다. 그래서 그 십자가의 예수님을 바라보면 우리에게 살아갈 수 있는 힘을, 이겨낼 수 있는 힘을, 공급해 주실 줄 믿습니다. 고난의 십자가 뒤에 숨어 있는 영광의 십자가를 바라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분의 피흘리심으로 내가 나음을 얻었고, 그분의 죽으심으로 우리는 영원한 삶을 얻게 되었습니다. 내가 이땅을 살아야할 이유를 그분은 분명히 주셨습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올림픽 펜싱에서 금메달을 딴. 펜싱 금메달 박상영을 우리는 기억할 것입니다. 그는 마지막 결승전에서 희망의 주문을 계속 입으로 고백합니다. “나는 할 수 있다. 나는 할 수 있다” 그리고 그는 결승전에서 금메달을 땄습니다.
믿는 우리에게도 믿음의 고백이 있습니다. “예수님은 할 수 있다” “예수님은 나의 모든 것 되시고, 그분의 내 인생에 전부이다” 라고 우리는 고백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오늘 여러분에게 ‘너는 나를 누구랴 하느냐?’ 물으실 때, ‘당신은 나의 모든 것되시는 분! 나의 예수님이십니다’ 라는 진정한 고백이 여러분 안에 있기를 바랍니다.
그러면, 이 땅을 살아갈 때 어떤 고난도 이겨낼 수 있는 힘을 십자가를 통해서 우리는 얻을 수 있습니다. 고난의 십자가 뒤에는 나를 향한 예수님의 영광의 십자가가 있음을 바라 보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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