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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눅5:1-1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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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김경형 목사 |
참고 : | 궁극교회 주일예배 |
5장 1절-11절.
1절-3절: 무리가 옹위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새 예수는 게네사렛 호숫가에 서서 호숫가에 두 배가 있는 것을 보시니 어부들은 배에서 나와서 그물을 씻는지라 예수께서 한 배에 오르시니 그 배는 시몬의 배라 육지에서 조금 띄기를 청하시고 앉으사 배에서 무리를 가르치시더니.
다른 사람들은 밤이 오기 전에 모두 고침을 받고 날이 밝으니 바닷가에서 말씀을 듣느라고 여념이 없습니다. 앞의 사건들이 그렇게 돼 있지요? 밤이 오기 전에? 어떤 밤? 어떤 밤들이 있을까요? 시간적인 밤, 시대적인 밤, 또 자기 연령적인 밤. 그러면 연령적으로 여기 내가 지금 밤이 되어가요, 낮이 되어가요? 연령적으로? 밤이 되어가지. 해가 진단 말이요. 공동묘지가 가까워진단 말이요 죽음이 가까워진단 말이요. 예, 그러면 오늘날 시대적인 면으로 봤을 때에 밤이 되는 거요, 낮이 자꾸 가까워지는 거요? 다시 말하면 진리가 밝아지고 있습니까, 자꾸 진리의 종들은 세상을 떠나고 죄악이 교회 안에서 세상이라고 하는 세상 판이 돼 있습니까?
시대적인 밤, 연령적인 밤. 자기 개인적인 연령적인 밤. 그러나 영의 눈을 가지고 성령의 눈 영의 눈을 가지고 봤을 때는 정 반대의 해석이 나오거든. 맞잖아요? 또 그러면 영의 눈을 가지고 봤을 때에 여기 서있는 목사님이 밤이 되어가는 것 같습니까, 자꾸 밝아져가는 것 같습니까? 그것도 볼 줄 알아야 돼요. 신앙 면에서 밤이 되어 가면 아무 쓸모가 없다. 하나님은 이미 떠났다. 또 하나는 그렇게 보면서 이제 신앙적으로 ‘점점점점 천국이 가까워지는구나. 밝은 세계가 가까워지는구나’ 하는 그런 뜻에서 밝아진다. 육신은 죽음으로 가지만 영의 영적인 영의 사람을 봤을 때에 천국이 가까워져 오는구나.
나이 들면 어느 쪽으로 기대를 하고 살아야겠어요? 나이 늙어가니 ‘에라 모르겠다. 묻지 마 관광이나 가자’ 그렇게 해야 될는지? 나이 들어갈수록 점점 하나님을 향한 그 눈이 눈길이 하나님을 향해서 들어져서 하나님을 바라보고. 밝음이지요. 그렇게 돼야지? 그래서 이제 숨 끊어지는 그 날 ‘잘 있거라 세상아. 나는 가노라. 환난시험 다 이기고 나는 가노라’ 하고 가야지? 그냥 늙어서도 세상 것 다 못 먹어가지고 입을 떡 벌리고 눈을 부릅뜨고 죽는다면 이거 참. 그 참. 그렇지 않아요? 그거? 또 죽을 때에 안 죽겠다고 그 악을 바락바락 쓰고. 그것도 참 그렇다.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참 마음이 아프다.
그러니까 이게 앞의 사건들을 보면 다른 사람들은 밤이 오기 전에, 연령적 밤 시대적 밤 시간적 밤이 오기 전에 모두 고침을 받았다. 날이 밝으니 바닷가에서 예수님의 말씀을 듣는구나. 예, 그 짧은 몇 마디 속에는 세상이 함축이 돼 있다. 함축 돼 있어. 그런데 말씀을 듣지 않고 그물을 씻는 자가 누구인가? 누구지? 그 밑으로 가면 누구요? 시몬. 시몬은 밤새도록 물고기 잡느라고 호수 속에다 시간도 정력도 물질도 다 투자했지만 아무 소득이 없더라. 무엇을 먹고 마시고 살까? 허탈감에 빠져 빈 그물을 찰싹찰싹 흔들면서 씻는 그 모습은 참말로 처량합니다.
‘나는 어디다가 나의 일생을 다 낭비하고 말았는가’ 그 점을 한 번 가만히 생각을 해봐요. 오늘날 인생들이 생각할 줄 몰라요. 인생에 대해서 사람에 대해서 생각을 못해요. 물질의 성공 면에서는 많이 신경을 쓰고 재산면에서는 신경을 썼지만 참 사람에 대해서 정말 신경을 바로 쓰고 살아봤나? 정말 그 사람 복된 사람이다. 하나님은 그 사람을 통해서 이 시대가 끝날 때까지 그의 자손은 분명히 빛나는 사람으로 세상에서 역할을 하게 될 거다. 분명히 그렇다.
예를 들어서 한 날 한시에 태어난 사람이 칠십 년 긴 세월을 살아왔습니다. 한 사람은 큰 부자가 되었고 한 사람은 얻어먹는 거지로 평생을 살아왔습니다. 그런 사람 있을 수 있어요. 안 그럴까요? 성경 어디에 그런 거 있어요? 부자와 거지 나사로. 예, 또 이 세상에서도 얼마든지 그런 사람이 있을 수 있고. 부자는 거지를 보고 하는 말이 ‘너는 인생을 바로 살았다?’ 아니면 ‘헛살았다?’ 부자입장에서 봤을 때? ‘헛살았다. 너 헛살았구나’ 할 것이고 거지는 부자를 보고 보면서 거지 자기가 ‘나는 완전히 인생을 낭비했구나’ 그렇게 할까요? 일반적으로는 그렇게 합니까? 일반적으로 그렇게 하지 일반사람들의 사고방식 같으면. 또 부자는 거지를 보면서 자기 자신에게 나는 일생을 낭비하지 않았다 그럴 것이고. 예, 그런 사람 뭐 거의 다 그렇다. 거의 다. 목사님 세계 속에서도 그럴 거라고요.
부자는 거지를 보면서 ‘나는 일생을 낭비하지 않았다. 많은 노력을 한 결과가 부자가 되었다. 나는 나의 일생을 헛살지 않았다.’ 그렇죠? 그런데 어느 날 부자의 많던 재산이 불에 타버리고 거지신세가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볼 때 누가 더 일생을 낭비를 하고 살았을까? 하나는 처음서부터 거지였고 하나는 부자로 물질을 많이 쌓아놨는데 어느 날 갑자기 불이 나서 완전히 알거지가 됐다. 그럼 누가 더 일생을 낭비하고 살았을까요? 거지입니까, 부자입니까, 둘 다입니까? 판단 할 줄 알아야 돼요. 거지냐, 부자냐, 둘 다이냐? 어느 쪽이요? 정답은 나와야지? 정답 못 알아맞히면 밥 먹을 가치가 없어. 오늘 점심 굶을 거요. 자, 부자다, 거지다, 둘 다이다? 둘 다? 그럼 어떤 눈으로 보니 둘 다입니까? 어떤 눈을 가지고 보니, 한 쪽 눈으로 보니 그렇습니까, 여론을 들어보니 그렇습니까, 하나님의 그 기준, 그 인간을 만든 출생목적 존재목적, 쉽게 말하자면 구원목적을 놓고 봤을 때에 둘 다 그런 겁니까? 망했습니까? 영의 눈이 아니면 그게 그렇게 보이지를 않는 겁니다. 그래서 대부분 보면 거의가 육의 눈 가견적인 눈으로만 보고 말을 하더라.
나는 나의 일생을 어디다가 다 낭비했는가? 그렇다면 보는 눈이 있잖아요? 다른 사람을 보고 말을 할진데 내가 영의 눈을 바로 가졌다면 바로 나에게 대해서 ‘나는 나의 일생을 어디다가 다 낭비했는가’ 자문자답을 해봐라. 하나님의 말씀은 남의 말만 듣고 가는 게 아니다. 사건을 동원시킬 때에 그 어떤 사람을 동원시킬 때에 크고 작은 일들을 동원시킬 때에 나의 판단이 거기에 정확하게 나와야 한다. 일반인생들이 보는 사고방식의 그런 눈 가지고는 신앙이 아니다. 안 된다. 그래서는 안 된다.
시몬베드로의 일생을 주님이 모르실까요? 우리를 보셨을 때 압니까? 성경을 보면 성령에 감화 감동된 자는 ‘아, 이 말씀이 주님이 나보고 하시는 말씀이구나’ 요렇게 들어가요. 그리고 자기의 판단은 바로 서게 돼 있다. 그래야 하나님의 사람으로 들어가진다. 이제. 그리고 시몬베드로는 예수님께서 왜 자기 배에 오르셨는지, 앞으로 자기 앞에 무슨 일이 전개될지를 알지 못합니다. 누가요? 시몬베드로가. 예수님께서 간청하여 배를 육지에서 조금 떼기를 원하셔서 시몬베드로는 또 그렇게 했습니다. 이제 뭐 고기는 안 잡혔지. 허탈감에 빠져있지. 뭐 귀하신 분인 줄 모르지만 무리들이 이렇게 많이 있고 그러니까 ‘아, 이게 참 훌륭한 분인가 보다.’ 이를테면 좋은 게 좋다고 조금 뗐겠지요. 육지에서. 자기에게 말씀하신 분이 어떤 분이신지 알 리가 없습니다.
온 세상 우주만물은 다 주님의 것이요 그로부터 만물이 다 지음을 받았으니 주의 말씀에 의하여 만물은 다 움직입니다. 그거 믿어져요? 믿느냐고요? 말씀 어기고 세상 잡으러 가니 한 끼 먹으니 배가 부릅니까? 그 다음에 오는 것은 어쩌고요? 사람이 못돼가지고 그 다음에 왕창 사람이 무너지는 것은 어떻게 손해배상을 청구할 거요? 그 어리석은 인간들은 임시 먹기 좋다고 하는 곶감 많이 먹으면 어떻게 돼요? 곶감 많이 안 먹어 봤어요? 앞으로 내 스스로 실험을 많이 해봐야 되겠어. 잘 모르니까. 곶감 많이 먹으면 자칫 잘못하면 변비 생길 수도 있고 감 많이 먹고 물 많이 먹지 말아요. 어떻게 되겠어? 뱃속에서 울렁거리지.
지금 그 시간에도 큰 물고기들은 물속에서 주님의 뜻에 따라 명령대로 움직이고 있다. 지금 그 시간에. 지금이라면 현재고, 그 시간이라면 그 때 그 시간 지금. 예, 신속한 움직임들이다. 알겠어요? 하나님의 말씀의 순종자를 위해서 하나님은 미리 아시고 저 멀리서부터 큰 물고기 떼를 동원시키고 보내고 있구나. 하루아침에 되는 게 아니다. 물고기가 펄쩍 날아서 오는 게 아니다. 현재 자기 앞에 어떤 신앙의 정신과 태도로 살아가고 있는데 자기도 모르게 어떤 큰 사건이 저 멀리서부터 우물우물 하고 오는 걸 느낄 줄 알아야 된다. 믿음의 사람이라면. 그걸 못 느끼면 졸지 간에 네가 어떻게 되겠느냐? 사람이란 게 느낌이 있잖아요? ‘이렇게 가다가는 도착 전에 해가 지겠구나. 이렇게 가다가는 해 지기 전에 도착하겠구나’ 하는 그 계산이 있습니까? 길을 걸을 때에. 맞잖아요? 그렇다면 현재 신앙정신 상태 현재 가지고 있는 그 상태가 하나님께서 나의 앞에 나도 모르게 그 무엇이 다가오고 있다고 하는 것을 성경을 통해서 느낄 줄 알아야지.
현재 학생이 자식이 부모말도 안 듣고 맨 오락실에 가서 놀고 있다면 많은 사람들이 그 학생의 앞날이 어떻게 밝다고 보입니까, 어둡다고 보입니까? 어둡다고 보이지요? ‘저거는 놈팽이가 되는 수밖에 없구나.’ 근데 그걸 느낍니까? 그걸 느끼면서 미연에 방지책으로 서서히 교육적으로 인간교육으로 들어가져야 할 것 아니냐? 나무가 다 자란 후에 휘려면 그건 부러지고 말아. 나무를 휘는 것도 어릴 때 부드러울 때 휘는 거지. 만물을 보면서 그런 생각을 우리가 좀 못할까?
‘누가 시몬베드로의 그물에 잡혀줄래?’ 고기들 자기들끼리 물 밑에서 하는 말이. 그 만물의 음성을 들을 줄을 알아야 돼. 그러니까 예수님의 그 명령에 ‘다 모여라’ 하는 그것도 들을 줄 알아야 돼요. 그러니까 고기들이 저 멀리서부터 물 깊은 속에서부터 그 주님의 소리를 무음으로 알아듣고 베드로 배 밑으로 싹 온단 말이요. 고기들 자기들끼리 회의를 하는 거요. ‘누가 베드로의 그물에 잡혀주겠냐’ 그러니까 서로가 ‘저요 저요’ 그런단 말이요. ‘잡히면 시장에 갖다 팔리고 죽는데?’ ‘그래도 좋다. 하나님의 말씀의 명령에 내가 순종이 되니 내가 좋다. 하나님의 말씀 따르는 그 성도에게 먹힘이 되고 피가 되고 살이 되고 헤모글로빈이 되니 얼마나 좋으냐? 이룰구원을 잘 이뤄가게 되게 하는 것이 이것이 만물의 존재목적이다. 그러니까 그 목적대로 순종하는 이게 영광스러운 거다. 이게.’
오늘날 어느 나라 사람들은 자기 몸에다가 폭탄을 장치해가지고 뛰어듭니까? 그거 왜 그래요? 자기 딴에는 죽어서 지옥 간다고 하는 겁니까, 죽어서 좋은데 간다고 하는 겁니까? 그래요? 애고 어른이고 남자고 여자고 간에 그게 들었단 말이요. ‘자기 민족을 위해서’ 뭐 이런 게 들었단 말이요. 예, 서로 잡혀주겠다고 물고기들이 ‘저요 저요.’ 더 큰 고기가 와서 ‘나도 끼워 달라.’ 문어도 꼴뚜기도 서로 ‘나도 끼워줘. 주님의 명령수행을 한 번 해보고 죽는 게 소원이었어.’ 만물의 소리를 어떻게 들을 줄 알아요? 만화 같은 소리요? 그래요. 그리면 만화요. 그러나 그 속에는 우리에게 정신이 있는 거다.
시몬베드로는 물 밑에서 자기 배 밑에서 무슨 작업이 진행되고 있는지 전혀 알 리가 없는 거다. 오늘날 우리는 아느냐? 그러면? 진리생명의 말씀순종자를 위해서 멀리서 또는 가까이에서 어떤 역사가 자기 앞으로 점점 진행되어 자기에게로 다가오는지 느낄 줄 알아야 한다. 우리는 느끼고 살아야 한다. 느낄 줄 아는 사람이라면 그 사람은 깨어있는 사람이다. 미련퉁이는 그렇지 않다.
한 사건에서 모르드개와 하만은 그 결과가 대조적으로 나타났습니다. 또 180일 잔치 끝에 에스더와 와스디는 전혀 다른 결과가 나타났습니다. 이것을 우리는 보고 ‘왜 그렇게 될 수밖에 없었는가’ 하는 그 원인을 알면 ‘그 결과는 그렇게 될 수밖에 없겠구나’ 하고 자기 신앙의 원인을 살펴봐야 할 것이다. 그 결과가 오기 전에. 180일 잔치는 누구를 위해서 한 결과가 됐습니까? 에스더. 에스더는 그걸 알고 있었나요? 모른다. 오직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으로 순종으로. 사촌오빠 양말 빨아주고 솥뚜껑 운전해주고 빨래 빨아주고. 그러나 그 신앙의 그 마음의 심성이 하나님 앞에 그렇게 좋다. 좋으니까 만물을 움직이시는 이 분이 뭘 안 주고 싶어 하겠느냐 그 말이요. 그 나타난 거예요. 다른 처녀들은 왕 앞에 왕비가 되고 싶어서 거울 앞에서 얼마나 도리도리 했겠느냐? 찍어 바르고 늘어뜨리고 잡아당기고 밀어 넣었다가 거울 앞에서 자기 미소를 지어봤다가 스마일 해봤다가 뭐.
육땡이 신앙결과는 하나님의 형벌이 분명히 있는 겁니까? 육땡이 신앙? 그거 어떻게 알아요? 육땡이 신앙 영땡이 신앙이 뭔지 알아요? 근데 사람이란 먹을 것 많고 나이 젊었지 혈기 왕성하지 좋은 직장에 다니지 그러면 어딘지 모르게 세상을 의지하는 게 많아요. 그런데 이제 나이 들고 어려워지고 병들고 그러면 마음이 자꾸 하나님을 찾는 거요. 어린애가 배가 고프고 해가 지니까 엄마 품이 그립고 하듯이 어떻게 꼭 그런가? 우리가 참. 그런 걸 미리 좀 가질 수가 없을까?
4절: 말씀을 마치시고 시몬에게 이르시되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으라.
이 말씀을 하시기 전에 미리 말씀을 하셨더라면 시몬베드로에게 설교소리가 제대로 귀에 잘 들어올까? 그것도 있는 거요?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아라. 깊은 데로 가서’ 아, 이걸 설교하시기 전에 미리 좀 말을 해줬더라면 베드로 생각이 속에서 뭐가 자꾸 뱅뱅 돌까요? 설교소리는 하나도 안 들어오고? ‘저 설교가 언제 끝나냐’ 그런 계산이 들어가지? 또 다른 각도로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으라’ 하셨을 때에 시몬베드로의 마음속에서 툴툴거리기를 ‘내가 그걸 몰라서 밤새도록 고생을 한 줄 압니까?’ 마음속에서?
무슨 바람이 어떻게 불면 어떤 고기가 잡히고 흐린 날씨는 어떤 고기가 잡히고 맑은 날씨는 어떤 고기가 잡히고 아침에는 어떤 고기가 어디서 놀고 저녁에는 어떤 고기가 어디서 놀고 철따라 어떤 고기가 어디서 논다고 하는 것을 어부 베드로는 훤히 알고 있습니다. 바다에서는 이 베드로가 도사 급인데 그런데 한 마리도 못 잡았어요. 자기의 경험, 그 최고의 바다의 지식에서 빗나가 버렸어. 예, ‘지금 배도 고프고 눈이 감기고 피곤합니다. 예수선생이여, 부디 내 배에서 내려주십시오’ 만일 그랬다고 했더라면 어떻게 되었을까? 그러나 시몬베드로는 ‘선생님의 말씀에 기초하여 말씀에 기초하여 그물을 내리리 이다’ 하고 말씀에 근거 기초하여 그물을 내렸더니 순종을 했더니 고기가 많이 잡혔는데 너무 많이 잡혀서 그물이 막 찢어져 나갑니다. 동료를 불러서 도와 달라 청하여 두 배에 실으니 가득 차서 이제는 배까지 물에 잠기려고 하는 것이더라. 고기는 잡았는데 배가 물에 잠기면 이건 어떻게 되는 겁니까? 참말로 이거.
그런데 고기가 몇 마리라 그랬지? 153마리. 그러면 도와 달라 그래서 끌어올리니 두 배에 가득 찼는데 153마리가 고기 한 마리가 어떻게 멸치만 했나, 아니면 상당히 컸나? 어른 말로? 그리고 멸치 153마리 실어서 배가 가라앉을 정도면 그건 사람이 못 타는 거지. 그래도 아마 153마리 정도면 배가 이 끝에서 저 끝으로 그 정도는 돼야지. 근데 큰 고기가 실린다면 큰 고기는 몸무게보다 무거워요. 사람 몸무게보다 엄청나게 무거워요.
갈릴리바다에 그렇게 큰 고기가 언제부터 있었을까요? 그 고기 어릴 때부터 그렇게 클 때까지 베드로의 그물에 예수님의 말씀에 걸릴 때까지 딴 그물에는 안 잡혔다 그 말이요. 맞잖아요? 안 잡혔고 설령 잡혔더라도 얼른 뛰쳐나왔을 것 같아. 그리고 그 때 당시 무슨 모터보트 기계배도 아니고 돛단배. 바람 따라서 노 젓는 거. 이 두 배에 실으니 가득 차서 배까지 물에 잠기려고 하는구나.
그러면 성경에서 이것을 본 오늘날 우리는 어떻게 하겠는가? 문제 1. 예수님을 붙잡는다? 왜? 만능의 능력으로 고기 많이 잡히게 해서 우리 집 부자 되게 해달라고. 문제 2. 생각을 잘 하세요. 그런데 판단하는 자기 지식하고 세상 사는 자기의 정신하고 다를 수가 있습니다. 이 사람이 참 묘한 거요. 두 번째. 나가서 전도해서 바닷가에 모이게 하고 예수께 말하기를 시몬베드로 자기 배를 자꾸 쓰시라고 한다? 고기가 자꾸 잡혀서 부자 되게 만들려고. 그 다음에 세 번째. 사람이 생각할 수 있는 거는 충분하게 생각을 해야 돼요. 믿는 사람들 교인들도 그런 머리를 돌리고 있어야지. 세 번째. 갈릴리 어업협동조합을 만들어 예수님을 조합장으로 앉힌다? 어때요? 네 번째. 갈릴리 호숫가에 조선소를 만든다? 조선소. 배 만드는 곳. 그리고 예수님을 수산부장관으로 임명 선출한다. 어떠세요? 그럴 마음 없어요? 그런 마음 있잖아요.
이왕이면 예수 믿는 게 낫습니까, 석가 믿는 게 낫습니까? 어느 쪽이요? 예수? 왜 그래요? 석가는 만능의 능력은 없고 예수는 만능의 능력은 있거든요. 그리고 딴 신을 믿으면 그 전문 신을 많이 찾아가야 돼. 입맛대로 아들을 나으려면 어떤 할망구 찾아가야 돼요? 추위 물러가게 하려면 어떤 할망구 찾아가야 돼요? 할망구가 대가 아주 센 모양이야. 추위 물러갈 때 영동할매 올라간다? 왜 영동이야 영동은? 하여튼 한자겠지? 또 할매 올라간다고 이제 물 떠놓고 대나무 세워놓고 빨갛고 파랗고 노랗고 한 헝겊 달아놓고 두들기고 앉았고. 안 그러면 할매가 안 올라 간데요. 오래 살려면? 그러니까 많이 찾아가야 돼. 복잡해.
그리고 그런 신들은 한 신에게만 잘 보이면 안 돼. 딴 신이 시기를 해가지고 또 사람을 못살게 만들고 그래요. 그러나 예수 신은 만능의 능력이니까 한 분만 붙잡으면 되는 거거든. 맞잖아요? 그리고 분명한 것은 다른 신들은 다 죽어 자빠져버렸어요. 죽어버렸어요. 근데 예수 신은 안 죽었어. 그러니까 살아있는 신이요. 맞기는 맞잖아요? 우리는 산 신 믿어요, 죽은 신 믿어요? 말하기도 그렇네. 그게.
오늘날 자기가 주님을 끌고 가서 무슨 짓들을 하고 있는지? 오늘날 세상속화 된 교회들을 보아라. 어떤 짓들을 하고 있는지? 아까 말씀드린 거와 똑같다. 이치는 똑같다. 목사들끼리 성경도 모르는 목사들끼리 모여서 그 부흥협회. ‘부흥협회 목사들’ 그러니까 여기는 협회기 때문에 단가가 딱딱 있는 거요. 교인 몇 명이면 얼마짜리. 참 그 참말로 저속해요. 교인들부터 호주머니 많이 터는 목사가 능력 있는 목사라. 우리에게는 어디 그런 말을 함부로. 이건 사기꾼이고, 남의 주머니 훔치는 사람이 누구요? 쓰리꾼이라 그러나? 소매치기. 소매는 이게 소매인데. 어쨌든 참 이거 똑같다. 말만 다르고 용어만 달랐다 뿐이지 속에 들어가 있는 그 성질은 똑같구나. 그거 볼 줄 알아야 돼요.
여기서 장사 안 되면 그 집에서 간판을 다르게 또 붙이고. 그것도 있고, 저만큼 가서 다르게 붙이고, 신장개업하면서 사람은 그 사람이요. 사람이 그 사람인데 뭐가 나오겠어요? 정치세계도 마찬가지. 옷 바꿔 입는다고 해서 사람이 달라지냐? 그게 아니지요? 자기가 그 세계에서 장이 되고파 어른이 되고파 그룹들을 많이 만드는구나.
어느 동리에서는 예수님을 동네의원이 돼달라고 붙잡더니. 어디서? 자기 고향에서. 동네의원이 되어 달라고 붙잡더니 이제는 사람 낚는 어부가 되어달라고 예수님을 붙잡습니다. 그러니까 돛대마다 펄럭이는 깃발은 ‘처음은 미약하나 나중은 창대케 되리라’는 성구를 달고. 느껴집니까? 지금? 다른 말로 하면 이 유형교회가 비유적으로 말을 하면 배요. 바다에 띄우는 배라고요. 이해갑니까? 그 배에 교인들의 소원 목적인 ‘처음은 미약하나 나중은 창대케 되리라’ 죽을 때까지 달아놓으면 안 되나? 처음은 언제부터 처음이고 창대케 되는 날은 언제요? 베드로는 안 그러는데 세상속화 된 신앙사상은 그렇더라 그 말이요.
5절-11절: 시몬이 대답하여 가로되 선생이여 우리들이 밤이 맟도록 수고를 하였으되 얻은 것이 없지마는 말씀에 의지하여 내가 그물을 내리리이다 하고 그리한즉 고기를 에운 것이 심히 많아 그물이 찢어지는지라 이에 다른 배에 있는 동무를 손짓하여 와서 도와달라 하니 저희가 와서 두 배에 채우매 잠기게 되었더라 시몬베드로가 이를 보고 예수의 무릎 아래 엎드려 가로되 주여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하니 이는 자기와 및 함께 있는 모든 사람이 고기 잡힌 것을 인하여 놀라고 세베대의 아들로서 시몬의 동업자인 야고보와 요한도 놀랐음이라 예수께서 시몬에게 일러 가라사대 무서워 말라 이제 후로는 네가 사람을 취하리라 하시니 저희가 배들을 육지에 대고 모든 것을 버려두고 예수를 좇으니라.
어떻게 그 사건적으로 보면 시몬베드로가 예수님을 쫓은 것이 바로 됐습니까, 잘못 됐습니까? 잘 됐습니까? 그런데 오늘날 약아빠진 우리들 같으면 어떤 수법을 쓸까요? 좋은 방법이 있어. 예수님을 자기 집에 잡아 앉히는 거야. ‘말씀만 하옵소서. 순종하리이다. 오늘 어느 바닷가에서 고기가 많이 잡히겠습니까?’ 그 방법 쓰는 거야. 지금. 맞잖아요? 맞는 말 아니요? 나도 그런 마음을 아는데 예수님은 더 훤하게 잘 아시지. 그러니까 예수님이 속을 리가 있나요? 안 속는다. (계속)
궁극교회 김경형목사님의 설교입니다. (http://cafe.daum.net/909k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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