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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여, 원하시면 나를 깨끗케 하실 수 있나이다(2)

누가복음 궁극이............... 조회 수 145 추천 수 0 2019.11.14 18:52: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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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눅5:11-13 
설교자 : 김경형 목사 
참고 : 궁극교회 주일예배 

 

내가 원하니 깨끗함을 받아라.’ 선악과 따먹은 사망적 넓은 길로 가는 소원성의 정신 사상은 하나님의 말씀에 자유하지 못하고 깨끗지 못하고 전부는 병적이고 냄새나고 더럽습니다. 예수 믿는 것도 생명 길 좁은 길이 있고 예수 믿는 것도 사망 길 넓은 길 있습니까? 맞아요? 그럼 사망 길 넓은 길 이건 세상길로 가는 것. 세상소원 목적을 품고 예수 믿는 것은 이건 사망 길 심판 길 불타질 길. 성경에도 있는데 왜 예수 믿으면서 왜 세상 것을 자꾸 갖다 달라 그러느냐 그 말이요. 이치가 바로 된 거냐?

 

그러니까 어떻게 보면 예수님을 안 믿는 사람들은 자기 노력 것 피땀 흘리면서 잠을 안 자고서라도 세상을 자기 것으로 만들려고 그러는데 이 예수 믿는 사람은 손끝도 까딱 안 하고 게을러 터져가지고 예수님보고 자꾸 갖다 달라고 그래. 안 믿는 사람보다 이건 더 게으르다. 이건 돼먹지 못했어. 마음 심보가 아주 글러먹었어. 도둑의 심보야. 이건. 그래도 그런 교회 좋다고 나가고 있어.

 

세상을 소원 목적하고 가르치는 이런 인도자들은 이게 전부 다 술사들이야. 술사들. 성경에 발람이 나오잖아요? 무당하는 사람이 돈 바라지. 점치는 사람 돈 바라지. 사기꾼 전부 다 세상물질 아니요? 소원 목적이? 예수님도 그러냐? 예수님도 아까도 말씀드렸지만 하늘나라와 천국복음을 전하더라. 그러니 천국의 사람으로 만들어지는 것. 사람이 만들어지는 것. 그런데 거짓적으로 예수 믿는 곳은 세상 것을 이루어 달라고 하는 것. 사람이 안 돼. 그러니까 그렇게 믿어나가는 그 가르침은 세상길 넓은 길. 사단 마귀가 예수님께 시험을 걸어 세상 쪽으로 자꾸 유인해가는 것.

 

예수님은 속지 않았지요? 근데 오늘날 왜 예수님의 이긴 그 정신을 보아서라도 예수 믿는 사람은 예수님의 정신을 가져야 할 텐데 교회에서 예수이름으로 성경구절을 이리저리 끼워가지고 세상 쪽으로 자꾸 가니까 그거 아멘하고 돌아가니 이게 어떻게 된 거냐?

 

예수님께서 우리 인간에게 오심이 우리로 예수님을 믿고 길이요 진리요 생명의 사람으로 만들어지는 것. 이게 구원이라. 하나님의 자녀라면 하나님을 닮아야지 예수 믿는 사람이 하나님의 자녀라 그러면서 왜 마귀를 닮지? 왜 귀신을 갖고 다니지? 세상을 소원 목적하면서 세상 것을 이뤄달라고 그러면서 성령을 받았다고? 그게 성령이요? 그 이치가 성령이냐고요? 무턱대고 예언 방언만 하면 성령이요? 마음은 세상을 향해져 있는데 그게 성령이요? 성령 받았다는 사람 손 한 번 들어봐요. 내가 진단을 내려줄게. 성경에 보면 제사장들이 진단을 내리더라고요.

 

예수님께서 내가 원하오니 깨끗함을 받아라.’ 사실 우리의 정신상태 그리고 사상, 비뚤어진 양심. 자기 양심이 아주 절대 정확하다는 사람 손 한 번 들어봐요. 안 믿는 사람보고 그래 봐요. 자기 양심 비뚤어졌다고 그래요, 바르다 그래요? 바르다고. 근데 우리가 볼 때는 그게 바른 거요? 바른 겁니까, 비뚤어진 겁니까? 우리 중심에 비뚤어진 겁니까, 하나님 중심에서 비뚤어진 겁니까? 하나님. 그렇지요. 그럼 예수 믿으면서도 우리의 마음도 하나님의 중심에 맞지 아니하면 비뚤어진 거지?

 

그러니까 이 예수 믿는 것은 절대적 기준, 바닥, 절대 정확한 것. 예수 믿는다고 하는 것은 자꾸 지식 면에도 맞추고 지혜 면에도 맞추고 선 사랑 거룩 진실, 절대적인 이 주님의 것에 자꾸 맞추는 것이 이게 예수 믿는 거요. 그게 거룩의 사람으로 만들어져가고 그게 성령의 사람이야. 이제 그게 성령님의 역사야. 그렇게 되는 사람은 이미 성령님의 역사가 들어간 거요. 근데 예수 믿으면서 자꾸 세상 쪽으로 마음이 가는 이것은 귀신이 들었어. 성령이 아니요. 그 분명히 알아야 돼요. 그러니까 우리 모두 주님의 말씀 앞에 고침을 받아야 한다. 예수님을 믿는다고 해도 이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요 이 본질의 말씀을 만나지 못하면 못 고친다. 알겠어요? 세상 인본주의에 가서 그게 고쳐지겠느냐?

 

성육신 예수님으로 오셔서 문둥병자를 고쳐주신 것은 성문적 역사적 계시로서 우리에게 영적 상태를 지적하고 계시는 겁니다. 이게 지금 계시요. 예수님 앞에 문둥병자가 그 때 이천 년 전에 나타난 것은 우리에게 더 깊은 참 뜻을 가르쳐 주려고 그걸 동원시켜서 성경에 기록해서 우리로 보게 한 거란 말이요. 그러니까 우리가 이 성경을 보면서 그 역사 속을 들여다봐야 되겠다 그 말이요. 우리 모두 자기에게 어떤 병이 있는 건지? 어떤 병을 말하는 건지?

 

하나 물어봅시다. 몸에 뭐 이렇게 부스럼 난 그 병이 중요합니까, 그 사람 속에 정신 마음이 이게 귀신들린 게 중요한 겁니까? 눈에 보이는 부스럼이 더 중요한 겁니까, 그 사람 속에 그 자체를 움직이고 있는 그 사람 중심 정신상태 그게 더 중요합니까? 확실히 그래요? 그 중요성을 알아야지? 자기 몸이 아플 때도 , 이건 두면 괜찮겠구나이런 게 있고, 조금만 아파도 이건 안 된다. 빨리 병원으로 가자요것도 있습니까? 그래요.

 

특히 몸 이게 조금 타박상이라든지 뼈가 어떻게 됐다라든지 이런 건 물론 중요하지요. 가만 두면 안 될 테니까. 그러나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 사람의 정신. 신앙으로 말하면 그 신앙정신 상태. , 딴 데도 아프면 이게 참 자지러질 정도로 이런 게 있지만 머리가 아프다 이러면 이게 큰 작용이요. 그걸 알아야 돼. 근데 우리 아가씨들, 자기 얼굴에 여드름인지 남드름인지 나면 요런 거 거울보고 이렇게 하지만 머리 아픈 걸 그렇게 심각하게 생각 하나? 안 한다. 어디다가 더 신경을 쓰느냐? 말하자면 더 중요성은 어느 쪽이냐 그 말이요. 어느 쪽이냐?

 

그래서 우리가 수술할 때도 가만 보면 발이 잘려도 요건 말하자면 사는 거지요. 맞잖아요? 보편적으로 보면? 그리고 손이 잘려져도 이게 사는 거고. 근데 이 두 가지를 딱 봤을 때에 이왕이면 다 잘린다고 한 번 생각하고 여기도 판단을 해야 되거든? 어느 쪽을 자르는 것이 조금 더 유리한 겁니까? 손 잘라지는 거? 발 잘라지는 거? 그렇다고 해서 자른다는 게 아니고 판단을 해봐라 그 말이요. 손이 잘라지는 것이 꼭 자른다는 소리로 들리네. 이상하게 그거. 어느 쪽이 그래도 생활하는데 조금 낫습니까? 손이 잘라지면 일을 못하지요? 걸어는 갈 수 있는데. 허기야 발로 붓글씨 쓰고 밥 먹는 사람도 있더구먼. 발이 잘라지면 어떻게 되나? 그럼 두 손이 발 노릇을 해야지. 손이 없으면 발이 손 노릇까지 해야 되고. 어느 쪽이 좀 더 나으냐? 더 못하고 나은 게 있단 말이요. 판단을 해보란 말이요. 자른다는 게 아니고. 팔이 없는 게 나아요? 발 발 없는 게 낫겠지? 아니, 그것보다 손이 있는 게 낫겠지. 그래야지. 참 어쨌든 그 뭐 이렇게 짚어가지고 발 대신으로도 쓰고 참.

 

그런데 이게 발은 왔다 갔다 뭐 가고 싶은 이런 게 있겠는데 전 가만 생각해보면 이게 손이 없으면 등 가려울 때 미칠 거라. 이거. 그런 느낌 안 들어요? 어디 천 상 나무에 가서 비벼대야지. 소처럼. 그래서 못 살 때 이가 많으니까 어떻게 근지러운지 기둥 벽 모서리 된데 가서 막 긁지. 참 소가 보면 웃을 거야.

 

보혜사 성령께서 길이요 진리요 생명의 교훈으로 우리에게 고치고 성장시키는 일을 하고 계십니다. 빛이 없는 곳에서는 아무 것도 몰라요. 말씀의 빛이 없는 곳에서는 자기의 성격적으로 성격적 장애 성질적 장애, 이 성분적인 면에서. 그 쇠고기도 부위 별로 맛이 다릅니까? 신문에 한 번씩 나오는 거 보면 나는 소고기는 다 맛있거니 이렇게 생각을 했는데 전문가들은 부위 별로 맛도 다르고 값도 다르고 그렇더라고요. 그런데 우리 사람도 내가 내 몸을 만져 봐도 이 부위 별로 말랑거리는 게 달라. 맞지요? 발바닥은 딱딱 하잖아요? 배가 딱딱하다면 이거 어찌 될까? 발바닥처럼. 사람도 부위 별로 , 어떻게 하나님이 그렇게 만드셨나?’ 인간 자기가 스스로 한다고 그래도 그렇게 못해요.

 

사람의 머리가 머리 쪽으로 안 나고 아래쪽으로만 난 사람 봤어요? 난 별로 못 본 것 같은데. 하나님이 어찌 해놨는지 몰라. 참 희한해요. 그것도 하나님께서 이발사인 것 같아요. 어떻게 보면. 다 보면 머리카락 여기까지 내려와 있어. 어떻게 이렇게 이렇게 해놨을까? 참 신비로워요. 우리는 인간을 많이 생각을 해야 된다. 인간의 마음과 그 정신. ? 성경은 사람을 생각하게 만드니까.

 

길이요.’ 이 뭐냐? 예수님 가신 길, 참 길, 정신 사상이 비추어져야 되는 길, 거짓된 신앙사상의 길도 알 수 있는 길, 예수님의 그 정신 사상 그 삶으로 그렇게 가는 것. 그 길이라 그 말이요. ‘길이라그러면 사람이 왔다 갔다 하는 길인데 왜 왔다 갔다 하느냐? 사느라고 왔다 갔다 하는 길이란 말이요. 그러니까 산다고 하는 그 길이 나쁜 길인지 좋은 길인지 밝게 비춰져야 될 거란 말이요. 쉬운 얘기로 우리교인들, 길을 가더라도 불 없는 길로는 가지 말아라. 이해갑니까?

 

도시에는 골목마다 불이 있어요. 참 잘된 거요. 그 우리에게 신앙을 많이 가르쳐주는 거요. 근데 아주 시골로 길로 가면 불이 없어. 그러니까 농촌에 경운기 같은 거 갈 때 그냥 들이받고 죽기도 하고 그런 거 있단 말이요. , 길이 좋아야 돼. 밝은 길로 가야 되고 보이는 길로 가야 되고. 쉽게 얘기를 하면 그렇다.

 

그 다음에 진리요하는 것은 하나님의 본질이 비추어져야 된다. 하나님의 것은 전부 진짜인데 하나님의 본질은 진리. 진리는 썩지 않고 영원히 가고 변질되지 않고 영원히 가고 불에 타지 않고 안 타지는 것으로 영원히 가고. 영원히 가는 것은 하나님 것밖에 없다. 하나님 당신밖에 없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것을 내가 가지면 예수님을 가지는 것. 예수님을 가지는 것은 하나님을 가지는 거라. 가지면 이게 교회 안에서 거짓적으로 가르치는 것을 훤하게 안다. 예수님 가신 길, 참 길, 참 사는 길, 예수님 속에 든 거, 도덕성 속에 든 거, 참 도덕성. 그 도덕성은 하늘나라로 다 들어가는 것. 진리요.

 

생명이요하는 것은 영원히 사는 생명. 그러니까 예수님 속에 들어있는 거는 전부 다 영원히 가는 것. 생명으로 다 되어있는 것. 지식도 생명으로 지혜도 생명으로 선도 사랑도 생명으로 다 들어가 있어. 하나님의 것으로 들어있다 그 말이요. 영원히 사는 것으로 들어가 있다 그 말이요. 그래서 그 하나님의 것을 자기가 가져야 거짓된 생명을 알 수가 있다.

 

부활의 생명은 참 생명이다. 죽어도 다시 사는 것은 이건 참 생명이다. 예수 믿는 것은 그게 들어있다. 그걸 가져야 돼. 그러니까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요이게 바로 예수님이신데 그 교훈이 나가면 자기가 그 정신 그 소원 목적으로 들어가니 많이 들어있을수록 예수님과 바짝, 적게 들어있을수록 멀어. 그러니까 어떻게 보면 예수님은 우리의 제일 큰 형님이요. 그 다음 형님 그 다음 형님이 아마 실력의 순서대로 되겠지. 말하자면 잘못 들으면 예수님을 형님이라고 합디다.’ 참 말하기도 겁 나. 우리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요 이 교훈으로 자기 자체화 자기 인격화 자기 사상화 자기 실상화로 깨끗하게 다 온전케 돼야 된다.

 

깨끗이 나음을 받은 그에게 예수님이 또 14절에 하시는 말씀이 있어요. 그런데 요걸 이 문둥병 속에서 가만 봐 봐요. 성격적으로 문둥병, 성질적으로 문둥병, 예 성분적으로 문둥병. 이 무슨 말이냐? 자 한 마디로 요건 육신적으로 봤을 때도 그렇거든요. 분리에요. 미친 사람은 분리해두는 거요. 병든 사람은 분리해두는 거요. 맞지요? 문둥병자는 분리해두는 거요. 한국으로 말하면 소록도 있지요? 소록도가 어딘지 알아요? 고흥 저기 나라도 거기요. 그 근방에 있을 거요. 고흥 밑에 가면 나라도 있어요. 섬 그 근방에 있어요. 이게 무슨 말이냐? 그대로 사람과의 관계성이 완전히 절단이구나. 단절이구나.

 

, 그래서 쉽게 그저 생각을 하세요. 자기의 성격상 도무지 다른 사람과 통하지 않는 사람이 있습니까? 성격상 어울리지도 못하고 성격상 대화도 안 되고 있습니까? 많은 사람이 말을 하기를 저 사람이 성격이 왜 그래? 도무지 말을 붙이지 못하겠구나.’ 그럼 성질이나 곱나? 성질빼기도 그래가지고 말 한 마디 하면 말도 못 붙이겠고, 옆에 있으면 사람을 또 자꾸 붙잡고 그냥 피곤하게 만들고 이러면 붙으려고 그래요? 정신적으로 마음적으로 그 모양인데?

 

사람이면 사람이 붙어야 할 텐데 어째 유별나서 성격상 성질상 이게 유별이 나서 도무지 사람이 붙지를 않고, 말하자면 다른 사람들이 좋아하지를 않아. 자기를 보고 좋아하지를 않아. 문둥병처럼 생각이 돼서 좋아하지를 않아. 이거 안 고칠 거냐 그 말이요. 안 고쳐? 이거 안 고칠 거냐 그 말이요. 사람이 붙어야 전도를 하든 가르치던 대화를 하던 인인관계적으로 잘 이렇게 올라갈 텐데 어떻게 자기 혼자 예수 믿어? 자기 혼자 살아?

 

시장에 물건을 사러가도 이게 한 몇 천 원짜리 아니면 돈 천 원짜리, 심지어 콩나물을 사는데도 왜 그렇게 깎으려고 그러는지. 콩나물 천 원어치면 꽤 많지요, 천 원어치 안 줘요? 오백 원어치도 안 줘요? 천 원어치만 주네. 그래, 천 원어치에서 깎으면 얼마나 깎을 거요? 그 전에 할머니들이 좀 유난히 그런 거 있어. 참 속 좁은 아주머니들도 오백 원어치만 줘요. 이거 천 원에다 절반 깎으면 사실 장사꾼들은 달라는 대로 주면 되는 거거든? 천 원에서 백 원어치만 주세요하면 십 등분 나누면 그거 참. 그래도 장사꾼은 무조건 팔면 돼요. 좀 그러면 되겠는데 식구가 적으면 이게 천 원어치도 많은 경우도 있어요. 한 번 딱 해서 먹을 것. 그런 사람도 없잖아 있어.

 

장사꾼들은 마음이 넓어야 돼요. 사실 장사하려면 쓸개를 빼놓고 해야 돼요. 안 그러면 손님들하고 싸우면 그렇지 않아도 장사할 때는 제 때 밥을 못 먹는데 신경까지 예민해지면 속병 다 들어요. 그러니까 장사를 하려면 쓸개를 빼내버려요. 잠깐 병원에 맡겨놓든지.

 

예수 믿으면서 고치란 말이요. 제발. 예수님이 그 수모를 당한 것을 생각을 해봐라. 그러니까 우리가 좀 수모를 당하고 조금 손해 보는 거 왜 그거 못 견디겠느냐 그 말이요. 다 지나가는 거. 그거 나중에 내가 바로만 하면 어떤 모양으로서든지 또 들어오기 마련이고 그런 건데. 물건이 들어오지 않으면 사람이 붙지 않아. 물건도 안 들어오고 사람도 떨어져나가고. 뭐요? 뭐냐고요? 또 사람을 좋아하되 너무 분별을 못해가지고 지조가 없는 그것도 문제요.

 

이 대목에서 어쨌든 정신상태, 소원 목적적이거나, 특히 문둥병이라 그럴 때는 인인관계 관계성에서 이게 깊이 생각을 해야 돼요. ? 전부 다 단절이 돼 버렸으니까. 사람과 단절되면 어떻게 먹고 살아요? 사람과 단절되면 먹을 것도 안 생기고 물건 팔러 가면 다 도망갈 거고. 자기가 농사지어서 자급자족하는 수밖에 없구나. 그렇게 해서 어떻게 살아요? 옷 사러 가야지. 물건 팔러가야지. 그라면 다 도망가 버리는데? 말을 해도 틱틱 툭툭하고. ‘뭐 이런 사람이 있냐?’ 그런 거 있잖아요.

 

자기 성격 성질 때문에 사람이 다 도망을 간다고 하는 것은, 그렇다고 해서 이게 무슨 거룩한 것도 아니고 일반적으로도 아무렇지도 않은 그걸 갖다가 꼬치꼬치 생각을 해가지고 병이 되고, 딴 사람과 관계성이 잘못 돼 있으면 밤새도록 꼬치꼬치 이렇게 하더니 아침에 일어나서 딴 사람에게 성질이 팍 나가버리고 그러면 뭐라고 그래요? ‘저 미쳤구나이러지. 자기에게 그런 성격이 있어요, 없어요? 있어요, 없어요? 있어요. 고칠 거요, 안 고칠 거요? 고칠 거예요?

 

예수를 믿어도 내가 나를 볼 때도 이런 게 참 몹쓸 것 같은데 다른 사람이 나를 볼 때는 오죽 하겠습니까? 그러니 내가 예수 믿어도 나를 보면 하나님이 보여야 되고 예수님의 마음이 보여야 할 텐데 이게 당최 전도도 안 되고 나만 가면 비실비실 피해서 가버리고 집에 강아지도 나를 보고 피해 가는데 이거 외로워서 못 살겠습니다.’ 허허. 외로운 사람 있어요? , 주기를 좋아하고 나눠먹기 좋아하고 남의 사정도 좀 이렇게 가만히 듣기도 하고 이러면 아무렴 사람이 가까워지지요. 가까워져도 구별을 해야 된다. 왜 그러냐? 나를 이용해 먹을 사람도 있을 수 있는 거니까.

 

문둥병적인 요소가 그런 성질적인 요소가 사람을 멀리하게 만드는 요소가 일반 도덕성적인 면에서나 신앙적인 면에서 얼마든지 있을 수 있어요. 고쳐야 돼요. 가만있다가 말 한 마디씩 툭 하는 게 사람을 깜짝 놀라게 만들고 있어요? 없어요? 조용히 말할 것도 웩 해버리고. 그거 그래서는 안 된다. 더더군다나 살다보니 많은 경험을 하게 되는데 여자 분들은 마음이 약하고 깜짝깜짝 놀래요. 특히 남자 분들은 성격상 그런 게 있어. 뭐 마음에 안 든다거나 그러면 아내나 딸이나 여자 분들에게 큰 소리로 이러면 그만 깜짝 놀라서 이게 울렁증이 생겨가지고 콩닥콩닥 병이 생긴다. 이해가요? 다 안 좋은 거요. 좋지 않은 거라. 점심시간인데, 식사하면서도 꼭꼭 씹어요. (계속)

 

 궁극교회 김경형목사님의 설교입니다. (http://cafe.daum.net/909k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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