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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을 항해하면서 발견한 다시 읽고 싶은 글을 스크랩했습니다. 인터넷 공간이 워낙 넓다보니 전에 봐 두었던 글을 다시 찾기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닙니다. 그래서 스크랩할만한 글을 갈무리합니다. (출처 표시를 하지 않으면 글이 게시가 안됩니다.) |
| 출처 : | 최주훈 목사 페이스북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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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순서의 기원
'지루한 설교와 인질극은 한 끗 차이'라는 우스개 말이 있다.
설교는 잘하든 못하든 좋든 싫든 억지로라도 예배 순서에서 뺄 수 없다는 블랙 코미디가 스며든 풍자다. 이렇듯 예배에서 설교는 중요하다. 그렇다고 설교가 예배의 모든 것은 아니다.
전통적으로 예배를 구성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는 예배의 두 기둥으로 설명되는 말씀과 성찬으로 설명된다. 아주 보수적인 전례 교회에선 말씀의 전례와 성찬의 전례가 함께 있는 경우만을 ‘예배’라고 할 정도다. 그 외에는 집회, 또는 기도회라고 설명한다. 명칭을 놓고 싸워봤자 죽고 사는 문제도 아니니, 그리 흥분할 필요는 없다.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도대체 ‘언제부터 말씀과 성찬이 결합된 예배가 시작되었는가’, 그리고 '그 기원은 어디서 확인할 수 있는가'에 있다.
상식적으로 설명 가능한 부분도 있지만, 그보다 현존하는 문서를 거슬러 올라가 확인해 보자. 일반적으로 전례, 또는 예전과 관련된 가장 오래 된 문서로 <디다케>를 꼽는데, 작자 미상이며 저작시기도 논란거리다. 보통 1세기 말로 취급되었으나, 최근 연구는 2세기 말로 보기도 한다. 4세기까지 정경으로 취급되었을 것으로 여겨지는 디다케 14:1을 참조해보면, 매주일 일종의 '성찬'이 행해졌다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다만, 논란이 되는 것은 이 성찬이 우리가 생각하는 그런 예배 시간의 성만찬 의식인지, 아니면 예배를 위해 모인 사람들이 함께 나누는 공동식사(애찬)인지는 모호하다. 게다가 이 모임에 '설교' 시간이 있었는지도 알 수 없다.
참고로, 4세기까지만 해도 ‘소아시아와 헬라지역의 이방인 그리스도교 공동체에겐 일요일이 곧 성찬(애찬)과 예배를 위한 정기모임이었지만, 예루살렘과 팔레스틴의 유대인 그리스도교 공동체에겐 그런 의미가 없었다.’는 점도 역시 특이하다(Adolf Adam, Auf der Mauer, 1983,37).
예배 순서에 성만찬 순서가 들어간 기원은 그렇다 치자. 그럼 ‘말씀의 전례’라는 것, 설교 시간이 예배 시간에 규정된 가장 오래된 문서 기록은 어떤 것일까? 디다케만큼 중요하고 오래된 역사 자료는 유스티아누스의 <변증서>(약 150년 경)이다. 이 문서가 중요한 이유는 ‘일요일’(해의 날)의 기원을 알려주고(Justin, Apol. 1,67,3-7), 이 날을 그리스도의 부활, 그리고 예배와 연결시키는 최초의 자료이기 때문이다. 이 자료를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전례 순서의 기원에 있어서 원시적이지만 가장 중요하게 취급될 수 있기 때문이다.
우선 이 문서에서 기독교 예배는 유대교 회당 모임과 유사한 방식으로 취급된다. 우선 오해하지 말아야 할 것은 회당은 성전이 파괴된 서기 70년 이전까지 기본적으로 예배를 위한 모임이 아니라 ‘배움과 나눔’을 위한 장소였다는 점이다. 하지만, 여기서도 일정한 순서가 통용되고 있었는데, 예를 들어 누군가 그날 정해진 독서정과(Toraperikope)에 따라 토라(모세오경)와 예언서를 읽고, 이에 대한 일종의 ‘강론’을 하게 된다. 이건 이미 눅4:16-30이하에서도 볼 수 있는 광경인데, 이와 같은 맥락을 초기 기독교 모임도 이어온 증거를 유스티누스의 <변증서>에서도 확인 할 수 있다.
이 문서에 따르면, 회당에서 토라를 읽던 순서에 인도자가 사도행전 또는 예언서를 읽도록 했다. 오늘날의 교회력에서도 간혹 구약 본문의 자리에 사도행전이 나오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고 볼 수 있는데, 성서 봉독 이후 설교자는 이 성서 본문을 해석하는 강론을 하게 된다. 이 때 강론은 우리가 말하는 복음적 설교인데, 그리스도의 사건을 구약과 연결하는 것을 주제로 삼았다. 이 문서에 나온 예배 순서는 아래와 같이 요약할 수 있다. 사람들이 모이면, 인도자가 그날의 말씀(사도행전, 예언서, 사도의 서신, 복음서 등)을 봉독하고, 설교를 한다. 그리고 인도자와 회중들이 함께 일어선 채로 찬송을 하고, 성찬(감사) 기도와 함께 온 회중이 성찬을 나눈다. 이런 초기 예배 모임은 낮 시간이 아니라 늦은 오후 또는 해가 진 이후에 열렸다.
유스티누스의 문서를 통해 알 수 있는 것은 개략적인 예배의 정보일 뿐이지, 세부적인 것은 여전히 알 수 없다. 성찬 때 구체적인 순서가 어떻게 진행되는지, 심지어 그런 절차가 있었는지 조자 여전히 미궁이다. 우리가 아는 그런 교회의 전례 의식과 순서들은 아무리 빨라야 <변증서> 이후인 서기 약 150년경 이후가 되어서야 어느 정도 그 윤곽을 드러낸다. 그 때문에 ‘초기 기독교 예배 순서는 바로 이것이다.’, ‘이것이 정통이다.’라고 할 만한 기준은 찾기 어렵다.
전례 의식의 기원에 대해 학자들 간에 논란이 있지만, 그나마 약 210-235경 만들어진 <Traditio Apostolica>는 전례에 관한 정보를 제공하는 문서로서 그 권위를 인정받는다. 왜냐하면, 여기서야 비로소 애찬과 성만찬이 확실히 구분되기 때문이다. 이제 이 책에 대해 다뤄보자.
덧) '궁한 놈이 우물 판다'고, 가르쳐주는 사람이 없으니 사서 고생한다. ㅠ.ㅠ 일단 이렇게 공부해 놓으면 우리교회에서라도 써 먹겠지.
*읽을 것:...정양모 역주, 《열두 사도들의 가르침 ? 디다케》(칠곡: 분도출판사), 교부 문헌 총서 7, 19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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