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신글모든게시글모음 인기글(7일간 조회수높은순서)
m-5.jpg
현재접속자

명설교 모음

택스트 설교

설교자'가 확실한 설교만 올릴 수 있습니다.

산 아래에 사는 사람들

마가복음 크리스............... 조회 수 281 추천 수 0 2019.11.26 12:00:27
.........
성경본문 : 막9:14-29 
설교자 : 김기성 목사 
참고 : 말씀의 숲 교회(대한예수교장로회) 



산 아래에 사는 사람들
막9:14-29



   우리가 사는 세상은 참 복잡하고 힘들고 어렵습니다. 우리는 눈을 뜨는 아침부터 손에는 핸드폰(스마트폰)으로 시작하여, 잠이 드는 그 순간 핸드폰(스마트폰)을 보면서 잠이 드는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그래서 내가 듣고 싶지 않아도, 내가 읽고 싶지 않아도, 내가 보고 싶지 않아도, 하루에도 수많은 정보들을 접하고 있지요. 하루에도 수많은 정보들이 내 머리에 입력이 되고 있습니다.


   그러다보니,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기준이, 다변화된 세상에서 우리는 살고 있고, 때로는 무엇이 옳고, 무엇이 잘못된 지도 모르는, 그런 판단하기 힘든 세상에서 살고 있습니다.


    무엇인가 나를 이끄는 중심이 있었으면 좋은데, 그것 없이 이리저리 끌려가는 아주 복잡한 세상에서 살아가고 있다고 볼 수 있고, 그러지 못하다 보니, 무엇인가에 끌려 다니는, 누군가가 나의 목을 꽉 잡고 끌고 가는, 그런 세상에 우리는 살고 있는지 모릅니다.


   성경은 오늘 저와 여러분들을 포함한 모든 사람들을 산 아래에 사는 사람들이라고 말을 합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말씀으로 보면, 예수님께서 잠깐 산위에 올라 가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을 데리고 헤르몬산 꼭대기로 올라가셨죠. 그곳에서 모세와 엘리야와 변형되신 예수님이 함께 깊은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마치 천국의 모습이었죠. 베드로는 그 모습에 깊이 빠져들어 갑니다. 산을 내려가기 싫었습니다. 이렇게 말합니다. “여기가 좋사오니 초막 셋을 짓겠습니다”. (계속 있겠다는 마음이지요)


   그러나 예수님은 그 모든 영광을 뒤로하고, 세상이 있는 산 아래로 내려가자 말씀하시고, 제자들과 산 아래로 내려오십니다. 왜냐하면 십자가는 산 위에서 지는 것이 아니고, 산 아래에서 저야 하고, 그리고 삶의 현장인 산 아래에서, 모든 일들을 이겨 나가야하고, 해결해 나가는 곳이 산 아래에 있기 때문입니다.


1.
   문제는 산 아래의 세상이 문제입니다. 예수님께서 산꼭대기 가 계셨을 때, 산 아래는 아떤 일이 일어나고 있었을까? (14절에 보시면) 산 아래에는 다툼과 변론이 일어나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을 비방하는 사람들, 서기관들이, 예수님이 산 아래 계셨을 때도 예수님과 제자들의 꼬투리를 잡기 위해서 모여 들었습니다. 그런데 그때는 문제가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이 그들과 함께 계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어떤 문제와 논쟁에도 깨끗하게 정리해 주셨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예수님의 제자들이 손을 씻지 아니하고 음식을 먹었어요(7장). 이 모습을 보고 장로들이 난리가 났지요. ‘왜 유대인의 전통을 어기는가?’ 그때 예수님이 이렇게 말씀하시지요. ‘사람의 입으로 들어가는 것이 더럽게 할 수 없다. 입에서 나오는 것이 그를 더럽게 하는 것이다!’ 정말 멋있는 말씀을 하셨지요. 예수님의 한 마디가, 그들의 도발을 한 번에 잠재우셨습니다.


   문제는 예수님이 계시지 않을 때가 문제였지요. 서기관들이 와서 여러 가지 말로 제자들에게 시비를 겁니다. 하지만, 제자들은 이들의 말을 당해낼 재간이 없습니다. 왜 그럴까요? 그 당시 제자들뿐만 아니고, 오늘 우리에게도, 그 모든 것을 이겨 나갈 수 있는, 삶의 기준이 될 수 있는 것이 없기 때문 아닐까요?


   예수님을 비난하는 서기관들은 종교에 권력자들이이지요. 나이도 있습니다. 힘이 있습니다. 그런데 제자들은 나이도 그들보다 연소하고, 배운 것도 그들보다 없고, 가진 것도 없습니다. 그래서 시작부터 지고 들어가는 것입니다. 가진 것이 없고, 배운 것이 없다고 스스로 생각하기 때문이지요.


   그러나 믿음의 사람들은 우리의 명예나 물질이나 이것이, 권위를 가져다주는 것이 아닙니다. 믿음의 사람들은 가진 것이 없어도, 우리를 당당하게 해 주는 것이 있는데,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사실 ‘믿음이 있다’ 고 하는 사람들을 보면 말씀이, 그를 당당하게 해 주고, 말씀이 그를 힘 있게 해 줍니다. 여러분, 예수님은 말씀 그 자체였지요. 그러니 예수님은 세상에 어떤 것에도 굴하지 아니하고, 그 말씀으로 모든 것을 당당하게 해결해 나가셨습니다.


   어쩌면, 우리 안에 그 말씀이 없어서, 우리는 당당하게, 때로는 담대하게 살아가지 못하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이 말씀이 권위를 가지고, 중심을 잡아야 하는데, 제자들은 권위가 없었습니다.


   목소리 큰 사람이 큰 소리를 내면, 우리는 이 말이 옳은가보다 하고 이쪽으로 쓸려 갑니다. 물질을 많이 가진 사람이 주장을 하면, 그 사람 말에 끌려갑니다. 경험이 많은 사람이 자신의 경험을 가지고 주장하면, 그 경험을 따라 갈 수밖에 없습니다. 말씀이 잡아주는 기준이 없으면, 이리저리 끌려 다닐 수밖에 없습니다.


   이것이 연약한 산 아래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입니다. 산 아래에 살아가는 사람들은, 여러 가지 권력과 사람들의 경험과 그리고 세속적인 욕망에 휩싸여 흘러가는데, 그런데 거기서 우리의 중심축을 잡아주는 것은, 하나님의 살아있는 말씀입니다.


   예) 저는 그래서 매일 아침마다 말씀 문자를 카톡으로, 문자로 보내드리는 것입니다. 하루 종일 나를 붙잡고 있는 핸드폰에 매어있지 말고, 그 핸드폰에서 말씀을 찾아, 그 말씀이 하루를 지탱해 주고, 그 말씀이 하루를 살아가는 삶의 기준이 되어야 하기 때문에 하루하루 말씀문자를 보내드리는 것입니다.


    물론 어떤 분들에게는 아침마다 ‘카톡’ 하면 귀찮은 것일지도 모릅니다. 한번은 어떤 분이 ‘목사님 우리 믿지 않는 제 친구에게도 이 좋은 말씀 좀 매일 보내 주세요’ 라고 전화번호를 주시면, 인사하고 말씀문자를 보내드리죠. 그러면 아무 답변도 없어요. 어느 날 저에게 답변을 합니다. 더 이상 저에게 보내지 말라고, 부담스럽다고 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어떤 분은 저에게 어떤 짧은 동영상 파일을 보내주지요. 그래서 열어보면 “어이쿠~~ 완전히 야한 동영상(야동)을 저에게 보내 주십니다” 귀찮으니 더 이상 이런 것 보내지 말라는 것이지요. 여러분, 제가 잘 나서 그런 것이 아닙니다. 그렇게 하지 아니하면 살아갈 수 없는 우리들의 시대에, 이 일을 사명을 가지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몇 년을 계속...아마 제가 죽을 때까지 하지 않을까? - 우리 전도사님이나, 부목사님들 카톡 잘 보내는 분들로 뽑지 않을까!)


   지지난 주일 오후에 일산명성교회에서 권사님들과 몇 분이 오셨습니다. 저는 그분들을 몰라요. 저의 작은 누이에게 아침마다 말씀문자를 보내는데, 그것을 교회 몇 분에 보내드렸데요. 나름대로 그 말씀이 힘이 되고, 도전이 되었던 것 같습니다. 하루, 이틀도 아니고 매일 일 년 열두 달 계속 받고, 아침에 그 말씀을 읽고 하루를 시작하다보니, 이 말씀을 보낸 사람을 만나보고 싶으셨던 것이지요. (그래서 저희 교회 방문. 기도해 드리고, 이제 직접 말씀문자를 아침마다 제가 보내드리고 있습니다) 


   여러분, 산 아래 살아가는 사람들이 가장 중요하게 붙잡아야 될 것은, 하루하루 나를 붙잡아 주고, 당당함을 주는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이 되는 줄 믿습니다. 말씀이 나를 붙잡아 주고, 뼈대를 이루어가면, 이 땅을 우리는 당당하게 살아갈 수 있는 힘을 얻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없어도 당당하게, 힘들어도 굿굿하게, 부족해도 정말 담대하게 살아갈 수 있는, 산 아래에 사람들에게는, 말씀이, 능력이 됨을 믿습니다.


2.
   그렇다면 한걸음 더 들어가 보겠습니다. 산 아래에 예수님께서 계시지 않을 때, 어떤 일이 벌어졌습니까? 18절을 같이 읽겠습니다(시작) 산 아래의 세상은, 귀신이 사람을 붙잡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에게 한 아버지가 나왔습니다. 그 아버지가 데리고온 아들은 귀신들린 아들입니다. 불에도 넘어지고, 물에도 넘어지고 넘어지면서 간질병 환자처럼 거품 물고, 오랫동안 병들고 힘들어하는 아들이었죠. 이 아들을 데리고 나왔는데, 예수님의 제자들이 고치지 못합니다.


   어쩌면, 산 아래의 세상은 산위에서는 없는 귀신의 능력이 사람을 올라타고, 제어하고 있는 그런 세상을 말합니다. 마치 귀신에 붙들려 뭔가 끌려가는 사람들처럼 말입니다.


   무섭게 귀신이 으흐흐흐 하고 나타나거나, 귀신이 음산하게 사람을 엄습하는 것으로 우리는 착각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아니라, 우리를 뭔가에, 붙잡혀 살게 한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뭔가에 탐닉하고, 그것에 붙잡혀 살아가도록 놓아주지 않는 것이지요. 


   예를 들어, 술에 빠져 갑니다. 술이 그 사람을 붙잡고 있는 것이죠. 내 몸 안에 알코올이 중독이

될 때까지 붙잡고 있고, 또 음란과 정욕이 그 사람을 붙잡고 있어서 놓아 주지를 않는 거지요. 어쩌면 우리는 이 시대에 무엇인가에 붙들려, 빠져들고 있는지 모릅니다.


   우리 자녀들, 오늘 이 시대는 거의 다 중독된 인생을 살아가고 있는지 모릅니다. 어쩌면 귀신이 우리를 쉽게 이끌어 갈 수 있는, 중독의 세계에 우리를 빠트리고 있는지 모릅니다. 우린 어린 아이들 보세요. 요즘 아이가 걷기 시작하면 스마트폰부터 본대요. 어린 아이들까지 모두다 거기에 빠져 있습니다.


   사회학자나 심리학자들의 말에 따르면, 어릴 때부터 보이는 화면에 중독되면, ‘보이는 것이 다’ 라는 것이 어릴 때부터 계속 주입이 된대요. 그리고 더 이상 깊이 생각하려고 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뭔가 골똘히 생각하고, 깊이 고민하는 그런 세상이 점점 사라지고, 눈에 보여야 하고, 눈에서 해결되어야만 한다는 것이지요. 그래서 그것이 해결되지 않으면 점점 더 ‘충동적’이 되어 간다는 거지요.


   그래서 요즘 시대는 다혈질이 많아지고, 화를 참지 못하고, 분노조절 장애! 가 점점 더 많아지게 되는 것입니다. 쉽게 참지를 못한대요. (그래서 앞으로 가장 뛰어난 직업이 이것을 해결하는 방법과 약이나 심리를 다룰 수 있는 직업이 가장 뜨고 있는 직업이 된다는 것이죠 – 옆에 심리센타)


   여러분, 우리는 뭔가에 붙잡혀 살고 있습니다. 뭔가 우리의 등을 꾹 누리고,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어쩌면 우리를 데리고 가는 세상에 있는지 모릅니다.


   예수님은 오늘 그 이유를 진단하셨습니다. 그것이 바로 ‘믿음이 없는 세대이다’(19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진단하시기를 이 세대가 믿음이 없기 때문에, 역사가 일어나지 않는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29절에 보시면, 기도 외에는 이런 유가 나가지 않는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기도하지 아니하면, 이 모든 것을 이겨낼 수 없고, 물리칠 수 없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니까 ‘기도하지 않는 세대’ 라고 말씀하십니다. 기도하지 아니하면, 나를 만나지 아니하면, 하나님께 의탁하지 아니하면, 나를 붙잡고, 나를 놓지 않으려는 것에서, 결코 벗어나지 못한다고, 예수님은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기도를, 우리의 소원을 아뢰고 하나님께 청원한다고 합니다. 하지만 사실 기도를 제대로 하면, 나를 발견합니다. 내가 얼마나 연약하고, 내가 얼마나 죄가 많고, 나는 얼마나 쉽게 넘어갈 수밖에 없는 죄인인지, 나 자신을 발견하게 됩니다. 때로는 부끄러워 견딜 수 없을 정도로 나 자신의 연약과 무력을 발견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의탁하면, 하나님께 기도하면, 우리를 붙들고 있고, 나를 끌고 가는 그 모든 것에 이결 낼 수 있는 힘을 주신다고 약속 하셨습니다. 무엇인가에 끌려가는 삶이 아니라, 끌고 갈 수 있는 힘! 하나님이 주시는 힘으로 우리는 살아갈 수 있습니다. 여러분, 무엇에 매어 있습니까? 우리 자녀들이 무엇 때문에 고통 받고, 무엇 때문에 중독되어서, 거기서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습니까? 기도하셔야 됩니다.


   산 아래 이 세상, 예수님께서 육체로 계시지 않는 이 세상 성령으로 함께 하시는 예수님께, 간구하며 엎드려 기도해서, 능력을 덧입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기도하면 우리의 죄 짐을 벗겨 주시고, 기도하면 우리를 붙들고 있는 어떤 악한 영의 세력으로부터 자유케 될 것입니다. 산 아래 세상에서 가장 필요한 것은 기도라는 사실. 이 사실을 분명히 붙들고 기억하시기를 바랍니다. 


   예수님께서 오늘 우리에게 힘을 주십니다. 23절을 함께 읽겠습니다.(시작) 할 수 있거든 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어떻게 해요? ‘능치 못할 일이 없다’ 라고 예수님이 말씀해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 믿음 없음을 불쌍히 여기시는 예수님의 말씀을 기억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산 아래에 사는 우리들에게는 절대적 말씀의 권위가 사라진 세상입니다. 한 손으로는 말씀을 붙잡고, 또 한 손으로는 기도를 붙잡지 아니하면 살아갈 수 없는 산 아래에 사는 사람들입니다.


   말씀 붙잡고, 기도를 붙잡고 나아가면 우리를 붙잡고 있는 악한 영의 세력들도 다 떠나갈 줄 믿습니다. 그 은혜로 살아가시는 여러분 되시기를 축원 드립니다.


https://cafe.naver.com/bibleforest 이곳에 오시면 더 많은 자료를 보실 수 있습니다.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성경본문 설교자 날짜 조회 수
16418 요한일서 사랑은 긍휼이다 요일 4:10  강종수목사  2019-12-06 215
16417 이사야 평화를 위하여 오신 왕 사11:1-11  강승호목사  2019-12-05 349
16416 잠언 신실한 신앙의 보상 잠언13;7-21  전원준목사  2019-12-05 298
16415 사도행전 보여지고 싶은 나와 보여지는 나 행24:24-25:5  김기성 목사  2019-12-04 345
16414 창세기 야곱의 기도 창32 :24-31  강종수목사  2019-12-04 349
16413 누가복음 주의 능력이 예수와 함께 하더라(2). 눅5:15-20  김경형목사  2019-12-04 80
16412 누가복음 주의 능력이 예수와 함께 하더라(1) 눅5:15-20  김경형목사  2019-12-04 148
16411 창세기 우리 아버지와 동침하여 인종을 전하자. 창19:6-38  김경형목사  2019-12-04 123
16410 마태복음 깨어 준비하고 있으라 마24:36-44  강승호목사  2019-12-04 456
16409 마가복음 교만은 자동이고 겸손은 수동입니다 막9:30-37  김기성 목사  2019-12-01 463
16408 창세기 동행은 은혜입니다 창4:21-24  김기성 목사  2019-12-01 481
16407 요한계시 거룩한 도성 계21:9-22:5  강종수목사  2019-12-01 155
16406 잠언 축복은 우연이 아니다 잠언13장1절-6절  전원준목사  2019-11-30 525
16405 로마서 빛의 갑옷을 입자 롬13:11-14  강승호목사  2019-11-30 391
16404 누가복음 마음의 천국을 이루는 길 눅17:20-37  이한규 목사  2019-11-29 522
16403 창세기 시험에 관한 3가지 원리 창44:9-13  이한규 목사  2019-11-29 319
16402 창세기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라 창43:19-23  이한규 목사  2019-11-29 557
16401 누가복음 자기를 버리는 삶의 축복 눅9:57-62  이한규 목사  2019-11-29 469
16400 요엘 평안을 추구하라 욜3:7-13  이한규 목사  2019-11-29 279
16399 창세기 자신부터 변화되라 창33:1-4  이한규 목사  2019-11-29 308
16398 창세기 말씀에 순종하며 기도하라 창32:9-12  이한규 목사  2019-11-29 394
16397 창세기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 창30:1-2  이한규 목사  2019-11-29 407
16396 고린도전 공유한 진리와 사적 신앙 고전2:14  강종수목사  2019-11-29 86
16395 이사야 평화의 왕이 오신다 사2:1-5  강승호목사  2019-11-29 781
16394 사도행전 양심 행24:11-23  김기성 목사  2019-11-28 211
16393 마태복음 믿음의 기도를 드리자 마21:22  강종수목사  2019-11-27 285
16392 창세기 우리가 그들을 상관하리라. 창18:17-19:6  김경형목사  2019-11-27 214
16391 골로새서 영광의 힘을 따라 골1:11-20  강승호목사  2019-11-27 177
» 마가복음 산 아래에 사는 사람들 막9:14-29  김기성 목사  2019-11-26 281
16389 요한계시 새 하늘과 새 땅 계 12:1-8  강종수목사  2019-11-24 134
16388 느헤미야 번영을 추구하는 성도 느2;1-11  전원준목사  2019-11-23 196
16387 예레미야 진정한 메시야 램23ㅣ1-6  강승호목사  2019-11-23 137
16386 요한복음 말씀의 생명력 요6:63  강종수목사  2019-11-22 337
16385 누가복음 왕이신 그리스도 눅23:33-43  강승호목사  2019-11-22 287
16384 다니엘 일사각오 단3:13-18  김중곤 목사  2019-11-21 384

설교를 올릴 때는 반드시 출처를 밝혀 주세요. 이단 자료는 통보없이 즉시 삭제합니다.

    본 홈페이지는 조건없이 주고가신 예수님 처럼, 조건없이 퍼가기, 인용, 링크 모두 허용합니다.(단, 이단단체나, 상업적, 불법이용은 엄금)
    *운영자: 최용우 (010-7162-3514) * 9191az@hanmail.net * 30083 세종특별시 금남면 용포쑥티2길 5-7 (용포리 53-3)
XE Login